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았다. 참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읽고 원작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마침 주부들이 참여하는 고전읽기모임에서 플루타르코스의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로 토론할 때였는데, 이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에 따라 극장으로 간 것이다. 순전히 리차드 파커라는 영화 속 뱅골 호랑이의 이름과 그 시튜에이션이,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음에도 어딘지 익숙하다는 느낌,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마이클 센델의 책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다가 다시 펼치면서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1884년 여름, 영국 선원 네 명이 작은 구명보트에 올라탄 채 육지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진 남대서양을 표류했다. 이들이 타고 있던 미뇨네트 호는 폭풍에 떠내려갔고, 구명보트에는 달랑 순무 통조림 캔 두 개뿐, 마실 물도 없었다. 선장(더들리), 일등항해사(스티븐슨), 일반 선원(브룩스)이 살아남는데, 신문은 이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보도한다.
그런데 그 구명보트에는 네 번째 승무원이 있었다. 집무를 보던 열일곱 살 남자아이 리처드 파커, 고아인 그에게 긴 항해는 처음이었다. 그도 구명보트에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 무슨 일이 있었을까? 표류 사흘째까지 그들은 순무를 정해놓은 양만큼 조금씩 먹었다. 나흘째 되던 날은 바다거북을 한 마리 잡았다. 이들은 며칠을 더 연명했다. 그리고 여드레째 되던 날, 음식이 바닥났다. 이때 파커는 구명보트 구석에 누워 있었다.

선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바닷물을 마셔 병이 난 것. 고통스런 하루하루가 가고 19일째 되던 날, 선장 더들리는 제비뽑기를 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브룩스가 거부하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한다. 다음 날, 선장 더들리는 브룩스에게 고개를 돌리리고 말하고는 스티븐슨에게 파커가 희생되어야 한다고 몸짓으로 전했다. 선장은 기도를 올리고,  파커에게 때가 왔다고 말한 뒤 주머니칼로 파커의 경정맥 급소를 띨렀다. 양심상 섬뜩한 하사품을 거절하던 브룩스도 나중에는 자기 몫을 받았다. 나흘간 세 남자는 아이의 살과 피로 연명했다. 그리고 24일째 되던 날 이들은 구조되었다.

2010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상 소개된 예화를 기억할 것이다. 실화라는 얘기다. 그리고 살아 남은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브룩스는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했고, 더들리와 스티븐슨은 피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파커를 죽여 그를 먹은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피고측은 한 사람을 죽여 세 사람을 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나약하고 병에 걸렸으며 무엇보다 부양가족이 없는 파커가 적절한 후보였다고. 마이클 샌델은 2장 '최대행복 원칙_공리주의' 초반에 이 얘기를 소개하며, 제러미 반담의 공리주의 소개와 함게 자기 주장을 펼친다. 

흥미롭지 않은가. 항해중 조난과 표류, 구명보트.. 라는 단어와 더불어 17세 소년인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등장하는 뱅갈 호랑이의 이름도 리처드 파커이다. 1월초에 개봉된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브 오브 파이>의 원작소설은 <파이 이야기>(얀 마텔 저/공경희 역, 작가정신 , 원제 Life of Pi)다. 2001년 출간 후 이듬해 부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주요 언론으로부터 ‘『로빈슨 크루소』『걸리버 여행기』『백경』을 잇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소설’ 등의 극찬을 받았다.

부커상(The Booker Prize)은 '부커 맥코넬상'의 약어로, 해마다 지난 1년간 영국 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씌어진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된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소설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데,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고 한다.

문학성은 물론 대중적 즐거움까지 갖춘 이 작품의 황홀한 상상력을 스크린으로 옮기고자 여러 영화감독이 시도했지만, 그 타이틀은 세계적인 거장 이안 감독이 거머쥐게 되었고 그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중인 것이다. 소설은

1부 토론토와 폰디체리

2부 태평양

3부 멕시코 토마틀란의 베니토 후아레스 병원

와 같이 3부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비중은 2부>1부>3부 순이다. 2부는 소년 파이가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벵골 호랑이 등의 동물과 함께 227일간 태평양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는 무섭고도 기묘한 생존기록이다. 3부는 호랑이와 공존하며,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도무지 믿지 않은 인간들(일본인 선주 관계자)에게 병원에서 회복 중이던 파이가, 구명보트 위에서의 동물들을 선박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대체하여 인간들의 이성에 부합하는 식으로 들려주는 꾸민 이야기다. 3부의 이 대목은 영화의 러닝타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이지만 반전이 이뤄지는 대목이다. 영화에서 장황하게 보여준, 2부의 탐험기가 인간들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것, 그러므로 그들의 원하는 식으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파이는 말한다. 내 엄마를 죽인 주방장을 자신이 직접 죽일 수밖에 없었노라고. 앞서 소개한 1884년 여름 대서양에서 생긴 일을 이쯤에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의 발상에 도움을 준 실제 사건이 이 소설 3부에서 믿거나말거나 식으로 임기응변으로 꾸며대는 얘기처럼 문제를 던지니 하는 소리다.

 

파이가 들려주는 얘기는 궤변이지만 진실이다. 무엇을 믿을까? 눈에 보이는 것, 상식에 가깝고 사실적인 것, 인간들끼리 생존을 위해 살육을 했으므로 판사가 판결해야 하는 것, 판사는 진실을 찾아야 하지만 그 진실은 신앙(신념)의 문제와 맞선다. 어쨌거나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 속 뱅골 호랑이의 이름이 리처드 파커라는 사실이다. 소설 1,2부에서 리처드 파커는 호랑이의 이름이지만 3부에서 리처드 파커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된다. 1884년 대서양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인도에서 캐나다로 향하는 화물선에서의 조난이라는 배경으로 바뀐 소설의 모티브를 추정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공리주의를 논의하기 위한 예화였고, 그러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법정에서 유죄여부를 가리는 사건이 되었다. 이쯤에서 고민해볼 문제는 위 소설의 경우, 생존을 위해 동물이 희생된 경우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사람이 희생된 경우는 1884년의 사건처럼 법으로 죄과를 판단해야할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주방장이 파이의 엄마를 죽였고, 복수 차원에서 파이는 그 주방장을 죽였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파이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파이에게는 죄가 없는 것일까? 동물과 인간의 차이 운운하는 것은 비약인 듯 하나, 마이클 샌델은 위의 책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여러 차례 인용하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나왔다.

샌델은 정치학의 아주 일부를 예화로 들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데, 독자들에게 <정치학>이라는 녹록치 않은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뿌듯함을 안겨준다. 정치학을 비롯하여 몇몇 주요저작들의 리뷰를 담은, 책을 다룬 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암튼, 독자들은 힘들더라도, 소개받은 저작들을 충실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암튼, 앞선 명제는 '인간은 동물이다'를 기본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정치학의 저자는 국가공동체의 본질을 규명하면서 이와 같은 명제를 제시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20면)이라는 대목이다.

"인간이 벌이나 군서 동물보다 더 국가공동체를 추구하는 동물임이 분명해졌다. 자연은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그런데 인간은 언어(logos)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단순한 목소리는 다른 동물도 갖고 있으며, 고통과 쾌감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다른 동물들도 본성상 고통과 쾌감을 감지하고 이런 감정을 서로에게 알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유해한지,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밝히는 데 쓰인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점은 인간만이 선과 악, 옳고 그름 등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21면)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국가가 형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과 차별화된 능력을 가졌음에도 어떤 인간들은 동물보다 더 사악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소설)에서 소년 파이와 교감을 나누고, 생존을 위한 공동운명체임을 인정하게 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에 대해, 단지 소년에 의해 조련된 결과라고만 할 수 있을까? 3부에서 동물들을 인간들로 대체하는 건 납득을 하면서도,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크와 동시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라야 하므로, 동물은 이러해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이게 되는 것,

 

"인간은 완성되었을 때는 가장 훌륭한 동물이지만, 법(nomos)과 정의(dike)에서 이탈했을 때는 가장 사악한 동물이다."(정치학)

무장한 불의는 다루기 어렵다. 생존을 위해 소년을 잡아먹을 수 있는 호랑이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인간은 지혜와 탁월함을 위해 쓰도록 무기(대표적으로 언어)를 갖고 태어나지만, 이런 무기들은 너무나 쉽게 정반대의 목적을 위해 쓰일 수 있다. 그래서 탁월함(arete)이 없으면 인간은 가장 불경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색욕과 식욕을 가장 밝히는 존재가 된다. 마침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하는데,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해주고, 정의감은 무엇이 옳은지를 판별해주기 때문이란다. 언어를 가진 인간들은 소통하고, 공동체를 이뤄 공공의 목표를 이뤄간다. 인간에게는 있으나 동물에게는 없는 것은 무엇인가?

정치학을(원전번역으로) 국내 최초 완역한 옮긴이(천병희 교수)는 주석에서 그리스어 arete(아레테)라는 단어처럼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가 또 있을까? 라고 질문한다. 여기서는 '탈월함'으로 번역했으나, 미덕, 덕, 자질로 번역하는 게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는 것, 어쨌거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도,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도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을 통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규명하고 있다. '동물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긴장감 속에서 교훈을 전하는 숱한 우화들이 바로 여기에서 탄생하고 그 존재감을 유지한다.

