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이 아닌 '들'을 붙인 이유는 그만큼 많은 책들이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이다. 김요한 사장의 집요함에 놀랄뿐이다. 가장 최근의 책으로 <하버드 천재들, 하나님을 만나다>이고, 2월에 출간된 <칭의논쟁>과 <슬로처지>가 있다. 모두 묵직하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라 탐나는게 사실이다. 















1월에도 3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성경,오해에 답하다>와 <예수 신경> <7인의 십자가 사상>이다. 세 권 모두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신학을 전공한분 답게 책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새물결플러스의 책들은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학적인 범주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하게 책을 선별하는 것도 모양새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광범위하게 나가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래의 글은 김요한 대표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허락없이 퍼온 글과 사진이다.



흔히 교회 다닌다고 하면 일종의 '무뇌아' 취급을 받는 시대에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교회 안에서도 믿음을 앞세워 지성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교회 밖에서는 광신자들의 반이성적 행태에 질려 버린 현실에서, 기독교가 지성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제목에 '천재'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데,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단순히 하버드 출신들이어서가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중요한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이런 자극적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인생의 방향과 목적과 신념이 새롭게 변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독실한 이슬람교도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현재 예일대학교 교수로 있는 라민 사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또 외아들 에릭을 등반사고로 잃었던 전미철학협회 회장을 역임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이야기, 하버드 천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학문적 공적을 인정받아 소행성 2658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지는 명예를 얻었던 오언 깅그리치의 이야기 등등이 나옵니다.

# 이 책은 이전에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지성의 회심>의 전면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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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노란 집


봄이 오니 서재실 스킨도 바꾸었다. 계절별로 서재실 옷도 바꾸니 한결 나아 보인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니 향긋한 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박완서 선생님의 <노란 집>에 보니 봄 이야기가 나와서 밑줄을 그어 놓았다. 혹여나 찾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사랑하니 사소한 것에 관심이 간다. 마음을 울린 이 문장을 가슴에 담는다.

 

"앞산 골짜기엔 아직 희끗희끗 잔설이 보이건만 양지쪽엔 봄이 질펀하다. 폭신한 햇살을 등에 이고 쑥잎도 뜯고 냉이도 캐면서 마나님은 살아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하다."

 

"봄을 또다시 맞아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캘 수 있다는 것,

캐어 가면 반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천지신명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어제 처제와 장례식장에 오면서 차 안에서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다툼이 있다고 한다. 다툼도 젊었을 때 말이지 지금은 말도 하기 싫단다. 나이가 든 것이다.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처제는 나의 생각 속에 이십대 초반이다. 그런데 벌써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간다. 내가 늙은 것인지, 처제가 묵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으나 아직 젊다고만 말하기엔 버거운 나이다. 어쩔 때는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젊음이란 생각에서 온다는 말을 그렇게 실감나게 느낀 적이 없다. 처제 네는 아직도 봄을 모른다.

 

설렘이 없다면 봄이 아직 않은 것이다. 봄이 오면 으레 설렘과 행복이 스멀스멀 가슴을 점령해 오지 않던가. 문득 '어머 벌써 봄이야!'라고 탄성을 지르는 순간 봄은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저의 생각이 어떤가요? 봄은 몰래 오지만, 언제나 들키고 마는 것 아닌가요. 동서는 남자인 내가 봐도 답답하고 막막하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맥 빠진 채로 들어 들어와도 설거지 한 번 한 적 없고, 쓰레기를 버려준 적도 거의 없다. 마냥 아기처럼 아내에게 사랑 받고 싶어 어린양만 부린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라고 노래하지 않던가. 처제는 그런 남편이 언제나 미운 것이다.

