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브로크 - 부서진 마음들이 서로 만날 때
진저 개프니 지음, 허형은 옮김 / 복복서가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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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가득한 공간을 마주하다

"처음엔 내게 도움을 청하는 여느 목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말을 훈련하고 마주를 교육하는 건 지난 이십 년간 내 업이었다. 문제 있는 말에 얽힌 일화는 지겹도록 들었다. 잘 들어보면 이야기에 쏙 빼놓은 부분들이 있고, 말하는 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부분도 십중팔구 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 - 한쪽 귀를 쫑긋거린다든가 숨이 가빠진다든가 하는 - 도 말이 소통하는 신호임을 안다.
마주들이 이런 미묘한 언어를 일찍이 알아챘더라면 안 좋은 경험들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요청은 달랐다. 말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말, 약탈하는 말, 피에 굶주린 말이라니. 진짜일 리 없다고 생각했고, 진짜라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저 개프니의 『하프 브로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말 조련사인 그녀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뉴멕시코의 대안교도소 목장에서 문제행동을 일삼는 말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죠. 쓰레기를 뒤지고, 사람을 공격하고, 피에 굶주린 말들이라니. 20년간 말과 함께 살아온 그녀에게도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목장에 도착한 개프니가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풍경이었습니다. 말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들을 돌보는 재소자들 역시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상처받은 인간들과 한때 야생이었던 말들 간의 이 밀폐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목장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상처들이 공명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말(言)을 잃고 말(馬)을 얻다

개프니는 어린 시절부터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습니다. 여섯 살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혼자 방에 있을 때조차 침묵을 택했죠.


"나는 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무언의 상태로 살기를 택했다. 심지어 내 방에 혼자 있을 때조차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잠잠한 공간에서 살았고, 거기서는 침묵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 나에게 언어는 보통 사람에게 그것이 가지는 의미-자신을 표현하는 힘-가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힘도 아니었다. 나에게 언어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과 같았다"


그녀에게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어요. 동물의 언어, 특히 말의 언어를요. 귀를 쫑긋거리는 작은 움직임, 가빠지는 숨소리, 눈빛의 변화까지. 인간의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프니가 목장에서 마법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말들과 재소자들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들을 읽어낼 수 있었을 거예요.


"어떤 재소자들은 작위적인 자신감으로 위장한 채 움직인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팀원들에게 버럭버럭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반대로 몸에 생기라고는 한 방울도 안 남은 것 같은 이들도 있다. 암초에 딱 붙어사는 조그만 해양생물처럼, 물컹물컹한 무정형의 몸이다. 움직임 또는 움직임의 부재는 그 자체로 감정이 담긴 이야기다. 모든 걸 숨김없이 드러낸다. 상처받은 인간들과 한때 야생이었던 말들 간의 이 밀폐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가난에, 가족사에, 그리고 교정 시스템에 얻어맞은 거친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매일같이 그 고통을 말들에게 전하며 목장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움직임, 또는 움직임의 부재가 그 자체로 감정이 담긴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말을 조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과 돌보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만든 기적

목장에서 개프니가 만난 '토니'라는 재소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마흔다섯 살의 그는 '윌리'라는 말을 돌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있잖아요, 진저,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마흔다섯 살인데 이제야 나 말고 다른 일에 마음 쓰는 법을 배우네요. 남을 보살피는 법 말이에요. 윌리 덕분에 배우는 셈이죠. 나를 믿어줬거든요.
있죠, 이 녀석이 나를 믿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무도 나를 안 믿어주는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으니까 그랬겠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는 토니. 하지만 윌리는 그를 믿어주었고, 그 믿음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존재에게 온전히 헌신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개프니가 목장에서 목격한 기적의 본질이었을 것입니다.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돌보며 치유되는 과정. 말은 인간을 닮고,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서로 다른 종이지만, 상처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된 그들은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을 이해해 갔습니다.



진정한 소통, 마음에 귀 기울이기

개프니의 스승이 늘 하시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린 그릇이 되려고 해 봐. 더 많이 열려 있을수록 말들도 제 마음을 더 전하려고 할 거야."


이걸 들으며 개프니는 파도타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파도와 하나가 되어 그 흐름을 타듯, 말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것.