 

우화의 일종이라고 할 플루타르코스의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그리스로마 에세이>와 <수다에 관하여>에 수록)에는 이안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거기에 담긴 철학이 뭔가, 곱씹어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데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인도 소년 파이가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벵골 호랑이 등의 동물과 함께 227일간 태평양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는 무섭고도 기묘한 생존기록이다."
소년과 뱅골 호랑이의 공존, 그들의 교감, 다른 말로는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판타치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에는 진정한 친구는 제2의 자아이다. 나를 사랑하듯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우정이다, 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들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 점은 하늘에 사는 것이든 물속에 사는 것이든 뭍에 사는 것이든, 또 길들여진 것이든 야생의 것이든 짐승들도 마찬가지라네. 우선 짐승들은 모두 자신을 사랑하네. 이런 감정은 모든 생물이 똑같이 타고났기 때문이네. 그다음 짐승들은 자신과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들을 끊임없이 찾는다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짐승들을 부추키는 충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사랑과 닮았다네. 사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 인간들도 자신을 사랑하고, 인간들도 둘이 거의 하나가 될 만큼 정신적으로 서로 완전히 결합될 수 있는 짝을 찾기 때문일세"(<우정에 관하여> 81절 전문)

 

'동물'이라고 하면 인간도 포함되니까 '짐승'이란 단어로 번역함으로써 변별성을 둔 것인데, 이것은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에도 적용이 된다. 어쨌거나 인간과 동물은 자연의 일부로, 그 자체가 자연인데, 이 영화의 리뷰에서 '철학적인 뭔가가 있다'라고 하는데, 그 뭔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약간의 탐사를 해본 글이다. (아래는 영화의 스킬컷, 소년과 호랑이, 호랑이와 소년)

 파이가 바라보는 뱅골 호랑이 리터드 파커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바라보는 파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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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러나 그들은 테르모퓔라이에서 아르테미시온으로 보낸 사자들에게서 레오니다스(스파르테 왕으로, 페르시아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수 테크로퓔라이 고갯길을 지키다가 300명의 결사대와 함께 옥쇄했다.)가 전사하고 크세르크세스가 고갯길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쪽의 헬라스 내륙으로 철수했다. 이 때 전쟁에서 크게 용맹을 떨치고 고무되어 있던 아테나이인들이 후미를 맡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플루타르코스영웅전> '테미스토클레스 전', 143면, 9장)
[2]헤로도토스는 <역사> 후반부인 제7~9권에 이르러서야 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마라톤에서 좌초한 다레이오스의 원정에 이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의 전쟁 결의, 군대의 사열, 영화 <300>으로 널리 알려진 테르모퓔라이 전투, 아르테미시온 전투에 이어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 뮈칼레에서 거둔 그리스의 대승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역사』는 절정을 이룬다. (헤로도토스 책소개)

[3]<역사>의 해당부분으로 가보자. "테르모퓔라이에서 페르시아 왕을 기다리는 헬라스인들은 다음과 같다. ..." 헤로도토스는 역사 제7권 202절부터 239절, 제7권의 끝부분까지 테르모퓔라이 전투를 다루고 있다. 몇 년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300>은 이 전투를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거니와 <역사>의 이 부분이 영화의 배경이면서 소재이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므로, 영화에 대한 얘기도 <역사>에서의 이 부분에 대한 얘기도 생략하거나 아주 간단하게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겠다.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이 협곡을 지키는 군의 지휘자는 가장 경탄할 인물은 아낙산드리데스의 아들 레오니다스라는 라케다이몬인(스파르테)이다.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300명의 전사들-슬하에 아들이 있는 자들 중에서 선발해-을 데리고 테르모퓔라이로 향했다. 그리고 이들은 비교가 되지 않은 페르시아군을 무찌르며 결사항전으로 막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페르시아 진영에서 이 협곡으로 산을 넘어 접근할 수 있는 오솔길이 있었는데, 이곳은 포키스인들이 산 위에 올라 지키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에피알데스라는 멜리스인이 나타나 테로모퓔라이에 이르는 산속 오솔길을 알려주고,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오솔길을 따라가도록 군대를 파견했다. 페르시아 인들은 밤새 행군하여 동틀무렵 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곳은 1000여 명의 포키스 중부장보병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자국을 방어하고 오솔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온산이 참나무로 덮여 있어 포키스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이 올라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결국 이 길을 뚫림으로써 스파르테의 전사들은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이 길을 열리고 만다. 페르시아의 2차 그리스 침략 때인 기원전 480년 8월의 이야기다.
[4]'대 카토'로 불리는 마르쿠스 카토는 기원전 234년에 태어나 149년 85세에 사망했다. 그는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로 유명한데 그의 수명으로 볼 때 절반쯤에 해당하는 40대 초반 때의 일이다. [기원전 194년 카토는 집정관 티투스 샘프로니우스의 사정로 활동하며 트라케 지방(그리스 북동지방)과 히르테르(도나우강의 하류) 유역을 정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또 마니우스 아킬라우스 휘하 참모장교로 안티오코스 대왕(3세-재위 기원전 223~194년에는 세레우카이아 왕조의 세력을 부활하고 동지중해 지방에서 로마의 세력에 대항하려 했다.)에 대항하여 싸웠다.
안티오코스는 헬라스인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헬라스를 침공했다(기원전 192년). 이때 동요하는 코린토스인들과 파르라이인들과 아이가이인들, 코린토스 만에 있는 도시들을 달랜 것은 카토였다. 안타오코스는 테르모퓔라이의 고갯길을 군대로 막고 그곳의 자연적 요새에 울짱과 방벽을 덧붙인 다음, 헬라스에 적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믿고 그곳에 눌러앉았다. 그리하여 로마인들은 정면 공격으로 그곳을 통과하기를 포기했다. 바로 이때 카토는 페르시안둔이 헬라스군의 방어망을 우회하여 포위했던 유명한 작전을 떠올리고는 약간의 군대를 이끌고 야음을 틈타 출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적진에 가까이 간다.
"그러나 얼마쯤 갔을 때 길이 끊어지며 발아래 낭떠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또다시 겁이 나고 낙담했으니, 사실은 자신들이 찾던 적군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 수도 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플루타로코스 영웅전)

어느새 날이 새고 실제로 낭떠러지 아래도 헬라스식의 울짱과 전초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자 카토는 부하 몇몇에게 지시하여 적군 파수병들 가운데 한 명을 생포하게 하고, 그를 심문하여 적군의 주력부대는 왕과 함께 고갯길에 진을 치고 있음을 알아낸다. 그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고 경계가 소홀하다는 것을 알고 카토의 군사는 낭떠러지를 내려가 공격한다. 그 사이 평지에 있던 마니우스(집정관)가 고갯길로 전군을 투입하여 적의 방벽을 공격했다. 안티오코스는 돌에 입을 맞아 이가 부러지자 괴로워 말머리를 돌렸고, 그의 군대는 도처에서 로마군의 공격을 받아 뒤로 물러섰다. 도망갈 길이라야 지나기 어려운 험로뿐이고, 깊은 늪이나 가파른 절벽은 통과해보았자 미끄러지고 떨어질 게 뻔했지만, 안티오코스의 군대는 고갯길을 지나 그렇듯 위험한 길들로 뛰어들었고 로마인들의 칼에 맞을까 두려워 서로 밀치고 짓밟다가 자멸하고 말았다.
이상은 <플루타르코스영웅전> '마르쿠스 카토 전' 13장과 14장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카토는 자화자찬에 어색해하는 사람이 아닌 데다 공공연한 자랑도 위대한 공적의 당연한 귀결이라 여기고 전형 주저하지 않았지만, 이때의 공적에 관해서는" 특히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군사적 업적을 본 사람들은 "그가 로마 국민에게 신세진 것보다 로마 국민이 그에게 신세진 것이 더 크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대표적인 '자랑질'의 사례다. 집정관 마니우스가 그를 껴안으며 "자기도 로마의 모든 국민도 그의 선행에 적절히 보답할 길이 없을 것"이라며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카토는 자신의 승보를 몸소 전하려고 로마로 출발했다. 좀 낯 뜨거운 일이긴 한데, 기원전 191년의 일이다. [이보다 앞서 기원전 279년에도 그리스인들은 침입해오는  켈트족을 바로 이곳 테르모퓔라이에서 지연시켰다.]
[5]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 (Herodotos, 기원전484?∼BC425?)와 마르쿠스 카토(기원전 234년~149년)의 생몰연대를 비교해보라. 단지 책 형식이 아니라도-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아니라도- 앞선 시대의 전쟁사는 장군들에게 반드시 익히고 기억해야할 커리륨럼이었으리라. 어쨌거나 "기원전 191년에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3세가.. 로마군을 막기 위해 이 길을 요새화했"던 것을 역발상으로 무너뜨린 사례는 당연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마르쿠스 카토가 특히 테모퓔라이에서의 자신의 승리에 쾌재를 부르고, 끊임없이 '깔대기를 들이댔던' 것은 테모퓔라이에서 벌어진 앞선 전쟁의 사례를 적절히 활용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렇다면 안타오코스는 이곳에서 벌어진 레오디다스 왕과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사이의 전투사례를 몰랐을 것인가!
[6]테모퓔라이 협곡은 아테네 북서쪽 약 136㎞ 지점이다. 고대에는 이 길의 절벽이 바다에 가까이 있었으나 물에 의해 운반된 침니 때문에 그 거리가 1.6㎞ 이상으로 넓어졌다. '뜨거운 통로'라는 뜻의 이곳 지명은 유황 온천수가 있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길이 7.2㎞의 이 고개는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유명해졌으나, 이제는 협곡이라고 할 수 없으니,

