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이 ‘질주’하면 ‘질책’ 받는다!
롤프 도벨리(지음), 유영미(옮김)(2018).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서울: 나무생각.
롤프 도벨리(지음), 유영미(옮김)(2018). 《그런데, 삶이란 무엇인가》. 서울: 나무생각.
살면서 대학교육을 받는 운 좋은 사람도 있지만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대학은 꼭 경제적 여건이 따라줘야 가는 학교가 아니다. 기존 대학에 가지 못하면 대학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대안적인 대학이 많다. 예를 들면 제가 설립 준비 중에 있는 들이대학도 여기에 속한다. 들이대학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면서 몸으로 체험적 지혜를 배우는 대학이다. 들이대학교는 그럼에도(島)라는 섬에 있다. 들이대학교와 어깨를 겨루는 대학이 최근에 또 나타났다. ‘그런대’라는 대학이다. ‘그런대’는 ‘그런데’에서 유래된 대학 이름이다. ‘그런대’에 가면 ‘그런데’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세상의 이치를 배워나가는 위대한 철학자가 있다. ‘그런대’는 ‘그런데’가 생각하는 문제와 질문으로 자각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교육철학을 대학의 설립이념과 교육방침으로 삼고 있다. ‘그런대’에 입학하면 전공에 관계없이 두 개의 교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롤프 도벨 리가 쓴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와 《그런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배우는 교과목이다. 이 두 과목은 인간은 질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는 가운데 인간과 삶, 자연과 우주의 원리와 이치를 배울 수 있다고 가정한다. 교육의 핵심은 정답 찾기보다 질문이나 문제제기를 통해서 심오한 각성과 통찰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물어야 할 질문들, 정체를 노출시키는 엉뚱하고 진지한 질문들, 날카로운, 혹은 새로운 질문들, 당신의 속을 슬쩍 떠보는 질문들, 마음속 소중한 것을 이끌어내는 질문들,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며, 지적인 질문들, 상냥하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질문들, 자신의 목표를 새롭게 만나게 하는 질문들, 탁월한 삶의 철학이 담긴 질문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묻고 답하는 질문들이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와 《그런데, 삶이란 무엇인가 》책을 관통하는 질문들이다.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질문으로부터 배우고, 멍청한 사람은 현명한 대답으로부터 배운다.” 브루스 리(Bruce Lee)의 말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정답을 찾는 모범생 육성에 교육적 노력을 다해왔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질문을 잘하거나 문제를 잘 내는 문제아, 즉 모험생이다. 모험생은 주어진 문제에 정답을 찾기보다 그 누구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답을 찾으러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이다.
‘그런대’에서 육성하려는 인재가 바로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와 《그런데, 삶이란 무엇인가》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던져놓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거듭하며 다양한 체험을 통해 온몸으로 배우는 문제아다. “한 사람의 수준은 대답이 아닌 질문 능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 18C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의 말이다. 질문 능력을 배우는 하나의 대안이자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두 과목을 공부하러 떠나보자.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당신의 생명이 어떤 상황에서 잉태되었는지 알고 싶은가요? 합의된 관계였는지, 술이 작용했는지, 당신이 만들어지는 순간 어떤 생각이 오갔는지 등등”(16쪽). 사실 이런 질문에 호기심으로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연을 품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고 필연을 전제로 만난 우연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질문을 받으면 그 문제를 갖고 씨름을 시작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태어난 사람이다. 이제 운명을 거슬러 살아가야지, 살아가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20쪽) 돌직구 같은 질문을 받는 순간 한 참을 사색에 잠기다 사색이 될 뻔했다. 솔직히 아직 나를 잘 모르겠다는 고백이 정답일 수도 있다.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를 탐구하고 실험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몸소 경험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밝혀나가는 험난한 탐구 여정인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부단한 탐구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 평생 공부하는 여행을 즐기는 자세로 살아가는 길만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지름길이다.
