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구 반대편, 이곳도 어제는 휴일이었고, 웹 서핑을 하다 우연찮게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강남'이라는 웹툰을 봤다. 워킹데드류의 좀비물인데, 주인공은 여대생으로 도서관에서 자다 깨 보니까 세상이 좀비천지로 변해 있다는 내용이다. 가냘파 보이는 외모인데도 억척스럽게 좀비들을 무찔러 가며 도망 다니는 내용이 어쩐지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과도 설정이 겹치는 것 같다.

 

조금 인상적인 내용은, 주인공이 사실은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기적적인 회복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만이 아님을 알고, 살기위해 망설임 없이 좀비가 된 옛 남자친구의 팔목을 도끼로 내리친다.


#. 2

 

3년 전 어느 날 저녁, 나는 일 때문에 지방의 어느 임시숙소에 머물고 있었고, 동료들은 모두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본다고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축구엔 관심이 없어 뒤척이다 복도로 나왔는데 유독 그, ''의 방만이 인기척이 있었다. 내가 그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침대에 혼자 엎드려 있었다.

 

-축구 안 봐?

 

조용하고 착한남자. 훈이 씩 웃으며 작은 핸드폰을 들어 보인다.

 

-축구 봐.

 

-왜, 큰 화면으로 안 보고.

 

그는 손가락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화면의 개미만한 어느 누군가를 가리켰다.

 

-얘가.. 내 동생이야.

 

벅찬 목소리로 그가 가르킨 사람은, 지금 올림픽 대표팀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는 K, 그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혼자 DMB로 경기를 보며, 그 경기의 누군가를 응원하는 그 마음을 그 때나 지금이나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어쩐지 굉장히 절박한 그런 마음일거라고 생각한다.


#. 3

 

K집안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K의 조부는 국가유공자라 K와 훈 둘 중 하나는 병역이 면제되는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안다. , 그 집안이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K와 훈, 둘 중 하나밖에 밀어줄 수 없는 처지였던 것으로 안다.

 

훈도 열정 있는 사내였으나, 결국 집안에서 밀어주게 된 것은 K. 훈이 자진해 먼저 입대를 했고, K는 자연히 병역이 면제되었다. 이후 K는 승승장구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고,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최소한의 병역마저 면제되는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둘의 입장이 반대로 바뀌었어도 훈이 해내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형이라도 그런 절실한 마음으로 동생의 승리를 바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떠들썩하다. K는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을 활보하는데, 혼자 DMB로 그를 응원하던 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K는 알까? 그의 승리가 오롯이 그 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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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식당 2012-08-3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뷰리풀말미잘님은 좀비가 되지 말고 건강하고 예쁘게 지내세요. 뷰리풀말미잘님 글 팬입니다. 자주 써주시기 바랍니다.

뷰리풀말미잘 2012-08-31 21:26   좋아요 0 | URL
닉네임이 정겹네요. 제가 조만간 캥거루 꼬리곰탕을 해 먹어보려고 하는데 전문가적 견지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육식당 2012-09-03 11: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캥거루 꼬리곰탕은 글쎄요, 맛을 장담할 순 없지만, 충분히 고아서 파를 송송 썰어 넣어 먹는다면 먹을만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뷰리풀말미잘님과 캥거루 꼬리곰탕은 사실 좀 어울리지는 않는듯 합니다. 다른걸 찾아보세요. 차라리 캥거루 옆에서 함께 뛰며 캥거루가 뜯어먹는 풀을 함께 뜯어 드시는 것이 더 어울리는데요.

뷰리풀말미잘 2012-09-03 22:05   좋아요 0 | URL
아.. 아무래도 좀 그러는편이 낫겠죠..?

정육식당 2012-09-0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나저나, 다음 글은 언제 업데이트 되나요? 정기적으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매일 들어와보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매주 목요일 혹은 첫째 셋째주 화요일, 이런식으로 고정해주시는 건 어떨지요.

뷰리풀말미잘 2012-09-03 22:01   좋아요 0 | URL
그, 그럼.. 매, 매주.. 목요일로 하겠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2-09-07 22:10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정육식당님 내일은 꼭 쓸게요 ㅠ_ㅠ
 



명심해라. 













