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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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저자는 해냈다. 이순신이라는 성웅을, 이순신이라는 강인함의 상징의 영웅을 실존적 고뇌에 찬 인물로 묘사할 생각을 그 누구도 하지 못 했다.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래야만 한다. 외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큰 칼에 버텨내며,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하는 존재 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강해야만 했고, 그래서 그는 현세의 우리들에게 약한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그렇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절망했고 슬퍼했고, 고뇌했다. 충절, 용기, 의지, 전략, 도덕 등등 그에게 수식되는 용어는 많았다. 그런 그여서, 그를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라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나는 이순신이 솔직하게 싫었다.
 
저자는 그런 '영웅주의' 이순신을 걷어내고, 이순신의 고뇌와 이순신의 절망, 이순신의 울음을 그려냈다. 소설 속 이순신은 절망하고, 성욕을 느끼며 여인을 품었으며, 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답을 찾기보단 죽음을 찾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기보단, 절망 속에서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武)가 스러져 죽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이순신의 내면에 있는 칼의 울음이었고, 칼의 울림이었다. 이겨서 살아야겠다는 생의 의지보다, 이 전쟁 속에서 나의 죽을 곳을 찾아나갔다.
 
그는 절망한다. 자신의 주군에게 종묘사직의 상징성을 원하는 주군에게 그 주군의 장난감을 바치지 못한 자신의 무력감에 절망했다. 백성들의 고뇌를 보며 지켜주지 못한 무력감 속에서, 그는 또다시 절망했다. 아버지로서, 셋째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울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찾아뵙지 못한 지난날을 회상하며 슬퍼했다.
 
백성은 통곡하고 있었으며, 임금도 울었다. 그리고 시대도 울었다. 백성은 수탈당한 비애에 못 이 겨울었고, 임금은 사직과 종묘의 상징적 권위의 실추 때문에 울고 있었다. 백성의 울음은 백성의 칼이었다. 임금의 울음 역시 정치적인 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순신이 있었다. 방황하는 이순신의 내면 그러나 그러한 절망을 느낄 사이도 없이, 싸움에 대비해야만 했던 한 무장의 비애가 잘 녹여있었다.  
 
영화 '명량'에서 보여준 그러한 강인한 이순신의 모습은 '없다.' 명량 대전을 앞두고 제장 회의에서 그는 전략을 구사하기보단... 제장들에게 명령한다. '일자진으로 맞이한다.' 12척의 배를 가지고 있는 그가 고뇌를 하고 전략을 짜 내어 제장들의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다. 그 방법 뿐이다.'
 
여기에 이순신에겐
'만약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라는 모습은 없었다.
 
 
빨려 들어갈 듯한 배경 묘사와, 다소 현학의 미가 돋보이는 문체였지만, 찰랑거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의종군을 끝내고 명량과 노량에서 죽기까지의 그 시기, 이순신의 내면을 그린 소설.
 
암울한 배경과 백성의 고된 모습, 그리고 끝끝내 이순신을 견제하면서 그에게 기대는 선조의 교지, 강인했던 이순신의 겉모습이 아닌, 흔들리는 이순신의 내면,
 
흔들리는 이순신, 그것은 성웅의 모습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이순신을 그렇게 피와 살이 있는 '인간적 고뇌'의 존재로 묘사했다.
 
나는 이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학창 시절 이 소설을 보며 다소 어려웠던 문체에서 쉽게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머리가 자라고 나서 읽었을 때는 굉장히 빨려 들어갈 듯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번에 읽을 때는 천천히 이순신의 의식의 흐름에 조용히 몸을 맡기며 읽어나갔다.
 
그 시절 이순신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후세 사람들, 아니 현세 사람들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긴 <난중일기>에 이런저런 사료들을 통해 추측을 할 뿐이다. 그래서 이순신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다양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순신은 '만병통치약'과 같은 존재였다.
 
책은 소설이다. 따라서 각색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김훈의 '이순신'이 내가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 보다 더 좋다.
 
흔들리며 절망하더라도, 끝내 길을 찾고, 왜적을 향해 칼을 겨누고, 끝내 자신이 찾던 죽음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순신. 그러한 이순신에게서 나와 같은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난 이 소설이 좋다.
 
