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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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에는 언제나 일상의 기적과 삶에서 마주하는 깨달음이 스며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국화를 마음속으로 탐내고 있을 때, 딸이 똑같은 꽃을 사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 작은 기적. 이것이 바로 박완서 작가가 말하는 신비한 소망의 닮음이겠지요.


이 문장에서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가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연스럽게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 말이죠. 엄마가 원하는 것을 딸이 알아서 준비하듯,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거죠. 이런 소망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주기를 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닿아,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박완서 작가와의 늦은 만남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그전까지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오래된 학창 시절에, 국어 시험 지문 속에서 스쳐 지나간 이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죠. 그러다 처음 만난 책이 바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였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글마다 담긴 마음이 얼마나 넉넉하고 따스하던지요. 때로는 어머니의 다정한 다그침처럼 마음을 톡톡 두드려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며, 책 한 권이 꽤 지저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들마다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던 순간들이 새겨져 있어, 그 또한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문득 작가님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에세이로 처음 만났던 감동과, 이후 하나씩 읽어 내려간 여러 작품들에서도 감명을 받기도 했고요. 교육열이 높았던 작가의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개성에서 서울로 상경하기도 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삶.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며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등단할 수 있었던 그 시간 속엔 얼마나 많은 감내와 울분, 서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그 마음들이 조금씩 이해되더라고요. 더욱이 남편과 사별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하나뿐인 아들마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차마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박완서 작가에게 글쓰기는 단지 직업이라 부르기 어려운 무엇이었을 겁니다. 그것은 박완서 작가가 살아내기 위한 방식이었고, 가슴속에 쌓인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방식이었으며, 세상과 마주하고 또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창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늦깎이로 문단에 나섰던 그녀에게는 젊은 작가들과는 또 다른 단단한 무게감이 있었을 겁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품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세월만큼 깊어진 마음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지점이 쌓여 만든 문장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결과보다는 여정을

"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할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 완성되고 구비된 물건이나 행복이 아니라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 말이다."


박완서 작가의 이 문장을 읽고 나면, 문득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요즘 우리는 얼마나 결과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좋은 대학을, 좋은 직장을 안겨주려 애쓰면서도 정작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성장해 가는지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거든요. 박완서 작가는 ‘완성된 무언가’를 건네는 대신, 스스로 얻어가는 ‘과정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겠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국 더 중요한 건 ‘어디에 도달했는가’보다 ‘어떻게 걸어왔는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할 건, 어쩌면 그 여정 자체일 테니까요.



답답함에 맞서는 용기

"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 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1970년대, 혼란과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박완서 작가가 건넨 이 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작가는 단순히 젊은 세대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도전하라’는 말속에도, ‘철저히’라는 당부가 따라붙습니다. 그저 흉내만 내지 말고, 정말로 지독하게 고민하라고요. 밤새워 명작을 읽고,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괜찮으니 진지하게 생각하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건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살다 보면 우리는 점점 무뎌집니다. 답답한 걸 답답하다고 말하는 법을 잊게 되고, 불편한 현실도 어느새 ‘원래 그런 거지’ 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는 말합니다. 그 감각을 놓치지 말라고 말이죠. 세상이 답답할 땐, 답답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그 답답함과 마주 서는 용기야말로 살아 있는 삶의 태도라고 말입니다.


그 한마디에,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답답한 것을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그 무감함 속에 안주하며 살고 있진 않은가. 박완서 작가의 문장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건드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정 살아 있는가 하고요.






그래서 오늘도 박완서 작가의 문장을 다시 펼쳐 듭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결과보다 과정을 더 오래 붙들었으면 하는 바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제 목소리를 내라는 용기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생각보다 낡고 거칠며 삐걱거립니다.

때로는 그 하루를 무사히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다독여야 하는 날들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마음의 조각들을

작가가 문장으로 조용히 건네주었습니다.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거기 있었고

세상이라는 무게에 눌리면서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이유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거창한 이상이나 철학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 속 장면들로

사랑을 말했고, 상처를 어루만졌으며, 용기를 건넸습니다.


