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치요 - 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샤오샹젠 지음, 김성동.조경희 옮김 / 싱긋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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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의 명군들에겐 그 명군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한 서적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조선 왕조의 경우, 태조와 태종, 세종의 머릿속에는 <대학연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치적을 밝히는 일은 그들이 애독한 서적들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겠다. 고려 시대 광종의 경우는 <정관정요>를 애독하였다고 하며, 그 <정관정요>는 고려의 중요 제왕학 교제가 됐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십 강의는 중요했다. 특히 동양에서는 뜻이 있는 군주들은 어떻게 통치를 해야 할까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효율적이고도 바람직한 리더십을 연구한 학문이 바로 제왕학이다. 지금 시대에서 성행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책들의 뿌리는 태고의 인간이 집단과 국가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발달했었고,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왕학이란 학문이 군주나 국본인 세자를 위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발전했고 이미 절대적인 신분계급제는 타파됐으며, 이제는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리더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리더십의 시대라고 할 만 하다.

<군서치요> 역시도, 그 시대의 리더십을 고민한 책 중 하나였었다. 이 책은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하면서 그의 명으로 편찬된 제왕학의 책이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어린 시절 현무문의 변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뒤, 제왕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 고조와 함께 전선에 앞장섰으며, 당나라 개국의 큰 공을 이룩했었다. 그러나 나라의 건국 뒤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왔었고, 칼로써 형제들을 무찌르고 그렇게, 권력투쟁이 승리하여 권력의 정점에 섰다. 그는 수나라의 몰락을 지켜보며 느꼈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집권하기보다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칼을 빼 들은 그여서, 통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깊이 독서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통치를 위한 제왕학서를 편찬하라고 당대의 명신(위징을 포함한)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하여 완성된 당나라 태종의 제왕학서가 바로 <군서치요>라는 책이었다.

보통 우리는 당 태종 이세민 하면 <정관정요>를 떠올린다. 물론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며, 당 태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관정요>라는 책은 당 태종 사후에 오긍이라는 사관이 사료를 참고하여 만든 책이다. 즉 당 태종이 집권할 시기에 당 태종이 애독했던 책은 바로 <군서치요>라고 할 수 있겠다.

내용상 <정관정요>와 <군서치요>를 살펴보자면, <정관정요>가 당 태종의 행적들을 중심으로 밝힌 역사적 성격의 제왕학서라고 한다면 <군서치요>는 중국 고대의 여러 제자서들과 경서, 그리고 역사서들에서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집대성한 철학적 성격(이론 중심적)의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들만을 살핀 역사서라고 보면 되겠고, <군서치요>는 중국의 고대 이래로 내려져오는 철학과 역사를 통치론으로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군서치요>는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제왕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이와 비슷한 책이 떠올랐다. 바로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유가적인 제왕학서 <대학연의>가 떠올랐다. 두 책은 경(철학)과 사(역사)가 만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연의> 역시 유학의 이론서들과 <사기>와 <한서>, <자치통감> 등의 역사서들을 혼합시켜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책의 성향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가령 예를 들면 <대학연의>는 철저하게 유학 중심적인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대학연의>에 인용되는 경전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유가 서적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군서치요>를 살펴보면 유가에서 극도로 꺼리는 제자서 들을 대거 포용하여 집대성하고 있다. 바로 법가의 <한비자>, 도가의 <노자>, 병가의 <손자>, <울료자> 등등 유가를 포함한 40여 가지의 제자서를 분류하여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모두 인용하여 밝히고 있었다.

물론 <군서치요> 역시도, 기본은 유학 중심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당 태종 이세민 역시도 유학을 존중했고,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유학이 추구하는 인과 예 의 지 등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연의>가 완강하게 유학적 사고를 고집하고 강요하는 느낌, 그리고 타 사상에 대한 비판을 논한 부분 등에서 보이듯, 다른 사상에 대한 관대하지 않은 부분이 <군서치요>에는 없었다. 유학을 존중하되, 다른 제자학에 대해서도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구절들은 사상을 가리지 않고 기록하여 남기고 있었다. 즉 <대학연의>에 비해 사상적 편협함은 보이지 않았다는 부분이 느껴졌었다.

이 부분은 <군서치요>가 나온 당나라와, <대학연의>가 나온 송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당나라의 경우는 어쨌든 북방 민족이 건국한 이민족의 국가였다. 당 태종 이세민은 유학을 존중했지만, 도교를 국교로 선택할 만큼 도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군주였었다. 즉 사회 분위기가 사상적 편협함이 송나라보다는 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족이 세운 송나라의 경우는 전형적인 유교 지향적 사고 관념을 보여주고 있고,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학자들이 성리학을 개척했었다. 그 과정에서 타 사상들은 모두 배격됐었고 성리학만이 유일한 국학으로 인정받았다. 그 이론에 입각하여서 <대학연의>가 편찬됐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군서치요>의 편찬자들은 여러 명이었던 것에 비해, <대학연의>의 저자는 진덕수 한 사람이다.

<군서치요>가 또 중요한 점은 풍부한 제자서의 인용 덕분에, 지금 원본이 손실된 책들의 중심 내용이, <군서치요>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료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나라를 깔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군서치요>에는 사료적인 가치를 의심할 만한 의문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중국에서 원본이 없어진 책이다. <군서치요>는 <대학연의>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방대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논의된 권수는 40권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중국 본토에서는 오랜 내전 끝에 없어졌었다. 그럼 어떻게 이 책이 전해질 수 있었느냐? 책이 제작되고 일본에 전수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역대 천황들이 이 책을 보며, 제왕학을 익혔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도 이 책을 굉장히 중시했다고 나온다.

일본에 전파된 <군서치요>는 세월이 지나 일본에서 역으로 전파되어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책 몇 권이 소실됐다.) 아무튼 그런 기구한(?) 운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진본이 없어진 책이라서,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게 논쟁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컸다. 나 역시 이 책의 존재를 <정관정요>에서 발견했었는데,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제왕학서라 기억에 사라졌는데, 이렇게 책을 만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학을 존중한 국가였다. 따라서 유학 중심적인 <대학연의>를 제왕학의 교제로 선택했고 다른 사상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번역되는 동양 고전 책들을 보면 아무래도 유학 중심적인 번역이 많다. 이 부분도 참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한 사상의 고전들을 번역해야겠고, 유학의 중요성은 인식하되, 유학에 집착하는 관념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바로 <군서치요>와 같은 주옥같은 고전들도 원전 번역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책을 보며 생각했었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군서치요>의 원전이 아니다. 샤오쟝센이라는 엮은이가, 방대한 군서치요를 일반인들이 보기 좋게 주제별로 나눠서 재편집하여 해설을 가한 '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니 최대한 <군서치요>의 철학을 잘 알려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원전을 다 밝혀놓은 것이 아니라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책은 요약 안내서이지만 쪽수가 535쪽 양장본으로 상당히 두툼한 책이었다. 그만큼 원전이 방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바쁜 현대인이, 방대한 고전인 <군서치요>를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국내에서는 이 책 외에는 <군서치요>를 볼 수 있는 책이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조금 욕심이 나서, 책의 원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번역할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겠지만...)

책의 해석이 조금 중화주의 사상 중심적인 시각이 보여서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 부분을 스킵하고, 본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문헌들의 내용도 많이 있어서 그 부분들을 확인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다만 이렇게 <군서치요>라는 책을 편찬한 당 태종 이세민도, 현신들이 먼저 죽자, 말년에는 꽤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실정을 저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것은 후계구도에 대한 취약성도 나타났다.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은 참으로 닮았다. 부왕인 태조를 도와 개국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과,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여 전쟁 경험을 두루 겪은 점,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용상에 올랐던 점, 그리고 나라의 초석을 다진 점 당 태종은 <군서치요>를 바탕으로 정치를 했고, 조선 태종은 <대학연의>를 바탕으로 통치를 했다.  참으로 닮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의 차이점은 앞서 말했듯 후계 구도다. 당 태종 사후 당나라는 급격하게 왕권이 약화됐지만, 조선 태종은 세종이라는 군주를 배출했다. 당 태종은 말년에 고구려 원정이라는 무리수를 뒀지만, 조선 태종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그 임무를 충실하게 했다. (사담으로 이방원은 역사상 과거 급제를 한 유일한 공인 능력 인증 군주라는 점도...)

