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하땅세, 인왕산 호랑이 바위,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 20171005, 16:00, 공연 사진>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

2017. 10. 5. 13:00/16:00
2017. 10. 6. 13:00/16:00


극단 하땅세

 

10월 5일부터 8일까지 4일동안 서울 시청앞 광장, 청계천,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진행된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에서 본 첫번째 공연이다.


원래 갬블러크루의 플라잉업을 보려가려고 했는데 날짜를 착각해서 하루 일찍 가게되었다.


갬블러크루의 플라잉업 공연은 10월 6일과 7일이었으니 5일에는 당연히 못 보고, 극단 하땅세가 모전교와 광통교 사이에서 공연을 한다는 일정표를 보고 청계천으로 갔다.


인왕산 호랑이바위는 어린이극/아동극으로 몇 년 전, 낙산공원에서 거리공연 리허설을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어차피 갬블러크루 공연을 못 보게 되었기에 좀 일찍가서 쉬면서 공연을 기다렸다.


인왕산 호랑이바위는 조선 전기 성벽을 증축하는데 쓴 바위가 호랑이 바위였고 이에 인왕산의 호랑이가 화가 나서 사람을 공격했다.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호랑이가 화가 난 이유를 알고 호랑이를 설득해서 호랑이는 사람을 돕고, 사람은 호랑이를 도왔다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공연을 다 보고 나서 화가 살짝 났다.


인간이 호랑이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에 대해 대책이 다른 호랑이 바위를 세워줄께 였는데, 이게 어린이 극이나 그냥 넘어갔지만 실제상황이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안하다거나 실수였다는 사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성벽공사를 끝내야하니 호랑이가 도와달라는 것인데 호랑이 입장에서는 그냥 인간 도와주는 꼴밖에 안 되는 것이고 호랑이의 서식처는 이미 파괴된 것으로 끝난 상황이었으니까.


하땅세의 작품은 꽤나 재미있게 보는 편이지만, 이 공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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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귀국 이후 - 계속 쓰는 이야기지만 - 지속적인 감기와 9월의 아홉수때문에 정신도 경황도 없었다.

지갑을 잃어버혔다는 사실이 제일 큰 걸림돌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관람은 계속 뒤로 밀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도 생각했던 점은 영화의 흥행으로 집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가 지속 상영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일본군 성노예(위안부라고 많이 쓰지만 사실 성노예가 맞지 않을까 싶다.)로 끌려갔던 나옥분 할머니.


과거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각종 민원을 넣으니 구청에서도 시장바닥에서도 미운털이었던 할머니에게 마음을 연 것은 진주댁과 영재이지 않았나...


할머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주인공역할을 한 것은 박민재역의 이제훈이었다지만 민재보다는 민재의 동생인 영재가 할머니의 외로움을 더 잘 알지 않았나 싶다.

- 민재보다 영재가 더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옥분 할머니 기사가 뜬 뒤에, 진주댁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걱정이 많이 되었을까?


워싱턴 D.C에서 일본군 성노예 연설보다 할머니와 진주댁이 마켓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 때가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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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개봉을 한 영화라지만, 내가 예매를 했을 때는 신촌 아트레온 CGV 관객과의 대화 시간밖에 없었다.

개봉 후 일주일 뒤에 본 영화.

사실 개봉을 한 주에는 엄청 심한 기침감기, 이번 주에는 기침감기 이후 몰려온 폭품 코감기로 인하여 예매를 취소할까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그냥 보러갔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내가 비싼 돈을 내고 영화관 스크린으로 야동을 보고 있구나.'였고, 연이어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생각났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 '내가 비싼 돈을 내고 영화관 스크린으로 야동을 보고 있구나.'


영화는 시작부터 섹스로 시작을 해서 계속 섹스가 나왔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모자르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섹스를 하지 않으면 에리카 린더나 나탈리 크릴의 나체 혹은 반나체가 나오는 장면도 부지기수였다.

뭐랄까. 정말 잘 만든 여성퀴어야동?

배우 퀄리티도 남다르고, 스토리도 있고(다른 야동에 비해).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관객과의 대화는 감기로 스킵하거나 조금만 보다 가려고 했는데 꽤나 재미있어서 그냥 끝까지 보고 심지어 질문도 하고 나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아무말은 역시나 '이 영화는 인터넷 소설같은 영화입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질문을 한 사람에게는 선물을 줘서 책을 하나 집어왔는데 아직 펴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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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내일의 안녕을 보고 인증을 하면 추첨을 통해 도서를, 관객이 일정 명수 이상을 넘어가면 스페인 비행기 티켓을 추첨한다는 광고성 글을 본 기억이 난다.

