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경영
조조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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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소 부담스러운 책이다. <천하경영>!!... 이 책은 삼국지의 유명한 영웅 조조의 문집이다.

이 책은 아쉬운 부분과 반가운 부분이 있는 책이다. 먼저 반가운 부분은 조조의 저서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고, 아쉬운 점은 완역본이 아닌 편역이라는 점이다. 1998년도에 나온 책으로 꽤나 연식이 지난 책이지만, 이 책을 끝으로 조조의 저서는 번역되지 않고 있다. 조조에 대한 개론서나 조조에 대한 평전, 삶을 조망하는 책, 처세서 등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조조가 쓴 글에 대해서는 아무도 번역을 하고 있지 않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그래서 조조를 찬양하는 동양 고전 전문가가 주로 책을 내는 출판사에, <조조집> 완역에 대한 건의를 했는데,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는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ㅠㅠ..

 

아무튼, 따라서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조조의 글이라는 점이다. 글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도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조조를 평가하기에 앞서 평전이나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의 글을 살펴보고 그에 대해서 조망을 해야 한다. 특히나 다른 개인 저서들과는 다르게 조조는 신분이 군주였다. 군주의 특성상, 조조의 문집에는 공문서가 많다는 뜻이고, 이 부분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자의적으로 글을 써 내려간 모습보다는 어느 정도의 객관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공문서도 자의적인 부분이 있긴 하다만... 대체적으로 본다면 그렇지 않나 싶다.)

 

작은 책이고 짧은 책이라서, 읽는 건 금방 볼 수 있다. 다른 삼국시대의 군주들과 다르게 조조는 특별한 점이 있었으니,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읊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조의 문집인 이 책에는 조조의 시가 처음으로 나온다. 역시 말위의 군주라 그런지 시에서 기개가 느껴졌고 웅장함이 느껴졌다. 더불어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슬픔이나, 백성들의 고통 등을 적나라하게 진솔하게 표현하는 부분에서 새로운 조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비와 손권의 경우는 사실, 그렇게까지 공부에 취미가 없었는데, 조조는 전쟁터에 나가서도 밤에 독서를 하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은 군주다. 그런 군주라서 그런지, 시를 읊는 그런 모습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였다. (유비와 손권은 남긴 시가 없다..)

 

시를 다 보고 나면 대체적인 공문서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부분은 조조의 실리주의가 잘 나타나있다. 동양은 대체로 관료나 인재를 뽑을 때 중요시하는 것이 도덕성이다. 능력이 없더라도 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천거하여 일을 맡기는데, 조조가 활동하던 시대는 난세였다. 책의 여러 구절에는 능력만 있으면 덕성이 좀 모자라더라도 천거하여서 쓰라는 조조의 글이 많이 있었다. 조조는 시국이 치세가 아닌 난세라서, 이런저런 덕성 같은 것을 따질 시기가 아니니, 능력만 있으면 인재를 천거하여 올리라고 했고, 부하끼리 덕성에 대한 흠을 잡자, 중재하며 지금은 그런 부분을 서로 간에 지적할 때가 아니라고 일갈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부분에서 조조는 기존의 전통적인 동양의 인재관을 탈피하며, 능력을 앞세운 인재관을 보여줬다. 이런 과감한 부분 때문에 그가 숱한 군웅들을 이기고 황하 일대를 장악했겠다 하는 느낌도 받았다.

 

조조는 <삼국지연의>에서 굉장히 탐욕스러운 군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역사의 조조는 그렇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글 중 놀란 것은 옷을 10년째 같은 것을 꿰어 입을 정도로 검소했고,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지 않는 모습 등이 있는데, 군주의 입장에서 솔선하여 검소를 행한 부분에서 놀라웠다. 더불어, 죽기 전에도 유언에, 쓸데없이 과하게 상을 하지 말고, 전시 상태니 모두 짧게 조문만 하고 각자 맡은 일이나 충실히 하라는 부분에서, 그의 생활 역시도 실용주의적인 모습이 보였다는 점이다.

 

조조는 굉장히 모순적인 인간이다. 잔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한없이 너그러울 때도 있는 군주였다. 거기다 그가 주로 본 책은 놀랍게도 유학이다. 그의 치국에 대한 여러 부분을 본다면 법가적인 시각이 많으나, 이 책에 나온 그의 글에는 유학서들을 인용한 글이 대거 나왔다. 조조가 주로 봤던 책은 유학서와 병법서다. 게다가 시나 여러 글을 통해서 그는 유학의 성군이 되기를 갈망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의 치국의 방법은 법가의 처세가 돋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는 자기 내면의 수양은 유가적 사상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런 부분을 조조에게 배웠다. 유학은 솔직히 문제가 많은 학문이긴 하지만, 마음을 깔끔하게 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조조는 외법 내유를 썼던 모순적인 군주였다.

