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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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태종을 생각할 때, 태종의 잠저 시절(왕이 되기 전)을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집권 시절 태종의 모습은 대강 이해하고, 잠저 시절의 왕자의 난만을 크게 부각한다. 그래서일까 두 번의 왕자의 난은 태종 이방원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태종이라는 인물을 고찰하려면, 잠저 시절도 중요하지만, 집권 시절의 모습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특히 그런 집권 시절의 첫 단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재위 1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위 1년 때 태종은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정권을 잡았다고 막 나가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즉위는 정통성을 확보하지도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마이웨이를 갔다간 자신을 도와줬던 공신들이 언제 배신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태종의 모습은 《한비자》의 21편 <유로>에서 초 장왕의 이야기를 연상한다. 초나라 장왕은 즉위한 지 3년이 되도록 명령을 내린 적도, 정무를 처리한 적도 없었다. 우사마가 곁에 모시고 왕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새 한 마리가 남쪽 언덕에 멈추어서는 3년 동안 날갯짓도 하지 않고 날지도 않으며 울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습니다 이 새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장왕은 이렇게 답했다. '3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비상하기 위함이요, 날지 않고 울지도 않은 것은 백성을 살피려는 것이요, 지금은 비록 날지 않아도 한번 날면 반드시 하늘을 가를 것이며 비록 울지 않아도 한 번 울면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그대는 그만두시오. 나는 이것을 알고 있소.' 반년이 지난 뒤 왕은 정사를 돌봤고, 나라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병사를 일으켜 전쟁에서 승리했고, 천하의 패자가 됐다. 이로 인해 이런 말이 나왔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 음성은 잘 들리지 않는다.'

태종의 재위 1년도 이와 같다. 폭풍전야처럼 고요하지만, 그렇다고 태종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공신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수집하고 있었다. 비록 이때에는 크게 공신들과 다툼이 없었고 침착했지만 군주의 세를 신하가 범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태종이 《한비자》가 주장하는 법, 술, 세에 관한 현실 정치론을 몸소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태종의 정치는 보편적으로 유학을 추구했다. 하지만 태종은 유학적인 내용으로만 정치를 해석하지 않았다. 재위 1년 동안 그가 주로 본 책은 《대학연의》다. 《대학연의》는 유학의 제왕학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리공담으로만 구성된 책은 아니다. 《대학연의》를 이루는 두 가지는 역사와 철학이다. 유학 철학은 이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는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내가 생각해봤을 때 태종은 《대학연의》를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철저하게 현실적으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대학연의》에서는 외척에 의해 나라가 전복되는 사례를 두루 고찰하여 '제가의 요체'에 담아 놨었다. 태종은 분명 이를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재위 1년 실록에서는 외척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권세를 등에 업고 방자하다는 내용이 1월 1일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태종의 생각을 의미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결국 태종이 훗날 외척을 배척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태종이 성급하게 처리했던 변남룡 부자의 사형 에피소드도 《정관정요》 권 8 민생론에 나오는 '장온고 사건'을 연상한다. 《정관정요》에 따르면 당 태종 이세민은 장온고를 성급하게 사형한 뒤 후회하며, 사형을 처리할 때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 심리하고 결과를 보고하게 했다. 태종의 사례도 거의 비슷하다. 변남룡 부자를 성급하게 죽인 태종은 언관의 상소를 받는데 상소의 내용은 사형을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태종은 깊이 있게 반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태종은 매사에 신중에 신중을 가하며 국사를 이끌어갔다.
 
결과적으로 재위 1년의 태종은 자신의 힘을 주기적으로 과시하며 신하들을 억누르는 폭군의 이미지가 아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군주의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해 볼 때, 이때의 태종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과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기에는 태종이 풀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명과의 대외 외교, 시국의 안정, 새로운 정치 구상, 공신들 파악, 아버지와의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 등등 이러한 일을 한꺼번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분란을 만들지 않고 침착하게 국정에 임한 것 같다.

책을 덮으면서 드라마 '용의 눈물'을 봤다. 재위를 이어받은 태종은 상왕인 정종에게도, 태상왕인 태조에게도 강경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했다. 유동근 특유의 울림 화법은 태종을 강경하게 묘사하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드라마의 허구였다. 앞서 고찰했듯 실제 재위 1년의 태종은 이렇게 '막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신중하고 공경을 다해 태상왕과 상왕을 모셨다. 태상왕에게 무시를 당해도, 그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오늘날 태종의 폭군 이미지는 드라마 '용의 눈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역사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정통 사극도 역사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고찰하려면 내려오는 역사적 문헌을 진지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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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마이클 카츠.거숀 슈워츠 지음, 주원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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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모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탈무드》다. 흔히 알려져 있듯 《탈무드》는 스토리텔링 우화 중심의 구성을 가졌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당시 내가 읽던 책은 마빈 토케이어가 편집하여 정리한 책인데, 당시에 유행했던 마빈 토케이어의 편집본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탈무드》를 대표하는 책으로 꼽는다. 국내의 유대인 관련 저서, 탈무드 관련 저서는 직간접적으로 마빈 토케이어의 편집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케이어의 편집본은 우화 중심의 책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서 나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탈무드》의 완역본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검색 이후 방대한 양의 분량을 보고서는, '언젠가는' 국내에서 완역이 이뤄지길 기도하면서, 《탈무드》에 대한 관심을 마음 한편으로 넣어뒀다.