 

사랑이 별건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p.48

 

박완서 선생님이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딸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님의 인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글을 다소곳하게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도 집 색깔에 맞추어<노란 집>으로 잡았다. 이미 할머니가 된 딸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를 이렇게 추억하네요.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속에 보여준다. 어머니가 애써 선택한 마나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한 존칭임을 알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철저함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존경한다.” p.8

 

딸의 눈에 비친 엄마의 풍경이다. 나또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삶의 낭만을 느낀다. 범인들은 슬픔 너머 기쁨을 보지 못하고, 기쁨 너머 애환을 읽지 못한다. 고수는 기쁨 속에서 눈물을 읽고, 슬픔 속에서 사랑을 그릴 줄 안다. 박완서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는가>를 읽으면서 놀랬던 것. 이렇게 침울하고 암담한 이야기를 어떻게 즐겁게 풀어낼 수 있을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궁극적 낙관주의자! 나는 박완서 선생님을 그렇게 말한다. 처제와의 내밀한 부부관계를 이야기하며 한 시간 남짓 달리다보니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 아내와 나는 처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제, 그래도 지금이 행복한 거야. 아마 더 나이가 들면 지금 남편과 싸운 것. 스트레스 받으며 힘들었던 것. 다 행복했다고 추억하게 될 거야. 지금 행복을 놓치지 말고 잡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벗어나고 싶은 것들. 지나고 나면 행복이라는 걸 나는 안다.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좋은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내와 나도 그렇게 15년 넘는 결혼 생활을 해 왔으니 말이다. 신혼 초. 우린 얼마나 다투고 언쟁이 많았던가. 30년의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경 속에서 홀로 살다가 함께 살아야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다툼은 당연한 것이고, 오해는 불가피한 것이다. 다만 어떻게 풀어 나가고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한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는 미워하게 돼 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다. 지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p.66

 

나도 한 때, 외롭다는 생각 많이 했다. 지금도 종종 고독이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오면 어쩔 줄 모른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내 안에 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이 된다. 봄이다. 봄이 오면 마음이 달뜬다. 새롭게 시작해 보자. 이젠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지 말고 사랑해보자. 먼저 인사하고, 먼저 문자 보내고, 먼저 편지도 보내보자. 이렇게 내 자신을 다독거리고 나니 마음이 벌써 울렁인다.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71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속에 보여준다. 어머니가 애써 선택한 마나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한 존칭임을 알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철저함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존경한다." p.8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p.48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는 미워하게 돼 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다. 지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p.66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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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면 쉽게 잃는다

 

'잃는다''잊는다'로 고쳐 읽어도 무방하다.

 

흔히들 고전은 고전한다고 한다. 읽기에 버겁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치고 고전을 읽어 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고전은 생각 외로 쉽다. 모든 고전이 고전하며 읽을 필요는 없다. 쉽게 말해 기독교 고전인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일종의 자선소설이다. (물론 자전소설로만 읽으면 안 되는 책이지만) 태어나서 방황하고 하나님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담백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걸작이다. 고전할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플라톤의 작품들을 보라 대부분이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 같다. 문장의 의미들을 파헤쳐야 한다면 고전할 것이 틀림없지만 편하게 읽기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책들이다. 중세의 철학자인 안세무스의 책들인 모놀로기온과 프로슬로기온 역시 기도문이다. 정말 쉽다. 그런데도 고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고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일부 비평가들의 조언에는 기가 차다.



 












고전은 쉽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고전은 고전하며 읽어야 한다. 즉 플라톤의 <국가>는 대화체지만, 대화 속에 담긴 의미는 깊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러내기는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점이 고전을 고전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쉽게 읽히는 고전이 수두룩하지만 퍼내고 또 퍼내도 다 퍼내지 못하는 것이 고전이다. 쉽지만 깊은 것이 고전이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쉽게 익히는 것은 쉽게 잊는다고 한다.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넘어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반복해야 한다. 벼락치기 공부법과 같은 독서는 쉽게 읽히지만 쉽게 잊어버린다. 저장되지 않는 메모리가 부팅시 몽땅 삭제되어 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고전은 쉽게 읽어서는 안 된다. 고전은 고전하며 읽어야 한다. 고전뿐 아니다. 모든 책이 고전하며 읽어야 남는다. 다만 고전할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고전하며 읽어야 하는 책들은 어떤 책일까? 고전도 수천 권이 넘지 않는가. 이런 고민을 풀어줄 책이 한 권 나왔다. 전문 번역가인 이종인의 신간 인 <살면서 마주한 고전>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번역생활을 하면서, 또한 독서가로서 그동안 출간된 책 중에서 죽기 전 읽으면 좋을 책을 선별했다. 특이하게 목차를 4부로 나누었는데 1.2.3.4부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었다. 계절에 맞는 맞춤도서로 선정한 듯하다. 일단 목차를 유심히 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골라낼 작정이다.

