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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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토마토는 과일이게, 채소게."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을 펼치며 처음 밑줄 그은 문장입니다. 평범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 안에는 어쩐지 형과 동생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이 담겨 있더라고요. 피 하나도 섞이지 않은 동생인 재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중국냉면 국물에 땅콩 소스가 섞이지 않게 살살 젓가락질하며, 답 없이 무뚝뚝한 형 기하에게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인데 법적으로는 채소래. 웃기지?
근데 난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봐. 과일이든 채소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묻는 재하의 질문은, 아마도 간접적인 물음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형제인지 아닌지, 가족인지 아닌지. 그런 식의 분류와 정의가 정말 중요한 건지. 재하의 마지막 말처럼, 정말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일지 말이죠.


성해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두고 온 여름』을 읽으며 저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라는 것의 복잡함과 불완전함에 대해서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성해나 작가는 『빛을 걷으면 빛』, 『혼모노』 등의 소설집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 덕분에 『혼모노』를 쟁여두고 있는데요. 『두고 온 여름』을 읽고 나니 어서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지지만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싶어서요. 상처받는 일에는 쉽게 무뎌지면서도, 정작 누군가의 따뜻함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 작가는 이어서 말합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 버릴까, 멀어져 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두고 온 여름』은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가 되었다가 다시 남남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입니다. 기하의 아버지가 재하 모자와 재혼하면서 만들어진, 어색하고 불완전한 가족관계. 그들은 함께 살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지는 못했죠. 기하에게는 갑작스럽게 생긴 새로운 가족이 부담스러웠고, 재하에게는 마음을 닫고 있는 형이 안타까웠을 거예요.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들려줍니다.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는 두 사람의 기억들.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 닿지 못했던 진심들. 그 과정에서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의 울음

"한 말을 하고 또 하다 어머니는 돌연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녀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습니다."


재하의 어머니가 우는 장면이 유독 남습니다.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 우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재하가 깨달은 것은,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울음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 어떤 울음은 정말로 마음을 비워내는 역할을 하지만 어떤 울음은 그저 슬픔을 희석시킬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해나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냅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 정말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죠.


재혼 가정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요. 새 남편의 아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자신의 아들 재하는 또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야 하는 복잡함. 그 모든 감정들이 희석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마음에 쌓여가는 걸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완전하지 않음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이 반복될 때마다 저는 계속 멈춰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뭔가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것 같은 그 허전함. 기하와 재하에게는 서로가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형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남처럼 지낼 수도 없었던 애매한 관계. 마음을 다 주지도, 완전히 거두지도 못한 채 남겨둔 그 시간들.


인릉의 홍살문을 지나며 기하의 아버지가 한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산자도 망자도 이 문으로 드나든단다. 보이냐 너희도?"


아버지는 뜬금없는 말을 던지고 허공을 바라보죠. 무언가 서 있는 것처럼. 어쩌면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만들려 했던 가족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요.



십오 년 만의 재회

소설은 십오 년 후 기하와 재하가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스트리트 뷰에서 우연히 발견한, 예전 동네의 중식당에서 본 재하 모자의 모습. 기하는 '묵은 감정들이 사라진 자리에 희미한 부채감'만 남은 마음으로 재하를 찾아갑니다. 이제는 '반갑고 은근히 그리운 마음'을 안고 말이죠.


하지만 재회는 복잡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라진 재하의 모습,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소식,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기하를 혼란스럽게 만들죠.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은 그것이 유일합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문득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사진 속에서 세 사람은 손을 맞잡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지만, 그 순간이 영원하지는 못했죠.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성해나 작가가 건네는 위로

성해나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넵니다.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 주는 것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함 자체를 부드럽게 껴안으라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놓는 것들.'이라 표현한 문장처럼, 우리 삶에는 예측할 수 없이 나타났다가도 사라지는 관계들이 있고, 때로는 그것이 우리 마음을 깊이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다가가려 하지만 어색해하는 것도 모두 그런 관계의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가 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들인 것이죠.


소설 말미에 기하와 재하가 인릉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을 읽다 보면, 이들이 과거와는 조금 다른 현재도착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예전보다 더 너그러워진 것 같거든요.