 아무리 이런 통치학의 책을 발간하고 익혔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당태종 이세민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좋은 글을 집대성하고, 통치에 도움이 되는 사상을 엮는다 한들, 끝까지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세상에 좋은 글은 차고 넘치지만, 그 좋은 글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참 힘든 법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리더가 될 사람들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은 완역이 아니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발간하지 않은 <군서치요>, 그 <군서치요>의 요체를 밝힌 핵심 안내서를 만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기쁨도 있었다. 하루빨리 완역본이 발간되길 기대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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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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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자고 일어나 한 챕터를 읽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는 음식의 글은 나를 배고픔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짬짬이 읽다 보니, 다 읽게 됐었다. 책의 이름은 <백년식당> 요리사 박찬일이 쓴 식당 리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신간인 이 책을 굳이 내 돈 주고 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나 역시 블로그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식당 리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식당들을 리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대충 사진 몇 장으로 때우고, '맛있었다.' , '우와 짱' 이런 식의 수식어로 치장한다면 한결 수월하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나는 그런 리뷰를 지향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먹은 것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표현하고 좀 더 입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숱한 리뷰들과는 차별화하기 위해서, 매번 고심하고 고심했다. 그래서 글 쓰는 요리사인 박찬일의 신간을 참고하려고 이 책을 구매했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소개하는 식당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맛객이므로, 맛있는 식당들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고 찾아가서 먹어보고도 싶은 그런 식객이기도 하니까,


세 번째는 오래가는 '식당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책은 우리나라 전국의 오래된 노포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여러 맛집을 다룬 책과는 달리 18개의 노포를 다루고 있었다. 왜 이 책에 소개된 노포들이 살아남았는지 살아남은 조건은 무엇인지, 과연 좋은 식당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첫 번째로 해박한 박찬일 요리사의 지식이었다. 물론 그는 요리사고 이 분야에 전문가이지만, 그가 쓴 18개의 탐방기를 읽다 보면 혀를 내두른다. 위로는 고전의 문헌에서부터 아래로는 재료의 맛과 질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다른 나라의 비슷한 음식들과 비교와 차이까지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썰을 풀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느낀 것은 실제적으로 음식의 맛을 묘사한 대목은 적었다. 18개의 음식점을 리뷰하며 342쪽을 소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가게의 음식만을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주인과의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서, 재료에 대해서, 그리고 식당의 역사에 대해서, 시대상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즉 '음식'만을 위한 리뷰가 아니라 '노포 그 자체'를 리뷰하고 있었다. 노포의 세월과, 노포의 역사, 음식의 재료와 공수, 서비스 등등 여러 가지 다방면적으로 식당을 소개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부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었다.


나 역시 식당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리뷰하러 가는 경우도 몇몇 있는데, 이때 나의 리뷰의 포인트는 음식에 집중을 했었었다. 그러나 사실 음식을 메인으로 한 리뷰는 한계가 있다. 맛있는 부분을 묘사하는 것에는 아무리 길게 쓴다 한들,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나도 초대받아서 리뷰를 하는 경우에는 음식의 맛도 리뷰하겠지만, 가게 주인과 대화를 많이 나눠서 가게를 운영하는 철학과 재료의 공급 등등 그런 부분도 심도 있게 설명해야겠다 느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오래가는 음식점, 노포들의 공통점을 추려 봤는데 다음과 같다.


1. 가게의 철학이 있으며, 가게만의 철학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2. 가게의 중심은 지키되, 시대적으로 변동된 음식 취향을 참고한다.

3. 주인이 편하게 쉬지 않는다. 특히 포스 있는 집들은 주인이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4. 종업원들을 쉽게 자르지 않는다. 그만큼 주인의 덕이 돋보인다. (20~30년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다.)

5.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재료 공급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6. 선대의 맛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7. 가게가 허름하더라도, 음식은 굉장히 깔끔하게 손질하여 낸다.

 

사실 우리나라 요식업은 그 역사가 짧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의 역사만 읽더라도, 근현대의 여러 역사들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 노포들을 기록한 이 작은 에세이는 읽기에 따라서, 음식으로 본 근현대사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그리고 숱하게 나와있는 맛집 소개서들은 몇 백 개의 음식점을 그저 팸플릿처럼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딱 18개의 업체만 소개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소개하는 것이 아닌 가볍게 스쳐서 알려주는 것이 아닌, 맛깔지게, 역사성 있게, 음식의 지식을 동원하여 해박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토리가 있는 에피소드가 살아있는 이 책의 썰이 좋았다.


특히나 술 먹고 내가 단골처럼 해장하던 청진옥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잘 알게 됐었다. 아버지가 주로 갔던 용금옥에 대해서도 알았고, 고향인 대구의 유명한, 상주식당의 추어탕과, 육개장 맛집 옛집식당도 굉장히 반가웠다. 그 외 내가 모르던 열차집이라는 곳과 부산의 맛집들, 특히 서면의 마라톤집은 꼭 가고 싶은 집으로 찍어놨었다.


확실히 요리사인 박찬일이라 그런 것일까, 부담 없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그리고 글 만으로도 꼬르륵거리게 잘 써논 것 같았다.


책의 편집도, 마음에 든다. 손 때가 잘 묻기 쉬운, 마모되기 쉬운 종이로 겉지를 만들어서 남들은 책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편집이라서 '백년식당'이라는 콘셉트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책의 겉지가 좀 마모되면 어떠랴, 백년식당 이라는 이름처럼, 다소 좀 흐트러지고 닳더라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오래된 집들이 대거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강원도와 전라도의 오래된 맛집들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이 부분은 필자도 아쉬움을 토로한 부분인데, 나도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다. 후에 속편을 발행한다면 더 많고 다양한 집들을 소개해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다.


너도 나도 식당을 하는 시대, 그래서 흔해진 것이 요식업이지만, 맛집 블로거들에 의해, 맛집에 대한 위상도 높아진 것이 지금의 식당업의 현주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식당 일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이 책을 통해서 읽어낸 것 같았다. 단지 여기에 소개된 집들이 궁금해서 이 책을 사는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는 독법은 다양하다. 나처럼 책을 읽으며 나의 리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특히나 요식업을 하시는 분들의 눈으로 보자면, 왜 이 노포들이 살아남고 인정받는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다.


분명 노포라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래된 것이 살아남으려면 역사성도 중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성에 못지않은 깊이다. 한결같이 내려오는 깊이와 역사성 이 둘을 갖췄을 때, 우리는 그 집을 진정한 노포라고 칭할 수 있겠다. 숱한 식당은 많지만 '역사'와 '깊이' 둘을 가진 식당은 흔하지 않다. 그런 부분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이 집들은 '깊이'와 '역사'가 서려 있는 집들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나라에도 '백 년이 된 역사와 깊이가 서린 식당'이 많아지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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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5
플라톤 지음, 전헌상 옮김 / 이제이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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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들은 그 이전에도 노래를 하긴 하지만 자신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바로 그때 가장 많이 최고로 노래를 하는데, 그건 그들이 섬기는 신 곁으로 떠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네.'


