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 - 화이질서의 완성 아이필드 히스토리 History
단죠 히로시 지음, 한종수 옮김 / 아이필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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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락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솔직히 조선 태종 때문이었다. 두 군주는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영락제도 묘호도 태종이며(훗날 성조로 격상됨),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점과, 외향적인 기질을 가진 점, 그리고 찬탈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점까지 두 군주는 비슷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나라를 집권하고 있던 점과, 실제로 두 사람이 만난 점이 있다는 점도, 영락제에게 관심이 갔던 요인이었다. 사실 조선의 초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나라의 정치 상황 역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조선은 명에 사대를 하던 관계였으므로,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명의 정치 상황에 굉장히 민감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기심으로 책을 뽑아들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만족하고 읽었다.

책은 기존의 전기 형식을 따르기보다,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영락제의 인생을 풀어나갔다. 그 특정 테마는 다름 아닌 화이질서였다. 화이질서란 결국 중국의 중화사상의 일부인데, 중화의 주변에 있는 오랑캐들을 질서 있게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중화사상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역사적인 고찰을 시작으로, 영락제에 이르러 어떻게 제도적으로 완성되는지를 심도 있게 고찰했다. 책을 읽으며, 너무 특정한 부분으로만 인물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있었지만, 글을 읽어보니, 결국 영락제의 핵심은 바로 중화의 완성이었으며, 특히 영락 시기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완전한 화이질서에 입각한 '중화주의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니, 화이질서를 통해 영락제를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화의 개념을 단번에 깨부순다. 흔히 중화를 한족이 중심이 되어 지배하는 패권주의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해석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우리 머릿속에 은연중에 각인된 고정관념일 뿐이다. 본디 중화라는 개념은 중원에 천명을 얻은 국가가 다스리는 것으로, 민족과는 상관이 없는 개념이다. 중화라는 단어는 유학에서 비롯했는데, 역대 이래로 유학이 국학으로 채택되면서 역대 국가들이 중화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유학에서는 중화라는 개념을 두고, 한족과 이족을 철저하게 구분을 지어 설명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한족만이 중원의 주인이라고 못을 박진 않았다. 물론 태생적인 이유로 한족을 편들고 우월시한 부분은 있지만, 한족이더라도 '덕'이 없으면 오랑캐와 같아지고 오랑캐더라도 천명을 받고 덕이 있다면 중원에서 주인이 되어 천자가 될 수 있다고 틈을 열어놓았다. 그렇기에 역대의 이민족 왕조들은 이러한 유학의 중화를 방패 삼아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따라서 중화라고 했을 때 한족의 패권주의가 연상되는 것은 근대 이후의 중국의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투영된 해석이다. 명나라는 흔히 한족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사실은 아니다. 역대 이래로 중국 대륙에 들어선 왕조 치고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지도층의 출신이 역대 왕조마다 다르다는 차이는 있어도, 이러한 지도층의 출신에 의거해 국가 전체의 민족 구성을 단일화하는 것은 너무나도 견강부회한 해석이다. 중화사상 역시도 마찬가지다. 중화사상은 한족만을 우대하는 사상이 아니라, 그 면모를 잘 살펴보면, 천명을 받은 중원의 주인 국가와 주변의 오랑캐 국가가 조화롭게 사는 것을 지향하는 이념이다.

따라서 원명 교체기 시대에서 중원을 장악한 명나라 태조 주원장에게는 커다란 숙제가 남아 있었다. 절대적이고도 완벽한 중화를 시스템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로 태어난 왕조의 존재 이유였으며, 천자의 임무이기도 했다. 화이질서는 이러한 중화의 사상을 대표적으로 제도화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중화의 이념은 주원장이 황제권의 강화와 공포정치를 통해 터를 닦아놨으며, 결국 아들인 주체, 영락제에 의해 완성됐다. 번왕이었던 그가 반정을 통해 집권을 하고 나서도, 그는 정치적인 스탠스를 중화에서 찾았다. 아버지보다 더 큰 제국을 건설하는 것. 더 많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 그렇게 자신의 영락대가 유일무이한 시대로 존립하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다. 비유해보자면 이렇다. 조선 태종 이방원이 반정으로 인해 정권을 잡아서, 자신의 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생을 돌보고 정사에 엄중히 매진했다면, 명 태종 영락제 주체는 화이질서를 통하여, 자신의 정권의 정당성을 찾은 셈이다.

흔히 우리는 태종 이방원을 피의 군주라고 이야기한다. 확실히 그는 손에 숱한 피를 묻혀왔다. 그러나 영락제의 행동을 보고는 이방원이 오히려 너그럽게 보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영락제는 피를 부른 군주였다. 정난의 변 이후 영락제는 남경에서 자신을 따르지 않은 정치세력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했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가족, 친지, 친구 9족을 멸한 사례도 있었다. 집권 말기까지 그는 정략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냈다. 태종 이방원 역시 정적들을 죽였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태종 이방원은 사람을 쓸데없이 죽이진 않았다. 죽여야 할 사람이 있으면 희생을 최소화하여 집행했다. 게다가 집권 말기에는 자신이 자행했던 정치적 보복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심지어 역사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정도전의 아들까지도 품으려고 노력했다. 정치적 반대파와의 악업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 정적들과 '나름의 화해'를 시도한 셈이다.