"그때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두고 온 여름이 건네는 인사

『두고 온 여름』은 섣부른 비관이나 막연한 긍정 없이 삶에서 놓친 순간을 조심스레 돌아보고 건져 올린 눈부신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상처 주고 상처받은 과거를 한 장면 한 장면 곰곰이 되짚는 동안 자책과 후회, 미련과 원망이 가슴에 생겨나지만, 그로 인해 피어나는 살핌과 헤아림이 실패한 관계를 뒤늦게나마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설령 관계가 다시 원만해지거나 감정이 복원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삶에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도록 열어두는 것이죠.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치유의 과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외면하거나 억지로 잊으려 하기보다, 그 상처를 직시하고 짚어보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그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아 아파하고, 때로는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진심 때문에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고 온 여름』은 그런 우리에게 따스하면서도 잔잔한 위로를 건넵니다.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 없고, 모든 감정이 해소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인연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두고 온 여름』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두고 온 여름'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관계였든, 어떤 감정이었든, 그 모든 것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건네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의 '두고 온 여름'에 애틋한 안부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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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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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꾼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박지리문학상'이라는 게 있는 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박지리? 박경리도 아니고 박지리? 그래서 찾아봤죠. 궁금하니까. 박지리 작가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합체』로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작가 수업을 따로 받아본 적도 없는 그야말로 '신인' 작가였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주로 인간의 본질과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고 하네요. 특히 『맨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등 여러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사회가 가진 모순이나 인간 내면의 심리를 날카롭게 꿰뚫는 탁월한 능력을 풀어냈다는데, 서른한 살에 요절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출판사에서 박지리 작가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만들게 되었다던군요.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난쟁이 두 형제의 성장통

『합체』는 난쟁이인 아버지의 유전인자로 인해 키가 자라지 않는 일란성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키 컸으면' 하는 바람은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목표였죠. 형 합은 전교 우등생이지만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고, 동생 체는 공부는 꼴찌지만 농구만큼은 자신 있는 친구들인데요. 이처럼 성적부터 성격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두 형제에게는 '키'라는 공통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생 체는 약수터에서 '계도사'라는 기묘한 인물을 만나 키 크는 비기를 전수받게 됩니다. 그리고 형 합과 함께 계룡산의 '형제동굴'로 33일간의 수련을 떠나게 되죠. 이 황당하고 엉뚱한 여정 속에서 두 형제는 자신들의 가장 큰 콤플렉스와 마주하고, 진정한 성장이란 무엇인지 깨달아 갑니다.


이 책은 단순히 키 크는 방법을 찾아 떠나는 모험담만은 아닙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루저라고 손가락질받는 이들의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죠. 또한,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는 용기,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과 이해를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나만의 '진짜 공'을 찾아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지점 중 하나는 '나만의 진짜 공'이라는 비유였습니다.

“합, 체, 니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노는 이런 공 말고, 너희들의 공을 찾아야 해. 너희만의 진짜 공.”


작은 행사들을 돌며 연예인이 아닌 예능인으로 살아가는 쇼쟁이 난쟁이 아버지의 이 말은 두 형제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아버지는 매일 수많은 공을 하늘로 쏘아 올리며 관객을 웃기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들은 아버지가 선택한 것이 아닌, 생계를 위해 주어진 '가짜 공'들이었죠. 아버지는 아들들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진짜 공'을 찾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공들을 만나게 됩니다. 남들이 다 가졌다고 하는 공, 성공이라고 불리는 공, 번듯해 보이는 공... 때로는 그 공을 따라 달리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소설 속 합과 체가 '키'라는 공에 매달리듯이 말이죠.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굴리고 있는 그 공이 정말 당신만의 '진짜 공'이 맞느냐고요.



평범함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혁명

소설 속에서 체는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 때문에 괴로워하며 계도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사람이 절 난쟁이,라고 부르면 저는 난쟁이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도사님, 전 만족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기만 했어도, 이 두 다리가 눈에 띄지만 않아도 좋겠어요."


이 문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함을 꿈꾸기보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 우리 사회는 평범함을 끊임없이 강요하면서도, 동시에 그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낙인찍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체의 말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는 것이죠.


하지만 체는 단순히 좌절하지 않습니다. 혁명을 꿈꾸죠.

