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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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첫 장을 연 사람은 바로 소크라테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크라테스는 글을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살아남았다. 바로 플라톤이라는 제자의 저술 덕분에, 우리는 선각자 소크라테스를 알게 됐으며,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 그래서 플라톤의 여러 저술은 서양철학의 시초라고 할 만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플라톤의 저서를 기점으로 철학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고찰한 것은 플라톤뿐 만이 아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 크세노폰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책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아간 크세노폰, 그 역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고, 스승에 대한 모습을 <회상>이라는 책으로 남겼으며,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은 제목인 <향연> 역시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크세노폰은 여러 저술을 남긴다. 군사학, 승마, 역사서(헬레니카), 법제, 경영론(농지에 대한) 등등 다방면적이고 실용적인 저술을 남긴다. 플라톤이 인식론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가지고 철학을 발전시켰다면, 크세노폰의 글들은 그런 주제보다는 다소 형이하학적 고찰로 세상을 바라봤고 그런 시각으로 저술을 써 왔었다.

 

이 책도 그런 크세노폰의 저서 중 한 권이며,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칭송받는 책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이 책을 꼽아, '서양에서 최초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라며 극찬을 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키루스 대제에 대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인 키루스 대제는 페르시아 제국을 강건하게 만든 제왕이었으며, 그의 치적 덕분에 페르시아는 동방의 패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1897년 영국인 고고학자는 에사길라 터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나는 키루스다. 세상의 왕, 위대한 왕, 강력한 왕,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만방의 왕, 얀산의 위대한 왕, 테이스페스의 증손자, 얀산의 위대한 왕 키루스의 손자, 얀산의 위대한 왕 캄비세스의 아들 키루스다.'

 

이 오만하고, 나르시시즘에 극에 다다른 글귀의 주인공은 키루스 대제였다. 그는 페르시아 왕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위대한 왕이었다. 바빌론 지방을 정복하고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던 관용이 있던 왕이었다. 그는 그리스 역사서들과 구약 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군주였었고, 그가 있어서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크세노폰은 여기서, 페르시아의 위대한 군주를 고찰한다. 이 전기를 통해, 페르시아의 군주의 어린 시절부터 치적을 모두 검토하고 죽음과 결론에 이르기까지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키로파에디아>라는 책 제목은 우리말로 하자면 '키루스의 교육'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크세노폰은 강력한 리더가 됐던 키루스의 원인에는 '교육'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책 제목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 교육에 대한 논의는 1권에만 그친다. 책은 총 8권으로 이뤄졌는데, 어린 시절과 교육에 대한 부분은 1권에만 국한되어 있다. 나머지 2권부터 8권까지는 키루스가 왕위에 올라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제국을 일궈내는지에 대한 부분이 그려져있다.

 

다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에 나오는 키루스 대제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은 크세노폰의 저술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크세노폰의 다른 저작 <아나바시스 - 페르시아 원정기>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등장한다. <아나바시스>는 크세노폰이 용병으로 갔다 되돌아온 자전적 회고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소위 지금 말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같은 성격의 책. 그 과정을 크세노폰은 사실적인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키로파에디아>도 허구가 섞여 있다. 물론 이 허구의 관점은 지금 서양 역사에서 통사로 받아지고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근거해서 평가한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역시 사실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는데 어쨌든 지금 학계에서는 <역사>에 나온 사실을 진실로 규정하고 있다. 혹여 <역사>가 거짓일 가능성,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어쩌면 <키로파에디아>에서 그리는 키루스 대제가 사실의 모습일 가능성도 있겠다.

 

일단 그런 면에서 보자면 <키로파에디아>는 역사서도 영웅의 전기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소설도 아닌, 그야말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각색된 역사 소설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플라톤의 책과 가장 대비되는 것이 크세노폰의 저술은 대체적으로 '리더십'과 '올바른 자질의 지도자'에 대한 고찰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 <아나바시스>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나오며, 특히 이 <키로파에디아>는 직접적으로 키루스 대제를 통해 우리 한 번 올바른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저술 동기까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는 이 두 가지 책을 리더십을 배울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하는 명저의 반열에 올려다 놓고 있다.

 

올바른 통치자에 대한 논고는 플라톤 역시도 자신의 저서에 정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국가>를 꼽을 수 있겠는데, 다소 <국가>의 주제가 중구난방, 여러 부분을 고찰하고, 위정자의 대한 부분을 강하게 꼽기보다는, 철학에 대한 고찰, 인식론에 대한 부분, 영혼에 대한 부분 등등 여러 부분으로 주제가 나뉘어서 설명되고 있다면, 크세노폰의 책은 한 가지 주제에 입각하여서 일관되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 입장에서 보자면 페르시아는 닮고 싶지 않은 족속들이다. 정치체제도 다르고, 거기다 페르시아와 대규모 교전도 해 본 입장이기 때문에 굉장히 페르시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는 크세노폰도 많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제 군주를 옹호하는 듯한 철인정치를 이야기 한 것처럼, 크세노폰 역시도 민주정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을 가졌을 법 하겠다. 아마 이 부분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점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러한 대안으로 크세노폰 역시 옆 나라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크세노폰은 아테네에서 추방된다. 스파르타의 체제를 따르는 반동자라고 지목되어서 추방됐는데, 크세노폰이 스파르타 체제를 옹호하고 이상으로 뒀다는 점도, 잘 살펴보면 민주주의보다는 전제적인 통치에 더 옹호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겠다.

