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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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책인 <목민심서>.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실무행정 방침에 대한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 1표 2서라 불리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등 이 책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꽤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는 우리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정선 목민심서>는 그 유명한 <목민심서> 번역본 중 가장 뛰어난 책이다. 시중에는 많은 <목민심서>들이 있다. 나도 서점에 가서 쭉 둘러보면서 검토를 해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정선 목민심서>를 따라올 책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도 큰 결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 부분은 서두가 아닌 뒷부분에 소상하게 밝히겠다.

 

아무튼 이 <목민심서> 책은 내가 자주 본 고전 4천왕에 들어간다. <논어>, <손자>, <군주론> 그리고 이 <목민심서> 순으로 <목민심서>가 앞의 3권의 책 보단 많이 보진 못했지만.. 다른 고전에 비해서는 많이 들춰봤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뭐랄까,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전적 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정갈함도 보이는 표지.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아끼고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정선 목민심서>는 그런 부분에서 합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목민심서>를 다시 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세월호 사건을 보며 공무원 기강에 대해 생각을 하기 위해서 책을 펼쳤다. 지금 국가에서는 구조나 재난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제도나 행정을 고치자고 외치고 있다. 그래 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위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구조 재난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내가 볼 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정 쇄신에 대한 매뉴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조 재난 역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시민을 살릴 수 있는 것은 행정에 쇄신이 필요하고 전반적인 국정에 대한 쇄신, 공무원들의 지침과 행동에 대한 매뉴얼도 중요하거늘, 왜 이런 부분은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로 덮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다산이 생각했던 지방 공무원 쇄신 서인 <목민심서>를 다시 폈었다.

 

<목민심서>는 확실히 훌륭한 저서다. 그런데 왜 훌륭한 저서라고 하면, 그냥 애민정신이 구현된 저서라고만 다들 알고 있다. 다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산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다산의 저서를 보는 등의 깊은 이해는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일반론적으로 다산을 칭송하고만 있다. 다산을 이해하고, 공무원들이 왜 다산을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왜 다산이 뛰어난 학자인지 알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이 <목민심서>를, 그의 저서들을 봐야 한다.

 

<목민심서>의 뛰어난 부분은, 다산의 실제 정치 경험론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다산이 유배생활 때의 백성의 입장에서의 경험 등이 섞여있다는 사실이다. 대대로 행정 공무원이 스스로 행정론에 대한 책을 쓴다면 망각하기 쉬운 것이 아래로부터의 시각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이 행정에 대한 책을 저술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행정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그것 역시도 한계가 있다. 다산은 이 두 관점을 다 책에 녹여서 저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역사를 내세워 그것들을 검증하고 있었다. 즉 실제적인 행정 경험 + 역사적 사례 지식 + 백성의 입장이 녹아 낸 현실론적인 지방행정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책의 체계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체계다. 한 가지 주장을 펴고, 그 주장에 입각한 역사적 사실이나 경험론을 서술한 구성... 그런 것들이 연속적으로 모여서 책을 구성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다산이 그렇게 많은 저술을 저작한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도 하는데, 정민 선생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었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제자들에게 사료를 집약시키고 다산은 그것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말이다. <목민심서> 역시 예시가 대거 들어간 점으로 봐서 그런 흔적이 보였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많은 저술을 남긴 것에 대해서 이해가 가기도 했었다.

 

책의 제목 심서에 대해서는 다산이 서문에 밝히길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할 수 없기에 심서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럼 목민이란 말은? 말 그대로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목민이란 말은 사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대목이 아닌 <관자>의 첫 편이 목민이다. 따라서, 다산이 유교 경전만 참고한 것이 아닌 다양한 제자학을 참고했다는 부분도 볼 수 있겠다.

 

<목민심서>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일단 이 책 자체가 엄청 교훈적인 책이라, 그냥 책을 보는 것에도 도움이 아주 많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도 그렇게 책을 보며, 교훈을 얻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어쨌든 유교적인 가치가 보였던 부분이고, 따라서 지금의 현실적 부분과는 괴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교훈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이번에 다른 관점으로 책을 봤다.