 

조조의 가장 큰 공은, <손자병법>을 집대성 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손자병법> 13편은 조조가 모두 정리한 <손자병법>이다.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은 예전에 유실되고 조조의 시대에는 여러 <손자병법>이 난무하고 있었다. 조조는 그 병법서들을 다 모아서 스스로 <손자병법>을 정리하여 13편으로 추슬렀는데, 지금의 현행본을 만든 것이 바로 조조이고 이 <손자병법>에 주석을 써넣었다. 역대 <손자병법>에 주석을 단 여러 위인들은 조조를 의심했다. 과연 이 <손자병법>의 원문이 조조의 자의적 개입이 있을 거라는 온갖 추측을 다 했다. 촉한 정통론이 대두되자 조조의 주석은 매도되기 시작되고 가치 폄하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대에 은작산 죽간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는데, 여기에 죽간본 <손자병법>이 출토됐다. 그래서 현행본 <손자병법>과 비교를 해 봤는데,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조조의 정리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원본을 복원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만큼 조조는 병법에도 조예가 깊었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나 <손자병법>의 서문에 조조는 역시나 유학서들을 대거 인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역시 조조의 해박한 유학 경전의 지식이 돋보이는 서문이었다. 조조는 이 <손자병법> 외에도 <사마법>에도 주석을 달고, 스스로도 병서를 지었다고 하는데 아쉽게 다 유실됐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손자병법>의 주석을 <맹덕신서>라는 -_- 것으로 폄하하였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손자 13편을 조조가 다 정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엔 안 나왔지만, 내가 읽어본 조조의 주석이 달린 <손자병법> 역시도 주석이 간결하면서 핵심적인 논의를 잘 이끌어내고 있었다. 조조의 글쓰기 특징은 장황하지 않으며 핵심만을 찌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주석에도 잘 나타나져 있다. 당시 한나라 학풍은 주석을 엄청나게 길게 고증하는 훈고학이 발달하였는데 대세를 따르지 않고 짧게 쓴 면에서 조조의 실용주의적인 부분도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글은 대부분 경전이 인용되고 있으며, 숱한 역사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박학다식함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조조는 유비와 손권과는 다르게 참모들과 스스로 회의를 주도했던 군주였다. 보통 유비와 손권은 뛰어난 명참모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따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조조는 달랐다. 조조는 스스로도 뛰어난 모사였고, 당대의 참모들과 의견을 나눔에도 막힘이 없던 영민한 군주였다. 그런 그라서 참모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기보단, 참모들의 의견을 다 듣고 스스로 종합적인 결론을 내린 적극적인 군주였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실패를 해서, 실수도 하곤 했지만, 전체적으로 참모들과의 교류를 봤을 때 능동적인 군주였다.

 

그런 바탕에는 해박한 지식과 지혜가 뒷받침되야 하는데, 그런 증거를 책에서 볼 수 있었다. 여러 선현들의 책을 인용하는 부분 등에서, 그의 탁월한 독서능력이 보였다. 거기다 신하들에게 학문을 권하는 교지를 내리는 등 문풍에도 힘을 썼던 군주였다.

 

게다가 손권에게 적벽대전 때 보낸 교지 등을 볼 땐, 좀 허세도 잘 부리는 위인인 것 같았으며, 적벽 교전 후 손권에게 보낸 교지에는 변명을 하는 부분 등에서 재미있는 모습도 보였다 몇 마디 옮겨서 오자면

 

'적벽에서의 전투는 때마침 병을 얻은 터이라 배를 태우고 물러나 주유로 하여금 헛된 명성만 얻게 하였다.'

 

'적벽에서 곤경에 빠진 것은 운몽택을 지나던 중 짙은 안개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에서 정신승리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들에게 남긴 글 역시도 인상적이었다. 셋째인 조식에게 보낸 글의 요지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마라.'라는 주제로 글을 짧게 보냈는데, 이런 부분에서 영웅 역시도 여느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조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닮은 점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습관, 시를 좋아하는 습관, 특히나 병법서를 좋아하는 습관, 등등 비슷한 점도 보였다. 그런데다 현실적인 그의 시각 역시도 공감하고, 능력 위주의 인재관, 실용주의적인 면은 본받아야겠지만, 잔인한 점은 본받아선 안 되겠다. 어쨌든, 국내에 나온 유일한 조조의 문집이고, 완역이 아니라서 너무나도 아쉬운 책이다. 조식의 문집인 <조자건집>은 완역이 되어 출간됐던데, 왜 그보다 더 위대한 조조의 문집은 아직까지 완역되지 않는지 참 아쉽다. 제갈량의 문집은 완역됐는데... 하루빨리 <조조집>이 완역이 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천하경영(ㅠㅠ) 이런 거 좀 제목으로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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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임건순 지음 / 시대의창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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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독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옛 글들을 탐구하고 싶은 특이한 취미가 있어서 부담 없이 문헌들을 들추고 있지만, 사실 나의 이런 괴짜스러운 취미를 온전하게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전은 현세에 통용되는 사상이 아니고 지나간 사색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알아듣기 쉽게 편리하게 써 놨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불친절한 편집에 도통 지금과는 맞지 않은 내용들 때문에 사실 고전과 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언어도 사상도 관념도 현세와 맞지 않으니 일단 적응 자체에서 어려움을 느낄 법 하다.