 
누가 감히 이순신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저자의 용기와, 저자의 시각, 그리고 저자의 문체에, 깊이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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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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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좋다.
강원도를 다니면서, 버스에 오르며, 나는 이 작은 책을 봤었다. 분량도 분량이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집중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만큼 법정 스님의 문체는 간결하고 깔끔했으며,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책은 법정 스님의 가장 대표적인 에세이다. 에세이라는 주제는 사실 리뷰하기가 꽤나 까다롭다. 중구난방적인 시각과, 일관성이 없는 내용들의 집합이므로, 중심 속성을 뽑아내 리뷰를 진행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장르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에세이를 읽을 때 서평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서평을 남기고 싶었다.
 
책의 내용과 책의 주제를 하나로 뽑아내기란 어렵다.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서 스님의 성찰이 담겼으니까 압축시키기도 힘들고 압축시킬 필요성도 사실 못 느낀다. 책의 주제는 다소 여러 부분으로 나뉘었지만, 그래도 하나로 모아 표현해보면 글이 참 '따뜻했다.'
 
책도 가벼웠으며, 글도 가벼우면서 따뜻했고, 그 가벼움 속에 진중함이 묻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은 성찰들도, 스님을 거쳐 표현되면, 맛깔지게 요리된 진미가 되어, 나의 뇌를 색다르게 자극했다.
 
쓸데없는 허영과 가식이 없었으며, 쓸데없는 힐링을 전파하고 있지도 않았다. 책 속에서는 스님의 진솔한 고민과 반성이 그대로 묻어져 나왔다. 스님은 책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책은 스님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임을, 그래서 스님은 가식적으로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으려고 책을 쓰지 않았으며, '누군가'를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우열적으로 판단하여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맑은 영혼이 쓴 글은 맑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스님의 글이 그렇다. 맑고 투명한 글을 읽다 보면 얼굴가에 미소가 잔잔히 흘렀다. 그래서 나는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이 책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아쉽다. 스님은 돌아가시기 전, 스님의 글을 절판시켰다. 물론 스님은 세상에 '말'을 너무 많이 하신 감은 있다. 숱한 에세이집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스님의 글은 프리미엄이 붙었고,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 했다. 다른 책들은 모르겠으나, 이 '무소유' 만큼은 절판시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스님은 <어린왕자>를 최고의 경전으로 여겼다. 나에겐 이 작은 책 <무소유>가 그런 존재다. 숱한 힐링을 외치는 책들보다도, 법정 스님의 단출한 글에서 나는 영혼의 정화를 시도했었다. 스님의 겸손과, 스님의 따뜻함을 본받고 싶었다.
 
글은 좋은 글들이 많다. 과거에 쓰신 글이지만, 지금 세상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글들이다. 문체에 대한 부담도 없다. 구하기가 힘든 책이라서 아쉬울 뿐이지, 구할 수 있다면, 집에 꼭 한 권 쯤은 있어도 될 만한 가치 있는 책이다. 힘들어하는 영혼,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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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레거시 Gundam Legacy 1
나츠모토 마사토 지음, 장민성 옮김 / 길찾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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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화책을 집어봤다. 만화책을 봐도 교양 만화를 주로 봤던 나에게, 정말 만화스러운 만화를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주말을 맞아, 막내 이모 집에 놀러 갔었다. 그곳에 가니 이모부께서 주문하셨던 건담 신작 만화책이 있어서 훑어봤었고, 정독했다.

어릴 때 만화를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드래곤볼이었고, 그리고 몇몇 만화책을 봤었다. 청소년기에는 코난보다는 김전일을 애독했었으며(아직도 애독하고 있다.) 성인이 돼서 만난 만화는 건담이다.

내가 건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로봇 만화물이라는 설정도 있지만, 기존의 로봇 만화들이 추구하는 권선징악의 주제로부터 벗어난 부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지구 연맹과 지온 공화국 두 세력은 어떻게 보면 선과 악으로 볼 순 있겠으나, 사실 작품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선악의 구분이 없어지고,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없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따라서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작품도 있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본질적인 타락은 해소하지 못하는 스토리 전개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나는 현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건담 시리즈는 여러 시리즈가 있지만, 가장 대우받는 것이 '우주세기' 시리즈다. 이 건담 레거시는 정통 우주세기 시리즈의 외전 격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레거시라는 작품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외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다. 우주세기의 여러 이야기들을 짧게 짧게 그리고 있는데, 종국에 가서는 그 짧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연결되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외전이라는 작품은 어떻게 보면 본편의 인기에 맞춰 나온 것으로, 본편의 명성을 빌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외전에서 가장 보이기 쉬운 오류는 본편의 명성을 빌려오고 본편 이상으로 더 뛰어난 연출과 설정을 보여주는데 노력하고, 그것이 과해버리면 작품의 설정 자체가 무너지고 깨지는 경우도 숱하게 있었다.

