고전 읽는 습관

 

 

지난주부터 <하버드 인문학 서재>를 읽고 있다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하버드생들에게 추천하는 고전목록과 그에 대한 간략한 평이 있다는 생각에서다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런 소개 글은 아니다특이하면서도 나름 저자의 개성이 충분히 배여 있다그 개성 때문에 약간 모가 난 듯 한 느낌을 주기도하고다른 면에서는 은근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랜드슬램'이란 독자는 '대 실망이다'라고 평하면서 별 두개를 주었다이유는 개인의 독서일기 수준이라는 것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지금 읽고 있는 나의 생각도 같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주 수준이 떨어지는'이란 말에는 공감할 수 없다아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문장이 많다물론 이것도 나의 개인적 의견이니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에도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아 있다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자들의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는 책이라는 점은 분명해 졌다.

 

40년 동안 하버드 총장으로 있었던 엘리엇이 은퇴하면서 5피트 책꽂이란 프로제트를 통해 선별된 전집이다저자는 이것을 한 권씩 읽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바로 이 점이 개인의 독서 읽기 형식을 띄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책을 깊이 있게 서평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자신의 과정을 다루고 있어서 독자들의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나 또한 그랜드슬램처럼 책 제목에 속아 샀으니 뭐라 하겠는가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가 된다.

 




 

하버드 클래식은 총 50권으로 이루어진 하드커버로된 장정이다. 콜리어 앤드 선이라는 출판사를 선정해 출판하여 20년 동안 약 50만 질을 판매 했다고 한다. 흡사 80년대 유행했던 계몽사 전집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될 터이다. 이 전진은 지성사를 다루지 않는다. "정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없었던 대공황 시절에 문학에서부터 경제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 읽기를 토해서 노동계층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지혜를 얻게 하자'는 것이다. 하루에 60쪽씩, 일주일에 450쪽을 읽고, 1년에 22천 쪽을 읽게 된다. 그러니 한주에 한 권, 한 달에 4, 1년에 꼭 50권을 읽음으로 전집을 몽땅 읽을 수 있게 된다. 조심스런 이야기지만 이 책 한 권은 요즘의 작은 사이즈도 아니고 얇은 책도 아니다. 근래에 나오는 300쪽 분량의 약 2.5배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요즘 책으로 계산하면 150권에 해당한다. 그럼 이틀에 한 권을 읽게 된다.

 

아마도 독자들이 가장 궁금한 점은 책 목록이 아닐 성 싶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책 목록은 목차에 모두 담겨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런 책들을 왜 엘리엇이 추가했는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도 많지만, 대부분 고전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추천할만하다. 아랫부분에 목차를 함께 담았다.

 

재미난 일화는 저자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할머니가 이 책을 통해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즉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독서만으로도 뛰어난 통찰력과 인생의 지혜, 교양들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럼 나도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도전한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과 느낌은 다르지만 환경은 비슷하다. 여성의 감미로움이 빠진 팍팍함이 느껴지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은 책 한 권 건졌다.


이 목록을 참고해 읽어야할 고전을 추려낼 작정이다. 존 울먼의 <일기> 같은 책은 당연히 뛰어 넘어야 할 것이고, 플라톤의 책은 <국가>만 소장하고 있는데, 파이톤과 변론도 구입해야겠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아직 책을 읽을 수 있는 건강이 있고, 책을 살 수 있는 재정적인 여력도 있고, 시간도 틈틈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게 행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목차

1월, 나는 작은 수첩을 만들었다 ● 21

1권 벤저민 프랭클린『자서전』| 존 울먼『일기』| 윌리엄 펜『고독의 열매』

2권 플라톤『변론』˙『크리톤』˙『파이돈』| 에픽테토스『어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3권 프랜시스 베이컨『수상록』˙『민간 도덕』˙『뉴아틀란티스』| 존 밀턴『아레오파기티카』˙『교육론』| 토마스 브라운『종교의학』

4권 존 밀턴『시 전집』


2월 들고 읽어라 ● 53

5권 랠프 월도 에머슨『에세이 선집』˙『영국인의 특성』

6권 로버트 번스『시와 시가』

7권 성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 토마스 아 켐피스『그리스도를 본받아』

8권 아이스퀼로스『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자비의 여신들』˙『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 에우리피데스『히폴리토스』˙『주신 바커스의 시녀들』| 아리스토파네스『개구리들』


