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1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1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용하게 흘러간 한 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에 조정을 가장 시끄럽게 만든 사건을 꼽으라면 당연 '이색비문사건'이다. 이색비문사건은 여말선초 유림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목은 이색의 저서와 행장이 중국인 사대부에게 전해졌는데, 대륙의 사대부는 목은을 사모한 나머지 비문을 써서 이색의 친인척에게 내준 것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동방의 선비를 대륙에서 열렬히 추모하는 모습은 표면상으로 볼 때에는 국위를 선양한 공으로 추앙할 수 있겠지만, 논란의 주인공이 이색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색은 고려조에 충성을 유지했던 인물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정치적으로 꾸준히 대립했다. 그렇다 보니 이색의 행장과 저서는 필연적으로 신생국 조선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나라를 개국한 아버지 태조, 그리고 신생국 조선의 입장이 있다 보니 태종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대륙 명나라에 눈치를 보는 신생국 조선 입장에서 개국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퍼지기 시작하면 외교에 있어서도 좋을 것이 없으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문제는 이색의 행장을 쓴 사람이 바로 태종대에 문신으로 활약했던 '권근'과 태종 정권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륜'이었다는 점이다. 이 두 사람은 이색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이색을 스승으로 모셨기에, 그와 정치적인 행보를 함께했다. 그렇다 보니 이색이 죽은 뒤 이들이 남긴 행장에는 조선과 태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글을 남겼다. 훗날 두 사람은 조선의 태조, 태종 정권에서 고관 대작으로 활약하는데, 젊은 날에 썼던 글이 그들의 발목을 뒤늦게 잡은 셈이다. (물론 이 시기 권근은 죽고 살아있는 사람은 하륜뿐이었다.) 권근과 하륜은 이색을 기린 글에서 '이색이 권력을 가진 사람의 농간으로 인해 배척받았다.'라는 내용을 썼는데, 핵심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삼척동자가 봐도 이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태조 이성계를 지칭하는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이를 태종이 꼬집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흘러가는 구도가 참 흥미롭다. 태종은 이색이 죽은 뒤 이런 글이 세간에서는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아무도 이런 문제를 알려주지 않다가, 명나라에 의해서 문제가 제기되니, 그제서야 신하들이 권근과 하륜를 벌주라고 하는 부화뇌동한 행위에 대해 강렬하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태종 입장에서는 이색의 글이 널리 유포될 경우 아버지이자 나라의 건국자인 태조의 악덕을 강조하는 꼴이므로, 당연히 이를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하륜 역시 자신을 변명하는 글을 무려 네 차례나 올리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하륜의 말로는 권력자를 지칭한 것은 태조가 아니라 정도전과 조준과 같은 무리였다고 했는데, 영명한 태종은 이런 하륜의 변명을 보고 '권력자는 분명 태조를 지칭한 것이며, 만약 태조가 나라를 얻지 못했을 정도전과 조준의 무리처럼 같이 비유됐을 것이다.'라며 사안을 확실히 분별해낸다. 이렇게 태종의 마음이 선 것을 확인하자 공신과 의정부, 그리고 대간의 신료들은 한목소리로, '하륜'을 지목하여 강도 높은 탄핵을 시도한다. 문제는 태종이 하륜을 처벌할 마음이 없었다는 점.

 

덕분에 하륜은 엄청난 정치공세의 탄핵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안이 이렇게 흘러가자 신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데, 언론 비판을 담당하는 대간들은 하륜과 권근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고, 조선 개국에 깊이 있게 관여했던 의정부의 고관들은 국초 혼란한 시기 빚어진 일이므로, 좋게 좋게 넘어가며, 정도전 역시 나름의 공이 있으니 태종도 아량을 베풀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의견 차이는 의정부와 대간들의 정쟁으로 이어갔고, 태종은 글에 표현된 권신은 정도전이었다고 결론지으며, 사퇴한 하륜을 다시 등용하는 것으로 사건의 마무리를 지었다. 태종은 왜 이런 소동을 일으킨 것일까.

 