“체, 체, 체. 체의 가슴이 터질 듯 울렁댔다. 혁명이란 말이 가슴에 콱 박혀 들었다. 무슨 혁에 무슨 명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세상을 다 뒤집어엎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란 건 알아들었다. 다 뒤집어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그러면 키 작은놈은 커지고, 키 큰 놈은 작아지고, 못생긴 놈은 잘생겨지고, 잘생긴 놈은 못생겨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게 혁명인가”


체에게 혁명은 단지 세상을 뒤엎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의 기준을 뒤집는 일이었습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체 게바라'를 형님으로 모시며 그가 세상을 뒤집는 혁명을 이룬 것처럼, 자신도 평범해지고 싶다는 그 간절한 바람이 곧 그만의 혁명이 되는 것이죠. 이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과 좌절 앞에서 어떻게 맞서 싸우고,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진짜 생존 수단, 그리고 시간의 의미

계도사는 두 형제에게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거창한 게 아냐. 사자한테 안 먹히려고 죽을 듯이 뛰는 가젤 본 적 있지? 사자 같은 이빨이 없으니까 대신에 그렇게 달리기라도 하잖아. 인간도 마찬가지야. 가젤의 다리처럼 각자 생존 수단 한 가지씩은 만들어야 한다고.” “안 만들면 어떻게 되는데?” “잡아먹히는 거지.” “누구한테? 사자?” “바보 같긴, 사자가 아니라 이 세상이다, 이 세상.”


이 대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자신만의 생존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충고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존 수단은 단순히 직업이나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나를 지켜내고, 세상의 파도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강점, 나만의 가치, 나만의 지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할 때, 우리는 가젤이 뛰는 것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소설의 말미, 계룡산에서의 33일이 심심할 것에 대비해 체가 가져간 라디오에서, 우연히 계룡산을 찾아와 수련했던 선배(?)의 사연이 소개됩니다. 매번 1등만 하던 이 수련 선배는 막상 수능 당일 첫 시간에 시험을 치르다 말고 뛰쳐나와 생을 마감하려하죠. 마침 시간을 돌려주겠다는 계도사를 만나고 나서 형제동굴에 가게 되는데요.


"할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는데요, 뭐 그건 저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의 시간이 진짜 되돌아간 건 아니지만 그날, 죽지 않고 동굴로 들어가 다시 살 결심을 한 것으로 제 시간만큼은 돌려졌다고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히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결심이 우리의 시간을 되돌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시간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합과 체가 전하는 잔잔한 깨달음

『합체』는 키라는 콤플렉스를 통해 청소년기의 고민을 풀어내지만, 그 이야기는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키'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외모일 수 있고, 누군가는 학력이거나 재산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루저'라고 여기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한 '성장 비기'를 전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의 기준에 맞춰 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진짜 공'을 찾고, 나만의 방식으로 '혁명'을 일으키며, 나만의 '생존 수단'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합과 체가 고군분투하는 농구 시합인데요. 합과 체가 키 크기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중요한 건 합과 체의 내면이 성장했다는 점일 겁니다. 아버지가 말한 '좋은 공의 조건'을 경기 중에 몸소 깨닫는 것처럼, 외부적인 변화보다 내적인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이겠죠.



삶은 계속되는 농구 경기처럼

"계절은 가을이었고, 바람은 상쾌했고, 하늘에는 누가 쏘았는지 모를 빛나는 공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늘에 이어 내일도 쉬지 않고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삶이라는 농구 경기에서 우리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공을 놓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공이 튀어 오르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달리고

시도하고

자신만의 '진짜 공'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이죠.


『합체』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어느 순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삶에 대한 깊은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세상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전해주는 박지리 작가님의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신만의 빛나는 공을 찾으시길.