 

이 책이 유교사상에 입각한 부분이 있어 이상론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보이는 것은, 그 당시의 숱한 탐관오리들의 행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기업들의 관료제 시스템이나 다산이 살았던 국가의 모습은 관료제라는 군집적 속성으로 이해하면 비슷한 부분이 아주 많다.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사실 다산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부분이 지금으로 비춰봤을 때 현실성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관료제라는 속성 내에서 벌어지는 일탈 행동과 수탈에 대해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모든 행위들을 다 수록하고 있었다. 이 점은 사실 인간 사회가 진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볼 때, 인간이 조직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탈을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 독서를 했었다. 예전에는 교훈적 부분에 입각하여 읽었는데, 그 부분은 좋은 점도 많지만, 지금 시대에 현실성이 없는 부분도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다산이 제시하고 있는 탐관 오리들의 일탈과, 일탈의 방식, 수탈의 방식 등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했다. 대대로 인간의 수탈 방법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책에서 나오는 탐관오리들의 수탈 방법은 정말로 악렬했다. 조선 시대라고 생각해서, 지금의 시대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썩은 조선 사회를 보며, 과연 조선 초기의 이념인 민본의 가치로 세운 사대부 중심의 정도전의 사상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꼈으며, 조선 중기에 율곡이 외친 경장에 대해서도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다. 결국 <목민심서>는 다 죽어가는 썩을 대로 썩은 조선의 행정을 보며 다산이 행한, 심폐소생술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조선은 타락했었고, 문란했었다.

 

그런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다산의 안목이 돋보였었다. 그가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 역시도 느끼는 바가 많았지만, 유교적인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에서 아쉬움을 조금 느꼈었다. 혹자들은 <목민심서>가 지금의 가치에서는 필요 없는 옛날 지식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고전이라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얻을 것이 무궁무진한 텍스트라는 점도 느꼈다.

 

책의 곳곳에는 다산의 애민정신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는 전체적으로 문란한 시대였지만 생각보다 청렴한 관리들도 많았다. 다산이 예를 든 현시대의 관리들을 보면서, 썩은 세상이더라도 직분을 다 한 수령들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은 산수화를 비롯한 여러 조선 시대의 그림들도 넣었는데, 문제는 흑백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호찌민이 맨날 애독했다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일까? 내가 볼 땐, 과장된 사실 같다. 마치 나폴레옹이 <손자>를 애독했다는 것 마냥, 그냥 확산된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은 좋지만, 이런 근거 없는 속설을 지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이 책의 큰 결점을 이야기하면서(앞에서 이야기한), 우리 사회의 우리 고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확장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목민심서>는 우리의 뛰어난 고전이다. 그러나 혹자들은 <목민심서>가 한 권의 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목민심서>는 48권 16책으로 방대한 양의 책들이 모아진 '한 질(세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중에 나온 <목민심서>는 모두 다 편역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선 목민심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편역본보다 괜찮은 점이, 이 책의 역자들은 다산연구회라는 사람들이 번역한 책인데, 원래는 이 책이 처음 번역된 것이 아닌 <역주 목민심서>라는 완역본을 먼저 펴 냈고 뒷날 <정선 목민심서>를 펴 냈다. 즉 <정선 목민심서>는 <역주 목민심서>의 편역본이다. 다산 연구회의 사람들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목민심서>를 번역했다고, 서문에 나와있고, 더 깊은 공부를 위해서는 <역주 목민심서>를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역주 목민심서>는 지금 절판인 상황이고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점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출판사인 창비출판사에 의뢰를 했었다. <정선 목민심서>와 같이 현대적으로 잘 손봐서 <역주 목민심서>를 다시 내 줄 수 없느냐고,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고 민족의 고전인 만큼 그래야 한다고, 장문의 글을 보냈다.

 

그러나 들려오는 말은 그럴 계획이 없다는 말뿐이다. 즉 우리나라의 현실은 완역본 <목민심서>가 지금 출판되지 않고 있다. 세간에서는 지금 다산을 본받자,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다산을 본받아야 한다며 그러는데, 정작 우리의 고전 문화적 인프라는 다산의 완역본 <목민심서> 조차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 <목민심서>가 다른 나라 고전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저다.

 

얼마 전 정약용의 모든 저서 <여유당전서>가 번역됐다고 신문에 나왔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방대한 책은 시민들이 다가가기 힘들다. 과연 시민들 가운데 <여유당전서> 전집 100만 원을 넘는 그 책을 살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적어도 시민들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정도는 다가갈 수 있게 번역을 해 놔야 하는 게 아닌가?