다시 《탈무드》와 만나게 된 건 최근이다. 바로 리뷰하는 책인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를 통해서인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풍문으로 들었던 《탈무드》에 대한 지식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유대인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다. 책은 마빈 토케이어의 《탈무드》와 전혀 다른 구성이었다. 토케이어의 책이 흥미 위주의 우화로 구성됐다면, 이 책은 비록 축약본이긴 하지만 원전의 형식과 내용에 따라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었다. 책의 앞부분에는 50여 쪽을 할애하여, 《탈무드》라는 고전에 대한 예비지식(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란 어떤 책인지, 《탈무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우리는 흔히 《탈무드》를 유대인의 고전과 경전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탈무드》는 경전과 같은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탈무드》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며, 새로운 시각, 새로운 해석으로 권위 있게 내려오는 해석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고전과 경전의 특징은 고정된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고전에 기록된 글은 성현이 한 말이기에 감히 의심을 품어서는 안되며, 후학들은 그저 성현의 말을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 《탈무드》는 달랐다. 물론 《탈무드》에도 권위 있는 주류의 시각이 존재하긴 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생기는 주석은 이런 주류의 시각을 곱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렇기에 《탈무드》는 고정적이기보다 개방되고 열린 텍스트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이어져온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위대한 사상과 경전은 거창한 무엇이나 형이상학적인 부분에서 탐구를 시작한다. 그러나 《탈무드》는 거창한 것에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일상의 관습이나 풍습에서 시작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 철학인데, 이런 점도 나에게 참 와닿았다. 철학자들의 지적 사유나 고전의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물론 흥미 있고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감이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는데, 《탈무드》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소확행을 추구했다고 해서 《탈무드》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탈무드》의 내용은 매우 함축적이며, 수많은 지시대명사가 난무하고, 문체는 은유와 비유가 난무한다. 거기에 우리와 익숙하지 않은 배경에서 태어난 문헌이라는 점도 수월한 접근을 방해한다.

《탈무드》의 탄생은 성서로부터 시작됐다. 성서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미드라시가 생겨났고, 이러한 미드라시를 분류별로 정리한 것이 미슈나다. 미슈나는 축약적이고 함축적이라 이를 다시 구체화하면서 게마라가 등장했는데, 《탈무드》는 미슈나와 게마라를 통칭하는 것이다. 즉 《탈무드》는 성서의 의미를 현실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렇기에 다른 철학이나 고전보다 더욱 현실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탈무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율법, 정법 등등의 규범적인 부분으로 대표되는 할라카와 구전되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아가다로 나뉜다. 국내에 대세를 이루고 있던 토케이어 《탈무드》는 아가다에만 집중했다. 그렇기에 토케이어의 《탈무드》는 결국 반쪽짜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토케이어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으며, 토케이어의 자의적인 견해로 편집한 우화가 많다고 한다. 토케이어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탈무드》를 알리려고 노력했다는데, 그런 배경 때문인지 그의 저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토케이어의 《탈무드》는 이야기가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치 유대판 《이솝 우화》를 보는 느낌이다. 물론 《탈무드》의 구성에서 우화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만 우화 자체가 《탈무드》의 전부는 아니다.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어떻게 《탈무드》라는 텍스트를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왜 이 우화가 등장한 것일까. 이 우화의 궁극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과연 이 우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유효하지 않다면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가? 등등... 즉 《탈무드》 공부의 핵심은 '생각'에 있음을 강조한다. 우화 텍스트를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함축된 우화를 두고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지를 강조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핍박받은 유대인들은 현실에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나라를 되찾고 전 세계의 부를 거머쥐었다. 우리는 단차원적으로 유대인을 분석하여, 그들의 창의성을 쫓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가벼운 태도는 견강부회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힘은 그들의 정신에서 나온다. 유대인의 정신. 그것은 곧 그들의 지적인 정수라 할 수 있는 《탈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대인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탈무드》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유대인의 교육법이나 유대인의 부를 이야기하는 서적은 많지만 유대인의 정신을 깊이 있게 탐구한 저작은 드물다. 심지어 출판계를 지배하고 있는 《탈무드》 역시도 올바르지 않는 책이 대부분이니, 이런 환경에서 유대인의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책의 발간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강조한다. 《탈무드》에 기록된 텍스트보다 사고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유대인들은 이런 사고력과 지적 전통을 유구한 시간을 거쳐 계승했고, 그랬기에 오늘날의 민족적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식을 위해 유대인 교육법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유대인 교육을 어설프게 논설하는 책을 읽기보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읽고 토론하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은 미국에서 출간됐는데 두 명의 랍비가 공동으로 집필한 《탈무드》 안내서다. 원저의 제목은 'SWIMMING IN THE SEA OF TALMUD'인데, 유대인들은 흔히 《탈무드》를 바다에 비유한다고 한다. 그만큼 《탈무드》는 깊고 풍성하며,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책은 방대한 《탈무드》를 원전의 체계에 맞게, 그리고 랍비들이 교육법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내용을 전개한다. 책은 《탈무드》의 원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의 내용과 흡사한 현대의 사례를 제시하여 과거의 규범과 오늘날의 현실을 비교하여 독자의 사고를 유도한다. 물론 이런 현대의 사례는 전적으로 저자들의 주관적 관점이므로, 이를 넘어 나만의 사례, 내가 생각한 사례와 함께 엮어 생각한다면 더욱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이 책은 모범적인 《탈무드》 입문서로, 서구권에서 널리 읽힌다고 한다.

