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있다. 추석이라 그리 많은 시간은 없지만 틈틈이 책을 꺼내 읽는다. 오늘은 아예 카페로 피신해 두 어시간 독서 시간을 확보했다. 중간 중간에 전화가 오는 바람에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2부 섹스와 검열 첫 페이지는 읽었다. 하도 하구잡이 기질이 많이 몇 권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타입이라 집중하지 못하지만 이번책은 그나마 눈에 잘 들어온다. '토라짐' '내면의 아이' 등의 단어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부부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소설인지 작은 소논문인지 약간 헤갈리긴 하지만 부부의 일상을 꼼꼼히 챙겨주는 보통의 글실력에 감동 먹고 있다. 


볼현듯 초혼에서 부부싸움이 잦은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건 우리 스스로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연애와 부부 사이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대개 많은 사람들은 같다고 생각한다. 결혼 한 후 달라진 아내와 남편을 향해 '변질' 또는 '변했다.'고 믿어 버린다. 심하면 '사랑이 사라졌다.'는 무모한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하여튼 보통의 책은 보통은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야 희미하게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강진 읍내에 나가 책을 샀다. 문제는 몇 권 사지 않았는데 20만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가격도 보지 않고 산 내가 문제다. 알고보니 아이들 참고서가 한 권에 25,000원이다. 중1-3학년 영어과 수학을 사고 나니 책 값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것이다. 꼭 사야할 책은 아니었는데 그냥 카드를 긁고 말았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무지막지한 잔소리가 자정이 넘도록 들릴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다음달 카드값은 확실히 불안하다.


아이들 참고서와 더불어 몇 권의 책을 더 샀다. 이것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공병호의 <김개철 평전>, 한정주의 <글쓰기 동서대전>,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여행하는 이유>,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때>이다. 이 책들은 전혀 살 마음이 없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책을 보는 순간 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났다. 첫눈에 반하듯, 소개글을 읽고 난후 한쪽 구석에 쌓기 시작해 다섯권이나 사고 말았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책들을. 공병호의 <김재철 평전>은 순전히 김재철 회장의 고향이 강진 군동이기 때문이다.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 창업자인 그가 강진 군동 출신이라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누군가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아무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외에는.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제목만 보고 샀다. 표지에 독일 아마존 심리.여행 베스트셀러라는 광고 문구만으로 충분히 살 이유가 된다. 난 요즘 혼자 여행 중이거든.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선전 문구도 맘에 든다. 


"나는 여행자들이 글을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모두 최상급 여행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가 혼자서 여행을 하는 동안 가질 수 있는 자기 성찰의 기회, 내면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여행지에서 깨달은 것과 결심한 것들을 잊지 않고 지켜 나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가방에 노트와 연필을 챙겨라."(195쪽)


멋지지 않는가. 그런데 연필이 아닌 젤펜을 챙긴다. 연필은 깍아야 하니까. 독어는 연필인지 아니면 의역해 연필로 번역한 건지 궁금하다. 차라리 볼펜을 들어라가 좋지 않을까? 시대를 감안한다면. 하기야 요즘에 스마트폰으로 충분하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고인이다. 그는 1977년에 태어나 의사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젊은 사람이다. '젊은' 그가 왜 죽었을까? '암'이다. 의사이면서 환자의 입장에서 자기만의 관점으로 죽음을 풀어 간다. 암을 확신한 그는  내과 의사인 아내를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p20) 죽음을 감지한 그가 취한 행동은 아내와 포응하는 것이다. 그것도 뜨겁게. 그는 영문학과 생물한을 공부했고,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까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죽음까지 용감하게 걸어갔던 그는 탁월한 문장과 표현으로 삶의 의미를 파고든다.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결국 이 책도 쌓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은 장편소설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과 비교하고 싶어 샀다. 워낙 유명한 남미 작가가 아니던가. 충분히 살 가치가 있는 작가다. 한정주의 <글쓰기 동서대전>을 두께가 살인적이다. 글만 663쪽이다. 800쪽에 가까운 <김재철 평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읽기는 쉽지 안을 상 싶다. 내용도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 비법이 아닌 글쓰기 철학쯤으로 이해하면 될까? 그래도 좋다. 분명 좋은 책에 속하니 양서에 넣고 싶다.