 

<흠흠신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 1권이 품절 상태라서 보려야 볼 수도 없다. 그나마 <경세유표>는 출판사 두 곳에서 완역하여 판매 중이다. 가장 유명한 <목민심서>는 이렇게 다산연구회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을 한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번역본은 오래전에 절판됐다.

 

나는 창비출판사를 좋은 출판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태클을 걸고 싶진 않은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같은 책은 리뉴얼하고 컬러로 해서 재출간하면서, 이런 좋은 <목민심서> 완역본에 대해서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출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실망을 했었다. (아 물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명저다. 우리 집에도 전권 리뉴얼 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비춰 보면 많이 아쉽다.)

 

다산은 <목민심서> 자서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앞에 선현들의 목민에 관한 책을 열거) 이 모두 이른바 목민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이런 책들은 거의 전해오지 않고 오직 음란한 말과 기이한 구절만이 일세를 횡행하니 나의 이 책인들 어떻게 전해질 수 있으랴?'

 

지금 다산의 이 주옥같은 글조차도 완역 번역되지 못한 사태에 대해서 애탄하고 애탄할 뿐이다. 물론 나는 <역주 목민심서> 전질을 중고서점에서 운 좋게 구매를 했었다. 그래서 <목민심서> 완역본도 봤고, <정선 목민심서>도 봤다. 솔직히 완역본은 쓸데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축약본에선 볼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정선 목민심서>는 잘 축약했다. 대체로 현실에 맞는 부분들을 잘 추려서 냈고, 나도 완역본은 1번 회독을 했지만 <정선 목민심서>는 자주 봐서 손때가 묻었다. 그만큼 <정선 목민심서>는 알차게 번역된 책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완역본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지금 출판계에선 그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완역 번역본이 없다는 사실이다. 축약본이 아무리 잘 번역되고 잘 축약됐다 하더라도 원전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순 없다.

 

 거기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모든 공무원들이라면 <목민심서>의 완역본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긴 기존의 공직자들이 이 '축약본'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대한민국의 행정이 이런 사태까지 불신을 겪지 않았을 테지만... (마음 같아선 완역본 보고 좀 성찰했으면 좋겠는데, 양보해서 제발 축약본이라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보며 느낀 점은, 다산이 썩은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듯, 우리나라에도 지금 전반적인 행정을 쇄신할 현대판 '목민심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선현이 내려준 지식을 검토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창비출판사는 빨리 <역주 목민심서>를 이렇게 <정신 목민심서>처럼 재출간을 했으면 좋겠다. 고전이란 것은 시대에 공유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좋은 출판 기술과 편집 기술, 쓸데없는 데다 사용하지 말고 좀 좋은 양서를 펴는데 총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창비 출판사 규모가 크고 전통 있는 출판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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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UF 파리여행노트 - Paris Travel Note
박은희.이경인 지음 / 한길아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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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딱딱한 인문고전이나, 사회서들만 리뷰하다가, 이런(?) 여행책을 리뷰하려니 뭔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프랑스로 가기 전 사전 지식(?)를 위해서 산 책이다. 서점에서 프랑스에 대한 책들을 살펴봤다. 여행기나 여러 여행 정보를 담은 책. 등등이 있었다. 지금은 솔직히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가 보편화되어서, 좋은 에세이를 찾기가 쉽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 에서이는 드물었다. 그냥 딱딱한 여행 정보를 팸플릿처럼 제공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에 대한 여행책들 역시도 그랬다. 당시에 유럽 붐(?) 이 일어나서, 너도 나도 유럽을 찍어야지라는 허세 어린 사회 시각이 있어서, 그 영향 때문인가, 유럽 여행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들은 획일적으로 맛 집, 지역, 교통수단 등등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정보만 원한다면 그 책들이 이 책보다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 나는... 콘셉트가 있고 누군가에게 프랑스 파리에 대한 썰을 듣고 싶었었다. 주변에 파리를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뭐, 단편적으로 일방적인 칭찬 내지는 뭐 그런 부분만 들려서 실망하던 차에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은 재미있는 부분이, 그래픽 디자이너 부부가 저술한 것으로, 결혼 직후 파리에서 2년간 살았고 토론토에서 1년을 프리랜서로 학생 신분으로 지낸 경험이 있었다. 약력을 보니 꽤나 특이했고, 파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책 자체도 기존의 여행책들처럼 정보만 툭 던지는 것이 아닌,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그렇게 조곤조곤 파리에 대한 부분들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래픽 디자이너라 그런지 사진 기술이 참 뛰어났다. 책은 가벼움과 나름의 진중함, 그리고 파리의 색채 3박자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파리의 색채는 여행객의 색채가 아닌 생활의 색채가 있었었다. 이런 여행 책의 필수 요소, 책에서 그 도시의 향이 나와야 한다. 책에서 그 도시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합격점이다.