3월 언어를 통해 알았던 것이 아니다 ● 79

9권 키케로『우정에 대하여』˙『노년에 대하여』˙『서한집』| 소(小)플리니우스『서한집』

10권 애덤 스미스『국부론』

11권 찰스 다윈『종의 기원』

12권 플루타르코스『영웅전』


4월 맘브리노의 투구를 써라 ● 103

13권 베르길리우스『아이네이스』

14권 미겔 데 세르반테스『돈키호테』

15권 존 버니언『천로역정』| 아이작 월튼『존 던과 조지 허버트의 생애』

16권『천일야화』


5월 공기의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다 ● 131

17권 이솝『이솝 우화』| 그림 형제『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안데르센 동화』

18권 존 드라이든『지상의 사랑』| 리처드 셰리든『스캔들 학교』|올리버 골드스미스『지는 것이 이기는 것』| 퍼시 비시 셸리『첸치 일가』| 로버트 브라우닝『오명』| 바이런『맨프레드』


6월 이전과 다름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 151

19권 괴테『파우스트』1부˙『에그몬트』˙『헤르만과 도로테아』| 크리스토퍼 말로『포스터스 박사의 비극』

20권 단테『신곡』

21권 알레산드로 만초니『 약혼자』


7월 삶이 충분히 즐거운가 ● 169

22권 호메로스『오디세이아』

23권 리처드 헨리 데이너『2년 동안의 선원 생활』

24권 에드먼드 버크『취향에 대하여』˙『숭고와 미에 대하여』˙『프랑스 혁명론』˙『어느 귀족에게 보내는 편지』

25권 존 스튜어트 밀『자서전』˙『자유론』| 토마스 칼라일『성격에 대하여』˙『에든버러 대학 학장 취임사』˙『월터 스콧 경』

26권 페드라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인생은 꿈』| 피에르 코르네유『바르왹트』| 장 라신『페드르』| 몰리에르『타르튀프』| 레싱『미나 폰 바른헬름』| 프리드리히 폰 실러『빌헬름 텔』


8월 풀밭으로 나가라 ● 199

27권『영국 에세이 편: 시드니에서 매콜리까지』

28권『영미 에세이 선집』


9월 우리는 아테네인이 아니라 세계 시민이다 ● 211

29권 찰스 다윈『비글호 항해기』

30권『과학 논문 선집』

31권 벤베누토 첼리니『자서전』

32권『문학 및 철학 에세이 선집』

33권『항해기와 여행기』

34권 르네 데카르트『방법 서설』| 볼테르『영국인에 관한 편지』| 장 자크 루소『인간 불평등 기원론』˙『사부아 지방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 토마스 홉스『리바이어선』1부 인간론


10월 내 아들과 스승의 아들에게만 전한다 ● 237

35권 장 프루아사르『연대기』| 토마스 맬러리『성배』| 윌리엄 해리슨『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에 대하여』

36권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 윌리엄 로퍼『토마스 모어 전기』| 토마스 모어『유토피아』| 마르틴 루터「95개조 반박문」˙「기독교인 귀족에게 보내는 글」˙「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

37권 존 로크『교육론』| 조지 버클리『힐라스와 필로누스가 회의론자와 무신론자에 반대하여 나누는 세 대화』| 데이비드 흄『인간 이해력 탐구』

38권「히포크라테스 선서」| 앙브루아즈 파레『다양한 곳으로의 여행』| 윌리엄 하비『동물의 심장과 혈액 운동에 대하여』| 에드워드 제너『천연두 예방 접종에 관한 세 원전』| 올리버 웬들 홈스『산