억울한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것에 대한 백조의 승천곡. 그것이 바로 이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의 죽는 모습을 다룬 대화편인 <파이돈>. 따라서 그 어떤 대화편보다도, 배경이 주는 긴박함은 강렬했다. 그런 긴박하고 슬픔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역시 소크라테스였다. 침착하고 정숙하게, 그리고 절도 있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변명>에서 말했듯,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철학하고 묻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주장을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에서 지켜나가고 있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그 대화편의 주인공은 항상 소크라테스였다. 책을 쓴 저자는 항상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길 은연중에 바라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공명심은 조금이나마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저서에서 저자인 '플라톤'의 이름은 단 두 번 등장하는데, 바로 <변명>에서, 소크라테스의 보증인으로 서겠다는 부분과 바로 이 <파이돈>에서 약간의 언급이다. 그 외에 자신의 저서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플라톤은 자신을 죽이고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존경하고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파이돈>에서 언급은 <변명>에서의 언급과는 다르다. <파이돈>에서 플라톤이 나오는 대목을 잘 살펴보면,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누가 있었냐는 물음에서, 플라톤은 당시 병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는 작은 언급만이 있었다. 그런데 플라톤은 스승이 죽은 상황을 <파이돈>이라는 저서로 남겼으며, 이 저서는 숱한 철학자들에게서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다룬 가장 확실한 책으로 권의를 부여받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미묘한 감정을 느꼈었다.


플라톤은 참석하지 않은 시간 - '스승이 죽은 순간'에 대해 과연 어떻게 글로 남길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은 느낌보다, 자신이 직접 임종에 있었던 것처럼, 이토록 자세하게, 그리고 이토록 논쟁을 치밀하게 담을 수 있었을까? 분명 책 초반부에, 플라톤은 독자들과 거리를 조성했다. '나는 그곳에 없었어.'라고 당당하게 책에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스승의 임종 상황을 지독하리만큼 상세하게 알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추측을 해 봤다. 첫 번째,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 실제 소크라테스의 임종과 동일하다는 가정. 실제 <파이돈>의 구성을 살펴보면 액자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액자 밖의 대화는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의 임종 전의 논쟁들과 임종의 모습을 들려주는 것으로 이뤄져 있고, 본 이야기는 액자 속의 소크라테스의 죽는 순간을 다룬 이야기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승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플라톤은 실제 스승의 임종을 지켜본 누군가(극 중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이야기하듯)에게 스승의 임종 상황을 유심히 듣고 그대로 기록을 했겠다.


두 번째는 <파이돈>이라는 텍스트가 거짓을 말하는 경우이다. 실제 소크라테스의 임종은 이와 같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플라톤의 생각과 자신만의 관념을 더해서, 스승의 임종 상황을 재구성하여 나타낸 것이 <파이돈>의 내용이라는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플라톤은 스승을 기리기 위해, 약간의 허구를 섞어 <파이돈>을 쓴 것이 되겠다.


여기서 생각할 부분은 보통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가를 때,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눈다. 대화편의 가장 유명한 것은 <국가>로 전형적인 중기 대화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리뷰한 <변명>과 <크리톤>은 초기 대화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학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파이돈>은 전형적인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초기 대화편의 경우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플라톤이 스승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중기 대화편으로 갈 때 플라톤은 주인공인 스승의 이름을 빌려,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전개하는데, 흔하게 중기 대화편에 나오는 이론이 바로 그 유명한 '이데아론(형상이론)'이다. (이데아가 무엇인지는 밑에 상세하게 다룸), 학자들의 분류로 살펴본 건데, 일단 <파이돈>에는 플라톤의 관념이 초기 대화편들보다는 다소 강하게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 <파이돈>에서는 이데아론이 4번이나 등장한다.


기존의 대화편들과의 현재 비교 연구를 통해서도, 텍스트 내부의 여러 상황 (플라톤은 이 임종 때 참석하지 않은 부분)을 보더라도, 내가 생각했을 때에는 플라톤의 주관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대화편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플라톤의 저서에서 가장 혼돈이 되는 논점은 이것이 과연 '실제 소크라테스의 사상인가 vs 스승의 가면을 쓴 플라톤의 사상일까?'라는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도 엇갈리고 확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혼돈스러운데, <파이돈>은 읽을 때마다 소크라테스의 가면을 쓴 플라톤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리고 이번 독법에서도 강하게 느꼈다. 즉 내가 느끼기에 이 대화편은 플라톤의 저술 동기가 가장 직선적이고, 저술 내의 플라톤의 의지가 가장 강하게 드러난 대화편이 아닐까 싶다.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만 봐도 이런 부분은 두드러진다. <파이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사후 혼의 불멸'이라는 부분이다. 배경으로 보자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루는 때에 가장 적절하고 알맞은 철학적 담론은 아무래도 사후 세계의 영혼에 대한 담론이 아닐까 싶다. 삶의 공간이 아닌 죽음의 공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사후 영혼을 다루는 책이라서, 책의 주제 만으로도 상당히 강한 포스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주요 담론은 액자 내부에서 시작된다. 철학자의 죽음을 두고,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철학자라면 죽음을 오히려 반긴다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에 케베스와 심미아스는 반론을 펼치고 이들과의 영혼을 다룬 논쟁 자체가 바로 <파이돈>의 핵심 내용이다. 요약해서 정리를 해 보면,


소크라테스는 영혼과 몸을 분리하여 인식하고, 몸의 여러 감각기관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반면 영혼의 가치는 몸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며, 결국 죽음이란 영혼의 감옥인 몸에서 해방되는 행위이므로,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오히려 반가워해야 한다는 논의를 펼친다. 즉 이런 논쟁의 전제조건은 혼은 소멸하지 않으며 항상 불멸함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심마이스와 케베스는 반론을 제기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존재를 위해 '순환논증(x가 F라는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리고 반대되는 속성 -F가 존재한다면, F를 가지게 됨이라는 변화는 -F로부터의 변화이다. ex - 차가움의 인식은 앞전 따뜻함에 비롯된 것으로, 이것을 삶과 죽음으로 대입시켜, 삶으로부터 죽음이 죽음으로부터 삶이 존재하며, 결국 죽어서 삶으로 가는 과정에서 영혼의 존재성을 입증함.) '을 시도했으며, '상기논증(대상을 상기함에 있어, 태어날 때부터 상기에 필요한 같음이라는 앎을 알고 있고, 이것은 영혼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논증, 따라서 영혼의 존재를 입증 - 상당히 복잡하고 학자마다 해석이 갈리는 부분으로 논의의 결론만을 요점적으로 서술. 인식론과도 맞물림. 자세한 것은 책 참조)'을 통하여 영혼의 존재에 대해 논지를 강화했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초반부 철학자가 죽음을 추구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데아 이론(보이지 않는 이성적인 것으로만 - 감각 기관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알 수 있는 본질)이 나온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사실 상기 논증에서도 이데아 이론이 설명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상당히 난해했고 학자마다 해석이 갈리기 때문에 조금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이런 증명에도 불구하고 심마이스와 케베스는 '영혼이 태어나기 전에 존재'만을 입증했을 뿐, '죽고 나서의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유사성 논증'(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내세워 몸과 감각기관의 인지를 가시적인 것으로, 영혼과 이성적인 인식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내세워 유사성에 입각하여 논증한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각 속성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가시적인 것은 소멸 해체되며, 비가시적인 것은 소멸되지 않음을 입증한다.) 으로 인해, 그들의 논란을 잠식시킨다. 여기에서 또 영혼의 항목과 몸의 항목 대립적인 축을 설명하면서 비유를 든 것이 바로 이데아론이다. 그 뒤 심마이스와 케베스는 각각의 반론을 펼치는데, 이에 대한 부분을 소크라테스는 증명하며, 결국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며, 확고하게 동의를 얻어낸다. 전체적으로 복잡한 논증은 이렇게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다뤄진다.)


사실 책은 상당히 어렵다. 주제면으로도, 보이지 않는 영혼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그러하며,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본격적으로 논증에 드러나는데다, 상당히 어려운 논의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운 대화편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저술한 플라톤의 동기는 분명하다. '내 스승인 소크라테스께서는 육신은 이렇게 죽지만,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해방되는 것이며, 사후 세계에서 영혼을 잘 갈고닦은 스승은 결국 최고로 안락한 곳에 위치하리라, 스승의 혼은 불멸하리라.'라는 제자의 마음을 나는 느꼈던 것 같다. 그러한 저술 동기 때문에 플라톤은 스승의 극적인 모습을 담은 <파이돈>에서 자신의 이론인 '이데아론'까지 동원하여가면서, 스승의 임종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세하게 책을 쓴 것은 아닐까?