내가 궁금한 건, 권태도 사랑일까? 라는 점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인 것처럼 말한다. 아직 그 대목까지는 가진 않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그렇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권태는 사사건건 일어나는 일상의 논쟁 이후에 일어나는 일종의 무관심이다. 지겨움이다. 관심을 끄고 싶은 것이다. 무료함으로 이어지고, 무관심까지 나아간다. 이것이 정상인 것이다. 정말일까? 불쑥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의문은 이것이다.

"이걸 어떻게 견디고 살지?"


알랭 드 보통은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들은 딱히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세상 다른 사람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부당한 말들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꾸러진 징표다. 분별있고 예의 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리 친밀한 부부사이라도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부부싸움은 결코 칼로 물베기가 아닌 것이다. 서로에게 실망하면 권태에 빠지고, 존경심이 사라진다. 존경심과 경외가 사라지는 순간 존재를 부정되고 부부사이는 금이 간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 부부라도 곧 이런 회의를 느끼게 된다. 


"고작 이게 다야?"(코엘뇨의 불륜 중에서)


내가 보기엔 권태는 사랑이 아니다. 보통의 사랑은 감정을 넘어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백번 동의하면서도 무료한 일상이 사랑이란 범주에 들어오기엔 어색하다.





꼼꼼히 / 부사의 끝 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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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방문자 통계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거의 방치 되다시피한 서재가 아니었던가? 나도 남자인지라 한 곳에 글을 쓰면 다른 곳에는 진이 빠져나가 더이상 글을 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알라딘에는 가능한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고 싶다. 신간을 소개하고, 일상을 적고, 문득 떠오르는 글이 있으면 올리고.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요즘엔 그런 것도 힘들다. 방치된 서재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파 지난 주 부터 다시 글을 올리고 있다. 글을 올린다는 것은 시간을 소비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다른 곳의 글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큰 맘 먹고 방문자 통계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지난 시월부터 방문자수가 급격히 줄어 들었다. 지난 8월에는 고작 6589명이다. 하루평균 고작 213명 꼴이다. 하루에 육백명을 넘어가던 방문자가 1/3로 줄어든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글도, 읽을 거리도 없어진 탓이리라. 어쩌겠는가 글을 쓸 마음도 용기도 나지 않는 걸. 그렇다고 독서까지 그만 둔 것은 아니다. 독서는 여전히 현재형이고 리뷰로 올라가지 않을 뿐이다. 


방문자 통계가 삶의 질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라딘 서재에 들인 공은 분명히 알려준다. 뭔가 적는다는 것은 곧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지 않던가. 안그래도 요즘 읽고 싶은 책이 잔뜩 올라오는 마당에 방문자가 조금씩 늘고 있어 더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상엔 책만 잔뜩 쌓여가고 시간도 철을 따라 흘러 간다. 방문자가 조금씩 올라가니 기분도 좋아진다. 나에게 득에 될게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그냥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이다.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문고판으로 읽고 있다. 전에도 한 번 읽었는데 그 땐 이분의 문장력을 몰랐다. 책도  한 번 읽으면 모른다. 자주 읽고 여러번 읽어야 한다. 나 같은 다독가의 허술함은 바로 두 번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을 칭송하는 이들도 있던데 다독가인 내가 판단해 보건데 다독보다는 재독 삼독 사독이 더 좋다. 물론 양서에 한해서다. 나쁜 책을 여러번 읽어서 무엇하겠는가? 그렇지 않는가. 그러니 깊은 사색과 성찰을 통해 만들어진 문장이야말로 내겐 영혼을 살찌우는 양분이 되는 것이다.


바람의 사생할.. 아 맞다. 이분 시인이다. 시를 쓰고 이젠 에세이를 쓰는 구나. 시는 언제 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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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14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병률 작가 책 참 좋죠..저도 어제 엉겁결에 그의 시집 집어 들었죠...아 방문자 통계도 나오는군요.처음 봤습니다.ㅎㅎㅎ.연연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낭만인생 2016-09-14 16:10   좋아요 0 | URL
그래야죠. 그냥 궁금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날마다 쓰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 안네요.
 

"정말 지진이 일어난 걸까? 믿기지가 않는다. 여긴 지진은 커녕 추석 대목을 보려는 장사치들과 필요한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로 분비기만 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어제보다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고 난리 법석이다. 뭐가 그리 요란스러운지? 난 믿을 수가 없다. 지진은 일어 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정신이 없거나, 술에 취했거나, 뭔가 잘못 안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게 연이어 지진이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지진을 그리 쉽게 입에 담는지 모르겠다."

