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와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기로 했다. 


..물론 형은 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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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5-04-2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인가요 누난가요?

뷰리풀말미잘 2015-04-27 08:47   좋아요 0 | URL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Mephistopheles 2015-04-27 18:57   좋아요 0 | URL
엥...?

뷰리풀말미잘 2015-04-27 20:16   좋아요 0 | URL
그래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세뇨리따 2015-04-2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일건 없어요. 관우도 유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릇을 보고 기꺼히 형이라 불렀죠. 말미잘님의 글의 행적을 따라서, ˝루리˝의 성별을 유추하자면 상남자쯤이에요. 밥샵 옆에선 사진은 귀엽지만, 그 옆에서면 안귀여운게 탈인간의 기준이니 논외죠.

호탕한 형님 하나쯤 둬서 나쁠게 없죠. 코에이가 정의한 의형제의 기준에 의거하면
아직 두자리가 남았을테니, 저는 셋째 쯤.. 괜찮을까요?

저처럼 막내자리에 미련이 있으시다면 공동 둘째정도로 타협해 드릴 여지는 있어요.

2015-05-03 02: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쓰려고 컴퓨터를 몇번 재부팅 했는지 모를실거에요. 맛이 가 버려서. 그나마 코어가 I7이니 망정이지 부팅 한번 하는데 오분 씩 걸리는 옛날 아수스 노트북 같으면 그냥 부숴버리고 텔레파시로 대체했을겁니다. 믿으시나요, 텔레파시. 전 믿는 편입니다. 텔레파시는 외계인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거랑은 다르죠. 암요. 아, 왜 스마트폰으로 댓글 달 생각을 못했냐고요? 저는 모바일 세계에서는 아주 과묵한 편.. 이라기 보다는 엄지가 네모인지. 하도 오타가 나서 도저히 뭘 쓸 수가 없거든요. 요즘 양반들은 손가락에 모터들을 다셨는지.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도원결의 하실래요? 좋습니다. 피 막 섞어서 청룡언월도로 막 휘휘 저어 마셔요. 그 왜 오렌지 쥬스랑 뭐랑 섞어서 드라이버로 저어 마시는 칵테일 있죠? 그것처럼. 히히. 하지만 전 한잔만 마실래요. 일단 술이 익덕이나 운장급이 아니에요. 소박한 주량입니다. 아, 그리고.. 음.. 싸움 잘 하세요? 제가 동생이 된 걸로 봐서 저희 의형제 순서는 아마 주먹 순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루리보다 동생이 될 일이 그것 말고는 많지는 않거든요..

딱히 막내자리에 욕심이 있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첫째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음.. 저는 사실 평화주의자이고, 인류애에 근거해서 모두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요. 하지만 루리를 포함해서 저보다 쎈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건 그렇고, 왜 유비, 관우, 장비는 넷째를 맞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전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셋이라는 숫자는 사실 아주 안정적에요. 대체로 모든 지지대는 다리가 세개입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기본 구도는 삼각구도죠. 셋이 넷이 되려면 훨씬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니깐요. 성부-성자-성령, 성춘향-이몽룡-변학도, 캔디-안소니-테리우스. 뭐 하나 더 추가되면 이상하죠. 넷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드문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성춘향-이몽룡-변학도-향단이 이건 좀 아니잖아요. 심지어 좀 불순하고 낮뜨거운 막장으로 전개될 여지가 보이기도 하는군요. 흠. 향단이라.

이 빈약한 근거로 북도 치고 장구도 쳐 볼까요? 자, 왜 그들은 넷이 아닌가. 중요도도 높고 한솥밥도 오래 먹은 조운이나 공명을 끼워서 넷을 만들수도 있었을 텐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넷부터는 형제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그건 조직에 가깝죠. 왤까요? 아무 목적 없이 넷을 뭉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생긴다면 넷도 가능하지요. 목적을 가진 형제라. 그건 이상하잖아요. 목적을 가진 인간이 넷이나 모이기 시작하면 이상한게 막 생기지 않던가요. 위계나 강령같은 것들. 어떤 한심한 동아리 나부랭이도 강령이나 못해도 규정 몇 줄 정도는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 넷 이상 모이면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나봐요. 그게 뭔 모임이든, 조직이든, 심지어 국가든. 조직 자체가 싫다기보다 결국 무리를 지으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하이어라키가, 얼비치는 권력의 실루엣이 짜증이 나는 겁니다. 막 두드리다가 생각나는건데 우리가 늘상 써대는 오빠, 언니, 형, 누나 이런 말들도 혈연-조직의 하이어라키를 나타내는 표현 아닌가요? 일단은 친근감의 표현이겠지만 예컨대, `언니, 여기 반찬좀 더 주세요` 이런 표현의 기저에는 `니가 언니고 나는 동생이니깐 네 사회적 서열을 훼손할 생각이 없어. 비록 내가 널 부려먹고는 있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안심하고 반찬이나 더 갖고와. 이년아.` 이런 심리적 층위가 있는거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제가 주변의 닝겐들에게 나이건 뭐건 상관없이 저를 그냥 이름으로 부를 것을 강권했던 모양이군요. 사회에서 다만 단독자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이름의 어감을 사랑하지만, 이름조차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온전히 제 것은 아닙니다. 세뇨리따님은 제 아바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뷰리풀말미잘, 그/그녀에게는 성별도, 직업도, 가문도 없습니다. 제가 만든 것이고 그래서 더 오롯한 저니깐요.

