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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수 세기 전부터 인간의 본연의 성질에 대한 논의는 그치질 않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악설에 좀 더 마음이 기운다. 하지만, 한 편으로 성악설로만 해석해 버리기에는 성선설을 부연하는 인간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도 원리원칙과, 기본과, 최소한의 인간다움에 목 메는 타입이긴 하지만 과연 나 역시도 극한의 상황에 처한다면 내 신념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 원래 성악설의 편에 선 나니까, 내 신념을 지킨다는 건 그 반대이려나.
살아남은 것은 이기적인가
핀의 가족과 밥의 가족, 벤스, 모와 카일은 우연찮게 한 겨울 툰드라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조난되고, 그 조난 과정에서 구조에 이르기까지 본인 혹은 본인의 가족 생존에 대한 이기심과 집념에 따라 행동한다. 배우자와 세 자녀의 생존에 우선 순위를 둘 수 있는가. 내 자식과 그 자식의 친구의 생명에 우선 순위가 있는가. 앤은 이미 죽은 자식의 옷을 벗겨 친구의 자식이 아닌, 본인이 책임지기로 한 모린에게 준다. 그런 상황을 겪은 벤스는 캐런에게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 편집증적인 앤의 아들 오즈를 눈밭으로 내몬다. 벤스는 가족이 없는 사고현장에서 치기와 반항심으로 현장을 떠나고, 캐서린은 사랑하는 벤스를 따라서 가족을 떠난다. 카일은 애초에 '없던' 사람인만큼, 모든 '관계'가 없는 이유로, 그 어떤 애증이 없이 객관적으로 상황에 대처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생존에 대한 욕망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이타심이든 이기심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 따뜻한 난롯불을 쬐며 뜨거운 코코아에 곁들이는 비스켓같은 거다. 최소한 그 자리에서 죽어나간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살아남은 자를 이기적이라고 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죄
산 자는 살아가야한다. 죽은 자의 짐을 지고. 이 소설이 색달랐다고 평할 만한 이유는, 단순히 재난이나 역경르 이겨내는 인간 승리적인 부분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짊어진 죽은 자들의 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된 도리로, 누구든 밥을 욕할 수 있다. 벤스가 죽었어야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앤은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욕하고 비난하더라도 명심해야할 것은, 그들은 죽은 핀과, 오즈를 마음에 담고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함께 서 있었고, 그 등을 떠밀어 본인이 살아남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마음속으로 비난과 힐난을 이미 감당할 준비가 돼있고, 그 누구도 면전에 말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수 백 수 천 번은 들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본인 역시 그러한 상황에 서 있을 때,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되묻고 되물어보고 확신에 찬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그를 욕해선 안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