500페이지 가량의 책에 유대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탈무드》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책을 통해 《탈무드》의 전체적인 윤곽, 그리고 《탈무드》가 가지고 있는 느낌 등등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책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러나 속독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 책은 속독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시간의 여유를 두고, 음미하며, 사색하며 읽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천천히 책을 음미하며 랍비들의 방식대로 다시 읽을 생각이다.

국내에 《탈무드》가 하루빨리 완역이 됐으면 좋겠다. 과거 나는 《리비우스 로마사》, 《대학연의》, 《자치통감》, 《탈무드》 4권의 고전이 완역됐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는데, 이 중 《탈무드》 외에는 모두 완역됐거나 완역이 확정됐다. 물론 《탈무드》는 방대한 양이라서 이를 한국어로 완역하려면 굉장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늙어서 죽기 전에는 완역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볼 수 있기를 막연하게 희망해본다. 아무튼 그전까지 완역의 아쉬움을 이 책으로 달래야겠다. 또한 이 책의 발간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간직했던 때묻은 토케이어의 《탈무드》를 마음 놓고 버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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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율의 줌아웃 -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 지음 / 미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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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그녀가 묻는다. '내가 볼 때마다 너는 과거와 관련되거나, 과거를 다룬 책만을 보는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를 돌아본다. 물론 개인적 취향으로 인해 인문고전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름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밸런스를 신경 쓴 것 같은데, 그런 내 노력이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애써 변명하고자 하기보다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내가 남겼던 서평들을 쭉 살펴봤다. 확실히 역사, 인문학, 철학, 고전에 관련된 책이 압도적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서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나는 역사나 철학을 그저 지적 유희를 위해 읽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오늘날과 미래에도 통용될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읽는다. 대부분의 일반인이 고전을 읽는 이유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역사나 과거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현실 문제를 민감하게 인지한다. 그렇기에 쇼 프로나 버라이어티는 보지 않더라도 주요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서 본다. 정치권에 대한 관심도 많다. 단지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현실 문제는 민감하다. 나름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지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현실에 관한 기사나 뉴스를 접하면서 최대한 감정적으로, 무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내 주관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문제 등등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가치중립을 지키는 것이나 회피하는 태도로는 내가 가진 주권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어떠한 현상을 관찰할 때 줌인의 관점을 고수했다. 무엇이든 직접 파는 쪽이었고, 그 안에서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생생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탐구하려는 대상 안에서 탐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부제에 나와있듯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 ~ 2017년의 시기를 줌인이 아닌 줌아웃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직접 들어가서 몰입해서 보기보다, 멀어지는 시각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방법이 물아일체라면 저자의 방법은 서정적인 관조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방법이 나무를 앞에서 겪는 것이라면 저자의 방법은 숲을 관조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2012년에서 2017년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수 정권은 유례가 없는 타락을 보여줬고, 지도자는 무능했다. 국정은 농락당했다. 노무현의 죽음을 시작으로 진보 역시도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라는 새로운 정치 프레임이 등장했다. 배가 침몰했고, 메르스 소동으로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국민들은 광장으로 뛰어나와 정부를 응징했다. 젊은 세대의 일부는 극우주의인 일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남녀 감정의 골은 역대급으로 높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으며, 임기중인 문재인 정부는 핵심 공약인 '사회적 공정'의 실현을 두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책의 핵심은 보수와 진보, 즉 정치권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것 외에도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놓치지 않고 있다. 

줌아웃이라고 해서 현상의 개괄과 표면만을 다루고 있진 않았다. 전체적인 시각은 사건과 현상을 관조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핵심 부분이나 강조할 만한 부분에서는 심도 있는 줌인의 시각으로 현상을 해석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작금의 시대, 우리의 현대사를 저자는 융통성 있게 조망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당위적인 결론, 그리고 통속적인 결론도 있긴 했지만, 신선한 해석도 많았다. 저자의 해석이 타자와 비교하여 통속적이고 당위적인 해석이라 하더라도, 그 통속적인 생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사유 과정에서 나는 내가 놓친 부분이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같은 생각, 비슷한 생각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데, 비약적이고 통념적인 부분에 의존하여 쉽게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저자는 비슷한 생각과 관념에 도달하면서도 그러한 사유의 흐름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책에 제시했다. 이런 저자의 글에서 나 역시 통념이나 감정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사회 현상 대한 해석을 꼼꼼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은 지는 꽤 됐지만, 선뜻 서평이 쓰여 지진 않았다. 지나왔던 아픈 일들, 그리고 분노했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관조하는 데에는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숙제가 남아있다. 올바르지 않은 정부를 혁명으로 응징했지만, 여기에 멈춰 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숙제가 남았으며 사회적으로는 극단적인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 남녀 성별에 대한 극단적인 갈등, 이민자 문제, 노동, 정규직, 실업 문제, 양극화 등등이 남아있다. 2012년에서 2017년 사이에 많은 일들과 격변을 겪었고, 커다란 성과를 거뒀지만,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 시대가 그렇듯, 유토피아적인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8년 그리고 그 이후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금의 시대적인 문제와 숙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는 지나왔던 길을 줌아웃한 친절한 사진기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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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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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에게 고구려는 늘 아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한반도 역사는 5000년의 유구함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단점이 있다.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는 대체적으로 직간접적인 중원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율성이 많은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는 그나마 우리 역사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했던 고구려에 대해 선망과 동경을 가졌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은 한반도 국가가 요동 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한 흔치않은 사례였기에 오늘날 광개토태왕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긴다. 이런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에 멸망당했기에, 몇몇은 강성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고구려라는 나라는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자부심과 아쉬움으로 남겨져 있다.