 

<키로파에디아>를 읽으며 느꼈던 점은 키루스 대왕은 다소 인자한 국왕이라는 거리가 멀었다. 냉정한 판단을 주로 하고, 올바른 명성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때론 냉혹하게 때론 비정한 모습도, 때론 부하들에게 모순적인 모습도 보이곤 했다. 동양으로 말하면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는 그런 군주였었다.

 

가장 뛰어난 부분은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점이다. 아무래도 고대의 왕들 중 명군들은 군사적인 계책이나 묘계에 뛰어났는데, 키루스 대제 역시도, 군사들의 심리를 잘 알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대부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크세노폰은 주목했겠다. 수사학이 판치는, 소피스트들이 판치는 허세와 허영의 도시 아테네에서 실용보단 명분과 허영에 집착하는 민주정의 맹점을, 키루스의 인생을 통해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를 넘어 그리스 전역을 점령하여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리더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키루스가 받은 교육 중 가장 인상에 깊은 것은, 부왕인 아버지께서 키루스에게, '부하보다 너는 더 인내하고 부하보다 너는 더 양보하는 마음으로 남 위에 서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체 활동 역시도 중시하였다. 가장 먼저 배우는 덕목은 지식이 아닌 '정의' 와 '자기절제' 능력이었다.

 

키루스는 말이 많았고 수다스러운 아이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묵하고 말수가 없어졌다.

 

교육을 통해 키루스는 강압적인 충성보다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고민 속에서 때론 냉혈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때론 인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인자함이나 무조건적인 냉혈한의 모습은 키루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크세노폰의 저작은 당시에 조망 받진 못 했어도, 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한니발을 이긴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 책을 평생 가지고 소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키루스 대제를 모방하려고 애썼고, 닮으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그는 위기의 로마를 구했었다. 자마에서 그는 한니발의 군대와 맞서, 승리하였고, 무한한 영광을 조국에 선사했었다. 그 스키피오의 업적 속에는 <키로파에디아>가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 책을 언급한다. 올바른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키루스 대제의 모습을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칭찬했다.

 

책은 다르지만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감행할 때, 참고했던 도서였었다. 물론 알렉산더는 이 책을 지리서로 활용했다고 하지만, <아나바시스> 역시, 지도자에 대한 논의가 많은 책이라, 알렉산더는 그 부분들을 숙고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거기다 후대에 몬테펠트로 공작이 '군주의 거울' (군주의 필독서)이라는 이름으로 6가지 책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 <키로파에디아>가 들어 있다. 나머지 책들은 다음과 같다. 투퀴디테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 거의 대부분이 현실론적인 책들이 많다. 이 들 중, 가장 시대적으로 앞선 책이 <키로파에디아>다.

 

플라톤의 이상론적 군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지도자이지만, 플라톤의 철인보다는 지극히 더 현실적인 모습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서구가 자행하고 있는 무조건적인 패권주의들도 생각했다. 기본적 방향은 키루스 대제와 같을지라도, 서구의 패권주의 안에는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힘과 힘으로의 강압적인 이해관계만이 남아 있다. 키루스 대제는 현실적인 군주였지만, 인정이 없는 군주는 아니었다. 책에서 온 백성들은 키루스 대제를 제왕 중의 제왕으로 묘사하고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과 지금 서구의 패권주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서구에서 '리더의 덕목'을 다룬 책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올바른 군주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은 그 <군주론>에 걸맞는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두 책을 상호 보완적으로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크세노폰의 저작이 많은 한계(사실성)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의 저서는 숱한 영웅들의 귀감이 됐다. 내가 읽었을 때도 좋은 내용들이 많았고, 그 오랜 고대에서 이런 현실론적인 시각의 저술을 한 크세노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또 한가지 책의 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은 그리스 원전번역본이 아니다. 영역본을 바탕으로 해독한 책이다. 따라서 조금 아쉬움이 있긴 했는데, 읽으면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천병희 선생님의 고전 시리즈와 뭔가 표지 디자인이 비슷하다. 의식하고 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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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우리를 웃게 하는 30가지 유형의 성격들
테오프라스토스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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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책이었다. 고대 고전들, 정평 난 책들은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는 책 들이었는데, 처음 보는 책이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볼 책은 많았다. 이 책은 저자인 테오프라스토스에 대한 짤막한 지식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미지의 텍스트였다. 하긴 짤막한 지식이랄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를 이어 리케이온 2대 학장이 되어 학당을 번창시켰다는 것, 그리고 메난드로스의 스승이라는 점 그것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당장을 이어받고, 자연 과학에 몰두를 했다. 그는 새로운 이론을 밝히기보단, 자연 과학의 대중화에 힘썼다. 그래서, 그의 시대에 학당은 굉장히 성공했다고 한다. 자연과학에 몰두한 그였지만, 인간성을 고찰한 이 책 <캐릭터>가 대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똑바로 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라서, 게다가 리비우스의 <로마사> 등등의 중요한 고전들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은 우리나라라서, 이런 주목받지 못한 고대 저자의 저작이 번역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반가운 마음에 역자와 출판사를 보니 익숙했다.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를 번역한 이은종씨였고, 그 <키로파에디아>를 출판한 주영사라는 출판사였다. 물론 원전 번역이 아니고, 영역본을 이중 번역한 책이었다.

