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언어는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킨다 
또한 사람의 육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행동을 지배하기도 하고 환경과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며 자아상을 바꾸기도 한다. 

언어에는 "사실 언어"와 "감정 언어"가 있다 
사실언어는 "인상이 딱딱해 보이네요."와 같은 말이다. 

사실대로 말한 것이지만 듣기에 좋은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은 기분이 상하기 쉽다. 

반면 감정 언어는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말로,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 (자녀에게) 
"역시 당신이 최고야" (일하고 있는 배우자에게)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거래처 사무실 사람들에게) 
와 같은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무슨 말로 이 사람을 기쁘게 해 줄까?"를 생각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감정 언어를 사용해 보아야 한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인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없는 것을 꾸며서 말하면 안된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기분 좋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말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이 계속 감정 언어를 
쓰게 되면 인격도 변하고 삶도 변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 언어는 
우리에게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밝고 환한 말,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말,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다 보면 삶에 활기가 넘치고 
가정이나 직장, 궁극적으로 내가 가는 모든 곳이 
활기차고 밝아지게 된다. 

주는 가치를 높여 주는 칭찬은 
개인의 업무 능력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잠재 능력까지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좋은 직장 분위기를 만들려면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행복한 동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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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업을 적자로 접을 수는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험장으로 다 들어간 상황이라 더 이상 교문 앞에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았다.  

나는 토익 시험을 치르는 교실로 들어가 연필을 팔 결심을 했다. 시험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고 게다가 고객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까지 하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시험 감독관이 물었다. 

 “연필 팔러 왔습니다.” 

 “여기서 그러시면 안 돼요.”  

“아, 죄송합니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나는 선생님에게 혼난 학생마냥 한마디도 못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잠시 뒤 사람들이 한두 명씩 운동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험 시작 직전에 짬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러 나온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외쳤다. 

 “토익 만점자가 파는 연필입니다! 이 연필로 체크하면 찍어도 맞아 운수 대통합니다. 제가 파는 연필은 끝이 뭉툭해서 한번 쓱 내리그으면 0.01초도 안 걸립니다. 단돈 천 원! 선착순 열 분께는 따뜻한 커피까지 드립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한 명, 두 명 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모조리 팔아버렸다. 교문 앞에서 오백 원에 판매하던 연필을 천 원이라는 두 배의 가격을 주고도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그들은 연필이 아닌, 연필이 전하는 가치에 돈을 지불한 것이다. 안 팔리는 물건은 없다. 팔지 못하는 판매자가 있을 뿐이다. (심현수, ‘꿈은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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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면 제 날짜에 온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아니.. 계속.. 며 칠씩 늦게 온다. 예스24나 다른 곳는 예상날짜보다 더 빨리 올 때도 많다. 그러나 알라디는 너무 늦다.. 답답하다. 무슨 대책은 없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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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다룰 문제는 교회사에 관련된 부분이다. 사실 두번째 성경해석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 전부 다를 수는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교리 속에 갇히 메시야 예수 - 24쪽..[ 알다시피 오늘 대개의 사람들에게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온 메시아도 유다에서 온 메시아도 아닌 '교리 속에서 온 메시아'다.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그 연원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325년 최초의 기독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여기서도 라틴어를 쓰고있다. 무엇때문일까?. 영어로는 콘스탄틴이다)는 니케아에 있는 제 별장에 세계의 주요한 주교들을 모아놓고 회유와 협박으로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한다...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강화할 수 있다는 것도...그리고 그 결정이 오늘 우리가 알고있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다] 

정말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다. 김규항에 의하면 지금의 예수는 후대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 예수인 셈이다. 처음에 예수는단지 좋은 사람에 불과했는데 그를 신의 아들로 만들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콘스탄틴이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무지 교회사를 배우고 이 것을 주장하는 것인지. 모르고 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 알고 했다면 참으로 의도적 거짓으로 만든 것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모한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난 그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끄집여 들여는지 알지 못하지만 황당하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다.  

이것이 진정으로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는 것일까? 그가 주장한 대로 마가복음이 가장 처음 쓰여진 책이라면 왜 그곳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표기되어 있으며, 가장 덜 종교적이라는 마가복음에 강력한 복음이 들어가 있단 말인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은 300년 뒤에 생긴 것이 아니고 예수 당신에 이미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마가복음은 학자들에 의하면 AD 1세기 중반쯤으며, 후에 기록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1세기 후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에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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