최근 '인문학 만능론'이 대두되면서, 고전에 대해서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기존 고전들을 재해석한 입문용 텍스트도 많이 나왔으며, 고전 만능론을 칭송하는 개론서들도 많아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갑작스러운 대중의 고전 관심이 아니꼽게 보이기도 했다. 수수깡 갈대처럼, 예전에는 천시하고 밥 안되는 학문이라고 비난하던 대중이 갑작스럽게, 몰아부는 인문학 만능론에 너도 나도 고전을 칭송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원래부터 고전을 읽어오던 나로서는 꼬아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건대, 이런 나의 베타적인 시각 역시도 옳지 않음은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다. 인문학을 성행하자!, 인문학을 다시 조명하자는 움직임에 비해, 실속 없는 책들이 너무 난무하고 있어서 마치 보여주기식의 인문학 만능론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었다. 사실 이렇게 대중적으로 인문학의 관심이 높아졌을 때, 정부나 출판업계에서는 좀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데, 입문자용 도서들이나 강연만 난무하니 솔직히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 더 심화 학습을 하지 못하는 중견층 고전 마니아들은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지금 시대에 재해석되고 심화 학습이 이뤄지는 사상은, 유명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저자들의 사상만 조명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동양 사상으로 본다면, 사마천의 <사기>의 재조명, 그리고 사상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유교사상 중심주의 등등


주류 사상의 재조명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유교사상이나, 사마천의 <사기>의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문제는 주류 사상이 아닌 비주류에 대한 조명이 이뤄져야 하는데, 도대체 이런 부분에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중의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금의 인문학 열풍이 아직도 '사상적 편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병가 사상에서도 맨날 <손자병법>만을 강조 또 강조하고 있다. 아니 무슨 병서가 <손자병법> 한 권 밖에 없는가? 알고 있다. 손무의 병서가 워낙 중요하다는 것은 병가에 한때 빠져서 지낸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도대체 <육도>, <삼략>, <사마법>, <이위공문대>, <울료자> 등등의 병법은 왜 조명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무조건 병법은 <손자병법>만이 최고고 <손자병법>만이 병법의 정도라고 기존의 책들은 가르쳐왔다.


그러던 찰나 나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책을 발견했다. 바로 손무와 대칭적인 인물인 오기, 즉 오자라고 명칭 되는 사상가를 다룬 책이었다. 책은 개론서이기도 했지만, 개론서를 넘어서, 저자 특유의 해석으로 오기와 <오자병법>을 독해하고 있었다. 물론 한 개인의 해석이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랴, 나는 이런 시도가 참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저서 중 예전에 유의 깊게 본 책이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의 전작인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난 천민 사상가>였다. 전작에서 저자는 유교와 쌍벽을 이뤘던 묵적(묵자)의 사상을 올바르게 복원하고 공자에 의해 가려진 그의 사상을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주의 깊게 읽었다. 현전하는 묵자 사상의 책은 <묵자> 한 권뿐인데, <묵자>에 대해서 번역한 출판사도 드물었고, 그런 상황이니 묵자에 대한 삶의 조명과 사상의 조명을 다룬 책은 공자에 비해서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 현실이었다. 저자는 그래서 묵자에 대한 책을 썼다.


그리고 저자는 이번에도 손무에 가려진 오기에 대해서, 소상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책은 오기의 삶을 다루면서, 오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 그리고 오기의 군대 사상과 병법 사상, 그리고 나아가 정치사상과, 리더십까지 전체적으로 조망한 역사 책이기도, 고전 해설집이기도 했었다. 책값이 조금 비싼 편이긴 했지만, 서점에서 살펴보고 충분히 구매 가치가 있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얼른 샀던 책이었다.


유교사상을 공맹(공자와 맹자)의 사상이라고 하고, 도가사상을 노장(노자와 장자)의 사상이라고 한다면, 병가 사상은 손오(손자와 오자)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멸의 역사서라 칭해지는 <사기>에 의하면 당시 백성들의 집에는 집집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들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두 책은 동등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손오병법이라 통칭되며,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동등한 위상으로 대우받았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다르다. 병법의 A 이자 Z는 <손자병법>이고 다른 병법서들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 물론 <손자병법>은 뛰어난 병서다. 나에게 있어서도 충격과 감동을 전해 준 병서이고 인생의 책 중 한 권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고대와는 다르게 다른 저서들은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손자병법>만이 추존되는 작금의 현실이 조금 안타깝긴 했었다.