[7]역사(전쟁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유사한 케이스의 승리나 방어벽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카토가 이 토론에서 여느 때 자신의 작품에서 그랬던 것보다 더 유식해 보인다면 그것은 그리스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하게나. 그가 노년에 그리스 문학을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말일세"(키케로가 <노년에 관하여>에서 주 대담자로 나선 마루쿠스 카토에 대해 소개하는 대목)
"나는 노인이 되어서야 그리스어를 배웠으니 말일세, 나는 마치 오랜 갈증을 식히려는 것처럼 열심히 그리스어를 배운 까닭5에 자네들도 들었다시피 방문 인용한 문장들을 알게 된 거라네..아무튼 그르시어만큼은 나는 열심히 배웠다네."(<노년에 관하여 8장 후반부, 마르쿠스 카토가 하는 말)
마르쿠스 카토가 테모퓔라이에서 승리를 거둔 때의 나이는 43세 무렵이다. 아마도 노년에 이른 마르쿠스 카토가 그리스어를 더욱 열심히 배운 동기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힙입은 전공을 회상하는 즐거움과 겹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 중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베개속에 넣어 베고 잤을 정도로 애독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만큼 <역사>의 한 페이지와 이어진 전쟁사. 한 장소에서 벌어진 두 개의 전쟁이야기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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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12-11-2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영화 300으로 설명하는 상황이 아쉽지요. 완독을 해야 하는데 하는 숙제.. 재밌습니다. 험준한 그 고개에서 역사는 되풀이되는군요.

timeroad 2012-12-0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영화제작을 위해서는 별도의 장소를 물색해야 했겠지요. 물론 CG의존도가 높으니 하나마다한 소리지만. 감사`

oren 2013-11-0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300>이 나오기 전에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고 레오니다스 왕에 관한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timeroad님의 이 글을 읽으니 테르모필레 협곡에선 또다른 흥미진진한 역사가 또한번 멋지게 펼쳐진 적이 있었군요. timeroad님의 해박한 지식에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라틴어를 제대로 배운 몽테뉴 또한 레오니다스와 그의 딸의 훌륭한 인품을 격찬해 마지 않던데 그 대목이라도 덧붙여 봅니다.

* * *

레오니다스의 경우

가장 용감한 자는 때로는 가장 불행한 자이다. 그러므로 개선 못지않은 패배도 있는 것이다. 태양이 그의 눈으로 보아 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승리인 살라미스·플라타에아·미칼라·시칠리아 등 4대 승리의 영광 전부를 뭉쳐 보아도, 테르모필레 협곡에서의 레오니다스와 그의 부하들이 전멸당한 영광에 감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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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다스의 딸

나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이며 딸인 켈로니스의 아름다운 마음을 얼마나 존경하고 싶은지. 그의 남편 클레옴브로토스가 혼란의 틈에 부친 레오니다스에게 대항해서 우세하던 동안, 그녀는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추방당한 부친의 어려움 속에 그의 편을 들며 승리자에게 반대했다. 그런데 운이 뒤집힌 다음 이 여자는 행운의 편을 들려고 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기 남편의 편을 들며 그가 패하여 달아나는 뒤를 따라간다. 그녀는 자기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자기가 가련하게 보아 주는 편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선택의 길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세도가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약한 자들에게는 거만하게 굴던 피로스보다는 당연히 플라미니우스의 본을 더 좇고 싶다. 그는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빌려 주었다.

oren 2013-11-0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imeroad 님께서는 테르모필레 협곡의 실제 사진을 당연히 보셨겠지요? 저도 3년 전쯤 '레오니다스의 경우'라는 짤막한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우연히 테르모필레 협곡의 실제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그렇게 유명한 협곡이 그렇게 허무하게 변했을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었거든요. http://blog.aladin.co.kr/oren/4297944
 

필자는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리뷰(알라딘)에서 용병에 가까운 크세노폰의 참전을 '원군' 나아가 '원정'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변론'을 진행하였다. 그를 변호하기 위해 당시 아테나이와 더불어 그리스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스파르테의 왕 아게실라우스도 이집트 용병으로 나아가 조국의 다른 전쟁을 위한 비용을 벌어야 했던 사례를 꺼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을 1:1 형식으로 비교하고 있어 '비교열전'으로도 불린다. 영웅전에서 아게실라오스(그리스)의 파트너는 폼페이우스(로마)였다. 비교열전이 그렇듯 비교 대상은 두 사람의 삶은 여러 면에서 닮아있고, 그렇게 비교하고 나니까 또 다른 점(대조점)들이 있더라, 해서 비교하는 글이 이어진다. 두 영웅들을 비교하는 글 말미에 플루타르크는 두 사람이 이집트에 간 이유를 언급한다. 폼페이우스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수없이 이집트로 항로를 정했다. 그리고 아게실라오스는 보수를 받기 위해(어쩔수없이) 야만족의 장군에게 고용되어 이집트에 갔다. 그리고 용병으로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이집트의 입장에서 동족인 그리스인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84세에 생을 마감하는 아게실라오스 왕이 죽음을 몇 해 앞두지 않은 노년에 벌인 일이다.
플루타르크는 영웅전('비교열전')에서 그를 폼페이우스와 비교했지만, 필자는 용병으로 나서면서까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던 아게실라오스의 모습에서 로마의 영웅, 대 카토(마루쿠스 카토)의 노년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지금 이 글은 노년의 대 카토(로마) 대 아게실라오스(그리스) 에 대한 비교열전이다. 더불어 이 글은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라는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잘 알다시피 마르쿠스 카토는 키케로가 지은 <노년에 관하여>에서 주 대담자로 등장한다. 대담에 참석했을 때 그의 나이는 84세. 불과 1년 후면 죽게될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노년에 대한 오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불식시키는) 대 카토의 삶에 대한 성찰이 깃든 견해에 따르면 1년후에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1년이란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대 카토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조국 로마의 안위를 위하여 쏟아낸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윤시내의 '열애') 애국심이다.

그렇다면 간명하게 마르쿠스 카토(일명 大 카토)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마르쿠스 카토(기원전234~149). 그는 로마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였다. 본래 성은 프리스쿠스였지만 재능이 뛰어나 '카토'라는 성을 얻었으며, 붉은 얼굴에 회색 눈을 하고 있었다.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집정관, 감찰관 등의 높은 자리에 올랐다. 에스파냐 전쟁에 출정했으며 그리스에서 아시아 군을 몰아냈다.(동서문화사 플루타르크 영웅전) 이제 인물 됨됨이를 조명해보자. "(대 카토는) 사치에 물들기 전 옛 로마의 ‘도덕심’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검소한 생활, 꾸준한 체력 단련, 불굴의 정신력, 적극적인 정치활동에 힘입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재정관, 조영관, 집정관을 거쳐 기원전 184년에는 감찰관으로 선출되었으며, 최초의 라틴어 산문 작가로서 라틴 문학에 끼친 그의 영향은 막대하다."(숲출판사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의 소개) 대 카토가 생전에 이룬 업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의 마지막 정치적 업적은 카르타고의 파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카르타고와 누마니아(지금의 동알레지와 튀니지 지방) 왕 맛시닛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카토는 분쟁원인 조사차 사절로 파견된다. 카토가 죽기 4년 전인 기원전 153년의 일이다. 마시닛사는 로마에 우호적이지만 페니키아의 식민시인 카르타고는 로마의 대 스키피오에게 패한 뒤(제2차 포이니 전쟁에서) 로마와 우호조약을 맺고 제국을 잃었으며 무거운 배상금을 물어야했다.
그런데 대 카토는 그들이 비참하게 몰락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전사가 득실대로 엄청난 부가 넘치고 각종 무기와 군수품이 가득하여"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며 저들이 곧 로마를 위협하겠구나 경각심을 갖게 된다. 서둘러 로마로 돌아온 카토는 카르타고의 누미디아인들과 분쟁은 로마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하다며 그들의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해서 화제가 다른 질문에 대답할 때에도 대 카토는 "내 생각에 카르타고는 파괴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앞세우고는 답변했을 정도라고 한다. 카르타고가 로마를 정복할 만큼 강하지는 못해도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강하다고 판단한 것. 이렇게 대 카토는 카르타고에 대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전쟁을 부추켰다.
이쯤에서 대목에서 포이니 전쟁에 대해 정리가 필요하다.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에 걸쳐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인 세 차례의 전쟁이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식민시(植民市)이다. '포에니(poeni, 포이니)'라는 말은 라틴어 Poenicus에서 나왔는데, 이는 '페니키아인의'라는 뜻.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그렇게 불렀다. 로마인들은 원래 시켈리아(시칠리아, 당시 이 섬은 여러 문화가 뒤섞인 곳)를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데 힘썼는데, 이 섬 일부 지역을 카르타고가 지배하고 있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날 당시 카르타고는 광범위한 제해권을 갖춘 서부 지중해의 패권국이었으며, 로마는 이탈리아에서 급속도로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이었으나 카르타고 수준의 해군력이 없었다. (1)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년~기원전 241년). 23년 동안의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였고,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고 막대한 전후 배상금을 부과한다. 제1차 전쟁 이후 6년간 로마는 팽창을 거듭하여 지중해 대부분을 장악한다.