왔다가













간다. 














 







사는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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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2-07-20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팔은 내 팔이 아니다. 협찬한 팔이다. 내 팔은 저렇게 안 예쁜 팔이 아니다.

비로그인 2012-07-20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웃었다가 자못 진지해지는 그런 사진과 글이네요. 저희 집 근처에도 바다가 있어서 저런 풍경을 곧잘 보곤 하는데~ 사진으로 보니 또 새로운 느낌이 있네요. 잘 보고 가요, 아름다운말미잘님!

뷰리풀말미잘 2012-07-21 00:01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 전 까지 바다가 있는 곳에 살았죠. 자주 가 보진 않았지만 그게 근처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곤 했었는데요. 아, 원래 바다가 고향인 사람은 바다를 보고 탁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Arch 2012-07-2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새로운 형식의 페이퍼로 제 아성을 무너뜨리려는겁니까? (아성, 어디?) 어림 없어요.

물론 파랑색이 눈이 시릴정도로 예쁘고 부러 갈매기보고 저 포즈를 하라고 해도 안 나올 정도로 괜찮은 각도와 협찬한 팔이 쌩쌩하다고 해도 진짜 어림도 없어요. ㅋㅋ

나, 간다.

뷰리풀말미잘 2012-07-21 00:02   좋아요 0 | URL
아치, 나 즐찾 104에요. 또 하나 늘었어요. 위기의식 가지고 포스팅하세요.

뷰리풀말미잘 2012-07-21 00:02   좋아요 0 | URL
가면, 또 옵니다. ㅎㅎ
 



장마라 어둔 하늘이 어디서 돋아나듯 파래졌다. 






 


파란 하늘에 셔터를 누르는데 문득, 새 한마리가 끼어든다. 갈매기다.  








한 놈이 또 한 놈을 데리고 왔다. 








그 놈이 또 다른 놈을 데리고 왔다.  








다단계인가.








놈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서, 


좀 전에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이었다가, 어느새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가 되었다.  








사진 찍고 있는데 한 마리가 나한테 똥을 쌌다. 








새새끼. 








너냐, 조나단? 




















갈매기의 꿈은 아주 무례한 새에 대한 재미없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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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7-1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매기의 꿈보다 이 페이퍼가 100배는 더 재밌어요.^^ㅎㅎ

뷰리풀말미잘 2012-07-13 22:53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에요 마노아님. :)
 

 














#. 1

 

1962년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와 잭 커비는 브루스 배너-헐크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창조한다. 주인공 부르스 배너 박사는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되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분노를 조절 할 수 없게 되면 난폭한 녹색의 근육질 괴물, ‘헐크로 변신한다. 부르스 배너가 인간의 아폴로적인 이성의 표상이라면 한다면 헐크는 디오니소스적 비이성의 표상이다.

 

물론 '헐크'의 모티브는 1886년 간행된 R.L.B.스티븐슨의 괴기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일 것이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재생산에 그치지 않고 보다 모던한 지점까지 촉수를 뻗는다. 지킬 박사의 하이드씨가 심리적 이면에 악을 내재한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는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헐크의 헐크는 선악 구분이 없는 혼란 상태로,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를 겪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을 은유한다는 것.

 

헐크가 등장하는 최근작은 영화 어밴져스다. 영화의 절정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배너 박사는 아직 헐크로 변신하지 않는다. 별 달리 분노를 이끌어 낼 기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일촉즉발의 상황, 혼자말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배너 박사. “사실 나는 늘 화가 나 있었지.” 적들에게 뛰어가는 배너의 하얀 셔츠는 이미 갈기갈기 찢어지고 이내 거대한 녹색 등판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 2


최근에 일을 관뒀다.

 

내 일은 오왕(吳王)의 새침한 연인 같아서 나는 그것을 사랑하였으나 그것은 나를 늘 파국으로 몰아갔다.

 

매달 받는 월급과 그 대가로 내가 포기한 것들이 늘 의식속에서 대립했고, 내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과 역할행동이 나의 정치적 정체성과 마찰을 일으켰다. 기대는 과도했고, 시간은 촉박했다. 일에 대한 상반된 감정이 가져오는 스트레스와, 스트레스로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업무적 긴장은 매일 밤 나를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멜랑콜리라는 진단명은 내 상황을 수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낭만적인데가 있었다.

