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의 눈으로 세상을 읽다 - 완역 제갈량문집
제갈량 지음, 장주 엮음, 조희천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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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람을 읽어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사람을 평가해 놓은 역사서? 후대 사람들이 고증해 놓은 평전? 물론 다 참고할 만 하다. 나는 관심 있는 위인을 만날 때에는 현대적으로 해석된 평전과 역사적인 기록을 검토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위인이 남긴 글을 살펴본다. 그 사람이 쓴 글이라는 부분은 그 사람 모든 면을 나타내주진 않는다. 글이라는 것은 때론 저자를 포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기 위해 작성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남긴 글만으로 저자를 알아낼 수는 없지만, 종합적인 사료를 통해 저자의 글을 판단해 볼 수는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글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어쨌든 그 저자가 스스로 남긴 발자취이기 때문에,

 

제갈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세간의 평을 보면 제갈량에 대해서 넷상으로 갑론을박 논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갈량의 칭송하는 논객도 있고 제갈량은 거품이라고 비판하는 논객도 있다. 그런 두 입장은 서로 간에 의미 없는 논쟁만을 일삼고, 스스로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소모적 논쟁보다는 차라리 제갈량이 쓴 글을 읽고 역으로 판단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이 책은 청대에 장주가 편집한 <제갈무후문집>을 기초로 하여, 현대까지 내려오는 모든 제갈량의 글들을 완역한 책이다. 완역뿐만이 아니라 상세한 주석과 상세한 배경 설명이 일품인 책으로, 삼국지에 대해서 다소 서사적 흐름이 약한 사람이라도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은 굉장히 친절하게 서술됐다. 물론, 제갈량에 대해서 아예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보기엔 무리다. 대략적인 삼국지에 대한 흐름 정도만 알아도 이 책을 보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된다.

 

사실 제갈량은 승상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글을 많이 썼던 것으로 유추된다. 그는 긴 병서를 남겼고, 완벽주의자인 그가 병서뿐만이 아니라 치국에 대한 이야기나 개인 수양에 대한 이야기 역시도 남겼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유실됐고 여러 책들에 분산된 제갈량의 글들을 모두 모아서 편찬한 책이 이 책의 원본이다. 사료가 많지 않고 여러 인용이 많은 관계로 이 책에는 위작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구성은 4권으로 구성됐는데, 1권의 내용은 제갈량의 개인적인 서신을 담았고 2권은 제갈량이 작성한 국가 공문서와 행정 문서 등을 담았다. 3권은 치국에 관한 저서인 <편의십육책>을 4권은 병법서인 <장원>이 담겨있다. 오해는 하지 말자, 책은 한 권인데, 장별로 나눈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옛날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한 책이 지금보다 더 얇을 수밖에 없어서 명칭이 권으로 나뉜 거지 지금 출판된 책은 1권짜리로 저 4개의 글들이 모두 수록되어있다. (쉽게 말해 1권짜리 책이고 4챕터로 구성됐다고 보면 된다. )

 

<편의십육책>과 <장원>은 사실 위작 시비가 분분한 책이다. <편의십육책>은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에 대한 내용이 전반부에 있고 후반부엔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장원>은 역대 병서들과 별다른 차이는 없으나, 눈여겨볼 부분은 뒷부분에 이민족에 대한 것을 다뤘는데,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동이족도 포함됐다. 그것 외에는 특출난 부분은 없었다.

 

즉 서신과 공문서인 1,2권이 제갈량에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인데, 글을 보고 느낀 점을 요약하면 제갈량은 완벽주의자였다. 그리고 제갈량이 탄핵한 이들을 봤을 때, 그 역시도 정적 싸움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제갈량 역시도 권력 싸움을 행했다는 사실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신을 가장 많이 보낸 상대는 아무래도 오나라에 종군하고 있는 제갈근이다. 국가는 떨어져 있더라도 우애가 깊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들과 외조카를 훈계하는 글이 3편이 남아있는데 이것을 통해 엄한 아버지의 모습도 연상됐다.

 

더불어 원리원칙 주의자라는 부분도 보였다. 법정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법정이 너무 법이 엄격하니 좀 느슨하게 하자고 편지를 보냈는데, 제갈량이 초강력 하게 그럴 수 없다고 개국 초가 법제를 다스리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부분에서 제갈량의 엄격한 법제 사상도 볼 수 있었다.

 

완벽주의자의 관점으로 봤을 때, 제갈량의 공문 중 재미있는 것은 병사들이 쓰는 무기 도끼에 대한 제작법까지도 일일이 다 하교하고 지시를 했다. 제갈량이 죽었던 것은 과로사인 이유가 크다. 작은 일과 큰일을 모두 도맡아서 한 그였는데, 그런 부분이 책에서도 보였다. 목우와 유마에 대한 설계 글도 있었고, 운송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작은 일까지 그의 손으로 도맡아서 처리됐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니 부정부패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개인 스스로는 굉장히 피곤했을 것이다.

 

엽기적인 부분은 선제(유비)가 죽기 전 유선에게 내린 교지가 있는데, 여기서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온다. 제갈량이 공무를 보면서도 <육도>, <관자>, <한비자>, <신자>를 유선을 위해, 필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 <육도>와 <신자>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한비자>와 <관자>는 분량이 엄청난 고전이다. 특히나 제자서 중 <한비자>는 쪽수와 분량으로 치면 랭킹 1위에 맞먹는 분량을 지니고 <관자>도 마찬가지다. 공무 보기도 바쁜 와중에 이런 필사까지 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초인적인 멘탈을 지니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의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나라를 위한 충정이 이와 같았고, 성실한 부분도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조식(조자건, 조조의 3남) 과의 서신 설전도 있는데, 조식은 한고조는 어리석고 신하들이 뛰어났으며, 광무제는 군주가 능력이 뛰어나고 신하들이 한고조 대의 신하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제갈량이 이에 대해 반박한 글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한고조는 신하의 치적을 드러내는 스타일이고 광무제는 그런 스타일의 군주가 아닌 스포트라이트를 자기가 다 받는 스타일이다. 광무제를 보필한 신하가 한고조의 신하보다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논지를 밝혔는데, 상대적으로 나도 제갈량의 의견이 맞지 않나 싶었다.