 

이전 번역본인 <키로파에디아>를 보면서 매끄럽게 읽어나가서, 이번에도 믿고 읽었다. 책은 간단했다. 120쪽의 짧은 분량이었으며,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사서 보기보단, 그냥 서점에 가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정도로 짧은 책이다. 하지만 나는 구매를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기에서 이겨서 선물을 받은 책이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 나는 책을 웬만하면 소장한다는 원칙이 있고, 두 번째, 일단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볼 만한 내용이라서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캐릭터라는 책 제목에서 풍기듯, 인간성에 대한 테오프라스토스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인 선한 인간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를 웃게 하는 30가지 유형의 성격들'이라는 것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부정적인 속성들의 인간들을 30가지 유형으로 나눠 짧게 서술하는 책이었다.

 

그 30가지 유형은 다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가식꾼,아첨꾼, 겁쟁이, 참견쟁이, 눈치 없는 사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낭설꾼, 구두쇠, 멍청이, 퉁명스러운 사람, 미신에 빠진 자,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 의심병, 불쾌한 사람, 허영심,수다쟁이, 성가신 사람, 무뢰한, 상냥한 사람, 무례한 사람, 불결한 사람, 조야한 사람, 인색한 사람, 거만한 사람, 허풍쟁이, 과두정의 집정자, 험담꾼, 탐욕스러운 사람, 만학도, 악한 사람.

 

 

이 책은 인간의 부정성을 세분화하여 나눠 쓴 책이다. 그런데 상냥한 사람과, 만학도는 지금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문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저렇게 번역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번역서 대로 써 봤다.

 

어쨌든 우리에게 다소 긍정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여지는 상냥한 사람과 만학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주목하기보단 부정적인 면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았다.

 

상냥한 사람은 어쨌든, 줏대가 없고, 자기 의견이 정확하지 않는 부분을 논하고 있었고, 만학도에 대해서는 배움에 열중하기보다는 젊은 청년들의 사교 클럽에서 그 젊은이들을 탐하는 늙은이들을 꼬집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늙은 사람들이 젊은 청년들과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즉 남색이 아주 보편적으로 유행했다. 소크라테스도, 알키비아데스와 그러한 관계였었다. 물론 정신적인 사랑의 측면이 강했지만.) 개인적 사견이지만, 아마 테오프라스토스가 꼬집고 있는 만학도들은 배움의 열의보단, 남색의 육체적인 쾌락만 탐하는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에서 나온 대로 여성과 함께 경쾌한 스텝을 맞춰 춤을 춘다는 대목도 있으니 어쨌든 배움에 목적을 두지 않은 만학도들을 꼬집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지금으로 본다면, 늙은 고위층이, 주점에서 여인들을 탐하는 뭐 그런 부분도 연상됐다.

 

책에서 나온 30가지 유형은 선과 악의 가치로 나눈 것은 아니었다. 쉬운 예로 상냥한 사람과 같은 사람은 어쨌든 악의는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선악의 가치판단은 아니더라도, 테오프라스토스는 살아가는 인간 유형 중 선악을 떠나 부정적으로 비치는 인간들에 대해서 짤막하게 서술을 하고 있었다. 서술상의 특징은 그 유형의 인간에 대해 고찰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그런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혹은 그런 인간들을 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철저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자신 스스로 비치는 30가지 유형의 인간들의 특성만을 깔끔하게 고찰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

 

짤막한 본문을 읽으며, 분류를 나눈 부분에서 중복되는 유형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사람 인간들이 하는 습성들을 예를 들어 많이 설명하는데, 그 예를 통해서 그 시대 고대 그리스의 생활이나 생활양식 등등을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었었다. 말하자면 텍스트 자체가 주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도 재미있었지만, 텍스트 전개에 사용된 비유나 예시를 통해, 그리스 시대 사람들에 대한 생활상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그런 부분도 좋았었다.

 

확실히 책을 보며 느낀 점은, 서양 사람들은 굉장히 세분화를 좋아한다. 이 부분은 동양의 윤리서 공자의 <논어>와 서양의 윤리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차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동양의 윤리는 뭔가 큰 틀을 제시하고, 전체적인 입장에서 세부적인 것을 조망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서양의 책들은 동양의 거시적 관점보다는 미시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의 덕목에 대해 정확하게 세분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는 '인'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윤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캐릭터>도 전형적인 서양 철학에서 나타내는 주제의 명확한 세분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분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목차가 아닐까? 바로 인간을 웃기가 하는 유형을 30가지로 세분화하여 나눈 점 말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겠는데, 여러 인간성을 고찰한 책들이 있고 고전이 있지만, 부정적인 인간 상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이 책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부분에서도 책은 의미가 있었다.

 

다만 비판을 좀 해 보자면, 테오프라스토스가 명확하게 분류한 30가지 인간상이, 인류의 부정적인 인간상 유형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진 않다. 예를 들면 가식꾼에서 나온 부분들이 허풍쟁이에 나온 인간과 많이 닮은 점, 뭐 이런 자잘한 부분들까지 따지자면 이 책은 완벽하지 못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테오프라스토스의 고찰이 놀라운 점은, 고대에 살았던 인간들과 현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인간성이 비슷하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기술 발전과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지만, 사실 인간성은 많이 나아진 부분이 없다는 점. 그 점을 저자의 논고에서 발견했다. 고대에 발견한 부정적인 인간성에 논고가 지금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부분들도 굉장히 많았다는 점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기 힘든 것이 아닌 것인가, 그런 회의적인 생각도 잠시나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하게 저 30가지 언급한 것들 중, 나 너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덕목이 몇 가지가 될까? 어쩌면 저 30가지 유형은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대입해서 보거나 그랬지만, 의식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입하여서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이 책에 나온 논고에 나의 부정적인 인간성도 몇 가지가 드러났었고, 나는 그때 많이 부끄러웠었다.