두 가지 정치적 의도였을 것이다. 첫 번째는 소동을 통해 조선 건국에 대한 정통성을 대내적으로 다시금 세우려고 했을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하륜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태종은 하륜을 신임하고 다른 신하에게 보이지 않은 특혜를 베풀었지만, 특혜가 많은 만큼, 정치적 견제가 필요했다. 하륜이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태종의 마음을 잘 읽는 노련한 정치인이라지만 태종 입장에서도 너무 한쪽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이렇게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정치적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고관 대작 중 하륜만큼은 목숨을 끝까지 보존할 수 있었으니, 태종 시대의 중앙 권신 중에서는 드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권도 두툼했는데 대체적으로 나라가 안정돼가는 모습이 잘 나타났다. 특히나 예조의 상서가 많은 것으로 봐서, 국가의 정신과 예의 규범을 집중적으로 정리하는 데 노고를 쏟았는데, 나라가 이런 정신적인 영역에 공을 들인다는 것은,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어느 정도 구축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기에, 국초의 어수선한 나라의 분위기를 나름 안정화시킨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별다른 큰 사건은 없었던 평탄한 한 해지만, 그래서인지 유독 이번 권을 보면서 태종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먼저 태종의 복심 중 복심이라 할 수 있는 하륜!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벌써 죽어도 남았을 정도의 탄핵을 받고도 여러 번 살아남은 하륜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유능함이다. 미우던 곱던 태종에게 있어 신하 평가 대상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능력인데, 하륜은 나름의 비리와 문제가 있더라도 독보적인 일처리 능력을 보여줬다. 그래서 이색비문사건을 통해 집중적인 탄핵을 받는 하륜을 두고 태종은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더 이상 그를 건들지 말 것을 이야기했다. 정도전이 태조 시대의 상징적인 관료라면 하륜은 태종 시대를 대표하는 관료다. 이렇듯 태종은 자신의 정권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하륜을 쉽게 내치지 않았지만, 일말의 견제의 필요성은 느꼈기에 물밑에서 신료들을 움직여 대규모 탄핵의 움직임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하륜의 권력에 대한 무욕이다. 하륜은 사소한 재물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리곤 하였지만 임금의 권력에 대해서는 탐한 적이 없다. 그는 태종에게 무리한 정치적 요구를 하지도 않았고 정치적으로 눈밖에 나는 짓 역시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그는 태종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태종은 늘 자신의 사후 권신들이 권력을 좌지우지할 것을 걱정했는데, 최소한 이런 면에서는 하륜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륜 외에도 정권 후반기에 자주 거론된 신하는 우의정 조영무와 박자청이다. 이번 책에서 이 둘은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되는데, 공통점으로는 선비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영무는 무인 출신으로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으며, 공조판서 박자청 역시 신분도 별 볼일 없는 데다 학문에 대한 교양은 없지만 공사에 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였기에 고관 벼슬에 이르렀다. 기본적으로 실록을 쓰는 사관은 선비, 유림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글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을 은연히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을 비판하는 글에서도 선비 특유의 오만한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태종은 조영무와 박자청을 두둔하며, 두 사람이 교양은 떨어지더라도 실무에 능한 인물들이니 학식을 가지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들지 말 것을 명하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태종은 매우 탁월한 군주였다. 능력이 있으면 설사 교양이 모자라더라도 그 재능을 귀하게 여겨서 등용했는데, 아마 이 두 사람이 고관 대작에 이르게 된 것도 좋은 인군을 만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사형당한 민무구 민무질과 대척점에 있던 이숙번 역시 부정적으로 기록된 사례가 나오는데, 아들에 대한 청탁 때문이었다. 이숙번은 자신의 장인이 중국에서 죽었기에 어디 있는지 찾고 싶어서 사신단에 자신의 아들을 넣어주길 부탁했다. 태종은 이를 수락하고 사신단의 가장 낮은 직급이자 사신단의 물건을 감수하는 '타각부'에 이숙번의 아들을 보냈다. 이에 이숙번은 태종을 만나 번거로운 자리니 타각부보다 더 편한 자리로 배정해 줄 것을 원했지만 태종은 '집안 어른의 유골을 거두러 가는데 사신단에 참여시켜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할 것이지, 큰 자리를 요구한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숙번이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경쟁자였던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몰락했으니, 권력이 축이 이숙번 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그에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에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안하무인한 태도를 태종 역시 잊지 않고 있었으니, 이숙번이 훗날 권력에서 실각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이번 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은 세자다. 세자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그와 더불어 태종 집권 말년기까지 뼈아프게 발목 잡는 '양녕의 일탈'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 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0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0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해 나오는 《태종실록》 원전 완역 번역본을 읽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무슨 재미로, 조선왕조실록 원전을 읽느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역사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문학 장르를 크게 나누면 문학, 역사, 철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분야는 역사가 첫 번째고, 철학이 두 번째며, 문학이 마지막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조선왕조실록》을 원전 번역본으로 읽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역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역사 고전의 90%는 정치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 인문학을 떠나, 사회과학 중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정치인데, 공교롭게도 과거의 역사 기록은 정치사를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 벌이는 리얼 '왕좌의 게임'에 대한 기록이 바로 '정치사 고전'이며, 《조선왕조실록》 역시 이를 대표하는 텍스트다.