두 군주의 집권 말기도 굉장히 판이하다. 영락제는 과도할 정도로 화이질서 구축에 열정을 다 했다. 그는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화이질서에 들어오지 않는 몽골을 향해 무리한 원정을 감행했다. 신하들이 반대하고, 북경 천도로 인해 민심이 피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화이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 5차 몽골 원정에서 객사한다. 마치 고구려에 집착하던 당 태종의 말로를 보는 듯하다. 반면 조선 태종 이방원은 오로지 조선을 다지는 것에 일념 했으며, 자발적으로 양위를 통해 세종에게 권력을 승계했다. 물론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상왕으로 물러나서도, 그는 세종을 흔들 수 있는 요소들을 뿌리뽑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 세종은 안정적인 권력 승계를 통해 치세를 이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나는 중원 대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중원 대륙은 문화와 사상의 요람과도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제자백가의 사상이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우월한 문화가 발흥된 곳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원 대륙은 문화와 사상의 무덤과도 같았다. 유학이라는 이념이 중원 대륙에 각인될 때, 중원을 지배한 것은 황제도, 한족도, 이민족도 아닌 바로 중화라는 사상이었다. 중원의 주인은 매번 바뀌었지만, 바뀐 주인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중화주의를 표방했고, 화이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즉 표면적으로는 왕조의 황제가 주인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은 중화사상'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는 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을 기초로 한 화이질서의 국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우리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유학의 일원화는 결국 다양한 사상의 탄생을 가로막았으며, 중국 대륙과 화이질서의 국가에서는 '중화사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령만이 배회하고 있었던 셈이다.

분명 영락제의 시대, 14세기 15세기는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더 발전했다. 영락제 시기에 벌였던 정화의 해외 원정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정화가 영락제의 명을 받들어 벌였던 해양 진출은 유럽의 대항해시대보다 훨씬 앞서서 일어났으며, 유럽의 대항해시대의 항해술보다, 명나라 정화의 함대가 훨씬 더 발전했다. 과장은 있겠지만 기록에 의하면 정화의 함대는 오늘날로 말하면 당대 최고의 항공모함이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이런 선박 기능을 제조할 기술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우월한 문명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락제는 이를 그저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 화이세계 구축을 위해 사용했을 뿐, 정작 경제적인 부분으로 확장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었던 명의 군주들과 청나라 군주들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매우 확대해석한 감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영락제가 구현했던 중화사상과 화이질서는 동아시아를 보수화하는 데에도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참 아쉬웠다.

우리는 흔히 사상이라는 것을 과소평가한다. 실체하지 않고, 관념상에 머물러 있기에, 그저 허울좋은 이념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체하지 않는 관념이 중화 대륙에서, 그리고 아시아 전역권에서 미친 영향은 이토록 강대했다. 중국과 조선,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강력하고 뛰어난 군주들조차 이러한 사상의 관념을 초월한 자는 없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영락제는 결국 중화라는 이념을 화이질서로 통해 시스템화하는데 성과를 거둔 군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말이 왜 이렇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영락제라는 뛰어난 명군도 결국 중화라는 이념에 조종당하고 희생당한 군주였을 뿐이다.'

책은 매우 재미있었다. 일본 저자가 쓴 책으로, 확실히 하나의 주제에 입각하여 영락제를 풀어나가는데, 굉장히 흥미롭게 읽혔다. 내가 재미있었던 부분은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이고도 집요하게 풀어낸 점이다. 게다가 문체도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핵심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가히 '일본스러운 모범 역사'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저자가 마음에 들었던 점은 또 있는데, 바로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특정 상황의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단호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일본인들은 특히 타국의 역사에 있어서는 논점을 흐리지 않고 객관화하여 해석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다만 이러한 객관성이 자국의 역사를 비출 때에는 빛을 잃어가는 것이 늘 아쉬웠는데, 저자는 이런 시류를 매우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그가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책에 나온 그의 역사관은 귀감이 될 만하다.

일본 사람이 쓴 중국 황제 열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우위에 두는 작가는 바로 '미야자키 이치사다'다. 그가 쓴 저서인 《옹정제》, 《수양제》를 읽으며, 얇고 제한된 분량에 이렇게 밀도 있고 정밀하게 인물을 설명할 수 있구나라고 감동을 받았다. 얇지만 깊이가 있고, 문체도 좋았으며, 삶의 교훈적인 내용도 가득했다. 마찬가지로 저자인 단죠 히로시의 《영락제》 역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단죠 히로시의 《명 태조 주원장》 책도 번역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런 스타일로 조선 태종에 대한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라는 것은 결국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보기 위해 읽는 것이다. 그저 과거의 지식만을 위한 배움이라면 안 배우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영락제》를 읽으며 나는 시진핑이 계속 떠올랐다. 그가 오늘날 자행하는 중국 중심의 정책들은 결국 현대판 중화주의에 입각한 것이고  화이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재됐다. 우리나라 역시도, 이러한 팽창주의의 중국을 이해하고 대응하려면, 뿌리 깊은 중화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야만 할 것이다. 《영락제》는 그러한 중국의 중화주의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기에 최적의 도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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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인생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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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는 참 특이한 고전이다. 보통 고전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고전에게는 특유의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위는 내용의 난해함을 포함하여, 시대적인 이질감 등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논어》는 다른 고전들에 비해 평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논어》를 읽었을 때에도 복잡한 고전들에 비해 평이하고 친근하게 다가왔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서양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동양의 《논어》 중 어떤 글이 쉽게 다가올 수 있을까? 동서 문화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논어》가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 더 쉽고 더 평이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논어》지만, 《논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 당대의 서양철학에 비해 평이하고 추상적이라서, 접근하기는 비교적 쉽지만 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체득하는 것에는 굉장한 노고를 필요로 한다. 서양철학은 처음에 접근이 어려울 다름이지, 그 어려운 문턱을 넘어서고 철학의 논리성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논어》보다 더 빠르게 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 정리해보면 《논어》라는 고전은 입문은 쉬어도 그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고전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고, 인생에 경험이 많은 분들일수록 《논어》를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논어》가 가지는 보수적인 성향도 한몫을 하겠지만, 그것을 떠나 젊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경험적인 측면을 고찰하는 고전이 《논어》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인생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나이 든 사람들처럼 《논어》의 내용이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쉽게 다가오는 책은 맞지만 《논어》 안에 깊이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느끼지 못 한 것 같다. 아마 인생 경험이 많아지면 《논어》로부터 느끼는 바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인생의 책이 《논어》라고 하셨다. 그만큼 《논어》를 좋아했다. 나와는 취향이 전혀 달랐다. 어릴 때부터 나는 《논어》를 읽고 또 읽었지만 《논어》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현실적인 《손자병법》이 더 와 닿았다. 《한비자》가 더 와 닿았고, 《귀곡자》가 더 와 닿았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읽은 《논어》는 이전과는 다른 깨달음을 선사했다. 첫 번째로 성현이라 불리는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는 권위적인 성현의 모습이 아니라, 노력하는 지성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보통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실수도 하고, 무시도 당하고, 때론 변명도 하고, 정신승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찌질한 모습은 너 나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공자라서, 그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다만 공자가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는 어떤 일을 결심하고 진행할 때, 하다가 어려운 부분을 직면하거나 심지어 실패를 했을 때 그 일을 손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공자는 달랐다. 사실 공자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이상정치를 현실화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자신의 정치이론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는 현실에서 철저하게 실패를 맛본 사람이었다. 숱한 실패 속에서 그는 보통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찌질거렸다. 실패 앞에서는 성현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부분을 《논어》는 미화하지 않았다. 공자의 찌질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랬기에 공자가 더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다. 변명하고, 무시당하고, 실수도 하고, 정신승리를 하며 실패한 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자신의 정치이론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그는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믿음을 걸었다. 이렇듯 그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집념의 결과, 그는 죽어서 동양의 사상을 지배했다. 현실 세계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그였지만, 죽어서 성공한 것이다. 공자는 우리와 같은 찌질한 모습을 가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다르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작은 차이가 그를 동양의 성현으로 만들었다. 