그런 문장들을 만났기에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박완서 작가가 남긴 선물일 겁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 그 문장의 숨결.

그 안에 스며든 삶이, 여러분의 하루에도 채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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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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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대충 감으로 알지만, 사전을 살펴보니 '색상이나 채도는 없고 명도의 차이만을 가지는 색'이라고 합니다. 흰색, 검정, 회색. 색이 아닌 거죠. 동네의 학원가를 지나다 보면, 온통 무채색으로 무장한 학생들에 둘러 쌓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초등 고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 유독 그 시기에 주야장천 찾는 색이 아닌가 싶습니다. 색이 아니라서 그런지 뭔가 밋밋하고 단조로운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라는 제목에서 반전의 여운이 느껴졌습니다. 저처럼 무미건조하고 둥글둥글하거나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어, 이렇다 할 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 분들이라면, 이 책이 가진 울림이 결코 작지 않을 거라 직감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첫 에세이집인 이 책은『회색 인간』이라는 데뷔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내밀한 개인사와 작가로서의 생활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중학교 중퇴 후 10년 넘게 성수동의 주물 공장에서 일하며 살다가, 온라인 게시판에 쓴 단편소설들로 등단하게 된 작가 김동식. 정통(?)적이지 않은 경로로 세상과 연결된 이 작가의 고백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소설처럼 읽히고,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내게 글쓰기는 친구였고, 행복이었고, 구원이었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난 성수동 지하의 지박령으로 살다가 죽었을 거다.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 보지도 못하고, 나는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눈을 감았을 거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내게 글쓰기는 소중하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색’이라는 표현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작가는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 말속에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었던 시절의 무게와,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했던 시간의 단절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의 색을 자각하게 된 거죠. 무채색이라 여겼던 삶 속에 스며든 ‘글’이라는 하나의 색.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찾아낸 삶의 빛이었을 겁니다.


김동식 작가의 문장은 멋을 부리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젠체하고 어려운 말이 없죠.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길어 올린 진심 어린 말들이 더 묵직하게 마음을 두드립니다. ‘마카롱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고, 보면 괜히 웃음이 나고 달달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곁에 남는 이야기. 어쩌면 그래서 그의 문장은 결국 다양한 색채의 옷을 입고 독자의 마음을 물들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작가의 글쓰기를 향한 고백에 잠시 머물던 마음은, 어느새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멈추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익숙한 표현은 아닌데요.


"궁금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사랑이구나. '사랑하니까 궁금하다'가 유일하게 말이 되는 설명이었다. 생산성 없는 궁금증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이 쓰인다면,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게 사랑이란 서로를 궁금해하는 일이다."


문득 오래된 누군가를 떠올려봅니다. 그 사람이 왜 좋아졌는지, 왜 계속 생각났는지, 뾰족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의 하루가, 그 사람의 기분이, 별것 아닌 그의 말투나 표정까지 궁금했던 날들. 궁금해하는 마음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사랑은 무언가를 해주거나 들어주기보다, 먼저 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일일 겁니다. 알고 싶어 하고, 다가가려 하고, 그 마음의 결을 헤아려 보려는 관심 말이죠. 김동식 작가가 말하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자주 쓸모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감정조차 효율의 언어로 설명하려 드는 이 시대에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것,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이지 않을까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온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단단히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기반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자존감은 이 한 문장에서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좋아하고 잘하고 잘 알게 되는 일이 아마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존감의 기틀이 되는 게 아닐까"


김동식 작가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잘했던 기억’을 말하며, 자신이 잘하고 좋아했던 일에서 자존감의 뿌리를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게임에 젬병이인 저로서는 부러운 능력입니다만,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나는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그렇기에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요. 그것이 그를 지탱해 준 겁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어린 시절 열심히 큐브를 돌리다 여섯 면이 딱 맞아떨어진 기억, 책벌레라는 별명이 듣기 좋아서 책을 이고 지고 다녔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그때의 그 '작지만 확실한 내가 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누구의 인정에 앞서 스스로를 지지할 수 있는 감각 같은 것이죠. 그 감각이 있기에 우리는 도전할 수 있고, 실망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김동식 작가는 그런 마음을 글쓰기로 길어 올렸고, 작가가 길어 올린 그 문장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글쓰기를 만나기 전의 김동식은 공장에서 '기계의 부품' 같은 존재였지만, 글쓰기를 만난 후에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채색의 삶에서 쨍한 채도를 가진, 나다운 삶으로의 전환.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세상과 소통하며, 타인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전해주는 일. 그 과정이 작가에게는 자신이 가진 색깔을 발견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은 결국 김동식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글을 썼다고요. 글쓰기는 작가에게 삶의 이유이자 방향이었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였으며, 가장 오랜 친구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무채색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지도 모릅니다.