책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이돈> 대화편을 관통하는 이분법, 두 축을 잘 읽어내야 한다. 내가 읽었을 때 <파이돈>은 육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간과, 영혼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간 두 부분을 크게 가르고 있는 대화편이다. 전자의 속성은 감각기관, 몸, 육체에 집중한 삶, 쾌락적인 삶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플라톤은 이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다. 반면 후자는 이성 기관, 정신, 영혼에 집중한 삶, 금욕적이고 내면을 추구하는 삶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두 축은 사후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즉 동물적인 삶을 산 사람은 동물로 태어나고, 인간적인 삶을 산 자는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윤회설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이승에서 철학으로 인해 영혼을 잘 닦은 자는 신들이 사는 공간으로 갈 수 있다는 부분은 불교를 비롯하여, 동양의 여러 내세의 사상들과도 맞물려 있는 부분이었다.


즉 물질 중심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에서, 이 대화편이 던지는 화두는 바로 '영혼', 즉 내면을 돌보는 삶에 대해서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물질보다 영혼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물질주의적인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금의 물질 지상주의의 사회에 대해서는 조금 심하다는 게 내 생각인데, 이런 부분에서 <파이돈>은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이 대화편의 주된 논의인 영혼의 존재와 불멸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논증이 어려워 따라가기가 힘들다 하더라도, 이 부분은 쉽게 설명되었으며, 이 부분만에 서라도 물질 중심주의 사회에서 현실을 돌아보고 교훈을 얻는다면 많은 것을 느끼게 할 대화편이 아닐까 싶다. 실제 플라톤은 이 부분을 대화편의 핵심으로 간주할 정도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꼈다.


해설에 보니 이런 플라톤의 금욕주의적인 모습은 후대의 기독교를 비롯하여, 많은 철학 학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ex 스토아학파의 현인) 그리고 청교도의 사상에도 유사한 부분이 보이기도 했으며, 실제 동양 사상, 극도의 도덕주의를 내세운 유교, 공자의 군자의 상과도 떠올랐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다룬 대화편과 비교를 해 보자면 <변명>과 <크리톤> 그리고 <파이돈>으로 서사적으로 엮을 수 있겠다. <변명>의 주요 주제는 '되묻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다소 개인주의적인 범주로 주제를 고찰하고 있다. 반면 <크리톤>의 주요 주제는 '법과 개인'을 다루고 있으며 이 대화편은 개인주의를 넘어선 사회와 인간을 다루고 있다. <변명>과 <크리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현세적이며 현실적인 삶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면, <파이돈>은 이런 두 대화편과 극명하게 다르다고 느꼈다. <파이돈>은 사후 세계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으며, 그것은 인간의 죽음과 사후 세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앞선 두 대화편이 현세적인 성격을 지녔다면 <파이돈>은 내세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앞선 두 대화편에 비해 다소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논고하고 있었다. (이데아론 등등의 등장.)


특히 <변론>의 초중반부 부분은 법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크리톤>과도 밀접하게 관계가 있었다. 또한 <변론>의 후반부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파이돈>이 바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변론>을 중심으로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세 대화편은 상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파이돈>에서 주장한 대로, 신들이 머무는 곳에서 불멸의 영혼으로 살아남아 있을까? 그리고 플라톤 역시도, 성실하게 철학을 공부했으므로 신들이 머무는 곳에서 과연 스승을 만났을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혼에 대한 논의 자체가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부분이며, 결정적으로 객관화할 수 없는 물증이 없는 논의이기 때문에(소크라테스는 감각기관으로 인지하는 것을 경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혼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백조들은 그 이전에도 노래를 하긴 하지만 자신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바로 그때 가장 많이 최고로 노래를 하는데, 그건 그들이 섬기는 신 곁으로 떠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네.'


다만 플라톤은 <파이돈>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승천곡, 백조의 노래를 지음으로써, 그리고 그 <파이돈>이 현세에 막강한 권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 곁에 항상 살아있음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혼이 불멸하는지 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파이돈> 덕분에, 더욱 생생하게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책에서 주장한 불멸의 영혼처럼 그들은 현세 인류 지성사의 아이콘으로 영원할 것이다. 신들이 있는 공간에서 과연 플라톤은,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알까? 사제는 작금 현세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다. 궁금증을 끝으로, 책을 덮으며 소크라테스의 (혹은 플라톤의) 명언이 떠오른다. 인상 깊은 구절을 끝으로 서평을 닫아본다.


 

'올바르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몸에 관련된 모든 욕망들을 멀리하고 견뎌 내며 그것들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데, 그건 많이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그가 가산 탕진과 가난을 조금이라도 겁내서가 아니라네. 또 그건 그들이 권력을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그가 불명예와 타락으로 인한 오명을 두려워하고 그로 인해 그것들을 멀리하는 것도 아니라네


모든 즐거움이나 고통은 마치 못을 가진 듯 영혼을 몸에 대고 못질해 박아 육체적으로 만들어서는 몸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참이라고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몸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에 대해 즐거워함으로 해서, 내 생각에, 영혼은 필연적으로 그것과 같은 성격과 같은 습성이 되고 결코 순수하게 하데스(죽음)에 이르지 못하고 매번 몸에 감염된 채 떠나가야 하는 그런 어떤 것이 되어서 결국 다른 몸속으로 곧바로 다시 떨어져 마치 씨 뿌려진 듯,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런 이유들로 해서 신적이고 순수한 모습인 것과 함께 있음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말거든.'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크리톤 - 플라톤>, <국가 - 플라톤>, <영혼에 관하여 - 아리스토텔레스>,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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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9
플라톤 지음, 이기백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악법도 법이다.'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 배웠던 소크라테스의 격언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알았지만, 사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저 말은 누군가가 지금 리뷰하려는 대화편 <크리톤>을 보고 참고하여서 지어 낸 말이었던 것이다.


<크리톤>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책으로, 상당히 짧다. 그러나 일명 소크라테스의 4대 대화편에 항상 들어가는 대화편이었으며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4대 대화편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으로도 묶을 수 있겠다.


책은 짧은 분량이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더없이 난해한 부분이었으며, 특히 전편이라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모순적인 사상이 존재하여서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해석의 다양함을 선사하고 있는 책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전작은 <변명>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친구이자 이번 대화편의 이름인 '크리톤'은 친구 소크라테스가 죽을 것이라는 소식(델로스에 사절단을 보낸 배가 돌아옴, 이 배가 출항했을 때는 모든 사형을 연기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30여 일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을 받고 마지막으로 그를 탈옥시키기 위해, 감옥으로 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크리톤에게 논쟁을 시도했다. 그는 국가의 사형선고를 지킬 것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크리톤이 주장하는 탈옥은 정의에 위배되는 부분이라 잘라 말하며, 크리톤을 설득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를 설득하지 못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 압도당해 그가 죽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죽는 순간, 그리고 죽음을 바로 앞둔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구하러 온 크리톤에게 한 말이었다.


'내게 이런 운명이 닥쳤다고 해서 내가 이전에 말한 원칙들을 지금 내던져 버릴 수는 없네. 만일 지금 우리가 이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제시할 수 없다면, 나는 자네에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아두게. 다수의 힘이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도깨비들로, 즉 투옥과 사형과 재산몰수로 겁을 줄지라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네.'