 

에세이처럼 글도 좀 있으면서, 파리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곤조곤하고 있으면서도, 여행 정보나 깨알같은 팁들을 챙기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진들에 대해서도,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을만한 그런 부분도 있었고, 굳이 파리를 가지 않더라도 도시의 느낌을 온전히 전하는 데에는 충실한 가이드였다.  

 

그래서 과연 파리를 갔을 때, 이 책의 도움은 받았느냐고? 음...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모르겠다. 책에서 말하는 프랑스인들의 에티켓 등도 들어맞는듯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 부분은 파리의 이방인이자 여행자인 나와 생활인이었던 저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내가 방문했던 파리와, 저자의 책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가 얼추 일치했었다. 그래서 이 책은 파리의 모습을 온전히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파리 근교에 샹티라는 곳에 이모 집에서 얼마간 거주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부단히 파리로 나가서 파리의 기운을 느끼려고 엄청 노력했었었다. 그때의 거주 경험, 프랑스에서의 생활의 느낌과, 이 책이 전해주는 파리의 느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어쨌든 가볍게,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출간된 지 꽤 지난 책이라, 그리고 내가 파리를 가 본지 꽤 오래돼서, 이 책에서 전하는 내용이 틀릴 수도 있고, 이 책이 알려주는 정보가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도에 나온 책이니... 이런 장르의 여행 책은 최신의 신속한 정보를 업데이트해 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이 책도 생명력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의 지난 파리의 모습, 그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싶다. 예쁜 사진 자료와, 특출나지 않지만 무난한 에세이형 글들, 그리고 생활상의 파리의 모습, 파리의 구석구석이 담긴 팁... 등등 어쨌든 책은 아담하면서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아무튼 요즘은 이보다 더 좋은 여행 에세이집들이 많이 나와서 이 책의 메리트가 없지만, 당시엔 괜찮은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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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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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만큼 가볍고 가벼운 책이다. 책의 크기도, 책의 쪽수도, 그리고 심지어는 책의 내용마저도 가볍고 가볍다. 질탕하고 난잡하고, 구속적이지 않은 일본의 성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종이를 읽고 있는데도, 배를 꼬르륵하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 입가에 침샘을 자극하는 책이다.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이국풍의 여행, 그리고 먹는 것, 그리고 이성 3개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무라카미 류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소설가.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에세이와 같은 단편적 글의 모음집이라서, 저자의 경험담을 섞어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색을 해 보니,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를 혼동시킬 만큼 책의 서술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소설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글로 현대 일본의 문학적 경향이 이 글에도 잘 나타나있다.

 

일본 소설에는 성적인 묘사가 많이 나타난다. 이 책 역시도 그랬다. 여러 여자들의 이야기, 자유분방한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남자들은 억류된 성적 판타지를 개방시키고, 여성들 역시 처음에는 거북스럽겠지만, 한편으론 그가 글 쓰는 주인공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을 구성하는 두 축, 음식과 여성, 그것은 모두 이성과는 거리가 먼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분방함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으며, 스스로 해외에서 많은 돈을 '낭비' 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부끄러움이나 참회가 아닌 자신감이었으며, 이 소설은 그 경험담을 기초로 하여 써진 이야기다.

 

소설의 구성은 짤막한 이야기들 32가지로 구성됐으며 각 이야기별로, 테마 요리와, 대표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테마 요리에는 아무래도 쉽게 먹지 못하는 요리들이 많으며, 일상적인 아이스크림이나 쇼콜라 등도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음식 삼계탕 역시도 있었으며, 삼계탕 이야기에서 나오는 여성은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토플리스 바 (스트립바)에 나오는 급 좋은 여자였고, 주인공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삼계탕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뭐 다 좋은데, 우리나라 여성을 이렇게 스트립 걸로 묘사하는 부분에서,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조금 거부감을 느끼긴 했다. 그것은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다.

