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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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맵다. 아니, 매운 건 둘째 치고 흐르는 콧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줄줄 흐르는 건 지저분하니까, 미용티슈 한 장을 반으로 쪼개고 고이 접어 돌돌 말아선 양쪽 코에 냅다 넣어보는데, 입으로 숨을 쉬느라 입술이 마르는 건 제쳐두겠으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돌돌 만 티슈마저 흥건해진다. 덕분에 쓰레기통으로 가기 전의 흔적들이 쌓여 휴지산이 되고, 훌쩍거림과 재채기는 무엇하나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잠은 또 어떻고. 코 한쪽만이라도 숨이 쉬어지는구나~ 싶다가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양쪽이 다 막힌다. 살 수가 없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순 없으니, 오늘도 항히스타민을 삼키지.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언제인지 모르게 어떻게든 잠에 들긴 한다. 이럴 때 드는 생각. 코를 떼어야 하나.


출근길에 둘러보니 집 앞 초등학교의 담벼락엔 어느새 능소화가 얼굴을 내밀었다. 능소화가 피면 여름이라 했던가. 작렬하는 태양만큼이나 한껏 가슴과 두 팔을 열고 여름을 맞이하고 싶었건만. 나의 여름맞이는 올해도 어김없이 비염과 함께 시작하는구나. 환절기엔 영락없지. 콧물, 재채기, 후비루, 코막힘, 튼입술, 수면부족불가. 비염이 이렇게 무섭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에 들르니, 선생님 말씀. '부비동염이네요~ 한참 고생하신 것 같은데 이 약 먹으면 이틀 안에 나을 겁니다~' 비염이 아니었나. 비염으로 시작되어 부비동염으로 옮겨간 것인가. 그래서 그렇게나 코를 '부비'댔나. 다행히 이틀 치 약을 거침없이 소화해 내니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그라든다.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선생님! 아 그런데,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선생님. 취미가 사진이신 것 같은데, 사진 속에 선생님은 멋진 배경 속에 더 멋진 포즈와 함께 담배를 태우고 계시던데요. 이비인후과 전문으로서 괜찮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동물들의 다양한 특성을 기반으로 수명을 산출한 학자가 그러던데.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40년이라고. 그걸 넘어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매년 한 두 군데씩 고장이 난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수시로 콜록 이거나 코가 막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달고 살아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출산의 고통은 없었지만) 허리 속에 있다는 디스크는 1/4쯤 탈출한 듯싶고, 묵직~하게 세상에 나온 따님 덕분인지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목으로 이어지는 관절 라인은 각각이 매년 병원을 가는 이유가 된다.


덕분인지 영양제와 건강보조제가 늘어난다. 눈도 좀 침침해지려 하는데, 그래도 책은 봐야 하니까. 더 나빠지기 전에 루테인은 물과 함께 삼킨 지 5년쯤 된 것 같고, 30대 후반의 어린(?) 나이였던 언젠가의 종합검진에서 발견된 골다공증으로 칼슘&마그네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기관지에 좋다기에 프로폴리스, 내 혈압 잡아야지 싶어 혈관 건강을 위해 속이 쓰려도 오메가 쓰리, 가끔 철야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니 종합비타민, 회식은 간빨(?)로 하는 거라길래 밀크시슬까지. 어째 줄진 않고 늘기만 하네. 꼭 내 업무 같군.


내 몸이 종합병원 수준은 아니겠으나, 내 또래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려나. 나이 듦에 따라 이렇게 구석구석 고장 나고 있으려나. 그래도 큰 질환이 없으니 감사해야 하나. 요즘이야 의학의 발달로 생물학적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서 살아가고 있긴 한데, 옛날 사람들은 어땠으려나.


그럴 때 볼만한 책이 여기 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라는 책인데, 건국대학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약 중이신 이지환 교수님이라는 분이 마치 셜록에 빙의한 듯,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위인들이 겪었던 질병을 추리하고 그 병이 위인들의 삶과 업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꽤 흥미롭게 풀어낸다.


