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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고래 요나 - 제1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명주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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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고래 요나라고 적는다. 4월 첫 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짬이 났다.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여러 곳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종이 파쇄기 앞문을 열고 잘린 종이가 가득 담긴 검정 봉투를 꺼냈다. 분리수거장 폐지함 앞에 내려놓았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중앙 정원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집게로 주었다. 밤새 촉촉하게 곱게 내린 비가 물방울로 풀잎에 매달려있다. 클래식 FM 라디오 진행자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6번을 소개한다. 자신이 바이올린을 처음 접하게 했던 음악이라는 안내와 함께 나오는 선율에 살짝 마음이 뭉클하게 움직였다. 소설 󰡔검푸른 고래 요나󰡕를 읽는 내내 그런 마음이 인 기억이 없다는 데 생각이 뻗쳤다. 대신에 검은색, 푸른색, 푸른 눈과 파란 별처럼, 그 두 색과 두 색이 섞인 색이 어른거린다.

올해 21일 일기장에 적은 내용이다.

검푸른 고래 요나의 마지막 장을 어젯밤에 마구 읽었다. 급박하게 상황이 치닫다가 엉뚱하게 일제강점기 사할린 이주민 이야기다. 누구 이야기인지 아직 모른다. 다시 읽어봐야 한다.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대개의 소설 속 이야기가 그렇듯, 단순하다. 고래 인간, 인간도 고래도 아닌 모호한 존재이자 애매한 사람 아닌 사람이 지구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바다 아래 바다에 간다. 그 고래의 고기를 먹고 싶은 인간이 있다. 현실도 자연도 모두 모호한데 인간은 무엇이든 분명하게 나누려고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인공인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떠올랐다. 그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했고 무경계에 선을 그었다. 완전성, 절대성 등에 우주와 자연이 거리를 두듯 어떤 인간도 거리를 둔다.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를 향한 그리움, 동경일까. 완벽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는데 자꾸 그것을 이상(理想)으로 둔다. 본성이기보다는 열망의 표현이겠지.”

날것 그대로의 감상이다. 뭔가 뻔한 결말을 기대했다가 당한 기분이었다. 단순한 이야기인데도 혹시나 뭉클하고 진한 감동에 잠시라도 황홀한 감정에 빠지고 싶었던 이 내밀한 욕망이 들켜서 내심 부끄러운데도, 아닌 척하는 뻔뻔한 내 모습을 본다. 그동안 술술 읽히면서도 이야기가 잘 연결되어있는 소설에 익숙한 탓이다.

요나는 인간도 아니고 고래도 아닌, 인간이면서 고래인 남자아이다. 구희가 상상임신으로 석 달 동안 품었다 태어난 고래 인간이다. 구희에게 요나는 서해에서 침몰한 배에서 죽은 쌍둥이 남매 구선이다. 구희는 동정녀 마리아를 떠오르게 했다. 검색해보니 요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선지자였다.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고래인지 상어인지 모를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나흘 간 고난을 겪고 살아난 인물이었다. 예수는 요나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사람 손이 있는 고래 인간 요나는 고래 세계의 구원자다. 그물을 뜯어내고 걷어내 새 삶을 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괴물이다. 요나가 태어날 때 사랍이 곁에 있었다. 사랍(Seraph), 처음 읽을 때는 사람의 오타인 줄 알았다. 옛 히브리어 성경의 이사야서에서 한 번 나오는 초자연적인 존재 중 하나란다. 최고의 천사다. 예수가 탄생할 때는 동방박사들이 왔다. 소설 검푸른 고래 요나는 구약성서의 요나를 밑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시점이 혼란스럽다. 어떤 장면에서는 전지적 시점이다가 곧바로 내 공격적인 상태를 본 고모는이라고 일인칭 시점으로 바뀐다. 검정색 다이아몬드 표식과 검정색 별 모양 표식이 의미하는 바를 분별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소설을 읽다가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냥 즐기기에는 속이 메슥댔다. 주미와 혜미, 구선과 구희, 주미의 아빠와 고모, 광주 투입 작전에 항명했던 구희의 아버지(요나의 할아버지), 인왕산에 있는 브이아이피, 준식 삼촌과 철우 오빠 등, 등장인물이 헷갈렸다. 러시아 소설에서 한 명의 등장인물 이름이 여러 개로 나오는 바람에 동일인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던 경험과 비슷했다. 특별한 소설이다. 재미없다. 주미 이야기는 미끄덩거리다가도 검정색 양복쟁이 이야기에 가면 꺼칠꺼칠해진다.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미끄러진다. 불편하다. 이야기를 즐기기에는 그 즐김이 뚝뚝 끊긴다. 인간의 탐욕과 기만, 허위, 욕망 등 그 무엇으로 단정해서 말하기 어려웠다. 소설이 주는 의미를 찾는 일은 애초에 무의미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애써 의미를 발굴해보려고 했다.