 두 번째로 평생 배움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부분이 감명 깊게 다가왔다. 오늘날 배움은 입신을 위한 수단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취직을 하는 순간 배움은 끝나게 된다. 그러나 공자는 이야기했다. 진정한 배움은 인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라고, 지식적인 측면, 목적적인 성격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바르게 실천하는 영역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배우고 아무리 고결한 인간이더라도, 인간이란 존재는 근원적으로 완벽하지 않기에,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음공부는 평생 지속해야 하고, 나의 행동을 다잡는 것 역시 평생을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공부의 과정이다. 취직의, 취직에 의한, 취직을 위한 배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의 목표이며, 이러한 목표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공자는 이를 깊이 있게 강조했다.

 세 번째로 공자 철학의 휴머니즘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사실 공자 철학의 복고적인 부분은 오늘날에 비춰볼 때 이질적인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시대는 '변화'가 트렌드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으며, 사회의 구조적인 부분들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혁신하고 있다. 예전에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변혁의 속도를 알아야만 한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가장 메인 요소는 바로 '인공지능'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더더욱 사라지고 자동화되고 기계화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인간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 번째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기술이나 사회 변혁으로 위협받는 휴머니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사회의 가치와 관념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에는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 위협받았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도 마찬가지였다. 춘추시대에는 그래도 예의와 법도가 무너지지 않았지만, 전국시대에는 그러한 인간 중심의 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할 사회가 인간을 경시하고 힘과 패권만을 추구했다. 즉 약육강식의 짐승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공자는 시대가 잊어버린 휴머니즘을 강하게 외쳤다. 이런 공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늘날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인간이 하던 많은 업무를 기계가 대신할 것이다. 사회 구조는 더더욱 발전할 것이고 사회 기술은 더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변혁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휴머니즘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 중심의 사회. 인간이 목적이 되지 않고, 인간 그 자체가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해야만 한다. 휴머니즘의 관념 속에서 물적 기술적 발전을 이룩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가 외쳤던 휴머니즘은 오늘날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논어》를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논어》에서 추구하는 바람직한 '군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오늘날의 관념에 비춰 본받을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고 싶다. 다만 《논어》라는 책은, 교훈을 떠나 인생의 고비를 넘나들며 이따금씩 주기적으로 펼쳐 보고 싶긴 하다. 왜냐하면 《논어》는 따뜻한 책이기 때문이다. 언제 펼쳐봐도, 《논어》는 따뜻했다. 온정을 품고,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나는 책이었다.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열정이 그대로 스며있었다. 나의 외할아버지가 가장 열정적으로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논어》를 볼 때마다 외할아버지의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생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뜨거움을 갈구할 때마다 나는 《논어》를 읽을 것 같다. 다음번에 읽을 《논어》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나이가 지금보다 더 들어서 읽을 것이니, 느끼는 바가 더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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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손수.장섭 엮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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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에 대한 고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경》을 손에 꼽을 것이다. 《시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모음집이라는 문헌학적 가치와, 유학의 아버지 공자가 편찬하여 유학의 경전으로 인정받는 사상적 철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시집은 무엇일까? 아마 《초사》가 아닐까 한다. 《시경》이 중국 북방 문명의 문학이라면 《초사》는 중국 남방 문학의 대표작이다. 굴원을 주축으로 초나라의 노래, 그리고 이러한 초나라의 노래 형식을 후대에 이어나간 작품들이 《초사》를 구성하고 있다. 《시경》이 시가 가지는 짧은 형식성을 강조한 작품이라면 《초사》는 긴 장편 시를 연상하는 작품이며 산문이나 가사문학의 효시로 꼽힌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경》은 현실적이며 통상적인 것들을 노래하는 것이 많았고, 《초사》는 이에 반해 인간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했는데, 그 감정들 중 개인의 고뇌와 번민, 비애를 집중적으로 노래했다. 《시경》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를 알 수 없는데, 이것은 당대의 불특정 다수가 부르던 노래를 공자가 선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초사》는 이와 반대로 소수의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뤄졌는데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가는 굴원이다. 굴원은 《초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이며, 초나라 노래의 시초에 해당되는 작가였다.