열린 그릇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선입견과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마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프니는 말들과 재소자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죠.



변할 수 있다는 믿음

개프니는 목장에서 '루나'라는 말을 만납니다. 고립되고, 아무도 믿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루나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다고 고백합니다.


"지난 일 년간 나는 루나에게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루나의 고립, 아무도 믿지 못하는 태도, 이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모습. 그런 모습에서 외롭고 은둔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루나는 변했습니다. 한때 사나운 짐승에 버금갔던 루나가 이제는 푹신한 동물인형과 더 닮은 모습으로 원형 마장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개프니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도 루나처럼 더 온화한 존재로 변했을까? 마침내 남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어딘가에 속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는 깊은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변할 수 있다는 믿음. 상처받은 존재도, 외로운 존재도, 시간과 관계를 통해 더 온화하고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말이에요.



작은 구원이 모여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개프니는 일라이라는, 교도소에서 목장으로 이소 하려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의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한 번에 하나씩요."


이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거창한 구원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생명을 구하는 일. 한 마리의 말을, 한 사람의 재소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 그렇게 작은 구원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온 걸 겁니다.


개프니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 것이겠죠. 말들과 재소자들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구했으니까요. 이로서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 갇혀 살던 그녀는 다른 존재들과 진정한 연결을 맺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프 브로크입니다

'하프 브로크'는 말 조련사들이 쓰는 은어입니다. 반만 길들여진 말, 아직 미완성인 존재를 뜻하죠.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히 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하프 브로크죠.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관계를 통해 조금씩 변화해 가는 존재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개프니가 목장에서 만난 말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다른 이를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통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며 믿어주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더 온화한 존재로 변해갈 수 있어요.



결국 『하프 브로크』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완전함을 추구하기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불완전함을 통해 연결되는 법을 배워가는 일일 겁니다.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지만

함께라면 조금씩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개프니가 목장을 떠나며 마주한 현실처럼

삶에서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내 곁의 누군가는

울타리를 벗어나 떠날 것이고

나 또한 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겠죠.


하지만 함께 나눈 시간

서로를 돌보며 주고받은 마음과 신뢰는

오롯이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조금 더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겁니다.



어쩌면 삶이란

완전해지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보듬고

서툴게나마 손길을 건네며

조금씩 함께 변해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프 브로크' 겠지만

서로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온화해진 존재로

조금씩, 서서히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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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열정이 다하고 쏜살 문고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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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든여덟에 삶에서 자유를 얻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 자유란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를 읽으며 오래도록 이 질문이 머물렀습니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이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들 앞에서 선언한 독립은 단순한 노년의 변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여든여덟 해 동안 미뤄온, 아니 포기했다고 믿었던 꿈에 대한 마지막 용기였습니다.




"살아온 모든 나날들을 총합하면 그저 삶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평생의 삶에 대고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묻기는 부조리했다. 꼭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두고 던지는 질문 같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위안을 받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 나는 행복한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후회는 없는가 - 같은 질문들이 삶을 되돌아볼 때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 그저 삶을 살아냈기에 그것만으로 합당하지 않겠냐는 목소리로 들렸거든요.


비타 색빌웨스트는 1892년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당대의 엄격한 사회적 관념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용기 있는 여성이었어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는 그런 그녀가 1931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자신의 두 아들에게 헌정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끝내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는 것이 인생인지도 몰라’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레이디 슬레인의 선택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총리의 아내로서,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서,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던 그녀가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서기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반항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억눌러온 자유로운 인간이길 바란 꿈, 온전한 자기 자신이고 싶었던 열망에 대한 마지막 응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란 정확히 누구였을까? 그녀는 과거의 스스로를 돌아보는 늙은 여자로서 자문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아주 편안하고 아련한 심심풀이였지만 결코 멜랑콜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최후의 사치, 궁극적인 사치였다."


이 문장에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삶이란 늘 해야 할 일과 주어진 역할에 밀려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유예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그제야 사치처럼,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노년은 보통 쇠퇴의 시간, 잃어가는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그녀에게 노년은 오히려 자신을 온전히 탐구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습니다.