이제 졸려요. 하루만에 목포까지 다녀왔거든요. 밥 한그릇 먹으러. 이 장황한 댓글은 그 피곤의 여파일 겁니다. 저는 대체로 두개의 댓글을 쓰고, 긴 녀석을 버리죠. 오늘은 짧은 걸 쓸 기력이 안 됩니다. 제가 주절거린 말은 잊어주세요. 잠투정이었으니깐.

4444번 택시를 발견하시면 타고 잠실로 오세요.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결혼을.. 아니, 코에이 스타일로 술잔에 피를 섞어서 장팔사모로 휘휘 젓어 홀짝거리며(술 약하다니까요) 형제의 의를 논합시다. 첫째는 주먹으로 정했고, 셋째는 뭘로 정할까요. 섹시함으로 승부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제가 자신 있는게 그거 하나 뿐이라서.

세뇨리따 2015-05-0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휴대폰으로 글 쓰는게 참 싫어요.
100 바이트를 넘어가면 손에 쥐가 나기 시작하다가, 기어이 스스로 빡쳐서 바닥에 쳐 박히는 것은 제 휴대폰들의 통과의례거든요.. 그래서 늘상 액정이 남아나질 않나봐요. 큼지막하고 강인해보이는 균열 한두개는 있어야 비로소 내 폰이구나 싶죠. 혹자는 제가 촌스러운 체질이라 신문물과 안맞는다고 하지만.. 하, 웃기지 말라죠. 터치감은 애플이 잘만든다지만 충분히 크지 않고, 타사 제품들은 영.. 그들이 개선할 필요가 있는거지, 제 크고 아름다운 손은 죄가 없죠.

도원결의 한 그 형제들의 서열 기준은 `도량` 이었죠. 우리에게도 적용한다면, 저는 반드시 막내가 되겠네요. 저는 좋지만, 조금 진부하다 하시면 당초 우리의 연줄이 돼버린 필력 은 어떨까요? 음, 이건 너무 노골이었네요 ㅋㅋ. ˝싸움˝ 이요? 간디 이래 최고의 평화주의자인 메이웨더도 제 평정심에 비하면 폭군입니다. 오죽 자다가도 물방울 소리에 놀라 깨는 새가슴이라, 운동은 하고 있지만 풋웍과 가드, 헤드웍 등 수비에 상당히 치중한 스타일이 돼 버렸죠. 아름다운 말미잘님 본인도 강력히 평화주의자라 자평하시고, 우리가 싸우면 팩맨vs머니의 싸움 이상의 세기의 졸전이 될 것이니, 화끈한걸 좋아하시는 루리의 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택은 아니겠네요. 다만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이것도 제가 막내일겁니다.
-행여 오해하실까 못을 박아 두자면, 저는 웨더의 엄청난 열혈팬입니다. 그리고 이번게임은 상당히 제취향이었고 아주 흥미롭게 봤죠. 그 디펜스 테크닉과 카운터는, 복싱만 놓고 보자면 제 이상형의 스킬이거든요. 하지만 그런걸 떠나서.. 전 언제나 악당의 열렬한 팬이니까요. 모든면에서 완벽한 팩맨은 영, 궁합이 안맞아요.-

하지만, 섹시함이요? 휴, 이것은 좀 곤란하네요. 전 모든면에서 자신있어도 뷰말님께는 도량과 필력 싸움 모든 면에서 패했지만, 섹시함만은 도저히 질거란 생각이 안들어요. 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가 강하고, 또 즐기는것을 좋아해서 뷰말님 서재를 페이보릿 해놓고, 거울을 끼고사는 남자죠.

제가 충분히 섹시하지 않았다면,
전 회의감에 소시오패스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아름다운 말미잘.`
 

 #. 1

 

꿈을 꿨다.