건담 역시도 정통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라인 <기동전사 건담 - 기동전사 건담Z - 기동전사 건담ZZ- 역습의 샤아> 이 라인들은 크기 괴리감이 없이 전개된다. 그러나 건담 시리즈가 흥행하다 보니 저 사이사이에 외전 작품들이 들어서게 됐고 그것 때문에 설정이 붕괴되거나 수정되는 적도 많았다. 골수 팬들 역시도 그런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수 혈통' 건담 라인을 수호하기 위해 외전 건담들을 배격하는 형태 등도 많이 자행됐었다.

이 레거시는 그런 부분을 염두에 뒀는지, 과하지 않고 튀지 않게, 전개가 흘러가고 있었다. 즉 원작의 분위기는 최대한 살리면서, 원작의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외전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건담'이라는 주제에 맞게, 건담 이야기도 나오지만, 작품 내에서는 '건담'의 활동보다는 양산기들의 활동에 주력을 맞추고, 건담 로봇 전투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인물 간의 해석에도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으며, 내가 유심히 봤던 대목은 3권 초반에 검은색으로 칠한 양산형 건케논2이 활약하는 장면이었다. 기존의 건담 시리즈처럼 원 오브 원(특수 제작 로봇, 양산이 아닌 한 대를 목표로 만든 로봇 - 건담이 대표적인 예다.) 모빌슈츠의 영웅주의적 활동보다, 양산기가 이렇게 활약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아무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우주세기 시리즈의 외전으로, 건담의 골수 팬들이라면 추천할 만한 도서가 아닐까 싶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곤, 2권 후반부에 여성들의 수영복 신이나 여성들끼리의 질투심을 내세웠는데, 이 부분은 칙칙한 밀리터리 로봇 만화물인 기존 건담에게서 볼 수 없었던 남성들을 위한 '서비스' 신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전개는 우주세기 시리즈 건담에게서는 볼 수 없고 비우주세기 건담에게서 자주 보이는 신이라서 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진중함으로 밀고 나갔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도 있었다.

어쨌든 가볍고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건담 팬들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추천 안해도 뭐 다 보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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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어 - 신역
여곤 / 명문당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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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께서 <신음어>를 읽고 계셨었다. 나이가 어린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알아낸 것 하며, 이 책을 진지하게 독서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느낀 바가 많았다. 그 옛날 나 역시도 이 책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했던 결의가 떠올랐으니까,

그때의 결의로부터 과연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는가라고 되묻는다면 역시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이 책을 다시 펴 보고 다시 읽었다.

신음이라는 것은, 고통스럽거나 힘들 때 내는 소리다.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대표적으로 내는 것이 신음이다. 아 물론 성적 쾌락에 휩싸일 때도 신음을 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음은 그런 신음이 아니니... 논외로 하자.   저자는 왜 신음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신음의 말을 이렇게 격언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저자가 살고 있던 명나라가 도의의 타락, 국가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관리들은 착복에 힘쓰고 있는 사태를 보며, 여곤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럽기도 했고, 아픈 나머지 남긴 글이었다.

여곤은 성실한 관료였고, 학문에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선비였다. 따라서, 유학의 사서오경을 보며 이상 국가를 꿈꾸며, 성현의 말을 실천하려고 했으나, 그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성현의 말을 실천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여곤의 모습은 바로 강도 높은 자기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는 세상이 썩은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뇌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허위와 허세로 관념을 이어나갔다. 그의 책 <신음어>는 비판력이 상당히 높은 책인데, 사회 비판도 비판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유학적 사고인 정주학적 관점만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양명학적 관점을 대변하고 있지도 않은 독자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크게 보자면 실천 중심적인 양명학적 사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유학자이면서 기존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았다.