세종대왕부터 시작해서 가우디, 니체,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마리 퀴리, 모네, 로트렉, 프리다 칼로, 밥 말리 등 아주 다양한데, 우선 세종대왕부터 설명해 보자면, 세종은 20대부터 무릎통증, 30대부터 허리 통증을 앓았으며 40대부터는 눈 통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특히 허리는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대나무처럼 뻣뻣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눈은 '모래처럼 까끌거렸고, 때로는 사람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 되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전국 각지의 온천을 찾아다니셨구나. 그리고 몸이 비대해서, 아빠인 이방원(태종)이 산책도 하고 운동 좀 하라 권했다는 기록도 있단다. 역시 운동만이 살길인가 보다. 이런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세종대왕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단다. 이 질병이 척추와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질환인데, 허리뿐만이 아니라 눈에 염증까지 동반하기도 한단다.


가우디는 어린 시절부터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친구 사귀기도 어려워서였는지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 덕분에 혼자 자연을 관찰하며 독창적인 건축세계를 구축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평생 관절통을 달고 살다 보니 뼈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관심이 건축 양식에도 반영되었다고 본단다. 가우디는 1926년 노면 전차에 치였을 때, 남루한 옷차림 덕분에 부랑자로 오해를 받아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하게 되었다는데, 이 또한 그의 병약했던 몸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클로드 모네의 에피소드를 제일 눈여겨보았었는데, 미술은 잘 모르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모네 그림은 너무 아름다우니까. 인상파=모네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 그리고 수련 연작 정도도. 모네는 말년에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그림의 색과 형태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갔단다. 그래서 후기작품들은 모네 특유의 아름다움을 잃고, 색상이 왜곡되고 형태가 뭉개져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지환 교수는 모네의 이러한 시력 저하와 후기 화풍의 변화를 '백내장' 때문으로 추정한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야가 흐려지고 색상 구별 능력이 떨어지는 질환으로, 모네가 빛의 화가였음을 감안했을 때 그의 예술활동에 아주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몸이 보내는 고장의 신호들은 삶의 주석 같은 것이겠지. 그 불편함들이 없었다면 멈춰 생각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누군가는 그런 고장 덕에 그림을, 누군가는 글을, 또 누군가는 건축을 남긴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남긴 건 없지만. 오늘 이렇게 코를 훌쩍이며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다시 떠올리고 누군가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건강은 앞으로도 더 나빠지겠지. 그래도 몸이 보내오는 신호들에 일일이 불평만 하진 말아야지.

그렇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받아들이고, 받아 적으며 같이 살아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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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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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그어진 한 줄의 흔적이 삶이 되어

밑줄 긋는 것이 좋습니다. 그 문장이 몸과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도 좋습니다.

정용준 작가의 『밑줄과 생각』을 펼치며 만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행위에 대해 이보다 아름다운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선릉산책』이라는 단편집으로 처음 만났던 정용준 작가. 『밑줄과 생각』은 오영수문학상과 젊은 예술가상을 동시 수상한 이력에 빛나는 작가가 15년간 소설의 안팎에서 쌓아온 사유의 기록이다. 37편의 산문을 통해 작가는 '읽기와 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문학론이나 창작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문장과 밑줄을 통해 삶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성찰을 펼쳐낸다.



문장 속에서 만난 삶의 진실들

밑줄이 그어지면 책은 책 이상이 됩니다. 단어와 문장에 그어진 한 줄의 흔적은 마음에도 그어져 있습니다. 문신처럼 흉터처럼 남아 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정용준 작가에게 밑줄은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삶과 문학이 만나는 접점이며, 타인의 언어가 자신의 언어로 변화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나이에 대해 쓴 문장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작하는 육십이 있고 도전하는 오십이 있고 포기하는 스물이 있으며 안주하는 서른이 있다.

마흔이 되어 느꼈던 정체불명의 허무함과 불안감을 토로하면서도, 결국 나이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담백하면서도 위로가 된다.



상실과 부재의 의미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0'에 대해 쓴 철학적 성찰이다.