"노인의 삶이란, 경기를 마친 뒤 저녁 무렵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앞으로 경마 따윈 절대 안 하겠다고 다짐하는 기수의 삶이지요. 하지만 잊으신 것이 있네요, 벅트라우트 씨. 젊을 때는 위험하게 사는 걸 즐기면 즐겼지 – 사실 갈망하지요. – 저어하지는 않아요."


이 문장에서 레이디 슬레인의 마음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그녀는 안락한 노년을 추구하는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모험을 갈망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노년이 단지 조용하고 안정된 시기가 아니라, 삶의 열정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감정을 느끼기에는, 경쟁하고 앞지르고 승리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그들은 뒤로 물러나 서 마지막 미뉴에트를 추는 쪽이 좋았다."


젊음의 치열함이 사라진 자리에 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마치 화려한 색채가 빠진 수채화 같은,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감정의 영역 말이죠.


하지만 레이디 슬레인이 진정 놀라운 순간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다시 젊음을 경험하는 장면입니다.



"지금 느끼는 기쁨은 특히나 사적이었다. 예전처럼 또렷하지는 않았다. 또렷하기보다는 뿌옇고, 강렬하지만 막연했다. 그래서 그 정체를 밝혀낼 능력도,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그저 흠뻑 취할 뿐이었다."

이런 감정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진정한 자유를 맛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 삶을 다 살아낸 이가 감정을 새롭게 느끼는 순간으로, 뜨겁기보단 뿌옇고, 명확하기보단 막연하지만 그럼에도 강렬하고 또렷한 울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애씀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영역 같았습니다.



"죽음에 이토록 가까이 다가선 지금, 그녀는 또다시 자기 앞에 위험한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번에는 더 용감하게 직면하겠다고,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더 굳세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다짐했다."

죽음 앞에서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 레이디 슬레인의 모습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젊음은 나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에서 온다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레이디 슬레인의 절반쯤 되는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이죠. 레이디 슬레인이 여든여덟의 나이에 자유를 선택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색빌웨스트의 문장들은 노년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넘어섭니다. 늙는다는 것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모든 열정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새로운 열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종종 나이를 핑계로 꿈을 포기하곤 합니다. 이제 늦었다고,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제한하죠. 하지만 레이디 슬레인은 그런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삶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고, 자유는 나이와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라는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열정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레이디 슬레인은 새로운 열정을 발견합니다.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열정, 자유롭게 꿈꾸는 열정을 말이죠.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은 나이 듦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덮으며

진정한 자유란

외적인 조건의 변화에 굴하지 않고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언제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야말로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겠죠.


여든여덟에 자유를 찾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이와 상관없이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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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기원 - 스티븐 호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론
토마스 헤르토흐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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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번쯤 해봤을 질문일 겁니다. 스티븐 호킹이 평생을 바쳐 탐구한 것도 바로 이런 질문이었죠. 그리고 그의 마지막 동반자였던 토마스 헤르토흐가 『시간의 기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호킹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고민했던 우주의 비밀입니다.


토마스 헤르토흐는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1998년부터 20년간 호킹의 가장 가까운 연구 파트너였습니다.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우주의 기원을 함께 탐구하는 동반자였죠. 헤르토흐는 호킹이 배출한 수많은 뛰어난 물리학자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호킹의 마지막 이론을 세상에 전하는 유일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과학서이자 회고록입니다. 호킹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동시에 루게릭병으로 몸이 부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주의 비밀을 탐구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하던 물리학자의 모습 뒤에 숨겨진, 유머를 잃지 않고 끝까지 호기심을 품었던 진정한 탐구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뉴턴에서 시작된 물리학의 여정

헤르토흐는 우주론의 역사를 뉴턴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뉴턴의 위대함은 단순함에 있었어요. '그는 단 몇 개의 수학 방정식을 사용하여 행성의 움직임을 말끔하게 설명했고, 태양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기존의 모형들은 그의 원리에 따라 마술의 영역에서 현대물리학으로 환골탈태했다.' 뉴턴 이후 모든 물리학자들이 추구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런 명쾌함이었죠. 복잡한 현상을 간단한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 그것이 과학의 이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결정론적 세계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진화를 간단히 표현하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의 사슬'이다. 낮은 수준의 복잡성은 높은 수준의 진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가능성이 희박한 경로가 선택되고 결정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는 삶은 없겠죠. 예상치 못한 만남, 우연한 기회, 뜻밖의 어려움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면서 우리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 서 있게 됩니다. 진화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우연과 필연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생명친화적 우주의 비밀