 

나는 상단 간 무역을 보호하는 용병이었다.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라크의 티그리트나 팔루자쯤 되는 무역도시였다. 어느 날 상단의 상선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도착한 물건들을 받아 하역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지프차가 몇 대 다가왔다. 뭐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순간 탕! 하고 저 편으로부터 총알이 날아왔다. IS인지 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우선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황급히 소총을 들고 저 편을 조준하는 찰나, 두두두두 소리가 들리며 등 뒤의 석조계단에서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헉, 이건 5.56mm가 아니다. 최소한 7.62mm. 기관총이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상인과 민간인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나는 대응을 포기하고 계단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기관총을 상대로 고작 머리를 가리다니. 스스로를 힐난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내 옆의 청년이 흐느꼈다. 그가 동료였는지, 상단의 선원이었는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곁눈질로 본 외모만은 또렷하다. 장발에 굽슬굽슬 탐스런 머리칼. 야, 임마 지금 울 때가 아니잖아. 고개라도 숙이라고. 난 한심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쟤가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나?

 

다시 총알세례가 주변을 훑고 지나갔고 난 더 납작 엎드렸다. 그 와중에도 그의 울음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가만, 그런데 그 소리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공포가 아니라 비탄의 농도가 아주 높았던 것이다. 북 밭치는 슬픔을 게워내는 그런 종류의 울음이었다. 뭐지?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Jesus.

 

그는, 예수였다.

 

별 거룩한 개꿈을 다 꿨네.

 

 

#. 2

 

생각해보면, 예수는 종종 울었다.

 

나사로의 죽음을 대하여 울었고, 사랑을 주었으나 그 사랑이 외면당할 때 울었고, 인간으로서 삶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서 울었다.

 

그는 내 꿈에서 또 울고 있었다. 하긴, 내 무의식의 세계에는 사랑이 없었고, 오로지 죽음과 위기만 가득했던 것이다.

 

예수의 최대 아이러니는 영원한 생명(비유든 상징이든 믿음이든 간에)을 소유했음에도 이 유한하고 볼품없는 삶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것에 있다. 그는 신성을 가졌으나, 인간으로서의 구차한 삶을 끝내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이었다.

 

사람다운 예수의 모습은 예수 사후에 근접한 문서일수록 더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사후 오랜 시기 후에 형성된 문서일수록 가필되고 채색된 느낌이 강하다. 사후 90~100년에 편찬된 요한복음은 그야말로 요란하다. 태초에, 로고스에, 빛과 어둠까지 등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으로 편집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 사후 60여년 경 작성된 누가복음은 로마 코스모폴리탄의 관점으로 쓰였다. 누가복음보다 20년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태복음은 유대교의 지평에서, 거기서 또 20년쯤 더 이전으로 소급하는 마가복음에는 갈릴리 지평에서 예수를 조망한다. 요한복음에서 마가복음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예수의 모습이다.

 

마가복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수 사후 40여년경 성립된 경전이다.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도 한 세대 전의 일에 깜깜한데 그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래서 학자들은 예수의 모습에 가까운 더 선대의 자료를 찾아 헤맸고 '마태'와 '누가'에 포함된 '마가자료'를 소거하고 남은 공통된 예수의 어록에 주목했다. 아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편집자들이 참고한 예수의 어록 자료가 있지 않을까? 성서문헌학자들은 이 것을 Q자료라고 불렀다. (‘Q’는 Quelle, ‘자료’라는 말이다.)

 

그러다 지난 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다. 퇴비 찾던 농부가 발견한 이 꾸러미에는 ‘도마복음’이 포함되어 있었고 도마복음은 학자들이 추정했던 Q문서의 35%를 포함하고 있었다. 다소 이견이 있으나 도마복음의 성립연대는 마가복음의 성립연대인 예수 사후 40여년보다 10~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이 아니라 진짜 예수를 만난 자가, 예수의 입에서 나온 진짜 얘기를 실제로 적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문서가 나타난 것이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말한다. “너희가 살아있을 동안에 살아있는 자를 주의 깊게 보라. 죽어서는 아무리 살아있는 자를 보려고 하여도 그를 볼 수 없을 터이니.” 소박한 그의 이야기에는 허망한 과거도 허황된 미래도 없다. ‘지금’, ‘여기’,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 ‘현실의 지평’에서 쓰인 몇 장의 문서는 철학적 거대담론도 가필된 종교적 독선도 침묵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담담하게 ‘구원’ 그 이후를 질문하는 사람의 아들에게 오늘날 교회는 어떤 역량으로 무엇을 대답할 수 있는가.

 

도마복음과 Q문서의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도 아니고, 신화적 영웅도 아니다. 갓 잡은 생선 살처럼 날 것 같은 얘기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싱싱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평온해지는 마음을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기성 교회의 기준에선 이단 심판 감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빌어먹을, 이천년이 넘도록 인류는 예수를 착취하고만 있지 않은가. 권력투쟁으로 간추려 모은 성서 꾸러미들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밀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해석을 강요해 왔다. 그들의 예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이고, 영생의 아이콘이다. 혹은 문화적 우월감의 상징이며, 또 돈벌이의 수단이다. 그의 이름을 간판처럼 걸고 국경을 나누고, 교파를 나누고, 심지어 인종을 나눠 싸웠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예수가 티그리트로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IS무리들의 학살 장면을 목도한다면,

 

물론, 울겠지.