 

작은 텍스트라고 해서, 짧은 텍스트라고 해서, 빨리 보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생각을 달리하고, 다른 관점으로, 작은 내용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읽다가 보면, 오히려 작은 책이 독서 시간을 더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내게 그런 책이었다.

 

책은 사실 굉장히 평이하다. 문체도 어렵지 않으며, 여타 다른 철학자들의, 저서들처럼 복잡한 논고가 있는 책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생활상이나, 습관 등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예시들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역자는 최대한 주석으로 이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긴 하지만... 한계는 있겠다.

 

살아남은 고전, 위대한 고전이라 칭송받는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을 고찰한 책들이 많다. 윤리, 정치제도, 경제, 문학 등등 모든 책이 다루고 있는 궁극적 주제는 '인간'이다. 이 책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다루는 책이기에 불완전한 논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그런 불완전한 인간 스스로를 보고 쓴 책이기에, 불완전한 매개체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을 다룬 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을 다룬 책은, 인간이 좀 더 나아지고, 완전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상징한다고 본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이 작은 책 역시도, 비록 한계가 있는 책이더라도, 작은 책과 얇은 부피 이상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탐구해가고 더 나아지려는 것, 그런 발전의 가치가 담겨있는 책이라고 생각됐다. 게다가 대중이 관심 가지지 않는 책을 발굴하여 번역하신 역자 분께(비록 중역이더라도, 학계가 관심 가지지 못한 책을 번역하신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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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상 세계의 사상 12
김부식 지음 / 을유문화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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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재미없는 책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일기장에 기록이다. 이 기록은 <삼국사기>를 보고 느낀 점을 표현한 글이었다. 

 

나에게 <삼국사기>는 그런 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국사 교과서에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힌 이 책은 그 뒤로, 독서 감상록에 단골손님이었으며, 그래서 억지로 몇 번 들춰봤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정사이자, 역사 책이라는 의의도 있다.

 

 원래 거추장스러운 타이틀이 많을수록, 어린 시절에는 그 책이 재미가 없는 법이다.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중국의 <사기>는 문학 작품으로 생각될 정도로 묘사나 표현이 살아있지만, 대체적으로 <삼국사기>의 기술 방식은 몇 월 며칠 무엇을 했다 식의, 딱딱한 사실관계만 있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가 어려웠었다.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본기(왕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메인으로 다루고 있으며, 잡저에 각국의 지리와 관작 등을 서술하고 있고, 열전(그 시대에 뛰어난 영웅의 개인적 전기)에 각 나라별로 뛰어난 인물들의 전기를 담고 있는 전형적 '기전체' 역사서였다. 아무래도 이런 기전체 형식은 중국의 사례를 본떠서 만들었겠다. 불멸의 역사책인 <사기>의 체제가 바로 기전체이기 때문에, 그 명저 아래로 동양의 많은 나라들은 기전체를 본떠 역사를 기록했었다.

 

사실 책은 신라 중심적인 내용이 많았다. 아무래도 삼국의 승자는 신라였고, 남은 기록들도 신라의 기록이 많았을 것이니 많이 참조를 했음에는 틀림없겠다. 그래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신라 본기의 분량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본기의 차례도, 신라가 가장 앞서고 있으며, 그 뒤로 고구려와 백제 순으로, 이어졌다. 즉 편제에서도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분량에서도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열전에서도 이런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부분을 보여주는데, 고구려나 백제인에 비해 신라 영웅들의 열전이 많았으며,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10권의 열전 중 3권이 바로 '김유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루했던 <삼국사기>를 다시 보게 된 이유도 '김유신' 때문이었다. 이십 대 초반, 김유신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생각보다 어른을 위한 김유신 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 문헌에 기록된 김유신의 모습들을 추적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삼국사기>에서 상세한 김유신의 열전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분량 만으로 보자면 왕 이상의 분량으로 기록되고 있었으며, 특히 한 인물의 열전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열전에 기록된 김유신은 사실 좀 신화적인 모습이 존재하긴 했었어도, 굉장히 귀감이 될 만한 영웅이었다. 내가 김유신을 주목하고 존경하게 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그 당시 기득권이 아닌 몰락한 가야파의 후손으로서, 폐쇄적인 성골 진골을 내세우는 신라 사회에서 우뚝 서게 된 부분, 기존의 이너서클이 규정한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 새로운 역사의 발자취를 만든 영웅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두 번째로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조국의 통일전선에 앞장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영달을 위한 출세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와 국가의 국익 이상의 가치 삼한의 일통을 꿈꾸며 행동했다. 그 모습은 현대의 개인주의적 출세가 만연하는 사회에 귀감이 되기 충분했으며, 그의 사상 자체는 남북 분단을 겪고 있는 지금의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세 번째로는 그는 김춘추라는 배경이 있었음에도 40~ 50대에 이르러서, 압량주 군주가 되어 존재감을 나타낸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굉장히 늦은 출세였었다. 사서에 김유신이 전선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전투는 낭비성 전투인데 이 때 김유신은 화랑들을 이끌고, 자살특공대로 돌격하여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군의 사기를 높였다. 이 낭비성 시기가 젊은 시절이었는데, 이 때부터 그는 조국을 위해 싸웠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는데, 김춘추라는 배경 덕분에 떵떵거리고 호의호식하며 타협하고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부터 흔들리지 않고,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인생의 황혼의 나이에 압량주의 사령관으로 나아가 신라를 수호하였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뤄냈다. 즉 이른 출세를 고집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기본기를 잘 닦은 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런 세 부분에서 나는 김유신이라는 인물 자체에 매력을 크게 느꼈다. 물론 그가 자행한 음험한 술수나, 극단적인 부분에는 거부감이 일기도 했었으나, 당시의 전시체제 사회상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는 부분으로 최대한 이해해보려고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삼국사기>라는 책을 통해 나의 선조인 김유신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았고, 선조가 하신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 김유신 열전을 포함하여, <삼국사기> 전권을 정독하여 읽었었다.