 

아무튼 권력에 대한 탐구, 인간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그런 인간들의 흔적이 가득한 역사 정치 고전을 매우 애정 하며, 《조선왕조실록》 역시 이러한 이유로 애독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중 내가 주로 보고 있는 《태종실록》은 조선 임금 중 가장 정치력이 뛰어난 태종 집권기를 다루고 있다. 고루한 내용도 많지만, 그럼에도 정치력 9단의 태종의 처세를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에는 실록이라는 형식이 익숙하지 않아서, 읽는데 애를 먹었지만, 태종 재위 10년까지 읽으니 실록에 대한 기술 형식이 익숙해졌고, 어느 사안이 중요하며, 어느 사안이 중요하지 않은지, 그리고 태종이라는 임금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패턴으로 신료들을 제압하는지 대략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록의 기록은 늘 이런 식이다. 큰일, 전쟁, 사형이 일어나기 전에 날씨나 별의 움직임을 통하여, 혹은 중요한 요직에 인사교체 등등을 통하여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다. 우리나라 정치사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정치사 고전도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렇기에 정치사를 다룬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주어진 텍스트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의 맥락을 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달달 암기하고 외우는 것은 역사 수업 시간이나 수험에나 어울릴 법 하지, 효용적인 역사 고전 독법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 고전에 기록된 글들은 사소한 것들이더라도 '정치적 의미'를 내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나는 역사 고전을 읽으며 코멘트 속에 내포된 정치적 의미를 탐구하는데 주력했다. 그렇게 역사 고전을 읽다 보면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중요한 사건들은 저절로 알게 되며, 기록이라는 암호 속에 숨겨진 집권자의 심리와 당대의 정황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내용 자체만으로도 따라가기 힘들고 어렵겠지만, 경험이 쌓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접하는 것도 좋지만, 사고하는 과정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사 고전은 그런 사고력과 추론력을 키워주는데 정말 유용한 장르다. 게다가 이런 사고 훈련을 통해 얻은 추론력은 다른 장르의 독서 독해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실질적인 사회생활에서도 '눈치'라는 덕목으로 전환하여, 처세에 있어서도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정치사 고전은 친절하지 않다. 과거 시대에 언어와 사고, 환경으로 기록된 문헌이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노력을 역사에 대한, 정치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하고 받아들였다. 남들에게 나처럼 어려움을 '애정으로 극복하라고' 강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진득하게 역사 고전을 파다 보면, 들인 노력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다.

 

책을 읽기 전 두께를 봤는데 이번 권도 두꺼운 편이었다. 실록의 두꺼운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신하들의 상소'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 해에는 내부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커다란 사건이 많았고, 그랬기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의 상소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사건이다. 태종이 가장 많은 악평을 들은 이유는 처남인 민씨 형제들을 죽인 사건 때문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처족을 죽일 수 있냐'라는 시각이 전통적이라면, 최근에는 그런 태종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재해석하는 사학자들도 많아졌다. 아무튼 그런 논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처남인 민씨 형제들의 자진이 이번 권에 자세히 나와있다.

 

실록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종은 공신들을 '쉽게' 죽이지 않으며, 웬만한 일탈 행동은 눈감아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위 1년부터 10년까지 읽으면서 태종이 거물급 공신들을 쳐 낸 사례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 이거이와 이저 부자의 귀양, 두 번째 이무 일당의 사형, 세 번째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자진 명령이다. 이 외에도 숱한 일탈이 있었지만, 웬만한 일들은 눈감아주거나 '솜방망이'처방으로 경고를 준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태종은 공신 중에서도 인척 관계, 혈족 관계의 가족들에게는 권력의 노른자인 군권과 인사권을 겸한 자리에 배정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많은 공신들이 있지만, 왕도 사람이라서, 피와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들을 우대하고 기대는 것이 당연했다. 태종도 예외일 순 없었다. 따라서 외척인 민씨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왜 그들은 역적이 되어 자진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을까.

 

표면적으로 태종은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에 대한 귀양 원인을 '세자를 끼고 정권을 전횡하려고 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처남 처벌을 목적에 둔 정치적 명분에 불과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민무질이 군부의 수장을 맡고 있을 때, 군인들이 왕명보다 민무질의 명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당시 태종은 이런 군부의 움직임에 '공가(公家)를 받쳐야 할 군인들이 특정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라고 표현하며,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전근대 왕조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가 흥하느냐 망하느냐에 대한 기준은 개국 직후 3대(3代)에 달렸다. 보통 태조나 고조는 신생국을 개국한 것으로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고, 이후의 내부적인 정비는 태조 이후의 군주가 맡게 되는데, 이 국가 정비에 따라 나라가 장수 왕조가 될지 단명하는 왕조가 될지 결정된다. 태종은 자신의 사명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개국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다, 왕자의 난 등으로 내외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래서 태종은 강력한 군권을 바탕으로 국가 제도를 하나하나 안정화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런 권력의 원동력은 압도적인 우위의 군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시 군권은 권력의 핵심 중에 핵심이었다. 그런 권력의 핵심을 처남들에게 맡겼는데, 군부의 수장들이 왕가에 충성하기보단 민무질에 충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태종이 거사를 할 때, 앞장서서 칼을 휘둘렀던 공신 중에 공신이었다. 그렇기에 태종의 입장에서는 군권을 그들에게 맡긴 것은 그만큼 민씨 처가를 믿고 예우하고 대우해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결과 군부의 세력들이 민씨 일가들만을 생각하니, 태종의 입장에서는 처남들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실록을 보면 민무구, 민무질 형제들은 태종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나름 조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하게 조심해야 할 부분에서는 욕심을 부리고, 사소한 일탈만을 단속했으니, 민씨 형제의 좁은 정치적 시야가 결국 그들의 명을 단축한 셈이다. 만약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군권을 잡았을 때 사유화하지 않았더라면, 이숙번의 말로처럼 귀양 선에서 노후를 보장받았을지도 모른다.