 

 

#. 3

 

어제, 노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꿈 얘기를 했다.

 

“글쎄 그 남자가 예수였지 뭐야?”

 

노인은 조금 심드렁했다.

 

“그랬구나.”

 

삶은 계란 세 개가 식탁에 올라왔길래 물었다.

 

“근데 웬 삶은 계란이야?”

 

약간 한숨 섞인 목소리.

 

“부활절이잖아.”

 

.. 오.

 

 

#. 4

 

오래, 그를 떠나 있었다.

 

앞으로도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도마복음의 그는 말한다.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Juses said, "Be passersby")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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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7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그를 떠나 있었다.
크- 시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15-04-07 07:38   좋아요 0 | URL
락방님 앞에서 제가 시를 논한다면 문둥이 앞에서 고름짜는 격이겠죠.

아무개 2015-04-07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인은 별로입니다만
신앙인은 참 멋찝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4-07 10:18   좋아요 0 | URL
아멘. : )

무해한모리군 2015-04-0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아멘

뷰리풀말미잘 2015-04-08 22:37   좋아요 0 | URL
어떻게 변했을까. 뵌지 오래됐네요. 휘모리님은 아직 방랑자의 마음으로 살고 계시나요? 저는 점점 더 머물러 있기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4-20 10:32   좋아요 0 | URL
늙었죠 뭐... 우리 약속 잡읍시다.. 정말정말 도망가고 싶은 나날이네요.

뷰리풀말미잘 2015-04-21 07:56   좋아요 0 | URL
좋아요!

2015-04-22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1

 

바이킹을 타기엔 겁이 많았고, 공중 자전거는 시시했다. 나는 대관람차가 좋았다. 새 이빨이 잇몸의 빈틈을 차곡차곡 메워가던 무렵이었다. 문을 닫아 세계와 분리되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현실과 유리되는 작은 통. 왕이 다 무어냐.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오크통에 웅크린 디오게네스처럼 그 안에서 나는 단독자였고, 유일자였고, 객관자였다.

 

떠오른다. 레고 같은 세상의 조각들이 나의 자궁 밑으로 무한히 유출되고, 두근두근, 하늘에 오르사 전능한 존재가 된 듯 충만감이 허파에 가득 차오른다. 행복, 내가 자주 도달하지 못했던 단어를 떠올릴 때 쯤, 꼭 그때 쯤 관람차의 궤도는 바닥으로 폐곡선을 그린다. 속도는 1cm/s만큼의 에누리도 없이 차오를 때와 동일하다. 아아, 나는 다 가졌던 고도를 다 빼앗기며 초침처럼 차근차근 떨어지는 것이다. 세상으로, 떠나온 번잡함으로.

 

다시.

 

유년시절의 관람차가 오름의 덧없음과 소유의 무상함을 가르쳐줬다면, 음모가 다 자랐을 무렵 그곳은 비밀스런 음모의 온상이었다. 4분 혹은 5분. 관람차의 운행시간은 라면 하나 끓이기에 충분한 시간. 서로의 몸 냄새가 뒤섞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설익은 나의 빨간 혓바닥을 그녀의 귀에 굴려 넣는다. 하악- 그리고 입술을 조물거려 만들어낸 농밀한 언어들을 그녀의 가장 섬세한 기관으로 불어넣는다. 관람차는 날아오르고, 그녀는 달아오른다.

 

오, 관람차는 보통 놀이기구가 아닌 것이다.


 

#. 2

 

지난 가을 고베항을 걷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난 우산이 없었고, 막차 시간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길을 질러가는데 별안간 관람차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뭐야. 나는 고개를 들어 관람차의 회전축을 노려봤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였다. 와따시노 운메가. 너를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오사카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관람차는 고고하게 빛을 뿜어내며 자, 타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쳤고, 설상가상으로 왼쪽 무릎까지 앓고 있었다. 그냥 탈까. 잠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미 너를 떠난지 오래. 언제까지 쳇바퀴만 돌 수는 없어. 이제 네가 내 안에서 허공을 맴 돌 차례다. 너를 소유하겠어!

 

관람차는 삐걱삐걱 웃었다. 그리고는 새를 노리는 타란튤라처럼 모든 관절을 굽히고 나를 노려봤다. 음, 이 새끼. 쉽게 물러설 생각이 아니구나. 나는 쪼물락쪼물락 미니 삼각대를 설치하고, 다이얼을 돌려 셔터스피드를 맞추고, ISO를 세팅했다. 조리개 개방! 내 여기서 한 줄기 마법진으로 너를 맞으리.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관람차는 빛을 번뜩거리며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센 풍압이 코앞까지 밀려왔다. 우리는 서로를 갖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찰-칵. 찰-칵.