 

학술적으로는 제자서들의 논지를 조목 조목 비판한 논제자서가 있으며, <음부경>에 주석을 단 부분도 있는데, 논제자는 모르겠지만, <음부경>의 주석은 솔직히 위서일 가능성도 보였다. 아무튼 이런 모습으로 볼 때 제갈량 역시 다른 저술가와 마찬가지로 선대의 고전에 주석 작업도 하고 학술적 글도 쓰는 문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형인 제갈근과의 서신에서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있으며, 자식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제갈량은 제갈근에게 자신의 아들이 재량은 있지만, 너무 일찍 숙성하여 (교만하여) 뜻을 이루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는 글을 남겼는데 이런 부분에서 자식 걱정의 아버지의 마음은 영웅도 한결같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우리가 잘 아는 육손에게도 남긴 서신이 있는데, 육손을 두고 족하라고 표현하며 친근함을 내세우기도 했으며, 손권을 비롯한 오나라 대신들과도 서신을 주고받은 것이 있었다. 사마의에게 답하는 글도 있는데, 별다른 것은 없고 친구인 맹공 위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해달라는 짧은 글 밖에 없었다. 답하는 글이라는 것은 서신을 사마의가 먼저 썼다는 이야기인데, 역사의 라이벌끼리 서신 교환을 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책의 가장 백미는 자식에게 남긴 짧은 편지다.

 

아들인 제갈첨은 이런 아버지의 교육에 힘입어 위나라 군사들과 싸우다 명예롭게 죽으니, 그 아버지의 그 아들로 대를 이은 충성의 피가 촉한을 적셨다고 할 수밖에 없다.

 

책은 아주 상세하며, 고증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잘 서술하고 있다. 각주에도 충실하며, 설명도 충실하고, 책도 양장본이라, 소장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제갈량의 글을 통해 많은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으며, 제갈량의 내면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첫 번째 글은 아들에게 훈계한 글의 전문이고 두 번째 글은 외조카에게 훈계한 글의 전문이다. 명문이라서 두고두고 새겨들을 만한 글이다. 우리가 신선으로 알고 있는 제갈량은 이런 조언을 했던 한 아버지, 한 삼촌, 한 인간이었다.

 

 

"대저 군자가 행하는 바는 고요한 마음으로 심신을 수양하고 소박함으로 덕행을 도야하는 것이다.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 뜻을 이룰 수 있으며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 학문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배우지 않고서는 많은 재능을 가질 수 없으며, 포부가 없이는 학문을 이룰 수 없다. 방종하면 정신을 분발시킬 수 없고 조급하면 심성을 수양할 수 없다.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게 되고 의지는 세월가 더불어 사라져가니 마침내 정력이 쇠하고 학문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고 슬픔 속에서 빈궁한 가문이나 지켜야 할 것이니 그때 후회한들 어이할 것이냐!"

 

 

"대저 뜻이란 높고도 원대해야 하며, 선현들을 양모하여 사사로운 정과 사악한 욕심을 끊고 의심과 고집을 버려서 성현들의 뜻이 자신의 몸에서 뚜렷이 구현되도록 하고 진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에 잘 순응하고 번잡하고 자질구레한 일에서 벗어나야 하며 널리 남에게 물을 줄 알고 원망과 회한을 삭일 줄 알아야 한다. 비록 잠시 벼슬을 하지 못하여 현달하지 못한들 고아한 정취에 무슨 손색이 있으며 성공하지 못할까 봐 근심할 것이 무엇이랴. 만약 뜻이 단단하지 못하고 의기가 강개하지 못하여 하는일 없이 평범하게 세속에나 빠져 있거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있다면 영원히 평범한 세속에 매몰될 수도 있으며 미천함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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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선생집 포은학술총서 1
포은학회 엮음 / 한국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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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면서 아쉬운 책이다. 이 책은 정몽주의 저작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두 권으로 나눠있는데 <포은선생집>과 <포은선생집속록>으로 구성됐다. 문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써 놓은 모든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시와 서, 저서, 경학, 잡기 등등의 모든 부분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아쉬운 점은 포은은 역사적 패배자라서, 그의 글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정도전의 <삼봉집> 보다도 분량이 적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고 가장 큰 부분은, 시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시도 좋아하고 정치적 사상이나, 경학 사상의 부분도 좋아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정몽주가 원나라 사신에 대한 반대 상소 외에는 뚜렷한 산문 글이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분명 정몽주 역시도, 유림의 추앙을 받았던 자로 경세관을 정리해 놓은 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볼 수 없었고, 아쉽게도 시에 나온 감정을 가지고 그의 마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라이벌인 정도전의 시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정도전의 시와 가장 다른 점은 문체 자체가 청아한 느낌이 나고 여성적인 느낌의 시가 많았다는 점이다. 정도전이 좀 과격하고 직설적이고 감정을 토로하는 것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면 정몽주는 조금 완화된 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나는 <삼봉집>과 <포은집> 두 시를 보며 느낀 점은 도은 이숭인에 대한 시가 많다는 점. 이건 삼봉의 문집에서도 그렇고 포은의 문집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부분으로, 도은이 굉장히 친화력이 있는 선비였다고 생각됐다. 아무튼 시 자체는 은유적인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하나뿐인 상소는 친명 가치를 내세운 내용인데, 아무래도 이 상소만 남겨져있다는 부분에서 승자의 이데올로기를 볼 수 있었다. 조선 초의 가치관은 친명의 정책을 유지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노선이 같으니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을까도 싶었다. 더불어, <삼봉집>의 서문을 쓴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주의적인 사람이 많았다. 권근과 신숙주가 삼봉집의 서문을 썼는데, 둘 다 대체로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삼봉집>의 서문은 이 둘 뿐이 없는데, <포은집>은 서문이 엄청 많았다.