“삶의 이유와 목표를 근본적으로 캐물은 것이 언제였나요? 아니면 그때그때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가나요?”(26쪽). 많은 사람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사는 이유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을 생각해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왜 그렇게 어디로 빨리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은 실종된 지 오래다. 나를 멈추게 만드는 매개체가 바로 질문이다. 익숙한 질문이라도 생각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여기가 어디지?” “여기 있는 나는 누구지?” 이런 세 가지 질문이 내가 예전에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은 다음 병원에서 정신이 깨어난 다음에 던진 질문이다. 익숙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9쪽).” 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해답은 하나밖에 있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그런 해답을 찾는 능력이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과 타성에서 벗어나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깨달음으로부터 행동에 이르는 편이 나은가요? 행동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편이 나은가요?”(48쪽). 어떤 전략이 옳은 답인지 생각하기보다 어떤 생각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는 답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통찰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공부를 하면서 책상에 앉아서 생각해왔다. 사실 그런 생각의 반복이 오히려 기존 생각을 불필요한 생각의 감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통찰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 행동이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137쪽). 칩 히스와 댄 히스의 《순간의 힘》에 나오는 말이다. 행동하다 보면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깨달음이 선물로 다가온다. 경이로운 깨달음이 우리 삶에서 실종된 이유도 사실 너무 앉아서 공부만 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기적이고 경이로운 풍경이자 깨달음의 천국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 얼마나 놀람을 배제하고 살아가나요?”(56쪽). 인생에서 놀람이 없어진다면 경이로운 감탄이나 생각지도 못한 기적을 기대할 수 없는 밋밋한 삶의 반복될 것이다. 뜻밖의 놀람이 많은 인생일수록 뜻밖의 생각, 틀 밖의 깨달음으로 수를 놓은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당신이 병으로 인해 정확히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52쪽).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볼 질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고민한다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을 때 내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그 기간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를 생각하면 정말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처럼 긴장감 없이 보내면서 지루한 삶을 답답하게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비록 나는 세상에서 아무 미세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 미약한 인간에 해당되지만 나는 나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 이유를 갖고 살아가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독특한 존재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나다름대로 내가 속해있는 공동 체세 기여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삶이 이 지구 상에서 행복이 조금 더 늘어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하나요?”(52쪽). 우리는 어차피 인간이 인간을 만나 관계를 그물을 만들고 그 속에서 공동체가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의존적 인간인 것이다.
“당신의 기쁨을 망가뜨리는 최대의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66쪽). 기쁨을 망가뜨리는 원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기쁨을 망가뜨리는 주범이 아닐까. “기쁨과 아픔의 근원은 관계입니다. 가장 뜨거운 기쁨도 가장 통절한 아픔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물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358쪽). 신영복의 《담론》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사람에게 또한 기쁨의 근원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서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타인을 본 순간 호감을 느낄지 그렇지 않을지는 무엇으로 결정되나요?“(155쪽). 순간적으로 호감도 여부를 결정하지만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그 경지에 어떻게 올라갔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 같이 “그냥”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지(mastery)에 이르는 비결은 언제나 신비(mystery)에 쌓여 있다. ‘마스터리’는 언제는 ‘미스터리’다. 인간관계의 달인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지에 오른 인간관계 전문성도 결국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도 축적되는 깨달음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사랑할 때 당신은 결심하고 사랑을 하나요?”(166쪽).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면 되겠다는 느낌이 온다. 바로 결심하고 결단하며 결행한다. 결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던져 상대를 사랑하는 실천으로 옮긴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몸을 던져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거하는 실천이다. 어떤 사랑은 결심 이전에 마음이 끌려서 빠져버리는 순간 시작될지도 모른다. 사랑은 머리가 결심한다고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지성을 자극해서 사랑을 방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평생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느낌이 통하는 사람과 만나 따뜻한 정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이 흐르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나간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인간관계 속의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은 곧 여행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떠나는 여행 말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여행사는 무엇일까요?”(208쪽). 삶이 여행이라면 그 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는 인생여행 기획사가 되지 않을까. 내 인생을 주기적인 여행을 통해 깨달아가는 즐겁고 신나는 인생여행으로 생각하면 어떨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또한 낯선 사람과의 마주침을 가져다준다. 낯선 사람과의 마주침 속에서 얼마나 많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지 그것 자체가 경이로운 기적이고 감동이며 행복이다.
“경력에 대해 보장보험을 들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보험료는 얼마쯤 내고 싶은가요?”(102쪽).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뜻밖의 질문이다. 경력 보장보험. 나의 경력은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의 경력 가치를 산정해서 보험료를 산정하는 비즈니스도 재미있는 직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순간 자신의 경력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받고 다음 경력으로 이동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신종 보험업은 승승장구할 것 같지 않은가? 모든 경력은 심각한 난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성장하는 정신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지에 오른 경력자는 모두 몸이 뒷받침되는 정신력의 승리다. “정신력을 위한 정력제가 있다면 당신은 얼마를 주고 구입할까요?”(232쪽). 이런 질문 역시 전대미문의 색다른 질문이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질문하기도 전에 하찮다고 생각하고 묻지 않으면 대중 속에 묻혀버린다. 물음의 본질은 물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추구하고 탐색하면서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려는 안간힘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한 답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현명한 사람의 어리석은 질문으로부터 배우는 게 더 많다.” 이소룡이 한 말이다.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질문 속에서도 색다른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분투노력한다. 그래서 질문은 익숙한 집단의 소속감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진입하려는 용기 있는 결단이다.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평온한 세계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관성이 생긴다. 관성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의 타성에 통렬한 물음을 제기할 때 멈칫하고 멈추면서 삶의 근본과 본질을 생각하는 탐구를 시작한다.