  여기서 뜬금없는 의문을 제기해보자면 단지 고구려가 영토가 넓었기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동경하는 것일까? 고구려를 지탱하던 자율성은 순진한 정복욕의 산물일 것인가? 고구려의 영토는 과거 한반도에 위치했던 국가 중 가장 드넓은 영토를 가진 대국이었다. 그들은 왜 이런 정복전쟁을 추구했던 것일까? 중국의 역사에서 막강한 대국을 일궜던 군주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바로 '중화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무제, 당태종, 명의 영락제, 청의 강희제 등등의 명군들은 중원의 내부를 다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화의 범위를 중원 밖으로 확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을 움직인 이데올로기 '중화사상'은 중원의 천자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지배하는 것을 유학적으로 정리한 사상이다. 중원으로부터 멀리 있는 오랑캐는 예의와 문화로 교화시키되 중원에 위치한 천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군대로 토벌하여 중화 문화권의 이데올로기를 받들도록 권했다.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내가 짱인데 날 받들지 않으면 토벌해버린다.'라는 뜻이다. 중원의 야심찬 군주들은 자신들의 정복욕을 고상한 중화의 철학을 빌려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야심이 먼저인지 중화사상 때문에 정복전쟁을 시행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중요한 사실은 중원 패권국의 팽창정책은 근본적으로 중화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놀랍게도 고구려에도 중원에서 유행했던 '중화사상'과 같은 관념이 존재했다. 바로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이다.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손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떠받드는 속주 국가들을 설정했다. 이러한 속주 국가들의 범위는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 가야가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말갈과 거란과 같은 여러 유목민들이 포함됐다. 즉 고구려는 중국의 제국이 추구했던 '중화사상'과 비슷한 '천하관'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고구려는 한반도 국가에 존재했었던 제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한반도에 제국은 고구려 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고구려 이전에 제국의 풍모를 갖춘 것은 백제였다. 근초고왕 시기 백제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왜와 가야를 포섭한 연합 세력을 구축하였다. 근초고왕은 이런 연합 제후국의 맹주였으며, 이러한 연합군을 통해 신라와 고구려를 견제했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만들어 놓은 백제 중심의 연합 시스템은 광개토태왕의 천하관에 의해 박살 나고, 백제와 신라 가야는 한동안 고구려의 통제를 받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광개토태왕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영토를 넓혔다는 것을 넘어 고구려가 주체가 되어 천하를 경영한다는 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이 클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고구려의 사상은 일제 치하의 민족주의 역사가들에게도 커다란 영감을 줬다.

  그러나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중화사상과는 다른 점이 존재했다.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중화사상과는 다르게, 자신의 영향을 벗어난 지역의 제국의 존재를 인정했다. 즉 내 주변국들 사이에서는 내가 실력자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역의 실력자는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중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사상은 이러한 다원적 제국의 존재를 부정했다. 천하는 유일한 중원의 천자의 것이다. 자신들 이외에 다른 제국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사소한 철학의 충돌은 결국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으로 표출됐다. 수나라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침공, 그리고 당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침공이다.

  연개소문은 당태종 이세민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이세민을 두 번이나 크게 이겼지만, 결국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사후 당나라에 멸망됐다. 그래서 전해오는 역사적 사료는 승자인 당나라의 기록이 대다수이기에 연개소문에 대해 매우 불리한 기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책은 그런 연개소문을 고찰한 역사서인데, 사실 연개소문에 집중한 평전이라기보다 고당 전쟁에 집중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반역 소식을 듣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결심했다. 당나라의 서쪽 토번을 정벌한 이세민은 기세를 몰아 수나라도 공략하지 못했던 동쪽의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역사서에서 그는 명군으로 칭송받는 군주지만,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사서에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남기기 위해 과도한 정복전쟁을 추구한 전쟁광이기도 하였다. 특히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중원의 정복군주는 중화사상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여겼는데, 그렇기에 이세민에게 있어 고구려는 평생의 숙원을 이룩하고 자신의 공업을 드높이는 데 있어 가장 안성맞춤의 먹잇감이었다. 게다가 고구려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자존감이 높은 국가이므로, 유일무이한 제국을 꿈꾸는 이세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의 높은 콧대가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서토를 개척했다는 자신감, 수나라도 정복하지 못했던 나라, 당나라가 주도하는 중화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자존심 높은 나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고구려의 정벌로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길이 남기려는 허망된 야망. 그렇기에 이세민에게 있어 고구려의 정벌은 연개소문의 정변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예견된 사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연개소문은 그런 당태종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외교적으로 신흥 강국 당의 눈치를 보는 영류왕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자주성, 고구려의 천하관을 고수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신흥 제국 당나라와 전통적인 동방의 제국 고구려는 그렇게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을 넘어 세계와 세계의 충돌이며, 사상과 사상의 충돌이었다. 그렇게 독자적인 두 세계관을 지닌 문명은 서로 격돌했다.

 1,2차 전쟁의 흐름은 당의 공격과 고구려의 수비로 전개됐다. 당은 압도적인 군대를 동원하여 1차는 육로 중심으로 2차는 해로 중심으로 침공했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적절한 전략으로 막았다. 전쟁의 최종 승자는 고구려였지만, 국력의 회복에 있어서는 고구려는 당나라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기에 물자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전쟁 이후 복구에 있어서도 고구려보다 당이 훨씬 유리했다. 이는 국력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였다. 게다가 당은 1,2차 전쟁 직후 고구려의 동맹이라 할 수 있는 거란과 백제 세력을 제압하여 고구려를 고립시켰다. 고구려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연개소문이 있을 때에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가 죽자, 내분으로 인해 와해됐고 결국 3차 나당전쟁 때 신라와 당군의 연합군에 멸망당했다. 