 

대표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역시 우암 송시열과, 동시대 사람으로는 하륜을 들 수 있겠다. 삼봉이 역적이 된 이래로, 정적이었던 태종은 충심을 높이 살 모델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간신으로 몰렸던 정몽주를 충신으로 격상시켜서 높이 대했다. 특히나 정몽주의 온건주의 유자들은 사림으로 성장하여 조선 중후반기를 이끄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정몽주는 대 선현이었고, 충절의 지표였다.

 

뭐랄까 주변에 의해서 이렇게 평가되는 정몽주의 평가를 보며, 역시 사람의 평가는 시대와 같이 한다는 그런 부분도 보였고, 너무 과도한 이미지화가 보여서, 조금은 맹목적인 충성심을 이끌어내려는데 표상화한 부분에게서는 거부감도 들었기 마련이다. 아 물론 정몽주가 뛰어난 인물이고, 그만큼의 능력이 있으니 후세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지만, 태종의 가치관 그리고 사림들의 추앙 등으로 인해서 사실 올바로 된 정몽주의 모습보단 각색된 모습이 많지 않나 싶기도 했었다.

 

책의 번역은 기본적인 모토는 직역이다. 포은 학회가 편찬을 했다고 하는데, 정몽주의 문중에서 편찬한 것 같았다. 한문 병용으로 쓴 책이 아니라 글을 읽는덴 지장이 없지만, 직역이라는 점에서 어휘 자체가 굉장히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어휘들은 각주로 처리를 했지만, 조금은 쉽게 쓸 수 있는 어휘들이 있는데, 이런 직역을 고집한다는 것은 그만큼 저서를 쉽게 다가가려는 대중성의 관점으로 볼 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어쨌든 글이 적으니 역사적 사료에 대한 포은의 인용문들까지도 모두 검토하여 책을 완성했으니, 뒤 시대를 살아간 사림들이 얼마나 포은을 추앙했는지, 느껴졌다. 속집의 대부분이 이런 인용문이나 포은을 노래한 유명 명사들의 글까지 대거 인용하였다. (숙종과 영조, 고종이 포은에 대한 시를 쓴 것도 있었다.)

 

어쨌든 많은 아쉬움과, 편찬 의도에서 과도한 의도가 다분히 보였던 책이지만, 유일하게 내려오는 정몽주의 글이라서 어떻게 보면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 시를 읽어보니 그 역시도 백성을 위해 고뇌하고 아파했던 따뜻한 지식인이었고, 친구들에게 우정을 다한 편지도 있으며(삼봉과 주고받은 편지가 참 재미있었다.), 친구의 아들의 급제를 축하를 할 줄 아는 소탈한 사람이었다. 시에서조차 절제된 모습이 보여서, 굉장히 깐깐한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에는 정몽주에 대한 생애와 그의 유학론에 대한 부분도 서두에 배치했는데, 대체적으로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정몽주의 집안은 명문가라고 알았는데, 책에서는 한미한 집 가문이라고 기술됐다. 어느 쪽이 맞는진 모르겠으나, 정몽주의 외가 쪽이 권세가 있는 집이라는 점을 볼 때에는 한미까지는 아닌 듯싶었다.

 

삼봉은 포은을 보고 유학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그래서 그의 유학에 대한 책이나 경세론 등이 있다면 포은의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이 참 아쉽다. 그렇게 서로 간의 문집에 서로를 칭찬하며 시를 나눈 동기이자 선후배 사이였건만, 역사는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정적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독려하던 과거의 시는 휴지조각처럼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했으니, 권력 앞에서는 우애를 비롯한 모든 것이 허망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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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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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의 후속작으로 나온 책이다. 전작인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뒷부분이 급작스러운 마무리를 나타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책이다. 그런 뒷부분들까지도 잘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대체로 전작에 비해 책 양이 늘어났으며, 정도전의 관점이 아닌 군주의 관점, 이성계와 이방원에 대한 관점으로 여말선초를 해석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책은 잘 서술됐다. 몇몇 군데에 삼천포로 빠지는 논의가 있긴 하고, 저자의 사관 의식을 보여 주는 부분이 있지만, 잘 정리한 책임은 맞다. 나는 아쉬운 부분이, 지금 정도전 드라마의 유행으로 인해 정도전이 재해석되고 집중적으로 조망 받고 그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동지였던 이성계에 대한 평전은 한 권도 없으며 이방원에 대한 평전은 한 권밖에 없다. 정도전 현상에서 이런 부분을 볼 때, 너무나도 편협적이고 즉흥적인 부분이 아쉬웠다. 물론 정도전의 입장이 굉장히 주도적이고 중요함은 맞다. 하지만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이성계와,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이지만 이방원에 대해서도 조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정몽주에 대한 부분 역시도 잘 고찰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 책은 기존의 정도전 현상과는 다르게 군주의 시각으로 해석한 책이다. 두 주인공, 이성계와 이방원. 역사적으로 이 둘은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나온 둘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이성계는 세간을 많이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방원은 행동해야 할 때를 알고 설사 그 부분에서 욕을 먹더라도 행동하는 군주였다. 아마도 정도전이 아니었으면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지 못 했을거다라고 책에서 주장하는데,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이성계와 같이 주변 신경을 많이 쓰는 리더는 피곤하기 마련이다. 정도전은 이런 부분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악역을 자처하여 이성계를 이끌었다. 이방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정몽주를 격살한 것에서 그런 부분이 잘 나타나있다.

 

내가 중점적으로 본 사람은 이방원이었다. 그는 정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의 콤플렉스인 무인의 집안에서 과거 급제를 통해, 이성계의 한을 씻어줬으며, 매 번의 이성계의 정치적 결단에는 이방원이 앞장서 있었다. 회군할 때, 강 씨 아들 둘을 말에 태워서 같이 도주시킨 것도 그였고, 이성계를 대신해 이색과 함께 명나라 사신길을 간 것도 그였다.