《그런데, 삶이란 무엇인가》
“물음의 역량은 물음이 향하는 대상은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게 묻고 있는 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또 자기 자신을 물음의 대상의 위치에 놓는다”(424쪽).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나오는 말이다. 물음은 평온한 사고체계에 편지 풍파를 일으킨다. 묻지 않으면 평온했던 삶인데 어느 날 떠오르는 질문을 관심 있게 던지는 순간 스스로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물음의 대상이 아니었던 자신이 물음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 위험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나요?”(8쪽). 확실하게 알려고 노력하는 삶이 인생 전반에 걸쳐서 펼쳐지는 게 아닐까. 지금 이 순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뭔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오히려 나의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장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한 때 기분을 기쁘게 만들어주던 사람이 더 이상 기쁨을 주기는커녕 피곤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돌변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았나요?”(14쪽).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이유나 목적이 불문명한 채 사회나 조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힘든 세상에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반성과 성찰이 시작되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듯 지옥으로 간주되는 타자의 눈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주관과 가치 기준에 따라 살아가면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살아가면서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살아지는 수동적 삶에서 벗어나 나의 의지와 자유대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살면서 몇 번이나 새롭게 시작한 경험이 있나요? 그 선택이 잘한 것으로 드러난 적은 몇 번인가요?”(16쪽). 과연 사람은 살아가면서 늘 새로운 경험을 꾸준히 반복해서 시도하는 것일까? 아니면 늘 하던 일을 반복하면서 지루함과 짜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일까. 새로운 경험이 수반되는 도전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하면서 어제와 비슷한 일을 반복하면서 습관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경험을 바꾸지 않고 늘 가던 길을 가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인생이 지루하고 재미없을까. 그래서 이런 질문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의미심장하다. “당신의 인생 여정의 도로 상태에 대한 보고서에는 어떤 말이 적혀 있을까요?”(36쪽).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그리고 가보고 싶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선망의 길에서 나는 어떤 족적을 남기고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늘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을 간직할 때 삶은 언제나 오늘과 다르게 펼쳐지는 색다른 여행이다. 오늘을 어제와 다르게 사는 방법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핵심가치를 정해서 그것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당신의 가치는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된 것인가요?”(77쪽).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다섯 가지 가치는 열정, 혁신, 신뢰, 도전, 행복이다. 어떻게 이 다섯 가지 가치를 선정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내 삶을 대변하는 다섯 가지 단어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선택받은 단어다. 5개의 가치를 다시 세 개로 줄이라면 열정, 도전, 혁신이다. 세 가지 가치를 다시 한 가지 단어로 말하면 도전이다. 나는 이 가치대로 사람을 만나고 스토리를 만들며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세상을 바꿔나간다.
이렇게 가치대로 살다 보면 당연히 나의 값어치, 즉 가치도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 즉 “당신은 얼마의 가치가 있나요?”(195쪽)라는 물음에도 잠시 머뭇거림은 있겠지만 그리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다. 가치판단 기준이 분명하고 딜레마 상황에서도 이런 가치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면서 살았다면 내가 살아온 삶을 녹여내는 나만의 책도 쓸 수 있는 위치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자서전을 어떤 문장으로 끝맺고 싶은가요?”(82쪽). 사람은 책이다. 자기 고유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서전을 쓰면서 마지막 결론에 어떤 문장으로 장식하고 싶은지는 더 고민해볼 화두다. 다만 우리가 하루하루 전쟁처럼 살아내는 인생은 영원히 미(美)완성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도 멈추지 않고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영원한 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당신이 묘비명으로 뭔가 위트 있는 말을 골라야 한다면 어떤 문구를 낳고 싶은가요?”(138쪽)와 같은 마지막 문장을 또 한 번 생각해보는 질문이다. 미리 묘비명을 생각해놓고 그 묘비명에 담긴 삶의 의미와 가치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나마의 의사결정과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이 확고하면 “당신에 대한 설명서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요?”(183쪽)라는 질문에도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서전과 묘비명을 미리 구상하면서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자기의 존재 이유, 즉 자유를 추구하는 행복한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마음결을 가다듬어주는 문장들이 있나요? 그로 인해 살 수 있다는 마음의 문장들?”(174쪽). 남이 남기 문장일 수도 있고 내가 몸으로 경험하면서 깨달은 교훈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 언제나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때로는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한평생 위안이 되는 한 문장을 만난다. 그런 문장이 바로 인두 같은 한 문장이다. 그런 문장이 무엇인지는 책을 읽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다. 예를 들면 질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언급하는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나오는 문장은 책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다. “대답은 과거에 머물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p.126).” 대답만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질문을 던질 때 이제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관문도 열리는 법이다. “신생아가 탄생하자마자 첫울음을 터트리지 않고 첫 문장을 말한다고 한다면, 세상에 나오자마자 당신은 어떤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을까요?”