어떻게 보면 꼬장꼬장하고 원칙주의자 같은 소크라테스.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은 원칙을 고수하겠고, 그 원칙에 합당하지 않은 근거를 제시할 시 굽힐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변명>에서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사상 중,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이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제시할 수 없다면.'이라는 부분. 즉 자신에 대한 비판과 논쟁에서 더 합당하고 타당한 주장을 펼친다면 자신은 즉각 의견을 굽히고 수용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겨놓고 있었다. 원칙주의자라고 해서 자신의 원칙만을 최고로 여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포용력 있고 대범한 그의 사상이 드러난 부분이라 생각됐다. 이런 부분은 뒤에 나오는 그의 국가관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그가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행위는 결국 정의로운 행동인가.'라는 잣대였다. 크리톤은 이에 대해서, 자신의 논조로 이야기를 하는데, 대표적인 부분이 다수의 평판을 의식한, '내가 자네를 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는가.'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비유를 하며 논의를 이끌어가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소수더라도 의식 있는 사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의 의견은 대중의 의견을 압도하고 합당하다는 이야기를 펼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민간요법으로 의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의사의 말 한마디는 대다수의 사람을 초월한다. 그것은 소수의 각성 있는(혹은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이 하는 말은 대중의 여론보다 더 탁월할 가능성이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만일 그가 그 한 사람(전문가이자 의식이 깨어 있는 존재)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의 판단과 칭찬을 존중하지 않은 채, 전혀 전문지식을 갖지 못한 다수의 판단과 칭찬을 존중한다면 그는 나쁜 걸 겪지 않겠는가.'


'이것들과 관련해서 우리는 다수의 판단을 따르고 이것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 사람의 판단에 대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 밖의 모든 사람 앞에서보다도 그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두러워해야 할 전문 지식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있다면 말이네.'


어떤 사람, 즉 소크라테스는 전문 지식이나 영역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까지도 절대주의적인 면을 고수하고, 완벽한 인성에 다다른 인간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는 '윤리적 절대주의' 사상을 드러내며 크리톤을 일깨운다.


다만 나는 이 대목에서 생각을 한 부분이 어느 특정 분야나, 측정화할 수 있고, 객관화할 수 있는 지식의 범주에서는 분명 절대주의가 통용되겠지만 과연 윤리나 덕을 다루는 분야까지 절대적 범주에 도달한 인간성을 설정한 것은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나 역시 부분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존중하긴 하지만, 과연 인간이란 존재가, 윤리 앞에서 절대적인 범주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인 관점을 고수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회의주의적 관점은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부분이지, 윤리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은 아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윤리라는 가치 위에 설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덕이나 윤리를 추구하여서, 불완전한 내면을 다스려야 한다는, 관점이 내 관점이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윤리라는 가치를 마스터한 인간, 그것을 설정한 소크라테스의 관점을 따르고 있진 않다.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의에 대한 담론에서 크게 느낀 점이 있었다.


크리톤과 소크라테스는 정의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윤리관에 봉착한다. 즉 당시 고대 사회는 보복적 윤리관을 지향하고 있었다. 즉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당할 시 그대로 혹은 어느 정도만이더라도 보복적으로 불의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에 만연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이라던가, 중국의 법, 아니 외국을 떠나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고조선 8조 법에서 보복적 윤리관을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이 당시 그리스 사회 역시도 그런 생각이 만연했었다. 크리톤 역시 이 사상에 입각하여, 국가가 행한 사형이 불의에 입각하니, 소크라테스 너는 탈옥해도 괜찮다고 은연중에 주장했다. 이런 크리톤의 내면에도 아테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보복적 윤리관을 가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하면 '소크라테스적 윤리관'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든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도 해롭게 해서도 안되네, 그들에 의해 무슨 해를 입든 말든 말이네.'


지금은 범국가적으로 평화적인 사상이 만연하여 이런 평화주의적인 윤리관이 익숙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런 윤리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이 당시 고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부분이었다. 당시의 고대 사회상은 여전히 보복주의 윤리관이 성행했었는데, 그런 서구 사회에서 텍스트에 나온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보복주의 윤리관에서 탈피하여, 설사 국가가 나에게 불의 한 죽음을 가하더라도(보복의 가함), 나는 그 부당한 죽음을 부당하게(탈옥) 대응하지 않겠다.'며 크리톤에게 강조했다. 이런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윤리관은 확실히 진보적이었고, 신선한 모습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논리를 크리톤에게 주장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논쟁을 할 때 먼저 생각이 다른,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크리톤을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며 '공동의 논의 기반'을 설정하고 공유하며, 그 공동의 논의 기반을 설정했을 때 그 공동의 논의 기반이 '숙고의 출발점'으로 삼는 모습. 이 부분은 토론문화가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아직도 우리는 논쟁이라는 것을 할 때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억압하고 내 목소리만 크면 장땡이라는 인식을 가지는데, 그런 부분보다는 일단 논쟁자와 '공동의 논의 기반'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토론에서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기도 했었다.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책의 핵심 주제는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법의 의인화'를 통해 자신의 설명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크리톤>의 핵심 주제는 '부당한 법에 대해 과연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인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확장하여, '부당한 법에 인간이 순응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항거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라는 물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설득시키러 온 크리톤을 역으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즉 자신이 국가의 사형을 받고 죽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며, 부당한 법이더라도 선고가 되면 따라야 한다는 신념을 설파했다. 모순적인 모습은 여기서 드러난다. 분명 <변명>에서의 소크라테스는 악법은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첫 번째로 그리스 30인 과두정 시기 정부는 소크라테스에게 레온을 연행해 오라고 지시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 명령이 정의롭지 않다고 따르지 않았다, 두 번째는 사형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은 만약 자유로워진다면 국가가 금지한 논쟁적 철학을 죽어서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대목) 이 대목에서 볼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악법은 따르면 안 된다.'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그 후속 대화편 <크리톤>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전혀 반대로 일어난다. 결국 자신의 사형이 결정된 법 지키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며, 이에 반대 입장에 선 크리톤을 논쟁으로 무마시켜버렸다.


정부의 권력(법의 권력)와 시민불복종을 두고, 결국 두 가지 사상이 모순되고 있고,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확실히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에 남는다. 내가 <크리톤>을 숱하게 읽어왔어도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할 때마다 답이 안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해설 역시도 난해한 부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어쨌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부당한 사형 명령을 군말 없이 따르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리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맹목적 국가주의로 매도하기 쉽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맹목적인 국가주의를 따르진 않았다. 의인화된 법의 말에서 그 대목을 살펴볼 수 있겠는데


'우리(법을 지칭 의인화한 것이다.) 에게 복종하기로 합의하고서,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는 경우 우리를 설득하지도 않기 때문이오.'


즉 법이나 국가가 나에게 잘못을 할 시에는, 불복종하기보단, 국가나 법을 상대로 논쟁하여, 설득하여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변명>에서 국가의 법에 불복종한 소크라테스를 생각해본다면, 두 번째, 자신은 죽어도 논쟁적 철학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부분은 이렇게 해석 가능하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대목은 그가 스스로 국가나 법을 상대로 자신의 정의로움을 설득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죽어서까지 철학하고 남에게 묻고 나에게 묻는 삶을 살겠다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이 모든 행위는 결국 국가를 설득하는 일말의 소크라테스만의 행위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첫 번째 의문이 남는다. 과연 과두정에서 연행해오라고 한 그 명령은 왜 따르지 않았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로서도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대화편을 보면서 소크라테스가 다 옳다고 해도 크리톤이 옳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가령 자네는 자식을 낳아놓고 키우는 것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만 낳고 무책임하게 가는 것이 부모의 도리인가라는 말은 크리톤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자네들(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라면 내 아이들까지 잘 보살펴 주겠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현대 시대에서는 공감력을 사기가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느 누가 절친의 자식 3명을 부양하겠는가... 아내에게 쫓겨나지 않을까... 애 하나 키우기도 힘든 세상인 현대 시대에...)


대화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까도 말했듯 '정의'라는 가치와 더불어, 국가권력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였다. 이런저런 의문점이 남더라도 죽음 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고 초연하게 자신을 살리러 온 크리톤을 설득하는 소크라테스에게 많은 영감을 받었다. 인간인 이상 생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한 본능인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유혹들을 잘 이겨내고, 극복했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믿으며 굳건하게 지킨 소크라테스. 그의 자세에서 많은 귀감을 얻었다.