 

삼국의 역사를 상세하게 정리할 순 없다. 그러다 보면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세 왕조의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은 첫째로 전쟁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 그래서 그 시대에는 굉장히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로 주목했던 점은 흥성했던 왕과, 타락한 왕들을 볼 때 유심히 봤다. 그들이 융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몰락한 이유는? 그 부분들에 중점을 두고 사서를 읽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연개소문 열전을 읽으며 연개소문의 성이 천 씨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이 부분에서 <삼국사기>의 오점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백제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백제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백제사가 가장 기록이 적어 너무 아쉬웠었다.

 

그리고 열전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기존의 역사서들은 여성에 대해 열전을 남기지 않았고,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역사관으로 사서를 기술했었다. <삼국사기>의 열전에는 여성을 다루고 있지만, 그 여성들이 부귀영화나 힘을 가진 권력자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는 효녀 지은, 설녀씨, 도미 등등의 일반 백성 열전들도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도덕적으로 교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의도적인 부분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여성을 열전에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권력자가 아닌 백성을 열전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기전체 역사서에서 교양적으로 취할 부분은 본기와 열전이다. 기타 연표와 잡지(관등체제, 복식, 지리) 등등은 아무래도 본기와 열전에 비해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크겠다. 물론 사학자들이나 문헌학자들,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연표와 잡지 등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행위와 역사만을 담고 있는 본기와 열전 부분만 봐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내가 지금 <삼국사기>를 보는 것은 국사 시험을 보거나 국사 연구를 하고자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귀감과 역사를 통한 나 자신의 반성을 위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잡지나 연표 등은 사실 스킵 하면서 봐 왔었다. (게다가 연표나 잡지는 상당히 지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고전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고전 속에 대표적으로 꼽는 역사서는 중국의 <사기>가 대표적인데,물론 <사기>는 뛰어난 책이고, 표현도 굉장히 섬세한 책이다. 우리의 <삼국사기>와 비교해보자면 사실 <삼국사기>가 부족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삼국사기>는 한계가 있더라도, 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사기>는 가장 절대적인 기록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의 고대사 지식은 더 빈약했을지도 모른다. <사기>를 읽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나 역시도 틈틈이 심심하면 <사기>를 들춰보는, 그런 좋은 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같은 기전체 책인 <사기>만을 추존하고 <삼국사기>를 등외시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인식이 아닐까 싶다. <사기>를 본다는 것에 딴죽을 걸 마음은 없다만, 적어도 <사기> 2~3번 들춰볼 때 <삼국사기>는 한 번쯤은 들춰봐야 하지 않을까?

 

마치 지금 고전 풍토를 보면 조선시대가 생각난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실학이 눈 뜨기 전에는 철저하게 중국의 학문을 모방하는 것에만 머물렀었다. 그래서 이전 왕조들보다, 조선 자신만의 색채가 드물다. 선비들은 새로운 이론을 내기보단, 중국의 학문을 숭상하는 것에서 의의를 뒀다. <사기>를 맹목적으로 추존하는 부분에서 왜 자꾸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비록 기전체를 모방하긴 했어도 '우리만의' <사기> 가 존재하고 있는데 왜 우리 것은 보지 않고 타국의 역사인 중국 역사만을 절대시하고 고집하는가,

 

자고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따라서, 나는 타국의 역사서보다, 자국의 역사서를 먼저 읽고 나서야 타국의 역사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삼국사기>는 많은 한계가 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춰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내가 리뷰하는 을유문화사 이병도 선생의 역주본은 사실 직역을 한 부분이 상당히 보여서, 문체도 투박하고, 특히 국한문혼용으로 책이 기술되어 있다. 본문은 순 한글로 기록되어 있고, 역주에서는 한자를 병용하고 쓰고 있어서, 사실 대중적으로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번역본의 장점은 일단 가격이다. 상하 합쳐서 16000원이라는 점과 두 번째로 주석이 아주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문에 강하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가장 현대적인 번역과 읽기 편한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삼국사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차선책으로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삼국사기>도 괜찮아보인다. 동서판 번역본은 가격도 싸고 양장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경주를 다니면서 숙소에서 읽었다. 물론 다 읽진 못하고, 본기와 열전 위주로 읽었었다. 천년 고토, 신라의 기운이 서린 경주라는 공간에서 잠이 오지 않아서 늦은 시간까지 이 책을 읽었다.

 

책에서 가장 감동받은 구절은 김부식의 서문이다.

 

김부식은 스스로의 학문과 재주가 비천하다고 하면서도, 왕이 삼한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기술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것이(삼국사기) 비록 명산에 비장할 거리는 되지 못하나 간장병 뚜껑과 같은 무용의 것으로는 돌려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신의 구구한 망의는 천일이 비추어 내려다볼 것입니다.'

 

나는 김부식에게 속으로 말했다.