(2)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전쟁'으로도 불리는데,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해온다. 기원전 218년에 한니발은 히스파니아(에스파이나)의 사군툼을 공격하면서 전쟁은 시작된다. 한니발은 대군을 이끌고 갈리아 남부를 돌아 알프스를 넘었고, 이 때에 상당수 병력과 전투 코끼리를 잃기도 하나, 북부 이탈리아로 진입해서 기원전 216년의 칸나이 전투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로마군을 무찔렀다. 당시 한니발은 그 이름만으로도 로마인들을 공포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할 정도였다.(범죄영화의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 걸작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양들의 침묵, 1991>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Dr. Hannibal 'The Cannibal' Lecter: 안소니 홉킨스 분)의 이름도 이 전쟁의 주역이름을 따온 것이다. 영화에서 한니발 렉터는 일명 ‘카니발-식인종- 한니발’이라고 알려진 흉악범으로 죽인 사람의 살을 뜯어먹는 흉측한 수법으로 자기 환자 9명을 살해하고 정신 이상 범죄자 수감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파비우스 막시무스(플루타르크 영웅전 소개된다)의 지연 전술로 만회할 시간을 벌고 한니발은 이탈리아 전역을 손에 넣지 못한다. 양(兩) 군은 이탈리아 말고도 히스파니아, 시칠리아, 그리스에서도 격돌했으나 끝내는 로마군이 모두 승리한다. 특히, 전장은 아프리카로 넘어가 기원전 202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근처에서 벌어진 자마 전투에서 카르타고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결정적으로 패하여 전쟁이 끝났다.
일명 '대 스키피오'로 불리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기원전 236~183년)는 로마 최고의 명장으로 꼽힌다. 전쟁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명장끼리의 대결로 유명한 자마전투에서 한니발을 무찔러 승리를 거둠으로써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다. 바로 이 때 '아프리카를 정복한 자'라는 의미에서 그 유명한 별칭인 '아프리카누스'가 그에게 붙여졌다. 그는 적지에서 제2차 포이니 전쟁을 치르며 아프리카, 그리스, 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혀 지리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창시자'로. 문화적으로는 '로마문명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또한 로마 외교술의 근본원칙인 '패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쳐, 세계 공동체의 실현을 추구하는 세계정치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 스키피오는 로마 원로원의 정치적 파벌과 질투의 희생양이 된다. 그는 결국 탄핵을 당해 망명과 같은 은둔생활을 하면서 "배은망덕한 조국이며, 그대는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며 삶을 마감했다.
플루타르크는 영웅전에서 바로 이 스키피오도 다뤘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일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B.H.리델하트 지음, 사이 펴냄)라는 번역서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아홉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국을 등진 뒤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36년 만에 조국 카르타고로 돌아와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스키피오에게 패배한 한니발의 인생이 너무도 극적이었기에 사람들은 스키피오의 승리를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이는 끈질긴 성취보다는 극적인 패망을 미화시키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키피오를 평가하는 <역사의 천칭>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 마루쿠스 카토 얘기를 하다가 대 스키피오 얘기를 하고 있지만, 둘은 정적 관계였다(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어쨌거나 대 카토는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시찰한 결과 카르타고가 다시금 도발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전쟁준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그리스로마에세이>,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를 노년에 이른 대 카토(가 주로 얘기하고)와 두 젊은이가 말씀을 듣는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젊은이 가운데 하나가 일명 소 스키피오(기원전 185년경~129년)인데, 앞서 2차포이니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 스키피오(<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손자이다. 그런데 소 스피피오는 대 스키피오의 친 손자는 아니고,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파울루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대 스키피오의 아들인 푸블리우스 스키피오에게 입양된 상태였다. 그리고 소 스키피오의 친누이는 대 카토의 며느리가 된다. 그러니까 사돈 관계인 이들이 등장하는 바로 '노년' 대담에서 대  카토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한다. 우선 카르타고에 대한 경계를.
"나는 병사로서, 연대장으로서, 장군으로서, 사령관으로서 온갖 전쟁을 수행했지만 지금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으니 자네들에게는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지. 하지만 지금도 나는 어떤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원로원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네. 오래전부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카르타고에 나는 미리 앞질러 선전포고를 해주고 있다네. 그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나는 그 도시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않을걸세."(18절) 그리고 소 스키피오에게 할어버지의 유지를 받들라는 예언을 한다. "스키피오여, 자네가 조부님의 위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불사의 신들께서는 승리를 유보해두시기를!"(18절) 실제로 카토가 죽기 직전인 149년에 시작된 제3차 포이니 전쟁에서 소 스키피오는 과연 카르타고 시를 함락하고 파괴한다. 바로 이 대담에서의 희망사항이 실제로 이뤄진 것. 대 카토는 전쟁의 위험성을 진단하고 대비하도록 하였고, 소 스키피오는 실제 그 전쟁에 출정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므로, 노회한 대 카토의 안목이 훌륭하다. 율곡 이이 선생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던 예지와 비교해볼만한 것이리라.

 

물론 제3차 포이니전쟁은 앞서 언급했듯이 새로 집권한 카르타고의 군사세력이 많은 로마인에게 불안을 조성하자, 급기야 기원전 149년 로마는 카르타고가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조건으로 카르타고를 압박한다. 싹을 밟아버리기 위해, 로마는 전쟁을 유도한 것. 카르타고는 이 요구를 묵살하여 세 번째 전쟁에 돌입했고 로마는 카르타고에 대한 공성전을 벌였다. 카르타고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활의 시위로 쓰게 할만큼 거세게 저항했으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소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은 2년에 걸친 공격으로 결국 카르타고 도시를 함락하고. 주민을 완전히 축출했으며 도시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폐허로 만들었다.
마르쿠스 카토는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조국 로마의 평화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여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 나라의 진정한 원로의 모습을 보여준 대 카토에 비교될만한 그리스인을 꼽으라면 단연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우스(기원전 444무렵~360년)이리라. 그는 "당시 그리스 최고의 인물로서 뛰어난 왕이자 장군이었다.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으며,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오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전의 그가 거둔 화려한 전력은 생략하자. 바야흐로 팔십 세가 넘은 이 양반은 말년에 '메세네라는 작은 땅덩어리라도 손에 넣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전쟁 경비가 모자라 시민과 친구들에게 경비를 빌린다. 쉽지 않다. 급기야 이집트의 왕 타코스를 위해 싸움에 나선다. 전쟁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용병으로 출전한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당시의 숱한 반대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 최고의 장군으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위대한 그가, 이집트의 한 야만인 우두머리에게 고용되었다는 것은 추태다. 세상의 평가가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타코스가 보낸 돈을 받아 용병을 모집한다. 그리고 그 병력으로 함대를 구성한 뒤-페르시아 원정 때처럼 30명의 스파르테 장군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이집트로 출항했다. 이제까지의 전쟁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늙은 장군(왕)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그의 속마음(믿음)을 플루타르크는 이렇게 읽고 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자기 자신만의 명예가 아나라 나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집 안에 틀어박혀 죽는 날만 기다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앞서 <노년에 관하여>의 주 대담자인 대 카토 주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대 카토는 잘 나가는 로마의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아게실라오스는 꺼져가는 국운에 불씨라도 되기 위해, 갖은 반대와 수모를 견뎌내는 노년의 왕이었다. 누가 더 위대하다고 해야할까, 80대 중반까지는 현재를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장수한 경우인데, 그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애틋하고 눈시울이 젖게 한다.
18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야권 후보단일화를 '압박하시던' 원로들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노인들 대다수는 여권지지"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가슴이 아프다. 지난 삶의 굴곡 너무 컸으리라. 그 얼룩은 트마우마가 되어 무너뜨릴 수 없는 벽으로 우쭉 서 있는 것이리라. 미래로 가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상당수라고 선거전 얘기는 씁쓸하다. 그런 노년들을 비판하는 지금의 젊은 우리들은 나라와 민족을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행에 옮기는, 대 카토와 아게실리우스 왕 같은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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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12-11-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원로들의 역할이 정말 아쉽고 안타깝고 목마를 뿐이네여, 오늘 아침에 보니 타는 목마름의 시인이 여성대통령을 지지한다네여, 죽음의 굿판 운운하던 때의 울분을 다시 느끼면, 가끔은 주목받는 삶이고 싶다, 이건가요 김지하!

timeroad 2012-12-0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이 힘든 걸까요? 그들은 이미 본 세계를 아직은 젊어서 못 보는 것일까요? 그렇게 지역주의 벗어나야 한다던 이들이 이 판에서 지역발전을 핑계로 참 안타까운 모습들.. 과거는 흘러갔다! 버릴 것 버리고 새로움을 찾으면 좋을 텐데.. 고전읽기좀 해야할듯.
 

이 글은 영화리뷰로 쓴 것인데, 여러 책과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페이퍼로 작성한 것입니다.  