 

만약 이런 투의 글을 쓰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황당함을 넘어 돌 맞아 죽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요즘 TV에서 종종 보인다. 저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지경이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곳은 잠잠하기만 하지만 여차하면 아픔의 현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다행이 큰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다.

 

십여 년 전에 아들과 이야기하다 숨이 넘어 가는 줄 알았다. 대화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진짜 이순신 장군이 있었는가? 세종대왕은 실존 인물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아들이 황당하기만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간결했다. 단 한 번도 본적도, 경험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배웠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국은 진짜 있는 것 같다고 물었더니 있단다. 네가 경험한 적도 본 적도 없는데 미국은 어떻게 믿느냐고 물었다. 그 답 역시 간결했다. TV에서볼 수 있고, 미국에 갔다는 사람들이 증언이 있다는 거다. 난 답했다. TV나 친구 역시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단다. 역시 초딩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아무리 역사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오래되고 잊히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요하기만 한 이곳에서 '정말 지진이 일어난 것일까?'를 의심하는 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아버님과 함께 장을 보고 다시 나왔다. 고요한 카페에 앉아 그동안 읽지 못한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 싶어서다. 기실, 난 한 달 전쯤에 두 권을 함께 사 놓고 <사는 게 뭐라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서점에서는 괜찮아 보이던 책이 집에 와 보니 전혀 읽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 시크한 문장에 벌컥 증이 걸렸는지 '뭐 이런 사람이 있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이 분이 암으로 죽었고, 시크한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절대 거부하지 않았을 내용이었다. 무지가 거부로 이어진 것이다. 오늘 보니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에 첫 페이지 등장한다.

 

"6시 반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는데 믿을 수 없다. 일어나서 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베갯머리를 더듬거려 손에 잡힌 책 [베트남에서 온 또 한 명의 마지막 황제]를 꾸벅꾸벅 졸면서 읽었다."(11)

 

일어나자마자 책이다. 졸리는 눈을 겨우 뜨고 더듬거려 책을 찾아 읽는다. 이 분이 누구인지 알고 나니 글이 다르게 읽힌다. 애정이 가고, 문장은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 진다. 이것이 앎과 알지 못함의 차이다. '정말 지진이 일어난 걸까?'하는 의심 속에는 동병상련의 아픔이 없으며, 공유된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알면 사랑한다는 짧은 문장이 진리라는 사실임을 다시 증명해 준다. 알면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니 동일한 아픔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노 요코를 더 알기 위해 책을 검색하고, 책 뒤편에 있는 사카이 준코의 해설과 옮긴이의 말도 한 문장 한 문장을 또박또박 읽었다. 독설 주의자였다. 사카이 준코는 '염세적인 태도 그대로 멋있게 떠난 사노씨. 슬프지만 당신이 있던 자리에 상쾌한 바람이 남겨진 것 같습니다.'고 고백한다. 슬픔지만 상쾌한 사람. 바로 그녀가 사노 요코 인 것이다. 참으로 기묘한 작가다. 처음엔 약간 거북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해 지는 욕쟁이 할매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매력을 느끼는가 보다. 추함까지 용기 있게 고백하는 그녀의 시크함이 진실하기 때문에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시즈코 상> 역시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특히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요코의 강열한 시크함이 스며든 문장이 별미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청춘유리의 책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 책 만드는 여자 임소라의 <29> 젊은 여인들의 책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여행이 키워드이긴 하지만, 이젠 여행을 제대로 풀어낸 감성과 지성이 어우러진 여행 에세이와 소소한 일상에 대한 사색이 더 읽히는 시대다. 사노 요코와 어떻게 다를까? 문득 신간을 찾아보며 느낀 생각. 하여튼 장바구니에 담아 두자. 언제 살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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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9-13 22:09   좋아요 0 | URL
사실을 넘어 존재를 믿는 것이 진정한 이웃인 것 같습니다. 서로 신뢰하며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6-09-1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고향에 가면서도 지진 때문에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을 겁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낭만인생 2016-09-13 22:10   좋아요 0 | URL
아마 이번 지진은 트라우마까지 동반한다고 하니 다들 힘든 것 같습니다. 추석을 통해 마음까지 쉼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행 작가가 되려면...