 

엽기적인 음식들도 있다 '순록의 간'이라는 테마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생간의 맛이 어떨까라는 상상도 했다. 나는 비린 간 음식 같은 것을 잘 먹는다. 물컹물컹한 그 날것을 먹으면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느낌, 그것은 그 옛날 원시인들의 생명의 근원을 먹는 그런 기분이랄까, 소설에서는 그 간을 먹을 때의 오묘한 기분을, 생명 그 자체를 먹는다고 표현했는데, 정말로 공감했다. 회나 날고기를 먹는 인간의 습성은 그 옛날 과거의 원시적인 인류의 모습이었고, 그 날것이라는 음식은 생명력이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한 여자의 관능적 섹스 이야기를 다룬 '양 뇌 카레'이야기, 실제로 인도에서는 그런 양의 생 뇌를 넣은 카레가 있다고 한다. 자꾸 포스팅이 뭔가 날것의 음식들로만 써 내려가는데, 캐비아를 비롯한 샥스핀, 스톤 크랩 요리 등등 험하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운'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책의 제목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 역시 한 편의 제목이다. 이 편은 무스 쇼콜라 이야기인데, 외국에서 만난 가정이 있는 남자와 단 두 번의 관계가 있었던, 추억의 여성과의 짧은 만남을 다룬 이야기였다. 이곳에서 풍겨지는 지독한 부르주아적 냄새, 초호화 리조트의 묘사, 그리고 진귀한 요리들, 그리고 그녀와의 짧은 관계 등, 온갖 욕망의 판타지를 미화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한 말은 이 책의 전체 주제, 나아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너에게는 리얼한 사랑일지 몰라도 난 잘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누구와도 다른 아주 특별한 사랑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마음을 가볍게 갖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 연애를 할 수 없게 돼......"

 

사회적인 미덕으로 볼 때 이런 주의는 문제가 있다. 대체로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질타하고 '도덕'으로 규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도덕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 사회는 문란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회지도층이 도덕을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쾌락을 다 누리는 것은 이제 시민들에겐 너무 익숙해졌다.

 

솔직히 무라카미 류와 같은 이런 작가들은 그런 면에서 솔직하다고 볼 수 있겠다. 속 다르고 겉다른 위선자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쾌락을 이렇게 돌직구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런 면에서 그는 진솔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유분방함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사회가 규정한 부분을 거부하고, 다른 부분에서 방향을 찾는 선구자들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사회 보단 굉장히 많이 개방적이다. 같은 도시라도 풍기는 냄새가 다르다. 책에서 느낀 이 가벼움은 내가 예전 오사카에 놀러 갔을 때, 한국에서 놀고 마셨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냄새 그 냄새의 가벼움과 동질성이 있었다. 더욱더 육감적이었고, 더욱더 관능적인 공간이었다.

 

어느 부분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물론 사람은 도덕을 추구해야 함은 옳다. 그러나 겉으로만 도덕을 규제하고 억지로 규제할수록 인간은 일탈을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제도적인 도덕 규제가 아닌 자발적인 도덕 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도적인 규제를 하며 역기능 때문에 더더욱 뒤로는 문란한 사회가 된다면, 나는 차라리 대놓고 개방스러운 무라카미 류의 방식을 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보기엔 이 책은 너무나도 거북스러운 책일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 책은 너무나도 부러운 책일 것이다. 작은 책에서 풍기는 현대판 귀족주의에 입각한 현대판 한량들의 모습은 우리의 대다수 일반적인 삶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고, 진귀한 음식을 원 없이 먹으며, 다양한 이성들을 만나보며 본능에 충실하는 것. 그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솔직하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책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 가지 테마 이성적 본능과, 음식, 식욕과 성욕 두 원초적인 어쩌면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속성을 다룬 이 소설.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개인적으론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의 테마를 잘 녹여 쓰고 있었으며, 더불어, 우리가 누릴 수 없는 현대판 한량의 귀족주의적 묘사가 돋보였고, 이국에 대한 경험을 녹여 쓴 배경 묘사도 뛰어났었다. 더불어 내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상상하는 기분 만으로도 좋았었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 과연 내가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의 삶처럼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이상적 욕망에 충실하겠는가?에 대한 물음은 No라고 하고 싶다. 이상은 이상이라서 아름다운 법이다. 이상이 현실이 되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탁색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추악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가 바로 이 책의 삶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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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도전 - 순수 이성에서 예언자적 죽음으로의 여정
문철영 지음 / 새문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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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웬만한 정도전의 전기는 다 읽어봤는데, 이 책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었다. 다른 삼봉의 전기들은 대부분 삼봉을 미화하고 만병통치약으로 삼봉을 해석하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들었는데, 이 책은 그런 삼봉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삼봉의 '내면'에 입각한 서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영우의 <왕조의 설계사 정도전>은 아무래도 학구적이고 삼봉의 여러 업적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을 볼 수 있는 글이다. 논조가 차분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는 좋은 평전이었다.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경우는 삼봉의 일대기를 가장 먼저 조망한 저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대체적으로 삼봉의 일대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배경 설명과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던 책이었다.

