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 호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제 나는 일어나 가야겠다, 이니스프리로 가야겠다.

거기에 진흙과 외를 엮어 작은 오두막집 한 칸 짓고,

또한 거기에 아흡 이랑의 콩밭과 꿀벌 한 통 가지련다.

그리고서 벌 소리 요한한 골짜기에 홀로 살련다.

 

그러면 거기에 평화가 있겠지, 평화는 천천히 방울져 내리겠지,

아침 장막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까지.

그곳, 한밤중은 온통 희미하게 빛나고, 대낮은 보랏빛 광채,

그리고 저녁은 홍방울새 날개로 가득히 차.

 

이제 나는 일어나 가야겠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호수 물이 낮게 기슭에 찰싹이는 소리 들리니.

가로에 섰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섰을 때나

내겐 그 소리가 깊이 가슴 한복판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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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가 런던에 체류할 때 고향인 아일랜드가 그리워지자 어릴 때부터 굼에 그리던 이니스프리 호동에서 미국ㄱ의 철인 쏘로 헨니 토라우처름 은거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시이다. 이니스프리는 현재 슬라이고 지방의 관광 명소이다.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크기가 아닌 아주 작은 섬이지만 주변은 아름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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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소를 괴롭힌다. 모기는 소를 얕잡아 본다. 그러나 한방에 가는 것을 아직 모른는 모기는 바보다.

 

 

 

 

처음 우리 집에 소가 왔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외가에서 기르는 소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외가에 가서 많은 일을 해주고 한 마리를 품삯을 대신해서 가왔다. 그리고 24년 쯤이 지났다.  

처음 소을 보았을 때,, 모두가 똑같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소들을 보니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이 얼굴이 다르듯 소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를 키워 새끼 소를 팔 때가 되면, 어미 소들을 죽어라 울어 제꼇다. 어찌나 울던지... 거의 일주일을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새끼를 떠나 보내는 어미의 마음이 어찌나 슬퍼 보이던지... 그래도 팔아야 했다. 팔아야 돈이 되고, 된이 되어야 우리집도 살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팔여가야 한다. 살림의 밑천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 옛날 큰 누님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아무런 대가도 없이 평안을 바라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인간들이다. 게으르고 어리석고 고약한 심보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을 당하는 법이다. 

그러나 누구나 희생을 싫어한다. 그래서 이 사회는 아프고 힘들고 고달픈 것이다.  

저 큰 소의 눈을 보라! 자식을 잃고 아파하는 눈이다. 슬픈 눈이다. 그래서 나는 소 눈을 볼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한다. 나를 위해 그의 아픔을 당해야 했기에.... 누가 소를 함부로 대하는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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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떡... 

어릴 적 나는 이 떡을 떡국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국'이 아니었다. 이것은 '떡'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겨우 '가래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우리 집에서 단 한번도 '가래떡'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참 이상하다. 하여튼 이 떡의 이름은 그렇게 알게 되었다. 

설이 지나 떡국을 해 먹고 남은 가래떡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금새 굳어 버렸다. 그래서 먹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버리곤 했다. 무엇하나 제대로된 간식하나 없을 때 동생과 나는 가래떡을 불에 구워 먹기 시작했다. 생각 외로 맛이 좋았다.  

숯불에 살짝 올려 놓으면 금새 뽀골 뽀골 거품같은 것이 가래떡 주위로 올라 오면서 노릇 노릇한 색으로 변했다. 젖가락으로 찔러보면 푹~ 들어간다. 다 익은 것이다. 꺼내서 호호.. 입으로 불어가면 추운 겨울날 맛난 간식이 되어준 것이다. 

가래떡이 결코 먹기 쉬운 떡은 아니었다. 당시는 쌀이 귀했기 때문이다. 시골에 산 덕분인지, 쌀농사를 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집은 쌀은 어느정도 있었고 명절이 되면 떡을 해 먹었다.  

예전 어르신들은 가래떡을 먹을 때, 그냥 먹지 않고 손으로 쭈욱~ 길게 늘여서 먹곤했다. 다 깊은 뜻이 있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재산이 이 가래떡 쑤~욱 늘어라는 소원을 담은 것이다. 귀한 쌀로 만든 가래떡, 이젠 처치곤란이라 하지만 여전이 가래떡의 추억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몇권의 책을 골라 보았습니다. 이 중에서도 70년대 십대를 보낸 사람들이 읽었던 그 만화책을 담은 [클로버문고의 향수]가 단연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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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성장과 퇴보의 차이다. 

살아있기에 아프고, 인내가 필요하고, 참아야 한다. 

그러면서 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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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이야기

예전에 시골에 잠깐 있을 때 박카스 할머니가 계셨다.

이 할머니는 집에 가면 꼭 박카스를 대접한다.

손님에게만 박카스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도 박카스를 얼마나 많이 드시는지 모른다.


식전식후 박카스 

취침전후 박카스

아침점심저녁 박카스

쉴 때도 박카스


어떨 때는 밥에 말아 먹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분을 박카스 할머니로 통했다.

박카스라면 사죽을 못쓰는 할머니..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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