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듣는 이야기가 아니요, 받아 보는 호의가 아니다. 일언에 거절을 하였더니,
"이 사람아, 고양이 쥐 생각해도 푼수가 있지. 그런 맘 쓰다가는 이 세상에선 못 사네."
친구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비웃는다.
"그런 얌전만 피다가는 자네 금년 겨울에 동사하네, 동사."
아닌 게 아니라 듣고 보니 그것이 말만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글쎄, 그 사람이 쫓겨 나왔어두 집을 잡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흠, 아, 자네처럼 제 집 없으면 한디에서 겨울 날 줄 아나.그저 별생각 말구눈 딱 감구 내 말만 듣게. 집이 생길 게니."
친구는 승낙도 없는 상대방의 의견을 임의로 무시하며 혼자 약속을 하고 갔다.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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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배바빠 아침도 덤비어 치이기는 하였으나 쓸데도 없는 호의에 걸음만이 더디다. 백 번 생각해도 그것은 실행할 일이 아닌 것을......
진고개 너머 어떤 일본 집에 수숙 없이 제 집처럼 들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정식 수숙을 밟아 내어쫓고 들어가게 해준다고 부디 오늘 오정 안으로 만나자는 친구가 있다. 집이 없어 한지에서 겨울을 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으슬하다가도 그러니 있는 사람을 내어쫓고 들다니 생각을 하면 내어쫓긴 사람이 역시 자기와 같은 운명에 놓여질 것이 아니 근심일 수 없다. 자기도 처음 서울에 짐을 푼 한지가 아니었다. 푸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본집 다다미방 한 칸이 베불어지는 호의를 힘입어 겨울을 나게 되었음은 다행이었다 할까. 해준도 채 못미처 수숙이 없다 나가라 하여 쫓겨난 이후로 이래 아홉 달을 한지에서 산다. 남을 한지로 몰아내고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눈을 감을 염치가 없다. 이런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다.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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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찻길로 직로라 차로 오자면 고향은 배편이 안전타고 뱃길로 돌아왔다. 어디는 제 땅이 아니냐. 아무 데나 내려서 가자. 인천에 와 닿고 보니 뜻도 않았던 삼팔선이 그어져 제 나라가 아닌 것처럼 남과 북이 제멋대로 굳었다. 그래도 내 땅이라 못 갈 리 없다고 삼팔의 경계선을 넘다가 빵 하고 산상에서 터져 나오는 총소리에 기겁들을 하고 서성거리다 보니 동행자 중 한 사람이 거꾸러졌다. 삼팔의 국경 아닌 국경을 넘기란 이렇게도 모험인 것을 체험하고 고향이래야 일가친척도 한 사람 없는 그리 푸진 고향도 아니다.어디를 가도 제 손으로 터를 닦아야 살 차비다. 서울도 내 땅이라 보퉁이를 풀러 놓고 터를 닦자니 어려워만지는 생활, 겨울까지 눈앞에 떨어졌다. 초막의 추위는 지금도 고작이다. 밤새도록 담요 한 겹에 쌔워 신음하는 어머니, 가슴이 답답하다. 시원한 바람이 그립다. 눈이 짝해지자 산을 탔다. 산을 타니 산바람이나 시원할까. 고향이 그립다. 배꼽줄이 떨어져서부터 놀던 바다, 고향의 앞바다, 푸른 바다, 시원한 바다, 그 바다나 마음껏 바라보았으면 바다 끝같이 가슴이 뚫릴 것 같다.부질없이 봉우리를 주어 올라 지랄을 부려 보나 마음이 후련할까. 아침이 늦었다고 시장기만이 구미를 돋운다.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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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하자. 마음을 아끼지 않아 오건만 한 칸의 집, 한 자리의 일터조차도 이렇게 정에 등졌다. 일본이 물러가고 독립이 되었다. 자기도 반가웠거니와 제 땅에 뼈를 묻게 된다고 기꺼워하시던 어머니---아버지도 고로에 뼈 못 묻힘을 못내 하하셨다. 자기만 고로에 묻힐 욕심이 있으랴, 아버지의 유골도 같이 모시고 나가야 한다.밤잠을 못 자고 무덤을 파서뼈마디를 추려 가지고 나온 것이 한 사람의 잠자리도 정하지 못하였다. 나올 때에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온 그대로 어머니 곁에서 초막살이다. 묻기야 어딘들 못 묻으련만 고국도 고향이 그렇게 그립다.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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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위에서 까치가 푸뜩 하구 날아만 나두 가슴이 막 내려앉는 것 같구나! 글쎄 --"
어제 아침에도 낙엽을 한아름 긁어 안고 들어오며 한숨과 같이 허리를 펴는 어머니의 말을 무어라 받아얄지 몰랐다.
귀국한 지가 일년, 지난 겨울이 곱돌아 오도록 집 한 칸을 마련 못 하고 초막에다 어머니를 그대로 모신 채 이처럼 마음의 주름을 못 펴드리는 자기는 구관을 제대로 가진 옹근 사람 같지가 못하다. 가세는 옛날부터 가난했던 모양으로 아버지도 나와 한가지로 만주에서 시달리다 돌아가셨다지만 제 나라에 돌아와서도 이런 가난을 대로 물려 누려야 하는 것이 자기에게 짊어진 용납 못 할 운명일까. 만주에서의 생활이 차라리 행복이었다. 노력만 하면 먹고 살기는 걱정이 없었고 산도 물도 정을 붙이니 이국 같지 않았다. 노력도 믿지 않는 고국 --- 무슨 일이나 이젠 하는 일이 내 일이다. 힘껏 하자.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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