호/불호가 눈에 띄게 엇갈리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모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안고 있는 어떤 틀, 그러니까 그 작품의 성과와 한계를 같이 언급하면서 알맞은 수위를 유지하는 언론매체의 평가-몇몇 리뷰를 읽었지만-에서는 얻을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정치적'이기도 하고 어쩔수없이 적절한 '예우'와 우회적인 비판 정도에 머물고 있으니까,

악마를 보았다, 내게는 악마가 보이지 않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 제목은 악마를 보았다, 라고 하는데 내게는 악마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캐릭터)들의 어떤 연기에서도 악마-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으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피시방 컴퓨터 앞에서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건 말건 소리를 내지르면서-헤드셋이 있어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방법이 있음에도- 게임에 열중하는 손님들이 있고, 거의 대부분 피시방을 찾는 고객들이 게임을 위해서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목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사람도 있음을 무시하는 피시방의 직원들의-사장도 예외는 아닌듯- , 수수방관하는 고객관리만이 있을 뿐이다. 모방범죄를 유도할만한 잔혹한 장면은 없지 않으나 너무나 극적인 몰입을 이끄는 데에 무신경한 영화이며, 또 그것이 이 영화(감독)의 의도라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하나마나 한 소리이겠지만, 리뷰는 감독이나 제작자와 대화가 아니라, 그 영화(제품)의 소비자들간의 공유라는 점에서 하고싶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늦지 않았다면, 이 리뷰는 스포일러성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소설, 이야기)의 묘미는 반전이므로 내용을 먼저 아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일러성 리뷰에 대해서 의연한 두 작품군(群)을 떠올려보자. 1)아무리 내용을 많이 알아도 그 감동은 반감되지 않는다. 나아가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이 보인다. 2)내용을 알거나 말거나 영화를 제대로 읽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까지는 (1)과 같은데, 어차피 이 영화의 제작의도는 '스토리'에 있지 않으니까? 적어도 <악마..>의 생산자들은 앞서의 (2)의 입장에 서 있는 듯하고, (2)의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 (매체 면에서)장르가 다르지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스토리나 디테일한 제작배경에 대해서 (많이)아는 것과 실제 보는 것이 재미와 감동을 반감시키기보다는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1)의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생산자가 우리가 만든 이 영화는 (2)의 지점에서 기획된 것이므로 스포일러성 리뷰가 상관이 없어요, 라고 강변해도 소비자(관객)는 (1)이건 (2)이건 암튼 '편견' 혹은 '선입견' 없이 그 상품을 소비하려고 할 것이므로, 나는 그런 분들에게 누를 끼칠 수 있으리라. 그것은 서로에게 불행이다.

거기서 거기인 복수 드라마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둘째, 이 영화의 내용상의 주제는 '복수'이다. 아직도 '복수'를 주제로 말하고 또 뭔가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을까? 이런 질문은 당연히 우문이 된다.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고 누군가를 적절히 이용(활용)하는 것이 '당위'를 넘어서 '미덕'인 되어버린 이윤추구와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숱한 원한 관계가 발생하고 그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는 어쩌면 현실의 칼부림보다도 더한 마음의 칼부림이 잔인하게, 날마다 일어나고 있으니까? 마음으로도 간음하는 것도 죄가 되듯이, 아마도 관객들은 저마다의 피해자로서의 기억, 가해자였지만 그때는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자기반성, 나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서의 마음을 가다듬고 다스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니까, 그러므로 '복수'라는 주제는 사람의 이야기(소설, 이야기)에서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이다. 저, 그리스 비극의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대를 잇는 복수 3부작이라고 할 수 있고, 비슷하게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을 스크린에 담아내지 않았던가. 기타 등등 숱한 복수 이야기가 있지만, 그래도 '복수'를 주제로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지 않을 것이며 그 끝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악마...>는 복수를 주제로 한 이야기의 바닥을 보았다는 듯이, 지지부진한 거기서 거기인 복수 드라마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잡았다 풀어주고 잡았다 풀어주는' 사냥놀이일 뿐이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이 말은 복수의 기본 공식이다. 영화(만화) <이끼>에는 아예 이 대목을 언급한 성서와 해당 페이지가 등장한다. <악마를 보았다>가 펼치는 복수극도 바로 이 한마디로 압축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복수물과 아주 다른 점은 복수를 '왜' 하는가, 그리고'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개연성 자체를 무시하면서까지-일부러- 갖은 희생이 이어지는 (사회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눈에 어떤 눈을, 어떤 이에 어떤 이러 맞서는지 그 복수의 행위 자체에 집착(집중?)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느냐, 이보다 더 잔인할 수는 없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가 아니고. 그러므로 그런 복수행위를 서슴지않는 이들은 악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악마의 다이어리를 훔쳐보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마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잔혹한 장면들 앞에서 관객들은 이런 생산자들의 '의도'에 성실하게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가 쉽지 않다. 해서 나는 게임에 비유하였으며, 현실감 있는 섬뜩함 대신에 영화가 초반부를 벗어날 즈음부터 '몰입'에서 훌훌 벗어나 불행하게도 살인의 관찰자 역할에 충실하게 된 것이다. 해서, 나는 이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심야상영과 같은 한적한 시간대에, 맨 앞자리나 맨 뒷자리, 주위 사람들이 거의 없는 데서 친구(지인)과 함께 앉아 충분히 논평하면서(속삭이면서) 영화를 봐도 된다고, 내가 산 말이 1등으로 완주해주기를 바라는 경마장의 풍경처럼. 수현인가 경철인가, 아님 그들을 지켜보는 영화 속의 눈들인가, 아님 그 생산자들인가. 진정한 악마는.. 

복수과정만을 보여주기 위해 스탠바이 된 인물들 그리고 시스템
오로지 복수를 위해 재산을 처분하고 거기에만 집중해서 10년을 기다리며 준비할 필요도 없다(<모범시민>), 15년쯤 사설 감방에 처넣고 공소시효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육도 없다.(<올드보이>) 광랜 시대에 맞게 15일이면 충분하다. 처음부터 용서할 마음이 없다. 용서가 무슨 뜻이지요? 되묻는다. 아니 그의 사전에는 '용서'란 단어가 애초에 없었다. (<용서는 없다>와 달리) 엄밀하게 피해자 가족과 친지 혹은 패밀리(수현과 그의 장인, 그리고 방관하는 경찰 동료들, 지원하는 국정원 후배까지)들의 조직력을 전용(轉用)-예정되어 있는 곳에 쓰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돌려서 씀-이 있을 뿐이고, 그 시스템을 전용(專用)-1.남과 공동으로 쓰지 아니하고 혼자서만 씀. 2.오로지 한 가지만을 씀. 3 일정한 부문에만 한하여 씀-한다. 인터넷 게임에서 의상과 무기를 고르듯 수사자료를 입수하고(피해자의 아버지, 전직 강력계 형사인 수현의 장인이 건넨다), 최신 추적장비는 국정원 후배로부터 제공(?)받으면 되며, 수시로 경찰의 행적을 감청하고 있다. 그런 자세한 것은 묻지말아요! 그리고 15일이면 충분한데, 어차피 수배전단에 오른 놈들은 사회의 악이고 쓰레기이므로 만나는 족족 처리해버리면 된다. 왜, 분리수거를 기다리는 쓰레기니까? 이놈이 범인이 맞아라는 단서인 약혼자의 반지(커플링)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의 초반부에 수현(이병헌)의 눈에 들어온다. "저, 여기 있어요, 이미 알고 왔죠?!"라는 듯이. 경철(최민식)은 극악무도한 살인자, 살인을 밥먹듯이 할 뿐만 아니라 인육을 먹고-태주라는 친구의 식탁에서 보이지만-, 개새끼의 먹이로 인육을 던져주는 싸이코패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 영화에는 싸이코패스(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표정만이 냉정과 열정일뿐 너무나 인간적인(?) 순간들이 있다.

복수영화의 '한계', 아님 장르영화의 '경계'?
시간관계상(지면 관계는 아니므로) 줄이거니와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복수 영화-정통의 영화읽기-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스타일을 중시하는-장르영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그런 환경이 갖춰진다는 것은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감독의 작품세계를 감안하여, 장르영화로 봐줄때 이 영화는 보통의 영화와 장르영화의 '경계'에 있다. 그런데, 그것이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계'로 보기에는 이미 본듯한, 시츄에이션이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점, 해서, 복수영화의 종합세트같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지울 수 없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이 영화는 실화(實話)인가의 여부인데, 무슨 시사프로그램의 재연 장면들을 모음과도 같다. <살인의 추억>, <추격자>을 비롯하여 우리 영화만 거론해도 많이 본듯한 장면들을 보는 듯하다. 심지어 그녀가 김옥분인 줄 착각(사실은 김인서)할 정도로 <박쥐>에서의 캐릭터와 아주 유사한 배역이 등장하여, 그럴듯한 장면까지 연출하는 서비스를 잊이 않는다. 여러분, 그동안 보신 스릴러-대체로 복수극인-는 우리랑은 차원이 달라요, 라고 패러디를 하듯.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재기를 노리는 노회한 복서처럼-마음은 팔팔한데 몸은 약간 말을 안 듣는- <악마> 대열에 합류했고, 수현(이병헌)은 <아이리스>를 촬영하다가 연인의 비보를 접하고 잠시 휴가를 내어-15일쯤- <악마>전선에 합류한 듯한 인상을 준다. 심지어 수현의 국정원 후배인 이준혁(<수상한 삼형제>에서 막내 아들 김이상 역)은 경찰청 소속에서 국정원으로 전직(특채)하지 않았나 싶다. 한마디로 그들 개개인의 연기가 빛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마> 속으로, 해당 캐릭터로 몰입하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것이 어찌 배우 탓이라고 할 것이며, 도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인생은 새옹지마다. 산에 올랐으면 내려가기도 해야 한다.