 

 

 

 이렇듯, 고대의 고전 중에서는 두 책이 독보적으로 두드러졌다. 그럼 중세 시기에는 어떤 시집이 유행했을까? 바로 《당시》다. 《당시》는 당나라 시인의 노래 모음집인데, 당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대표작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이백과 두보는 어느 시대 사람일까? 바로 당나라 시대 사람이다. 당시 당나라는 당시 대외적으로 돌궐을 정벌해 국토를 넓혔으며, 대내적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시대였다. 다양한 나라를 정복한 덕에 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이런 시대적인 상황은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왕유나 이백, 두보와 같은 걸출한 시인이 당나라 시대에 집중적으로 태어난 것은 과연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개방적인 환경이 잉태한 결과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시경》과 《초사》와는 다르게 《당시》는 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중국 내에서도 당나라 시가 뛰어난 점을 인식하여 여러 문학가들이 《당시》의 판본을 제시했는데, 지금 리뷰할 손수의 《당시삼백수》 역시 많고 많은 《당시》의 판본 중 하나였다. 손수는 청나라 건륭제 때 인물로, 시와 서예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서문에서 볼 수 있듯, 손수는 당나라 시를 모아 편찬한 목적을 교육에 두고 있었다. 즉 이 책에 수록된 시만 읽고 외운다면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더라도 시를 짓는데 능할 것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많고 많은 당나라 시 중 굳이 왜 300여 편인가? 이것은 《시경》의 300여 편의 편제를 본받은 것이었다. 이렇게 손수가 엮은 《당시삼백수》를 청조 1834년 장섭이라는 사람이 대폭적으로 주석했는데, 지금 리뷰하는 《당시삼백수》는 이 주석본을 원전으로 삼았다. 장섭은 주석을 가하면서 기존 《당시삼백수》에 10수를 더 포함하였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당시삼백수》에 포함된 작품은 320개가 확정됐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볼 점은 각 시대별로, 당나라 시에 대해 선집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이후 송, 원, 명, 청나라 시대로 가면서 당나라의 노래는 경시된 적이 없었다. 현대에 가장 가까운 청나라 후기에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유지됐다. 그만큼 당나라 시는 시대적으로 보편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는 여러 번역본이 있다. 다만 번역자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여, 어느 작가의 시를 더 많이 포함하거나 덜 포함하는가에 대한 차이가 있다.


 그럼 왜 당나라 시대의 시는 유독 주목을 받아왔을까? 그리고 당나라 시대의 시들을 정리한 《당시삼백수》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내가《당시삼백수》를 읽으며 느꼈던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엄격한 형식성과 그러한 엄격한 형식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시의 내용면에서 뛰어난 감정 표현이 나타난 점이었다. 당나라 시대의 시는 다른 시대와는 다르게 시의 형식적인 부분이 극도로 강조됐다.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고시악부, 철언고시악부,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율시악부, 칠언율시악부, 오언절구, 칠언절구, 그리고 각 절구의 악부까지... 이런 식으로 형식적인 부분이 강조됐다. 이런 형식성은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데에 걸림돌로 적용한다. 작가의 경우 자신의 창작에 무언의 형식이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작가가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것을 형식이라는 틀이 제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당나라 시대의 시들은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암묵적인 형식이 있었다. 문인들인 이 틀에 벗어나는 것을 비판했으며, 약간의 일탈적인 형식의 시가 몇몇 수 존재하지만, 큰 틀에서는 기존의 형식을 지키려고 하는 특징이 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형식적인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삼백수》의 시들은 그러한 형식에 맞춰 자신들이 노래하고자 하는 감정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형식이라는 틀이 작가의 창작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형식이라는 틀을 이용하여 작가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당나라 시들은 이러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로부터 뛰어난 문인이더라도, 당나라 시의 시풍으로 시를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만큼 당나라 시의 형식성은 까다로웠고, 깐깐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시인들은 그러한 까다로움을 넘어 그 까다로움을 오히려 창작의 시너지로 이용했다. 그래서 당나라 시는 엄격한 형식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으며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다른 시대의 시보다 뒤지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그럼 《당시삼백수》에 주로 나온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앞서 말한 《시경》처럼 현실적인 부분이었을까? 아니면 《초사》와 같은 개인의 고뇌와 번뇌, 비애를 노래하는 것이었을까? 전자와 후자의 내용이 고루 분포됐지만, 아무래도 후자의 입장이 더 두드러졌다. 《당시삼백수》에서 가장 유명한 두보의 예를 들어보자. 두보의 시는 인간의 감정 표현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품이 많은데, 대체적으로 번민과 비애, 그리고 울분을 표현한 것이 많았다. 이런 부분에서 두보는 당나라 시대의 굴원이라고 할 만 하다. 비단 두보의 시뿐 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작품도 이러한 울분의 감정이 나타나있다. 그럼 어떤 것에 향한 울분인가? 바로 현실 사회와 직결되는 울분이였다. 그 시대에도 문란한 정치 상황이나, 인재가 고루 쓰이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지도층의 사치, 올바른 관료들은 배격되고 간사한 자들만 입신하는 상황 등등이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당나라 시인들은 노래로 빗대어 남겼다. 이러한 감정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도,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사람들은 당나라 시를 최고로 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구성하는 분야는 크게 세 분야다. 첫 번째 철학, 두 번째 역사, 세 번째 문학이다. 철학은 인간을 나아가는 데에 등불 같은 역할을 했다. 역사는 어떤가? 역사는 인간이 걸어온 길을 회고할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이다. 그럼 문학은 무엇일까? 반영론적 관점에서 볼 때 문학은 사회 현실을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다. 현실을 표현할 때 우직하고 돌직구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문학가들은 좀 더 완곡하게, 그리고 좀 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또는 좀 더 희화화하기 위해 허구를 섞어 표현한다. 이것이 문학이다. 시라는 장르 역시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여겼다. 그래서 지식인층은 시를 배웠으며, 술자리를 가거나 벗을 만나거나, 풍류를 즐기거나, 슬픔을 당하거나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조들이 시로 현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쓸데없는 포장과 허위의식, 그리고 지나친 풍류로만 생각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시는 풍류와 감정 표현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지금 직면한 현실을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역할도 한다. 사회 현상을 말할 때 무조건 직설적인 표현보다 때로는 완곡한 표현이나 절제의 표현이 생동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시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선조들은 시를 지을 때 이런 사회 반영론적 관점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반영론적 관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가 바로 당나라 시대의 노래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인문학의 세 분야 중 역사를 가장 좋아하며, 철학은 그다음이고, 문학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에 관해서는 예외적으로 시집을 몇 권 보긴 했지만 즐겨 보진 않았다. 《당시삼백수》를 읽으며 이런 내 생각을 돌아보게 됐다. 이들의 세상에도 정치는 부패했으며, 인사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순실 사태처럼 말이다. 당나라 시대의 부조리를 시로 읽었지만, 어쩌면 내가 읽은 것은 오늘날의 부조리가 아닐까? 어쩌면 이들의 시에 담긴 울분은 이 시대의 촛불집회가 아닐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울분의 노래에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책은 굉장히 공들여 번역한 것 같다. 사실 신동준 역자분의 다른 고전 번역본을 봐 왔지만, 이번 《당시삼백수》는 역대급으로 주석이 풍부했다. 해설 설명이 아주 자세하고 각 연마다 중요한 단어와 중요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해설해놔서 정말로 편하게 작품을 음미할 수 있었다. 다만 초판본에 한해 오타가 부분 부분 있었는데 크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지만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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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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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차줌마라고 불리는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오는 사극 '화정'이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다. 화정의 주인공은 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알려진 정명공주다. 드라마는 가장 정치적인 시기를 광해와 선조, 인조의 시각이 아닌 정명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17세기 조선을 이해하는 관점은 대체적으로 남성 군주 중심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가령 선조 vs 광해군, 광해군 vs 인조, 혹은 누가 더 무능한가라는 관점으로 인조 vs 선조 등등의 시각으로 이 시기를 해석해왔다. 드라마는 종래의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깨고, 정명공주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극 '화정'의 시각은 다른 사극이나 역사물에 비해 참신했다.  
 
