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를 보았다.
개봉한지 2주. 데니쉬걸과 동주가 같은 주에 개봉을 해서 둘 중에 어떤 영화를 봐야하나 고민하다 결국 데니쉬걸을 봤었다.
두 영화 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 할 영화 같았고, 조만간 극장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시간과 돈은 제한되어 있으니, 선택을 해야했고 난 2주 전에 데니쉬걸을 선택했었다.
- 데니쉬걸도 동주도 현재 꽤 잘 나가는 영화이다.
- 나의 예상이 빗나가서 정말 좋다.
역사에 대한 영화. 특히 일제시대와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영화를 보면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 즐겁지 않은 역사이고, 누군가 죽는 그런 영화이기 때문이다.
- 흔히 악역이라고 말하는 캐릭터의 언어와 말투에 화가 나지만, 몇몇 악역은 내가 생각하지 않는 이유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었다.
- 영화 동주에서 아무런 설명도 이야기도 없이 넘어간 윤치호나 일제 경관의 경우, "변절자"나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것이 그렇게 쉬웠나.
영화 동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아주 담담하게 진행된다.
영화 캐릭터가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일이 많지 않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이념은 늘 달랐다.
윤동주는 언제나 시인이었고, 송몽규는 산문과 직접 활동에 더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내에서 송몽규는 공부를 잘 하는 머리를 타고났다.
다만 윤동주와 송몽규가 부끄러움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일본인 경관이 서류에 서명을 하라고 할 때, 송몽규는 자신이 부끄러워 서류에 서명을 한다.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했음"을 부끄러워한다.
윤동주는 자신이 부끄러워 서명을 하지 않는다.
"나라가 없고, 민족이 없는 세상에서 시를 쓰고 싶었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송몽규의 꿈은 조선의 독립이었다. 윤동주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두 개의 꿈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윤동주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의 시도 지금 남아있는 것과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