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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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에서 나오는 영웅들은 숱한 변화를 경험한다. 커다란 성공, 그리고 커다란 실패를 거듭하며 그들의 환경과 그들의 내면은 시시각각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최고 영웅인 테미스토클레스는 커다란 성공 이후 권세와 탐욕에 눈이 멀어 결국 매국노로 타락했고, 카밀루스는 추방자에서 로마의 또다른 건국자로 추앙받았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정적과 그리스인들로부터 추방을 받았지만, 그의 고결한 품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으며, 그는 죽을 때까지 그러한 품성을 유지하며 살았다. 마르쿠스 카토는 극단적으로 인색하고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원정에 있어서도 성공했지만 결국 말년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늙은이로 전락했다. 키몬은 젊은 시절 방탕하고 호색했지만 전공을 쌓을수록 내면적으로 품성을 키워냈으며, 결국 온화한 미덕으로 칭송받았다. 반면 루쿨루스는 젊은 시절 잘 교육받고 원정에서도 나름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로마에 돌아와서는 사치와 방종의 삶을 보여준다.

 이렇듯 여섯 영웅들은 여러 가지 큰 사건들을 경험하며, 누군가는 고결한 품성을 지켜왔고, 누군가는 타락했다. 또한 누군가의 출생은 비천하고 교육도 보잘것없었지만 뛰어난 품성을 후천적으로 가꿔냈지만, 누군가는 좋은 출생과 교육을 받고도 말년에 이르러 방종하는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2권의 핵심적인 내용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변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변화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책은 심도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을 꿈꾸며, 능력 신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나온 영웅들은 하나같이 다들 능력은 뛰어난 인물들이다. 그러나 능력과는 별개로 그들의 평가는 하나같이 다 다르다. 결국 사람의 최종 평가는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능력일지 모르지만, 영웅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품성이다. 결국 여섯 영웅들도 능력이 아닌 그들의 내면적 품성으로 인해 각기 평가가 달라졌다. 결국 바람직한 품성은 좀 더 풍요롭고 좀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런 품성을 가꾸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하여 깊이 숙고할 줄 알아야만 한다.

 모든 사람은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것이야말로 최고라고 칭송하지만,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사람은 살면서 변화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며, 변화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삶에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변화를 추구해서도 안되고, 어떤 부분을 변화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변화해야 할 부분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내면적인 고민이 결여된 성공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부서진다. 여섯 영웅들의 화려하고 덧없는 성공에서 나는 이런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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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가 알려 주는 우리 아이 온전히 기르기 - 모랄리아 선집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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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우리 아이 온전히 기르기》인데, 원제는 《모랄리아 선집》이다. 따라서 리뷰에서 책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쓰도록 한다.

 

 

《모랄리아 선집》은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작을 정리한 수필집이다. 모랄리아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책은 도덕과 윤리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외에도 작가의 소소한 생각을 표현한 것도 있었다. 원전은 총 80여 편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는 육아와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5가지를 골라 번역했다. 번역된 내용의 제목은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강연을 잘 듣는 법>, <친구와 아첨꾼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화를 다스리는 법>, <운명에 대하여>로 각각의 편명은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들이다.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바뀌지 않는 보편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들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고대 로마 시절이나 오늘날이나 여전히 엄마 아빠들은 육아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공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사회에 나가서는 교우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삶을 살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생각하니까 말이다.

책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사실 조금 책을 읽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잔소리로 들릴 법 하다. 나 역시 신선한 내용을 기대하고 책을 열었지만, 뭐랄까 나쁘게 표현하자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다가왔다. 문체 자체는 단조로웠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 고전들을 인용하고, 그리스의 인물 사례에 비유하며 논지를 전개하기에 마냥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 인물들을 비교하는 열전으로, 서구 역사 고전의 명저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역사책을 저술한 저자여서 그런지, 확실히 그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모랄리아 선집》도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일삼는 내용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실천 중심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플루타르코스는 책에서 플라톤을 비롯한 형이상학적 철학가들의 가르침을 높이 사고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플라톤의 저서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는 분위기와 어조, 그리고 문체와 다루는 영역이 매우 상이하다.