그리고 그 공을 힘껏 하늘로 쏘아 올리는 멋진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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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 - 사랑과 원자폭탄, 상상과 유쾌함으로 버무린 천재 과학자, 파인만의 일생
크리스토퍼 사이크스 지음, 노태복 옮김 / 반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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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하는 문장 속에는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 문장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어지곤 하죠. 이번에 나누고 싶은 문장은 바로 크리스토퍼 사이크스가 엮은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책 속에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이 책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의 삶을 BBC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파인만이라는 인물이 과학의 영역을 넘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그의 특별한 인생 여정을 통해 함께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파인만의 발자취를 쫓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사이크스는 영국의 저명한 영상물 제작가입니다. 특히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 대한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주었는데요. (저는 보지 못했지만)『발견의 즐거움』, 『탄누투바를 향하여』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파인만이라는 인물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사이크스는 1981년 칼텍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파인만을 처음 만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수집된 방대한 자료로, 파인만과의 인터뷰는 물론 가족, 친구, 동료 과학자들과의 대화 내용을 편집하여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 덕분에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각도에서, 물리학자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와 깊이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사이크스의 작업은 단순한 전기를 넘어, 파인만이 남긴 삶의 지혜와 열정을 우리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천재, 그 이상

『리처드 파인만』은 흔히 '천재 물리학자', '노벨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로만 기억되는 파인만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웠는지를 보여주는데요. 파인만은 영화 '오펜하이머'로 익히 알려진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연소 리더이자 봉고 연주자였으며, 그림을 사랑했고, 호기심 가득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재미'라는 동력으로 움직였는데, 이 책을 보는 것 자체도 파인만이 세상을 향해 가졌던 멈추지 않는 호기심을 따라가는 재미가 느껴집니다.


파인만의 삶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그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놀고 싶고 알고 싶은 욕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는 이런 파인만의 생각이 담겨 있는데요.


"제가 욕구를 언급하는 건, 일단 그것부터 생겨야 하니까요. 능력보다는 놀고 싶고 알고 싶은 욕구 말이에요. 라마누잔이 바로 그랬어요. 수랑 놀다 보니 재미있는 성질을 자꾸 찾아냈고, 마침내 아무도 몰랐던 걸 발견해 냈죠.”


이 문장에서 저는 진정한 배움과 창조의 시작이 순수한 내적 동기, 즉 즐거움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에게 물리학은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탐구하고 놀 수 있는 흥미로운 놀이터였던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파인만 같은 천재는 IQ가 월등히 높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그의 IQ는 123이었다고 합니다. (높은 것 아닌가 싶긴 하네요) 하지만 파인만은 이 수치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모든 행위를 '재미'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중요한 걸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아. 하지만 물리학과 수학을 좋아하지.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 일이지만 재미있어.”


저 역시 이 문장을 통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다시금 되짚어 봅니다. 삶의 순간들을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일들로 채워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성장의 열쇠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사회적인 중요도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즐거움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파인만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삶의 태도 - 질문하고, 행동하며, 이해하다

파인만은 과학자를 넘어, 삶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진 철학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되물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어떤 걸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목표가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고정된 사고방식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원인을 단 하나의 얼음 잔 실험으로 명쾌하게 밝혀냈던 그의 일화는 이러한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기존의 복잡한 보고서나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문제의 핵심을 꿰뚫었던 것입니다.


그는 또한 감정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어떤 걸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느낌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하긴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감정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인만은 느낌은 시작을 위한 동기일 뿐, 결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그의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파인만은 인간의 불행이 무지와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거나 스스로가 알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사물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임을 파인만은 일깨워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려는 노력이 우리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죠.



과학과 삶의 경계에서 - 호기심과 도덕의 균형

파인만은 과학적 탐구에 있어서도 독특한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의 작동 방식이 꼭 수학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적 추론이 왜 그런 식으로 꼭 작용해야 합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물리학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내면서 유용한 수학을 발전시켰고, 수학의 발전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할 필요성 때문에 촉진되었으며, 둘은 함께 발전한다는 겁니다.”


이는 수학이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물리학적 이해의 필요성에 의해 발전해 온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시사합니다. 그는 이론적 틀에 갇히지 않고, 오직 '세계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내려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에 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리학의 궁극적인 법칙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뇨, 아닙니다. 저는 세계에 관해 더 많이 알아보려고 할 뿐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과학자의 진정한 태도, 즉 미지의 세계를 향한 겸손하고 끊임없는 탐구 정신이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도덕적 관점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사람들이 착해지거나 박애주의자가 되려고 너무 애쓴다고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게 요점이 아냐. 요점은 남한테 해를 안 끼치는 거야.”


