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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소설을 읽는 내내, 그래도 나름 국내 스릴러 영화중에서는 재미있게 봤던 '화차'가 생각났다. 신분을 속이고 사는 여자와, 그 여자의 야망에 사랑이라는 허구로 이용당하는 도구인 남자. 꽤나 두꺼운데다가 2권이나 되는 소설임에도 사건 사건의 연결이나, 중간 중간 설핏 드러'내는' 진실들이 읽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꽤나 빠르게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이런 소재의 소설이, 영화가, 드라마가 상당히 많은 것은 사실이다.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거나 아니면 직접적으로 훔쳐서 사는 사람. 혹은 자신의 직업이나 출신, 심지어 성별까지도 속이고 본인의 욕망을 이루기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과연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오늘 우리 누구든, 단 한 번도 타인에게 거짓이 없었던 사람이 있을까.
악의 꽃은 철저하게 핀다.
스릴러에 가까운 만큼 최대한 스포일러는 피하기 위해 줄거리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만,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미후유 같은 '악'인 들은 매우 철저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운의 주인공이자 최악의 로맨틱가이인 우리의 마사야는, 부친의 사망과, 남은 빚더미, 가업인 공장의 부도와 대지진이라는 대공황 + 혼돈 속에서 사소한 악행(사소하지 않지만, 미후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그저 약간의 소질을 보이는 소소한 악행이었으리라 생각된다.)을 저지르고 말고, 이는 미후유의 눈에 띄면서 그의 약점이자, 미후유에게 자질을 '어필'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그리고 마사야는 매우 철저하게 이용당한다.
마지막까지도.
우리의 삶 속에도 사소한 악행들을 저지르는 인간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비난의 돌팔매를 맞지만, 진정한 악인들은 오히려 추앙받고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린다. 물론, 그들 역시 (난 무신론자이지만) 무언가의 힘에 의해 시간이 흐르면 결국엔 그 악행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언제나 선한 사람들의 피해와 슬픔은 이미 땅에 묻힌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악은 철저하게 피어나며, 그 향기는 너무 향기로워서 선한 사람들은 홀리고 만다. 마사야처럼.
환야. 거짓이라도 아름다운.
책 표지에는 매우 환한 달이 떠있지만, 그 어느 곳도 밝게 비추지 않는 밤을 남녀로 보이는 한 쌍이 걷는 모습이 보인다. 이 표지가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아름다움을 향해 모든 것(그것이 인간성이라도)을 포기하고 치닫는 미후유는, 비록 아름다울지라도 결국은 칠흑같은 밤같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을 쫓는 인간은 칠흙의 밤에서 심연의 바닷속으로 실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