 플라톤의 사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그리스 철학과 형이상학의 정점을 이룬다. 반면 플루타르코스의 사상은 그리스의 학풍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그의 사상은 그리스 사상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훨씬 실천을 강조하고 있었다. 플라톤의 언어와 비유는 매우 현학적이며, 그 특유의 언어유희와 중의적인 표현 덕분에 현대 학자들이 해석을 두고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플루타르코스의 문체는 그리스 고전과 문학, 인물들을 비유하며 표현하였지만, 플라톤에 비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글은 현학적인 부분이 있고, 또 숱한 비유가 있지만 그의 글은 플라톤보다 훨씬 친절했으며, 훨씬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나는 이런 차이가 바로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플라톤의 사색적인 부분,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은 그리스 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했다면, 플루타르코스의 행동 중심의 철학과 현실적인 철학은 실천 중심의 로마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 하면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식처럼 떠오르지만 로마 철학자 하면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책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키케로와 세네카를 꼽겠지만(애석해게도 플루타르코스는 철학자보단 역사가로 꼽아야 할 듯싶다.), 그들을 로마의 대표 철학자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포스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로마는 사색과 숙고가 아닌 행동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기에 대표적인 이론 철학자를 꼽기가 매우 애매해서 그렇지 않을까.

  《모랄리아 선집》은 국내에 완역된 책이 아니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총 3개가 있는데, 하나는 이 책이고 다른 두 책은 천병희의 역본과 허승일의 역본이 있다. 이 책은 영어 중역본이지만 천병희 번역본과 허승일 번역본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과 허승일 역본의 내용은 많은 부분이 겹친다. 허승일의 역본도 이 책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철학에 집중했는데, 자식 교육, 철학 강의 듣는 법, 그리고 아첨꾼과 친구의 구별은 이 책의 내용과 완전 일치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그 외 시를 듣는 법, 덕을 갖추는 법에 관하여 등은 이 책의 내용과 중첩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허승일 역본의 큰 단점은 바로 가격이다 정가가 43000원인데... 완역도 아닌데 이렇게 비싸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선뜻 구매하기 힘든 가격이다. 한편 천병희의 역본은 적당한 가격에 이 책의 내용과도 크게 중첩되는 부분은 없다. 이 책과 중첩되는 부분은 분노에 관하여 밖에 없고 나머지는 수다에 관하여, 아내에게 주는 글, 동물의 이성에 관하여, 소크라테스 수호신, 결혼에 관한 조언 등등이 있다. 따라서 《모랄리아 선집》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라면 현재로서는 이 번역본과 천병희 번역본 두 개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완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분명 책은 오늘날 현대인이 보기에는 뻔하고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은 기원후 50년 ~ 120년 사이에 저술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책이라면 분명 오늘날에도 의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의 주장이야말로, 인류를 만성적으로 괴롭혔던 아이 키우기, 공부하는 방법, 교우 관계, 분노 조절에 관한 모범 정답과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자,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따위가 2000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아마 전해지는 과정에 폐기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은 식상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살아남은 고전이다. 그렇기에,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꽤나 의미 있는 조언들을 많이 해준다. 비단 아이를 키우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가장 와닿았던 것이 바로 플루타르코스의 중용사상이다. 책을 잘 읽어보면 플루타르코스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바람직한 일이더라도 과하면 결국 해가 된다는 생각을 책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사상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완역한 책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인 윤리관을 볼 수 있는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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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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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전을 읽을 때 가장 대표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신화와 종교, 두 번째가 사랑, 세 번째가 바로 영웅이다. 특히 영웅에 대한 흠모는 서구 고전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최초의 서시시인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영웅담이라 봐도 무방하고 《아이네이스》는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의 조상을 노래한 영웅 서사시다. 그리스와 로마의 시작은 이렇듯 영웅담으로부터 시작됐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은 이런 영웅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토록 흠모했던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의 전쟁사는 '영웅'들의 전쟁으로 일컫는다. 반면 동양의 전쟁은 영웅의 전쟁이 아닌 전략과 전술 그리고 속임수의 전쟁이었다. 고대 동양에서는 전란을 통해 전쟁 철학이 발전했고, 병법 학파가 체계적으로 수립됐다. 그렇기에 동양에서는 장수가 함부로 전장에 나서지 않고 중군에 머물며 작전을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양의 지휘관처럼 최전선에서 영웅처럼 싸우는 것은 그저 하급 군관이나 선봉장의 역할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동양과 서양은 전쟁 영웅에 대한 관점이 철저하게 상이하다.