책은 짧고 분량도 적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가치는 분량을 초월한다. 모순적인 소크라테스의 모습, 그것은 과연 그의 진실적인 모습인 것일까, 아니면, 스승의 죽음을 극적으로나마 미화시킨 플라톤의 오류인 것일까, 이것이 과연 소크라테스의 진짜 모습인 건지 소크라테스의 가면을 쓴 플라톤의 모습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대화편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다.  


다 좋은데 이번 번역본은 번역이 상당히 직역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지시대명사가 가리키는 부분을 잘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 짧은 텍스트지만 집중력을 요하는 책이었다. 또한 주석 처리에서 전문적인 단어에 대한 부분과 내용상의 해석을 돕는 부분을 나눠서 처리했으면 어떨까 싶다. 전문적인 단어에 해석 주석을 미주로, 내용상의 해석을 돕는 주석을 각주로 처리했으면 더 보기 깔끔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  


다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파이돈>을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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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8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 : 고대 그리스 시대 갑질에 대한 을의 항변



이 고전은 서구 사회에서 권력이 자행한 갑질에 을이 항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문헌이다.

이 고전으로 인해, 장래가 촉망받는 귀족 자제는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스승의 길, 철학의 길을 밝히게 된다. 그는 이 책으로, 자신의 죽어간 스승 소크라테스를 밝히기 시작했으며, 스승의 이름으로 서양 철학을 다시 바로잡아 세워나갔다.


​그래서 이 고전은 서구 사회의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가장 자세하고 생생하게 고찰한 문헌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흥미로운 구성으로, 짜여 있다. 작품 내에서 전지적 작가가 한 가지 이론을 전개하기보단, 마치 극본처럼, 다수의 대담자들을 설정하여서, 대화를 이끌어나간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대화편들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책의 배경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이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류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정치체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 거룩한 정치 체제와는 다르게, 그리스 사회 내부는 상당히 썩어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황금시대를 열어가고 있었지만, 전쟁과 정변으로 인해 시민들의 삶은 내면적으로 피폐해져만 갔었다. 그 결과 정부와 시민들은 그들의 피폐함을 화풀이할 대상을 찾았고, 거기에 걸린 것은 괴짜와도 같은 자유분방한 소크라테스였다.


거룩하고 자유스러운 정치 체제에서 그리스는 위대한 '거리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탄생시킨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다름과 다양성을 수용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런 결과, 기존과는 다른, 소피스트들과는 다른, 낮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채택한 아테네는 썩어 있었다. 겉으로만 관대하고 겉으로만 포장했던 아테네는 독단과 위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오만과 독단 위선이 표출된 대표적인 예가, 거리의 철학자를 죽인 것 이었다. 자신들이 배출한 특출한 철학자를 자신들의 오만 때문에 죽인 셈이다.


이 대화편은 그런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플라톤의 눈으로 재구성한 고전으로서, 당대의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끝내 스승의 죽음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던 젊은 지성인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방황을 경험했고, 민주주의가 자행할 수 있는 오만과 경고를 이 책에 담음으로써, 스승을 죽음을 몰고 갔던 원고들에게 역사적인 심판을 가함으로써, 실추된 스승의 명예를 복원했었다.


책은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서, 쓸 말은 별로 없겠지만.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그리고 서양 철학으로 말하자면 1+1과도 같은 기본적인 책이고, 거의 대부분의 철학 입문자들은 이 책으로 철학 원전 텍스트를 시작하니 굳이 이 책의 중요성을 다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라톤의 저서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며,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이 이 책이 아닐까 싶다.


다만 많이 알려진 문헌이지만, 내가 많이 읽은 탓에 나의 서평은 길어질 수밖에 없겠다. 이번 서평은 기존의 서평들과는 다르게 번역본 자체를 대거 인용하여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전개하려고 한다. (혹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책을 읽길 권한다.)


책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스스로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유죄 판결이 난 뒤 형량에 대해서 논고하는 부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형이 결정 난 뒤 최후변론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형태적으로 크게 책을 나누면 3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책의 역자인 강철웅 박사는 책의 첫 부분(무죄 주장)과 책의 마지막 부분(최후변론)은 신에 대한 논고가 들어간 뮈토스(신에 관한 이야기) 적 구성을 보여주고, 책의 중간 부분(형량에 대한 논의)은 로고스적 구성(이성 중심적인 구성)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다른 번역본을 읽을 때 의식하지 못 했던 부분이었는데, 상당히 인상 깊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발고한 사람들 그 집단 지성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시기와 비방을 이용하여 여러분을 설득하려 한 사람들, 그리고 개중에는 스스로 설득된 상태에서 남들을 설득하려 한 사람들도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 사람들 모두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 순전히 그림자와 싸우듯 항변해야 하며 대답하는 사람 하나 없는 상태에서 논박해야 하니까요.'


이 대목에서 나는 기원전이건 그보다 2000여 년 뒤의 우리 사회건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공인이 가진 힘은 개인의 힘보다 훨씬 강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공인의 말은 일반 사람들에게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겠다. 그래서 공인은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하며,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멀리 갈 필요 없이 최근의 이슈, 갑의 위치에 있는 조현아 사건만 생각해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 시기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지금 현대에도 사실 그때에 비해 나아졌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집단지성은 그들의 눈에 들지 않은 소크라테스를 불온자로 규정하였고, 그리고 결국 죽이기 위해 사형까지 세웠으니까 말이다. 그럼 그들이 과연 무슨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를 죄인으로 규정한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땅 아래 일들과 하늘의 일들을 탐구하고 더 약한 논변을 더 강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침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고, 주제넘는 일을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젊음이들을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다.'


그의 죄목은 두 가지로 집약되겠다. 첫 번째 교육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가치가 허용하지 않는 지식을 가르치고 퍼트렸다는 죄목과, 두 번째는 사회가 규정하는 종교관을 부정하며, 신을 부정하고 있다고 원고 측(고대 그리스의 갑 - 멜레토스 패거리)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는 바로 신의 목소리를 경청한 이유를 근거하며, 신탁에 의거한 목소리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항변했다. 그는 이 자신의 변명의 증인을 신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은 사회적 통념의 신앙을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무신론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으로 멜레토스를 대화에 참여시킴으로서 그와의 논쟁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흔하게 보이는 플라톤의 대화편과 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차이점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대상에 있다. 대부분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개개인과 소규모 대화만을 추구하고 있는데 반해 이 <변명>에서는 아테네의 시민들(집단)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변명> 내부에서 소크라테스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자신은 공적인 곳에서 불특정 다수와 대담을 나누기보단 사적으로 소수의 인물에게 깊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더 추구한다고 밝히는 부분과도 대치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변명>은 상당히 특이한 대화편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러나 역시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라고 생각이 들었다. 법정에서도 그는 상대 원고 측의 멜레토스를 자신의 대화에 참여시킴으로서, 기존의 대화편이 가지던 개별적 대립의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 소크라테스는 신의 속삭임 아래에서, 무지의 인정으로부터 지혜가 나온다는 진리를 주장했다. (이 부분은 사실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이다. 신이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였다는 부분은 지금 듣기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부분이니까) 즉 기존에 통념적인 아테네 지성인들이 알고 있다고 위장하고 허상을 떠는 그러한 허영의 도시에서, 그들의 허영과 그들의 아집을 꼬집기 위해, 여러 정평 난 명사들을 만나서 논쟁을 하고 다닌다. (숱한 플라톤의 대화편 제목들은 그러한 소크라테스의 논쟁적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즉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모른다 ->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그러나 기존의 지성인들은 그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그들이 모든 진리를 다 안다고 한다 -> 그런 이들에 비해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저들보다는 내가 더 지혜롭다. 