고단하고 지친 하루의 끝에 잿빛 골목을 지나며

때로는 나만 색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한 날도 있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건네는 진심 어린 한마디

또는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보는 짧은 한순간이

우리 삶에 색을 불러오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색을 남들과 비교하다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더라도

먼지 같은 일만 하다 먼지에 묻혀

색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여길지라도

내가 나로 존재하기에 분명 그 색은 내 안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무채색이라 여긴 삶에도 어느새 색이 스며들고 있음을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천천히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물들인 김동식 작가처럼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색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겠죠.


그리고 그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분명 우리가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

어떤 단단한 증거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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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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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스물일곱 살에 역대 최연소 임원이 된 청년이 있습니다. 해변가에는 멋진 집을 가지고 있고 회사에서는 차와 기사를 제공하는, 누구나 꿈꿔볼 만한 성공의 아이콘이 되었죠. 하지만 그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불안했죠.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을 하러 태국 밀림의 숲 속 사원으로 떠나죠. 17년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은 파란 눈의 스님이 됩니다. 그리고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서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그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책입니다. 201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02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전하고 싶었던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죠.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스웨덴 전역에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17년간의 수행으로 무엇을 얻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참 인상적입니다. 보통 생각하게 되는 깨달음이나 초월적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거든요.


그 말은 초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떠오르는 못된 생각에 휘둘리죠. 지나간 일에 매달리고, 오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불안에 사로잡히니까요.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고, 그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고요한 밀림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실천 가능한 것이라고요.


"우리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생각일 뿐,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울러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그런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생각에 더 냉철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 희한한 생각이 또 떠올랐군. 괜찮아. 어차피 난 그 생각을 놓아버릴 거니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제 안에서 하루 종일 벌어지는 생각들을 떠올렸습니다. 잠이 들지 않아 수면유도제를 삼키며 청한 밤을 지나 아침부터 시작되는 걱정, 주고받은 대화에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되짚어보는 부정적인 생각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들 말이죠. 그동안 저는 이 모든 생각들이 곧 저 자신이라고 여겼는데 나티코는 그것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고, 놓아버릴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난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했어요. 당신도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했군요. 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군요. 난 이따금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해요. 당신도 그렇군요. 난 어떤 일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곤 해요. 당신도 마찬가지죠."


그의 목소리는 다정합니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성찰이나 닿을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같은 눈높이로 함께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말투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들을 읽을 때면 마치 '그래, 나도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던 드라마 다모의 한 장면 같습니다. 누구도 혼자 잘 견뎌야 한다고 채근하지 않죠.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말이죠.



푸와 피글렛이 토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도 인상 깊었는데요.


"토끼는 참 영리해."
"맞아, 토끼는 참 영리해."
피글렛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게다가 토끼는 머리가 똑똑해."
푸가 칭찬을 계속했습니다.

"맞아, 토끼는 머리가 좋아."
피글렛이 다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봐."