 

흔들리고,

 

 

 

 

노이즈가 끼고,

 

 

 

 

색이 들뜬다.

 

비가 머리칼을 적셔갈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다.

 

구도를 잡고, ISO값을 조절하고. 셔터스피드를 30초에 맞췄다. 나로서는 가능한 최대의 셔터스피드였다. 셔터가 떨어지는 내내 초침과 초침의 거리는 아득했다. 마나가 고갈되기 시작했고, 단전에서부터 빈 기운이 올라왔다. 쿨럭, 이대로라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아. 도와줘 현승희! 나는 그 순간 얼핏, 나의 은인이신 도혜선사의 혜안을 뵈었던 것도 같다.    

 

저편 항구에서부터 파도 소리가 몇 번 들리고. 셔츠 두께를 너머 전해지던 그의 훈훈한 체온과 , 촉촉하고 오돌도돌했던 입천장의 촉감과, 오래 망설이다 기어코 타지 못했던 브리즈번의 빅밴과 그 모든 기억들이 수레바퀴처럼 마구 회전하며 카메라의 센서에에 빛의 구체를 맺어갔다. 주문의 영창이 빨라질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심지어 기독교도 아닌데, 어쨌거나 오오라가 짙푸른 녹색의 광휘로 온 몸을 휘감았다. 

 

황혼보다 찬란한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선명한 자여. 영겁의 회절속에 구속된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걸고 나 여기서 딱히 별 의미는 없이 맹세하노니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리석은 알라디너들에게 나와 그대가 힘을 합쳐 위대한 사진의 힘을 보여줄 것을. 도마키사라무, 자하라독시드, 지크가이프리즈. 돈 값 좀 해라 이 쪽바리 렌즈야.

 

나는 이를 악물어 최후의 진기를 짜 냈다. 진기는 단전으로부터 시작해 중부혈과 경문혈, 견정혈, 양계혈, 천주혈을 돌고는 늘씬한 검지손가락 끝에 눈부신 빛으로 맺혔다가 셔터의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찰-칵-

 

 

 

 

 

#. 4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던가.

 

관람차를 타지 않게 된 것은.

 

세계와 분리될 용기를 잃어갈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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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구리

 

 

#. 1

 

그 분께서 나를 고소하셨다. 무려 ‘명예’훼손죄로.

 

미처 몰랐다. 그에게도 명예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또 내가 병아리 가슴털처럼 보송보송하니 소중한 당신의 그것을 그리도 무참하게 훼손하였다는 사실.

 

깊게 반성했다. 거의 없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였구나. 오히려 희소할수록 더욱 소중한 법이라는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구나. 그래, 한낱 반짝이는 돌덩어리인 다이아몬드는 무슨 효용이 있어 소중한가. 단지 희소할 뿐이다. 

 

하여, 이 사태에 대한 나의 공식적 입장은 다음과 같다.

 

‘ㅋ..’

 


#. 2

 

물론 법원까지 갈 일은 없다. 하지만 시절의 하수상함과 근래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신뢰성을 의심케 한 몇 몇 사건들을 고려해 봤을 때, 혹시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독립성은 82위, 아산정책연구원의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는 총 11개 기관 중 10위에 불과하다. 단순히 상식과 법리만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법조계의 현실이 아닌가.

 

만약(물론, 정말 만약에) 내가 법정에 서서 그분과 법리를 다투게 된다면, 사회와 후손들에게 보다 정의에 가까운 판례를 남겨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돈 말이다.

 

사실 돈은 충분하다. 수입은 꾸준하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내 씀씀이야 뻔하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라면 가끔 마음에 드는 책을 사거나, 한 달에 한번 쯤 포카칩 파란색을 사먹는 정도. 하지만 님에게 드릴 돈은 없다. 차라리 강남 대로에 뿌리면 뿌렸지. 소송비용은커녕, 님과 관련해서 쓰는 전화비조차 아깝다. 따라서 소송비용을 지출하게 될 수 있다는 가정은 돈 개념이 박약한 편인 내게도 짜증이 나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불로소득을 조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 3

 

마침, 작년 여름 현자를 만났다. 그는 낮에는 의료설비 수리공이고, 밤에는 투자가다. 낮의 동료들은 밤의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고, 밤의 동료들은 낮의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 좀 이상한 대신 그는 해박했다. 그리고 몇 푼 수익을 얻기보다 시장에 맞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을 즐기는 자였다. 공자왈, 명석한자는 즐기는 자를 따르지 못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숫자의 흐름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그의 모습은 파도를 즐기는 서퍼같았다. 나는 영 쓸 곳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얘기를 새겨들었다. 대가에 대한 예의였다. 