 동양의 역사는 군주를 중심으로 기록됐다. 모든 기록의 앞부분은 군주의 열전으로 시작됐다. 반면 서양의 역사는 민중으로부터 인정받은 영웅들을 중심으로 기록됐다. 서구권 사회는 동양과 달리 군주정을 매우 비판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로마의 제정 시대 사람이지만, 그는 당대의 로마 제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과거의 지식인들은 현재의 모순을 발견할 때 과거의 찬란함으로부터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랬기에 중국의 역대 왕조와 우리나라의 왕조들은 아득한 중국의 왕조인 하나라와 은나라 주나라에서 이상적인 왕조의 모습을 찾았다. 플루타르코스도 그랬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정신에서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런 플루타르코스의 해답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토록 열망하는 민중으로부터의 권력, 즉 공화주의 정신을 우회적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1권에서 나온 인물들을 읽을 때 가장 와닿는 것이 바로 '자유의 열망'이다. 민중에게 권력이 커지고 민의가 발달할수록 사회가 발전한다는 그의 생각은 작품 안에 교묘하게 숨어 있다. 그는 과거의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 절대왕정으로 나아가는 현재 로마의 모습과 그저 권력자의 신민으로 추락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리비우스 로마사》를 서술한 리비우스의 모습과 흡사하다. 리비우스도 《리비우스 로마사》를 통해 제정으로 나아가는 로마의 모습을 비판한 역사가였다. 이렇듯 서구 사회에서는 시민을 중심으로 한 민권 의식이 고대부터 요동을 치고 있었고, 이런 뿌리가 있었기에 시민혁명과 노예 혁명이 서구에서 비롯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민들의 민의를 드높이는 것과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영웅주의적 시각은 어찌 보면 모순적일 수 있겠다. 내가 동서양의 역사서나 고전을 뒤적였어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손이 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웅에 집중하는 그 시각이 매우 거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생각이 어쩌면 편견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책은 확실히 영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 영웅들은 동화책에서 나오는 영웅들처럼 무조건 성공하고 이기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때로는 좌절당하고 배신당하고, 탐욕에 사로잡히고, 실수도 하는 등,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행동들을 그들 역시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나의 과오와 지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랬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플루타르코스는 작품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도 우리랑 같았습니다. 그들을 특별하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신분상 특별한 위치에서 태어난 점은 있겠지만 그들도 실수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인물들은 아니었지요. 어쩌면 영웅과 일반인의 기준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 참느냐 못 참느냐, 이겨내느냐 못 이겨내느냐, 그래서 어쩌면 일반인인 우리도 내면적으로 조금만 노력하면 영웅들이 자질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웅이 됩시다. 그렇게 하여 영웅적인 시민들이 뭉쳐서, 시민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공화정으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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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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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봤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온라인 이웃님 중 한 분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대충 얼마부리고, 언젠가는 《산성일기》의 서평을 통해 '남한산성' 영화에 대해서 내 의견을 피력하려고 했었는데 뒤늦게나마 이 서평으로 이웃님의 물음에 답하게 됐다.

사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봤을 때 명분의 척화파와 실리의 주화파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대부분 실리의 주화파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기에 명분론만 앞세운 척화파의 주장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당대의 시대만 하더라도 주화파보단 척화파가 대세였고, 그러한 관념이 조선이라는 대륙을 잡아먹고 있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실용주의적인 사람들도 조선 중기에 태어났다면 대부분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척화를 외쳤을 것이다.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이념과 사상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는 고루하고 따분하게, 이해가지 않는 이념이더라도, 과거에는 그러한 이념이 사회를 구축하는데 주요한 요소였을 수도 있다. 주화와 척화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도 시대에 보편적으로 통변 되는 이념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쉽사리 오늘날의 관점으로 당대의 모습을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후대인의 역사적 오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적 관념을 고려하여 척화파를 이해하려고 해도, 사실 조선 중기를 지배하고 있던 성리학적 사상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명분과 이념을 앞세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척화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군사 훈련을 비롯하여, 국경 수비 등등에 자신이 있어야지 내세울 수 있다. 정묘년에 청나라의 군대 앞에서 호되게 당해놓고도 인조와 서인 조정은 반성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만 전쟁을 떠들었다. 그 결과 남한산성에 몰려서 50여 일간 근근이 버티다 항복하게 된 것이다.