이 짧은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지혜롭고 똑똑하며 모든 것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삶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결국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는 진실. 그 말이 결국 너무 많은 걸 생각하고 너무 많은 걸 책임지려 하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일침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늘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 합니다. 능력 있고 실수하지 않고 감정을 잘 다루며 두루 잘 지내는 사람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런 모습만을 고집하다 보면 내면의 아픔을 느끼는 일조차 서툴러지고, 결국엔 나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 대부분은 자발적인 것이며 스스로 초래한 고통입니다. 이 진리는 부처님의 무척 위대한 발견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발달단계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자발적이고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책을 조금씩 읽어가며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지나간 실수를 되새기다 자책하며, 불확실한 내일 앞에 조바심으로 점철된 현재를 놓치기도 하잖아요. 그 많은 고통들이 실은 내가 내 안에서 끝없이 만들어낸 생각들 때문이었다는 걸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고통이 스스로 만들어낸 건 아닐겁니다. 생로병사의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도 분명 존재하죠. 하지만 나티코가 말하는 건 그런 고통 위에 우리가 덧씌우는 불필요한 고통들, 그리고 그것이 그저 내가 만들어 낸 생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말합니다. 생각을 조금 덜 믿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요. 필요할 때는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이 가능하다고 말이죠. 그 연습이야말로 삶을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지혜라고요.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온갖 해석과 예측, 편견과 관념을 끌어와 어떻게든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듯 보이려 애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이름을 붙이고 예기치 못한 감정에도 설명을 덧붙이려 하죠.


어쩌면 그 모든 애씀의 바탕에는, 모르는 상태로 남아있음이 만드는 불안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엔 그렇게 믿어버리죠.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모든 감정을 해석하며, 삶의 흐름을 계획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만 괜찮은 사람이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나티코는 그 반대를 말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모를 수 있고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이죠.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진정한 현명함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알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며, 그저 담담히 살아내는 데 있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루게릭이라는 질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매 순간에 몰두하며 사람들에게 깊은 친절을 베풀었다고 해요. 우울한 생각이 몰려와도 늘 평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겸손함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의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지혜는 깊고 따뜻했으니까요.


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답을 주려 하기보다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심스레 전하고 싶습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

삶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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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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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너무 가까워져 생기는 마찰. 거슬리는 말투나 제스처로 인해 생기는 의아함, 대화를 잘 주고받았다 생각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오해, 그로 인해 쌓여만 가는 기대와 실망의 반복. 가까운 만큼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다치게 되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을 펼쳤을 때, 저는 이미 그 문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서로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신상을 털어놓는 그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착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특별한 관계로 인한 착각. 종종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고 감정인 듯합니다. 사랑이나 우정,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너무 깊이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 오히려 상대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무감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 어머니 이야기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두어 통풍이 가능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람이 들어올 틈. 관계가 충분히 흐를만한 사이. 그 간격과 거리감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타인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는 시야도 갖게 됩니다.


이 책을 쓴 소노 아야코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안타깝게도 올해 초 93세의 나이로 멀리 떠나셨어요. 『인간의 분수』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된 이 에세이는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후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제목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어조는 읽는 이를 멈춰 서게 만듭니다. 너무 평범해서 놓치기 쉬운 생각들을 무릎 탁 치게 만드는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작가. 저는 그런 작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이 문장은 어쩌면 지극히 단순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에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그 일을 잘 해내야 하고, 타인에게도 인정받아야 하며, 지속적인 동력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지요. 그렇게 되지 못하면 좋아하는 일이 아닌 것 같고, 실패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소노 아야코는 이 순서를 뒤집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태도 속에서 삶의 의미가 싹튼다고 말이죠.


무언가를 갈아치우듯 일상이 늘 새롭게 바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조금씩 정을 붙이고 의미를 발견해 보는 것. 때로는 그것이 삶을 더 단단히 붙잡아주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남들만큼’이란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 무엇을 근거로 ‘남들만큼’의 존재라고 부르는 것인지, ‘남들만큼’의 허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기준은 없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남들만큼’이라는 잣대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아서요. 남들만큼 벌어야 하고, 남들만큼 인정받아야 하고, 남들만큼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남’은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고, 어딘지 모르게 추상화된 타인의 평균이고 내가 만들어낸 이상한 기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평균에 맞추려는 삶은 늘 자신을 바깥으로 밀어내게 만들죠.


결국 중요한 건 그 불분명한 기준이 아니라, 내 안에서 명확해지는 삶의 기준이지 않을까요. ‘나만큼’ 행복하고, ‘나만큼’ 괜찮은 오늘을 살아도 된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 먼저인지도 모릅니다.