 

치세에는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옳으나 난세에는 다르다. 여말선초는 동아시아 자체가 난세의 장이었다. 따라서 왕위는 이방원이 이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이성계는 무리한 세자 책봉을 감행한다. 정도전은 이를 용인했고, 결국 이방원은 칼을 갈았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차이는 바로 현실 인식이다. 이방원은 시국을 잘 읽는 능력이 있었고, 복잡한 정세를 단순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해야 할 때, 즉각적으로 행동을 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좀 더 현실주의적 관점이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대목이다.

 

태조는 치국은 유교의 도를 따랐지만 개인적으론 불자였다. 그는 고려의 불교가 폐단이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지 불교 자체에 대해서는 탄압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뿌리 깊은 유학자다. 그에게 있어 충과 효는 절대적이었다. 과거를 급제한 이방원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 그였지만 아버지에게 칼을 겨눌 때 그의 심정은 어땠겠는가, 애초에 이성계와 이방원이 인식하는 효에 대한 개념이 달랐다. 이성계의 효는 절대적 권위를 따르라는 것이었고, 이방원은 그른 부모의 말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몽주를 죽이자 분노하는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효를 위해서 죽였습니다.'라고 했다.

 

 분명 왕조국가에서 왕위를 찬탈한다는 사실은 정통성을 인정받기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그 찬탈한 권력을 사욕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비극인 것이다. 대부분의 전제 왕권 군주들은 이런 사욕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다. 세조를 보라. 세조는 자신의 찬탈한 권력을 직계 공신들과 함께 나눠서 사용했다. 그러나 태종은? 아니었다. 태종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수도승과 같이 왕위에 전념했다. 그는 국가의 법을 바로 세워서 법 앞에 설사 공신이더라도 군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가장 많은 오해 중 하나가 태종이 공신들을 내 친 이유가 개인적인 권력 야욕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책을 읽어보니 이유가 다 있었다. 적어도 태종은 이유 없이 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이나 과시적인 모습을 보일 시에는 가차 없이 내쫓거나 죽였다. 사회지도층에 비리를 하나하나 다 감시하며, 백성들에게는 신문고 제도를 비롯한,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했던 군주였다.

 

세종과의 비교도 보였는데, 노비제에 대한 부분에서 언급했는데 해석이 좋았었다. 노비제는 종부법과 종모법이 있다. 대체적으로 고려에서 성행하던 것은 종모법이다. 종모법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서 노비의 신분이 결정 나는 것이다. 종부법은 그 반대라 할 수 있겠다. 신분제 사회에서 조선은 아버지의 신분이 어머니의 신분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종부법을 시행한다면, 국가적으로 사노비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양인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인이 많다는 것은 국가에 의무를 할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태종은 기존의 노비제에서 종모법이 아닌 종부법을 주장하여, 결과론적으로 사대부들의 과한 사노비 소유를 억제하려고 했었다. 사노비는 국가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전혀 안되는 존재들이다. 나라에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인원들인데다, 공노비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세종 치세에는 종모법으로 다시 환원된다. 사대부들이 계속해서, 종모법으로 고치자고 하면서 든 이유가, 여자들이 높은 집 자제들을 유혹해 자기 자식을 신분상승에 이용하려고 할 우려가 있고 그렇게 된다면 사회 윤리가 문란해진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말해서 억지라고 본다. 종모법이 있으면 대대손손 노비를 불리기에는 더 유리한 것이 맞다. 어쨌든 조선의 대부분의 상황은 남자가 여자보다 신분이 높았기 때문에, 세종은 사실 노비들에게 출산 휴가를 주거나 그런 부분에서 치적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보단 범국가적으로 봤을 때, 태종의 정책이 국가적으로 양인을 확충하는 데에는 효율적이다. 국가는 어쨌든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양인이 많아야지만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노비도 줄일 수 있고, 국가 제정도 높일 수 있는 태종의 발상이 돋보였다.

 

세종은 사실 백성을 위한 군주임에도 맞지만, 사대부들의 손도 많이 들어준 군주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세종보다는 태종이 더 백성을 생각했다고 본다. 나는 몰랐는데 태종우라는 것이 있다. 5월 10일 날 태종이 죽은 날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태종은 태조를 밀어내고 왕이 됐다. 그에게 있어서 합리화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천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종 시기에 유난히 가뭄이 많이 들었다. 태종은 아마 괴로웠을 것이다. 피를 토하고 싶었을거다. 그래서 기우제도 드리고, 양위 소동도 기획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많이 한 군주였다.

 

그런 태종이 죽은 날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 부분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얼마나 태종이 백성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국가 권력을 찬탈하였지만 누구보다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노비제도 등을 개선하며 부국강병을 이뤘고, 후계 권력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위험요소는 모두 제거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오른 그여서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부패가 연루되면 직계 공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내친 자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 책에서는 안 나오는데, 하륜에 대한 부분. 태종은 이상하리만큼 하륜을 감싸준다. 그의 부정부패를 보고서도 눈 감은 적도 있었고 경고를 준 적도 있었다. 이 부분은 솔직히 많이 아쉽다.

 

태종은 솔직히 무인의 이미지가 강한 군주인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 합격할 만큼 책을 많이 보고 경서를 많이 읽었다. 임금이 돼서도 독서를 게을리한 적은 없다. 물론 세종과는 다르게 경연은 싫어했으나 그가 책 자체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사색과 독서를 즐겼던 문인이었다. 태종은 난세는 말위에 군주가 다스려야 하지만 치세에는 군주가 도서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말위의 군주지만 후대의 군주는, 독서를 강조했다. 충녕이 왕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독서다.