이 실용적이고 간결한 도덕관은 거창한 이상보다는 실제적인 행동, 즉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윤리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의 삶은 이러한 철학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다가갔고, 사회적 지위나 권위에 굴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진실을 추구했습니다. 봉고 연주, 그림 그리기, 낯선 곳으로의 여행 등 물리학 외에도 수많은 것에 관심을 가졌던 그의 삶은 그래서 더욱 풍요로웠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이어진 열정과 로맨스

『리처드 파인만』은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 특히 사랑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열다섯 살에 만난 알린과의 사랑은 그녀가 결핵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었고, 심지어 요양소로 가는 도중 결혼식을 올릴 만큼 절절했습니다. 알린이 세상을 떠난 후 그가 그녀에게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하고 봉인되었던 편지는 그의 순수하고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추신 : 이 편지를 부치지 않은 걸 이해해 줘요. 당신의 새 주소를 모르기에.'라는 마지막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저미게 하죠.


이후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아내 기네스와의 일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노벨상을 거부하려 했던 파인만을 '거절하면 더 유명해질 것'이라며 설득했던 그녀의 지혜는 파인만이라는 거장이 얼마나 인간적인 사랑을 받았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5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남긴 '두 번 죽기는 싫어. 그건 정말 지루하단 말이야'라는 말은 죽음 앞에서도 유머와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죽기 전까지도 친구와 함께 '탄누투바'라는 미지의 땅을 꿈꾸었던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호기심과 모험 정신을 놓지 않았습니다.



파인만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리처드 파인만』은 한 천재 물리학자의 전기이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파인만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식과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큰 보상임을 몸소 보여준 것이죠. 사회적 명예나 물질적 풍요를 넘어,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즐거움과 호기심에 충실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종종 삶의 목적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거나, 결과에만 집착하여 과정의 즐거움을 놓치곤 합니다. 하지만 파인만은 '재미'와 '앎의 욕구'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작은 호기심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찾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지키면서, 이해와 지식을 통해 스스로의 불행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리처드 파인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합니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발견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파인만의 삶처럼, 우리 또한 나만의 '재미'를 찾아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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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리마스터판)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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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어딘가 삐걱거리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운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기적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뼘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겠죠.


이번에는 특유의 명랑함과 재치로 우리를 위로하는 작가,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를 통해 제가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려 합니다.


정세랑 작가는 주로 청춘의 성장통, 상실감, 그리고 그것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때로는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일상 속 작은 순간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죠. 그녀의 문장은 늘 기대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재미를 선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넵니다.


『이만큼 가까이』는 이러한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입니다. 신도시 외곽의 작은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여섯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의 진통과 상실감,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게 담아냈습니다. 마치 우리의 학창 시절을 보는 듯 친근한 감성을 자극하며, 읽는 내내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소설이었어요.



낡은 2번 버스, 그리고 우리

소설은 파주와 일산을 오가는 '2번 버스'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 낡은 버스는 주인공 '나'와 주연, 송이, 수미, 민웅, 찬겸 등 여섯 명의 친구들이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자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중요한 공간이 됩니다. 그들은 이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짝사랑으로 아파하며 십 대의 덜컹거리는 길을 함께 헤쳐 나갑니다.


"2번 버스. 그 망할 버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버스를 빼놓고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 (…) 우리 여섯 명은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매일 그 버스에 탔다. 누구 한 사람 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 버스가 퍼져버리면 우리 여섯은 눈길을 헤치고 더 큰길로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운동화가 젖는 건 예사였다. 발가락이 얼어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게 지금 와서도 다행이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다. 2번 버스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경험했던 사소한 불편함이나 어려움들이 사실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죠. 낡은 2번 버스는 그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안을 얻으며,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함께 지나온 시간의 상징이었어요. 비록 세상이 우리를 홀로 남겨두는 것 같아도, 곁에는 늘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듯했습니다.



권위와 나약함 사이의 코끼리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영화 미술 일을 하면서 감독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지켜나갑니다. 그녀의 태도에서 제가 밑줄 그었던 문장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요.


"감독들이 대부분은 함께 지내기 매우 힘든 사람들이어서도 그렇지만, 내가 권위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 타입인 게 더 컸다. 좋은 어른은 좀처럼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나쁜 어른은 내세울 권위가 없다."