“그중에서도 인내가 가장 필요한 곳은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상대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견딘다.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인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받들어주는 힘이다.”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선 언제나 감정이 고조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따스함이나 설렘이 가라앉으면 멈추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문장은 그런 생각을 조용히 반박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내 기대에 어긋나더라도, 실망스러운 말을 하더라도 떠나지 않고 곁을 내어주며, 나무처럼 굳건히 지키려는 태도라는 것이죠. 인내라는 말은 자칫 고통을 수용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을 위한 가장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쓸 때, 비로소 인간적인 깊이와 품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닐까요.



“노인의 불행은 누가 나를 부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축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지 노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배려가 부족한 순간 우리는 쉽게 서운함을 느끼고 불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실제로는 결핍이라기보다 ‘받아야 할 것’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삶은 훨씬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불행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을 택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 때 그 표정은 더 어두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평하는 마음 대신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주도한다는 감각을 되찾는 일이 절실해 보입니다.




소노 아야코의 문장들은 조용하지만 단단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삶의 조언이나 처세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피하지 않은 사람의 문장이었습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차갑게 등을 돌리는 일이 아니라

관계 안에 공기를 불어넣는 일이었습니다.


숨을 쉴 수 있게 하고

나를 지키며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아주 작은 배려.


그 작은 배려가 나에게는 커다란 자유이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주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 인지 모릅니다.


완벽하게 사랑할 수도 없고

완벽하게 이해받을 수도 없는.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거리일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런 거리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적당한 거리라는 이름의 다정함을 믿어보려 합니다.


그 거리를 지키는 것이

나와 당신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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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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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런저런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챙겨보는 편입니다. '한 놈만 패'는 편협한 독서습관으로 인해 관심 가는 작가분들을 탐색하는 시작점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수상작품집'이잖아요. 얼마나 많은 작가분들이 수상과 등단을 바라며, 수많은 낮과 밤을 글과 사유에 매달리다 세상에 내놓았을까 싶어서 찾습니다. 아, 다른 책에 비해 반값 정도로 저렴하다는 것도 한몫하겠네요 :)


수상작품집을 읽다 보면 그 해의 문학 지형도를 가늠해 보게 되는데요. 흐름이 어떻게 오고 가며, 어떤 이야기가 울림과 메시지로 주목받았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을 펼치고 눈에 띈 건 작가분들의 성별이었습니다.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눈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수상작가 일곱 분 중 여섯 분이 여성작가시거든요. 좀 오래된 듯합니다만, 여성 작가분들이 문단의 가장 선명한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두드러진다’는 표현이 어색할 만큼, 이미 중심이 되어버렸다는 생각도 하고요.


'내가 사랑한 작가들' 연작을 요즘은 잠깐 쉬고 있긴 한데, 사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며 연작으로 다루고 싶은 작가분들의 70% 정도가 여성작가분들이긴 합니다. 세상이라는 혼탁한 그림 앞에 섬세하고도 때론 날카로운 터치로 삶과 주변을 이야기하는 문장들에 공감되기도 하고, 제가 그 결에 잘 맞는 듯싶어서 말이죠. 앞으로도 권여선, 김금희, 최은영, 조남주, 정유정, 최승자, 정혜연, 한강, 정한아, 장은진, 클레어 키건(은 스코틀랜드?), 이기호, 천명관(은 남성?) 등의 작가분들에 대한 연작을 고민 중인데, 제가 생각해도 높은 비율이긴 하네요.




여하튼, 이번 수상작품집 속 일곱 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색을 지녔지만, 어딘가 비슷한 결로 이어져 있습니다. 관계를 견디는 사람들, 몸과 마음을 다친 채 일상을 건너는 사람들. 쓸쓸하지만 찬란하게 그려낸 문장들이 모여 있었죠.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였는지 짧게 설명드리자면, 낯선 문장과 마주했을 때의 찜찜하고도 묘한 매력이 느껴졌달까요.