 

외교관계에서 이방원은 실리적인 사대주의자였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의 황권 다툼에서 명 성조가 등극했다. 영락제라고 불리는 이 군주는 스타일이 완전 태종과 흡사했다. 그는 무력으로 일가를 청소하고 황위에 올랐는데, 이런 강력한 황권으로 거대 선박을 동원해 아프리카까지 대항해를 감행하기도 했고, 베트남의 새로운 왕조 국가를 80만 대군으로 복속시키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명나라 앞에서 태종은 일단 지성으로 사대를 하자는 입장이었으며, 내부적으로 성곽 수리를 명령했다. 즉 지성을 드려보고 안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전쟁은 함부로 해선 안된다. 군주의 쓸데없는 자만심과 자부심으로 전쟁을 해선 안된다. 전쟁보단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보고 마지막에 써야 하는 정책이 바로 전쟁이다. 정도전이 주장한 주전론 때는 명나라 황실이 혼란기였다. 그러나 태종이 집권하던 당시는 강력한 군주인 성조가 버티고 있었고, 옆 나라 신생국가가 몰락한 전례가 있었다. 따라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서울의 남아있는 성곽은 태종 시대에 만든 것이라고 책에는 나왔다.

 

사실 책을 보며, 이성계에게도 참 공감은 갔다. 이성계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무력으로 알렸다. 화려한 신궁 솜씨와 더불어, 병법에도 밝은 그였고, 연전연승한 그였으나, 아들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특히나 복수의 칼날을 세운 조사위의 난이 그렇게 터무니없이 제압당했으니... 민심의 행보를 신경 쓰는 그 역시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는가 싶다.

 

그러나 동정은 동정. 태조는 잘못된 태자 때문에, 역사적인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왕 씨들의 무차별적인 탄압 역시도 그런 것 같았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란 생각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이방원이 왕이 됐다 하더라도 재상 중심주의를 펼치는 정도전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이덕일은 양립이 가능한 시각으로 해석하지만 내가 볼 땐 둘은 권력에 대한 철학 자체가 다르다. 양립할 수 없다. 어느 쪽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 태종은 태종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했고, 정도전도 그랬다.

 

세간에는 세조와 태종이 같은 철학을 가졌다고 같은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절대 아니다. 성향은 같을지 몰라도 철학은 다르다. 태종의 철학 속에는 백성이 있었다. 그는 조선이 내세운 민본을 왕권으로 실행했다. 세조는 그러지 않았다. 세조는 태종이 다 쳐낸 공신들의 나라를 부활시켰다. 자신의 정적들의 아내를 갈취했고 자식들은 찢어발겨 죽였다. 태종은 정도전의 아들들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벼슬하는데 제약을 두지 않았다.

 

태종과 같은 군주는 많다. 역대 이래로 고려의 광종, 그리고 중국으로 보면 이세민과 명나라의 영락제, 위나라의 조조, 조선의 세조, 진나라의 시황제 등등 전제적 군주 스타일은 많다. 그러나 그런 군주들 속에서 태종이 돋보이는 것은, 찬탈한 왕위지만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노력했던 군주다.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까 말했듯 세종보다도 더 뜨거웠다. 사대부들은 고하를 막론하고 비리를 척결하는데 신중을 가했고, 국가의 법제를 완비하여 공신이더라도 법 앞에선 평등했다. 그는 완벽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군주였다.

 

그런 그였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괴감과, 처가 식구들을 몰살시키고, 심지어 장인마저 죽이고, 의형제인 이숙번을 내친 비정함에 그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조선의 입장에서는 좋은 군주였지만, 개인의 삶으로 볼 땐 외로웠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의 인생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그의 괴로웠던 인생. 외로웠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했던 길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얼마 있으면 5월 10일 태종이 서거한 날이 다가온다. 이 맘 때쯤 내리는 비는 태종우라고 하니, 이 날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그 태종우는 어떤 의미일 것인가? 아버지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한 자식의 눈물인가? 친한 친구와 형제조차 내쳐야만 했던 외로움의 파편인가? 가뭄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한 그의 몸부림인가? 현재 대한민국 시국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선조의 눈물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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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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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문제적 정치사 상가 마키아벨리를 조망한 평전이다.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내게 있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그때는 <군주론>에 심취하여서 기숙사에 두고 항상 애독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군주론>을 진지하게 독서하기보단, <군주론>이라는 어감이 주는 위엄과 포스에 압도되어, 그냥 겉멋으로 글만 읽어내려 가지 않았나 싶다. 진심으로 마키아벨리에 대해 생각하며 독서한 것은 20대에 들어서였다.

 

시중엔 마키아벨리의 평전이 많이 나와있다. 특히나 <로마인 이야기> 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역시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라는 평전을 썼었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좀 편향적인 책이고, 무조건적인 마키아벨리 칭송적인 책이라 선택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실리주의 관점으로 볼 때 분명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롤모델로 제시하기 좋으니까, 서구인들이 쓴 평전도 있었다. 그러다 르네상스 개론서를 많이 펴 낸 김상근 교수가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전을 발견했고 선택했다.

 

책은 양장본이고 굉장히 퀄리티 있게 잘 만들었다. 사진 자료가 컬러로 첨부되어서 사실 평전이라기보단 여행서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편집은 좋았던 것 같다. 마키아벨리는 서구 사회에서 숱한 오해를 받아왔던 위인이다. 특히나 그의 저작 <군주론>은 시대의 금서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매도를 당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겉으로는 <군주론>을 비난했지만 침실에서 모셔놓고 애독을 할 정도로 권력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여준 책이었다.

 

<군주론>은 <손자병법>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애독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 <군주론>을 보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시대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헌정하는 군주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한다는 가정 하에 쓴 책이라, 시대적 상황을 모른다면 책이 재미가 없고 따분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선대 역사에 대한 지식 등을 섞어서 인용하는 책이라서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형이상학적 철학서들과 같이 복잡한 서술을 보이진 않는다. 시대적 배경과 어느 정도의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를 안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 <군주론> 이다.