(66쪽). 이런 질문을 던져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난생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다. 그리고 질문을 받아보지 않았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역시 질문은 전대미문일 때 색다른 관문을 열어가는 열쇠를 마련해준다. 아이의 첫울음의 의미를 번역해서 첫 문장으로 번역해내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된다면 세상은 더 재미있고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자 역시 “질문은 아포리즘을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포리즘보다 더 전복적이면서도 짓궂게 생각과 마음을 조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5쪽)라고 하지 않았던가. 전복적이고 짓궂은 생각이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불모지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많이 배우면 행복해질까요?”(98쪽). 이런 질문 역시 배움과 행복의 관계를 따져 묻는 짓궂은 질문일 수도 있다. 배움의 양이 행복을 결정하지 않고 배우는 과정에서 배움의 주체가 몸으로 경험하며 느끼는 충만감과 만족감이 행복을 결정한다. 무턱대고 많이 배운다고 저절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왜 공부라는지, 공부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공부하는 과정을 즐겁고 재미있는 지적 탐구 여행이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존재한다. 그 만남 자체가 사람에게는 엄청난 공부인 셈이다. “당신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인가요?”(94쪽).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과 친구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똑같지 않을 수 있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는 과연 어떤 친구일까?
“우주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141쪽). 미국의 메리 올리버 작가이 《휘파람 부는 사람》이라는 책에 보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다. 사실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별개의 역량에 해당하지 않고 같은 능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해주는 공인인증서가 있으면 좋을까요?”(110쪽). 저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공인 인증서로 사랑을 증명하는 시대는 사람이 하는 사랑을 인증서로 판단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가능한 생각일까?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의 파노라마다. 언어로 번역해낼 수 없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어찌 다 객관화시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비슷한 맥락에서 제기된 질문도 있다. "감정 관리를 하지 않고 전문가들에게 맡긴다면 얼마나 더 좋아질까요?"(121쪽). 과연 감정관리 전문가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인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감지해서 적당한 해결책을 투입해주면 감정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질문 자체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오는 색다른 질문임에 틀림이 없다. “당신의 속마음 뒤에는 어떤 속마음이 감추어져 있나요?”(146쪽). 마찬가지로 내 속마음을 움직이는 본연의 속마음, 아마 본능적 욕구가 감춰져 있으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통제하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생각이 얼마나 깊어야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을까요?”(148쪽). 생각의 깊이도 상대적이다. 다만 깊은 생각의 소유자는 그만큼 평소에 당연하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물론의 세계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과연 그럴까를 의심한다. 의심에 그치지 않고 의문을 탐침을 통해 의구심을 해소하고 색다른 질문을 던져 궁긍함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한다. “답 없는 질문은 두렵지 않지만, 질문 없는 답은 너무나도 두렵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이다. 질문 없이 답을 추구하는 시간이 반복될 때 사람은 멍청한 사유체계 안에서 어리석은 짓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 청각의 한계: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듣는다(302쪽).”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한 말이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사람은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듣는다는 말이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대’학교에서 핵심 교과목으로 삼는 두 권의 책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수많은 질문이 제기된다. 니체의 말대로 그 많은 질문 중에서 내가 잘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을 포착,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쓴 것이다. “사계절 외에 또 하나의 계절, 즉 다섯 번째 계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봐요. 이 계절이 성격을 띠도록 디자인할 건가요?”(159쪽). 나는 한 번도 사계절 말고 다른 계절을 내 맘대로 디자인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호기심으로 포착한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에 관한 질문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답이나 정답이 있나요?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에 비추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행복이 악기처럼 열심히 연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면 좋을까요?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 가며 힘들게 얻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나요? 행복을 연습으로 터득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239쪽). 질문에 질문의 꼬리를 물고 긴 항해를 해왔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생각의 씨앗이 잉태되는 질문들이다. “만약 곧 죽을 상황에 처했고, 목숨을 구할 방법을 단 1시간 안에 찾아야만 한다면, 1시간 중 55분은 올바른 질문을 찾는 데 사용하겠다. 올바른 질문을 찾고 나면 정답을 찾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 위해 우리가 빠져나왔던 관문과 전혀 다른 관문으로 다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탐문 여행을 떠나야 한다. 지금 여기서 생각하는 질문의 가능성이 다른 관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각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해주는 공인인증서가 있으면 좋을까요?"(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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