 연개소문의 평가는 시대를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 사대주의 관념으로 연개소문을 군주를 죽여 반란을 일으킨 것에 입각하여 혹평했지만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구한말 일제 치하에 민족주의 사학자인 신채호와 박은식은 연개소문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하고, 그런 그의 기상을 본받아 독립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연개소문의 평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극과 극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의 고대 영웅의 평가는 대체로 극과 극으로 치닫는데 연개소문 역시도 그렇다.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는 연개소문의 본모습을 알아가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인물에 대해 극단적인 견해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무리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를 과장,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박은식과 신채호도 연개소문의 자주성을 과도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무리하게 왜곡했다. 민족자존을 우선시하기 위해서 연개소문의 해석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였고, 이러한 의미 부여는 오늘날 냉정하게 평가해볼 때 왜곡의 단초로 볼 수 있다. 고대의 영웅은 현전하는 사료가 부족하기에, 자의적인 견해를 곁들여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자의적 해석은 전하는 사료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연개소문의 장단점을 평해보자면, 일단 가장 큰 장점은 고구려의 천하관과 자존감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는 정권을 잡으면서 신생 대국 당나라의 중화사상으로부터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국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당나라의 대군을 막아서 승리했다는 것 역시 큰 의의가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연개소문의 이미지는 호탕함인데, 책에 나온 연개소문의 행적으로 봐서, 아마 실제적인 연개소문의 성격 역시도 호탕하고 대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그는 개인적 카리스마가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런 카리스마를 통하여 고구려의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지도력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점을 꼽아보자면 외교 능력, 그리고 첩보의 아쉬움, 후계자 선정, 전쟁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의 부재, 고구려의 행정 개혁의 필요성 등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꼽고 싶은 부분은 거시적인 관점이다. 1,2차 고당 전쟁의 승자는 분명 고구려지만, 사실 이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당은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고 패전했지만, 패전 이후에도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군사적인 모략을 계속해서 감행했다. 당은 외교적으로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고구려에 속한 이민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고구려의 우방인 백제를 단숨에 몰락시켜서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 물론 고구려는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졌기에, 국토 피해가 극심하여 복구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느라 외교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외교적인 대응은 아쉽다. 물론 고구려가 나름 거란의 지배권을 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중원의 여러 외곽 민족들에게 사신을 보내 당과의 전쟁을 독촉했다지만, 이미 당시의 흐름은 당이 주도하는 중화 이데올로기가 대세였기에 적극적이지 않은 고구려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당의 노력 때문에 전쟁에서는 이겼더라도, 시대의 대세는 고구려보단 당의 우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연개소문의 정권 초반에 신라의 김춘추가 백제를 견제해달라고 사신으로 왔을 때 강압적으로 나가고 백제와 동맹을 맺은 부분이다. 물론 연개소문의 계산에는 당시 백제가 신라보다 강하며, 무엇보다 백제는 왜국과 긴밀한 관계이기에 백제와 손을 잡으면 왜나라와 통할 수 있다는 이점을 고려하여 백제를 선택했겠지만, 차라리 백제와 신라 양국과 동맹을 맺어서, 남방에 싸움에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방관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신라가 당에 붙은 주요한 원인은 바로 고립이다. 동쪽의 왜, 서쪽의 백제 그리고 북쪽의 고구려로부터 고립된 신라는 어쩔 수 없이 대국인 당에게 빌붙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는 시종일관 신라와의 전쟁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과도한 자만감에 사로잡혀 결국 나당 연합군에 허무하게 멸망당했다. 만약 백제를 선택할 것이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백제와 함께 신라를 압박하여 멸망시켜서 후방을 안정화시켰다면 고당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백제의 몰락은 결국 고구려의 몰락과도 직결된다.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도 백제가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고구려가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백제는 순식간에 몰락했으니 말이다. 고구려는 백제 부흥을 위해 왜에 도움을 요청하고 군사를 파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는 것처럼 비친다. 애초에 백제와 신라 중 백제를 선택했으면 백제를 도와 신라를 멸하는데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게 아니면 백제와 신라 두 나라가 각자 싸우도록 하고 고구려는 방관자의 입장으로 주시하되 주전력은 북쪽 당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백제는 신라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였기에 양국은 원수지간으로 돌변한 상황이니,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할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첩보가 뛰어난 국가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연개소문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바로 뛰어난 첩보 덕분이고, 당은 이런 고구려의 첩보를 의식해서 비밀 군령을 암호로 전달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첩보는 한계를 가지기도 했는데, 1차 나당전쟁 이후 연개소문은 요동과 요하 지역의 성곽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는 2차 나당전쟁 때 대규모 선박을 통하여 해상 상륙작전으로 평양 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고구려 첩자들은 파악하지 못했다. 더불어 당과 신라가 공통으로 백제를 멸하려는 계획을 고구려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고구려의 가장 직접적인 몰락의 원인은 바로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 다툼이다. 연개소문과 달리 그 아들들은 연개소문과 같이 비범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며 서로 반목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를 예견하지 않고 아들들에게 권력을 배분했고, 이러한 조치는 권력 독점을 위한 내전의 원인이 됐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능력 없는 아들들을 요직에 올린 연개소문의 인사 정책에서 비롯했다. 행정 정비의 개혁도 아쉬운 부분이다. 고구려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당과 대응한 연개소문은 군사적인 부분에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이에 반해 신생 제국인 당나라는 제도적인 체제 개혁과 내정 정비를 통해 정치 제도를 정비했다. 고구려의 행정 시스템은 신생국 당나라의 행정 시스템에 비해 역동적이지 않으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도였다. 연개소문은 이런 근본적인 시스템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군사적인 침공에만 집중했으니, 이 역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쓰고 나니 연개소문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것 같지만, 그가 지키려고 했던 고구려의 자존감은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고구려의 몰락은 허무하지 않았다. 