 

태종은 재위 10년 상반기에 민씨 형제들을 주살하고, 하반기에 또 다른 인척인 이저를 다시 불러 등용할 것을 예고했다. 태종은 왜 갑자기 공신들에게 본보기로 내친 이거이의 아들, 이저를 재등용하려고 했을까. 아마 두 가지 목적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민씨 일가의 주살을 통해 경직된 일가 종친들의 경계를 완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아마 민씨 일가 처리에 대한 고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처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전 민씨와의 불화가 크게 있었을 것이다. 민씨는 조선 중후기의 순종적인 여인이 아닌,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적극적인 성격의 여걸'이었으므로, 아마 드라마 '용의 눈물'의 장면처럼, 동생들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태종과 심하게 다퉜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태종이 이저를 다시 등용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태종의 정치적 결단은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냉정한 분위기를 대체적으로 풍기는데, 이번 이저의 등용은 급조적이고, 감정적인 모습이 묻어났다. 그래서 신료들 역시 '태종답지' 않은 번복 결정을 두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런 태종답지 않은 번복 결정을 한 결정적인 동기는 처남들의 숙청에 대한 아픔이 때문이 아닐까. 믿었던 처남들을 쳐내는 과정은 어쩔 수 없었지만, 태종도 인간이기에 슬픔을 칼로 무 자르듯 제거할 순 없었다. 처남의 빈자리는 또 다른 인척으로 채워야 했고, 그랬기에 감정적으로 이저를 등용하려고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말미에서 태종은 자진한 민무구, 민무질의 동생이자 또 다른 처남들인 민무휼, 민무회를 봉군(封君)하여, 처가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식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아무튼 후대의 사람들은 이런 태종의 모습과 심리를 자세하게 알 순 없다. 그랬기에 처남을 죽인 결과만 보고 태종을 쉽게 냉혈안이라고 단정하는데, 전해오는 기록을 면밀하게 읽어보면 이 시기 태종도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을 많이 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을 보면서 권력의 중심에는 아무나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 처남을 쳐내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아픔을 홀로 감내하며, 국가의 초석을 다졌기에 태종은 세종이라는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고, 조선을 장수 왕조로 만드는 기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지음, 법정(法頂) 옮김 / 문학의숲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찰에 가면 늘 어머니뻘 되는 불자들이 기도 시주를 하며,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복을 구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저렇게 해서 과연 복이라는 것을 구할 수 있을까? 과연 불교란 저렇게 보시만으로 현세와 내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종교인가? 의심하면서, 불교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불교를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승이라고 불리는 스님들에게 문답을 하면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시중에 나온 여러 불경들을 통하여 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결국 불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싯다르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조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참되고 순수한 불교의 정수로 다가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싯다르타 부처님에 대한 책을 검색하고, 최종적으로는 《불타 석가모니》 책을 선택하고 짬짬이 읽었다. 읽을 때만 해도, 과연 이 책만으로 부처의 진면목을 모두 알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읽고 나니 새삼 번역자인 법정 스님의 탁월한 안목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 책은 부처의 삶을 최대한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었고, 부처의 삶뿐만 아니라 부처가 살았던 시대적인 흐름과 사회상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밝혔다.

 