책은 오기의 <오자병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기술하지 않았다. 부분 부분마다 잘라서, 재조립을 거쳐,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더불어 <오자병법>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 예시로 든 부분은 오기의 실제 역사적인 행동을 예로 들었었다. 사실 아무 지식도 없이 <오자병법>을 읽으면 책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대강대강 읽어나갈 수 있다. 동양 병법서는 상당히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현실성을 내포한 사상이지만 서술 자체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거국적이기 때문에 (사실 <오자병법>은 <손자병법>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이긴 하다만...) 통으로 읽어서는 남는 것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상당히 친절하게 <오자병법>을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오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는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사마천이 <사기>를 기술할 때 오기를 잔인하게 묘사했는데, 아내를 죽여서 벼슬을 구한 자, 증삼의 문하에서 유학을 배워놓고 어머니의 제사를 치르지 않은 부덕한 자, 재물과 여색을 탐한 위인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기에 대한 <사기> 문헌을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오기라는 인물은 상당히 특이하고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마치 그 시절의 전형적인 인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중 삼중 사중인격자처럼 모순 투성이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사기>에서 잔인한 오기가 왜 <한비자>와 <여씨춘추> 등등의 문헌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는가


그리고 실제 오기가 재물과 여색을 탐하고 소인배처럼 행동했다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모습도 있을 법 한데, 사서 속의 오기의 모습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병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 (종기를 빨아주는), 일반 병졸과 같이 행동하고 일반 병졸과 같은 대우로 군대를 이끈 모습, 군주에게 돌직구 상소를 자주 날리는 모습 등등을 볼 때, 그는 상당히 의리가 강했고, 인간적이었으며,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 충신의 모습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기에 의해 국토가 처음으로 풍비박산 난 진(秦) 나라의 문헌 <여씨춘추>에서 오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본진을 유린한 적국의 장수를 성인으로 추앙하기란 쉽지 않은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는 이런 오기의 모순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일리가 있었다. 첫 번째로 오기 시대의 기득권 귀족들이 굴러들어온 돌인 오기를 질투하여서 중상모략을 꾸민 것, 두 번째로 후대의 유교 중심적 역사가들이 그런 중상모략을 사서에 공식적으로 기록하면서 오기는 빼도 박을 수 없게, 폄하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오기는 능력은 출중했지만 신분이 비천하여, 지지 세력이라곤 군주의 총애 외에는 없었다. 그런 그가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으니, 당대 폐쇄적인 귀족들이 얼마나 반발하겠는가,


 오기는 노나라 -> 위(魏) 나라 -> 초나라 등으로 국적을 옮기는데, 항상 공을 이루고 귀족의 견제 때문에 도망 나오는 신세였었다. 야인, 천민 출신의 그는 기존의 신분제의 한계를 파악하고 귀족들의 특권을 줄여 중앙집권화를 이루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상벌을 공정하게 포상하며, 천민이더라도 공적을 이루면 국가에서 합당하게 포상하려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당연 백성들은 환영했지만, 당대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오기를 축출해야만 했다. 결국 오기를 지켜주던, 명군들이 죽을 때 오기는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초나라에서도 그렇게 죽어야만 했었다.


사실 오기와 같은 전쟁영웅들은 말로가 비참한 경우가 많다. 한신이 그러했으며, 서양으로 보면 스키피오가 있겠다 더불어 개혁가들의 운명도 좋은 경우가 없는데 오기는 군권과 정권 두 부분에서 공격받을 부분이 많았으니 어쩌면 죽음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보수층은 두터웠었다. 그 보수세력의 이너서클을 깨려는 오기는 도리여 결국 죽고 말았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숱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책에서 오기가 묵학(묵자의 사상)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 주석 처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기가 병가의 사상을 배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오기가 묵학을 직접적으로 배웠다는 주장은 조금 과한 해석이 아닐까도 싶었다.


가장 재미있게 해석한 부분은 아무래도 3챕터의 '손자 vs 오자' 군신들의 전쟁관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손무는 귀족주의적 장군의 모습이며, 오기는 천민 출신 장군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아주 일리가 있었다.


사실 <손자병법>은 굉장히 객관화된 수치를 강조하고 있다. 전쟁은 속임수이고, 전쟁은 사람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황)에게서 구한다.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적국 안에서 약탈을 강조하고(보급은 적국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사상은 결과론적으로 약탈을 허용하는 주의다.), 전쟁은 경제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계산기를 잘 두드리고 본전보다 더 이득을 낼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군대를 출정시켜 베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런 부분들을 인용을 통해서 조목조목 밝혀내고 있었는데, 실제로 <손자병법>에서는 군대를 출병시킬 때 성을 가진 백성(즉 귀족, 이 당시에는 성을 가진 자는 귀족이다.) 의 재산이 고갈되면 큰일이라고 강조한다. 


귀족들을 옹호한다고 하더라도 손무의 사상은 당시 춘추시대의 전쟁관, 귀족들의 허세적 스포츠 개념 - ex 송 양공의 고사 -에서 많이 탈피한 사상이 보인다. 적을 기만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손무의 가르침은 확실히 예와 격식을 차리며 마치 귀족 놀음처럼 전쟁을 하던 춘추시대의 전쟁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손무는 유형적 가치를 중요시한 사상가였다. 그에게 있어 전쟁은 '경제력'이며 장군은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전쟁을 수행하는 그런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반면 오기의 사상은 달랐다. 물론 오기 역시도 손무가 강조하는 경제력과, 물리적 수치를 중요시하긴 했지만 손무에 비해 무형의 가치에 좀 더 힘을 실었던 사상가였다. 애초에 병법의 가장 큰 속성은 속임수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오기도 인정하고 있고, <오자병법>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자는 상황적인 여건보다도 '정신력'을 더 강조했었다. 손무가 병졸들을 신용하지 못하는 그런 고질적인 귀족적 시각을 가졌다면, 오기는 그럴수록 병졸들과 함께 하며, 격식을 없애고, 장수가 솔선하여 병졸들과 함께 같은 대우로 군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병졸과 함께 하여, 병졸을 정예화하여 손발처럼 부린다는 사상.