물론 연개소문의 후계자들의 정쟁으로 무너졌지만 무너지는 순간에도 제국의 풍모를 고수했다. 백제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지도 않았고, 신라처럼 줏대 없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고구려는 무너지더라도 고구려답게, 자존감 있게 무너졌다. 이는 연개소문의 분투 때문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제국 고구려의 자존을 마지막으로 불태운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영류왕을 시해하지 않고 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의 인식에 자랑스러운 고구려가 없을지도 모른다. 영류왕이 추구했던 고구려는 고구려만의 천하관을 강조한 제국이 아니라, 당의 세계에 타협하는 제후국이었으니까. 그렇게 역사가 흘러갔다면, 어쩌면 우리가 당에 붙은 신라를 두고두고 비판하는 것처럼 고구려 역시도 그런 비판의 도마에 올랐을 지도 모르겠다. 여러 한계와 비판의 요소가 있지만 어쨌든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자존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지적한 단점들을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차보인다. 그래서 그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이뤄져서 고독한 색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연개소문의 삶과 고구려의 몰락을 읽으며 느낀 점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주장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국력에 있었다. 당나라의 팽창 중화주의에 연개소문이 맞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이 있었지만, 이런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힘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의 결과였다. 이런 고구려의 입장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한 신라와 크게 비교된다. 신라는 스스로 저자세를 취하여 당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의 중화주의 세계관에 편입하여 국가의 실리를 챙겨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신라의 통일을 비난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오늘날 21세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보다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질적 이득 앞에서는 나의 자존을 한 수 접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인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런 오늘날 고구려의 자존감 있는 몰락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자존감보다 순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한 위치에 있고,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욕보다는 그보다 한층 더 나아간 가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사익을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신라는 스스로 중심이 되어 제후국을 거느리거나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와 의식 자체가 달랐다. 스스로를 제국으로 인식했고, 그렇기에 으스러지는 순간까지도 제국의 풍모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고구려는 신라보다 스스로 대국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대국이니까 대국의 걸맞게 자존감을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후손인 우리는 고구려를 우리 역사의 자존심으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라와 고구려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일반 소시민이 아닌 좀 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더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의 사적 이익보다는 더 큰 가치, 그리고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대의를 추구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이러한 삶을 사회지도층에게 무조건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자발적인 인식을 통하여 행하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인생에 있어 자유로울 권리고 있고, 사회지도층이라고 해서 밑의 계층들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이 있어야 한단 시각 자체도 나는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고구려의 멸망, 그리고 연개소문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가치를 통해 읽은 교훈의 핵심이다. 그 외에 독자적인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다. 구시대 체제를 고수하던 고구려의 행정은 고구려의 자존을 지키기에 너무나도 뒤떨어졌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이지만, 편집이 조금 조잡해 보이기도 했다. 전문적인 내용은 챕터의 뒤나 책의 말미에 배치하여서 본문 가독성을 높이려고 한 것 같은데, 내 개인적으로는 너무 산만했다. 그냥 서사적 흐름에 따라 전문적인 내용도 편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문 내용은 잘 읽히는 편이었으며, 사료에 대한 비판이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일본서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해석한 부분이 신선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서기》를 왜나라 시각으로 집필한 사서라 폄하하는데, 물론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내용이 많고 왜곡도 많지만 그러한 왜곡의 바탕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사를 해석할 때 주교재로 참고해야 할 도서라고 생각한다. 연개소문 집권 당시 고구려는 왜와 굉장히 긴밀한 관계였고 우방이었으므로, 적국인 중국 측 사료보다 《일본서기》에 나온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대사 기록은 미비하기 짝이 없고 기껏해야 《삼국사기》가 독보적인 사서로 권위를 인정받는데, 이런 《삼국사기》 역시 신라 중심적, 그리고 사대주의적 사고, 중국 측 사료를 무비판적으로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역시 자의적인 해석과 왜곡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다. 모든 역사란 기록은 기본적으로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특히 고대의 관찬 사료는 자국이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왜곡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중국의 명저인 《사기》와 《자치통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본서기》 역시도 한계가 있지만 우리의 고대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검토해야 할 주요 텍스트로 여겨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고대사를 고찰하려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넘어 왜나라의 활동까지도 검토해야지 한반도의 고대사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앙숙의 관계지만, 그런 것을 떠나 한일 고대사는 서로 너무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양국의 고대사를 명확하게 파악하려면 두 나라의 역사를 면밀하게 비교 분석해야만 한다. 왜는 백제나 가야에 의해 굵직한 사건 때마다  한반도에 파견됐고 활동했던 세력이다. 괜히 《일본서기》에 섬나라 역사 이외에 옆 나라 반도의 동태를 기록했겠는가. 아무튼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은 중국의 사료와 우리 측 사료 그리고 일본의 《일본서기》까지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해석하고 있는데, 전하는 사료가 워낙 소략하여 사료 간의 공백에 있어 저자의 주관성 깊이 들어있기에, 사람에 따라 저자의 해석에 딴죽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저자는 전해지는 사료를 해석 함에 있어 나름의 합리적인 면을 확보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아무튼 신화와 극단적 편견으로 가득한 연개소문의 역사적 모습을 책을 통해 탐구할 수 있었다는데 이번 독서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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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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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간

