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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열쇠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5
대실 해밋 지음, 홍성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소설은 언제나 허구를 가장하지만, 결국은 현실을 반영한다. 물론, 소설의 배경이 매우 오래전(1920년대)이므로 상대적으로 현재에서는 흔치 않은(과연) 직접적인 범죄들이 주요 사건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정치를 보자면, 그것이 말 그대로 형법의 적용을 받는 직접적인 범죄가 없어 보일 뿐, 실제로는 그 보다 더 추악하고 더러우며 소설같은 일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오히려 유리열쇠 속의 정치판은 순수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순수소설에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읽기 전, 그리고 읽은 후 머리 속에 내내 떠오른 것은 재미있게 봤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시즌 3 이후로는 조금 미지근해졌지만)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음험한 계략과 범죄, 인간의 본모습.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작가의 경고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식욕, 성욕과 금전욕 등의 모든 욕구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것은 아무래도 명예욕이 아닌가싶다. 최소한 그것들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연의 잠재된 무의식의 욕구가 아닌 이유로, 그 어떤 변명으로도 순수해질 수 없기 때문에.
욕망하는 순간, 유리열쇠는 깨어져 버린다.
유리열쇠라는 제목과, 책 표지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유리열쇠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욕망 발현이다. 작 중 단 한번 재닛이 본인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이 유리열쇠는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요소다.
상원의원 출마를 앞두고 그 후원인으로 어둠의 세계 보스인 매드독과, 그 후원을 받는 헨리, 그리고 매드독의 마음을 빼앗은 헨리의 딸 재닛. 그리고 반대파인 오로리. 이들은 모두 야욕에 휩싸여 헨리의 아들인 타일러의 사망으로 막다른 종막을 향해 달려간다.
그 와중에 네드는 매드독의 책사로 매드독을 위해 냉철한 판단으로 맡은 임무를 수행해나가지만 아무런 욕망이 없는 그로써는 그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저 흘러가는 조각배일 뿐,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것은 마치 이미 욕망으로 들어찬 방문을 유리열쇠로 열어버린, 그리하여 그 모든 욕망의 밀어내는 힘을 이겨내지 못해 이제는 방에 들어설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어떤 사유로든, 욕망을 막아설 수 있는 것은, 그 방문을 잠글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또 다른 욕망의 열쇠인 것이다.
담백한 추리소설
아무래도 오래된 작품인만큼, 온갖 반전과 복선과 술수로 뒤섞인 요즘 추리소설과 비교하면 상당히 단순하고 담백한 편이다. 네드의 케릭터 역시, 전략가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거의 무모한 방식으로 문제에 부딪힌다. 초반부 상당한 한량으로 비춰지기도하는데, 그런 모습을 왜 표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정도로 계산적이며 치밀하다. 매드독 역시, 그정도 위치에 올랐다는 설정에 비해서는 과하게 무대포이며 고집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몰입감을 주는 것은 마치 담백한 국물이 있는 한식처럼 질리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흔히 막장이라 불리우는 드라마나 소설들은 잠깐 맛을 보기에는 자극적이고 화려하여 재밌을 수 있으나 끊임없는 반전이나 과한 설정에는 질리게 마련이다. 반면 유리열쇠는 마치 뜨끈한 설렁탕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질리지 않고 그 바닥까지 읽어낼 수 있는 담백한 추리소설이었다. 최근 그 화려한 소설들에 조금 물렸다면 한번쯤 담백하게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