 

그래서 <군주론>을 이해하려면 마키아벨리의 시대와 인생을 이해하는 쪽이 편하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는 숱한 역사서의 법칙으로만 책을 쓴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영웅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대해 본 경험론으로도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격변의 시대는 난세의 시대였다.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이고,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고 몰락했다. 마키아벨리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 영웅들, 시보나롤라, 체사레 보르자를 비롯한 프랑스의 루이 12세, 율리우스 2세 등등 여러 군주들의 행동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더불어 그런 군주들을 수행하거나 관찰하면서, 고전 역시도 빼놓지 않고 탐독했다. 그런 인문적 성찰과 더불어 경험이 숙성된 책이 바로 <군주론>, <로마사논고>, <전술론> 이라는 고전들이다. 각각 정치, 역사, 군사에 대한 저술이다. 이 책 3권은 마키아벨리의 3대 저서로 불리는 책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인, 권력주의, 기회주의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확실히 그의 정치 철학은 기존의 서양의 정치 철학과 다르다. 그는 교조화된 기독교에서 강요하는 도덕적인 부분으로 정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살면서,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정치의 속성은 악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의 정치론을 뒤집어서 생각했다. 군주는 선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되는 게 좋고, 용서하여 후환이 되는 적은 아예 깡그리 박살내버리는 것이 좋다. 군주는 여우의 머리와 사자의 심장을 가지는 것이 좋다.라는 다소 듣기 거북한 현실적인 논의들을 주장하며 <군주론>을 집필한다.

 

이런 주장은 확실히 기존의 기독교적 교리와는 상반되는 논의였다. 당시 기독교는 지동설을 천동설로 주장하여도 진실로 인정받을 만큼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바라보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시대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오로지 현실적인 가치로서의 정치학을 이끌어냈다.

 

동양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유가와 법가의 대립이 그것이다. 법가와 마키아벨리즘은 일란성 쌍둥이만큼이나 닮은 사상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사상, 성악설로 바라보는 인간 본성, 군주는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한다는 부분 등. 백가전쟁, 사상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한 것은 시황제의 법가사상이다. 현실적으로 이긴 것은 법가에 기초로 한 시황제였다. 유가의 승리는 후대에 한족들이 정립한 사상일 뿐, 현실적인 사회에서 이긴 사상은 법가다.

 

마키아벨리 역시 그것을 통찰했다. 기독교의 교조화된 인간적 해석으로부터, 선대의 전통 키케로의 <의무론> 이래로 내려오던 서구의 인간 도덕을 그는 거부했다. 동양과 지독하게 닮았다. 우리 동양 역시도 유가는 유학으로 발전되고, 유교!로 종교화되며 학문적 사상에 종교적 색채를 곁들여 반발할 수 없는 권위를 내리고 그것이 절대적인 사상인 것 마냥, 숭상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된 사회고, 그러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 속에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서구 사회는 이를 빨리 간파하고 수용하여서 발전하였고, 동양은 그러지 못했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서구화된 사회다. 우리는 분명 마키아벨리보다 더 먼저 현실론적 정치 이론을 주장했다. 법가가 그것이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의 시대적인 부분을 본다면 대략 2000년이나 앞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법가에 대해서 조명하지 못하고 금기만 했다. 원조라고 해서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동양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서구 사회를 보라. 물론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숱한 비난과 비판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재해석하고 비판하며, 발전해나갔다.

 

마키아벨리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구 사회의 정치 패러다임을 가장 먼저 다르게 인식하고 바꾼 선각자. 그것이 바로 마키아벨리다.

 

책은 마키아벨리를 약자의 수호 성자로 해석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마키아벨리는 약자였다는 사실만큼은 맞는 사실이다. 그는 정부로부터 숱한 고문을 당했다. 물론 모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만큼 강단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공무에 최선을 다하고 피렌체를 위해 그는 목숨을 바쳐서 일했던 사람이다.

 

마키아벨리와 같은 권모술수에 능한 저자들은 생각 외로 인생 자체는 성실하고 교과서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 한비가 그러했고 마키아벨리가 그러했다.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사상도 닮아 있으면서, 정치 철학도 닮았고, 인생 자체도 많이 닮았다. 약자였던 그들은 결국 군주를 위해 책을 저술하고 인정받기 원하지만 세상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의외로 굉장히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더불어 국가에 대해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비가 <한비자>를 지은 이유는 군주가 자신의 정치이론을 바탕으로 전국시대를 끝내주길 원하는 간절한 순수함으로 글을 썼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을 자신의 이탈리아 대륙의 통일을 갈망하며, 강대한 군주를 고대하며 쓴 책이었다. 둘의 저서가 비록 좀 모략적이고 가벼워 보이고 이기적인 부분이 보여서 저자들 역시 약아빠진 인간으로 보기 쉬운데 그들은 지나치게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한 평범한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순수했다. 그래서 그런 권력의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탄압했다. 깨우친 지식인이나 선각자들은 사실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가치는 설사 옳더라도, 기존 사회의 가치와 부합되지 않는다면 매도당한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플라톤도 그러했다. 공자가 그랬고 맹자가 그랬다. 마키아벨리가 그랬고 한비자가 그랬다. 어떻게 보면 선각자라는 사람들은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시대를 넘어선 깨우침과 그들의 말이 써진 고전 덕분에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발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플라톤과 공자는 결국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저술로 남긴다. 마키아벨리도 그랬다. 파직당하고 무직이 된 그는 매일 4시간 동안 관복을 입고 서재에 가서 철학서들을 탐독한다.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리고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논고를 달아 <로마사논고>를 저술한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면서 그들은 글을 썼다. 그래서 그들의 글은 고전으로 격상됐다.