여행 작가! 일반 작가보다는 쉬워 보이고, 낭마도 있어 보인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여행을 한다. 그런데 작가는 되지 못한다. 왜그럴까? 이 책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여행 작가 되는 비밀?을 알려 준다면서 여행 사진 한 장 없다. 왜 그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올리지 않았을까? 그 이유도 알아보자. 하여튼, 이 책은 진짜 여행작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이가를 가감없이 알려 준다. 


띠지에 적힌 광고 문구는 이 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자유를 찾는, 30년차 여행작가의 글쓰기 강의 노트!"


주의할 문구가 있다. 바로 '글쓰기 강의'라는 문구다. 이것이 바로 사진 한 장 없는 이유다. 중요한 건 사진이 아니라 글쓰기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띠지 뒷면 문구다.


"여행은 돌아다니는 것이지만 글은 고독하게 앉아서 쓰는 것이다."


실감이 가는가? 작가는 여행이 아닌 글쓰기에 있다. 그가 여행 작가라 할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여행하고 나서 적당하 글로 표현하면 좋은 여행 서적이 될것이라는 착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여행과 글은 엄연히 다르다. 글도 글 나름이다. 팔리는 글이 있고, 팔리지 않는 글이 있다. 일단 책으로 펴내려면 팔리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러니 고독하게 앉아서 쓰지 못한다면 당근 작가는 될 수없을 것이다.


표지를 살펴보면 제목 바로 밑에 이렇게 쓰여있다.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의 매혹적인 글쓰기"


그러니까 이책은 책을 내기 위한 글쓰기 수업인 것이다. 여행을 어떻게 할것이며, 글로 어떻게 연결 시킬 것인가를 알려준다. 그러나 주된 목적은 여행 후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가이다. 책을 펴는 순간 좋은 여행 작가가 되려면는 이들에게 두 질문을 던진다.

"여행 중에 기록은 많이 했나요?"

"글을 평소에 많이 써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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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9-12 20:05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습니다.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모르고 쓸 때가 좋은 것 같습니다.
 

단어의 발견


"정명구는 마담의 흔들리는 몸체와 엉덩판을 돌려보다가 참 육덕 한번 푸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선을 돌렸다."


백금남의 장편소설 탄트라를 읽고 있다. 불교에 관련된 소설이려니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소설인데, 의외로 야하고 관능적이다. 청교도적 사상에 물든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야설에 가까운 책이랄까? 아니다. 대승불교가 가지는 청렴함, 유교적 사상이 탄트라가 가지는 밀교적 에로스에 난감함을 표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불교인가 싶을 만큼의 농익은 육체의 탐닉이 소설 전반에 흐리고 있다. 읽어가는 중에 눈에 들어온 낯선 단어가 보인다. '육덕'이란 단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 같은데 감이 오질 않아 인터넷 사진을 찾아보니, 세 가진 뜻 중에 세 번째인 뜻인 것 같아.

육덕3 (肉德) [명사] 몸에 살이 많아 덕스러운 모양.


익숙지 않는 단어들이 연이어 나온다. 탄트라도 정확한 뜻을 모르고, '마' '구루' '옴마니반메훔' 등이 읽힌다. 몇 번 들어본 단어이긴 하지만 정확한 뜻을 전연 알 수 없다. 낯선 단어가 나올적마다 노트에 옮겨 적든지, 새프펜슬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중에 찾아볼 요량으로. 읽다가 문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경우는 곧바로 인터넷 사전을 열어 뜻을 찾았다. 마치 영단어를 찾아가듯 공부하며 한 장 한 장을 읽어 나가고 있다. 92년 출판된 책이라 아직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역시나 절판되고 없다. 백금남의 책을 찾아보니 몇년 전 영화로 상영한 <관상>도 보이고 몇 권의 책이 검색된다. 올 1월에 출간된 <유마>도 보이고, 법정스님의 일생을 소설화한 <법정>도 보인다. 일단 탄트라부터 읽고 나머지도 책도 읽어볼 참이다. 
















단어는 무엇을 의미할까? 불현듯 내가 알고있는 단어는 몇 단어나 될까? 내가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개일까? 일상적 대화는 2-300개에 불과하고들 한다. 하지만 학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들은 일상적 언어에서도 천단어가 넘는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동일한 사실, 현상을 보고도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더 깊이 보게하고, 더 넓게 보게한다. 단지 단어만 바꾸었을 뿐인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국지성 소나비가 내렸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순식간에 시야거리가 백미터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뚫린 뜻 쏟어져 내리는 빗줄기는 흡사 노아의 홍수를 방불케 했다. 시속 120km이상 밝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고속도로가 빙판길과 다름없게 만들어 버렸다. 다행히 수백비터 전후방에 이동차량이 보이지 않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 자연감속을 시도했다. 사고는 나지 않았다. 