 

이 책들 외에도 시중에는 지금 정도전 열풍 덕분에 삼봉에 대한 책들이 많이 넘쳐나고 있다. 나는 그 책들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다 훑어봤는데... 사실 볼 만한 책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 <인간 정도전>은 달랐다. 일단 이 책은 삼봉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책 제목 그대로, 삼봉의 문집 <삼봉집>으로 삼봉의 내면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책의 쪽수는 200여 쪽이라 금방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일독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금방 볼 책은 아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일단 삼봉에 대한 서사적 전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나 <정도전의 선택> 둘 중 하나를 읽길 추천한다. 그리고 한영우 교수의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을 읽고, 끝으로 <삼봉집>을 읽기를 추천하는데, 바로 <삼봉집>을 읽을 때, 이 책을 같이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삼봉집>을 토대로, 하여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동원하여 삼봉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그 이론에는 프로이트를 비롯한 지크 라캉, 그리고 귀스타브 르봉 등의 심리학자들의 논의가 있었고, 그 이론들을 통해 <삼봉집>에 나온 시나 서를 바라보며 삼봉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삼봉집>은 그냥 보기에는 힘든 텍스트다. 그러나 저자는 서시적인 흐름으로 삼봉집을 차근차근 고찰해나가고 있는데,

 

내가 주목한 해석은, 삼봉의 아버지 정운경에 대한 부분, 어머니의 핏줄은 한미했지만, 아버지의 그런 중앙 정치 진출이란 점은, 삼봉에게 있어서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고, 아버지의 청렴함을 닮겠다는 것, 그런 부분들을 조목조목 <삼봉집> 정운경의 행장에서 찾아내고 분석해낸다. 그 행장 속에 글을 쓴 삼봉의 내면을 추적하며,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가며, 삼봉의 내면을 밝혀내는데, 어쨌든 의미 있는 해석이라 생각됐다.

 

삼봉에게 있어서 특히나 도은과 포은은 친구 이상의 벗으로 통용됐다. 일전 <삼봉집>을 보며 도은과 포은에 대한 정을 나눈 시문들이 많았다. 셋의 우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으며, 양촌과 호정과도 시를 주고받은 것들을 통해, 이 청년기에 맺어진 사나이들의 우정과, 조직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질풍노도의 정도전 역시도, 이들과의 사상적으로도 유대적으로도 깊은 공감력을 가졌다고 해석했다.

 

나 역시도 사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중-고등학교를 같이 보낸 이들, 페밀리라고 서로 부르는 9명의 벗들 이들은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며 싸우더라도 서로에 대한 우정에 대해서는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아마도 정도전 역시도 그런 심리였으리라, 같은 교우를 넘어선, 우애. 특히나 포은이 말한 대로 삼봉은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런 삼봉이 도은과 포은, 그리고 양촌에게는 인정하며 벗으로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하는데 공감했다.

 

유배 시절의 해석 역시도 좋았다. 나는 드라마 정도전과, 다른 평전들에서는 유배 시절에 대한 해석을 빠르게 지나쳐서 조금 아쉬웠었는데, 이 책은 유배와 방랑의 시기를 두 테마로 나눠서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었고, 불우했던 정도전의 내면, 그리고 흔들리는 지금까지의 사대부의 이념, 믿었던 동지들과의 헤어짐과 홀로 남겨진 그가 생각했던 것들을 <삼봉집>에서 찾아내서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는데 굉장히 뜨겁게 느껴졌다.

 

가장 놀란 부분은 포은은 유배 시절 연군가와 같은 색채의 여성스러운 시를 습작했었다. 일전에 나는 <포은집>을 보고 리뷰까지 남겼었는데 대체적으로 여성적인 어조가 많았었어는 데, 그 시도 <포은집>에서 본 시였다. 게다가 도은은, 유배가 풀리자마자, 수도로 오면서 직접적인 임금의 은혜에 대한 칭송 시를 남겼다. 삼봉은 그러나 유배 시기 절대로 연군가를 작성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삼봉은 그들과는 노선을 달리했던 것 같다.