욕열의 전염성』| 조지 프리스터『외과 수술시 소독법에 대하여』| 루이 파스퇴르의 과학 논문| 찰스 라이엘의 과학 논문

39권 서문집

40권『영국 시1: 초서에서 그레이까지』


11월 지금 이 순간에 미래의 양식이 있다 ● 263

41권『영국 시2: 콜린스에서 피츠제럴드까지』

42권『영국 시3: 테니슨에서 휘트먼까지』

43권『미국 역사 문헌 1000~1904년』

44권『논어』|「욥」˙「시편」˙「전도서」˙「누가복음」˙「사도행전」

45권「고린도 전서˙고린도 후서」| 『불교 법전』| 『바가바드기타』|『코란』


12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 291

46권 크리스토퍼 말로『에드워드 2세』| 윌리엄 셰익스피어『햄릿』˙『리어왕』˙『맥베스』˙『템페스트』

47권 토마스 데커『구두장이의 휴일』| 벤 존슨『연금술사』| 보몬트와 플레처『필래스터』| 필립 매신저『묵은 빚을 갚는 새로운 방법』

48권 블레즈 파스칼『팡세』˙『서한집』

49권『베오울프』|『 롤랑의 노래』|『 다 데르가 호스텔에서의 죽음』|『 볼숭과 니벨룽 이야기』

51권『하버드 클래식에 대하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2-2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버드 인문학 서재>와 같은 고전목록을 소개하는 책을 읽으면 일단 목록을 확인하고 난 뒤에 관심 있는 고전을 언급한 내용 위주만 골라서 읽습니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정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읽고 싶은 고전을 소개한 내용만 발췌해서 읽는다면 다른 독자가 <하버드 인문학 서재>에 평점 1점을 줘도 전 이 책을 좋게 보고 싶어요. 단, 저자가 고전을 이해하는 생각에 균형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왜곡되어 있으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낭만인생 2015-02-25 18:58   좋아요 0 | URL
독자마다 생각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필독서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표지가 전부는 아니지만... 먹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하여튼 좋다.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은 봄이 오는 듯한 셀레임을 준다. 겨울이 싫은 나에게 따스한 느낌의 표지만으로도 사고 싶은 책이다.


<한문장의철학>은 어떤가? 책벌레가 좋아하는 표지가 아닌가. 세월히 삭힌 표지를 멋드러지게 디자인해 놓았다. 맘에 든다.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는 순전히 책과 고양이 때문에 좋다. 책도 좋고, 고양이도 좋다. 우리집에도 길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고 있는데 두 마리다 숫놈이다. 짜슥들...  언젠간 나의 고양들이들도 책 표지가 되리라...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 아니면 내가 책을 쓰든지.
















일단 책이 들어간 표지는 맘에 든다. 이번 신간 중에 <책공장 베네치아>와 <책의 문화사>는 내용도 좋고 표지도 맘에 쏙 든다. 마지막으로 <깊어지는 인생>은 깔끔하고 단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이런 표지도 좋다. 





















싫은 표지는 뭐냐구요? 그건 노코멘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하게 박신영이란 분을 읽었다. 이곳 저곳 검색해 보니 꽤 괜찮은 작가다. 올해 <삐딱해도 괜찮아>까지 모두 세 권을 출간했다. 특히 2013년에 출간한 그의 첫 책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는 압권이다. 이 분의 책도 유의해볼만하다. 이틀에 한 권 읽는다는 말에 겁이 덜컥난다. 이건 여자가 아냐.


하여튼 나는 조만간 시골에 내려갈 작정이다. 반드시 내려 가리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양물감 2015-02-2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신영작가 책 다 가지고 있어요.
신문에 연재하는 글도 재미나답니다.

낭만인생 2015-02-24 09:5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 분을 아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는 이번에야 알고 세 권 모두 살 생각입니다. 두번째 책이 좋다고 하던데. 하양물감님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하양물감 2015-02-2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스블로거에서 책을 내게 된 분이어요.^^
일단 저도 백마탄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가장 재미나게 읽었어요.
이 책으로 우리 도서관에서 강의도 하셨는데 어머님들 반응도 좋았답니다.

낭만인생 2015-02-24 10:4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서재에 들러서 글 몇 개를 읽었습니다. 혹시 중앙일보에 글을 올린다고 하던데 링크 주소는 알아 볼수 없나요?

하양물감 2015-03-0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7249163

낭만인생 2015-03-02 20: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을 절반쯤 읽었는데 읽을 수록 빠지들게 합니다.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51회 - 책의 향기


어제부터 내일 비가 오늘 새벽까지 내렸다. 새벽바람이 흩날려 코끝을 스쳐간다. 봄냄새다! 기억 저편에서 봄의 향긋함을 불러낸다. 곧 봄이 오려나 보다. 축축하게 젖은 땅이 차갑지 않다. 따스한 봄의 향기에 젖은 꽃잎처럼 상큼하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땅은 토하듯 새싹을 틔우리라. 그게 봄이니까.

 

늦은 아침을 먹고 서면 알라딘에 가자고 제안하니 선뜻 그러자고 답한다. 아내가 저리 쉽사리 답을 주기도 참 오랜만이다. 아내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슬슬 불어오는 것은 아닌지 김칫국물부터 마셔본다. 읽고 있던 오를리 로벨의 <인재쇼크>(싱긋)를 챙겼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습관이다. 삶이 그렇지 않은가. 목적지에 가기 전 마음이 변하기도하고, 그곳에 도착했으나 맘에 드는 책이 없어 그냥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럴 때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가져가면 무료한 시간을 달랠 기에 딱이다. 소심한 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으나 그렇게 마음먹고 서면으로 향했다.