호킹과 헤르토흐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질문은 '우주는 왜 생명체에게 우호적인 곳이 되었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는 놀라운 사실이 전제되어 있어요. '우주는 여러 면에서 생명체의 생존에 알맞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적인 상수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별이 형성되지 못했거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었을 거라는 의미 이기도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인간원리입니다. 물리학자 브랜든 카터의 말을 인용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면, 자신이 관측한 우주를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다. 우리가 생명친화적인 우주를 관측하게 된 진짜 이유는 자신이 '그런 우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관점은 기존의 과학적 사고를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우주가 먼저 있고 그 안에서 우연히 생명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우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관측할 수 있다는 거죠. 순서가 바뀐 겁니다.



호킹의 마지막 이론: 하향식 우주론

초기에 호킹은 빅뱅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수학이 모두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상향식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그는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다중우주 이론의 한계를 깨닫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한 거예요.


'무경계 가설에 의하면 창조의 순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조적 특성이 점차 변하거나 사라지다가 결국에는 시간까지 사라진다.' 시간 자체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호킹의 통찰이 빛을 발합니다. '호킹의 최종 이론에서 '시간의 기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과거의 한계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순간을 떠올려봤습니다. 그 이전에도 분명 우리는 존재했지만 기억이라는 인식의 한계 때문에 그 너머는 알 수 없죠. 시간의 기원도 그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절대적인 시작이 아니라 우리가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의 경계선 이란 의미입니다.


호킹의 하향식 접근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측자의 역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론상에서 '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우주'가 아니라, '관측될 확률이 가장 높은 우주'다.' 우주의 역사는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마치 양자역학에서 관측이 현실을 결정하는 것처럼요.



물리법칙도 진화한다

호킹과 헤르토흐가 도달한 결론 중 가장 혁신적인 것은 물리법칙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함께 진화해 왔다는 이론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연상시키는 이유죠.


'액체가 고체보다 대칭성이 높다는 뜻인가? 그렇다. 물의 분자 배열 상태는 어떤 방향에서 봐도 똑같다. 다시 말해서, 물은 회전 대칭을 갖고 있다. 반면에 얼음 결정은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는 곧 물에 존재했던 회전 대칭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유를 통해 헤르토흐는 우주 초기의 높은 대칭성이 어떻게 깨지면서 현재의 복잡한 물리법칙들이 생겨났는지를 설명합니다. 우주가 식어가면서 대칭성이 단계적으로 깨지고, 그 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들이 형성되었다는 거죠.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호킹의 이론이 흥미로운 점은 과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 원리를 인용하며, '반증 가능한 이론을 포기하고 반증 불가능한 이론을 수용하는 순간, 과학의 기능은 중단되고 과학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도 불가능해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하는데요. 시간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인과율이 의미를 잃는 순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철학적 언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겸손함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자신들이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그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호킹과 헤르토흐가 보여준 과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통찰 중의 하나는, 우리가 단순히 우주의 관찰자가 아니라 창조자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하향식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가 우리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우주를 창조하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질문, 우리가 하는 관측이 우주의 역사를 결정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단순히 물리학적 명제가 아니라 철학적, 심지어 실존적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뜻이거든요.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질문을 하느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실패를 '끝'으로 볼 것인가, '새로운 시작'으로 볼 것인가. 만남을 '우연'으로 여길 것인가, '필연'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우리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거죠.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호킹의 인간적인 모습들이었습니다. 헤르토흐는 호킹을 단순히 위대한 물리학자로만 그리지 않아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세상을 경험하며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남겨두었습니다.