 

위인들과 고전을 남긴 저자들의 인생은 치열하다. 마키아벨리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악마 같은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남겼다. 그것은 강대국에 밟히고 있는 이탈리아 반도에 대해서 약자인 그가 토로한 절규였다. <군주론>으로 강력한 군주를 고대하며, 외세에 휘둘리고 찢어진 이탈리아의 반도를 통일하는 군주가 나오길 고대했다. <전술론>을 저술하여 용병에 의지하지 않고 자주국방을 하자는 논의도 토로했다. <로마사논고>를 통해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며 청년들에게 역사를 교훈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길 주장했다. 내가 책을 보며 느낀 것은 그렇게 노력하던 한 불우한 지식인의 인생이었다. 힘없는 지식인의 비애와 국가마저 약하고 분열된 부분을 토로하는 부분.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불운했지만, 그 스스로는 굉장히 해학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말년에 보이는 저술 희극 등은 마키아벨리가 불우한 인생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쳐 나가는가에 대한 자세가 보였다. 더불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친구에게 매춘녀와의 하룻밤 등을 소상하게 희극적으로 밝히는 부분에서 좀... 가벼운 면모도 보였다. 아마도 웃음이 많은, 어쩌면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군주론>이 각광받고 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너도 나도 <군주론>을 보는데 그 책을 보기 전에 마키아벨리의 평전을 읽기를 권해본다. 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이더라도,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적절한 분량에 컬러풀한 사진 배경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책의 내용도 자의적인 해석이 있긴 했지만, 괜찮았던 평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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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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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동양 문화권에서 <삼국지>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남자들 간에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삼국지> 영웅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우리나라 역사를 몰라도 어떻게 보면 아주 스쳐 지나가는 중국의 이 시대 영웅들의 이름은 다들 빠삭하게 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쟁소설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대의 대망 등등의 가치와 더불어 여러 영웅들이 보여주는 모습, 지략 싸움 등등 그런 부분들을 <삼국지>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지 덕후들도 꽤나 있으며, 웬만한 사람들은 줄거리 정도는 거의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 역시 그랬다. 책의 즐거움을 느낀 것은 <삼국지> 때문이었다. 어린 내가 그 당시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책만 봤었다. 방학 때였는데, 아버지께서 <삼국지> 한 질을 사다 주셨다. 1권을 대충 끄적여 보다가 시간을 보니 저녁이었다. 그리고 3권까지 연달아서 봤던 것 같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책을 보는 등, 계속해서 책만 봤던 것 같다. 그만큼 너무 재미있었던 소설이고, 많이 읽었던 소설이었다.

 

다시 본 <삼국지>는 역시 재미있었던 것 같다. 물론 예전처럼의 그 설레는 마음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읽었던 <삼국지>는 내용적인 재미에 치중한 독서였고 성인이 되어 본 <삼국지>는 비판의 대상의 독서였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고 불리는 책은 원래는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를 뜻한다. 기전체 역사서로, 위지, 오지, 촉지로 나뉘는 책인데 배송지가 주석을 대거 붙인 것으로 보완을 했다. 국내에서는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원본만 번역이 되어 나온 상태고, 배송지의 주까지 포함된 책은 출시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여느 삼국지 사이트 카페에 가면 소상히 번역해 놓은 곳이 있다.) 그럼 세간에 <삼국지>라고 불리는 소설책은 뭐란 말인가? 바로 원-명 전환기에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쓴 <삼국지연의>가 그것이다. 줄여서 우리나라에는 <삼국지>라고 하는데 정식 이름은 <삼국지연의> 가 맞다.

 

즉 실제 역사 책과 역사 소설책 두 권이 있으며, 대체로 우리가 보는 책은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의 번역을 가지고 여러 담론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대체적으로 판매량이 가장 높은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와 지금 리뷰하고 있는 황석영의 <삼국지>의 대립이 그것이다. 시중에는 삼국지 번역본이 2가지가 있다. 평역과 완역. 이문열의 책은 평역이고, 황석영의 책은 완역이다. 두 책의 우열론이 인터넷을 달구는데, 내 생각은 그렇다. 두 책은 서로 간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는 점이다.

 

이문열의 책은 사실 <삼국지연의> 라고 하기엔 문제가 많은 소설이다. 작가의 과도한 개입이 들어간 책이고 평설이 들어간 책이라 나관중이 쓴 원문의 맛 <삼국지연의>의 본연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이라는 것은, 결국 그 원본 자체도 중요하지만 현대의 가치로 재해석을 할 수도 있는 텍스트다. 이문열의 <삼국지>가 그렇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여러 타 삼국지와는 다른 부분이 바로 조조에 대한 재평가와 긍정성이 내포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런 경향은 일본의 시각이 많이 드러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조조의 실용주의와 실력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확실히 요즘의 학계는 촉한 정통론의 주인공 유비보단 조조를 더 긍정하는 분위기인데, 그런 중심에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

 

즉 이문열의 책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서 소설 원문은 탁색 한 것, 그 원문을 훼손한 부분에서는 건덕지를 잡을 이유가 있겠지만, <삼국지연의>를 재해석한 부분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더불어, 나는 지금까지 시판된 <삼국지>들을 거의 다 봤는데, 재미로 따지자면 이문열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었다. 소설의 재미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도 이문열의 <삼국지>가 좋았었다. 이와 같이 현대적 가치로 해석된 삼국지는 이문열본을 비롯하여 장정일본, 김경한본 등이 있다.