 

그가 알려준 코스톨라니 달걀 모델을 떠올리며, 금리의 변동상황을 스마트폰 창에 띄워놓고 오랜만에 주식 계좌를 열었다. 점심시간의 어느 커피숍이었다.


 

#. 4

 

사실, 돈은 땀 흘려 벌어야 제 맛이다. 노동의 신성성을 주장한 칼뱅의 견해를 지지한다. 뷔페에서 일하던 시절, 하얀 봉투에 주급으로 담아주는 빳빳한 만원짜리 지폐를 셀 때의 쾌감은 투자로 소득을 얻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계좌에서 계좌로 전기 신호로 흘러가는 돈에는 촉감도 냄새도 없다. 그건 사실 돈도 아니다. 내 재테크가 엉망인 건 아마 생각이 고리타분하기 때문인가보다. 달랑 CMA계좌 하나에 유흥비 축적 목적 비자금 계좌 하나 뿐. 그 흔한 적금조차 없다.

 

똥 얘긴 충분히 했으니, 돈 얘기나 더 해볼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 냄새부터 맡아야 한다. 최소한 내 지갑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세상의 돈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채권인가, 부동산인가, 예금인가, 주식시장인가. 아파트 값은 지지부진하고, 금리는 떨어져서 예금은 줄고, 그러니 가계대출은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채권은 뭐 늘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나마 주식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자, 세계의 흐름을 보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돈을 풀어 호황을 급조했고, 다우지수는 신고가를 뚫고 치솟았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지구역사상 최고점을 갱신했다. 질세라 아베와 BOJ(Bank of Japan)는 돈을 풀어 엔화약세 흐름을 만들어냈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해 장기불황을 타계할 계획이다. 이른바, '아베노믹스'. ECB(European Central Bank)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유로존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각 국에서 소모되지 못한 눈먼 돈 들은 이제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바다를 건넌다. 'emerging market'. 어디가 떠오르는 시장일까. 경상수지가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내실있는 무역국. 대한민국.

 

유럽보다 조금 먼저 고유가로 막대한 돈을 빨아들이던 사우디와 북유럽, 텍사스의 유전은 갑작스럽게 저유가 기조로 돌아섰다. 셰일가스 산업을 견제하려는 사우디의 맹공에 전체 유가가 동조하여 하락하는 현상이었다. 작년 7월 100달러를 상회하던 두바이유가 올해 초 45달러까지 떨어졌다. 유가가 반토막이 나자 향후 100년간 대체에너지원으로 끄떡없다던 미국 셰일가스 업계는 석유와 경쟁할만한 생산단가를 맞추는데 실패했다. 세계 에너지 자원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사우디가 승기를 잡았다는 거다. 셰일가스 시추공 숫자는 석달만에 1930개에서 1670개까지 줄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가고 있다. 당연히 화석연료가격은 폭락했다.

 

그럼 이 시간 한국의 철강업계는? 업계는 지금까지 '졸라 싼 한국의 산업전기'로 고로를 돌려왔다. 화석연료로 고로를 돌리는 해외 업체들에 맞서 그게 그들의 가진 가격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경쟁력이 저하된데다 철광석 가격 하락의 악재까지 겹친 포스코의 시총은 전성기와 비교해 1/3토막. 불과 3년 전 고유가를 등에 업고 한국경제성장을 주도하던 자동차, 화학, 정유산업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동반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고유가와 함께 호황을 이루던 산업군은 과연 영원히 끝장인가. 나는 1929년, 1987년 미국 증시의 폭락장에서 기술적 반등움직임에 주목했다. 그 어려웠던 시대에도 주가는 때로 50%이상 반등하기도 했다. 유가도 반년이상 하락해온 스트레스가 분명히 존재하리라. 사우디를 제외한 대부분의 원유생산국도 셰일가스처럼 마진을 제대로 맞출 수 없는 위기상황에 당면했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등 몇몇 산유국은 모라토리움 위기에 몰렸다. 푸틴의 인상이 험악해지고, 정치적 압력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중국이 하루 1800만 배럴씩 전략비축유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유가의 수급현황을 보다가 확신했다. 유가는 단기 반등한다. 나는 유가 하락분을 감안하고도 저평가 되어있던 철강업계의 관련주를 샀고, 역시나 유가의 60달러 가까이 반등했다. 쏠쏠한 수익이었다.