  기다리고 기대했던 시간이 지나고 책이 배송됐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거기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르라서 더더욱 기대가 컸다. 배송되자마자 마치 금방 배달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치킨의 닭다리를 뜯는 기분으로 따끈한 새 책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신메뉴 치킨은 쫄깃했고 맛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듯 유시민은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데, 특히 역사 분야를 좋아했다. 그가 쓴 역사 관련 책만 하더라도 이번 책을 포함하여 4권이나 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젊은 시절 유시민이 썼던 세계사인데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는 굳이 따지자면 유시민만의 역사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인 《나의 한국현대사》는 유시민의 시각으로 해석한 한국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신간 《역사의 역사》는 역사 고전을 유시민의 시각으로 정리한 역사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독자는 이번 신간이 과거에 출간한 책 (아마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를 꼽는 듯하다.)을 개정증보한 책일 것이라고 의견을 남겼지만, 두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물론 중복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두 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내용은 전혀 달랐다. 하나는 역사이론을 다루고 있고, 하나는 역사 고전을 탐구하고 있으니. 


2. 표지 논란

 예판 구매를 했을 때, 놀란 것이 바로 표지였다. 처음에 나는 아직 표지가 정해지지 않아서, 출판사 측에서 임시로 올려놓은 이미지겠거니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다. 가끔 책이 언제 배송되나 서점 사이트들을 둘러보니 몇몇 인터넷 서점과 커뮤니티에서 표지를 두고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내더라. 나도 그랬다. '에이 설마, 요즘같이 리커버 북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인데, 그만큼 표지가 중요한 시대인데 이대로 표지를 낼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이렇게 표지를 내고 리커버 북을 판매하려는 상술인가?'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책을 주문했는지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무렵, 택배 배송이 됐고 신나서 봉지를 뜯자 정말로 예판 구매에서 봤던 그 표지가 덩그러니 있었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표지가 어색하진 않았다. 물론 이는 내 기준이지만. 와이프는 책의 표지를 보자 '표지 되게 예쁘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표지임에는 틀림없다.

 계속 보다 보니 나도 이질적인 표지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권의 역사책이 펴져 있는 콘셉트는 이해하겠지만 앞면 책의 타이틀 '역사와 역사'를 노란 글씨로 심플하게 쓴 것은 너무 간소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제목이면 좀 더 포인트를 줘도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이 강렬하기 때문에 타이틀은 비교적 간소화하여 표현한 것 같다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표지보다, 표지 재질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베개에서 나오는 유시민 작가의 책표지 재질은 손상되기 쉬운 재질을 사용하여서, 조금만 책을 들고 다니거나 읽다 보면, 쉽게 마모되고 스크래치도 많이 남는다. 이는 《나의 한국현대사》와 《국가는 무엇인가》도 비슷하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깔끔하게 보관하는 편인데, 앞서 열거한 돌베개의 유시민 책들은 깔끔하게 보관하려고 해도 재질 때문에 깔끔할 수가 없다. 아무리 깔끔하게 읽으려고 해도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마모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으니 굉장히 아쉽다. 그렇다고 결벽 떠는 수험생이나 중고딩처럼 책에다가 비닐 커버를 씌울 수도 없고.


3. 전문 지식소매상과 함께 떠나는 역사 패키지여행

 논란이 많은 표지를 넘기고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어나갔다. 책은 인류사에 있어 위대한 역사 고전을 다루고 있었고, 역사 고전을 유시민이라는 안내자가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었다. 저자는 시작에 앞서 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단어들의 뜻을 명료하게 밝힌 뒤, 역사 고전 여행을 시작했다. 어떤 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이 사용할 주요 용어들을 정의한다는 것은 철학이나 학술적인 글에서는 필수적이다. 물론 이 책은 학술적 성격이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대중서라 하더라도 용어 정의는 확실하게 하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중언하고 부언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쓸데없이 책의 부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생각 외로 실망스러웠다. 너무나도 내용이 평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휴일 집중하고 다시 읽으니 초독 때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의 글은 명료하고 깔끔했으며 군더더기가 없다. 이는 이전 글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책에서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신간은 잘 정리된 교과서와 같았다. 이렇다 보니 신간은 전작에 비해 강렬하고 날선 문장력은 비교적 보이지 않았지만, 반대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문장들이 주를 이뤘다. 사실 이는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 고전을 탐구한 글이므로, 날카롭고 공격적인 문장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편안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독자와 함께 역사 고전을 알아가고 탐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 같다는 말의 장단점은 바로 '평이함'이다. 단점으로 바라볼 때에는 특출난 것이 없다는 뜻이 되지만 장점으로 바라볼 때는 안정감이 있고, 표준적인 모범을 가진다는 뜻도 된다.