'호킹에게는 마법 같은 구석이 있었다. 늘 지혜와 재미가 섞인 화법을 구사했고 진정으로 유머를 사랑했다.' 몸은 휠체어에 갇혀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이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사람. 그런 호킹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시간 속에서 길어 올린 의미

결국 『시간의 기원』은 우주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의미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사라지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호킹과 헤르토흐가 발견한 것은, 우주가 단순히 물리법칙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우주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우리가 하는 선택이 우주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의미죠. 이것은 엄청난 책임감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호킹은 '뿌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가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좌우된다'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주론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140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죠. 그리고 그 이해 자체가 우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니 『시간의 기원』은 단지 우주의 시작에 관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리학이라는 언어로 쓰였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사유가 녹아 있고, 삶의 방향을 묻는 목소리가 숨어 있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 관측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려는 의지, 설명되지 않는 것을 기꺼이 껴안는 용기 - 호킹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자세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삶의 감각과 닮아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시간은, 그런 태도 위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삶,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만의 세계를 끊임없이 구성해 나가는 삶. 그것이 우리가 진짜로 살아낸 시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걸까.


그 질문 앞에 머무는 짧은 순간에
우리는 조금 더 나다워지고, 조금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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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3가지 통찰 역사의 쓸모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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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해답

언제부터인가 역사는 중요하지 않은 학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당장 써먹을 곳도 없는 옛날이야기를 왜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역사는 늘 변명하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했죠. 하지만 최태성 선생의 『역사의 쓸모』를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역사를 외면하며 놓쳐온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역사 강사이신 최태성 선생님은 30여 년간 역사를 가르치며 700만 명의 '랜선 제자'들과 만나온 대한민국 대표 역사 커뮤니케이터입니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역사를 공부해서 어디에 쓰느냐'는 회의적 시선에 대해 '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라고 당당히 답하는 거죠. 저자는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운전할 때면 잘 가고 있는지, 주변은 안전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 백미러를 살핍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각자의 인생을 운전해 나가는 우리에게는 삶의 주변을 살펴주는 역사라는 백미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미러가 아니라 룸미러이긴 하지만요 ㅎㅎ)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는, 가끔 뒤를 돌아봐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상 속에 스며든 역사의 흔적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라는 골목 이름에서도 역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양반들이 타는 말을 피해서 다니는 길이라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그 좁은 골목길 하나에도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안성맞춤이 안성의 맞춤유기처럼 품질 좋은 물건을 뜻한다는 것도, 방납업자들이 사또에게 주던 사례비를 '인정'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일상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 지나다니는 길에도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일상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입니다.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거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지혜가 바로 역사의 진정한 쓸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염장을 지른다는 표현이 장보고를 배신한 염장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쓰는 말들 속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선택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꿈과 현재적 의미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같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상류층 집안의 엘리트였고, 신분제의 혜택을 가장 잘 누린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으로 그런 특권을 없애고자 했으니까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했던 겁니다. 양반과 상인의 차별 없이 다 같은 사람으로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이었죠. 이 대목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역사 속의 인물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경주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농사를 지으러 나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황룡사 9층 목탑이길 바란 것이 선덕여왕의 깊은 뜻이었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신라인 모두와 공유하려는 것이었죠. 선덕여왕의 이 통찰이 특별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높은 탑을 세운다고 해서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건 아닐 겁니다. 그 탑이 상징하는 바, 즉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될 테니까요.


내가 가진 작은 특권이라도 공동체를 위해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지,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갈등과 열정, 그리고 성찰의 지혜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뜨거움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뜨거움이 혹시 빗나간 열정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 이 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갈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열정은 좋지만 그 열정이 파괴적이 아닌 건설적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지혜일 겁니다.


3·1 운동이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백성'을 '시민'으로 바꾼 계기였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역사는 이렇듯 과거의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갈등과 논쟁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텐데, 그때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신중해져야 할 겁니다.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열정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냉정함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정도전이 보여준 문제의식과 개혁정신

정도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정말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요. 왕과 귀족만이 사람 취급을 받던 시대에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정도전. 유배당하고 유랑하면서 만난 비뚤어진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런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사회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비판의 불을 항상 환하게 밝혀놓았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합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자세,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정도전이 작은 것 하나까지 치밀하게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도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겠죠.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정도전의 삶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개혁정신은 지금도 우리가 배워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완벽한 해설서로서의 역사

최태성 선생은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설서는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과 그 결과가 담긴 역사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큰 위로와 지혜를 주는데,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겪었기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살피다 보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조금 더 선명해지곤 합니다.