좋은 친구로 그쳐야 오래도록 요나를 곁에 둘 것 같았다.”

주미의 독백이다. 둘 사이에서 우정(友情)을 넘어 연정(戀情)으로 나아가는 속도와 강도는 서로 간에 다르다. 심한 불균형은 관계를 깬다. 단절하지 않은 채로 있으면 한쪽은 혹독한 속앓이를 한다. 운 좋게 균형을 이루어 연정을 몸과 마음으로 확인하게 된다 해도 그것을 끊기지 않게 유지하거나 계속 상승하게 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혼자 남는다. 비로소 주미의 생각이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영원히 곁에 있게 하려면 그쳐야 한다는 것, 평정한 마음으로 어쩌다 바라볼 수 있어야만 그나마 오래 있을 수 있다. 오랜만에 자전거로 출근한 날 녹초가 되었다. 천변 자전거길을 달리면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발판을 굴렸기 때문임을 나중에 알았다. 내 자전거 옆을 잘 빠진 자전거를 타면서 빠르지만 무척 부드럽게 추월하며 가는 사람은 발판을 서너 번 굴렸다가 멈추고 두어 번 밟았다가 다시 멈추었다. 쉬엄쉬엄 가는 길이 결국 빠르게 꾸준히 가는 길이었다.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헤엄치기를 그쳐야 한다. 그치지 않고 계속 헤엄칠 수 없다. 그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정류장을 벗어나 막 움직이기 시작한 버스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운전기사님을 향해 세워달라고 손을 들어도 멈추지 않은 이유도 브레이크를 다시 밟아 멈추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미가 요나에 대해 그러했듯이, 나 외의 모든 존재를 대하는 방식도 그러해야 할 것 같다. 완전한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부재한 것과 같이 없는 존재다. 완전함을 향한 열망도 그쳐야 한다. 다시 더 나아갈 수 있어도, 그렇게 하려면 그쳐야 한다. 언제 그쳐야 할지 잘 모르지만, 그쳐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언제인가 그칠 수 있다. 우주 자연을 대하는 태도이다.

편하게 검푸른 고래 요나를 생각하는 일도 여기서 그치고 싶다. 책을 뒤적이면서 검정색 다이아몬드와 별 표식이 의미하는 바를 더는 고민하지 말자. 사할린 이주민과 고래 인간 요나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알려고 하지 말자. 그저 바다 아래 바다를 상상하며 지구의 바다를 오가는 고래 인간을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하기로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한 더 나아갈 만한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른다. 더 나아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자. 성서 속 요나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제 길을 가듯, 검푸른색 고래 요나도 제 갈 길을 간다. 우리 모두 그런 요나다. 다만 그칠 줄 안다면, 그러고 나서 더 나아가려고 한다면 말이다.

검푸른 고래가 사는 곳 그곳, 바다 아래 바다, 바다 밑이 아닌 바다 아래 바다는 요나가 사는 곳이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주미, 침몰하는 배에서 죽은 구선, 고래고기를 즐기는 권력자, 독립운동 사할린, 심연, 깊은 연못, 바다 아래는 어떤 곳일까. 꿈을 꾸었다. 오래된 꿈이다. 가위눌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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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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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이 굴착기 팔 생각을 접고 돌아오는 길에 튼 음악이 베토벤의 󰡔합창󰡕이라는 대목을 읽자마자 고향집에서 나무 농사를 짓고 사는 셋째 형이 떠올랐다. 형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스마트폰에 FM 라디오 앱을 깔아 놓고 클래식 음악 방송을 듣는다. 꺾꽂이 하려고 화살나무, 황매, 목수국, 수수꽃다리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정리하면서도 듣고, 단풍나무 씨 뿌린 데에 물을 줄 때에도, 삽으로 스트로브 잣나무와 조팝나무 분을 뜰 때에도 서양의 현악기와 관악기 소리에 마음을 맡긴다. 간혹 바이올린이 경쾌하다 못해 정신 사납게 깨갱대면 국악으로 바꾼다. 거문고를 듣다가 창을 듣기도 한다. 할부로 산 벤츠 승용차에 오래 전 사두고 가끔 뜯었던 거문고를 싣고 가까운 광역시에 있는 국악원을 작년 여름과 가을에 다녔다. 자기 나이의 딱 2분의 1을 먹은 선생님에게 11로 거문고 음악출강(出鋼)’을 배웠다. 한 달에 네 번 2시간씩 배우면서 낸 강습료가 5만 원이었다. 시에서 반절 이상을 지원했단다. 굴착기 기사인 남훈이 플라멩코를 배우는 모습이 멋지게 비범해 보이는 것처럼 형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