관점을 바꿔 동양철학 쪽에서도 이런 지식에 대해서 많은 격언이 존재한다. 가령 도가 철학의 <노자 도덕경>에서는 최상의 앎은 역설적이게도 무지이다. 지식을 끊을수록 행복해진다.라는 회의적인 관점을 보였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럼 동양의 소크라테스라 추앙받는 공자는 어떨까? <논어> 2편 위정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유야, 너에게 아는 것을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이 관점은 소크라테스의 관점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다. 노자와는 다르게, 공자는 앎과 지식에 대해서 긍정적인 철학자이다. 그러나 그런 공자조차도 무조건적인 지식을 지향하지 않았다. 특히 모르는 것에 있어서는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사상은 일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동양의 성인과 서양의 성인은 지역은 다르지만 이렇게, 지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공통분모가 있었다.


무지에서 앎을 이끌어내고, 그러한 솔직한 앎의 범주를 설정하는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아는 척하고 위선과 교만으로 포장한 기존의 지식인층, 허영과 가식에 찌든 지성인들과는 달랐다. 그는 그러한 사회의 '갑'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들과 논쟁을 시도했었고, 그들의 허상과 허위를 낱낱이 밝히기 시작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거의 혹은 아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인간들 가운데 쌔고 쌨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 때문에 검토 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서 가 아니라 나에게 화를 내면서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지극히 부정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소크라테스에게서 새로운 무지의 앎을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소크라테스와 같이 지적인 기성세대를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부담스럽게 여긴 기득권은 결국 소크라테스를 불온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상대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소수의 목소리라도 검토할 만한 사안이라면 받아들이고 돌아봐야 하는 것이 허용된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새로운 거울을 직면하기보다는, 깨부수려고 고수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고대판 갑의 횡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여김 없는 갑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나를 빼놓고 아테네인들 전부가, 그들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만드는데, 나만 그들을 망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런 뜻으로 말하는 건가요?


멜레토스 : 바로 그걸 내가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다름에 대해서 재고조차 하지 않고, 바로 몰아가는 멜레토스의 모습.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이름으로 자행했던, 크고 작은 오만들이 떠올랐었다. 과연 지금  나의 안에는 멜레토스의 모습이 없는 것일까?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고, 그런 내 모습이 순간 부끄러워졌었다.


소크라테스는 두 번째, 신론에 대해서도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의 논변으로 착각하고 있는 부분(아낙사고라스의 신론)들을 일깨워주며, 소위 훌륭함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부한 멜레토스의 무지를 꼬집었다. 그리고 비유를 통해 자신의 굳건한 신앙관을 설파했다.


소크라테스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세력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왜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를, 그 이유에는 사실 이런 논리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그는 변론 최후 말미에 직격탄을 쏘아올린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에 대해 많은 미움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 있다는 게 진실이라는 건 잘 알아두세요, 또 나를 잡을 게 바로 이겁니다. 멜레토스도 아뉘토스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비평과 시기입니다. 그것들은 분명 다른 많은 훌륭한 사람들도 잡았고, 또 내 생각에 앞으로도 계속 잡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내게서 멈추게 되지 않을까 무서울 일은 전혀 없습니다.'


기원전 2000년에 한 말 치고는 굉장한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실제의 선각자들은 그들의 시대보다 너무 앞서간 사상 때문에 탄압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공자도 그랬고, 소크라테스도 그러했다. 이 뿐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방영한 정도전이 그러했고, 조광조도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소크라테스에게는 플라톤이라는 제자가 있어서, 그는 글 한 줄 남기지 않고도 살아남았고, 지성의 아이콘이라는 문화적 권력을 사후에 누리게 됐다. 그는 죽음으로서, 영원한 승리를 했으며, 그 시대의 갑들, 위정자들은 그를 죽이면서 잠시의 승리를 누렸겠지만, 역사적으로 패배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소크라테스는 시대의 갑질에 항거하여,을의 입장으로, 정의를 대변한 모습들을 입이 아닌 행동으로도 나타냈다.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은 양심을 팔지 않았고, 권력자의 요구로부터 소신껏,을의 위치를 고수하며 신념을 굽히지 않은 행동들을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봤던 전쟁들이 언급된 사례가 있었던 점이다. 요약해보면 그는 말로만 궤변으로 남들에게 양심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하는 지성이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긴 설명을 끝으로, 마지막에 소신 있게 대못을 박는다. '동정은 사양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여서 나에게 투표를 해 달라.'라고 이야기한다.


'재판을 받을 때 그들은 한인물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면서도 놀라운 행동들을 벌입니다. 죽으면 뭔가 무서운 일을 겪게 되리라는 생각에서죠. 마치 여러분 손에 죽지 않으면 불사자가 되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국가에 수치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어떤 식으로든 한인물 한다고 여겨지는 여러분 자신이 이런 일들(동정에 호소하여서 감성을 자극하는 행위)을 해서도 안 되고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할 때 여러분이 우릴 그냥 내버려 두어도 안 됩니다. 오히려 바로 이걸 보여 주어야 합니다. 조용히 있는 사람보다 이런 불쌍한 행위를 연출하면서 국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유죄 표를 던지게 될 공산이 훨씬 크다는 걸 말입니다.


재판관은 정의를 사적 이해관계로 재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판가름하기 위해서 앉아 있는 거니까요. 또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겠다고 서약한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판결하겠다고 서결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분에게 서약을 깨는 버릇(감정에 호소)을 들여도 안 되고 여러분이 그런 버릇을 들어도 안 됩니다.'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초연하기 힘든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를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진리와 정의뿐이었고, 그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지성이었다. 물론 그 역시도 인간이니까,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죽지 않기 위해 동정을, 죽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법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절하게도 소크라테스는 작품 초기에 그러한 물음에 대해서 고전 <일리아스>를 인용하며 답변을 한다.


'곧바로 죽어도 좋습니다. 불의를 행한 사람에게 대가를 받아 낸다면 말입니다. 그래야 여기 구부러진 배 곁에서 비웃음의 대상으로, 대지의 짐으로 남아 있지 않게 되겠지요.'


또 이에 대해서 결론을 이끌어낸다.


'아테네인 여러분, 누군가가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자리에 자기 자신을 배치했거나, 혹은 지휘관이 배치해 주었다면, 그게 어디든 그 자리에 남아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난 생각합니다. 죽음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수치스러운 것보다 먼저 계산에 넣는 일은 아예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즉 자신은 진리를 실천하는 것에 목숨을 걸겠고, 치졸하고 비굴하게 살아남지 않겠다는 것을 강하게 이야기했었다. 진리 앞에서 자신은 당당하니 자신을 진리에 기초해 판단해 줬으면 좋겠다. 동정은 바라지 않는다는 그의 집념. 이 대목을 보면서, 나는 세월호 사건의 선장도 떠올랐다. 최선에 자리에 있어야 할 선장은 가장 먼저 수치스러움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생명을 계산에 넣었다. 그 결과 작년 4월은 참혹했었다.


그렇게 이성을 강조하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항변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그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죄를 정하는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벌금형을 주장했지만 결국 그에게 내려진 것은 사형이었다. 사형이 확정되고 나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부를 택발 바에는 죽겠다고 공헌했다.


'내가 유죄 판결을 받은 건 물론 궁해서긴 하지만 말들이 궁해서가 아니라, 대담함과 몰염치가 궁해서, 즉 여러분이 들으면 가장 달콤해할 그런 말들을 여러분에게 할 의향이 궁해서죠. 통곡도 하고 비탄도 하면서 그리고 내가 주장하는 바로는 가장 나답지 않은 다른 많은 일들과 말들을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바로 그런 것들이야말로(아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 데 익숙해져 있기도 한 것들이지요... 오히려 저런 식으로 사느니 보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항변하고 죽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형량에 대한 변론을 할 때, 그는 다소 어이 없이, 자신은 국가 유공자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최후변론을 할 때에도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자신은 죽어서도, 죽은 위대한 영혼들을 검토(그들이 과연 위대한 인물이 맞는가) 하겠다며, 차라리 이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살아서 눈치 보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훨씬 값지지 않을까?라며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다.


