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큰년이는 살구나무 아래에까지 와서는 나무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으니 마치 겨울에 눈 내리는 것처럼 꽃송이가 펄펄 날아 내 머리와 옷이며 그 애에게까지 빨갛고 희게 떨어집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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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날도 빨래를 가시며 싸움하지 말고 잘 놀아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시며 누룽지를 두 아이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시고 가셨습니다.

두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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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잠시만 빨래 같은 것을 하시게 되어 집에 안 계시면 의붓아버지까지라도 한목이 되어 나에게 그 무서운 눈을 흘기며 조금만 잘못하면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반길에 가까워 오는 저이건만 아직까지도 그 눈 흘기는 기억이 문득문득 생각 키울 때가 많습니다.

어법상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에 학대 당한 기억은 그 학대를 당한 사람의 머릿속에 평생동안 기억되어 그 사람의 인생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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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야, 너 싸우지 마라. 너 그러면 난 이렇게 눈 감고 죽고 말겠다."

모든 부모님이 똑같은 마음이겠지만,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시는 까닭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빠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아이들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잘 드러난 부분입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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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 의사 없음]

나의 유년시절(幼年時節)

5세에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일곱살에 고향인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생계가 곤란하시므로 더구나 장차 의지할 아들도 없고 다만 딸자식인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살아가실 수 없는 고로 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에 의붓아버지에게는 남매가 있었으니 남아는 16,7세 가량이었으며 계집애는 내 한 살 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 지 이틀도 지나기 전에 벌써 우리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속상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붓아버지까지라도 적지 않게 실망을 하여 나중에는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까지 한 기억이 아직껏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싸움을 하고 울 때마다 어머니는 너무 속상해 우시면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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