책의 저자는 와타나베 쇼코라는 일본인이다. 저자는 2500년 전의 인물인 부처라는 실존 인물의 생애를 텍스트로 최대한 섬세하게 복원했는데, 치우치지 않은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서문에서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부처의 전기를 쓴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기록이 너무 없다는 점,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신화적인 기록들이 너무나도 넘쳐나기에, 이런 상반된 기록들 사이에서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구도자를 명료하게 그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대체로 종교적인 인물을 다루는 책은 신화적이고 미신적인 부분에 치우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부처님 사후 후대에 거쳐가며 숱하게 붙여진 신화적인 부분을 최대한 참고하여, 신화 속에 가려진 부처님의 실체를 찾아내는데 탁월한 추론을 보여줬다. 물론 저자의 탁월한 추론으로 밝힌 내용이 실제 부처의 삶이라고 단정할 수 없겠지만 사실과 신화, 상반되는 자료들을 통해 2500년 전에 활동한 종교 창시자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보여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추론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입체적인 부처님의 삶을 그려냈다고 해서 이 책이 종교에서 중요시하는 '신화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저자는 19세기 이래로 과학 기술의 진보에 말미암아 종교에서조차 신화적인 색채와, 초자연적인 색채를 걷어내는 일말의 행위들을 향해 통렬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나 역시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은 것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바로 종교가 가진 '신화적인 부분'에 거부감 때문이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결과, 합리주의와 실증적인 사고 관념이 보편화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 신화적인 색채, 초자연적인 색채가 가득한 종교는 그저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 역시 현대적인 관점에 매몰되어 종교를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관점을 통해 종교 안의 숱한 비현실적인 측면을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는다. 여기서 호랑이는 포기하고 곰은 인내하여 웅녀가 되어 천신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오늘날 이 신화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냥 봐도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으니까. 그래서 역사 학자들은 단군 신화를 이렇게 재해석한다.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싸워서 곰 부족이 이겼고, 이런 곰 부족은 환웅을 섬기는 부족과 힘을 합쳐 고조선을 개국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아마 단군은 이 두 부족의 지도층의 결혼 동맹에서 태어난 인물일 것이다.'

 

종교의 신화 해석도 마찬가지다. 신화적인 기록은 현실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극도로 강조하기 위해 빗대어 표현하거나 에둘러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비현실적인 신화적인 기록이야말로 해석하기에 따라 가장 사실적인 기록으로 환원할 수 있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종교의 신화적인 영역을 함부로 자르고 재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에 있어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종교를 탐구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신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이 신화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의미하는지를 읽어내는데 열정을 다해야 한다. 물론 허구적인 신화의 영역을 아무 지식 없이 해석한다는 것은 무모함에 가깝다. 따라서 비전문가인 우리는 이 분야의 전문가에 의존하여 종교의 신화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탁월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실적인 시각을 너무 강조하지도 않고, 신화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지도 않는다.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견지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 중 신화적인 기록들을 해박한 지식으로 섬세하게 해석한다. 그런 저자의 결실을 법정 스님은 탁월한 문체로 번역해냈다. 한 마디로 책은 탁월한 저자, 그리고 탁월한 번역가가 만나서 완성된 훌륭한 부처님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종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각, 그리고 불교의 본질, 부처님의 시대에 상황과 시대 배경, 불교라는 종교가 고대에 인도에서 어떻게 성립되고, 여타 다른 종교들의 어떤 덕목들을 흡수했는지도 꼼꼼하게 배울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불교에 대한 철학적 지식과 배경지식, 그리고 나아가 부처라는 인물이 수도를 통해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도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일본인의 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를 쓴다는 점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부피가 꽤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문장은 없어서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 편이었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사찰을 다니고 불경을 나름 읽었지만, 고백하건대 불교를 전적으로 믿는 마음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많이 반성했다. 그만큼 부처의 삶은 특정 종교를 떠나,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존경을 불러왔고, 이런 보편적인 존경심은 불교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리를 밖에서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찾는 진리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불교라는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에 대한 공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경전과 스님의 말씀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부처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며 그저 시주를 으뜸으로 여기고, 스님의 말씀에서 '잠시의 힐링'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과연 이게 올바른 교인의 자세인가. 멀리서 구하려 하지 말자. 이 책 한 권이면 부처를 파악하는 데 있어 모자람이 없다. 법정 스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마일즈 웅거 지음, 박수철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라지만, 생에 대부분을 '변화'로 일관하며 살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시대일수록 삶에 있어서 최소한의 지켜야 할 원칙과 철학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래서 늘 고민이었다. 무엇을 변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사유를 이어가다 보면 대체로 회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위선 때문이었다. 나름 지키고자 하는 덕목들을 순간에 의해, 상황에 의해 스스로 배신하면서 타협하고 합리화했던 위선이라는 녀석. 그런 위선은 대부분 욕망과 관련됐다. 청류한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과 세속의 욕망, 즉 권력과 재물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 두 마음은 나의 내면의 양극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머리는 청류를 지향했지만, 마음과 실체적인 삶은 욕망을 추구한 적이 많았다.

 

이런 양면적인 모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마키아벨리를 처음 만났을 때, 운명처럼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마키아벨리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시각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근대 정치철학의 시초로 예우하는 시각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들을 수단화하여도 괜찮다고 평가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뉜다. 이런 시각차는 오늘날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마키아벨리의 저서와 평전을 대부분 읽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호기심으로 마키아벨리를 만났지만, 그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호기심은 존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비록 오늘날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와 다르고 환경은 달라졌지만, 마키아벨리라는 인간을 탐구하고 배우면서, 나는 그의 삶과 그의 사상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열정 어린 삶의 흔적과 파격적인 사상은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선사했고, 그랬기에 나는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고,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마키아벨리를 조망한 평전이 최근 새롭게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랬기에 나는 얼른 책을 구하여 단숨에 읽어나갔다.