나는 그의 그런 괴짜 같은 모습이 참 좋다. 동양의 성인들은 뭐랄까, 유머와 개그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상당히 괴팍하고 궤변적이기도 하지만, 익살적이고 언어유희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극이나 대화를 너무 무겁게 이끌어나가지 않는 그의 여유로움이 좋았던 것 같다. 죽음 앞에서도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여유를 잃지 않았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고받으면서 한 가지 큰 예언을 남긴다.


'여러분 (유죄의 투표를 던진 사람들) 나는 여러분이 나를 죽일 때의 앙갚음보다, 제우스에 맹세코, 훨씬 더 혹독한 앙갚음이 내 죽음 이후에 곧바로 여러분들에게 닥칠 거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실제 소크라테스의 이 말이 '죽음 이후에 곧바로' 닥친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사후, 플라톤의 저술 덕분에, 소크라테스는 영원히 자신을 유죄로 몰고 간 이들을 이길 수 있었다.


책의 중심 주제는 무엇일까? 핵심 키워드는 '검토'다. 검토란 거울과도 같다. 밖에 나갈 때 우리는 외모를 검토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선다. 치장을 하고 예쁘게 꾸미기 위해 거울을 본다. 우리는 외관은 항상 검토하는 반면 내면을 검토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소크라테스의 검토는 바로 마음의 검토, 지식의 검토, 통념의 검토 즉 내면적인 검토를 뜻하는 것이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세속화되면서, 우리는 보이는 것 만을 검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럴수록, 나의 앎을 수시로 검토하며, 우리의 인생을 검토해야 하고, 아는 지식을 다시 검토해야 하며, 사회의 통념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하고,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도 검토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늘 검토했으며, 신의 말도 검토했으며, 검토 때문에 재판 받았고, 재판에서도 검토하다 죽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검토했으며, 죽어서도 검토하겠다고 공헌한 철학자이다.


'가장 훌륭한 양반, 당신은 지혜와 힘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명성이 높은 국가인 아테네 사람이면서, 돈이 당신에게 최대한 많아지게 하는 일은 그리고 명성과 명예는 돌보면서 현명함과 진실은, 그리고 영혼이 최대한 훌륭해지게 하는 일은 돌보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훨씬 못 미더워할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실상은 내가 주장하는 대로에요.'


소크라테스의 발언으로 미뤄보던데 그때나 지금이나, 물질 중심적인 사회는 여전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사는 21세기가 더욱더 그런 면모가 부각되지 않을까? 자본주의, 대놓고 물질을 신봉하는 경제 체제 아래에서 우리는 얼마 전 그 물질 중심주의적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바로 조현아 사건 말이다. 시대의 갑들은 특히 내면을 검토하지 않았으며, 내면의 덕을 갖추지 않았다. 그 결과 인권은 물건으로 치부되고, 인격적 모독을 일삼은 갑질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돈으로부터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부터 돈과 인간들에게 좋은 다른 모든 것들이 사적인 영역에서든 공적인 영역에서든 생깁니다.'


흔히 인간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해서 회의적으로 그 주장을 수용한다면 과연 인간에 발전이 있을 것인가? 적어도 저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인간들과는 다르고자 노력을 했고, 그 노력 때문에 죽은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그런 회의적 시각을 극복하며 나아가야만, 더 나은 발전과 행복의 풍요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불어 민주주의라는 체제 역시도 검토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그 희생양으로 제2, 제3의 소크라테스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다.


대화편에서 가장 신비주의적이게 나오는 신의 목소리에 대해서(그의 이성을 규제하는 무언가의 목소리) 나는 내 자의적으로 이렇게 해석해봤다. 그것은 신의 목소리이기라기보단, 마음의 양심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시대 관념상 그리스 시대의 종교적인 부분에 입각하여 소크라테스는 이야기를 했겠지만, 종교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내면의 양심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다.


죽어가는 소크라테스는 과연 미래 세대를 위해 희망적인 말은 남기지 않았을까? <변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무죄로 투표해 준 이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 아들들이 꽃다운 나이로 자라면 내가 여러분을 괴롭혔던 것과 똑같이 (진리의 검토 논쟁) 그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갚아 주세요. 그들이 덕보다도 돈이나 다른 뭔가를 우선하여 돌보고 있다고 여러분에게 여겨진다면 말입니다. 또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한인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하듯이 그들을 꾸짖어 주세요. 돌보아야 할 것들은 돌보지 않고,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면서 스스로 한인물 한다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해 주면, 나 자신도 내 아들들도 여러분에게서 정의로운 일들을 겪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준, 무죄로 투표해 준, 시대의 깨어있는 지성들에게 간곡 어린 부탁을 한다. 이것은 그의 아들을 부탁하는 이야기로 해석되겠지만, 사실 이 부분은 우리 후세들에게 선각자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즉 독자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진리를 말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죽으러 갔다.


과연 이 대화편이 사실인 것일까? 플라톤의 저술, 대화편의 특징은 플라톤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스승인 소크라테스만을 내세워 논의를 전개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대화편의 모습이 플라톤의 각색한 것 - 소크라테스의 탈을 쓴 플라톤인 것인지, 소크라테스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것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변명>은 플라톤 초기 대화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대체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많이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학계에서 추측하고 있다.


<변명>을 보는 독법은 역자가 말하듯 다양하다. 기존 아테네인의 입장으로 보는 경우(이럴 경우 소크라테스는 유죄다.). 그리고 플라톤의 입장으로 보는 경우,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사실 글 논조 자체가 후자를 따르기가 쉽겠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봐 왔던 독법도 플라톤의 입장을 존중하는 입장으로 글을 읽었다. 그래서 이번 독법은 소크라테스가 범죄자라는 것을 의식하고 책을 읽었었다. 그렇게 읽자, 해설에서도 이야기하듯,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나, 하라는 변명보다 잡론만 펼치는 괴짜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재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 텍스트가 이렇게 절대적인 권위를 받은 것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누가 옳건 그르건을 떠나, 소위 고전이라는 책이 얼마나 현실성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찰해가며 읽었다. 이 <변명>은 상당히 현실적인 작품이다. 서평에서 밝히듯, 이 책 한 권으로, 우리 사회의 이슈, 세월호 사건의 책임론, 그리고 갑질에 대한 논의 - 조현아 사건에 대한 해석, 그리고 정치적인 부분들까지도 해석해 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었다.


 이게 과연 고대의 저술인지, 현대의 저술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굳이 그런 효용론적 관점, 현실성과 현세성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플라톤의 저술은 다양한 독법으로 읽을 수 있겠다. 특히 외부의 개입 없이 텍스트 내부만으로도 읽어낼 수 있는 독법은 다양하고, 그 재미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내용의 재미, 문학성, 그리고 텍스트 안에 그려진 소크라테스의 모습,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가면을 쓰고 있는 원저자 플라톤의 모습 등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다.


정암학당 번역본은 언제나 날 만족시킨다. 깊이 있는 서술, 희랍어 하나하나에서 오는 그 미묘한 어감까지도 상세한 주석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 상세한 각주와 미주 덕분에, 마치 내가 희랍어 원전을 읽는 생생함까지도 경험했으며, 더불어, 상세하고 깊은 해설도 나를 만족시킨다. 이 <변명>을 시작으로 집에 모아놓은 정암학당 본 플라톤 대화편들의 총체적인 리뷰를 진행해볼까 한다.


마지막으로 논란의 중심인 '변론'과 '변명' 텍스트의 명칭에 대해서 정암학당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고발된 혐의 내용에 반박을 가해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고발이 함축하는 바 자기 삶 전체를 향한 물음과 도전에 대해 항변한다.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 그러니까 철학과 철학적 삶 자체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은 각자에 대해서 판단해 보면 되겠다. 모쪼록 새해 신년, 추천하고 싶은 도서이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공유했으면 좋을 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 대해서 냉정하게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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