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 마틴 프리먼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하와이를 오고가는 비행기 안에서, 블랙 팬서가 있어서 보게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관의 대형스크린으로 보았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 대형전투가 있었다.

티찰라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다른 몇몇 남성 캐릭터보다 덜 강압적이라고 느껴졌다.
- 그럼에도 왕/리더는 남성이라는 것, 남성의 대립에서 여성이 취하고 있던 보조적인 입장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 아니 슈리도 왕족이고 엄청 똑똑한데 왜 왕하면 안됨? 티찰라 죽었어도 슈리 있는데 슈리가 블랙팬서하면 안되는거임?

집중하며 본 영화는 아니지만, 블랙팬서는 단순하게 오락영화가 아닌 인종과 계층, 갈등까지 이야기 하고 싶었던 영화라고 생각했다.
- 근데 그게 관객에게 어디까지 전달이 되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명 2018-09-04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렇게 모든 걸 남녀를 따지면 안 피곤하세요? 영화를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영화로 봐야지 이렇게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면서 등급 매기는 사람들을 PC충이라고 하던데 혹시... 흠...

sijifs 2018-09-04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안 피곤해요 오히려 하나하나 안 따지면서 사는게 더 피곤해요 굳이 익명으로 댓글남기면서 남의 정치적 올바름을 마음대로 판단하는거 안 피곤하세요? 그리고 아무대나 충 붙이면서 곤충이나 사람 비하하지 마세요
 

신촌 메가박스에서 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퀴어라마를 보았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몇 있었지만, 시간이 안 맞아서 모두 보지 못 하였다.

퀴어라마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인 줄 알고 보러 갔었는데, 독특한 편집을 한 영화였다.
19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퀴어 이슈, 다큐멘터리, 영화를 교차편집해둔 영화였다.
편집에 사용되었던 제일 오래된 필름은 1919년 작품이라고 하였다.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퀴어 이슈는 진보하다가도 퇴보한다."라는 내용이었다. - 좀 더 자세하게 기억에 남았다면 부연 설명이 되었을 텐데 또렷하게 남지 않는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호모포비아는 존재하고 퀴어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퀴어 뿐만 아니라 장애인, 여성, 비건 등 다른 모든 존재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약하다고 생각하면 부정당하기 일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은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
어떤 사람은 삶을 지루해한다.
우리는 왜 삶을 사는가? 왜 청춘이라고 규정지은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구겨 넣으라고 주문하는 것일까?
삶은 은유가 아니다. 삶은 진짜다.
버닝에는 많은 메타포와 은유가 등장하는 듯하지만 카메라의 시선은 사실적이었다. 일부러 아름답게 꾸미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난 스티븐 연이 연기한 벤이 마음에 안 들었다.
벤이 '진짜' '현실'의 '비닐하우스'를 태워버린 것이던, '비닐하우스'를 메타포로 사용하여 '여성/사람'을 죽인 것이던 상관이 없다.
'사람'이던 '남의 소유의 비닐하우스'던 '지저분하고 눈에 거슬린다.'라는 판단을 하고 없애버리는 것이 싫었다.
비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은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말을 내뱉었지만 '지저분하고 눈에 거슬린다.'라는 판단이다. 무언가를 판단하고 없애버리려는 오만함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개츠비처럼 돈이 많은데 어떤 이유로 돈이 많은지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무료해하며 하품을 하는 오만한 사람. 그게 벤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이 벤을 삶의 의미를 찾는 Great Hunger의 메타포로 사용했다면 나는 이 영화가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고 삶이 무료하며 오만한 사람은 Great Hunger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가 Great Hunger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아인은 Little Hunger도 Great Hunger도 아닌 그저 외로운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야기했던 해미는 진짜로 종수의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종수에게 접근했던 어떤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해미는 우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했지만, 해미의 가족은 집에 우물이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대사보다 벤(스티븐 연)의 '너무 가까이 있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너무 먼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상관없이 종수의 파주 집, 외양간에 혼자 남아있던 송아지는 왜 거기 혼자 있었을까?
송아지가 있었다면 어미 소도 있었을 텐데, 어미소는 어떻게 된 것일까?
영화가 끝날 무렵 송아지가 간 곳은 도축장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축사였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포영화라고 명명된 영화 장르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트루스 오어 데어는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에 보고 싶었던 다른 영화가 개봉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포영화의 장르에 포함되고 원령(아니면 악마)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이유는 모든 사람의 가지는 공포의 근원인 진실 그 자체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죽었던 로니는 두 번의 트루스 오어 데어에서 두 번 다 데어, 도전을 선택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을 위험이나 쪽팔림을 감수하는 것이 덜 두려워서였을까?

우리는 진실을 보기 두려워한다. 진실을 말하기 두려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악마는 진실을 마주보기 싫어하는, 진실 때문에 상처받기 싫어하는 인간의 마음을 이용한 것이다. 두려움은 악마에게서 오는 것이 아닌 사람의 머리와 심장 속에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국과 이탈리아 편에 이은 스페인 여행 편이라고 한다.
문제는 내가 영국 편이랑 이탈리아 편을 보지 않았다는 것.
이런 시리즈물. 특히 친한/아는 사람끼리 떠난 여행을 시리즈로 만들었을 때, 그 전편을 보지 않으면 이 2명이 어떤 사이인지 왜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지 알 수 없어 재미가 없는데 내가 딱 그짝이었다.

이 영화를 보려고 했던 이유는 내가 스페인을 좋아하고 여행을 많이 갔기 때문인데, 내가 아는 지역이 나오고 익숙한 풍경이 나와서 좋았지만 정말 친해 보이는 아저씨 2명과 중간에 나오는 디렉터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의 수다는 정말 귀찮았다.
외국 감독이 찍은 알쓸신잡 스페인 편이라는 소개 글도 읽었지만, 내가 몰랐다가 알게 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아니고 거의 다 아는 내용이라서...
요리와 미식여행이라는 영화 소개도 있던데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요리와 미식에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인상에 깊었던 것은 스티브의 20살 아들이 애인이 임신을 했으니 아버지와 여행을 떠날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일단은 애인의 곁에 있겠다 선포했을 때였다.
한국이었다면 남자가 도망부터 갔을 것 같은데, 20살이라지만 애인한테 '난 너를 책임질 수 없다. 낙태를 해라.'라는 말보다는 '네가 힘들 테니 어떤 선택을 하던지 지금은 같이 있자.'가 더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버지라는 스티브가 더 나빴었다. 직접 '낙태'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네가 어리고 책임질 수 없으니 낙태를 하지 않겠냐고 권하듯 말하는 모습이 불편했다. - 그게 거의 50살 다 된 사람이 20살짜리 아들에게 할 소리요? 아들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겠다 말하는 판에.
물론 아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럼 그 19살 된 여자의 미래는? 물론 아이를 가졌으니 무조건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계속해서 봤던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겠지만... 나는 앞으로 이 시리즈는 보지 않을 것 같다.
스티브의 아무 말 때문은 아니고 그냥 내 취향이 아닌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