흔히 오기를 법가적 인물로 비유하는데, 책에서 주장하는 것 대로 사실 오기는 법가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기는 유가적인 부분이 다분하다. (책에서는 묵가적 겸애사상과도 연결 짓는데 개인적으로 그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분명 오기는 공자의 수제자 증삼의 제자였었고, 파문을 당했어도, 유세를 하러 다닐 때 유자 옷을 입고 다녔었다. 그런 부분에서 오기는 유학자로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고 자신의 명예에 대해서 상당히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병사들에게 다가가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병사들을 믿고, 함께 하는 부분은 유가에서 주장하는 인의 정치와도 닮았다. 더불어 손무가 전쟁을 경제력으로 해석했다면, 오기는 전쟁을 정치력으로 확대 해석했었다. <오자병법>의 첫 챕터가 도국(道國) 즉 정치에 대한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원론적인 부분 같아도, 상당히 의미심장한데, 지도자에게 덕을 겸비하라는 사상 등은 유가사상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흔적이었다.


그런 오기의 군사정책은 병졸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고 유대감을 강화하면 어떤 적도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상 이길 세를 형성하고 싸우라는 손무의 사상과는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손무의 사상이 깐깐하고 객관화된 수치를 강조하고 손해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불리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하는 반면 오기의 경우는 다소 좀 불리하더라도, 정예화된 군사가 있다면 해 볼 만 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저자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또 한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손무라는 인물은 지금 실존 인물인지 가상 인물인지 혼동되는 인물이다. <춘추좌전>,<국어>,<전국책> 등등의 책에서 오기의 흔적은 분명히 드러나는데 반해 손무의 기록은 없다. 합려를 패자로 만든 1등공신의 이름이 당대의 역사 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손무라는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고도 주장한다. 그에 반해 오기는 확실한 실존 인물이다.


 두 병법은 사실 상호보완적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사실 객관적인 세를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고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은 주도권 싸움인데, 어느 누가 주도권을 내 주고 싸우겠는가, 다만 최대한 노력한다 하더라도, 불리함을 가지고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게 인생이고 전쟁이다. 그럴 때는 손무가 말한 것처럼 피하기만 해야 할까? 그래야 했다면, 이순신의 명량 대전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기는 자신의 군사 정예화 이론을 실제로 검증한다. 당시 최고의 국가인 진(秦) 나라의 50만 대군을 정예화된 5만 군사로 초토화시켜버린 명장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코너에 몰렸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손무의 사상보다는 오기가 강조한 정신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경제문제이기도 하고 정치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사상가의 생각을 상호 대립적으로 이해하기보단,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시대적으로 오해받아온 사상가들을 위해 진혼굿의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묵자와 오자에 이어, 순자, 한비자, 안자 등등을 조명하고자 한다. 나는 그의 글쓰기에 크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소 좀 비약이 있더라도, 조명하지 못한 사상가들을 풀어내 주는 그의 글쓰기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아쉬워한 플라톤이 떠올랐었다. 플라톤 역시 스승의 억울함을 숱한 대화편으로 남겼듯, 작가의 죽은 사상가들을 위한 진혼굿 글쓰기 역시 비슷한 예가 아닐까, 비주류에 대한 글쓰기, 그것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나는 존중하고 응원하고 싶다.   


책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지도 자료를 첨부하여서, 오기의 이동 경로나, 오기의 망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를 도왔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나는 이 시기에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받아들이기 쉬웠지만, 여러 나라가 중구난방으로 나오는 탓에 일반 독자들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나 싶었다. 그 부분이 아쉽다면 아쉬웠었다.


사실 오기의 실제 성격은 어땠을지 알 수가 없다. 실제 오기가 다중인격자라서,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벼슬을 얻었을 수도 있겠고, 재물과 여색을 은밀히 탐하면서, 공적으로는 강직한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사서에서 보이는 부조화적인 부분, 그리고 역사 기록물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그의 모습, 적국에서조차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의 모습, 병사를 지극하게 아낀 그의 모습, 미천한 출신인 그가 공적을 이루고도 기득권의 견제로,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삶, 그 삶을 반복했던 불우한 개혁가...


그렇게 병사를 자기 자식처럼 아낀 장군이 자기 아내를 죽였을까?

그렇게 군주에게 바른 돌직구를 날린 재상이 과연 재물과 지위를 탐했을까?


만약 이 모든 것이 날조된 귀족들의 음해라면, 그것을 의심없이 기록한 사마천,사(史) 성이라 불리는 사마천 역시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긴 사마천 그 역시도 인간이니까,



인상 깊은 구절


저는 고국에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의 목을 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어머니의 상례를 치렀습니다.

저는 스승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떠났습니다.