 

금융업을 볼까? 회사가치에 정확히 들어맞는 적정주가가 존재하며, 실제 주가라는 시계추가 적정주가의 왼편과 오른편을 왕복하며 차트가 성장한다고 가정한다면 몇몇 대형 금융주는 그 동안의 악재로 저평가 상황이었다. 대형 우량주의 가격 복원력과, 그 회사가 당면한 몇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투자메리트는 충분했다. 역시 짭짤했다. 물론, 제약과 바이오 주도 괜찮은 수익을 올려줬다.  불과 며칠 전 얘기다. 

 

한은은 돈을 풀기 위해 금리를 내려대는 미국, 유럽, 일본과 통화전쟁을 벌이며 역시 몇 년간 지속적으로 금리를 내려왔다. 저금리를 이기지 못한 국내 자본은 돈 냄새를 맡고 은행에서 이탈하고 있다. 이머징마켓 중 경상수지가 건전한 국가를 찾아헤메던 미국발 돈들과, 은행에서 이탈한 한국의 돈들은 코스닥으로 모여들었고, 코스피는 오랫만에 600선을 깨고 솟아올랐다.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금융과 차, 화, 정에 몰려 있던 돈이 기술, 제약, 바이오, 헬스케어로 이동하는 형국이다. PER값이 높은 성장주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포텐셜은 그 이상이다. 박스권에서 숨죽이고 있던 주식시장에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기가 막히는 타이밍이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손바닥만한 스마트 폰 터치 한 번에 수십개의 세계 경제지표가 뜬다. 개인투자자들이 더 이상 기관투자자들에게 정보력으로 밀릴 이유가 없다. 이 참에 전업할까.

 


#. 5

 

..라고는 했지만. 사실, 소경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부터 세계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드는 상황을 검색해 보며 알게 됐다. 나는 결국 시장을 이길 수 없겠구나. 내 성격으로는 그 수많은 변수에 언제까지나 관심을 갖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은 언제나 친절하지 않고, 위기는 언제나 '도둑처럼 온다.' 매일 잠들기 전에 경제학이나 투자관련 서적만 읽을 수도 없다. 세상에, 오로지 차트로 구성된 꿈을 꾸다니. 역시 나는 점심시간엔 투자보단 산책을 하는 편이 더 행복하다.


지금 경기를 어떤 파동으로 해석해야 할까. 지금의 코스피는 혹은 코스닥은 엘리어트 파동(의미 없지만 영감은 준다.)의 어떤 단계에 와 있을까, 추세는 어떻게 이어질까. 갠이라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볼린저 밴드를 'KB금융' 차트에 적용했을 때 이동평균선이 밴드를 이탈할 확률은? 이런 건 몇 퍼센트 운영마진으로 대신 고민해주는 펀드 매니저들이 쌔고 쌨다. 아무래도 경제학 근처에도 못 가본 나보단 낫겠지. 

나는 지난 몇 달간 데이 트레이더였고, 스윙 트레이더였고, 중기 투자자였고, 가치투자자였고, 모멘텀 투자자였고, 추세 추종자였고, 역발상 투자자였다. 바꿔 말하면 제대로 된 투자철학 하나 없이 낭인무사같은 드잡이질로 근근히 이겨온 셈이다. 다만 운이 좋았다.   

 

많이는 아니라도 충분히 벌었고,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곧 관둘 생각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시장을 극복하도록 도와준 피터 린치와 벤자민 그레이엄, 박경철과 최준철, 최진기, 홍춘욱, 장하준, 김늘보에게 감사한다. 모두 경제와 투자 분야의 대가들이다. 또, 내가 며칠 밤을 새도 못 할 분석들 대신해 준 ‘광대한 네트’의 분석가들에도 감사한다. 명예로운 '그 분'에게도 돈은 못 드려도 감사한 마음만은 전한다. 저를 귀찮게 해 주신 만큼 조만간 뜨거운 격려의 채찍질로 화답해 드릴 생각이다. 엉덩이가 뜨거울 때, 무릎 걸음으로라도 '진보'하시길. 10년이 넘도록 그 모양 그 꼴인 당신 인생도 이제 좀 나아져야지.  


 

#. 6

 

얼마 전, 오래 미루던 유니세프 정기 기부를 하게 됐다. 사실 타 단체에 기부를 고려중이었는데마침 길에서 유니세프 청년을 만나고 만 것이다. 호주에서 궁핍하게 살던 시절 매몰차게 기부를 거부했던 심정적 빚을 청산해야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계좌번호를 적고 말았다.

 

마음이 어찌나 홀가분한지. 사인을 하고 나니까 아저씨가 그랬다.

 

“마음이 따뜻한 분의 손, 제가 한번 잡아 봐도 되겠습니까.”

 

어우 참, 아저씨 오글거려여. 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어머나, 내 차가운 손을 덥썩 잡았다.

 

그 동안 미안했어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내 돈 펑펑 써 주세요.