<노부인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잘 들으세요. 부디 이것만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옳은 일을 했어요. 우리는 그 남자가 범한 죄를 벌하고 앞으로 발생할 불상사를 차단했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 것이예요. 아무것도 마음에 거리낄 일이 없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 <<1Q84>> 2권 429-430면, 문학동네 간행 번역본 인용)

<악마..>에는 잔혹한 복수에 대해 관객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마디가 거의 없다. 피해자인 1)수현의 약혼녀나 또다른 2)희생자가 되는 처제는 새로운 인물(배우)으므로, 전작의 영향 때문에 이 영화에의 '몰입'에 걸림돌이 될 인물들이 결코 아니므로, 1-1)왜 복수가 그토록 잔인하게 해야 하는지 특별한 계기점이나, 2)무모해보이는 형부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짧지만 특별한 복수의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뭔가가 필요했다(김인서가 깜빡 등장하는 그 순간들 못지 않은). 경철의 친구인 태주와 '김옥빈'이 구급대 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형사반장(천호진)이 던지는 "저런 놈들까지 살려야 하나"(정확하지는 않다, 대사가)하는 냉소와 대사는 흘러보내기에는 적지 않은 시서점이 있는 것 같다. 아예 넣지 말거나 '옳고 그름'에 대한 뭔가를 던져야 할 순간이었다. 장르문학(소설)으로 매니아층이 두터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틀을 벗어나 대중성을 확보하는 소설로, '안전장치'(위 인용은 소설에서 자꾸 반복된다. 주문을 걸듯)를 잊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런 인간쓰레기들은 죽여야 마땅해!"라는 식의 발언을 법집행자 그것도 해당사건의 책임자가 관망하듯 내뱉고 있는 것이다. 그것인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천호진-좋아하는 배우다-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애드립도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는 뭔가 겉도는 듯한 대사들을 토해내고 그렇게 연기한다. 모든 것은 오로지(ONLY) 복수의 속도 올리기에 복무하고 있다. 이런 관내(?)의 카르텔이 작동하면서 목숨줄을 죄어오는 가운데 경철(최민식)이 생각하는 최대의 반전(복수)는 경찰에 자수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감옥 안보다 세상이 더 무섭고, 사람보다 무서운 존재는 자연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없다. 그것이 수현을 가장 아프게 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간파하는데, 그 과정에서 살육은 멈추지 않는다.

눈(SHOWING)에는 풍년, 입에는 흉년(TELLING)?
해를 입은 만큼 앙갚음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보이는 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대로 영화의 장면들을 요약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이르는 과정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 잔혹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어느 끔찍한 영화에서도 하지 못했던 그 장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응시했다. 사실 <용서는 없다>의 부검장면은 반전을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라는 입장이고,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에도.

1)"아니, 그냥 좀 신경이 쓰여서, 경찰에선 내가 장경철의 뒤를 쫓는다고.. 경찰에서도 장경철을 쫓는 모양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게 어떨까? 그만 뒀으면 좋겠어"(장인이 수현에게 전화로)
2)"형부 나예요. 형부는 잘 지내세요. 그래요, 무슨 일로 바빠요... 모르게 하는 일을 묻는 거예요. 아빠에게 수사자료.. 형부 마음 잘 알지만 그일을 그만 두었으면 해요. 어떤 처벌을 가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그런다고 언니가 살아돌아 오는 것도 아니고, 복수 같은 것 영화에서나 하는 거지"(처제가 수현에게 전화로)

1)의 대해 수현은 "저기요 아버님......", 2)에 대해서 수현은 "미안한데 처제한테 해줄말이 없어"라고 대답한다. 해서 처제가 반문한다.

처제: 나는 딴 식구예요. 뒤돌아봐요. 그런데 해줄말이 없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러니까 형부, 의미 없어요 이제 그만 둬요.
수현: ...이 일 그렇게 의미 없지 않아.

뭐가 '미안하고' 없지 않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대사는 이어진다. 도무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려는 개연성은 애초에 거세시켜놓고 시작하는 영화-영화 초반에 용의자 중에 한 녀석의 성기를 불능으로 만들어버리듯이-가 아닌가!
'말하기(TELLING)'를 거세함으로써 '보이기(SHOWING)'에 집중했다. 물론 이 영화에 찬반이 엇갈리듯 잔혹한 장면들을 맘껏 보여주는(여러분, CG로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답니다) 데서 눈(眼)에는 풍년(?)을 만끽한 이들이 있을 수 있으나 입(말하지, 이야기)의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무감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개연성을 획득하기 위한 말하기(TELLING)가 왜 필요하지? 그 공감과 이성적인 판단에서 무신경했다는 점에서 영화 자체가 싸이코패스적이다. 반면에 정작 싸이코패스로 보여져야 할 '악마'들은 영화 속에는 없다. 대신에 아들의 복수를 위해 조폭들(?)을 야산으로 끌고 가서 땅에 파묻는 어느 대기업회장의 자식사랑(?) 같은 무모함은 엿볼 수 있다.

크레타 섬 사람이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할 경우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악마를 보았다라고 강변함으로써 정작 이 영화에 악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오로지 악마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쭉 나열한 영화소개프로그램의 편집된 영상을 보는 기분이다. 영화 대 영화, 오버 엔 오버... <아Q정전>에는 물에 빠진 개를 끝까지 때려잡아야 한다는 노신의 유명한 글이 나온다. 제 때에 범인을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여고생, 아가씨, 별장주인인 아줌마(?), 택시강도(그들이 아무리 사회악이라도), 장인어른, 처제, 의사.... 숱한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것을 방치하는, 오로지 복수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통의 문장이라면 "…."으로 처리했어야 할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 어쩌면 이 영화의 상영불가 여부 고민은 잔혹한 장면들보다는 사회악을 근절해야 하는 소명을 띤 '시스템'의 작동불능 상황이 더 문제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러한 그것이 옳고 그느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 쪽에 유리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 사회의 현실에 대한 냉소쯤으로 받아들여야 할지-그렇다면 참 좋은 영화다.

"소설이 상품으로 유통되고 소비되어야만 하는 조건을 한탄하는 문장을 보았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소설이 상품으로서 소비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피 하루키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을 소설로서 직접 보여줬다고, 일본의 비평가가 그의 이번 작품(앞서 인용한)이 거둔 성과를 두고서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소설' 대신 '영화'라는 단어로 대체해서, <악마를 보았다>를 평가하고 싶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오리혀 영화가 상품으로서 소비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만들었노라고. 장르영화를 표방했으나 대중영화와의 '경계'가 불문명하며, 대중성을 표방한 영화로서의 '한계'가 너무도 분명한 영화라고. 어쩌면 그리스 비극 3대작가가 활약하던 시절에 이미 인간들 사이에서 연출되는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는 충분히 제작되었다, 그러므로 후세의 작가들은 참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절하고 참혹하기로 한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결코 그리스 비극이나 신화의 세계를 따라잡지 못한다. 단지 보여줄 수 있게 된 도구(TOOL)을 가지고 있다고 인간 본성의 끝을 탐색하는 작업이 진지해지고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비극은 무대에서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처절한 장면을 전달했다.

우리 사전에 복수는 있고, 그 정의를 보다 완전하게 할 뿐
사실 어떠한 사전도 온전하게 믿을 수는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불가능'이란 단어에 대한 정의가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소설이나 영화, 곧 이야기는 인간본성의 이모저모를 그리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변화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탐색을 멈출 수 없다. 이창동은 왜 <밀양>과 <시>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에서 '용서'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것일까?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영화)는 앞으로도 우리 인간의 삶이 계속되는 동안 새롭게 변주될 것이다. 아래 러셀의 지적처럼 만족할 수 없지만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고, 어느 시대나 가장 최고의 작품은 이것이 완결이라고 '만족'하거나 '착각'하게 만드는 작품일 테니까,

"어떤 말을 정의 한다는 것은 언제나 같은 그것을 다른 말로 정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말을 골라서 그것은 정의 없이도 이해될 수 있는 말이라고 간주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버트란드 레셀,

너무 가혹한 평가였다면, 장르문학(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쯤의 푸념쯤으로 여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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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든손예쁜손 2010-08-1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 영화만 사랑해달라고 하기 전에, 좋은 영화는 알아서 보잖아요.

timeroad 2010-08-17 13:10   좋아요 0 | URL
제작비의 한계가 영화의 한계도 되지만, 대로는 그 한계가 작품성 높은 작품을 만드는 역할도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치 2010-08-1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글 감사해요. 영화를 보기는 좀 꺼려지지만, 책읽기에 도움을 주는 글인듯해요

timeroad 2010-08-17 13:13   좋아요 0 | URL
영화 보시는데 부담 드린 것은 아니지요, 어쨌거나 부담을 준다는 것은 분명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나사랑 2010-08-1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았다 풀어주고 잡았다 풀어주는' 좀 심했지요? 하긴 그러기 위해서 싱겁게 두 악마(?)가 만난 것이지만..

timeroad 2010-08-17 16:3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리뷰를 쓰고 난 다음에 생각해본 것인데, 동해안에서 명태(생태)를 가공하여 북어를 만드는 과정이나 포항 등지에서 꽁치로 만드나요, 과메기를 만드는 과정이 떠올랐어요. 밤이나 추우면 얼었다가 해가 드는 낮이며 해동되고 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처럼, 복수놀이를 하는 것이 꼭 그런 식이라는..