저는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 자였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손자병법 - 손무>

<오자병법 - 오기>

<묵자 - 묵적>

<춘추전국시대 7 -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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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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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이다. 다산이 아들과 형, 문인들과 보낸 편지들을 넣은 책이다. 사람의 글 중 저서라는 부분은 공개적으로 저자의 이름을 내 걸고 쓰는 글이라서, 어느 정도 포장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편지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고, 다소 다른 글들에 비해서 포장이 없기 마련이다. 따라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비교적으로 잘 드러내는 글이다.

 

물론 편지도 윗사람이나 존대를 해야 할 사람에게 쓸 때는 어느 정도의 예의를 포장하는 법이지만 아들이나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다소 자신의 생활상의 모습과 성격을 드러내는 편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다산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산이 아들들에게 쓴 편지로 책을 엮었기 때문이다.

 

편지에서 나온 다산은 경전의 저자와는 달랐다. 다산은 유배 기간 동안, 아들들과 함께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토로하며, 아들들에게, 간곡하게 공부를 하라고 타이르고 타일렀다. 다음 리뷰를 하게 될 책인 퇴계의 편지는 다소 일상적인 부분들을 아들에게 나누고 이야기했지만, 다산의 경우는 그런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이야기보단 훈계조로 엄하게 아들들을 다스리는 편지가 많았다.

 

이 부분은 다산의 처지, 즉 벼슬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아들들이 학문마저도 이루지 못한다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안타까운 그의 현실적 처지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다산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공부를 하고 저술을 하며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라는 말을 아들들에게 한다.

 

그런데 아들들은 사실 그렇게까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은 것 같았다. 퇴계의 서신에서는 퇴계는 이런 실망을 준 아들을 꾸준하게 타이르기보단, 한심하다는 토로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무시도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다산은 깐깐하게 꼬집는다.

 

특히나 뒷부분인 형과의 서신 등을 볼 때, 경전이나 다른 학문적 토론에서도, 그의 깐깐한 모습이 나타났었다. 아무튼 편지의 내용은 굉장히 음미해 볼 만한 것들이 많았다. 더불어 편지에 다산이 왜 그렇게 저술활동에 힘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도 있었다. 그 부분은, 불우한 자신의 생각을 후대의 사람이 알아주길 원한다는 마음으로 저술을 시작했으며,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저서를 읽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애석하겠냐면서, 비꼬아서 아들들의 학문 수양을 말하기도 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공명심이라는 것으로부터 아무리 군자라도 자유로울 수 없겠다. 다산 역시도 마찬가지리라, 어떻게든 후세에 스스로의 사상을 알리려고 노력했었다. 현실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저술 활동을 통해 후대에 자신을 알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었다. 이런 부분에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박석무 선생이 번역한 책으로, 아마 다산의 편지 책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책일 것이다. 박석무 선생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올라, 다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했고 최근에는 <다산산문선>과 <다산 평전> 등등을 번역하시기도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음미해 볼 만한 교훈이 담긴 책이었다. 어쨌든 책에서 본 다산의 마음은... 좀 엄격하고 깐깐한 느낌, 빈틈이 없는... 대쪽 같은 그런 분이셨다. 좋은 책이고 맑은 책이긴 하지만... 다산의 숨 쉴 틈 없는 훈계에서, 약간은 버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쨌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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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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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했던 책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최고의 인생 지침서... 음...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교훈적인 책임은 맞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편지인데 당연히 교훈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안되겠지... 더불어 퇴계라는 위인께서 아들에게 준 편지인데... 그런데 이 책은 교훈적 가치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보통 퇴계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가 다소 가난했고, 또 벼슬살이를 싫어했다는 점. 부귀영화에 대해서 초연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맞는 논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했듯 교훈적 가치보단, 일상생활의 퇴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퇴계가 맡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는 굉장히 일상적인 내용들을 많이 썼다. 예를 들면 안부에 대해서, 집안의 농장 경영이나 수확에 대한 부분의 걱정, 그리고 여러 가족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 노비 관리에 대한 내용 등등의 다소 일상적인 내용들로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다산의 편지가 뭔가 자꾸 타이르고, 압박하고, 반성을 요구하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퇴계 역시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다소 일상적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사실 교훈적 내용이라면 이 책보단 다산의 편지가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퇴계는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어렵다. <성학십도>를 비롯한 고봉과의 편지 내용인 <논사단칠정론> 그리고 <자성록> 등등에서 나오는 그의 글쓰기는 사실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거기다 <논사단칠정론>과 <자성록>의 경우는 둘 다 편지를 엮은 책이지만 주 논의가 학문을 논하고 있는 편지들이라, 내용이 굉장히 어려웠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에게도 편지를 굉장히 어렵게 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일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 책에서 교훈적인 편지도 많지만, 그보다도 퇴계의 실생활의 모습과 그 모습을 통해 조선 중기의 사대부들의 모습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맡아들 준은 공부를 더럽게 안 했나 보다. 편지를 보면 뭐 과거 시험을 앞두고 한양으로 올라오는 게 늦어서 -_- 시험을 못 본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퇴계는 그런 아들을 엄청 한심하게 꾸짖고 있었다. 지금 수험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것처럼 퇴계의 아들인 준 역시도 그런 곳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퇴계의 조언 중 재미있는 것은 '술을 너무 마시지도 말되, 술을 적당히 마셔서 교우 관계에는 신경 쓰라.'라는 부분이다. 보통 퇴계와 같이 깐깐한 사람은 술 마시지 말고 공부하라고 할 것 같은데 퇴계는 이런 부분에서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를 아들에게 했다.