 

곧장 알라딘 서점이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는 주차장을 찾지 못해 몇 번을 주변에서 돌아야 했다. 헛된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실패를 아무렇게나 팽개치는 것이 문제다. 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하자 차의 속도를 늦추고 주차장 입구를 찾았다. 근 도로변에 위치한 주차장은 입구가 좁아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다. 좁은 주차장은 다행히 만차가 아니라 수월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한층 더 밑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했다.

 

많다. 오늘처럼 많은 사람이 서점을 채우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였다. 집에서 사기로 한 책을 보관함에 담아 둔 터라 헛돌지 않고 곧바로 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구입하려는 책은 대부분 G코너였는데 이곳은 알라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책을 모아둔 곳으로, 알라딘 스페셜, 오늘 들어 온 책들이 있는 곳이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오늘 들어온 코너에 있었다. 그것도 딱 한 권이다. 두 시간 전에 담아둔 책을 누가 가져갈까봐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G코너로 향했다. 몇 사람이 그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손을 짚어 가며 책들을 훑어 내려갔다. 첫 간, 없다. 둘째 칸, 없다. 셋째칸, 와우~ 찾았다.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의 윗부분이 짙은 녹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서의 괴로움>을 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출발할 때 아내에게 약속한 가격은 3만원에 약 5권 정도였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 번 그 명언을 써볼 작정이었다. G코너에서 떠나지 않고 몇 권의 책을 더 담았다. 30분 정도를 담다보니 철 바구니에 책이 가득이다. 곁을 지나던 아내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너는 담아라는 나는 3만원만 결재한다.’ 뭐 이런 식의 눈빛이었다. 설마? 자격지심일까? 아무런 의도가 없는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아내의 눈빛을 왜곡시키는 것 나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담았다. 그렇게 담은 책이 9권이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검은문고)

크리스토퍼 베하의 <하버드 인문학 서재>(21세기북스)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21세기북스)

스티브 레빈의 <지식을 경영하는 전략적 책읽기>(밀리언하우스)

마이클 레빈의 <깨진 유리창 법칙>(흐름출판)

이민희의 <조선의 베스트셀러>(프로네시스)

폴 베델(카트린 에콜 브와벵 정리)<부로 사는 즐거움>(갈라파고스>

로버트 콩클린의 <설득의 심리학>(아이템북스)

미셀 투르니에의 <흡협귀의 비상>(현대문학)

















 

























여기에다 <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 1.2권을 담았다. 합이 6만원을 넘어섰다. 아내는 두 권을 빼내들고 갖다 놓으란다. 에이~~~ 아양을 떠는 나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번 만이에요한다. 그랬다. ‘이번만은 책을 더 사려는 나의 마음에 조그만 보탬이 되어 주려는 아내의 묘수(妙手)였다. 결재하고 나니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야곱이 라헬을 위한 7년의 봉사를 수일처럼 여겼듯이 나 또한 책 숲을 거니는 즐거움에 빠져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다. 사랑하면 시간은 영원히 늘어진다. 참으로 묘하지 않는가. 시간의 상대성 원리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과학자는 아인슈타인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하의 원리로 유명한 마하의 것을 가져와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 아인슈타인 상대성원이다. 시간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우리를 파괴시키지 않는다. 때론 고요한 강물처럼 과거 속으로 은은한 석양을 담고 흘려보내기도 한다. 우린 그것을 로맨스’- ‘낭만이라고 부른다.

 

오늘 또 11권의 책이 늘었다. 집이 무너질 것 같은 걱정이 또 늘어났다. 아들은 책좀 갖다 버리라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한 번 혼나고 나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아마 아들도 책이 좋아지면 아빠의 심정을 알 것이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장서의 괴로움>이니 그에 걸맞은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앞부분을 펼치니 저자의 괴로움이 문장에 알알이 박혀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나의 장서 상태 대문이다. 책이 늘어도 너무 늘었다. 책장에 꽂아둔 책과 거의 같은 양의 책이 계단에서 복도, 책장 앞, 책상 주변까지 쏟아져 쌓일 대로 쌓였다. 덕분에 몸을 슬쩍 움직이는 일조차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바닥에 흐트러진 책과 책 사이 좁다란 공간에 한쪽 발을 비집고 들어서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겨우 앞으로 나간다 해도 쌓아올린 책의 담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책이 얼마나 많기에? 이정도의 책이면 적어도 2만원은 넘으리라 짐작된다. 내가 소유한 책이 대략 5천권 정도이니 거의 네 배이다. 어떻게 감히 예측할 수 있느냐고? 그렇게 물으면 그냥 웃지요!’ 여자에겐 남자를 향한 동물적 감각이 분명히 존재하듯, 애서가요 다독가인 나에게도 책에 대해서는 동물적 촉수가 있다. 책에서 나오는 냄새만 맡아도 어떤 종류의 책인지 알아차린다. 눈을 가리고 책을 만져봐도 책의 가격을 가늠할 수 있고, 목차만 읽어도 책의 깊이를 가늠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 년에 수백 권씩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생기는 여섯 번째 감(), 육감(六感)이다.

