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하도 답답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 그 키를 한 번 재볼까 했다마는, 우리는 장인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 마디 하는 법이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제 - 미 키두!"
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 말락 밤낮 요모양이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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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정하고 일을 했어야 했다. 덮어 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혼례를 시켜 주마, 고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가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 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이 어련히 알아차려서, "어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 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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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건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일을 좀 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벙벙하고 만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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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님! 인제 저…… ."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아가 찼으니 혼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혼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얘기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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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Spring, Spring

지은이 김유정
펴낸날 2018년 11월 06일
펴낸이 김인정
펴낸곳 미니문고
편집자 홍차
연락처blueprinte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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