청나라 태종의 조서가 와닿는다 '너희 나라는 선비의 나라라고 자청하는데, 그럼 너네는 붓으로 우리의 대군을 막을쏘냐?'라고 일갈하는데, 조선의 사정을 정말 꿰고 있는 말이었다. 같은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 초기에는 이렇게 문약하지 않았다. 조선 초기에는 성리학이 국가의 이념이었지만, 성리학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았다. 성리학을 주로 삼되 적절하게 탄력적으로 융통성 있게 적용하고, 성리학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연구와 접근을 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 국방력도 탄탄하게 정비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조선 중기에 이르자 성리학을 수용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현실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그저 맹목적이고 교조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국방은 문약한 문치주의로 인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그저 이념만을 공허하게 외치는 선비들이 대세를 이뤘다. 이렇게 실력도 없는 주제에 잘난 척에 큰소리만 뻥뻥 쳐대고 있으니, 힘 있는 강국 입장에서는 이를 빌미로 당연히 쳐들어오지 않겠는가.

냉혹한 국제사회 앞에서 우리는 늘 명분으로만 맞섰다. 임진 - 정유년에도 그랬고, 정묘 - 병자년에도 그랬고, 조선 말기 개화를 앞두고도 이러한 자세를 고집했다. 너무나도 순진하게도 실력도 없이 그저 명분만을 앞세우며 의견을 주장했다. 패권이 왔다 갔다 하는 국제사회에서 명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자강할 수 없는 나라는 명분도, 실리도 찾을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은 병자호란을 주화파와 척화파의 입장을 빌려 명분과 실리의 싸움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 이전에 국력이 없고 국난을 대비하지 못했던 못난 조선의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만화의 근원이다. 명분도 좋고 실리도 좋다. 다만 선택한 명분과 실력을 취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나서 고민할 문제다. 결국 남한산성의 치욕적인 항쟁은 조선의 나약함과 안일함에 대한 결과일 뿐이고, 명분도 실리도 취하지 못한 그저 무능한 패배일 뿐이다.

청나라의 침공은 우리에게 '호란'으로 불려왔다. 임진년의 일본과의 전쟁을 두고 왜란이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호란'과 '왜란'이라는 명칭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왜란과 호란. 언뜻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내가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난이라는 글자다. 동양에서 亂 자가 붙은 사건은 대체적으로 상급자에게 하급자가 어지러움을 선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숱한 반란 앞에 亂 자를 붙여서 명칭 했다. 왜란과 호란 역시 마찬가지다. 왜란이라는 글자를 해석해보면 '왜나라 오랑캐가 난리를 피운 사건.'이라는 뜻이고 호란은 '북쪽의 오랑캐가 난리를 피운 사건.'이라는 뜻이다. 과연 왜란과 호란이 그저 난리일 뿐이란 말인가? 당시 일본과 청보다 우리가 지위적으로 앞서있기에 두 전쟁을 亂이라고 칭하는 건가?