  유시민은 신간을 두고 역사 고전 패키지여행이라고 칭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식소매상이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주도하여 떠나는 패키지여행이니 얼마나 설레겠는가. 나도 그랬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역사 고전을 80% 이상 완독하였기에, 그는 나와 같은 책을 읽고서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했다. 여행을 갈 때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누구와 가는지, 언제 가는지에 어떻게 가는지에 따라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여행러들에게 패키지여행은 독처럼 여겨지지만, 때로는 패키지여행이 유용할 수도 있다. 패키지여행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행 도중 쓸데없이 쇼핑을 권한다거나, 일정을 맘대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은 전적으로 현지 가이드의 재량에 달려있다. 즉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현지 가이드가 개념 충만하다면 그 패키지여행은 오히려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어본 바, 유시민은 괜찮은 가이드다. 역사 고전을 편파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역사서가 가지는 장단점을 나름 심도 있게 분석했다. 물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지만, 전반적인 책의 어조는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강요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이라고 말하듯, 책을 읽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최종적으로 독자에게 남긴다. 이런 그의 필법은 독선적인 느낌을 주기보다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런 문장의 안정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과거에 유시민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날선 필법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에 탈고한 그의 글은 안정감은 없었지만 매우 집요하고 날카로우면서 날이 선 문장이 많았다. 그의 글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글의 번뜩이는 날카로움에 매료됐었다. 세월이 흘러, 정치에서 단맛 쓴맛을 다 맛본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식소매상으로 그는 돌아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유인의 글은 날 선 청년의 글과는 전혀 달랐다. 자유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매우 이질적이라 적응되지 않았었는데, 계속해서 접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자유인의 글이 예전의 스타일보다 더 편하고 좋았다. 예전 그의 글에는 없었던 안정감이 느껴졌고, 나 역시도 그의 안정감 있고 여유 있는 글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평이한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나를 고요하게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주제를 논하고 있는 저자의 글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4. 전문역사가 vs 지식소매상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유시민이 박학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역사에 대해 전문성은 떨어지지 않느냐. 열거된 고전을 설명하려면 그 분야에 전공한 전문역사가가 해설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정통한 전문가가 안내하는 여행은 더 깊은 지식을 습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사회에 만연한 인문학 학습의 통념을 언급해보자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인문학을 배울 때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을 일반적인 관례로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인문학이 과연 전문가의 통찰과 주류의 해석으로만 설명되는 학문인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공자의 철학을 배울 때에는 그 분야에 전공한 사람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읽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서구의 최초의 철학으로 여겨지는 소크라테스는 고상하고 전문적인 지식인층의 가르침을 수용하기보다, 포럼 즉 광장에서 떠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비를 털며 '거리의 철학'을 실천했다. 소크라테스가 살아있다면 자신의 철학을 '굳이' 전문가들에게서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 사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내 생각으로는 아마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사고로 자신의 철학을 생각하라고 권장했을 것 같다. 물론 선현들의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고, 이러한 연구가 쌓이는 것이 지적 사회로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우리나라 인문학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폄하할 의도도 없다. 다만 철학이나 고전의 탐구가 전적으로 전문가들의 연구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인문학 텍스트를 읽다 보면 때론 전문가의 견해와 상반되는 시각으로 독해할 수도 있고, 어쩌면 이런 아마추어적 견해가 학문 해석의 다양성에 불을 놓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비전공자이지만 박식한 지식소매상인 유시민의 생각도 이러한 예에 속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인문학에 있어서의 전문성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다. 전문가의 해석과 유시민의 해석은 나의 주관을 보조하는 보조배터리이지 이것이 메인이 되면 안 된다. 물론 책에서 다루는 역사 고전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다면, 잠시나마 유시민이나 전문가의 해석을 빌려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종착지에 가서는 텍스트를 스스로 판단하고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는 역사나 고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텍스트 읽기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유시민의 글과 필법이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본 역사 고전에 대한 시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관점으로 독해했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색다른 생각으로 텍스트를 바라봤을까? 그런 기대감을 나에게 심어준 저자였기에, 나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책을 구매했다. 아마 이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세 부류가 아닐까. 첫 번째로 그냥 유시민이기에. 두 번째로 역사 고전을 읽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 나서 친절한 가이드로 선택한 경우. 세 번째로 내가 읽었던 책을 유시민은 어떻게 독해했을까 확인하는 경우.  


5. 역사에 대하여

  그의 가이드를 따라 익숙한 역사 고전을 훑고 난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각 시대의 역사는 나름의 공과가 존재하고, 완벽한 역사는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 역사에 기라성 같은 고전들을 마주하는데, 그토록 위대한 역사서도 나름의 장단점이 반드시 있었다. '일어난 사건들'이 주관적인 인간의 관념으로 환원하여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다. 주관의 개입이 필수적이기에 역사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문학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다르게 명확한 해답이 없다. 해답이 없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간의 주관적 개입을 제외하고서라도 오류가 생길 부분은 많다. 시대적인 한계와, 그 시대를 지배하는 관념과 종교적 시각도 역사 기록에 있어서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 누군가는 이런 오류투성이의 역사를 굳이 읽을 필요가 없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판단한 내 최종 대답은 "그렇다."이다. 읽을 가치가 있다. 괜히 역사 고전이 살아남았겠는가.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고전의 내용은 여전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엇이 담겨있다. 또한 내용을 넘어, 왜 그런 오류의 역사서가 탄생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도 탐구하다 보면 배울 점이 많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오류투성이고 빗나갔다 하더라도, 그가 왜 오류투성이의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는지 알다 보면 오늘날 문제 되는 갑질 횡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틀렸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바르지 못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보면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틀리든 옳든 개선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값진 것이다. 이러한 값진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에 역사는 읽을 가치가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서사의 힘'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책은 이런 값진 교훈이 가득한 역사 고전들을 독자들이 먹기 좋게 잘게 씹어서 안내하고 있다. 다만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느끼려면 이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언급된 고전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만으로도 서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겠지만, 서사의 필하모니를 더욱 생동감 있게 느끼려면 요약, 해설본으로는 한계가 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무리 퀄리티가 좋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유여행의 깊이를 따라갈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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