0은 그냥 0으로서 존재하지만 1-1=0은 상실된 1로서의 0이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수학적 논리로 설명하는 이 문장은 독창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원래 0이었던 0과 1이었다 0이 된 0의 차이. 그것이 바로 '혼자'와 '둘이었다가 혼자'가 같지 않은 이유라는 통찰은 실연의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또한 죽음과 애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사유한다.

애도라는 것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의 한 묘지에서 얻은 이 깨달음은 죽음을 끝이 아닌 다른 형태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인식을 보여준다.



감각하는 앎과 살아있는 지식

정용준 작가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감각하는 앎'이다.

지식의 앎이 아니라 감각의 앎이 필요하다. 실제로 행동이 멈추고 새로운 행위를 만들어내는 진짜 앎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진정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는 색맹인 사람이 색을 보게 되는 안경을 쓰는 영상을 보며 자신의 일상을 돌아본다.

세계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는 이에게 세계는 색을 보여주고 그에 걸맞은 감정을 선사한다.

같은 세상을 보면서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소설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작가에게 소설은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잘 알려주는 도구'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려 '인간을 설명할 가장 탁월한 예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소설이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선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소설을 읽고 쓰며 체득한 진심 어린 고백이다. 작가는 존 쿳시, 아니 에르노, 알베르 카뮈, 조지 오웰, 프리모 레비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나눈다. 각각의 작가들이 어떻게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면서, 문학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삶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증명한다.



불명료함에 대한 경계와 진정성에 대한 추구

프리모 레비의 영향을 받아 작가는 '불명료함'에 대해 강하게 경계한다.

하지만 모호하다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아무 이유가 없기에 알 수 없는 어려움이다.

복잡한 것과 모호한 것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글쓰기에서의 정직함과 명료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지시할 단어를 찾는 것이 너무 힘들고 선명한 논리와 문장을 쓰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불명료함 뒤에 숨고 싶은 유혹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인간은 슬프다'는 문장은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통찰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인간의 복잡성과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한계를 인정한다.

우리는 각자의 문제에 있어 완전한 타인일 뿐이다. 이해한다고 해도 결국엔 서로에게 무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행위라고 말한다. 소설과 문학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문장 속에서 찾은 삶의 의미

정용준 작가의 『밑줄과 생각』은 단순한 문학 에세이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 인간이 문학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기록이다. 작가가 그어온 수많은 밑줄들이 결국 삶의 밑줄이 되어,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다시 태어날 순 없다. 나 아닌 다른 것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다시 할 순 있다.

이 문장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성숙한 인식을 보여준다.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이 책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그어온 밑줄들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 밑줄들이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것들이 모여 결국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정용준 작가의 말처럼, '그 언어와 내 언어가 섞이고 남의 언어를 닮은 새로운 나의 언어가 생기는' 순간들이 바로 독서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문학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을 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 줄의 문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수많은 밑줄을 그었다.


그 밑줄들이 언젠가 돌아본 나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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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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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이라는 소설을 만난 건 2023년의 늦은 가을로 기억합니다. 단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명중개인'으로서의 삶을 인지하게 된 목화. 할머니 임천자는 이 능력을 기적으로 믿었고 엄마 장미수는 저주로 여겼지만, 목화는 거부할 수 없는 세습된 이 운명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해 갑니다.