 

동정 윤소종을 제외하고는 사실 급진파 사대부들과 삼봉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책에서 삼봉은 괴로웠을 것이라고 그랬다. 책에 나온 <삼봉집>에 실린 꿈에서 도은이 나온 시, 파도에 물에 젖은 도은의 모습. 그것은 삼봉의 마음이었다. 결국 삼봉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시를 짓고, 어린 시절 열정을 함께 했던 자신의 집단을 배신하고, 결국 조준과의 교류를 통해 노선을 바꾼다. 조준은 도은을 탄핵했고, 이 때 저자는 삼봉의 심리에 대해서 묘사했는데, 정말 공감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절친한 벗들끼리 당파 싸움이 이뤄져서, 두 패로 나눴을 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뭐 지난 추억으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참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배신에 치를 떤,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었다. 그것은 사실 '아픔'이었다. 삼봉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양촌과 서로 책을 같이 읽고 술을 같이 마시며, 이웃하며 화목하게 살자고 맹세하고, 도은과 포은과는 우애 맹세가 <삼봉집>에 많이 묻어져 나왔었다. 그런 삼봉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서는 삼봉의 문집에서 벗들에 대한 '진심'이 그렇게까지 묻어져 나온 시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때는 조선을 건국하고 행정에 바빠서 시 쓸 여유가 없었겠지만 젊었을 시절,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에도 의를 변치 않았던 친우들, 그런 친우들에게 맹세했던 진심과 같은 뜨거운 시는 없었었다. 그것은 나도 <삼봉집>을 봐서 대충 느꼈었는데, 저자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었다.

 

도은이야 그렇다 치고, 포은. 그래도 삼봉은 포은을 끝까지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정몽주는 중도적인 입장이었었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에도 동조를 했으니, 삼봉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당여로 생각을 했을 법도 하겠다고 책에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산산조각으로 무너졌고 선죽교는 붉게 물들었었다.

 

또 한가지 책을 통해 느낀 점은, 조선 혁명파들이 새 왕조를 건국하고 나서, 부귀를 누리거나 안일하게 승리를 만끽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파 인사들은 그런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왕조의 기틀을 세웠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도 돋보였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무사 안일주의를 또다시 생각하게 됐었다.

 

아쉬웠던 점은, 어쨌든 정도전과 이방원 정몽주에 대한 해석에서 정몽주는 이념형 인간 이방원은 권력형 인간, 정도전은 균형적인 인간인데, 과연 누가 더 우위의 가치에 있을까라는 저자의 물음과 결과적으로 이방원과 정도전의 비교 속에서 정도전의 손을 살짝 들어주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개인적으론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방원은 물론 권력형 인간임에는 맞다. 그러나 그 권력을 탈취하고 나서, 이방원도 이방원 나름대로의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군주였다. 서로에 대한 가치가 다를 뿐, 정몽주도, 정도전도, 이방원도 어느 한 쪽이 우열하다곤 판단할 수 없겠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고, 그런 여지를 남겨놔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세 사람 모두 다 의미 있는 영웅의 삶이라 생각되고, 누군가가 더 위대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책은 정도전의 심리에 대해서 아주 소상하게 주관적이지만, 깊이 있게 잘 해석한 것 같다. 물론 한계점도 있다.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정도전의 심리에 적중한 다곤 할 수 없다는 한계,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시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론적인 해석과 아전인수 처럼, 정도전을 만병통치약으로 격상시키는 것보단, 이렇게 흔들리는 정도전의 내면을 재해석하는 서술. 이런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영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더더욱 깊이 있게 알 수 있고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아무튼 저자의 빼어난 해석과 더불어 <삼봉집>에 의거한 심리학적 분석이 아주 탁월했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여하를 떠나서, 인간적인, 흔들리고 고뇌하는 한 인간 '정도전'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으며, 글 자체에서 풍기는 느낌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삼봉집>의 안내서로 추천하고 싶다. 쪽수가 적은 책이지만 인간 삼봉의 '인간스러운' 내면이 들어있는 책이다.