"... 감독들에 대한 나의 냉랭한 태도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호감을 살 정도였다. 굽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사람이다, 그런 평판을 얻었다. 사실 그건 여차하면 그만두고 엄마랑 할머니랑 국숫집이나 해야지 하는 건성의 마음 때문이었지 실력이랑은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영화 해서 나오는 돈은 너무 적어서 뒤늦게나마 받을 때마다 코웃음이 나왔다. 떼이지만 않으면 다행인 그런 돈 때문에 안 그래도 코끼리만 한 감독들의 에고를 더 키워주긴 싫었다. 귀여운 코끼리가 아니다. 일 년에 사백여 명을 죽이는 코끼리다. 한 사람쯤 아부를 안 해줘야 덜 쿵쾅거린다."


주인공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반항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고, 부당한 권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겁니다. 특히 '일 년에 사백여 명을 죽이는 코끼리'라는 비유는, 과도한 에고와 불필요한 권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날카롭게 꼬집는 듯했습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아부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이나 돈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첫사랑의 상실, 그리고 남겨진 흉터

소설은 첫사랑인 주완이와의 이야기를 통해 청춘의 아름다운 설렘과 동시에,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섬세하게 다룹니다. 주완이와 함께 보냈던 '히치콕 주간', '우디 앨런 주간' 등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특별한 시간이었고, 그들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하지만 행복했던 첫사랑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려움을 맞게 됩니다.


"주완이에게도 비슷한 곳에 흉터가 있었다. 수미와는 다른 쪽 눈이었지만, 흰 선이 남아 있었다. 주완이도 누구에게 맞았던 걸까. 일방적으로 맞은 걸까. 다른 누구를 때리려다 그랬던 걸까. 수미의 저 상처도 그런 흰 선으로 잘 아물까. 그렇게 가늘고 희미하게 아물기 전에 다시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오래 수미를 쳐다봤는지 수미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저쪽으로 젖히자 수미의 교복 칼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봤더라면 난리를 치며 약을 풀어 담가놓을 만한 상태였기에 나도 고개를 돌렸다.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문제에 마음을 쓰는 건 별로라고, 정말 별로라고 속으로 되뇌며 이어폰을 껴버렸다."


상처와 흉터에 대한 이 문장은, 비단 물리적인 상처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남겨진 아픔까지도 의미하는 듯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원치 않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흰 선처럼 남아 있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수미의 상처를 보며 주완이의 흉터를 떠올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마음을 쓰는 것을 '별로'라고 이야기하며 이어폰을 끼웁니다. 이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 앞에서 애써 외면하려는 청춘의 불안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아픔들이 모여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살아내고야 마는 존재

소설은 첫사랑의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 친구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동시에, 그것을 이겨내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 방식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주연이의 대사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 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 나고 그러다 한 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진 않았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 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이 문장은 삶의 본질적인 비극성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주연이의 말처럼, 그러한 상실을 온전히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은 것만 같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함께 망가지고 고장 나면서도, 이른 포기의 달콤함 속에 담담하게 삶을 이어갑니다. 마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말하는 '살아진다'는 말이 때로는 진저리 나게 느껴져도, 결국 우리는 살아내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문장이었습니다. 이는 곧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무심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들

소설은 우리가 마주하는 불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운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러나 사실 불운은 늘 기분 나쁘게 도사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잊으면 말도 안 되게 끔찍한 짓을 저질러 우리를 환기시킨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 이만큼 널 흔들어 놓을 수 있어. 쉽게 죽일 수도 있어. 그런 식으로 난데없이 공격받으며 살아가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런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삼팔선을 넘은 할아버지의 불운에서 태어난 것처럼. 나의 뿌리는 불운이요, 나를 키운 것도 불운이요, 내가 끝내 다다를 결말 역시 불운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겠지만 말이다."