 

반면 황석영과, 김구용, 그리고 <본삼국지> 등의 시각은 원문 <삼국지연의>를 그대로 번역하자는 입장인 것이다. 아무래도 현대의 시각으로 해석한 고전이더라도 원문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재해석을 지양하고 원전 중심의 번역서를 낸 것이다. 역사서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를 서로 비교하기 힘들 듯, 원전 <삼국지연의>와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한 <삼국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 역시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둘은 삼국지라는 이름과 내용만 동일할 뿐,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삼국지를 읽을 때, 나는 <삼국지연의>로 원문을 먼저 읽고 역사서인 <삼국지>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아낸 뒤에, 현대적으로 재평가된 <삼국지>를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서의 삼국지를 먼저 읽으면 사실 좋긴 한데, 역사서 <삼국지>가 더럽게 재미없는 구성이라서, 흥미 유발로 <삼국지연의> 를 보고 심화하여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삼국지에서 나오는 여러 부분들은 후대 작가인 나관중의 이념이 고스란히 들어간 소설이다. 따라서 촉한 정통론 속에는 중화사상이 있으며, 유비와 그들의 무리는 한족을 상징하고, 절대 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조는 절대악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여포는 포악한 항우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 시대에 창작된 것으로, 명나라의 전환기에 써진 책이다. 즉 몽골인들에 능욕당한 한족의 자존심을 촉한 정통론으로 정신승리화 한 부분이 보이는 소설이다. 한족은 자기네들이 중국 대륙을 통치할 때 이런 중화사상 정신승리의 모습을 보이는데, 그 정신승리가 문학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삼국지>를 조금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면, 유비에 대해서 새로운 조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는 사실 쪼다가 아니다. 삼국지에서 표현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유비는 당대의 영걸임엔 맞다. 그리고 선한 군주로 표현되고 있는데, 실제 역사가 아닌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평가하더라도, 유비의 행동엔 모순점이 굉장히 많은 위인이다. 그런 부분에서 한족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에서는 조조의 모습이 워낙 망나니로 나오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역사서의 조조는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삼국지연의>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소설은 결국 소설이다. 소설은 허구성을 가장 기초로 한 문학작품이다. 역사 소설이라도 혹자들은 삼국지를 7실 3허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 5실 5허 수준이다. 반은 거짓이라고 봐도 된다. 실제 사서를 보면 <삼국지>가 얼마나 허구가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는 이것이 역사다고 읽으면 곤란하다. 그냥 문학작품이다.(허구다)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역사 소설이 아무리 사실을 내포하고 있더라도 소설자가 붙으면 결국 허구의 속성이 가미가 됐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다. 따라서 소설 삼국지와 역사 삼국지에 대해 쓸데없이 뭐가 옳으니 갑론을박을 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했다.  

 

더불어 이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많이 참고가 된 책은 <사기>가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사기>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꽤 많이 있었다. 유비는 유방이었고, 소하에 가까운 제갈량은 장량의 모습으로 나오고 있었다. 조운의 장판파 전투는 하우영이 유방의 아들을 구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표현 자체도 거의 흡사한 것으로 봐서 나관중이 이 소설을 묘사할 때 <사기>를 반드시 참고했을 것이라고 생각도 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더 비교를 해 보자면, 이문열본 비해 황석영본은 양이 적고, 제갈량 사후에 대한 내용은 황석영본이 더 풍부했다. 대체로 황석영본은 이문열본보다 전개가 빠르다. 반면 이문열본은 작가의 시각으로 분량의 재조정이 있었으며, 강조할 부분은 길게 늘렸고, 줄일 부분(제갈량 사후)은 대폭 줄인 편집이 눈에 들어왔다. 문체는 아무래도 이문열본이 더 수려했던 것 같다. 이문열 작가 자체가 글을 현학적이고 수려하게 쓰는 편인데 그런 습성이 삼국지에도 녹아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소설의 결말은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라는 점이다. 절대선으로 칭송되는 촉한은 결국 절대 악인 위나라에 멸망당한다. 이 부분은 인간의 지고지순한 노력(제갈량의 북벌)만으로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그런 관점도 보였다. 보통 고전 소설의 주제는 권선징악이 모토다. 그러나 이 책은 결말로 보면, 선은 결국 악을 이기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황석영은 서문에 이 부분을 가지고 촉한의 부흥(한족의 부흥)을 꿈꾼 민초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그거야 한족의 입장이고, 그들에게 이민족인 내가 볼 때에는 그들만의 혈통주의가 느껴져서 굉장히 거북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애당초 촉한 정통론에 다른 민족은 논의되지 않는다. 동탁과 여포를 보라. 출신이 서량 쪽 (선비족 계열)이라고 얼마나 대놓고 까고 있는가,

 

 그리고 또 한가지 부분은 이 책을 보다 보면, 생명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수들이 몇만을 살인을 하고, 전쟁을 한다는 부분에 대해 무감각해지면서 오히려 그런 부분을 즐거워하고 즐기는 감정도 생긴다. 전쟁의 무거움이나 인간의 목숨은 소중하다는 관점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위험한 소설이다. 전쟁은 작건 크건 일어난 것 자체가 비극이다. 몇 십만의 대군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만큼 백성의 고통이 크다는 부분을 의미하는데, 저작에는 영웅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고통받는 백성의 입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전쟁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삼국지연의>의 안 좋은 점이 들어왔다.

 

그리고 누구나 느꼈겠지만, <삼국지연의>에서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군대는 5만 이상이다. 삼국이 형성됐을 때는 10만 이상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 비교를 하면 우리나라가 굉장히 스케일이 작아 보인다고 느낄 법도 하다. 중국은 중국이고 우리는 우리다. 애당초 비교를 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괜히 그들의 군세적인 것에 우리나라를 끼워 맞춰 약소국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비교는 상대적으로 해야 한다.

 

모쪼록 <삼국지연의>는 문제점도 많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 나관중의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고 상상력이 기발하기까지 하다. 주유와 제갈량의 모략 싸움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부분인데도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런 재미 덕분인가, 숱한 동양의 나라들이 이 <삼국지연의>에 영감을 받아왔고, 숱한 영웅들이 칭송을 한 책이기도 하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동남아 등 그리고 서구의 나라들까지 칭송하는 고전이다. 문학성이 굉장히 뛰어나고 저자 나관중 역시도 대단한 이야기꾼임에는 맞다. <삼국지연의> 가 끼친 문화적인 부분도 상당하다. 그런 소설인 만큼, 읽는 데에도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비판력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문제점이 많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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