 

로쟈는 이렇게 글을 달았다.

이어서 인문서 독자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번역가 이종인. 올해 나온 번역서만 해도 4권에 이르지만, 단독서도 출간됐다. <살면서 마주한 고전>(책찌, 2015). '전문번역가 이종인이 추천하는 시대의 고전 360'이 부제. 신뢰할 만한 번역자의 고전 가이드북이라고 할까. "서양의 정치학 서적에서부터 현대 영미소설, 한국의 문학작품, 에도시대 하이쿠까지 지역과 시대를 망라한 작품을 두루 소개한 책이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본도서는 고전에 대한 참신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갈피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갈피의 사전적 의미는 [1.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 또는 그 틈. 2. 일이나 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 ]이 된다. 독서에도 갈피가 필요하고,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 때 이 책은 좋은 가이드 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종인이 옮긴 <중세의 가을>과 <평생 독서계획>도 참고 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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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의 <책이 되어버린 남자>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왜 <소가된 게으름 뱅이>가 연상 되는지 모른다. 너무 무서운 책이다. 난 죽기 싫은데... 책이 되어 죽다니. 


그런데 이 책은 또 뭐야. 읽고 싶다. 그런데 읽으면 죽을 것 같다. 죽이는 책이지 않는가. 아직 장바구니 결제가 끝나지 않았다. 이걸 시켜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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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책이 되어 죽는 이야기에 맞게 책 표지도 그로테스크하군요. 책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

낭만인생 2015-03-01 06:48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읽을 만한 책일겁니다.
 

부흥과 개혁사의 엉뚱함에 대하여

 

부흥과 개혁사.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약간의 어패가 존재하는 모호한 단어다. 진정한 부흥이란 개혁이 뒤 따라야 한다는 다부진 개혁자의 정신의 세워진 출판사다. 기독교 출판사의 경계는 제한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갓피플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제한성' 때문이다. 열권을 읽으면 7권은 종교서적이 아니다. 아니다. 열의 아홉은 일반 서적이다. 대부분의 역사 철학 또는 인문학 서적이고, 종종 자기계발 서적이다. 독서와 책 관련 책을 자기계발 범주 안에 넣는다면 자기계발 분량은 훨씬 넓어 질 것이다. 전방위적 독서를 지향하는 나에게 기독교 서적이란 한계는 많은 오류를 범하는 실수도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 난 알라딘 서재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계속하여 이곳에 머물 것이다.

 

현대 한국교회의 양태를 들여다보면 가관이 아니다. 기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이런 현상은 목사의 인기? 현저히 떨어진 것을 보아도 분명하다. 이젠 목사는 경건하거나 도덕적인 존재가 인다. 욕심이 가득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 친권력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근대화와 함께 세속적 욕망을 부추긴 말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단으로 여겼던 베리칩 집단과 손을 붙잡고 있으며, 교황 방문에서도 발광할 정도의 극도의 긴장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기독교인으로서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교회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며 새로운 교회가 시작돼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종교개혁자가 되버린 루터, 연설문 하나 잘못 써서 이단이 되어버린 칼뱅 등은 시대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불가피한 출현이다. 지금의 한국 교회의 새로운 종교개혁의 바람 역시 누적된 불의함의 결과이리라.

 

이제 한국교회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 그 자리. 불의한 세상에 대하여 공의와 진리를 따라 헌신했던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서구 사상이 가져온 오류들을 걷어내고 원시적 말씀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원리가 아니라, 자기부정과 죽음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언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아드 폰테스’(Ad Fontes)야 말로 지금의 한국교회가 추구해야할 모토다. 기독교의 폰테스는 성경이다. 시대적 조류와 역사적 편견이 만든 오해를 걷어내고 순수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 기독교는 혁명공동체였고, 오직 성경에만 권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껍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신장, 그의 권력, 그의 명예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성경에만 권위를 두었고, 그 권위에 복종했다.