왜란과 호란은 국가와 국가 간의 전면전이었다. 그렇기에 명칭 역시도 임진전쟁, 정유전쟁, 정묘전쟁, 병자전쟁이라고 칭해야 옳다. 그러나 당대의 자존심이 강한 사대부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렇기에 亂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정신 승리'를 시전했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그럼 우리 정부와 정규군은 그저 하급자에 불과한 일본과 북방 민족의 난리조차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것인데, 참 웃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국권을 침탈당한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이라고 배웠다. 마찬가지로 임진 - 정유년의 전쟁과 정묘 - 병자년의 전쟁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혼란을 야기한 亂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당시 우리는 일본과 청나라보다 월등한 국력을 가지지도 않았으면서, 중화사상이라는 명분에 의거하여 우리가 그들보다 위라고 생각했다. 두 전쟁을 亂으로 표기하고 亂으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亂을 제압하지 못해 빌빌대고 항복했던 조선의 수준만 떨어트릴 뿐이다. 바른 역사교육이란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자국의 역사에도 유효하다. 치욕의 역사라고 해서 이를 축소하기 위해 亂이라고 표현한다면 이것 역시도 역사왜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사용자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렇듯 왜란과 호란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당대 조선 사대부들의 명분에 입각한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산성일기》는 비록 명분론에 입각하여 저술된 기록이지만, 글을 통해 오락가락하는 대책 없는 조선 정부의 모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만약 책의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과 한명기 교수의 《병자호란》 등등을 곁들여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남한산성에 가서 지나간 역사를 복기하고 싶다. 완연한 봄날 따스한 햇살 아래에 펼쳐진 장대한 성곽이 보고 싶다. 조만간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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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 소작품집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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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의 대표작 《키로파에디아》를 읽은 뒤, 그의 사상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마침 《키로파에디아》를 번역하여 출판한 곳에서 《크세노폰 소작품집》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알게 됐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은 크세노폰의 저작들 중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경제학적인 소작품들을 묶어서 번역한 책으로 책 안에 포함된 작품은 《히에론》, 《아게실라오스》, 《라케다이몬의 국제》, 《수단과 방법》, 《기병대 사령관》, 《기마술》, 《사냥술》, 《아테네의 국제》 등으로, 총 8개다. 이 8개의 단편들은 매우 짧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명료하게 서술되어서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우선 정치적 색깔을 지닌 작품은 《히에론》, 《아게실라오스》, 《라케다이몬의 국제》, 《아테네의 국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크세노폰은 자신의 정치사상을 사회 구조적인 측면, 그리고 지도자의 뛰어난 개인적 역량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저작은 《라케다이몬의 국제》와 《아테네의 국제》다. 《라케다이몬의 국제》는 스파르타의 정치제도를 고찰한 책으로, 주요 내용은 스파르타의 현자 리쿠르고스의 극단적인 공리주의 법제 시스템을 찬양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국제》는 위작으로 분류되는 저작인데, 주요 논지는 아테네의 민주정을 비판하고 있으며, 과두정을 최선의 정치제도로 꼽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의 포퓰리즘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데, 논지 전개 과정에서 다소 서투른 모습이 보였지만 오늘날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꼬집는 느낌이었다. 크세노폰은 법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키로파에디아》와 《라케다이몬의 국제》에서 적극적으로 피력하는데, 그는 법률상 평등주의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테네의 소작품집》에서는 귀족 우위적인 관념을 표하고 있어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정치사상을 개인적 관점으로 고찰한 저작은 《히에론》과 《아게실라오스》다. 두 작품은 모두 실존하는 인물을 내세워 쓴 기록인데, 《히에론》은 플라톤의 대화편과 비슷한 구성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한 담화록이었으며, 《아게실라오스》는 크세노폰이 주군으로 모셨던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의 행적과 위업을 고찰한 기록이다. 《히에론》의 초반부는 지도자의 왕관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후반부는 옳은 지도자의 덕목들을 열거하고 있다. 《아게실라오스》는 스파르타의 제2의 중흥기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던 아게실라오스를 칭송하고 있는 저작으로, 역시 아게실라오스의 칭찬을 빌미로,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논하고 있었다. 《히에론》과 《아게실라오스》는 크세노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키로파에디아》를 읽을 때 두 작품을 참고 자료로 읽는다면 매우 유용할 것 같다.