 

'신라 중심적인 서술, 그리고 몇 가지의 한계가 있는 책이지만, 당신의 기록이 없었으면, 아마 우리 후세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고대사를 접근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록은 '다행히도' 간장병 뚜껑이 되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명산이 비장할 겨레를 밝히는 등불이 됐습니다. 이에 나는 이 기록을 남긴 당신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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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 개정판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홍익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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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작은 책이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텍스트임에도, 깊은 논의나 어려운 논의가 담겨 있으면 쉽게 읽어나가기가 힘들다. 이런 분야의 책들은 대체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논고를 담고 있는 철학서적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성학십도> 역시도 마찬가지다. 유학적 지식이 없다면, 상당히 읽어나가기가 힘든 철학서적이 바로 이 <성학십도>이다.

 

이 책은 퇴계 이황이 준비되지 않고 즉위한 선조에게 진상한 작은 책자이며, 한 마디로 퇴계 이황의 군주론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퇴계는 이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성을 논하고 있으며, 그 인성에 다다르기까지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퇴계의 글은 상당히 난해한 구석이 많다. 율곡의 글과 비교를 해 봤을 때, 퇴계의 글은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졌다. 퇴계와 비교해서 율곡의 글은 명료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퇴계는 이 책에서 바른 정치를 위해, 정치의 주체인 군왕이 마음공부를 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 책은 치국의 도나, 정치 처세의 기술론적인 부분을 고찰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 다스리는 법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학 그리고 성리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기치인(내 몸을 잘 닦아 남을 다스림)이다. 기존의 국왕의 군주론을 다룬 책들을 살펴보면 수기와 치인 둘 다를 고찰한 책들이 많다. 이것은 서양의 마키아벨리 <군주론> 역시도 마찬가지다. 군주의 마음에 대한 부분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치인에 대한 부분과 정치와 처세에 대한 고찰, 나 이외의 타인의 심리를 고찰하는 것으로 다스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퇴계의 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성학십도>는 오로지 수기, 즉 마음공부만 이야기하고 있다. 퇴계가 봤을 때, 군왕이 정사를 돌보는 데에는 정치적인 모략과 기술보다는, 바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그런 것 같았다.

 

<성학십도> 제목에서 의미하듯, 성학은 성인의 학문, 군주의 학문, 제왕학 등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다. 십도의 경우는 10가지 그림이라는 뜻으로, 굳이 제목을 풀이하자면 '성인에 이르는 10가지 그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이 10가지 그림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10가지의 유학 이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림이라고 할 순 없겠고, 한 마디로 일목요연하게 이념을 정리한 도표라고 보면 되겠다. 퇴계는 성리학의 이념을 10가지로 나눠서 각 이념마다 그림을 그려 유학에 학습론을 거시적으로 제시하고 글로 부연 설명을 했었던 것이다. 기존 제왕학 저서들이 텍스트 위주로 서술된 것에 반해 퇴계의 이런 그림 활용 등은 참신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퇴계가 먼저 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초 양촌 권근이 <입학도설>이라는 유학 초학서를 쓰며, 그림과 글을 병용했다고 나오는데 퇴계는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성학십도>를 완성했겠다. 실제 <성학십도> 안에 4장인 대학도는 양촌 권근이 <입학도설>에 그린 것을 약간의 수정만 하여 올렸다고 했다.

 

퇴계는 기존의 성리학의 이념을 밝혀 놓은 그림들을 참고하여 싣거나 수정하여 차용했다. 그 차용한 그림들을 학습 체계에 맞게 대대적으로 편제했으며, 때론 자신이 생각했던 이론의 그림이 없을 땐, 자기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그 그림에 대응하는 경전 이론들을 인용하여 쓰고 있었으며 때론 경전 이론들에 자신이 보충 설명을 쓰기도 했고, 퇴계 스스로가 자신의 견해를 뒤에 달아놓았다. 즉 이 한 권에 주자학의 학습 방법론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등이 체계적으로 압축되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유학의 A에서 Z까지 심학에 대한 부분들을 다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은 어려웠다. 그리고 다소 추상적인 논의도 나와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다만 이 홍익출판사 번역본은 주석이 굉장히 자세하고 친절해서, 그냥 지나칠 법한 대목들도 주석으로 설명하고 있고, 책에서 논의되는 경전들의 출처를 일일이 다 밝히고, 상세 설명까지 해 놔서 최대한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한 부분이 보였다. 본문보다 상세한 주석이 더 돋보였던 것 같았다.

 

또 한가지 이 책의 특징적인 부분은 조선의 인문지식과 자연 지식이 조화롭게 만나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부분이다. 책에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논고를 다소 형이상학적인 개념, 태극에 대한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이 인식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비롯한 태고의 천지창조와 인간의 본성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1장 태극도와 2장 서명도)

 

보통 우리는 자연 지식이라 함은 기술과학만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자연과학 지식은 이과 계통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다. 과학이 다루는 것은 궁극적으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다. 반대로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이 인문학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에게 생겨난 폐단 중 하나는 자연 학문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꼽을 수 있겠다. 바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자연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론적인 고찰을 중심적으로 자연학을 생각하는 것. 그 인간 중심적인 오만함. 그러나 자연학의 본질은 인간과 자연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그런 자연학의 본질론적 시각으로 볼 때, 동양의 음양학이나, 태극에 관한 논의 등등은 결국 어떻게 본다면 유학적인 사고 관념의 자연학, 이과학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역>이라는 텍스트도 단순한 점술서가 아니다. <주역>이라는 책은 한편으로는 동양의 이과 학문을 인문적으로 풀이한 책이기도 하다. 자연의 모습을 보고 만들어 낸 64괘, 그리고 오행 화 수 목 금 토에 대한 논고 등등은 어쨌든 동양에서 탐구한 자연 지식을 이론적으로 고찰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양의 자연학과는 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역시도 동양 나름대로의 자연철학을 가지고 있다.