 

나는 단지, 나는 그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을 뿐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초록색의 근육 괴물로 변해 주변의 모든 것을 두들겨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는 정보를 입수한 가 따로 조촐하게 마련한 술자리에서 나는 추에게 고백했다, 실은 이 모든 것을 다 두들겨 부숴버리고 싶다고. 침착한 베테랑인 추는 한참 내 얘기를 듣다 차분하게 말 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헐크의 은유는 옳아서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헐크를 하나씩 품고 있는걸까?

 


#. 3

 

헐크의 이야기는 1962년 마블 코믹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여러 지면과 TV애니메이션을 거쳐 TV시리즈로 방영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 영화로도 최근작 어밴져스를 제외하고 두 번이나 제작되었다.[2003년 이안 감독, 헐크(Hulk), 2006년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둘 다 평작이다.] 


열심히 찾아본 편은 아니지만 위에 나열한 시리즈 중 대부분을 일람하였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TV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다. 오래되어 단편적인 것 밖에 기억나지 않으나 드라마 속 헐크는 어쩐지 어밴져스의 헐크보다 외롭고 쓸쓸한 캐릭터였다. 그는 하나의 소동이 정리되면 석양을 등지고 어디론가 떠나곤 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장면을 늘 인상적으로 감상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 혹은 단지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세상과 멀어지려는 것이었을까?  

 


#. 4


내게도 하나의 소동이 끝났다.

 

떠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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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7-0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떠날 땐 몰랐는데 남이 떠난다니 서운하네요. 내재된 분노를 다스리고 돌아오도록!

뷰리풀말미잘 2012-07-09 02:14   좋아요 0 | URL
굿모닝 뽀! 문득 여왕개미 논쟁이 생각나네요.

언니 없는 사이에 언니 그늘 벗어나서 무럭무럭 자랐나요? ㅎㅎ

2012-07-09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2-07-1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너지를 꼭꼭 눌렀다가 펑 하고 터트려서 떠나는 이의 왠지 부럽고 대견한 등짝.

안녕하세요. 모처럼이예요 뷰리풀말미잘님.

뷰리풀말미잘 2012-07-10 19:17   좋아요 0 | URL
아, 우리 덩덕덕쿵덕쿵님! 오랫만에 서재 둘러보니까 또 많은게 변해있네요. ㅎㅎ 아가가 휘모리 님의 총명하고 야무진 모습을 닮았나요?

반갑습니다! :)

무해한모리군 2012-07-11 12:47   좋아요 0 | URL
나는 내가 늘 많이 변할걸로 생각했어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여하간 미래에 뭔가가 되면 말이죠..
실상은 별로 변한게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 쫌 실망중 --;;

아이는 남편만 닮았어요.. 아무리봐도 저 닮은 구석은 없어요 ㅎㅎㅎ

뷰리풀말미잘 2012-07-12 13:47   좋아요 0 | URL
예전에도 휘모리님은 좋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좋은 사람일건데 뭘 자꾸 변하려고 하나요. :) 욕심도 많으셔.

그의 미모와 휘모리님의 지성도 훌륭한 조합이네요. ㅎㅎ
 

당신은 


지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것이었어.


쉿,


오늘


희망은 구차한 언어로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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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12-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

아, 난 이 짧은 글을 보고 무슨 뜻일까. 어쨌든 미잘을 보니 반갑네.. 이런 심정이었어요. 새해가 다가오는데 점점 멍충이가 되는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12-01-01 16:35   좋아요 0 | URL
아치-

부비적부비적- ㅠ_ㅠ

Arch 2012-01-02 10:27   좋아요 0 | URL
어딜 부비적하는거에요~ ㅋㅋ 고마워요 미잘!

Forgettable. 2011-12-3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고싶을 땐 울어야지<3 보고싶네요 힝

뷰리풀말미잘 2012-01-01 16:37   좋아요 0 | URL
뽀! ㅎㅎ 희망찬 새해가 밝았어요!

신년 계획은 좀 세워봤어요?


2012-06-17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