 크세노폰은 그리스 최초의 경제학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는 경제학 저서를 두 권이나 남겼는데, 하나는 《경영론》이며 하나는 《수단과 방법》이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경제학 저서는 《수단과 방법》 뿐이다. 《경영론》은 농지 경영에 대한 이론을 정리한 책으로, 작중 등장인물에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이 소크라테스가 나오는 점이 흥미롭다. 《수단과 방법》은 크세노폰이 죽기 전에 쓴 작품으로, 작품의 내용은 조국인 아테네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서 강구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기원전에 기록된 내용 치고는 굉장히 놀라운데, 국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 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하는데 이 부분은 오늘날 해외투자를 떠올릴 수 있으며, 공노비를 활용하여 은광 사업을 대대적으로 유치하자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그뿐 아니라 원정이나 전쟁에 시민들의 투자를 받아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투자한 시민들에게 나눠주자는 부분은 마치 국가가 주도하는 주식사업을 떠올린다. 사실 《수단과 방법》은 경제학 저서로 분류할 수 있지만 크게 보자면 정치학의 구조적인 측면을 다룬 저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크세노폰은 군인 출신이었고, 그 역시 당대의 우수한 기마대 사령관을 역임했으므로, 군사 저작도 남겼는데,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책은 《기병대 사령관》, 《기마술》, 《사냥술》이 있다. 《기병대 사령관》은 기병을 이끄는 장교들을 대상으로 쓴 책으로, 그는 여기서 기마병의 포진과 병사들의 관리 등등을 고찰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사령관이 갖춰야 할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반면 《기마술》은 일반 기병 사병들을 대상으로 쓴 책으로, 말을 잘 선별하고 관리하는 방법과 다루는 방법, 기병으로 무장하는 방법 등등 세세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었다. 《사냥술》은 사냥의 방법을 자세하게 서술했으며, 궁극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사냥을 권면하여 상무정신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을 읽으며 가장 다가왔던 점은 확실히 저자 크세노폰은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저술한 철학자였다는 점이다. 이는 라이벌이라 불리는 플라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두드러진다. 플라톤의 저작이 사색적이고 관념적이며 이상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저술됐다면 크세노폰의 저작은 관념적이기보다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학, 경제학, 군사학, 역사학 등등 그가 집중적으로 고찰한 부분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복무했던 군사 경험을 토대로 병법서를 저술하였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군사 저작을 읽어보면 그가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확실히 그의 글은 매우 담백하고 간결했다.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문장 자체도 투박한 부분이 많았다. 이는 라이벌인 플라톤의 저작과 매우 대조적이다. 플라톤의 저작은 매우 현학적이며 고도의 수사법으로 기록된 문헌이다. 따라서 짧은 저작이더라도 텍스트 자체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크세노폰의 글은 담박하고 투박하며,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저자의 논지가 명확하며, 문장의 구조도 꽤 단순하고 명료한 편이라서 글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플라톤은 자신의 저작 속에 자신의 의도를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겨놓고 아리송하게 흐려놨지만 크세노폰의 글은 말미에 교훈적인 내용으로 대부분 끝맺는다.

 

이런 투박한 크세노폰의 글이지만, 의외로 글을 읽다 보면 그가 꼼꼼하고 세심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마술》과 《사냥술》같은 저작에서 그는 말을 고르는 방법, 관리하는 방법, 사냥개를 관리하는 방법, 토끼를 사냥하는 방법 등, 당대의 지적인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가지고 싶지 않은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사냥술》을 읽으며 굳이 토끼를 잡는 비법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꼼꼼함과 세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그리스 사회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바로 극단적인 공리주의 사상이다. 크세노폰은 국가의 발전과 집단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크세노폰의 사상은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매우 극단적으로 보인다. 물론 개인의 자유는 사회 집단의 공리를 위해 어느 정도는 제한해야 마땅하지만 과연 크세노폰이 주장하는 대로 극단적인 평등과 집단을 위해 극단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은 고대 의 정치에서 집단의 공리성을 극단적으로 내세운 국가들이 대부분 위업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키루스의 페르시아, 중국 진시황의 진나라, 그리고 한국에서도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사회 제도를 일원화하면서 고대 국가들이 발전했다. 다만 이러한 사상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오늘날 이런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전 세계에서 비난의 화살이 몰려올 것이다. 모든 고전은 태생적으로 시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크세노폰의 공리주의 사상 역시도 이에 속하는 듯싶다.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적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생활 모든 부분에서 현실주의는 이상주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과거의 생활 전반에는 현실주의보다 이상주의적인 관념이 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서양의 전통 지식인층은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플라톤을 크세노폰보다 우위에 뒀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전통은 이어져왔으며, 오늘날의 학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이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에서 크세노폰은 현실을 바탕에 두고 현실에 근거를 둔 저술을 남겼다. 그는 자신을 추방했던 아테네의 시민들을 위해 '무언가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저작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투박하고 서툴렀다. 플라톤에 비해 세련되지도 않았다. 《사냥술》에서 그가 고백하듯, 그는 글을 쓸 때 쓸데없는 수사에 집중하기보다, 현실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크세노폰은 궤변이나 가르침보다 자신의 행위와 업적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저술의 표현이나 수사보다 내용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행위적 업적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던 것 같다. 소키루스 대왕을 따라 페르시아의 권력 투쟁에 용병으로 참전한 것은, 그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키루스 대왕의 모습을 소키루스에게 기대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거품으로 끝난다. 소키루스는 키루스 대왕처럼 자제력이 뛰어나고 품성이 뛰어난 인물이 아닌 너무나도 속물적인 인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정 도중 소키루스는 죽었다. 그 뒤 만인대를 이끌고 어려움 끝에 그리스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고국인 아테네의 적인 스파르타의 군주를 섬겼으며, 그로 인해 고국으로부터 추방령을 받았다.  그는 스파르타의 아게실라오스에 기대를 걸었고 그의 참모로 활동했지만 뛰어난 능력에 비해 커다란 정치적 업적은 이루지 못하고 아게실라오스는 죽음을 맞는다. 아게실라오스가 죽은 뒤, 그는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키로파에디아》의 저술에 투영했다. 이렇듯 행동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리라 생각했던 그의 인생은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역사소설 《키로파에디아》의 저술로 끝이 났다. 