 

이런 부분은 편지에 다소 많이 나온다. 벼슬을 못하고 있는 아들을 두고, 스스로는 하야하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토로하면서도 놀고 있는 아들에게, 벼슬이라는 것은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책 초반부 즉 준이 어릴 때는 다소 훈계적이고, 학문을 성취하라는 편지가 많이 나왔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그런 글들이 없어진다. 아마도 퇴계 역시도 부족한 자식에 대해서 마음을 많이 비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재미있는 부분은 퇴계의 모습은 그가 가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소 많은 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관리 감독을 지시하는 모습이며, 올해의 수확에 대해서 묻는 모습 등은, 우리가 알고 있던 퇴계의 가난한 선비의 모습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잔인한 부분도 있었다. 노비들의 기강이 풀어졌을 때, 매질을 해서 바로잡으라는 이야기도 했었고,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군자의 퇴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 아들 채가 죽으면서, 유산 상속 문제가 일어났을 때, 퇴계 역시 참담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권리는 주장하되 치졸해지진 말자는 주장을 하며 분을 삼키는 모습도 있었다.

 

퇴계를 볼 때 학문도 높았고 벼슬도 높아서 편안 일생을 산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사회적으로 볼 때는 그럴지 몰라도, 개인적인 인생은 비극적인 일들이 많았다. 아들과 처를 먼저 보내는 아픔과, 장자인 준 역시도 몸이 성하지 않아서 고생하는 부분, 그리고 퇴계 스스로도 건강하지 못하였던 점 등을 볼 때 행복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다산의 편지에는 다산의 비분강개함이 느껴졌었고, 그런 직설적 표현을 통해 다산의 현실적 어려움의 고뇌를 볼 수 있었지만, 퇴계의 글은 차분함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안정적인 사대부의 풍모를 볼 수 있었다.

 

어쨌든 퇴계의 일상적인 모습을 소상하게 볼 수 있으며, 그 시대의 사대부의 삶을 소상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퇴계의 신선한 모습에는 재미있었지만, 책은 대체로 지루했다. 일상이라는 것이 서로 아는 사이끼리는 공감대가 있어서 의미가 있는 법이니깐...

 

교훈을 느끼기에는, 차라리 이 책 보단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거나 아니면 퇴계가 손자 안도에게 쓴 편지인 <안도에게 보낸다> 이 책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상적이고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소 훈계적이고 교훈적일 수밖에 없다. 퇴계는 살아생전에 아들에게 남긴 편지가 3000통이나 된다고 한다.... 아마도 유실된 편지까지 합치면... 더 하겠지... 그 많은 양의 편지는 세상 모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지는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런 사랑을 받은 준은 음서로 관직에 나아갔다. 자신보다 못난 아들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을거다. 모든 부모의 심정이 그러니까,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우리는 무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퇴계와 준도 마찬가지였다.

 

 음서로 관직에 나아간 장성한 아들에게 여전히 퇴계는 관심을 가지고, 아들의 처세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조언을 하고 사랑을 보낸다. 이런 부분에서, 자식이 장성해도 부모의 눈에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런 부분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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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손자, 역사를 만들고 시대에 답하다 - 문무의 세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 시대와 거울 포개어 읽는 동양 고전 1
신정근 지음 / 사람의무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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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 개론서.

원래 동양 고전에 대한 개론서는 잘 보지 않고, 소장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소장할 책은 많은데 이런 개론서들까지 책장을 내주면, 공간 낭비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 구매한 책은 아니고, 빌려 본 책이었다. 개론서인 만큼, 제자 백가의 두 축 유가의 공자와 병가의 손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고전의 저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논어>와 <손자>의 두 저자들에 역사적 시대상황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요즘 제자백가나 동양 고전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이런 개론서들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 시리즈가 많이 나오는데, 이 책은 제자백가의 각 사상 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와 비슷한 목차를 가지고 있다. 고전 역자인 신동준 역시도 공자와 손자에 대한 개론서인 <머리는 손자처럼 가슴은 공자처럼>을 냈다. 신동준의 책이 약간은 처세적인 관점에 써졌다면 이 책은 정통적인 역사적 흐름에 중점을 뒀었다.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사기>나 <자치통감> 등에 나오던 공자와 공자의 제자들, 그리고 손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특별한 지식 없이도, 제자백가의 기본 지식을 볼 수 있는 책으로, 부담 없이 접근하기엔 좋은 책이었고, 동양고전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부담스러운 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쉽게 써져있었다.