“그냥 거기까지의 고통. 왜냐하면 또 통곡하고 절규, 몸부림 돌입하기엔 생존자들 일단 배고팠고요, 다친 데가 굉장히 아프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이어진 질긴 목숨이 영 낯설어서. 이상해서. 징그러워서. 이게 내 것 같지 않아서. 그걸 가졌단 수치심도 내 것 같지 않아서.”


문장이 출렁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고 정돈되지 않은 리듬으로 인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몸과 혼이 따로 떠다니는 사람들. 이들을 덮치는 고통과 기억,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 읽는 동안 황정은 작가의 문장들이 떠올랐어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신체의 언어로 말하는 문장들. 이상하게 쓰이기 위해 고르고 벼른 흔적이 역력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문장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낯선 정서를 통과시킬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 있던 모든 것 멸종한 뒤라, 물리적으로 싹 거둬간 자리 숫제 체로 쳐서 훑어간 데를 방류된 화학물질이 거꾸로 한번 더 태운 보람 쏠쏠하여서, 여지 아주 없었고 많았어도 그래. 사람이 물속에서 맨눈으로 끔벅끔벅. 대단히 뭐 뵈는 게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그 물이 맑았을 리 만무하지요. 기원후부터 이천오백 년 넘게 쌓인 쓰레기들이 이제 뭐 국적도 없겠다 가격표 떼고 골고루 흩어져 조각나 부서져 순환하다 엉겨 붙고 녹아들고 빛 반사하면서 바다 전체를 로맨틱한 분위기의 배스밤이 녹아든 밸런타인 욕조처럼 미끌미끌하고 반짝반짝하게 무엇보다 새카맣게 만들었으니까요”


이 문장 또한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문장이 주는 충격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거든요. 멸종 이후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혼탁한 물 속을 '로맨틱한 분위기의 배스밤이 녹아든 밸런타인 욕조'라는 표현을 쓰는 이 대조법의 묘미라니. 절망적인 현실을 아름다운 은유로 포장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스며 나오는 절망감이 덧대어져 더욱 선명해 보였습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수상작들도 각각의 방식으로 '견디는 사람들'을 그려냈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는 팬심과 도덕적 딜레마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을, 성혜령 작가의 「원경」에서는 질병 앞에서 무너지는 관계를 다뤘죠.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드보드지처럼 두껍고 견고한 사랑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사랑은 습자지 같아서 단 한 방울의 반감과 의심으로도 쉽게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푹 젖어도 찢어지지 않고 도리어 곤죽처럼 질퍽해진다. 사랑이고 죄의식이고 찬미고 경멸이고 죄다 흡수해 종내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랑을 종이에 빗댄 이 은유가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흔히 사랑은 견고하다, 사랑은 영원하다 말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쉽게 찢어지고 상처받는지를 성해나 작가는 습자지라는 일상적인 소재로 치환해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곤죽처럼 질퍽해진다'며, 사랑의 복잡하고 혼탁한 면까지 드러내죠. 사랑에 대한 죄의식, 찬미와 경멸이 뒤섞여 원형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 이런 감정의 복잡성을 이렇게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을 보면서,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혜령 작가의 「원경」에서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었어요.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십 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 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가 끝나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이 문장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안면 마비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동료가 다른 쪽 입꼬리도 일부러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런 동료를 보며 이직을 결심하는 주인공의 마음. 여기에는 연민과 동시에 자신도 언젠가 그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없다는 솔직한 마음이 모두 담겨 있어요.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저는 문학이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지만 잘 들여다보지 않는 순간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이렇게 섬세하고 정확한 언어로 포착해 내는 것.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아, 나도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좋은 문장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받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웠고, 슬프지만 희망적이기도 했어요. 그 상처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몸이든 마음이든, 크든 작든 모두 조금씩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안고 일상을 통과해 나가죠. 때로는 현호정 작가의 문장처럼 '질긴 목숨이 영 낯설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성해나 작가의 문장처럼 사랑이 '곤죽처럼 질퍽해져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 같아요.


일곱 편의 소설이 모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들, 따뜻한 연대의 가능성들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이죠.




좋은 문장이 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드러내고

혼자만의 경험이라 믿었던 순간들이

실은 많은 이들의 마음과 겹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


그 문장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위로와 용기를 얻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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