이 문장은 저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불운을 피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지요. 하지만 작가는 불운이 늘 우리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전쟁과 같은 거대한 불운 속에서 할아버지가 삼팔선을 넘어왔기에 '나'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는 삶의 아이러니와 함께, 우리가 마주하는 불운조차도 결국은 우리 삶의 일부이자 우리를 만들어가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선사합니다. 어쩌면 불운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눈물 냄새를 맡는 사슴처럼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주완이의 눈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어미 사슴은 풀숲에 숨겨놓은 아기 사슴의 눈물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했다. 사슴마다 눈물 냄새가 고유해서, 바로 구별해 낸 다음 달려가 달래줄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 동네는 밤이 되면 사슴과(科) 동물들이 내려오는 사슴의 나라였다. 특히 고라니나 노루가 많았다. 밤이 물러가도 눈물 냄새는 남겨놓아서 우리는 언제나 그 남은 입자들을 들이마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주완이의 눈물 냄새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알아채고, 달려가 위로해 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어쩌면 사슴의 능력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통해 깊어지는 마음의 지혜일 것입니다. 소설 속 친구들은 주완이의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서 통곡하기보다는, 기나긴 시간을 건너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고 견뎌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아팠던 상처는 희미한 흉터로 남게 되고, 굳이 쿨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로 서로를 지켜주는 '우리'가 되어가는 것이죠.



삶의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용기

정세랑 작가의 『이만큼 가까이』는 잊고 지낸 우리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며 성장해 나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 데 있었던 사람,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 아무 데도 없었던 사람, 있는 동시에 없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없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하나,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


위 문장처럼,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이만큼 가까이' 함께 걸어가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은 슬픔과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주인공과 친구들이 이제 '안정된 음역'을 지닌 삼십 대의 목소리로 편안하게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아물고, 그 아픔 속에서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존재로 성장한다는 의미겠지요. 반짝이던 첫사랑과의 순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재의 우리를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이만큼 가까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단지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청춘의 서툰 사랑과 상실,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권위와 불운, 그리고 끝내 살아내고야 마는 존재로서의 우리 삶. 『이만큼 가까이』는 그 모든 굴곡 속에서도 여전히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완벽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지만, 누군가의 눈물 냄새를 알아채고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곁을 내어주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질 겁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멀리서 반짝이는 어떤 이상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서 이만큼 가까이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결국 삶은 덜컹거리는 버스처럼 흔들리며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물 냄새를 알아보고, 흉터를 쓰다듬으며 다시 일어섭니다. 완전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순간들, 사라졌지만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목소리들,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만큼 가까이』는 말합니다.

멀리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곁에서 이만큼 가까이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삶의 기적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끝내 살아내고

다시 사랑하며

또다시 걸어갑니다.


불완전함을 끌어안은 채

그러나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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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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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고 난 뒤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입니다. 이 한 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리고 우리 각자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운명에 대한 깊고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력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맞서 싸우겠다는, 그래서 결국 이겨내겠다는 의지.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으며 다시금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관계의 복잡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우리 내면의 투쟁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현호정, 삶의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꾼

현호정 작가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리 만치 흔들리는 문장들. 이상하게 쓰이기 위해 고르고 벼른 흔적이 역력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문장으로 낯선 정서를 통과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와 리듬감이 너무도 선명히 남아있어서요. 현호정 작가는 박지리문학상을 이 『단명소녀 투쟁기』로 수상하며 등단합니다. 작가의 작품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상상력과 서사로 인간 본질과 사회의 이면을 탐색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아요. 특히 『단명소녀 투쟁기』에서 보여주는 설화를 재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는 점은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서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투쟁'으로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만듭니다.



스무 살 전 단명할 운명을 지닌 소녀의 긴 여정

『단명소녀 투쟁기』는 열아홉 살 소녀 구수정이 입시 전문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스무 살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신인지 스님인지 무당인지 알 수 없는 북두라는 자의 예언에 수정은 절망하는 대신 '싫다면요?'라고 되묻고 자신의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납니다. 죽음이 덮치기 전에, 그보다 먼저 달아나 살 작정으로 말이죠.


수정의 여행은 지극히 현실적인 G시의 지하철역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와의 만남, 그리고 갑작스레 나타난 날개 달린 사자만큼 커다란 개 '내일'의 등에 올라타면서 수정은 현실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됩니다. 검은 산들이 둘러싼 분지에서 수정은 자신처럼 열아홉 살이지만 반대로 '죽기 위한 여정' 중에 있는 이안을 만나게 됩니다.