라라 2010-08-1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에서 최근 영화, 최근 소설까지 아우르는 글 잘 읽었습니다. 소금의 역할을 하시는 듯

timeroad 2010-08-17 16:39   좋아요 0 | URL
소금도 소금 나름이겠지요. 햇살에 잘 말라 굳어진 자연산 소금이기를, 감사

yess1985 2010-08-1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고요, 영화는 보겠지만 큰 기대는..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작품외적인

timeroad 2010-08-17 16:41   좋아요 0 | URL
저 때문에 영화가 싱거웠다는 말씀은 하지 않기입니다.

motoko3 2010-08-1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속시원한 글입니다. \뭔가 아쉬움을 잘 드러낸듯 싶네요

timeroad 2010-08-17 16:40   좋아요 0 | URL
아무튼 고마워요, 잘 읽으셨다니..
 

시대에 따라 우리는 플루타르코스를 플루타크, 플프타르크로도 불렀다. 우리말은 외국말의 우리말표기에도 뛰어난 언어라서, 이렇듯 인명이건 지명이건 외래어 표기의 변천에서도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어를 원전 그대로 충실하게 읽은 것으로(옮긴이 천병희 님), 앞으로도 그를 플루타르코스라고 하는데 이의는 없을 듯하다. 가령, 플라타너스를 프라타나스, 플라타나스로 발음하고 표기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인터넷 검색에서도 그렇고 한순간에는 힘들겠지만, 외래어표기에 대한 기준이 정착되었으면 싶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정확하게는 그의 <<비교열전>>에도 플라타너스가 언급이 된다.  <테미스토클레스 전>에서,  

"아테나이인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존경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타너스 취급을 한다며, 날씨가 궂으면 가지 밑으로 피신을 하지만 날씨가 좋아지기만 하면 가지를 쳐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곤 했다."(158면, 천병희 옮김, 숲 펴냄, 2010년) 

책을 읽다가 이 대목 좋아,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야, 라는 생각에 밑줄을 긋거나 내 생각을 덧붙여놓는 그런 대목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오늘 그런 대목 가운데 하나, 플라타너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테미스토클레스에 관해서는 앞서 한 개의 글을 이곳(알라딘)에 쓴 적이 있거니와 그에 대해 아는 이들은 정말 그다운 말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리라. 그만큼 그의 인생이 그랬고 그가 민중(시민)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때도, 또 그들의 질투와 시기 혹은 경계심 때문에 도편추방까지 당해 쓸쓸한-이전의 화려한 인생에 비교하여- 노년을 보낸 점을 생각하면 절묘한 지점이다. 이렇게 민중들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왜 추방까지 당했을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는데, 자신의 재능을 믿고 너무 나대다가 그런 불행을 자초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뒤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지음, 천병희 옮김, 숲펴냄(2010) 

플라타너스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수이면서 녹음수이다. 위 인용은 좀더 정확하게는  '날씨가 궂으면'의 경우, 날씨가 궂여 눈비가 오는 날일 것인데, 비오는 날에 우산이 없으면 한동안 그 넓은 잎파리가 비막이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가장 그 고마음을 느끼는 때가 요즘처럼 땡볕의 폭염기가 아니겠는가.  

필자의 초등학교 교정에는 운동장 한 귀퉁이에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가 지금도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이 기괴하다. 마치 말잔등 모양으로 밑둥에서 2미터쯤 되는 지점부터 한 차례 구브러지고 그렇게 말등에 해당하는 부분이 3미터쯤 이어지다가 다시 수직으로 솟구쳐올라 멀리서 바라보면 말뚝박기 놀이감으로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시절 우리는 말잔등에 오르듯 그 나무를 타고 올라 놓았던 추억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 나무 거대한 그늘 아래에는 비록 시멘트로 만든 것이지만 의자들이 있었고, 오르간을 옮겨 음악수업을 하곤 했는데, 우리는 그곳을 녹음교실(綠陰敎室)이라 불렀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무울에에~" 그런 합창이 이어지는 동안 어느덧 의자도 조무래기들도 오르간도 모두 초록으로 물들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학교의 건물이 불탔는데 당시는 지붕이 기와였다고 한다. 그런데 불에 달궈진 기왓장이 날아와 이 나무의 줄기에 상채기를 냈는데 그것이 허리가 구부러지게 된 전설이고 내막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그런 기막힌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학교 운동장-이 넓기도 했고 한가운데는 아니지만-의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어 당장 파내서 옮겼어야 할 나무가 애매한 지점에 서서 버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사연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어쨌거나 지금도 내 기억 속 플라타너스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로수는 아니다.  

가로수로서의 플라타너스는 참으로 가혹한 운명을 해마다 반복적으로 맞이한다. 아주 속성으로 자라니까 전국의 산에 아카시나무나 들판 곳곳의 포플러나무가 그러하듯, 플라타너스는 녹화사업을 주창하던 개발독재 시대에 안성마춤인 수종이었으리라. 가령, 귀화식물 군(群)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줄기차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영화 <화려한 휴가>의 첫 장면인가 담양의 그 가로수)와 비교하면 해마다 거의 모든 가지가 잘리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플라타너스의 운명은 가혹하다. 서울의 가로수 가운데에는 상당수가 은행나무이고-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 첫서리가 내릴 즈음에 거의 한 나절 만에 잎을 떨구는 은행나무에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그리고 은행나무가 늘 가까이 있었음을 인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곳에 따라 감나무(양천구의 경우, 구의 상징나무라고 함)도 있고, 드물게 마로니에(서초구 구반포에서 신반포-고속터미널로 이어지는 대로에 있다)도 있지만 플라타너스의 비중이 크지 않나 싶다.  

그런데, 과연 테미스토클레스가 살았던 그 시대에 플라타너스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던 것일까? 나는 앞서 인용에서 전기 전체에서는 그야말로 곁가지에 해당하는 이 나무에 대한 탐색에 들어갔다. 내 상식으로 우리가 '플라타너스'라고 부르는 나무는 미국 혹은 북아메리카 원산이고, 우리말로는 '양버즘나무'로 불린다. 그리고  '서양 버즘나무'를 즐겨 심은 때가, 메타세쿼이아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역사와 거기서 거기라고 알고 있다. 버즘나무(혹은 양버즘나무, 플라타너스)는 그 줄기가 얼굴(혹은 피부)에 난 버즘처럼 생겨서 그리 부르게 되었다. 표준어로는 '버짐'이 맞다.

정확성을 위해 실제로 검색해보니, 양버즘나무(Platanus occidentalis L.)는 <북아메리카 동부가 원산지인 거대한 교목으로 흔히 플라타너스로 불린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아테나이)에서 플라타너스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우리가 아는 플라타너스와는 조금 다른 나무라고 할 수 있다. 해서 이번에는 버즘나무(Platanus orientalis L.)를 찾아보았다. "버즘나무는 서아시아에서 지중해 지방에 이르는 지역이 원산지인 나무"라고 나와 있다. 분명하게 서아시아와 지중해를 언급하고 있다. 흔히 외래어로 부를 때는 '플라타너스'라고 하면 그것이 양버즘나무도 버즘나무도 포괄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버즘나무'로 번역하고, 주를 달아 저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버즘나무의 경우,  

"30m까지 자라며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특성상 천근성, 속성수이므로 뿌리가 얕고 위로 높게 자라며 잎이 넓기 때문에 다른 수종에 비해 여름철 우기시 비바람에 의해 도복될 우려가 있어 가로수의 경우 매년 늦겨울에서 초봄사이에 전정작업를 실시한다." (위키백과)

우리 주변에서 보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와 그 생태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가혹하고 무참한  전정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알 수 있다. 정말 앙상하고 을씨년스럽게 거의 원줄기만 남기는 특단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또한 테미스토클레스의 비유나 그것을 전기에 인용한 플루타르코스의 섬세함이 새삼 돋보이며, 2천년도 넘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게 된 것이, 원문에 대한 직역과 의역 사이에 다소 의역에 가깝지 않나 하는 한 예시로 꼽았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옮긴이의 번역을 살핀다. 특별히 어느 것을 골랐다기 보다는 집에 있는 것으로, <<플루타르그 영웅전1>>(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인이 자신을 존경하거나 찬미하지 않고 대나무처럼 여긴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날씨가 궂을 때 그 나무 밑으로 피했다가, 날씨가 좋아지면 바로 그 잎을 뽑거나 가지를 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220면)  

놀랍게도 홍사중은 플라타너스를 '대나무'로 번역하고 있다.   