결국 『역사의 쓸모』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역사라는 거대한 도서관으로 우리를 안내하죠. 정약용, 정도전, 박상진 같은 인물들을 멘토로 소환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며 살다 갔다는 것일 텐데요.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자신만의 인생을 만든 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했고요.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 겁니다. 수많은 사람의 선택과 그 결과를 돌아보며, 어떤 선택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역사는 쓸모가 있습니다. 아니, 쓸모를 넘어서 꼭 필요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보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최태성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고자 했던

역사의 쓸모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하루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어쩌면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

어제보다 덜 흔들리는 시선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일의 반복일 겁니다.


그 안에서,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역사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통해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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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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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길어 올리고, 그 문장에 대한 저만의 해석과 책의 내용,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문장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열네 번째 이야기로, 주드 스튜어트의 『코끝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후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좋은 문장이 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코끝이 하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향으로 세상을 감각하게 하고, 잊었던 기억을 소환하며, 때로는 위험을 경고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 문장이 그러하듯, 냄새 또한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감각의 미학을 탐험하는 저널리스트, 주드 스튜어트

『코끝의 언어』의 저자인 주드 스튜어트는 『슬레이트』, 『애틀랜틱』 등 유수의 매체에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입니다. 오랫동안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며 직업적인 시야를 넓혀왔던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후각’이라는 감각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후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고요.


작가는 이 책을 빌어 비 오는 날의 흙냄새, 갓난아기 냄새, 달콤한 바닐라, 시원한 바다 내음 등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온갖 냄새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과 숨겨진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맡을 수 없는 냄새부터 예전에는 없다가 새로이 생겨난 향에 대한 낯설고 참신한 지식까지, 냄새라는 작은 주제가 과학, 역사, 지리, 예술을 넘나들며 거대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 자신의 감각적인 경험과 최신 논문, 전문가 자문까지 거친 꼼꼼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는 냄새의 놀라운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시각이나 청각을 가장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후각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이고 즉각적이며 순수한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눈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을 코는 냄새로 알아채고, 이 절대적인 판단의 수단이 위험, 음식, 쾌락 등 삶을 형성하는 모든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멀쩡해 보이는 음식이라도 악취가 나면 먹지 않고,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어도 낯설고 불쾌한 냄새가 나면 발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후각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하고, 삶의 감각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코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냄새, 그 숨겨진 언어의 비밀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냄새가 가진 이중적인 면모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무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완벽하게 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랬습니다.


‘무향’ 제품은 꾸며진 무대의 허구와 같다. 자극적이거나 나쁜 냄새를 제거한 뒤 희미하지만 기분 좋은 냄새를 입혀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향이라고 믿었던 제품들 속에서조차 은은하게 조작된 향을 맡고 있었던 것이죠. 이는 우리가 얼마나 냄새에 대해 무지하고, 또 얼마나 많은 냄새들이 우리의 인지 아래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완벽한 무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는 미세하게나마 그 고유의 향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또한 자연 속 냄새들이 가진 놀라운 비밀에도 많은 관심이 갔는데요. 비로 인해 흙에서 피어나는 독특하고 기분 좋은 냄새, ‘페트리코’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식물이 토양에 분비하는 지방산(주로 팔미트산과 스테아르산)이 비가 오는 동안 더 농축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뭄이 끝난 뒤 종종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사벨과 토머스는 혹시 마른땅의 비 냄새, 즉 페트리코가 천연의 비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페트리코는 주변 다른 식물의 성장을 지방산으로 지연시켜 물이 귀해질 때 경쟁에서 이기려는 식물의 방어책이었다. 다시 말해 식물이 분비한 화학물질의 축적물이 우리가 맡는 바로 그 비 냄새의 정체다.


우리가 비 오기 전이나 이후의 상쾌함으로만 알았던 냄새(페트리코)가 사실은 식물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자연의 향기 속에도 이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단순히 감각적인 것을 넘어 생존과 경쟁, 그리고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식물들이 냄새를 통해 서로 소통한다는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요.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풀잎은 냄새를 수단으로 서로 소통한다. 꽃이 피는 식물은 자신의 향기로 꽃가루받이를 해줄 매개자를 유혹하고, 과실수는 냄새로 자신의 씨를 퍼뜨려줄 동물을 부른다. 식물은 자기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한 장소에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 천적이 다가와도 도망칠 수가 없다. 그래서 냄새로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내준다.