 

책은 그런 동양의 자연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유학 사고를 적절하게 융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었다. 태고의 인간이 생겨난 본질에 대해서 퇴계는 나름대로의 고찰을 2장 서명도에 언급한다. 그래서 책은 적은 분량임에도 상당히 거시적이고 범위가 넓다. 물론 오행 화수목금토에 대해 유학의 이념 인의예지신을 대입하는 것도 상당히 어불성실 같아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짜 맞추기가 옳냐 그르냐를 떠나서, 퇴계의 저술 동기를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퇴계는 이 자연 이론들들과 인문 유학적 이론들의 융합적 설명을 통해 바른 인간 성인으로 가고자 하는 도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내가 주로 의미에 와 닿았던 부분은 3장 소학도(유학경전 <소학>에 대한 도표), 4장 대학도(유학경전 <대학>에 대한 거시적 도표), 5장 백록동규도(오륜에 대한 부분을 고찰한 도표), 9장 경재잠도, 10장 숙흥야매잠도다. 특히 10장 숙흥야매잠도는 지금까지 추상적이었던 바른 마음에 대한 고찰을 일상에 적용한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부분으로 시작한다. 바로 존재에 대한 인식과 선에 대한 부분을 태극도라는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에 반해 마지막 10장인 숙흥야매잠도는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만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 체계들의 편차는, 결국 마음공부의 최종적인 목표는 일상에 머물러야 한다는 퇴계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다.

 

책의 그림 도표는 상당히 자세하다. 유학의 핵심 이념을 체계에 맞게 잘 배열하고 있었으며, 읽었던 <소학>과 <대학>의 편차 역시도 아주 훌륭하게 잘 밝혀놨다. 확실히 이 작은 책은 유학을 처음 배우는 초학자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법 하겠고 (물론 다소 좀 어려운 논의가 있겠지만) 유학에 정통한 사람들은 자신의 유학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퇴계는 이 책을 상주하며 선조에게 '내가 나라에 보답한 것은 이 도 뿐이다.' 라고 하며 '소신이 충성하기를 바라고 가르침을 드리고자 하는 정성에서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학문적 공력을 다하여 책을 저술했다. 따라서 이 책은 성리학의 학문적 이념을 가장 체계적인 도표로 표현하고 있기도 했으며, 유학이 추구하는 마음공부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상 모든 일을 마음으로 풀어 나갈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르고 곧은 마음은 모든 일의 근간이다.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했다. 퇴계의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한계도 있었고, 동의하기 힘든 극단적 성선론적 관점도 있었지만, 읽으며 내 마음을 책의 이론에 대입하여 생각을 많이 해 봤었다.

 

이 지극한 가르침을 받은 선조는 결국 마음을 다스리지 못 했다. 그는 끝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고, 성군이 되지 못 했다. 퇴계의 이런 지극한 정성을 받은 군주는 조선의 최고 무능한 군주로 인식됐다. 퇴계는 지하에서 그런 자신의 '어린 주군'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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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략 임동석 중국사상 65
황석공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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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펴 본 <삼략> 병법서다. 흔히 말하는 <육도삼략>인데, 원래는 두 권의 책을 칭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도>와 <삼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의 7대 병법서 안에 들어가는 문헌이며, 상당히 짧은 문헌임에도 무경으로 인정받아 무인들에게 중요시됐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삼략>은 대부분 <육도>와 함께 합본으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면 사실 <삼략>의 원문이 굉장히 짧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삼략> 3가지 모략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고 책의 체계 역시 상략, 중략, 하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텍스트라서 사실 마음먹고 본다면 두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깊이 있게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삼략>은 다른 병법서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바로 정치와 전쟁의 관계에 대해서 정치를 비중 있게 다루는 부분이다. 사실 이 책은 병법서라기보단, 국가경영 철학을 담고 있는 경영서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 정도로 책에 전체적인 군주의 정치에 대해서 논한 부분이 많다. 물론 다른 병서들 역시도 치국에 관한 부분과 올바른 군주의 도에 대해서 짤막하게나마 언급을 한다. 그러나 <삼략>은 구체적으로 정치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삼략>에서 논하고 있는 정치의 도는 철저하게 유가 중심적인 논의였다. 인의와 덕치를 강조하는 대목들이 상당히 많으며 이 부분은 춘추전국 시대의 유가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반영한 부분이 보였다. 같은 무경칠서의 <사마법>과도 일통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마법> 역시도 유가의 사상을 최대한 많이 반영한 병법서이기 때문에, 두 책은 상당히 사상적으로 닮아 있음을 느꼈었다. (<사마법>에서는 상대의 농사 추수 기간일 때에는 배려해서 군대를 일으키지 말자고 하며 적이 상을 입었을 때에도 공격하지 말자고 할 정도로 인의와 명분을 강조하고 있는 병서다.)