- 스페인 비행기 티켓 담청 기회라는 말에 이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급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스페인 비행기 티켓 때문에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 결론적으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어 이벤트 참가 못 했음.


요즘 어떤 영화가 영화관을 차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일의 안녕을 비롯해서 작은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과 상영시간이 매우 급격하게 없어졌다. 내일의 안녕도 원래 저번 주에 보려다가 시간대가 안 맞아서 이번 주에 본거도.

- 아니 무슨 영화를 볼래도 상영시간이 오후 2~3시, 아니면 4시. 그것도 아니면 밤 11시인데 어찌보나?


아르투로와 마그다가 사랑에 빠지고, 거의 바로 동거(혹은 결혼)을 하고, 마그다의 암이 재발하는 상황이 빠른 템포로 전개되었지만 '빠르다'거나 '정신없다'는 느낌은 적었다. 정적으로 그리고 급박하지 않은 카메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니를 생각하는 마그다의 마음이라던가 마그다의 몇몇 대사가 너무나 모성애를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문화의 차이인지 아니면 생각의 차이인지 사랑하는 마그다의 아이이지만 아무튼 혈연관계가 없는 아르투로가 마그다가 죽은 후에도 다니와 함께살며, 아르투로, 다니, 훌리오가 갓난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이었다.

한국 영화였다면 다니의 친부인 라울이 다니를 키우니 마니 하는 장면도 포함되어있었을건데 이 영화에서는 마그다의 부탁이라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면접교섭권을 제시하며 매우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스페인 가기 거의 바로 직전에 본 스페인 영화고 배경이 거의 마드리드였지만, 실내와 병원이 주로 나오고 외부는 바닷가와 버스, 축구장 정도가 거의 전부가 아니었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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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종의 전쟁을 보면서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실망스러웠다.


영화를 보면서 거북했던 것은 특히 두 가지 였는데, "인간성"이라는 단어와 유인원이 말을 타는 장면이었다.


"인간성"이라는 단어에 치중해서 유인원이 "인간이 측정 가능한" 지능을 가지고 진화를 하게 되면 "인간처럼 변한다."라는 전제도 마음에 안 들었던데다가 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을 유인원이 말을 타는 장면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더욱 그랬다.


반격의 서막에서도 물론 유인원이 말을 타고 있었지만, "인간처럼" 말에 안장을 채우거나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 그저 이동을 위해 말을 힘을 빌린다는 느낌이었는데, 종의 전쟁에서는 말에 재갈과 안장이 채워져 있었고 유인원이 "인간처럼"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라 꺼림직했다.


아무래도 인간은 크게 착각을 하고 있다. 진화의 모습이 "인간처럼" 자연을 지배할 것이라는 발상은 너무나 인간중심적이다. 진화의 다른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던것일까?


또 대령이 시저와 처음 대화를 하고 시저가 자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인간성을 이야기한다.

대령의 아들이 말 하는 법을 잃게 되자 "인간성을 상실"하였다고 말하며, 인간의 언어로 대화가 가능하고 감정적이며 예측하는 시저에게 인간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대령에게는 "언어로 대화하는 방법"이 "인간성"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실제로 "인간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간중심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인간성"이라는 단어를 시저가 말하는 "자비"라는 단어로 대체가 가능하며, "자비"를 베푸는 모습은 굳이 언어로 대화를 하지 않더라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언어로 대화하지 못 한다고 하여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수 없다는 반증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말을 하지 못 하는 노바나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수화와 몸짓언어로 대화하는 오랑우탄 모리스가 다른 종에게 보여준 태도야말로 대령이 말하는 "인간성"에 더 가까울 수 있고 "자비"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시저 자신이 코바처럼 용서하지 못 하고 복수에 시달리고 있고, 코바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오히려 영화 내내 고민하고 코바의 환영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었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이라기 보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처럼 보였다. 유인원은 하나의 구실이었을 뿐이다.


"인간성"이란 의미 없었다. 결국 대령은 자살했고, 인간은 서로 싸우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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