삶을 찾아 나선 수정과 죽음을 찾아 나선 이안. 극과 극의 목적을 가진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며 저승의 바위 사막, 마을, 강을 건너 작은 섬에 이르는 등 낯선 이계의 풍경 속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미션을 수행해 나갑니다. 명부에 그려진 악사, 청소부, 눈-인간 등 기괴한 존재들을 죽여야만 수정은 삶에, 이안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잔혹한 설정은 이 소설의 독특한 서사를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



생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단단함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새겨진 문장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수정이 느끼는 감정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북두와 수정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 눈을 수정도 똑바로 봤다. 새카맣고 작은 눈동자가 깊고 멀었다. 우물에 빠진 채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이렇게 막막하고 이렇게 두렵고 이렇게… 행복할까?


죽음을 예고하는 존재와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두려움. 하지만 그 속에서 묘하게 피어나는 '행복할까?'라는 질문은 삶과 죽음에 대한 수정의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역설적인 순간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종종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말이죠.

북두가 설명하는 죽음의 모습 또한 제게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죽음은 소나기처럼 움직인다고 북두는 설명했다. 지평선에서부터 먹구름과 비가 솨아아 달려오는 모양으로 죽음도 다가온다고. 그러므로 만약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린다면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듯이, 죽음과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면 죽음을 조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늦출 수 있다는 말이 되었다.


죽음을 소나기에 비유하고, 그보다 더 빨리 달리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비유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움직임'과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단명이 예정된 수정이 삶을 투쟁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죠. 우리 역시 삶이라는 여정에서 닥쳐오는 수많은 어려움 앞에서 멈춰 서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조용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했습니다.


수정과 이안이 저승 신에게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힘을 합치라는 북두의 조언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함께' 헤쳐나가야 할 삶의 과제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 함께 저승으로 가거라. 힘을 합쳐 문 앞에서 저승의 신을 붙잡아,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수정과 이안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 연대하여 해결해 나가야 함을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함께,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책 속에서 청소부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나는 '질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청소부는 '질서에 맞추어 모든 존재를 제자리에 놓아두는 일'을 자신의 역할이라고 주장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나 자격이 없는 자는 죽어도 무방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라고 늙은 몸을 쉬이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요. 그러나 제가 죽으면 마을은 지탱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사는 다르지요. 음악이 없어도….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소위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구성원들이 정해놓은 사회의 기준과 질서 속에서,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대학 입시 결과에 따라 정상성 세계의 진입자 아니면 낙오자'로 분류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시선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수정은 이러한 기성세대의 궤변 속에서 미성년의 죽음이야말로 어긋난 질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의 삶을 쟁취하려는 수정의 투쟁은 사회가 정해놓은 부당한 질서에 맞서 싸우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정과 이안이 서로를 죽여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마지막 미션은,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수정이 자신의 여정의 의미를 인식하며 내뱉는 말은 제 마음에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 망친 게 아니야.
— 그럼?
— 구한 거야. 이룬 거야.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야.
—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경고야?
— ….
—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이 대화는 삶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로 인해 남겨지는 흔적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망친 것'이 아니라 '구한 것'이고, '이룬 것'이며, '최선을 다했기에 남은 흔적'이라는 수정의 깨달음은 우리의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요한 자세를 일깨워줍니다.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여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과 평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재정의하겠다는 주체적인 선언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삶의 역경 속에서 찾아야 할 '단단함'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단명(短命)을 타고난 단단(斷短)한 존재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는 단순히 스무 살 전에 죽을 운명에 맞서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단명'의 운명을 짊어진 채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마치 단명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정의 투쟁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줍니다.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처럼, 우리 또한 우리를 억압하고 죽음으로 이끄는 사회 시스템과 내면의 두려움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섣부른 낙관론을 펼치기보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단단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관계의 불완전함 속에서 상처받고 사회의 부당한 질서 앞에서 좌절하며 때로는 죽음보다 나쁜 것들에 둘러싸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정이 자신의 운명에 '싫다면요?'라고 되물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부당함에 '싫다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단명'이라는 운명을 '끊어낼' 수 있는 '단단함'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주요한 서사적 활동에 소설이라는 형식을 부여하고, '덧없이 공중에 흩어지는 이야기의 기억들이 조금 더 오래 생존하도록' 합니다. 수정과 이안의 여행이 소설 속 현실 세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남을지라도, 그들의 투쟁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자신의 '단명'에 맞서 '단단'해질 것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투쟁을 통해

단명소녀가 아닌 연명소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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