 

책에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번역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2010년을 기준으로 이전에 나온 외국어 원전 인문학 책은 뛰어난 책이라고 하더라도 번역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과거에 출판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문학 관련 서적'은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자를 고용하여 번역을 의뢰한 경우나 대학원생들을 고용하여 번역한 경우가 많아,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원저자의 맛깔진 묘사와 표현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번역하고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문학 관련 번역서일 경우, 명저라고 불리는 책이더라도 번역자의 실력에 따라 졸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내용의 표현도 일품이었고 표현의 결을 살린 번역도 탁월해서 문장에 신경 쓰지 않고, 독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수려하게 번역된 책을 보면서, 어려운 출판계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인문학 서적이 발전하고 있음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책에서 언급한 바대로 표면상으로 볼 때, 모순적인 모습이 많다. 그런 부분을 대표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 사상적으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을 옹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화정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군주정에 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이 책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대표작으로 꼽는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공화정 이론을 《로마사 논고》로 정리하여 발표했는데, 《로마사 논고》는 고대 로마의 역사서인 《리비우스 로마사》를 공화정 이론으로 정리하여 풀어낸 책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를 각각 남겼으니 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마키아벨리를 '기회주의적인 사상가'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피렌체의 정권이 교체되자, 마키아벨리는 정권을 잡은 반대파들에 표적이 되어 직장을 잃고 의도하지 않게 시골에서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공직 취직'을 위해 권력을 잡은 자신의 정적들에게 아부하며,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군주론》이라는 저서는, 피렌체의 권력을 다시 되찾은 메디치 일가에게 헌정하기 위해 작성한 책인데, 이 책을 헌정하는 목적을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새롭게 들어선 신생 정부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상 '노골적인 구직 활동'이었다. 그렇기에 후대인들은 이런 마키아벨리의 이중적인 행동을 '그저 권력만을 쫓기 위해 입장을 바꾸는 굴종적인 인물'로 오해할 여지가 다분했다.

 

세 번째, 그는 진지함과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모습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흔히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정치철학자, 정치인으로만 생각하지만, 그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희곡 작가이기도 했다. 《군주론》, 《로마사논고》와 같은 정치적인 저서를 저술했기도 하지만, 《만드라골라》라는 명작 희곡을 만들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진지한 내용과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유머를 곁들인 내용이 골고루 담겨 있다. 물론 진지한 모습과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모습은 두루 갖출 순 있겠지만 서로 대조되는 부분이 많기에 현실 속에서 이런 능력을 골고루 갖춘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 마키아벨리의 삶에는 왜 극단적인 모순이 발견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경계인'이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역사에서 나라를 개국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문명이 발달한 노른자 땅에서 태어나기보다 국경지대나 문물의 교류가 활발한 곳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경계인'으로 표현한다. 문명이 발전한 중앙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우수하고 뛰어난 교육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타 문물과 사상을 괄시하고 멸시하며 베타적인 관점에 매몰되어 행동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역대 왕조에서 정치의 타락은 대부분 이런 중앙 귀족들의 폐쇄적인 관념에서 탄생했다. 반면 경계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기에, 중앙 출신보다 훨씬 현실적인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그리고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 당나라를 건국한 당 고종과 태종 등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나라의 대부분은 경계인들의 손끝에서 빚어졌다.

 