수많은 죽음 속에 살아진 단 한 명의 삶 앞에, 한 인간에게 선택과 구원을 내몬 신은 무심했고, 이 역할과 능력을 부여한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수명중개인으로서 한 사람을 살리고서는, 어지러움과 구역질로 괴로워하는 목화가 내뱉은 저 문장 앞에 저는 오래도록 멈춰 서있었습니다.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오래된 이별을 떠올립니다. 그때는 분명 사랑이었는데, 사랑이라 믿었는데. 마주하고 있어도 보고 싶었고, 만날 나날이 기다려졌고, 빈틈없이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뾰로통했던 순간들의 감정이 이별 후에야 내가 만든 이기심이며 외로움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사랑을 원했던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던 것뿐인지. 내가 했던 사랑이 목적 없이 그저 사랑이면 되겠구나 믿고 싶었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뒷자리가 그렇게 싫었습니다. 동생과 집에서 놀다 찬장의 유리가 손등에 박혀 펑펑 울던 10살의 남자아이는, 아프고 놀라 울면서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 뒷자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아버지의 등자락이 그렇게 부끄러웠습니다. 남루한 가정사정에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아 어른스럽다던 칭찬을 달고 살던 그 아이는 어느새 자라 아빠가 되었고, 열이 오른 딸을 업어 차에 앉히며 그 시절의 오토바이 뒷자리를 떠올렸습니다. 아이에게 끝없이 주고 싶은 지금의 마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이제는 압니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사랑은 질문이라 믿습니다.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고, 그로 인해 지금은 어디에 있을지, 무얼 하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무엇을 걱정할지 자꾸 알고 싶어지는 마음 말이죠. 그런데 질문하지 못하는 사랑은 너무 멀리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며, 밖으로 꺼내지 못한 고백, 전하지 못한 진심은 안타깝게도 그대로 마음속에 쌓여갑니다. 말하지 못한 사랑은 변질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과의 물리적인 거리는 좁힐 수 있을지언정,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져만 갑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완성되지도, 정리되지도 않은 채 그렇게 부유합니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아침마다 어머니는 ‘자네 밥은 먹었는가 ‘, ’ 퇴근은 제때 하는가 ‘, ’ 시국이 어지러우니 술자리도 조심하고 매사에 말도 조심하시게 ‘ 라며 안부를 건네십니다. 바쁨의 핑계로, 멀지 않은데 사신다는 안도로, 매일이 반복되는 지겨움으로 인해 짧은 이모티콘 하나로 그 문장들을 밀어두다 이내 알아챘습니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아들의 하루가 채워지길, 하루의 무게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무겁기를, 자주 보진 못하지만 제 삶의 가장자리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이시란 걸 말이죠. 선언적인 시작 없는 이 사랑을, 최진영 작가가 알아채고 제게 문장으로 전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 마음의 헛헛함으로 인해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닐는지요. 끝난 뒤에야, 지나간 뒤에야, 오래도록 아프고 난 뒤에야 사랑이었다고, 사랑이 아니었다고 겨우 이름을 붙이는 건 아닐는지요.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놓쳐버린 줄 알았던 후회에도

다 흘려보냈다 믿었던 허탈함에도

온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요.


너무 멀거나 가까워 알아채지 못했을 뿐

사랑은 언제나 먼저 와 있고

우리는 그걸 오래 지나서야

하나의 문장, 하나의 추억으로

되돌아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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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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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답답할 때면 들로 산으로 다닌다. "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부러.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들로 나가. 나가면 마음이 편항께. 정 답답하면 저그 나가서 소나무하고 이야기를 혀.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 나는 마음이 이래이래. 소나무하고 말하고 갈대하고 말하고... 나는 진짜 듣도 안 하고 보도 안 하고 그라고 살았네. 그래야 쓰겠다 싶어서." - 김춘자 님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냐』는 제목부터 가슴을 울리는 책입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수십 명의 6070 여성들을 만나 기록한 인터뷰집인데요. 평생 일했지만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던 고령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바깥일과 집안일을 오가며 평생을 'N잡러'로 살았던 여성들,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내로, 엄마로 불린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자 시작된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고, 애 보고, 장 보고, 일터로 나서고, 또 어쩌다 동네 일까지 도맡아 하지만 직업란에는 늘 ‘무직’이라고 쓰여야 했던 사람들. 국숫집 사장님으로, 탄광 대신 선탄장으로,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자식들 통장보다 머릿속을 채워주고 싶었던 엄마들입니다. 이는 각자의 삶을 살면서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우리 주변의 이야기입니다.