 

어느 정도 동양 고전에 수준이 있는 사람들도,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볼 만하다고 생각됐다. 개성 있는 해석이나 신선한 해석은 다소 없는 편이지만, 바꿔 말하면 무난하게 공자와 손자의 인생을 잘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보통 우리는 공자와 노자를 두 축으로 하여 동양 사상을 이해하는데 더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 특이하게 병가의 시초인 손자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전자의 해석은 전통적인 문(文)의 관점으로의 동양 사상을 해석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최근 병가를 격상시킨 부분에는 문무(文武) 겸전의 정신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자백가에서 유가의 위상이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문(文)을 중시하는 태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났는데, 일본의 경우는 문(文)을 숭상하면서도 상무 정신에서 볼 수 있듯 무(武)를 중시했던 차이가 있다. 사실 일본의 상무 정신(사무라이 정신)은 현실과 직결되는 부분이고, 그런 전통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기도 했다. 더불어 패전 이후에도 그들은 그들만의 상무 정신을 경제적인 부분으로 응용하여서 경제 대국을 만드는 데 기여를 했다. 즉 그런 일본의 전통 속에서는 무(武)의 가치에 대한 긍정이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무를 중시한 일본의 태도는 명분의 문을 추구하며 무를 괄시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진전쟁과 조일 합방은 사상적으로 문치의 문란과 무관의 괄시라는 부분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나 역시도, 문무를 고루 중시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공자는 동양의 문성으로 추앙받는다. 손자는 동양에서 병성 혹은 무성으로 추앙받기 마련이다. 두 문무의 거장을 엮어낸 책의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현실론적인 관점 철학이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되겠다. 나는 병가 철학이 대두되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어왔는데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해서 굉장히 좋다고 느낀다. 우리나라는 현실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도 느끼는데, 아무튼 책 한 권의 목차를 보며 이런 인식의 변화가 보여서 기쁘기도 했었다.

 

해석에 한 가지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공자는 살아서는 실패했지만 죽어서는 성공한 대현인이었고, 손자는 살아서는 성공했지만 죽어서는 실패한 위인이다.'라는 식의 해석이 있었다. 공자의 부분은 맞다. 별 태클을 걸고 싶지 않은데 손자에 대해서는 글쎄 해명이 좀 필요하다 싶다. 손무가 살았던 시기는 난세의 최고의 격돌 시대였던 오월 시대다. 오월동주, 와신상담 등의 숱한 고사를 남긴 그 시기였고, 그때 손무와 오자서는 오나라 합려의 측근으로 활약한다. 어쨌든 합려의 아들 부차가 집권하면서 손무는 종적이 없고, 오자서는 비통하게 죽는다.

 

분명 현실적으로 손무는 성공한 것임이 맞다. 자신의 주군을 패권의 제후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사상인 병법을 검증했으니까, 손무의 방법은 피로 일군 천하통일임에는 맞다. 여기서 저자는 공자의 덕치와 손무의 전쟁론을 우열적으로 비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피로 일군 국가는 얼마 못 가서 망한다는 것을 내세워 후대에는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공자의 덕치는 살아생전에 통치 규범이 되어 성공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자의 덕치는 사실 이상적이었고 제대로 구현된 적이 거의 없는 상상 속의 국가였다. 그리고 손무의 현실론적 전쟁관은 숱한 인간의 역사가 따르고 행해왔던 승리의 규범이었다. 고대 국가 중, 인과 덕으로 천하를 통일한 예는, 나는 하은주 그 시기밖에는 없다고 본다. (하은주 이 시기에도 군사력의 이동과 전쟁은 있었다만... 백번 양보해서 유가에서 지칭하는 이상 국가관이니 그렇다고 치자.) 손무가 이야기한 부분은 결국 전쟁에 관한 부분이다. 치국에 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로 일궈낸 패권 국가지만, 부차의 멍청한 통치의 영역까지 손무의 사상과 결합시켜서 해석하는 것은 좀... 어불성실 같았다. <손자>에서 직접적인 치국을 이야기한 부분은 거의 없다. 장군을 평가할 때는 장군의 전적만을 두고 평가해야지 군주의 치국을 덧씌워서는 안된다고 본다. 치국은 군주(부차)의 자질 문제다.  

 

오히려 손무는 살아서도 성공했으며, 죽어서도 <손자>라는 고전을 남겨서, 대대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승리자라고 본다. 공자보단 덜 추앙받고 있지만, 현실론적인 면에서 보면 나는 손무의 인생이 죽어서 실패한 인생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법가의 시황제 역시도 마찬가지다. 시황제는 법가로 천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그의 제국은 2대를 가지 못했고 그것을 두고 유가는 법가의 한계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법가사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황제가 황제가 되고 나서 시행한 체제는 순수한 법가의 치세와도 거리가 멀다. 즉 시황제가 아집과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제대로 통치를 못한 것이지, 법가 사상과 결부를 시켜서 해석하는 부분은 잘못됐다고 본다. 그래도 일반 사람의 인식은 시황제 = 법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 역시도 위의 손무의 해석과 같다고 본다. 

 

어쨌든 이 부분의 해석에서 나는 다르게 생각했었지만, 책은 쉽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배경 지식 없이도 잘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책보다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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