화정(華政)은 정명공주(이하 정명)가 쓴 서예 작품이다. 정명은 어려서부터 서예에 능통했는데, 그러한 능력은 명필이었던 아버지 선조와 인목대비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 선조는 글씨에 굉장히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었고, 어머니였던 인목대비 역시 붓글씨가 일품이었다. 그런 능력을 이어받은 정명이 남긴 작품이 바로 화정(華政)이다. 정명이 남긴 글씨의 뜻은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책 역시도 드라마와 같이, 그런 정명공주의 작품을 제목으로 하고 있었다.


드라마와 책의 차이라면, 드라마는 상당히 각색된, 내용으로 정명의 삶을 전개했지만, 동일한 제목의 이 책은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책은 선조를 시작으로,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그리고 숙종 때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두 정명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사연이 많은 그녀는 조선의 1/5를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시기는 국가가 혼란했던 시절이었다. 사림은 분화되고 왕권은 흔들렸다. 왕위를 이은 왕들은 취약한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해, 과도하게 애를 썼다. 욕망과 권력이 춤추던 세월이었고, 그런 권력 다툼과는 별개로, 대외적인 국난을 몇 차례나 치렀다. 안도 밖도 썩어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권력을 쥔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집중했고, 민심은 뒷전이었다. 암울한 시대였었다. 그런 풍파의 세월을 정명은 나름의 처세술로 견뎌왔었다. 책은 그런 정명의 눈으로 시대를 해석해보자는 입장이었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많이 기대를 했었다. 종래의 군주 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정명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에서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책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정명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기엔, 정명의 모습을 기록한 사료가 너무나도 소략했다. 저자가 주로 내세우고 있는 정명의 사료는, 화정이라는 글귀,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정명이 당부했던 말, 그리고 호란 때 강을 건널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부터 태우라고 했던 이야기 이 세 개가 전부였다. 저자는 이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이것들을 정명의 가치라고 의미 부여하며, 그러한 가치에 따라 혼탁했던 조선 시대를 해석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소략한 사료를 가지고 혼탁하고 복잡한 시대를 해석하려고 하니, 아무래도 과도한 주장처럼 보이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내세운 정명의 입장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정명의 시각이라고 말한 세 가지를 하나하나 검토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전면적으로 내세운 정명의 처세는 앞서 말한 대로 화정이라는 글귀,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정명이 당부하던 말, 호란 시기, 강을 건널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부터 태우라고 했던 이야기들이다. 이 셋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책은 기존의 목표한 의도를 쫓아, 정명의 시각으로 당대의 인물과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교과서적인 해설을 보인 부분도 많았다. 뭐랄까 정명의 이야기가 주가 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저자가 교과서적인 해설을 하며 시대의 단면을 설명하고 마지막 결론부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뜬금없이 정명의 처세를 바탕으로 '빛나는 다스림'에 비춰, 역사를 혹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가치로, 저자는 이순신을 비판하고 소현세자를 비판하고, 광해군을 비판한다. 물론 비판 기준이 정당하다면 그 기준으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판 기준으로 내세운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이 모호하다면? 이러한 비판들이 올바른 비판이 될 수 있을까? 화정이라는 글귀도 그렇다. 화정이라는 뜻은 빛나는 다스림이지만, 그 글자가 어떤 배경으로 쓰였는지, 정명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것은 저자가 자의적으로 부여한 의미일 뿐, 정확한 것은 불분명하다.