여곤은 이 책에서 썩은 세상에서 올바른 수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관료는 어떻게 해야 힘든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쓰고 있다. 썩은 세상에서 여곤 스스로 본분을 다 해 선정을 배풀고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세상으로부터 여곤은 스스로 '관료'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고뇌하고 고민했다. (서문에 그런 심정을 절절하게 썼다.)

그런 그가 신음하며 한 자 한자 적어나간 격언들이 바로 <신음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포리즘적(짧은 격언이나 경구 등으로 함축성을 갖춘 압축적인 표현의 글) 구성을 가진 책 치고는 굉장히 쉽게 써진 책인데다, 문장 자체도 현학적이지 않은 일상용어로 자신의 생각을 책에서 전개하고 있었다.

사실 책에서 때론 너무 강도 높은 비판을 자신에게 내밀고 있어서, 사상적 모순점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위 관료로서 시세에 물들지 않고, 백성의 민의에 편에 서서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것은 그가 다른 관료들과는 다른 선각자였다는 점을 볼 수 있겠다.

즉 그야말로 중국의 <목민심서>라고 볼 수 있겠다. <목민심서>는 대체적으로 행정적 실무적인 수령의 행동 방침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신음어>는 그런 행정적 실무보다도, 공직자가 가져야 할 내면 수양에 대해서 더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두 책 모두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공통적인 점은 '애민정신' 이 돋보이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깐깐하고 대쪽같은 성격, 자신에게 숨 쉴 틈 없이 수양을 실천했던 여곤조차도, 종국에 가서는 <신음어>에 이렇게 토로한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노력했지만 거짓을 추방하지 못한 것이 괘씸하다.

 이른바 '거짓, 위선'이란 언행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본심으로 민중을 위해 노력했는데 마음속 어딘가에 '베풀었다'라는 기분이 잔존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본심에서 선을 위해한다 하더라도 그 선행을 남에게 '인정' 받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도리적으로 보아 충분히 득이 된 일이라 하더라도 지엽말단적인 점에서 남과 다투며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위선이다. 사회 정의를 목표로 하며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도 아직 일정한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도 위선이다. 낮에 하는 일은 모두 선한데 꿈속에 세계에서 도리에 안 맞는 판정을 내리거나 하면 이 또한 위선이다. 90%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외부에 대해서는 마치 완벽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위선이다. 이런 것들은 남들은 모르고 있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위선의 부분이다. 그런 만큼 더욱 용서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위선을 내게서 제거하지 못한 인간이다.

 

  


솔직한 내면의 반성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이런 반성의 여곤조차도, 위선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내면 수양을 하지 않는 현대인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나부터도 되돌아보면, 물욕과 사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면이 보이기 마련이니까, 마땅히 경계하고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다.

예로부터 '나에겐 엄격하게, 타인에겐 관대하게'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것은 정 반대로 행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여곤의 진솔함이 묻어 있는 <신음어>는 우리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백성의 아픈 삶을 보며, 스스로 괴로워하다, 그는 스스로부터 바꿔 나가자고 결심하고, 수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그는 신음했다. 그 신음을 담은 책이 바로 <신음어>였다.

두고두고 옆에 두고 볼 책이다. 어렵지도 않으며, 책 내용들도 굉장히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다. 특히나 공직에 계시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목민심서>와 함께 필독서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 역시도 여곤의 자기비판정신을 본받아, 내 내면을 청결하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훗날 또 다시 이 책을 봤을 때, 그때는 이번보다 덜 부끄러운 삶으로 회상되길 바라면서, 분발해야겠다.

책의 번역본은 자유문고와 지금 사진으로 보고 있는 명문당 두 개가 있다. 참고로 명문당 책은 편역이라고 한다. 자유문고 번역본은 완역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자유문고에서 번역한 책을 사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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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
조영환 지음 / 지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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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받은 책이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책이고, 이번에 읽었던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력, 여성들과 많은 접촉을 통한 경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부제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인 여자라는 제목은 심히 공감된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도 다르지만, 정서적으로 다른 부분이 상당한데, 가장 큰 부분이 남성의 단순성, 여성의 복잡성이니까...