대나무가 가로수처럼 흔한 나무인가 하는 질문은 접어두자. 그 밑으로 피할 수 있는 나무인가, 잎을 뽑는 것은 할 수 있으나 대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대나무로 번역한 것도 문제지만, 본래 발화자의 비유와 한참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번역서를 봤다. 범우사의 <<플루타르크 영웅전1>>(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38-1, 김병철 옮김, 범우사 펴냄, 1999-02-05)에는,  

"그는 말하기를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그저 쥐방울나무 취급을 할 뿐이라, 날씨가 사나울 때는 그 그늘 밑에서 피신하지만 날씨가 좋아지면 곧 잎을 따고 가지를 쳐버린다고 하였다."(330면)  

양버즘나무는 쥐방울나무로도 불린다. 서양 버즘나무(플라타너스)인데, 아메리카프라타너스, 서양플라타너스, 양방울나무로도 불린다. 그러니 여기서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라는 등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쥐방울나무라고 함으로써 학명상 '버즘나무'일 수도 있는 가능성은 배제된다. 그런데 '잎을 따고'라는 풀이는 위 홍사중의 '잎을 뽑거나' 못지 않게 녹음수로도 쓰이는 거대하게 큰 플라타너스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 잎을 따겠는가, 아니면 잎을 딸 정도 크기의 플라타너스 아래서 눈비를 피하고 드센 태양광을 피하겠는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리스로마신화 등 관련서적을 많이 펴낸 이윤기 씨의 해석을 살폈다. 아마도 조선일보에 연재한 것을 어느 카페에 옮겨넣은 글을 통해서인데, 이 분은 <[플루타크 영웅열전] 아리스테아데스④ - 정적 테미스토클레스>(조선일보 (1997.11.24)에서, 아리스테아데스를 다루면서 테미스토클레스를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이분은 영웅열전으로 왜 테미스토클레스를 다뤘는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이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열전에서와는 달리 별도로 연재글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다루지 않고, 아리스테이데스(천병희 님 표기)의 인물됨됨이를 보완하는 자료 정도로 쓰고 있다. 어쨌거나 이윤기는,  

"아테나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아. 그들에게 나는 버짐나무(plane tree)와 같아. 날 궂으면 내 아래로 모여들지만 날이 개면 내 잎을 따고 가지를 잘라 버릴 것이거든."(출처는 위 본문에) 

이라고 옮겼다. "plane tree"라는 영어명 표기에 '버짐나무'라고 표기했다. 그런데, '버즘'은 '버짐'의 옛말로, 강원도나 제주에서 사용하는 방언이다. 그런데 우리말 나무명으로 굳어진 말이 '버즘나무'이므로, 고유명사에서까지 '버짐'을 고집하는 것은 너무 나가지 않았나 싶다. 어쨌거나 대체로 원만한 번역이나 "잎을 따고"라고 하는 대목은, 적절치 않게 생각되는 위의 두 건의 번역과 대동소이하다. [버즘[명사]<방언,옛말> 1. ‘버짐’의 방언(강원, 제주). 2. ‘버짐’의 옛말.] 

누가 딱딱한 논문을 읽는 듯한 주석을 읽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하고자 할 때는 설명이 불가피하다. 그냥 지나쳐도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 사소해보이는 이 대목이 테미스토클레스의 생각이나 인물 됨됨이를 단적으로 읽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주민소환제가 발의되는 과정에서 또 그 실효성을 두고도 아테나이의 도편추방제도는 아주 중요하게, 그리고 대입수험생들의 논술주제로도 예시되지 않았던가, 테미스토클레스는 민중들의 존경과 사랑에 힘입어 아리스테이데스를 도편추방해버리며, 나중에는 자신이 도편추방을 당하는 처지가 되기도 하는데, 대중들의 사랑과 그들로부터의 인기라는 것이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된다는 비유는 어느 대목 못지 않게 < 테미스토클레스 전>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나는 그리스어 원문을 본 적이 없지만, 또한 봐도 정확한 번역을 할 수도 없지만 아마도 영어로 된 책을 번역 원본으로 삼은 데서 다른 세 권의 책이 '잎을 딴다'는 것과 같은 공통점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이외에도 여러 권의 번역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다만 이 글을 쓰는 동안 구할 수 있었던 것들만을 비교대상으로 삼았음을 밝혀 둔다.  

플라터너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김현승 시인(1913~1975)이다. 시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잡문은 거의 남기지 않으셨다는 것, 에세이도 거의 쓰지 않았으며 오로지 시 쓰고 강의(숭실대학교)하고 사셨다고 한다. 그는 <플라타너스>라는 시를 짓고 세상에 발표하던 무렵, 그 이전부터 그후로도 오랫동안 광주(광역시)의 양림동에서 생활했다.  

"나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플라타너스> 2~3연>

어느 문학평론가는 이 시를 소개하고, "외로울 때 같이 걸어주는 길 플라타너스 모가진 왜 저리 댕강댕강 처벼려 살벌하게 하나요!"라고 느낌을 적었다(인터넷 글쓰기 같아 이름은 소개하지 않는다). 플라타너스를 생각할 때 공감이 가는 한마디다.  

김현승 시인이 광주에 머물던 시절에 자주 어울렸던 천경자 화백은, 위 대목을 인용하며 김현승 시인을,   

"이제 알 것 같다.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깨닫지 못했던 김현승 씨의 절대고독과 견고한 고독의 경지를 말이다. 그분은 삼십 대에 다 깨달았던 것이고 그 숭곡한 차원에서 뭇 속물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김현승 시 논평집>>김인섭 지음, 숭실대학교출판부, 2007-06-28, 재인용)

라고 회고하고 있다. 시인은 궁핍한 화가를 찾았다. 아들 손에 쌀자루를 들려 안으로 보내고 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그 기억을 천 화백은 아른 기억으로 되살린다.  

김현승 시인이 오래 살았던 광주 양림동은 그 지역의 작가와 시인, 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에게 파리의 몽마르뜨언덕에 비유할 만큼(다리 아래로 흐르는 광주천 거기는 세느강이 되나) 특별한 곳이다. 필자 또한 그곳의 작가와 화가를 만나기 위해 자주 들렀던 곳이지만 거기에서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보았는지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그 화가 중 한 사람이 한희원 화백인데, 2005년 초(1.28-2.11) <오아시스 광주전>(광주신세계 갤러리)에 한 화백은 특별한 작품들을 출품 전시했다. 당시에는 양림동의 오래 되고 낡은 집들이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헐리는 중이었고(2005년 5월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가고 7월부터 본격적인 재개발공사가 시작되었음)  이미 700여 세대가 양림동을 떠난 시점이었던 것.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 지상의 마지막 풍경을 향해 먼지 나는 거리며, 낡은 전봇대 사이로 보이는 퇴락한 골목길, 거의 쓰러져 가는 집들 사이로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의 누이와 형, 친구들이 걸었던 풍경 속으로….”(<전라도닷컴>, 2005-03-16, 재인용> 

 

(사진은 <전라도닷컴>, 한희원 화백의 그림 중에서) 그리고 한 화백은 철거작업이 진행되는 양림동 헐려진 집들 사이를 하루종일 걸으며 버려진 창틀을 주웠다. 한때는 그 창틀로 보았을 풍경들을 생각하며 창틀을 액자 삼아 그림을 그렸다.  

문화의 거리니 예술인의 거리니 예술인 아파트니 하지만, 정작 이런 곳이야말로 일부라도 남길 수 있는 운치가 있는 예향(藝鄕)고 문화수도 어쩌고 하는 그이들에게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자본과 이윤을 앞세운 시대흐름에는 속수무책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의 고향도 사라졌다. 가혹한 전정(전지)작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생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영어 원서를 줄줄 읽으셨다는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와 어감도 비슷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의 한 대목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원전은 원전대로 옮기면서 우리말과 우리가 쓰는 고유명사(학술용어)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정서에도 걸맞는 번역을 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찌는 여름,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바라보며, 혹은 그 아래를 거닐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해버렸다. 플루타르코스의 플라타너스, 너의 파아란 우산 아래에서,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아래 사진은 위키백과에서, 추후에 본문과 관련된 사진으로 대체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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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0-08-10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테나이인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존경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천병희 옮김)라는 대목이, 글을 마치면서 보니까 사실은 다른 번역본과 더 큰 차이점이 있는 것 같네요. 이어지는 플라타너스의 비유, 곧 민중들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고 변덕이 심해, 라는 대목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앞의 문구가 다른 번역처럼 ***하지도 **하지도 않아, 가 되어서는 곤란하지요.

책든손예쁜손 2010-08-10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지만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습니다. 플라타너스와 김현승과 사라지는 창작의 고향, 연길이 재밌습니다.

timeroad 2010-08-17 13:14   좋아요 0 | URL
고맙고요, 너무 오지랖이 넓었나요. 그냥 좀 특별한 리뷰성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여치 2010-08-1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코 보는 가로수가 달리 보이는 것 같아요. 책도 그 번역도 참 다르구나 생각되고요.

timeroad 2010-08-17 13:15   좋아요 0 | URL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우리 삶도 그러했으면 참 좋겠어요. 플라타너스는 해마다 거의 IMF상황인 거잖아요.

미나사랑 2010-08-1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흘러도 나무는 변함이 없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데 사람들은 참 많이 위대해지고 힘세 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만아닐까싶어요

timeroad 2010-08-1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사람 사는 이치라는게 그때나 지금이나, 아니 어쩌면 그 때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움직이지 못하지만 참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저 나무들한테서. 그 정적인 생명의 방식이랄까 그런 생각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