책은 문단이나 단락 말미마다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에 비춰 설명하고 평가한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 저자는 정명이 쓴 화정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한다. 화정이라는 글자에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해석을 시작으로, 나를 다스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남을 다스린다. 내가 아니라 상대를 움직여 목적을 달성한다. 등등으로 확장하여 화정을 해석해내지만, 글쎄 내가 책을 읽고 살펴본 정명의 행실과 저자가 해석하는 화정의 뜻은 일치하지 못 했다. 책 속에서, 보인 정명의 행실은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라는 것 외에는 빛나는 다스림이라던지, 나를 다스린다던지 하는 부분은 발견하지 못 했다.  


실제 정명의 처세를 잘 살펴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침묵으로 상황을 돌파한다. 억울한 상황이 되어도 변명하지 않으면서 묵묵하게 상황을 견뎌낸다. 확실히 문제의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야 훨씬 좋은 처세다. 동양은 예로부터 말을 줄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왔으니,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정명의 처세는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정명은 막내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참 훌륭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와 법령을 쓸데없이 시비하지 말라. 그럼 아닌 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정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경박한 말인가? 그저 침묵만이 최고의 가치인가?


 물론 침묵은 최고의 처세술일 수 있다. 정명 스스로도, 침묵의 힘으로 광해와 인조의 질투로부터 견뎌왔으니까, 하지만 침묵보다도 더 좋은 화술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대화법이 아닐까? 어쩌면 이 혼탁한 시기에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정명은 그 시대의 지도자 계층에 위치하는 사람이다. 그런 계층의 사람이 혼탁한 시대에 밑도 끝도 없이 침묵하는 것은 그저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에 앞장을 서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개선해 나갈 때에 사회는 발전한다. 아니라는 말을 침묵하기보다, 아니라는 말은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위정자가 아닌 길로 가는데,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그럴 때 침묵은 너 나 우리, 나아가 국가를 죽이는 것이다. 물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불행할 수 있겠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현세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불의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정명이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그렇게 오래 살지 못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했다면 정명의 화정(華政) 빛나는 다스림은 더 확실하게 후손들에게 각인됐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호한 의미의 작품으로 남겨지지 않고, 좀 더 선명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정명 공주 그녀도, 지금처럼 모호한 역사의 파편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명의 침묵은 자신의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기보단, 개인의 생존 처세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명이 호란 때문에 피난 갈 시절, 자신의 재화를 버리고, 백성을 먼저 태우라고 지시한 부분을 가지고 저자는 굉장히 칭찬한다. 물론 이 부분은 굉장히 뛰어난 처세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정명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지도층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책을 자세히 본다면, 또 다른 모습의 정명을 볼 수 있다. 인조반정 당시 인조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해준 인목대비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정명에게 과도한 상을 내린다. 100칸짜리 집을 하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재료를 지원한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끝없이 수탈 받았다. 진정으로 정명이 애민정신이 있었다면, 그러한 경제적인 혜택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가 힘든데, 왕족 한 사람의 집을 위해, 그렇게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정명은 결국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 도성에서는 정명의 집 때문에 성화가 많았다고 책에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명은 '침묵하고, 그러한 혜택을 말없이 다 누렸다.' 그뿐일까, 도성 내 집뿐만 아니라, 정명의 가족은 전국구 단위로 땅을 하사받았다고 하는데, 그 땅이 몇 천 평에 이른다고 한다. 그녀가 과연 백성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애민정신이 있다면, 왕실의 일원으로써, 그러한 혜택들에 대해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왕실 가족 한 개인을 위해 그 많은 땅이 과연 필요한가? 그 시기가 어떤 시기인가? 나라는 전란으로 혼란스러우며, 왕실은 반정으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녀가 과연 백성들을 위한 지도층이었다면, 과도한 혜택에는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정명이 쓴 화정이라는 글씨, 그 빛나는 다스림에는 과연 진정한 애민이 있단 말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리해보면 저자가 내세우는 정명의 시각, 화정 즉 빛나는 다스림은 정확하지 않은 모호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명의 처세는 그저 일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한 침묵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애민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위와 같이 한계가 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덕수궁의 암울한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이 책을 읽다 보면 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걷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광해군과 정명은 이복동생이지만 기회가 올 때까지 잠자코 숨죽여 기다리는 스타일도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복동생이긴 하더라도 같은 피를 타고나서 그런 것일까? 닮아있는 부분이라 생각됐다. 다소 비판적으로 서평을 썼지만 이 책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장점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선조 ~ 현종 때까지 복잡한 조선의 시기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앞서 지적했던 정명의 입장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복잡한 역사를 평이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서술법은 돋보이는 것 같다. 따라서 드라마 화정을 더 깊이 있게 즐길 분들은 이 책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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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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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 잠언집 장르는 동서를 불문하고 굉장한 베스트셀러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가의 최고 경전인 《논어》 역시도 이런 잠언집 장르에 속하며, 비단 《논어》 뿐만 아니라 《노자도덕경》, 《명심보감》, 《채근담》 의 고전도 짧은 경구와 성찰을 담은 잠언집 고전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언지록》, 서양에서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서》, 이탈리아 귀치아르디니의 《리코르디 - 회상집》, 파스칼의 《팡세》,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등등도 이러한 장르에 속한다. 그럼 왜 이러한 잠언집 장르가 대중에게 잘 읽히는 '베스트셀러' 였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겠다.