 

저자가 규정하는 여성의 특징들은 고찰할 만 하다. 나도 사실 솔직히 이모들 밑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일반론적인 여성 속성들은 경험적으로 많이 습득했었다. 다소 남자들보다 분위기에 약하고 감정적이고, 복잡한 동물, 단순한 남자들과는 다르게, 복잡한 이면을 가진 여성들, 세심한 변화 (예를 들면 머리 스타일을 바꾼다거나, 네일을 새롭게 한다거나,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거나!)를 통해서 자신의 심리를 표출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 변화를 읽지 못하는 대부분의 무감각한 남자들...

 

어쨌든 일반론적인 여성에 대해서 잘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다소 이성 경험이 없는 남자들은 한 번쯤 볼 만한 책이며, 여성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자부한다는 바람둥이 형들도 한 번쯤 볼 만한 책이다. 책 자체가 어렵게 쓰여있지도 않으며, 가볍고 부담 없는 문체로 쓰여있어서 편하게 쭉쭉 읽어나가면 된다.

 

다만 책을 보며, 다소 저자의 주장이 너무 일반화된 편견에 치우친 점이 없잖아 있다. 예를 들면 허영과 사치는 여자의 본능이라는 점(물론 나도 이 주장을 한 저자의 의도는 잘 알지만 함부로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걷기나 움직이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는 부분 (물론 남성에 비해 비활동적인 부분이 있지만... 글쎄 이렇게 일반화할 수 있을까), 남자는 과거의 연인을 기억하지만 여성은 현재만을 기억한다는 부분 ( 남성이 무조건적으로 과거의 연인만을 추억하는 존재는 아니다. 솔직히 나만 해도 나는 과거의 연인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거기다 가장 결정적으로, 결혼을 하려면 어리고 젊은 여자와 결혼하라는 저자의 관점... 저자는 이 관점을 내세우면서,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린 여자의 배에서 난 아이가 건강하다고, 맞는 소리긴 한데, 여러 가지 관점으로 볼 때, 편향된 논리로 비치기 딱 좋은 멘트가 아닐까도 싶다. 막말로 결혼을 생물학적인 면만 고찰하야 하는가? 사회 문화적, 경제적인 면을 통합하여 고찰하여서 하는 것이 결혼이다. 지극히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서술된 저자의 주장이 아쉬웠다. 그리고 여성의 눈물에 속지 말라는 점. 여성의 눈물은 슬픔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사실 좀 너무 확대해석한 경향이 있었다.(저자는 이런 논지를 현실론적으로 솔직하게 썼다고 하는데... 너무 개인의 생각이 강하게 투영된 해석이 아닐까...)

 

뭐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내용만 있는 책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것은 '여성과 다툴 때는 10초 이상 다투지 마라. 웬만하면 10초 내에 결론을 내되, 장기전이 될 시에는 은근히 남자가 패배를 유도하는 쪽으로 싸움을 티 나지 않게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 이 부분에서 아주 큰 공감이 갔다. 여성과 싸움을 해 보면 알겠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마련이고, 싸우면 싸울수록 이기더라도 이긴 것이 아닌, 그야말로 얻을 것 하나 없는 전쟁이 바로 여성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저자의 저 논의는 세겨 들을 만 했었다. 거기다 너무 완벽하게 여성을 챙기지 말고, 때론 일부로라도 모자라게 행동해서 여성의 보호본능과 모성애를 자극하라는 부분도 유심히 볼 만 했다.

 

좀 치우친 경향이 있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사실 어떻게 본다면 남성 입장에서 여성을 최대한 너그럽게 해석했는데도,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차이와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여성은 복잡한 동물이고, 규정할 수 없는 종족이다. 남자도 여자를 모르고, 사실 같은 여성이라도 여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무관심하며, 감수성이 다소 결여됐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만 봐도 대체적으로 무뚝뚝하다. 요즘은 다정다감한 남성들이 예전보단 많아졌다. 복잡한 여성들의 내면을 잘 살펴줄 수 있는 남자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는 남자들이 여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나도 남성이지만 이런 부분은 우리 남자들이 반성을 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책은, 남성의 입장에서 해석한 여성의 모습이다. 그 해석에 오류가 있고, 본질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나는 저자가 다른 성을 지닌 여성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저자의 태도는 어쨌든 지금 대다수의 남성들의 시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저자의 논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저자의 그런 여성에 대한 열린 마음 자세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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