그런데 남훈이 자기의 분신과 같은 굴착기를 언제나 새것처럼 닦고 정비하는 모습과는 달리 형은 트럭과 트랙터를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새 트럭을 몇 개월 만에 10년도 넘은 낡은 트럭으로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부릴 정도이니 남훈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얼마 전에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밭 한가운데에 관리기가 그대로 있다. 밭을 갈아 반듯하게 만든 이랑 위에 비닐을 씌우고 관리기로 흙을 쳐올리다 비가 오니 그대로 둔 지 3~4일이 지났다고 한다. 남훈이라면 깨끗한 비닐로 단단히 덮어 두었을 테지만, 형은 그런 데 신경을 덜 쓴다. 네팔이나 인도를 한 번 더 여행할 생각에 모아 둔 돈으로 작년에 중고 트랙터를 샀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자잘 됐다며 저질렀다. 묘목을 캔 밭에 거름을 내고 쟁기질에 로터리를 치자면 트랙터를 가진 동네 형님에게 그동안 여러 번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품삯도 만만찮게 줘야 했다. 더욱이 그 형님이 자기 밭은 쟁기질을 여러 번 해서 곱게 흙을 가는데, 형 밭은 대충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비록 중고지만, 마음껏 묘목 밭을 갈 수 있어서 속편하단다. 그 트랙터 운전석 주변은 트럭과 마찬가지로 형다운 모습으로 있다.

소설 속 남훈이 처, 딸아이와 함께 사는 것과 달리 셋째 형은 큰 집에서 혼자 산다. 그 집은 내가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집이다. 이 집에는 본채에 방 세 칸과 부엌이 있고 황장목이라고 불리는 큰 소나무로 짠 마룻장이 두 칸짜리 방 앞에, 배나무로 짠 마룻장이 한 칸짜리 방 앞에 놓여 있다. 소죽을 쑤었던 사랑채와 대문간도 있었는데 30년 전에 헐어서 지금은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작년에 이 마당에다 벤츠가 들어갈 비닐하우스 주차장을 지었고 그 외의 땅에다 거름기 적은 산 흙을 퍼다 상설 묘목장을 만들었다. 서른에 청상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옛날에는 스물다섯이면 늙다리 노총각이었던 남편, 그리고 도련님만 셋 있는 집으로 어머니는 열여덟 나이에 시집을 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눈뜨자마자 우물에서 물을 길어 손을 씻고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 때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밥상 세 개에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 아홉에 일꾼 둘까지 보통 열셋에 달하는 밥그릇과 국그릇을 올리고 찬을 차려 큰방에 들여보내면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쭈그려 앉아 양푼에 반찬 몇 가지와 싱건지를 넣고 비벼서 재빨리 드셨다. 밥상을 거두고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바로 또 쌀을 씻어 점심을 준비하셨다. 이 일을 하루 세 번 반복하면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단다. 그런 일과는 쉰 살 전후로 조금 여유로워졌다. 예순 살 전후에는 큰아들과 둘째 아들의 사업이 잘 되다 말다하고 막내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 마음 편한 날이 별로 없는 시절을 보냈다. 결국에는 새천년이 되던 해에 집안 재산이 모두 농협과 축협으로 넘어갔고, 얼떨결에 둘째 형 빚보증을 선 셋째 형은 신용불량자가 되어저짝방’(어머니와 아버지가 단 둘이 주무시던 작은방인데, 큰방을 기준으로저쪽(사투리로저짝’)에 있는 방을 줄여서 부름.)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쫄딱 망한 집안 탓에 내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운 좋게 얻은 직장에서 월급을 서너 번 받을 즈음에 셋째 형은 어떤 성씨의 시조묘가 있는 종중산의 산지기가 되었다. 소도시 근교에 있지만 강원도 오지에 있을 법한 깊은 산중에 지어놓은 제각 옆 가건물로 들어간 형은 마을 사람이 논밭에 묘목을 키우는 일을 보고 배웠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묘목 심기로 살림 밑천을 장만했던 일을 기억하며, 형은 고향에 있는 시제답에 나무를 심기로 하고 3년 만에 산지기 생활을 청산하고, ‘저짝방에 눌러앉았다. 그새 20년이 지났다. 그 중 10년 정도는 저녁상을 놓고 아버지의 술친구로 살았다. 그 덕분인지 형들 중에서 셋째 형이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아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밤늦도록 저녁상을 놓고 어머니 말벗이 되었다. 더 오래 계셔야 했던 어머니가 2년도 안 되어 아버지 뒤를 따르자, 형은 큰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지금껏 혼자 산다. 서재이자 식당, 찻집, 술집이고 침실인 큰방에서 담배도 피우지만, 절은 담배 냄새도 안 나고 내게 익숙한 총각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너저분하면서도 깨끗하니, 사람 사는 방 그대로다. 음악과 책을 달고 살면서 자기 마음 들여다보기를 일상으로 한 덕분일까.

