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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평점 :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문학을 통한 인간의 연대를 서술하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아니 에르노로 결정된 지금, 2018년 ㄴㅂㅁㅎㅅ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첫 번째 에세이집 "다정한 서술자"를 만났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하나의 그림을 두고, 사인칭 서술자의 입장에서 자신과 자신의 글을 들여다보는 방식을 즐기고 있다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시점은 시작부터 나와 사뭇 다름을 깨닫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니만큼 그녀의 시선을 먼저 인정하고 계속 들어가본다. 세계가 본질적으로 크지 않으며 우리가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은 누구일까. 흠... 이런 걸 궁금해할 줄이야. 이래서 나와 감상 수준이 다른 걸까. 그런데 저 문장을 읽고 나니 나도 궁금하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올가 토카르추크는 독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자임이 분명하다.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민음사 펴냄
쥘 베른의 책들 속에서 성장했다고 말하는 올가 토카르추크와 여행에 대해 생각을 나눠본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상 탈출! 진정한 자유! 헉헉대지 않고 숨을 내쉬는 것! 휴식! 이동 수단이 다양해지고 먼 거리도 거뜬히 짧은 시간 내 움직일 수 있는 시대를 사는 내게, 여행은 이러한 의미이다. 그런데 저자는 가깝게는 우리 조부모들이 살던 시절만 해도, '여행은 낯섦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렇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숱한 정보를 이미 얻은 채 여행을 떠나지만 선조들의 여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대부분 상상이 함께했겠다. 그렇게 보자니, 우리에게 어쩌면 여행은 단순히 떠난다는 행위에 대한 설렘만 있을 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세상이 획일화되고, 대부분의 장소에서 거의 비슷한 것이 자리잡고 있기에, 혹은 세계 곳곳에 놓인 마데인이 만든 기념품 때문에, 세계여행은 매력적인 잠재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아, 한편으로 또 그렇구나 하고 동조한다!
나는 우리 삶이 사건들의 총합일 뿐 아니라
각각의 사건들에 우리가 부여하는 다양한 의미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것이라고 믿는다.
여행의 의미가 어떠하든 간에 전 세계를 강타한 감염병 사태에 따른 팬데믹 시대로, 세상은 작아지고 여행은 꿈이 되었으며 우리는 단절되었다. 돈이 있어도 이동할 수 없던, 박탈당한 자유는 이제 막 고삐가 풀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것만큼이나 두려운 것이 또 있으니, 호모 콘수멘스(소비하는 인간들)의 지적 재화의 소비다. 지금 내가 이 책 "다정한 서술자"의 감상을 적겠다고 자판을 두드려대는 이 순간에도 수백 혹은 수천 건의 기사와 시, 소설, 에세이, 보고서 따위가 창출되고 있다. 이것이 무한성이다.
무한성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며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 인간에게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제공하기 위해 취약하고 보잘것없는 검색 엔진 도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우리는 세뇌당하여 우리가 그것들을 지배한다고 착각한다. 스스로 바보인 줄도 모르고 바보로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된 유일하고 단일한 존재로 인식한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들이 말이다. 그런데... 분리되었던 우리는 '다정함'에 의해 다시 서로 연결되고 유대하며, 상대와의 유사성 및 동질성을 깨닫는다. 과연 다정함이 무엇이기에?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무한한 연대와 공감의 정서이다. 다정한 서술자 올가는 에세이를 빙자한 리뷰를 통해 이 세상은 살아 움직이고 있고,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내게 문학이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력한 장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략)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 (중략) 그러므로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인간의 소통 수단이며 (하략).
작가는 글을 창작해 쓰고 독자는 그것을 해석하며 읽는다. 쓰기와 읽기로 단순화되어 보이는 이 행위에 '다정함'이라는 놀라운 도구가 끼어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작가가 개입해 탄생하던 단순한 스토리텔링은 작가가 개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창조로까지 이어지고, 독자들은 뜻밖의 연대를 이룬다.
소설가이자 강연자요 심리학전공자인 올가 토카르추크는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기심을 펜데믹 사태를 기점으로 날카로운 현실 진단으로 전환한다. 그녀는 환경 문제와 동물권 수호를 위해 전 지구적 결속을 추구해야 하며, 소외된 대상에게 다정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가는 "다정한 서술자"에서, 작가로부터 파생된 존재이지만 어느 순간 작가의 의지를 벗어나 자율적인 목소리를 내는 독립적인 인격체인 서술자가 되기 위해 작가 지망생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 그 방향을 짚어준다.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유대의 끈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서술에 독자인 나는 다정한 서술자의 창작을 다정한 마음으로 대하려 한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그동안 발표한 에세이와 칼럼, 강연록 중에서 여섯 편의 에세이와 여섯 편의 강연록 등 열두 편을 직접 선정해 엮은 에세이집 "다정한 서술자". 이 글들을 통해 그녀가 엮어내는 문학과 글쓰기의 과정을 만나보자. 동일한 것을 두고 작가와 나는 어떻게 느끼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
민음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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