 

부흥과 개혁사의 책들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백금산 목사에 청교도적 신앙관이 짙게 배인 출판사다. 말씀에 천착했던 청교도 사상에 입각한 서적을 번역하고 펴낸다. 그렇다고 청교도가 완전무결한 존재는 결코 아니다. 그들도 타락했고, 그 후손들은 변질되었다. 청교도 사상 위에 세워진 미국(뉴잉글랜드)은 주홍글씨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많은 오류와 마녀사냥에 빠져 위선으로 가득찬 시기를 보냈다. 이후 근대를 넘어 현대로 이어오면서도 남부 노예제를 찬성하고, 바이블벨트를 구성하면서 보수 세력으로 퇴보하는 역사도 갖고 있다. 그래서 다시 영국의 시민전쟁, 곧 청교도혁명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루터와 칼뱅이 이룬 종교개혁의 모토아래, 성속이 일치하고, 진리가 하늘이 아닌 땅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리는 땅에 있다. 로고스는 육체가 되었고, 땅 위를 걸었다. 진리는 길 위에 있다. 구걸하는 거지들과 창녀들과 함께 걸었다. 제자들은 그 주님을 기대어 살았고, 본 받았다. 이런 서사를 이해한다면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땅을 걸었던 예수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합리성을 추구하고 민주적 정치사회를 꿈꾸었던 처음 청교도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바로 이점이 부흥과 개혁사의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현재 개혁과부흥사는 무모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거의 팔리지 않을 책들을 쏟아내고있다. 말씀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과연 옳은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부흥과 개혁사에서 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스티븐 차녹의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1.2> <하나님을 아는 지식1.2>는 청교도에 미치지 않고는 읽지 않는 책들이다.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하나님의 존재와 속서1>의 경우는 무려 48,000원이다. 이런 책을 누가 쉽게 사서 읽을까. 책사는데 돈을 기꺼이 투자하고 청교도의 책들을 즐겨읽는 나에게도 무모해 보인다. 이래서 부흥사와 개혁사가 엉뚱한 것이다. 






























2011년에 출간한 아이작 암브로스의 <예수를 바라보라 1.2> 역시 마찬가지다. 청교도에 정통했다고 생각한 나까지도 금시초문의 저자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알수 있을 터이지만, 그만큼 도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하여튼 잘 되기를 바란다. 엉뚱함이 특이함이 되고, 탁월함이 되기를 바란다. 망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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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현 2016-01-25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들린 청년입니다. 필자의 글을 보며 궁금한 점이 있어 글을 남겨봅니다.

1. 필자는 어떤 공부를 하였기에, 청교도의 정통하다. 라는 표현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작 암브로스`를 예로 들어 그가 금시초문의 저자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필자가 암브로스를 모르고 계시다면, 청교도의 정통하다라는 말이 알맞은 표현이지 의문이 듭니다.

2. 거의 팔리지 않는 책들을 펴내고 있는 부흥과개혁사의 무모함을 비판하셨는데,
책을 펴내는 출판사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는지, 또한 책이 어느정도로 팔리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갖고 말씀하시는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부흥과개혁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만, 궁금해서 질문 올려봅니다.

낭만인생 2016-03-17 19:12   좋아요 0 | URL
저는 부흥과개혁사의 책을 무척 좋아하고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청교도 관련 서적도 많이 읽었구요. 이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밝히기는 그렇지만, 신학과 교회사에 초보자는 아닙니다. 비판적인 글은 아니구요. 응원의 글입니다. 다만, 청교도와 한국교회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시각으로 서술한 것이라고 이해했으면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청년 2 2016-03-1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 역시 잠시 지나가다가 들려 댓글을 답니다.
책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이곳에까지 들리게 됐네요.ㅋ
임채현 형제님~