갓 깎은 잔디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가 사실은 식물들이 공격을 받았을 때 다른 식물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라는 사실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냄새를 통해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낸다는 점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지혜를 엿보는 듯했습니다. 냄새는 자연의 숨겨진 언어이며, 우리는 그 언어를 통해 자연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냄새, 삶의 이면을 드러내다

냄새는 단순히 기분 좋은 향기만을 지칭하진 않죠. 때로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이 가진 냄새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청산가리는 동물의 세포가 음식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생체역학적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세포가 산소를 쓰지 못하게 막는다. 청산가리에 의한 죽음은 기본적으로 세포 수준에서의 질식사다.... 사과와 복숭아의 경우에는 딱딱한 씨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 우리가 먹지 않고 버리는 부분이다. 다른 식물의 경우 찧거나 빻아서 물에 헹궈버리면 청산가리가 씻겨 나간다.


살인을 다룬 여러 소설을 살펴보면 희생자가 비터 아몬드 냄새를 느끼면서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독극물들은 나중에야, 그러니까 살육의 냄새를 한참 풍긴 후에야 자취를 드러낸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쓰였던 수포작용제 루이사이트에서는 제라늄 향이 매우 강하게 난다. 또 다른 수포작용제 디포스겐에서는 아니스 냄새가 난다. 또 어떤 신경작용제는 과숙된 또는 혹은 썩은 과일 냄새가 난다.


달콤한 아몬드 향이나 꽃 향기가 치명적인 독극물의 냄새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면서도, 냄새가 가진 강력한 이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 속에 숨겨진 위험, 그리고 그 위험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인간의 무력함이 대비되며, 냄새가 우리 삶의 얼마나 깊은 곳까지 관여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반대로 식욕을 돋우는 냄새의 비밀도 흥미로웠습니다. 고기를 굽거나 빵을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의 정체인 '마이야르 반응'에 대한 설명이 그랬습니다.


식품이 가열되면, 식품에 함유되어 있던 당분이 분해되어 아미노산과 반응한다. 이때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 화합물이 많이 방출되며 특별한 풍미가 나타난다. 마이야르 반응은 바로 이 일련의 화학반응을 칭한다. 방출되는 화합물은 대부분이 탄화수소와 알데하이드다. 마이야르 반응은 끓이거나 볶거나 굽는 동안 갈색으로 변하는 모든 음식이 왜 그렇게 유혹적인 냄새를 풍기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맡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복잡한 화학반응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감각이며,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뇌가 모든 냄새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뇌는 동시에 네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냄새를 처리하지 못하고 곧 그 냄새에 취해버린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향수 매장에서 풍기는 복잡 다단함이나 향신료 가득한 시장에서 금세 코가 마비되는 듯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후각은 놀랍도록 예민하지만, 동시에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는 우리가 냄새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해 주는 듯했습니다.



코끝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감각하다

『코끝의 언어』를 읽는 내내 우리가 얼마나 시각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며 코끝의 언어를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냄새가 가진 놀라운 힘을 일깨워줍니다. 인간의 기억은 냄새를 띠고 있고, 냄새가 없는 체험은 대체로 쉽게 잊힌다는 말처럼, 후각은 우리의 기억과 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프루스트의 소설 속 홍차와 마들렌 향미가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듯, 냄새는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특정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강력한 매개체가 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냄새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냄새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갓난아기의 체취, 오래된 책 냄새 등 일상 속의 냄새는 물론 유령의 냄새나 성자의 향기 등 신비로운 향까지, 그 냄새가 나는 이유를 화학적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향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코끝의 언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코끝이 보내는 언어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하고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판단하려 하지만, 사실 코끝은 그 어떤 감각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죠.


이 책을 통해 삶에서의 잔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냄새 하나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냄새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냄새는 우리에게 과거를 상기시키고, 현재의 위험을 알리며, 미래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장들을 만나고, 그 문장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냄새 또한 우리 삶의 중요한 문장들 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는 코끝의 언어들이겠지요.


이 책을 통해 여러분도 코끝의 언어를 익히고, 그 언어를 통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감각하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어쩌면 바로 우리의 코끝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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