김춘자 님도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꾸밈없이 날것 그대로입니다. 답답할 때면 들로 나가 소나무와 갈대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만, 그렇게 해야만 이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 화려한 이력서도 명함도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뎌온 사람으로서의 진솔한 저 고백 앞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부러.

생각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듭니다. 너무나 놀라운 표현이라 자꾸 쳐다봤습니다. 생각이란 녀석은 정말 못된지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때론 숨이 막혀 세상을 좁게 만들기도 하지요. 특히나 이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주어진 생각의 무게는 더욱 묵직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살아온 시간이 뭐였을까' 하다가 그럼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들 투성이일 거예요.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생각, 나이 든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들이 층층이 쌓여, 숨 한 번 들이쉬는 순간에도 겹겹이 밀려옵니다. 이 모든 게 뒤엉킬 때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김춘자 님도 이런 생각들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신 것 아닐까요. 병들게 하고, 옥죄고,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자책은 다짐이 되고, 다짐은 다시 체념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산으로 들로 나가기로 하죠. 이건 도피가 아니라 치유의 방법일 겁니다.



정 답답하면 저그 나가서 소나무하고 이야기를 혀.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

소나무와 대화하는 김춘자 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자연을 친구로 여기고 소나무에게 말을 걸며, 갈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듯이요.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라고 묻는 그 목소리에서 부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읽습니다. 소나무의 건강함이 부럽고 그 생명력이 경이로운데, '이래이래' 아픈 내 마음과 대비되는 그 푸르름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대화는 단순한 부러움에서 끝나지 않는 듯합니다. 소나무의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겠죠.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결을 만지고 내 삶의 고단함을 고르는 일. 우리가 잊고 사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현실일지라도 자연과 대화하고, 나무와 친구가 되고, 바람과 인사를 나누는 능력. 김춘자 님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마음 둘 자리를 가꾸어 오셨나 봅니다.



나는 진짜 듣도 안 하고 보도 안 하고 그라고 살았네. 그래야 쓰겠다 싶어서.

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세월이 묻은 지혜를 발견합니다. 듣도 안 하고 보도 안 하고 살았다는 것.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겠죠. 세상의 잡음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의미일 겁니다. 무관심이 아니라 간절함이었을지 모릅니다. 살기 위해 외면해야만 했던 시절은, 견디고 또 견디며 살아낸 사람이라면 알겁니다. 김춘자 님의 이 말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품고 살아온 삶의 무게가 들어 있습니다. 무심한 척 살았고 덤덤하게 지나온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락이 있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삶이 고되었다는 말보다, 이렇게 살아냈다는 말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긴긴 세월을 살아낸 비결은
거창한 생각이나 삶의 이정표가 아니라
그날그날의 내 마음이 상하기 전에
들로 산으로 나서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나무에게 말을 걸고

갈대에게 마음을 덜며

그렇게 오늘 하루를 건너는 일


그런 날들이 쌓여
지금의 당신이 되었고
지금의 나와 우리를 만들었을 겁니다


말없이 세월을 견디며

길을 터고 곁을 내어주신

당신들의 삶에 조용히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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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설계자들
나하나 지음 / 웨일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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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주간회의 풍경. 당면한 과제들은 넘쳐나고, (누군가가) 지시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지시받은 항목들은 끝이 없습니다. 잘했다, 잘못했다와 왜 그랬니와 어쩔 거니, 이래야 하지 않겠니가 난무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래저래 회의는 흘러가죠.


회의 말미. 딱딱하고 서걱거리기만 한 회사생활에 자그마한 활력이라도 불어넣어 보고자 팀원 한 명이 '스몰토크'를 주기적으로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업무 이야기만하지 말고 월에 한 번쯤? 좀 멀어도 괜찮으니 맛집이라도 찾아가서 그냥저냥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이야기라도 해보자고 말이죠.


너무 좋은 제안 같습니다. 그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았는지,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일상에 변화는 없는지, 여가시간에 관심 갖고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알게 된 트렌드나 재밌는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말이죠.


다들 좋다는데, 묵직한 펀치가 하나 날아듭니다. '근데 그런 건 평소에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 다들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나 봅니다.