그들은 현실적이었기에,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맹목적으로 내려온 구습을 타파할 수 있었으며,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했다. 마키아벨리 역시 이런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냉철한 현실감각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는 과정에서 꽃피운 결실이다. 그가 태어난 조국 피렌체는 당시 강대국들의 입김에 따라 흔들리는 입장이었고, 그런 가변적인 성격의 조국에서, 마키아벨리는 중인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다른 귀족들이 기대던 기득권이 없었고, 믿을 것이라곤 오로지 '자신의 능력'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반 없이 오로지 '능력'에만 의존하여 현실을 타파하려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위험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보다 훨씬 개방적인 오늘날에도 기득권 신분 유지의 핵심은 여전히 '세습'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키아벨리의 삶에서 보이는 표면적인 모순은 '능력' 외에는 비빌 언덕이 없는 중인의 처절함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랬기에 나는 그의 모순적인 모습을 읽으면서 분노한 감정보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마키아벨리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고 한다. 앞서 밝혔듯 마키아벨리의 삶은 모순점이 많다. 그래서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기회주의자'로 규정하고 비난하는데, 이는 마키아벨리를 파편적으로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마키아벨리의 삶은 모순으로 얼룩져 있지만, 그의 삶 안에는 한결같았던 부분도 많다. 그의 관심은 늘 '정치'와 '국가 권력'에 있었다. 그는 평생을 정치철학에 몰두했다. 국가를 어떻게 운용해야 바람직한지, 그런 국가 운영에 어떤 정체가 어울리는지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가 고전에 능통하고, 독서에 열중한 이유도, 이런 정치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실용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의 고전 독서는 당대의 흔한 지식인들이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교양의 수단으로 고전을 독서한 것과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그는 대부분의 경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현실주의' 사상을 극도로 중요시했다. 그렇다 보니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종교 교리로부터 자유로웠으며,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정치는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사상은 정치사상과 연결되어, 근대 정치사상의 씨앗으로 자리 잡는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이론 연구에만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공직에 대한 열정을 끝없이 불태웠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칩거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공직에서 꽃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취업을 위해서 적대하던 권력자에게 아부를 하기도 했으며, 시대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음에도 불구하고 저술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야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마키아벨리는 왜 이렇게 한 평생을 정치철학에 몰두했으며, 공직의 일선에서 일하려고 노력했던 것일까. 이는 바로 애국심 때문이다. 이런 그의 뜨거운 애국심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영혼보다 조국을 더 사랑하노라.' 이 말은 마키아벨리가 죽기 직전에 남긴 문장인데, 조국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식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한 명문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있을 때 공익을 우선하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늘 국가의 발전만을 생각했으며, 개인의 영달이나 부귀를 축적하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공직에서 내쳐질 때, 사익을 추구했던 일반적인 공무원들과 다르게, 뇌물이나 수수 혐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듯 그는 한평생을 조국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헌신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 위해, 경계인으로써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았던 위인이다. 이런 그를 손쉽게 '기회주의자'로 폄하할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의 삶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인간사에 있어 모순과 극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기에 내 안에 있는 모순과 극단에 괜히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이를 편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결론을 내렸다. 마키아벨리는 모순과 극단으로 가득 찼지만, 한편으로는 한결같은 열정과 야망이 있었다.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문체를 구사한 마키아벨리. 하지만 그의 삶은 전해지는 작품의 문체의 온도와는 다르게 뜨거움 그 자체였다. 그의 변하지 않은 꿈과 열정을 보며, 나의 삶에도 변하지 않는, 열정의 뜨거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正道)'의 설정,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은 중학교 근현대사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제출한 서술형 수행평가를 발표하며 모범적인 글을 쓴 사람을 불러 발표하게 했다. 수행평가의 주제는 '만약 내가 일제 치하 시대에 간다면 어떤 독립투쟁을 할 것인가.'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육군사관학교를 가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무장투쟁으로 독립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거침없이 휘갈겼다. 중간 기말고사의 객관식 오지선다 시험과는 다르게 서술형 수행평가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을 토대로 하여 평가하는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주입식 공교육의 폐해를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학생의 자유를 존중한 서술식 시험이었지만, 학교 그리고 선생님이 '원하는 모범답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이런 시험의 맹점을 어린 시절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도 내 멋대로 끄적이기보단, 어떻게 쓰면 선생님이 만족할 만한 정답일까를 고민했고, 그렇게 답지를 써서 이번에도 만점을 받았다.

 

의기양양하게 발표를 끝내자, 학우 J의 순서가 돌아왔다. 그리고 J의 발표는 이런 문구로 시작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해서, 그 시대에 산다면 독립운동에 기여하지 않고, 친일파로 행동할 것 같습니다.'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의 첫 마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J는 발표를 이어갔고, 나는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선생님의 눈매는 경직되어 있었지만 발표가 계속될수록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미소를 띠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보며 '한 방 먹었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를 포함한 모범 답안, 그리고 J를 제외한 모든 학우들의 답안은 모두 독립운동에 기여한다는 답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J는 그런 우리와는 다르게 '친일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발표했다. J는 모범생이고 학교 성적도 전교권에 드는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저런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는 것이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날이 지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J의 행방이 궁금하다. 사회를 겪으면서 나는 '선생님이 원했다고 믿은 모범답안적인 삶'보다 'J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삶'이야말로 너 나 우리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피부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발끈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에 의하면, 지고지순한 애국자보다,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은 추악하고 더러운 일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그런 상황을 방조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들을 '애국자'의 반열로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마치 우리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처럼, 추악하고 더러운 이름을 가진 역사적 간신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비판을 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지위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일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을 때조차 '나는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러운 연못에 피는 연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게 평범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인정한다. 나는 나를 과대평가했으며, 타인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이치를 어린 시절에 깨달은 J의 근황이 궁금하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용어 중에는 왕조시대에 사용했던 언어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는 사례를 몇몇 볼 수 있는데 이런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간신'이다. 간신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간사한 신하'라는 뜻이다. 이는 왕조국가의 주인인 왕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용어인데, 민주시대에 오면서 왕조 시대의 유산들이 숱하게 사멸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신'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생명력을 얻어 널리 쓰이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우리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단어를 여전히 사용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언어가 쓰이는 데에는 오늘날 여전히 활용되기 때문이다. 즉 민주 사회인 오늘날에도 '간신'과 같은 인간 군상이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여전히 '간신'으로 지칭하기에, '간신'이란 단어는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책은 그런 간신을 테마로 하여, 조선사에 악명을 끼친 9명의 간신들을 분석하고 있다. 책에 언급된 간신들은 역사를 공부했다면 귀에 익은 인물들이다. '홍국영, 김자점, 윤원형, 한명회, 김질, 임사홍, 원균, 유자광 그리고 이완용까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매국노라고 할 수 있는 '이완용'의 이름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저자는 이런 간신들을 주제로 하여 책을 써 내려갔다. 언급된 이들은 모두 역사서, 그리고 후대에 간악한 간신으로 지칭된 인물들이다. 설사 간악한 간신이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붙은 인물들이다.