 

정도전뿐만 아니라, 포은이나 이성계, 이방원에 대해서도 좀 이런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 정도전에만 저서들이 집중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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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日1食 - 내 몸을 살리는 52일 공복 프로젝트 1日1食 시리즈
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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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거론할 것이 없는 책이다. 작년 한 해를 돌풍으로 몰고 갔던 단식 책이었으며, 아마 내 기억으론 장기간 베스트셀러를 유지했던 건강 책이었다. 저자는, 일본인의 의사로, 단식 1일 1식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경험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책을 남겼다.

 

책 자체는 일본인들이 저술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작고, 적고 심플하게, 그래서 책의 양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요지는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있다. 단식을 통한 부분으로 몸의 여러 부분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많이 먹는 것보단 적게 먹는 것이 좋다. 등등의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자기가 주장하는 것에 대한 의학적 근거 사례 등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특히 먹는 것뿐만 아니라, 디저트와 술에 대한 부분까지도 절제를 해야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현실적인 대처 방안까지도 남겼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디저트와 술은 비싼 것을 사 먹어서 조금만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 다소(??) 소주와 막걸리 맥주 등의 술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그럼 바에 가서 양주 등으로 가끔 목을 축이라는 것인데... 공감은 갔지만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는 자신이 없었다.

 

다소 우리가 알고 있던 건강 상식과는 대조적인 주장을 한 것도 많았다. 가령 예를 들면 몸을 무리해서 따뜻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밥을 먹고는 바로 자라고 하는 부분. 저자는 이 부분에서 가장 좋은 1일 1식은 저녁이라고 말했다. 동물을 예를 들며 동물 역시도 먹고 바로 자는 습성이 있는데, 인간도 이를 따르면 좋다고 하는데... 음... 건강해지려고 무리하게 운동을 하지 말라는 주장(그냥 자연스럽게 많이 걸으라고 한다.) 등등이 있었다.

 

확실히 지금 시대는 과거와는 다르게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고, 하루 3끼를 꼬박꼬박 먹는 것이 정형화된 시대다. 그러나 옛날은 다르다고 한다. 아침이라는 것은 사실 어린아이와 노인들, 위장이 약한 사람들이 먹었던 식문화지 지금 시대처럼 보편적으로 먹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의문이 드는 것이 그럼, 내가 어렸을 때 숱한 언론들의 '아침을 안 먹으면 돌머리가 된다'라는 논의와 이 논의 중 무엇이 맞을 것인가?라는 생각.

 

그러나 의문이 가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공감 가는 것들은 있었다. 가령 채소나 생선 등을 통째로 먹으라는 부분. 이런 논의는 구석기 다이어트 등에서도 나오는 논의인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느 부위를 먹는 것보단 이런 통째로 먹는 것이 완전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하는데, 동감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쨌든 하루에 밥을 지속적으로 먹는다면, 세포가 활성화되지 않고 대체적으로 활동량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인간이 절박해지면 모든 세포가 활성화된다는 부분,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는 먹는 것보단 비우는 것 역시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어쨌든 균형이 중요하다. 많이 먹는 것도 나쁘고,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안 먹고살 순 없지만, 지금 시대에는 너무 과욕을 부리고 많이 먹는 문화가 보편화됐으니, 단식을 통한 몸을 청결하게 한다는 이런 주장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하긴, 예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건강하려면 소식을 하려는 격언 등도 있고, 서구에서도 이런 간헐적 단식에 대한 운동이 있다. 지금은 뭐 추세가 시들하지만, 아무튼 많이 먹는 것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이런 부분에 이런 책들이 나온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종류의 책 <클린>,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 <구석기 다이어트> 등이 있지만, 내가 봐 온 바로는 이 책과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 두 권이 가장 좋았다.

  

아무튼, 저자의 책은 쉽고, 짧은 글이라 부담 없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저자가 의사라는 점 역시도 책의 신뢰도를 더 높여주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일 1식은 솔직히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따라서 3끼가 익숙한 사람은 2끼에 먼저 익숙하려고 노력하고, 2끼가 익숙한 사람은 1끼 등등 이렇게 먹는 양만 좀 줄여나가는 것으로도 단식 효과를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3끼 먹는 사람이 갑자기 1끼 먹으면...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는가

 

나 역시도, 사실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 책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저자의 논의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일 년 중 어느 정도는 단식 기간을 마련해서, 실천한다면 좀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더불어 건강에 대해서 단식에 대해서 아직은 논쟁 중인 부분들도 확실하게 검증된 심화된 책이 발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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