 

주머니도 두둑해졌고, 기부금액을 늘릴 생각이다. 이것도 모두 당신 덕분이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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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2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4,5 번은 읽다가 포기했어요. 미잘님은 글을 잘쓰는데, 4,5번은 내가 무슨 말인지를 잘 모르겠어서요..여튼..돈 벌었다는 얘기죠? 그리고 돈을 더 벌게 된다면 더 기부를 할 것이고?

복받을겁니다, 미잘님.

그럼 해피 뉴 이어. 이만 총총.

뷰리풀말미잘 2015-02-20 19:08   좋아요 0 | URL
.. 아.. 뭐.. 네.. 음..

해피뉴이어!

blanca 2015-02-2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독서며 관심이 편향되어 있었다는 반성이 드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뷰리풀말미잘 2015-02-21 11:18   좋아요 0 | URL
정말 블랑카님 리뷰 목록 중에는 경제분야의 책이 없네요. ㅎㅎ

저도 경제분야의 책들은 잘 읽지 않았습니다. 지루하기 때문이었는데요 알고보면 또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제 책장에 꽂혀만 있던 책들을 저도 이번 기회에 처음 읽었고 읽는동안 생각보다 매우 즐거웠습니다.

학문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학문의 역사를 짧게 약 3000년쯤으로 잡는다면 20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학문의 패러다임은 대체로 철학과 신학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은 아주 조금씩 성장해왔고, 산업혁명시기에는 잠시 사회학이 득세했던 적도 있었고, 그 이후의 헤게모니는 쭉 경제학이 쥐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영학인가 뭔가도 있긴 있는데 그건 사실 학문은 아닌 것 같애요. `장사방법(론)`정도지.

오늘날 돈의 흐름은 곧 세계의 흐름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제가 고맙습니다. 히히.
 

 

 

 

 

 

 

 

 

 

 

 

 

 

#. 1

 

침대에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는데 루리가 들이닥쳐서는 침대 허리께를 엉덩이로 콱 누르고 걸터앉았다.

 

“뭐야.”

 

"머리카락 좀 움켜쥐어도 돼?"

 

이미 손이 내 머리께로 곰실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고, 조금만 지체하면 물고문이라도 당하는 독립투사의 몰골이 될 참이었다.

 

"안 돼."

 

"도대체 되는 게 뭐야."

 

뭐지, 이 무법자는.

 


#. 2

 

또 루리가 쳐들어왔다. 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배우기로 했는데 등록을 해 달라고 했다. 본인 랩탑에 공인인증서가 없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없다는 공인인증서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카드를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각종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긴 했으나 마치 비둘기의 것 같이 반짝거리는 루리의 눈알은 이미 어떤 반문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체육센터 홈페이지에 강습료를 결제해주자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건넨다. 그래, 고쟁이에서 꺼내 준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루리가 수영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너 수영 할 수 있어?"

 

"응."

 

"몇 미터나 갈 수 있는데?"

 

"끝없이."
 
.. 끝없이.. 누구냐.. 넌!

 


#. 3

 

초등학교 때 일이다. 미개한 시절이었다. 토요일 수업이 있었고,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다. 나는 사학년 이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루리를 만나서 함께 집으로 걸어오곤 했다. 오는 길엔 큰 공원이 있었는데 잔디도 넓고 길이 좋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멀리 벤치에서 중년 남자가 우리를 불렀다. 낯설었으나 나는 천진해서 루리를 데리고 그리로 갔다. 발치까지 가서 수줍게 서자 그는 더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들여다보자 그의 무릎 사이에 뭔가 하얗고 굵직한 것이 있었고. 그는 그걸 손으로 쥐고 위로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고개를 갸웃거려도 도대체 그게 뭔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오래 그러고 서 있었다.

 

차츰 고여가는 침묵이 천진함의 밑바닥을 들출 때 까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이해보다 빠른 것은 공포였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려 달음박질 쳤다.

 

얼마나 달렸을까.

 

비로소 생각났다. 아차, 루리가 아직도 거기에 서 있다는 것이 말이다.  


 

#. 4

 

천명관의 ‘고래’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먼지를 닦는 일’이라고. 내 인생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서 먼지가 잘 쌓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위에 상술한 그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지저분한 기억을 여럿 갖고 있다.

 

대체로 그 기억들은 그 모든 것과 맞서려고 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과, 이 밤의 불면에 빨판상어처럼 달라붙어서 고개를 흔들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종류다. 척추가 부러져 우는 그 녀석의 눈물, 뭉개진 손가락을 들고 소리 조차 못 지르고 서 있던 그 녀석의 표정. 닦아내는 데 서투른 나는 그렇게 온갖 것을 머릿속에 넣고 사는데, 유독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있다.

 

그 때, 루리는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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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6 0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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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6 1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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