 

우리는 흔히 간신을 떠올릴 때, '저 사람은 싹이 노래서 저렇게 행동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최고지도자인 군주에게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울 것을 강조하며, 특정 간신의 유형을 만들어 경계시켰으며 이를 '제왕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기업이나 취직을 할 때 면접에 적극 반영되어, 싹이 노란 인재들을 걸러내는 용도로 여전히 사용 중이다. 그러나 저자는 간신을 두고 전통적으로 내려온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적 인물을 판단할 때 단편적인 선악을 잣대로 쉽게 판단하긴 어렵다고. 그리고 역사로 검증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은 자신을 희생하여 커다란 대의를 지키려고 노력한 위인들보다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간신들의 모습과 더 흡사하다고. 어찌 보면 간신들 역시 역사의 피해자라고, 그들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욕망으로 간신이 되었지만, 더 큰 그림은 그런 간신을 만들어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활용하고 방관한 최고지도자(왕)에 있다고.

 

책에서 이야기한 조선의 대표적인 간신들의 전기를 보면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 번째, 언급된 간신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큰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두 번째,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폭주시키며 달려갈 때, 왕들 역시 그들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권위를 세우는데 급급했다는 점. 우리는 지금까지 간신을 이야기할 때 첫 번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며 간신'만'을 비난했다. 저자는 간신의 커다란 욕망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간신의 탄생을 만들어낸 환경에 있다고, 그러한 환경의 중심에는 권력을 지키고자 했던 지도자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어찌 보면 간신들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의 노회한 정치력에 희생된 재물이며, 간신들이 받고 있는 오명의 일부분은 사실 그 시대를 관장했던 군주에게 돌아가야 할 비난이다. 왕조시대에 있어서, 군주는 늘 깨끗해야 하며, 욕을 최소한으로 먹어야만 권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군주들은 자신의 결점과 과오를 돌릴 대상이 필요했다. 결국 군주들은 간신이라 불리는 욕망의 화신들을 선택하여, 그들의 사욕을 채워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정치적인 이익을 챙겨낸다. 너무 음모론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사실 역사서에 기록된 실제 정치는 대부분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던가?

 

책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간신이 나오지 않으려면, 개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간신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바람직한 지도자는 이런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시민들 역시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권력이 정당성이 없으며, 깔끔하지 않으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간신으로 진화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니까. 여기서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태생적으로 나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너, 나, 우리 등등의 일반 사람들을 가리킨다. 간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간신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솔선하여 깔끔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같은 조선이더라도 세종 시절에 정권을 위협하는 간신들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다. 책을 읽으며 또다시 지도자라는 자리에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나 지도자가 되어선 안된다. 힘의 유혹, 그리고 권위의 유혹, 그리고 사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구성원들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말이 쉽지 너무나도 이상론적인 조건이다. 현실 사회에 이런 사람이 최고 지도자가 되어서 활약한 시대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 보니 역사를 통틀어 명군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반대로 암군들은 수두룩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27명의 지도자 중 뛰어난 임금이 몇이나 있는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빠르게 진도를 뽑을 수 있겠지만, 이쪽 방면에 흥미가 없더라도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는데 무리는 없다고 본다. 평이하게 서술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고 독특한 해석을 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나는 지금까지 시중에 판매된 대중 역사서 대부분을 읽었다. 최근 역사라는 장르가 대중화되어 다양한 저술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다양한 책이 나오다 보니 '수준 이하의 책'이나, 웹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부풀려 써낸 '영양가 없는 책'이 많아서 우려가 있었는데,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역사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자신있게 손꼽을 수 있다. 최근 나온 신간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간신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었으며, 간신 너머에 있는 권력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기업이나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에게는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은 도서다.

 

마지막으로, 책의 내용과 구성은 다 좋은데 제목이 아쉽다. 제목은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인데, 과연 모든 권력이 간신을 원하는 것일까. 앞서 에를 든 세종과 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비교적 투명한 권력, 그리고 정당성이 있는 권력은 간신을 만들어내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권력이 간신을 원한다는 제목의 문구는 너무 비약적이다. 제목 앞에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정도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