1. 필자는 ˝청교도에 정통했다고 생각한 나까지도˝ 라고 적으셨네요.
이 말은 ˝나는 청교도에 정통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별로 유명하지 않아서 몰랐다˝는 말씀은 아닌 것 같아요 ㅎㅎ
2.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인기나 분위기에 편승하여 단순히 이익을 우선 순위에 둔 책 출판이 아니라,
출판사 나름의 정체성을 따라서 조금 덜 알려지고, 판매 기대 수익이 적다하더라도 꾸준히 알려야할 필요가 있는 책들을 출판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네요.^^

이상.. 오지랖을 끝내겠습니다^^;;;

ㅎㅎㅎ 2016-04-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임채현, 청년2라는 사람은 비판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과 상대방을 어떻게든 비꼬아보려는 나쁜 기질을 타고 났군요 백금산빠입니까? 그 교회 다니나요? 부개 직원인가? 하여튼 대한민국 그리고 대한민국 개신교는 멀었습니다 이래서 안 되는겁니다

ㅎㅎㅎ 2016-04-1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웬 거지같은 인신공격에도 예수님처럼 침묵까진 아니어도 묵묵히 받아주는 글쓴이의 넓은 아량에 놀라고 갑니다

chunmag 2016-07-2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도 글자만 알고 글은 모르는 사람이 많군요)

잘 읽었습니다.

테오 2017-04-20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왜 이런 책이 가치가 없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저는 이런 책들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기대합니다. 잘 팔릴 것같은 책만 출판하는 것은 기독교 출판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청교도는 이 땅에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를 설립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진리는 이 세상(땅)에 있지 않습니다.

피해자 2017-12-11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마 부개사 출판사장 직원들에 대한 아픈 상처를 받아서 비판적이 되신 것 같다는 동정심이 듭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

낭만인생 2017-12-1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 글이 비판으로 읽힙니까? 이상하네.... 잘하고 있고 더 잘하라는 말인데. 흠.....
....


[2011년에 출간한 아이작 암브로스의 <예수를 바라보라 1.2> 역시 마찬가지다. 청교도에 정통했다고 생각한 나까지도 금시초문의 저자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알수 있을 터이지만, 그만큼 도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하여튼 잘 되기를 바란다. 엉뚱함이 특이함이 되고, 탁월함이 되기를 바란다. 망하지 말고....]




지나가는사람 2017-12-3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글을 읽고 부개사의 용기있는 엉뚱함을
낭만인생님께서 응원하는 글로 봤는데...

누구에게는 비판으로 읽히기도 하는군요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나봅니다 ^^

댓글 처음 다는 일인 2018-03-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흥과 개혁사˝ 검색하다 연관 검색어로 ˝부흥과 개혁사 비판˝이 뜨고

이 글이 제일 처음 검색되기에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들어왔습니다.

댓글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습니다.

낭만인생님의 글이 왜 비판으로 들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체 논지가 비판적이기 때문에 잘하라고 하는 내용도 오해돼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암울한 한국 교회 상황에서도 무모한 도전을 하는 부흥과 개혁사를 응원하는 내용이

절제되고 시니컬한 어조 때문인지 오독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위 글과 댓글들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내가 했던 위로와 칭찬이 내 어조와 절제 때문에 오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칭찬할 때 감정 담아 칭찬하지 않고 숨길 때가 있고 돌려서 말할 때가 많은데
주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이 깁니다. 고수님들 때문에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처음 다는 일인 2018-03-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흥과 개혁사˝ 검색하다 연관 검색어로 ˝부흥과 개혁사 비판˝이 뜨고

이 글이 제일 처음 검색되기에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들어왔습니다.

댓글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습니다.

낭만인생님의 글이 왜 비판으로 들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체 논지가 비판적이기 때문에 잘하라고 하는 내용도 오해돼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암울한 한국 교회 상황에서도 무모한 도전을 하는 부흥과 개혁사를 응원하는 내용이

절제되고 시니컬한 어조 때문인지 오독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위 글과 댓글들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내가 했던 위로와 칭찬이 내 어조와 절제 때문에 오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칭찬할 때 감정 담아 칭찬하지 않고 숨길 때가 있고 돌려서 말할 때가 많은데
주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이 깁니다. 고수님들 때문에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