 세월이 흘러 그는 자신의 경험과 실패를 바탕으로 저술에 몰두한다. 오로지 좋은 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펜을 잡았다. 그는 플라톤처럼 이상과 관념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그는 보이는 현실 그 자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추가하여 글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후대의 지식인층은 이런 크세노폰의 글보다 플라톤의 글을 예우했다. 그렇게 그의 저술은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그러한 시각은 시대를 거듭하며 쭉 이어졌다.

 현실과 이상의 대립은 역사를 관통하는 주요 테마다. 이상과 현실이 대립하면 현실이 이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앞서 살펴봤듯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대립에서 역사는 플라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서구 근대 철학에서 대세를 이뤘던 학파는 바로 합리주의를 기초로 한 데카르트 - 칸트(물론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했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합리론에 기초한다.) - 헤겔의 계보다. 이들은 세상을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에 어떤 면에서 플라톤의 사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철저하게 경험론을 바탕으로 한 베이컨의 사상은 합리주의의 데카르트에 비해 명성이 떨어진다. 오늘날 근대 철학의 아버지를 꼽으라면 대부분 '데카르트'를 꼽지 '베이컨'을 꼽진 않는다. 여기서도 이상은 현실을 이겼다. 서구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양 사회는 사상적으로 서구보다 더욱 보수적이었다. 유가 철학은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하나의 관념이었고, 동아시아는 이러한 이념의 유학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조선은 이념적인 성리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다가오는 근대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나라가 아니었는가?

 오늘날에는 이념이나 사상 관념보다 현실이 앞선다. 너무 현실을 앞세우기에, 개념 없는 속물주의가 만연한 것이 오늘날의 문제점일 정도로 사람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만약 크세노폰이 오늘날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아마 그는 커다란 성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가지고 있던 실용주의적 마인드는 오늘날에는 매우 높이 사는 덕목이다. 아마 현대에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환생했다면 플라톤은 저명한 대학교수가 되어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이겠지만, 크세노폰은 사업이나 경영 등등에서 활동했을 것 같다. 플라톤은 전문적인 연구 논문 등등을 저술했겠지만 크세노폰은 자신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서나 리더십 에세이 등등을 저술했을 것 같다. 플라톤은 복잡하고 진지하며 어렵고 화려한 표현을 했겠지만, 크세노폰은 직설적이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소위 '꿀잼'의 서술법을 보여줬을 것이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을 읽으며, 나는 그런 21세기의 크세노폰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가 저평가 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 그가 시대를 잘 못 타고나서가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크세노폰은 학계로부터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책은 원전 번역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주류 철학자들의 번역 역시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 크세노폰의 저작을 번역할 여유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를 전통적으로 폄하해 온 시각은 거둘 필요가 있겠다. 자신을 추방한 조국을 위해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끄적인 글이 이토록 후대에 저평가 받는다는 것을 무덤 속에 그가 안다면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투박한 글이더라도, 그의 글은 나름 진솔했고 전문적이며, 플라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위치를 다시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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