 

잠언집 고전들의 특징은, 잡다스러운 논의나 어려운 형의상학적 문구를 지양하고, 짧고 간결한 문구로 삶의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짧고 간결하며,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함축된 내용은 깊고 풍성하다. 그러한 잠언집은, 지식이 없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책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면 자신의 삶에 경험을 투영하여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동서를 막론하고, 이러한 장르적 형태를 취해,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 고전들이 많았다. 이러한 잠언서들을 어려운 용어로 '아포리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금 서평을 쓰려고 하는 《유몽영》 역시 이런 아포리즘 잠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유몽영》은 청대에 발간된 잠언서로 장조라는 문인이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당대에 널리 퍼진 명문들을 모아 엮어낸 책이다. 책은 《유몽영》 본서와 이 책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유몽속영》까지 번역했다. 《유몽속영》은 장조가 쓴 책이 아니라 청대 말기에 문인 주석수가 쓴 책이다.

 

고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대중적이고, 흔히 알려진 고전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이 '새로운' 고전을 접하는 것이다. 《유몽영》은 그런 부분에서 우리 사회에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책은 아니었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접할 때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라 상당히 기대가 많이 됐었다. 잠언집의 최고봉인 《채근담》에 견줄 만한 책이라고 하며, 중국 유명한 문학가인 임어당이 극찬한 잠언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어당은 이 책을 영역하여 서구권 문화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의 저서 《생활의 지혜》라는 책 역시 《유몽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설에 나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몽영》이 왜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는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독서를 했었다.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이 책은 다른 잠언서들과는 다르게, 굉장한 격조와 품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잠언서의 특징은 삶의 지혜가 통찰적으로 녹아있는 문구가 많다는 점이다. 《유몽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처세서로 분류해 볼 수도 있지만, 얕은 처세서나, 딱딱한 교훈서로 분류하기엔, 문체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격조를 보였다. 왜 중국의 문학가인 임어당이 이 책에 매료되었는지, 알 법 했다.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독서와, 자연물이다. 특히 꽃과 산수에 대한 비유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나는 꽃이나 식물에 대해서 지식이 없어서 저자의 논의를 깊이 있게 체득하지 못 했지만, 글에서 풍기는 그 격조 높은 품위의 포스는 유감없이 느꼈다. 저자는 화훼와 식물, 그리고 꽃에 대해 상당히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았다. 보통 동양의 잠언서들은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을 가까이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 책은 구체적으로 꽃과 식물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의 서술은 책의 문장을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며, 교화라는 측면에서 잠언서가 가지는 딱딱함을 한층 더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유교적 가치를 담은 잠언서들인 《명심보감》, 《논어》 등등이 다소 인과 예 충, 효에 집중하여, 직설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면, 《유몽영》은 그것보다는 다소 말랑하고, 부드럽게 이론을 전개하고 있었다.

 

같은 청대에 유행했던 《채근담》과 비교를 해 보자면, 공통점과 차이점도 보이는데, 《채근담》은 유교, 불교, 도교, 3교의 속성이 모두 절충되어 나타난 책이다. 동양을 지배했던, 사상이 모두 녹아내린 책을 한 권 꼽으라면 단연코 《채근담》이라 할 수 있는데, 《유몽영》 역시도, 유, 불, 선 3가지 사상이 모두 혼합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채근담》에 비해서 《유몽영》이 가지는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꽃이나 여자, 산수의 풍경을 이용하여, 서술한 부분이다. 《채근담》과 《유몽영》 모두 다른 잠언서들에 비해 일상적이고, 평이한 서술을 보이지만, 둘을 놓고 비교해봤을 때, 《채근담》은 《유몽영》에 비해 좀 더 교화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채근담》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격언들은 대체적으로 교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유몽영》은 교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것 외에도 저자 자신의 일상적인 생각이나, 사견 등등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두 책만 놓고 비교해봤을 때 좀 더 일상적이고 소탈한,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유몽영》을 꼽고 싶다.

 

혹자들은 《유몽영》이 자연과 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대체적으로 도가의 신선사상이나, 탈세속적인 삶을 노래하는 책으로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유몽영》은 탈세속을 노래하되, 세속적 가치도 쉽게 져버리지 않는 절충주의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 청대의 잠언집들은 이전 시대의 유교 중심적인 잠언서들과 다르게, 유교 제일주의를 외치지 않고, 유교와, 불교, 도교의 다양한 사상을 합친 내용이 많다. 앞서 봤듯 《채근담》 역시 이러한 예에 대표적인 책이며, 《유몽영》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부분은 이민족이라 할 수 있는 청나라 왕조가 개창된 사회 배경의 영향이 컸다. 중국 본토를 지배하던 사상은 유교 사상인데, 이 유교사상은 한족 이데올로기의 가장 막강한 사상적 뒷받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 대륙을 한족이 지배하는 왕조가 들어설 때, 상당히 폐쇄적이고 유교적 도학 적치를 강조하곤 했었다. (대표적으로 명나라와 송나라, 한나라) 이에 반해 이민족 국가가 들어설 때에는 유교를 중시하되,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당나라가 도교와 불교에 관대했다는 점) 명이 멸망하고 들어선 청나라 역시 만주족, 이민족의 국가이므로, 이전 왕조인 명에 비해 사상적으로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저술 《채근담》과 《유몽영》은 유, 불, 선 3가지 사상이 절묘하게 녹아있게 된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학풍은, 현실과 이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유, 불, 선 세 가지 사상을 절충하는 중용적 성격은, 현실과 이상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너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도, 너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지도 않는, 현실을 고려한 이상주의를 추구하게 되는데, 《채근담》과 《유몽영》 역시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몽영》은 탈세속을 아름답게 표현하되, 세속적 삶을 절대로 경하하지 않았다. 다음의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상한 얘기를 하며 산림에 묻힌 자는 시정과 조정 얘기만 나오면 문뜩 마뜩해하지 않으며 입을 다문다. 사정이 그렇다면 《사기》와 《한서》 등의 책들도 모두 없애고 읽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개 이런 책에는 거의 옛날 시정과 조정에 관한 얘기들뿐이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산림에 묻혔으면 아예 조정일이나 사회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끊을 것이지, 왜 이전 시대에 기록된 '정치'나 '사회'의 담론을 보느냐?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서 저자는 은거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지만, 세속의 일을 절대로 등한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대목에서 《유몽영》은 절대로 탈세속의 가치를 우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몽영》은 앞서, 일상생활을 많이 반영한 잠언서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당대의 사회생활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수호전》에 대한 인용이 많은 점이다.  책에서는 《수호전》에 대한 인용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저자 장조는 《수호전》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청대 사회에서 《수호전》은 굉장히 많이 인용되고 보급된 책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 사회로 말할 것 같으면 《삼국지연의》 급의 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정치나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 혹은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흔하게 인용되는 책으로는 《삼국지연의》가 많으니, 《수호전》은 청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위상이 아닐까 싶다.

