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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오게 된 의대생
김보규 외 70인 지음 / 조윤커뮤니케이션 / 2020년 9월
평점 :
들어가는 말
국회의사당에 있다고해서, 투표로 선출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치인은 아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의료를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표하고 있는 저들은, 아무리봐도 정치인을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싶다. 거리로 나왔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자칫 팩트체크라는 단어로 마치 사실인 양 포장되어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거짓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흐름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공공의대의 시도가 실패로 끝날지 혹은 성공으로 끝날지는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이고, 중국은 중국이며 일본 역시 일본이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민족성과 우리네 민족성은 엄연히 다르고, 정책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를 것이며, 그 정책의 결과로 양성되는 의사들 역시 다를 것이다. 다만, 여러 현 상황들을 보고, 이 책을 통해 의대생들의 주장을 본 필자의 생각은 왜 협상테이블에서 일어날 생각만 했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는 일이 공공적인 일이라서 존재마저 공공재일 수 없다'면, 애초에 이미 그들은 의사라는 생명을 구하는 존경받는 히포크라테스에서 일개 월급쟁이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공공재적인 것이 사유적인 것의 문제
공공재적인 것이 사유적인 것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중간에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하의 의사 급여에 대해 언급했듯이,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체제에서 공공재적인 것들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는 다양하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것은 의료행위이지만, 유사한 사례가 바로 보험이다.
보험은 모두가 알듯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가입자 모두가 소액의 금액을 모아 대규모의 자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전 선조들의 계나 두레와 비슷하다. 서로 조금씩 모아놨다가 누군가 힘든 일이나 변고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보험은 대기업의 판매상품이 되었다. 보험이 학문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대기업 보험사는 수익을 위해 투자상품까지 발을 넓히고 절대 안전자본에 머물러야할 가입자들의 돈이 위험자본까지 팔을 뻗는다. 더 큰 문제는 가입자들의 문제이다. 범죄에 해당하는 보험사기야 당연한 문제고, 거기에 일반 가입자들마저도 모럴해저드에 빠져있다. 눈 먼 돈이라는 인식은 사회 공공재적인 성격인 보험제도 자체가 마치 범죄를 유발하고 정상적이고 착한 가입자들만 피해를 보는, 기괴한, 없어지는게 차라리 나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지금 의대생들의 투쟁 역시 약간은 그런 시각으로 보게된다. 수가라는 것의 계산에 대한 설명 중, 책에서 이야기할 때 강조한 것은 '환자가 더 납부할 돈은 없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준다'라는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건강보험공단의 급여는 모두 결국 모든 국민이 '강제적'으로 납부하고 있는 건강보험료이며, 매년 적자인 돈을 메꾸는 국민들의 혈세이다. 거기다 의약분업에 대한 언급 중, 자기들 스스로 '그때는 의사가 약값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며 불공정을 인정한다. 상대적으로 의료지식이 없는 환자들은, 시골에서 같은 약을 처방받을 때 만원을 낸다면, 경쟁이 심하거나 상대적으로 지식이 많은 도시에서는 같은 약을 오천원에 처방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거기다 그들이 말하는 '원가'라는 것에 대한 근거가 없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원가'에서 본인들이 받는 인건비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이다. 물론 장기간 엄청난 공부를 하고 고생을 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 반대급부로 높은 급여를 받는 것 또한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국민의 건강보험료와 비급여 비용으로 모든 돈을 받는 그들이, 결국은 수가 조정을 해달라며 '추가로' 건강보험공단에서 비용을 받아야 적자가 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적인 예로, 그렇게 적자만 나는 사업이라면, 왜 그렇게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그리고 수가의 문제로 기피과가 생겼다고 하는 것 역시 단순히 수입의 문제인지 스스로 되물어 봤기를 바란다. 동맥이 잘려 피가 얼굴로 튀고, 주말 새벽에 자다가 팔다리가 잘린 환자로 인한 긴급 수술 호출로 뛰쳐나가는 것 때문에 기피한 것은 아닌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당장 죽어가는 환자의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해줄 사명감이 있는 의사라면, 애초에 그 수가를 계산하고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책에서 김국종 교수님의 적자에 대해 언급했는데, 실제 그런 특수한 의사가 몇이나 되는가. 흉부외과로 개원의가 없다? 어느 의사가 흉부 수술이 가능한 모든 장비를 갖추고 개원의로 나서는가. 애초에 그런 장비를 갖추고 지방지역에 개원을 할 사명감을 가진 의사라면, 수가 운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의대는 문제는 특히나 더 그렇다. 본인들의 수익에 대해 수가 상승에 대해서 주장하던 이들이, 갑자기 나라의 세금에 대해 걱정한다. 공공의대를 설립해서 그들에게 손해가 가는 것은 무엇인가. 왜 공공재로써의 위치를 포기하면서 자기들에게 피해는 없는 공공의대에 대해 나라의 혈세 운운하며 반대하는가. 대의는 어디에 있는가. 의료시스템의 지속성? 모든 사회구조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것보다 우선은 구성원이 필요하다. 애시당초 국시 자체도 거부하는 의대생들보다는 차라리 공공의대를 나온 의사들이 더 시스템 유지에 필요할 것이다. '
거리로 나왔으니, 세상을 둘러 보길
사법고시가 없어지고, 로스쿨 제도가 생기면서 변호사 역시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로스쿨 제도에 대한 반대 역시 엄청났으나, 어쨌든 현재 정착이 되었고, 졸업생들이 슬슬 법조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법조계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실제로 월수입이 2백만원도 안된다는 변호사 이야기도 루머인듯 아닌듯 심심찮게 들려온다. 의대정원이 늘어나면 왜 문제가 되는가. 의대정원을 늘렸던 일본의 사례를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단순 산수다. 의사의 수가 늘어나면, 당연 의사 1명당 환자의 수가 줄어들고, 의료의 질이 높아진다. 지방에 공공의대를 설립한다해도 결국은 모두 수도권으로 갈 것이다? 결국은 수도권이 수용할 수 있는 의사의 수는 정해져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에 밀린 의사들은 지방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의 상황을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서울에서 경쟁에 밀렸다고 해서 그들의 진료도 못보는 것은 아니다. 지방은 그런 의료인력도 부족하다.) 그럼 지방에 의료인이 늘어나고, 결국은 전 국민의 의료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단순히 약만 타려고 매달 대도시로 버스타고 택시타고 나가야만 하는 어르신들이 줄어들거란 이야기다. 이 모든 결과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의료인들의 피해가 아닌가? 이미 공공재로써의 삶을 포기한다면, 공공재로써의 대우도 바라지 말길. 사회적으로 오피니언으로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존경받을 행동을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