미끄러운 길을 

달팽이 걸음으로 달렸다. / 거북이처럼 천천히 달렸다. / 숨을 죽이고 천천히 달려야 했다.


비슷한 세 문장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조금 달라진다. 조금 더 읽어 나가니 '음전한 여자' '육덕푸짐한 여인' 이란 단어가 연이어진다. 비슷한 단어, 동일한 상황이지만 다르지만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를 사용함으로 읽는 재미를 더해진다. 그래서 문장력의 기분 중의 하나는 '동일한 단어를 반복하지 말라.'다. 




순천에 들른 김에 중앙서점에 들러 몇 권의 책을 구입했다. 

팀켈러의 <팀 켈러의 탕부하나님>과 , C. S. 루이스의 <세상의 마지막 밤>, 유성종.이소윤의 <믿음의 땅 순례의 길>, 이어령의 <소설로 떠나는 영성여행>, 오토 프리드리히 <인간과 공간> 마이크 크랭. 나이젤 스리프트 엮음의 <공간적 사유>를 구입했다. 오토 프리드리히 <인간과 공간> 마이크 크랭. 나이젤 스리프트 엮음의 <공간적 사유>는 에코리브르의 로컬리티 번역총서에 속한 것으로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무화연구소가 주관한 책이다. <인간과 공간>은 작년 가을에 구입한 책인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표지가 익어 아무래도 두 번째 구입한 책은 아닌지.. 




읽고 싶은 책 산더미다. 신간을 찾아보니 눈에 띄는 책이 몇 권 보인다. 탁재형의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라는 여행 산문집이 보인다. 읽고 싶다. 2년전에 출간하 또 다른 여행 산문집인 <탁PD의 여행수다>도 검색된다.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남부의 안타까움이 들려서 그런지 책 제목이 달갑지 않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반가운 제목 일텐데 말이다. 책 읽기는 결국 단어 찾기란 숙제를 주거나 즐거움을 준다. 난 종종 모르는 단어나 기발한 표현의 문장을 만나면 가슴이 설레고 밀물처럼 행복이 차오른다. 몇 주전에 구입한 <즐리타의 일기>의 안 표지에 이런 글이 붉고 굵게 적혀있다. 


"전쟁이란 연필은 불행과 죽음만 쓸 줄 안다."


섬뜩해지는 표현이다. 전쟁을 연필에 비유한 탁월함은 전쟁이 가져온 참상을 피눈물보다 아프게 보여준다. 1992년 11월 29일, 목요일 일기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정치라는 것이 제일 나쁘고 못된 연필을 이용하며 사람들을 갈라 놓고 만 거야. 그 연필이 뭔지 아니? 사람들을 비참함과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이라는 연필이야."


작가는 상황에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야할 의무가 있다. 평이한 단어만으로 쉬운 글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난해한 단어를 중구난방으로 사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누구나 다 아는 단어만으로 문장을 엮어 간다면 독자의 지성을 잠재우는 해태(게으르게)하게 만는다. 가끔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전을 찾아보게 만들어야 한다. 안타깝게 <즐라타의 일기>는 절편된 상태고, 전쟁 속 일기를 소개한 <빼앗긴 내일>이란 책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단어의 발견, 삶의 발견이 아닐까? 단어는 언어의 제한을 받는 인간의 사유를 통제한다. 풍부한 언어는 풍부한 사유로 이끌고, 풍부한 사유는 또 다시 새로운 언어를 갈망한다. 단어는 삶의 재현이고, 상징이되는 법이다. 적절한 단어 사용이 가져다 주는 삶의 얼굴이 얼마나 다양한지 고 박완서 선생의 글에서 종종 발견하곤 한다.


"정말 비통할 때는 눈물이 잘 안 나오다가도 슬픔에 적당한 감미로움이 섞이면 울음이 잘 나오는 특이체질도 있다는 것 이해받고 싶었다. 지섭이를 보낸 허전함에도 눈물을 자극하기 알맞은 달착지근한 맛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331쪽


독서의 극미(極美)의 쾌락을 주는 이유가 결국 자신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독서를 통한 단어의 발견은 '나를 발견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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