스몰토크,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보시죠.


소소한 잡담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이는 신뢰로 발전할 수 있죠.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 잊어버리고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만 남지요.
그런데 사실 일할 때는 그 유대감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밥이라도 한 번 먹어본 사람과 일하는 것과 소소한 얘기도 한 번 안 해본 사람하고 갑자기 일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런 이유로 잡담을 수시로 많이 나누게 해요. 그 안에서도 정보들이 오가고요. 잡담을 많이 나누면 좋은 게, 보고를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무겁지 않게 얘기할 수 있더라고요. 사전에 가볍게 물어봤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죠. 그래서 잡담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 홍성태, 《배민다움》


저 문장은『일터의 설계자들』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의 피플실 팀장이신 나하나라는 분이 쓴 책인데요. (링크드인을 잠시 살펴보니 아직도 우아한형제들에 계시네요.) 9년간 우아한형제들에서 '배민다움'이라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일 문화가 어떻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잡담 속에 숨어있는 조직의 힘

우리는 언제부터 직장에서의 잡담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성과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잡담은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처럼 취급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이 남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유대감이 일할 때 아주아주 중요하다고요.


잡담이 유대감을 만들고, 유대감은 동료들끼리 일하는 데 있어 경쟁력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를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무겁지 않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전에 가볍게 물어봤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는 단순한 대화 기법이 아니라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철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조직에서 소통의 문제는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에서 시작되니까요. 잡담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고 봅니다.


관계의 온도를 높이는 작은 실천들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혜는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섬세함이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구성원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데요.


예를 들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거나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신규 직원이 조직에 적응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이름과 직급을 잘 기억했다 칭하는 일이고, 실수로 직급을 낮게 불러 불편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더라는 설명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

책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중 하나는 '일 문화는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 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기업이 강요하기만 하면 직원들은 '이제 그만~' 하고 귀를 닫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한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는 것이니까요. 강요는 억지로 따르게 할 수 있지만, 진정한 내재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우아한형제들 사무실 바닥 곳곳에 새겨 두었다는 '인사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자'같은 문구들이 바로 이런 가랑비 접근법을 고민한 결과들이 낳은 산물일 겁니다.


100-1=0의 철학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100-1=0'입니다. 감이 오시죠. 네, 오실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실수로 제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일 문화가 얼마나 섬세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것이 조직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두려움의 경고는 아닙니다. 오히려 간과해서는 안 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죠.


저자는 '좋은 일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직원에 대한 애정과 존중의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관리가 아닌 관심. 이는 조직 운영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보였습니다. 통제와 관리 중심의 전통적 조직 운영에서 벗어나,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접근법으로의 변화인 것이죠.


(부러웠던 부분인데) 피플실이라는 조직은 매주 모든 부서를 찾아다니며 점심 사주고 커피사주는 게 핵심업무이고, 다양한 채팅채널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주된 과업이라고 하더군요. 진심을 다해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려는 것이죠. 진정한 내부영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저 밥사주는게 부러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 )


태도가 경쟁력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생각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 역시 인터뷰에서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 말을 인용하며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것이죠. 반대로 완벽하지 않은 환경일지라도,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의 의미

『일터의 설계자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일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모든 건 마음에서 출발하니까요.


하지만 그저 마음가짐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도록 도울 것인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방법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 ‘스몰토크’의 자리로요.

어떤 회의보다도, 어떤 의사결정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니까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 사이엔 온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터의 설계자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과 작은 실천들이 모여 조직을, 일하는 사람을, 그리고 일 자체를 바꾼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잡담은 경쟁력’이라는 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잡담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첫 번째 걸음이고, 무거운 말을 가볍게 꺼낼 수 있는 통로가 될 테니까요. 팀원들과 한 달에 한 번 맛집을 찾아 수다를 떨겠다는 그 제안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가랑비 같은 문화’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회사생활에 있어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회의가 (있다면) 끝나고 잠깐의 잡담이라도 나누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게 곧 우리가 더 오래, 더 잘,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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