 

'주사위 점수로 벼슬이 오르내리는 승관도 놀이는 덕을 중시하고, 축재를 꺼린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일단 벼슬길에 오르기만 하면 문득 이와 반대로 한단 말인가?'

 

이 대목을 보고, 청대 사회에서 유행했던 놀이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부루마블' 과 같은 보드게임인데, 이 당시에는 벼슬 이름을 가지고 주사위를 던지고 논 놀이 같다. 여담이지만 이순신에 대한 책을 보며 비슷한 대목을 발견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작을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한 것이 있는데, 이 놀이를 만든 사람이 조선 태종의 재상 하륜이다. 하륜은 고관대작들에게 관직 이름을 외우게 하기 위해 벼슬 이름을 두고 주사위 놀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순신 장군 역시도 이 놀이를 군중에서 병사들과 즐겼다고 한다. 청대에서도 비슷한 류의 게임이 성행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호텔왕 게임'이나 '부루마블' 등등의 룰이 비슷하지 않은가? 청대와 조선에 유행했던 주사위 게임도, 아마 관직 이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룰의 게임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책의 가장 큰 축으로는, '꽃을 포함한 식물' , '미인' , '술과 산수' , '독서' , '처세' 등등이 있다. 앞선 꽃과 미인 술과 산수는 풍류적인 도가적 이미지가 생각나고, 독서는 호학적인 유가적 이미지가 생각난다. 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거리를 둔다 하더라도 저자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인 장조는 꽃과 풍류를 즐기며, 미녀를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으며, 특히 독서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격언 중 상당수는 독서에 대한 자세와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있다. 경전과 사서를 읽는 법에서부터, 책을 구매할 때는 게걸스러워도 된다. 사는 것보다 읽고 이해하며 뜻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등 여러 가지 독서에 대한 자세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뛰어나고 아름다운 문재(文才)를 지닌 장조였지만, 그의 일생은 다소 불행했다. 입신을 꿈꾸며, 과거 준비를 한 그였지만, 형식적인 과거 틀에 맞는 글을 짓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끝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책에는 은연중에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했다.

 

'글로 명성을 떨치는 문명(文名)은 급제, 검소하고 절박한 행보로 덕성을 닦는 검덕은 재화, 맑은 행보로 한가한 삶을 사는 청한은 장수(長壽)에 견줄만하다.'

 

'차라리 소인의 욕설 대상이 될지언정 군자의 멸시 대상이 돼서는 안되고, 틀에 박힌 과거 시험관의 배척 대상이 되어 낙방할지언정 여러 선배 명사들이 알아주지 않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위의 대목에서 저자 장조의 과거시험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다. 결국 《유몽영》은 급제하지 못한 장조의 문명(文名)을 상징한다고 보면 되겠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훗날 임어당과 같은 문필가가 《유몽영》을 높이 샀으니, 죽은 장조는 현세의 아픔을 위안 받지 않을까도 싶다.

 

더불어 저자인 장조는 '달'을 굉장히 사랑했다. 《유몽영》 책에서 달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서술했는데, 관련 대목을 옮겨와본다.

 

'달도 햇빛을 반사해 그림자를 만든다. 천공에서 만들어지는 달의 그림자는 햇빛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밤에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달이 햇빛을 받아 땅에 베푼 결과이다.'

 

이 외에도 달을 묘사하며 아름다움을 칭송한 구절들이 많지만, 특히 이 대목은 받아들이는 달과, 베풀어내는 달의 모습을 묘사하며, 삶의 태도를 은연중에 비유하고 있다.

 

《유몽영》의 본문과 문구가 다소 조곤하고, 여성스럽다면, 역자의 주석은 사뭇 현실적이고 강한 남성적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역자인 신동준은 책의 해설에서 자신의 지식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며, 제자백가서를 섭렵하고, 조선왕조사를 공부한 탓에, 책의 주석에서 비슷한 사례와 문구들을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저자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힘과 힘의 논리에서 고전을 풀이하고 있는데, 뭐랄까 조금 자의적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유몽영》이라는 책을 현실론적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돋보인 부분도 있었다.

 

모쪼록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잠언서지만, 격조 높은 문학성을 겸비했으며, 너무 딱딱하고 교화적인 내용을 드러내기보단, 중간중간 꽃과 술, 미인과 달, 산수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하며 쉬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교훈적인 이야기도 많으며, 독서에 대한 문구에서 내 독서법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하고 남성적인 필력이 아니라, 여성적이면서 섬세한 필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책은 다른 고전들, 잠언서들에 비해 여유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느림의 미학' 색다른 감동이다. 원래 잠언서는 빨리 읽는 책이 아니다. 책의 여유로운 분위기처럼, 느리게 그리고 깊이 생각하며 읽는 장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까이하며 때때로 마음의 여유를 견지하고 싶다. 알지 못 한 책에서 받는 감동,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고전을 읽는 맛이다. 임어당이 극찬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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