 

<삼략>은 또 특이한 것이 책 중반부에 서술 동기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책에선 이야기하는데 상략에서는 예와 상을 설치하는 것과 간웅을 변별하는 방법, 성공과 실패를 드러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상략을 잘 밝히면 능히 어진 이를 임용하여 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 중략의 경우는 덕행의 차이와 권변의 심찰을 다뤘으며 중략을 깊이 알면, 장수를 제어하고 무리를 통괄할 수 있다고 한다. 하략의 경우는 도덕을 진술하고 안위를 살피며 적현에 따른 허물을 명확히 하여야 함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쇠의 근원을 밝히고 치국의 기틀을 심찰할 수 있다고 한다. 위의 대목에서 느끼는 것은 이 책은 병법사라기 보다는 확실히 치국의 도에 더 중점을 둔 정치사상서와도 같다고 느낄 수 있겠다.

 

거기다 이 책은 유가의 정치사상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강조한 유약강강(부드러운 것이 능히 굳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 라는 도가 철학도 채용하고 있으며, 그런 부분에서 유가적 덕치를 연결시켜 절묘하게 치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강함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삼략>이 병법 특유의 속임수 지향주의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병가의 가장 큰 특징은 '속임수'라고 할 수 있겠다. 싸움은 자고로 어떤 속임수가 다 허용이 된다는 것이 병가의 가장 큰 사상적 특징이다. <삼략> 역시도 정치에서 인의를 강조하지만, 중략에서 보듯, 궤휼과 기모(속임수 계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토하고 있으니, 사상적 모순이 보이는 부분이지만, 병가 특유의 권모를 중시하는 부분도 볼 수 있었다.

 

병가 특유의 벙법론을 보자면, <삼략> 역시도 부하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특히 책 서두에서 아군의 영웅심을 촉발시키라는 부분에서 볼 수 있으며, 사기를 높이는 방법으로 예시를 든 것, 어떤 이가 좋은 술을 주자 장수가 이를 강물 상류에 쏟게 한 뒤 강 하류에서 부하들과 함께 마셔서 사기를 올렸다는 부분, 무릇 한 동이 술이 강물 전부를 술맛이 나게 할 수는 없지만, 삼군의 사졸들이 모두 죽음으로 장수의 고마움에 보답했다는 부분에서 병가 특유의 고도의 심리론을 볼 수 있었다.

 

뻔하긴 해도 가장 리더가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 부분도 고찰하고 있는데, 장수는 사졸들보다 먼저 목마르다고 해서도 안되며, 군사 막사가 완공되기 전에는 절대 부하들에게 피곤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며, 군대 아궁이에 밥이 지어지기 전까지 절대 배고프다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비 온다고 우산을 먼저 펴서도 안되며, 여름에는 부채를 들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졸들과 편안함과 고난을 같이 해야만 군대의 사기가 오르고, 장군을 존경으로 바라본다는 이야기는 2000년을 지난 지금에서도 유효한 덕목이다.

 

확실히 <오자>, <울료자>와 같이 법가주의적 병법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병가 특유의 심리학과 권모학이 녹여 있는 책이었으며, 유가와 도가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도 보였다.

 

재미있는 점은 <삼략>에서 계속되게 인용되는 <군참>이라는 병법서를 보며, 과연 이 시대에도 내려져 오는 병법 텍스트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병가라는 철학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점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군참>이란 병서도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유실됐다고 한다.)

 

흔히 같이 거론되는 <육도>와 비교를 해 보자면, <육도> 역시도 첫 장인 문도에서 정치에 대해서 논고가 있긴 하지만 나머지 다섯 챕터에서는 전형적으로 전쟁 모략 이야기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법에 대해서 무기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즉 <육도>는 자세한 미시적 전쟁 이론서라면 <삼략>은 육도보다 짧긴 하지만 치국의 도에 더 중점을 둔 거시적 국가경영 병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이 <삼략>의 정신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도 많은 유사성이 있고, 사무라이 정신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도 한다.

 

유가 사상이 공맹(공자와 맹자), 도가 사상이 노장(노자와 장자)로 통칭되는 것에 비해 병가는 손오(손자와 오자)라고 통칭한다. 물론 병가의 집대성은 <손자병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오와 육도삼략의 차이를 보자면, 손오가 이야기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전쟁 중심적인 관점이다. <손자병법>은 거국적인 전쟁의 틀과 거국적인 전쟁의 돌아가는 판도와 형세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병서라면 <오자병법>은 세부적인 전술론과, 부하들을 심리적으로 다루는 부분, 그리고 무장에 대한 부분들을 고찰하는 부분이 특징이다. <육도삼략>은 그런 손오병법에 비해 관점이 더욱더 포괄적이다. <삼략>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전쟁을 넘어선 정치의 도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루고 있는 논고의 포괄성으로 보자면 <육도삼략> 쪽이 더 넓다고도 생각했었다.

 

<육도>와 <삼략>의 공통점은 장량에 있다. 유방의 책사인 장량이 얻었다는 병서가 바로 <삼략>이라고도 하며 <육도>라고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세가>에서는 <태공병법>이라고 기록됐는데, 후세 사가들은 <육도>일 가능성과 <삼략>일 가능성, 그리고 <소서>라는 책일 가능성, 아니면 가공된 사례 거나, 텍스트의 분실 등등도 이야기하고 있다. 어쨌든 두 책은 그렇게 장량의 전설과 통한다는 점도 공통점이겠다.

 

어쨌든 논고는 짧고, 깊이 생각할 부분은 생각보다 없는 부담 없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손자병법>보다는 읽기가 편했으며, 뻔한 덕목이나 뻔한 이야기가 있는 책이기도 했지만, 귀감을 살 만한 구절들이 많은 좋은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른 병서들과 번갈아가며 주기적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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