 

집에 책이 가득하니 문을 열면 거실에서부터 책 냄새가 풍긴다. 커피 향만큼 향기롭고, 체리향보다 상큼하다. 몇 년 동안 묵혀둔 책을 꺼내 위의 먼지를 툭툭 쳐내면 오래된 책 냄새가 코를 찌른다. 책이 삭혀드는 냄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책은 발효되고 숙성된다. 바로 그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이다. 맑은 날에는 잘 나지 않는다. 축축한 습기가 가득하면 책 냄새는 더욱 진동을 하는데, 마약처럼 황홀감을 가져온다. 그러니 어찌 책의 제목을 장서의 괴로움이라 했을까? 문득 저자의 부당함에 적지 않는 서운함이 일어난다. 그것은 즐거운 서운함. 수만 번 읽어도 공감되는 서운함 말이다. 얼마 전 읽은 장샤오위안의 <고양이의 서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 나온다. 단 한 번의 만남도, 교류도 없지만 책은 시공을 초월하여 독서가들을 단단히 묶는 힘이 있다. 거의 신적능력에 버금간다.

 

책의 향기. 지독한 중독이다. 책은 절대 텍스트가 아니다. 오감으로 읽어야 제대로 된 독서이다. 특히 코로 읽어야 한다. 봄이 오는 계절에는 말이다



투표기간 : 2015-02-16~2015-05-01 (현재 투표인원 : 1명)

1.농부로 사는 즐거움- 농부 폴 베델에게 행복한 삶을 묻다
폴 베델.카트린 에콜 브와벵 지음, 김영신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년 9월
100% (1명)

2.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 이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0% (0명)

3.깨진 유리창 법칙-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허점
마이클 레빈 지음, 이영숙.김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06년 3월
0% (0명)

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100% (1명)

5.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 독서노트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4월
0% (0명)

6.전략적 책읽기- 지식을 경영하는
스티브 레빈 지음, 송승하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3월
0% (0명)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02-16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천권이라니 어마어마하네요 ᆢ 어마어마하게 멋진 아빠를 둔 아들분이 부럽네요!! 유쾌한 글 잘 보고 가용😊
 

[주목신간] 2월 11일


봄바람이 분다. 향기롭다. 아니다. 황홀하다. 아직 2월 중순인데 봄 냄새가 코끝에 달려있다. 못된 동장군이 또 닥쳐 올테지만 나름 느긋한 여유를 선물해 준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신간이 많다.


유유 출판사에서 단단한 시리즈가 탄생했다. 작년에 출간된 <단단한 독서>는 읽었고, 올해 출간된 <단단한 공부>와 <단단한 과학공부>는 아직 이다. 일단 유유출판사는 몽땅 살 계획이다.


















이지훈의 <단>은 <혼창통>에 이어 베스트셀러 조짐이 보인다. 소개서를 읽었는데  힘이 세다. 한마디로 더이상 뺄 것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다. 그만큼 본질에 다가서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아직 <혼창통>을 읽어 보지 않아 사뭇 궁금해 진다. 


















416작가기록단이 참여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을 텍스트로 묶어 한 권으로 펴냈다. 잊혀져서도 안되고, 잊혀 질 수도 없는 세월호 사건. 이젠 책으로 읽고 물려 주자.<금요일엔 돌아오렴> 나중에 사야할 영순위 책이다.


<주기자의 사법활극>은 법정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소제목이 유독 눈에 들어 온다. '소송전문기자 주진우가 알려주는 소소에서 살아남는 법'인데, 그동안 소송전문가답게 살아온 흔적이 역력하다. 법적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사두고 볼일이다. 


채사장은 본명이 아니다. 가명이다. 요즘도 가명으로 책을 쓰나 싶은데 진짜 쓴다. 본명 밝히기를 꺼리는 채사장은 물어물러 알려진 사람인데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정평이난 사람이다. 그가 이번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현실 너머편>을 출간한다. 이번 책은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의 영역 등을 다루는데 말마따나 현실너머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집스러운 문장들이 즐비한 그의 평을 읽어보자. 갑자기 삶이 재미있어 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