부엌이 아쉽다. 내 아내는 고향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조그만 쥐가 수저통 위를 지나는 모습에 질겁한 적이 있다. 길고양이 몇 마리가 집에 드나들면서 부엌에 들어오는 쥐는 사라졌지만, 형은 그 부엌에서 맛 좋고 보기 좋은 스페인 새우 요리 감바스를 해낸다. 시금치를 아삭아삭하고 고소하게 무치기도 하고 우족을 삶아 두고두고 먹는가 하면, 돼지 수육을 졸깃하게 삶아 혼술을 즐기기도 한다. 초가였던 집의 지붕에 기와를 얹고 부엌 옆에 있던 작은 방을 없애고 부엌을 조금 넓히는 정도의 수리를 내가 다섯 살 때쯤에 했던 것 같다. 큰형 사업이 조금 잘 되던 때에 부엌을 지금처럼 입식으로 고쳤지만, 천장이 낮고 작은 창마저 서북 방향으로 나 있어서 부엌은 늘 어둡다. 게다가 한가운데에 기둥이 있어서 불편하다. 혼자 살면 먹는 일이 중요하고, 그만큼 부엌이 좋아야 하는데 말이다. 입맛이 정갈하면서 푸짐하고 요리 잘하는 형에게 잘 어울리는 부엌이 언제나 꾸며질지 모르겠다. 남훈이창고로 쓰이는 뒷방이나다름없는 서재에 만족하며 소중하게 사용하듯, 셋째 형도 부엌에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이 생명의 공간으로 여기며 산다. 탕이나 찌개, 전골 등이 먹고 싶으면 식당에 가서 사 먹고, 남은 음식은 미리 가져간 냄비에 담아와 며칠 더 먹기도 한다. 몇 년 전 그런 음식을 휴대용 가스렌즈에서 데우다 집 전체를 태워버릴 뻔했는데, 불조심 차원에서 검게 그을린 벽을 그냥 놔두고 산다.

남훈이 길거리에서 손으로 코 풀지 않고, 노약자석에 앉은 임신부에게 시비 걸지 않고, 남보다 먼저 화내지 않기 등을 마음에 새길 만큼이나 셋째 형도 자기도 잘 아는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생각이 있다.‘욱 하는 성질머리에서 비롯된 거친 말과 행동이다. 어쩌다 형 일 도우러 넷째 누나가 나와 같이 고향집에 간 적이 있다. 서툴게 일하는 나에게 큰소리에 짜증 묻은 말로 타박하는 형을 보고, 누나가 내게 작은 소리로 그랬다. 넌 어떻게 저런 형 성질 받아주면서 일하러 오냐고. 오랜만에 일하러 가는 날에는 꼭 마음이 상한다. 한두 가지 호기심 담은 질문에도, 다소 과장된 나의 추임새에도, 어리숙한 삽질이나 가위질에도 혼이 난다. 혼자 일 하다가 내가 온 김에 밀린 일을 마구 해대다 보면 형의 급한 성미가 나오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을 때도 웬 간섭이 많은지, 국물 한 방울까지 맛있게 싹싹 비우려고 하면, 짠 걸 왜 다 먹느냐며 말린다. 짬뽕 먹으면서 단무지를 춘장에 찍어 먹으려면 젓가락으로 툭 쳐낸다. 건강에 안 좋단다. 내가 4학년, 형은 6학년 때 도시에 있는 학교로 달랑 둘이 전학을 갔다. 할머니와 둘째 누나가 번갈아 가며 밥을 해주었고, 그 둘째 누나가 시집을 가서 둘째 매형 집에서 4년을 살았다. 거짓말 같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형과 싸웠다. 주먹으로 형의 얼굴을 내가 먼저 때린 적도 있을 만큼 형은 내 만만한 싸움 상대였다. 형이 고교 2학년이던 어느 겨울, 새벽녘에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맡아져서 깨어나 형광등을 켜니, 언제 들어왔는지 술에 취해 자는 형과 그 옆에 푸짐하게 토해 놓은 음식물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 당시 25도나 되던 소주를 혼자서 11병이나 마셨다고 했다. 지금도 믿지 않는다. 아무튼 형의 말수가 적어져서 말다툼할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 많은 음주량에 내가 겁을 내고 놀란 탓인지 나는 그 즈음부터 형이 무서워졌고 감히 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형이 고향집에서 재수를 할 때,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내가 보고 싶었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 나는 속으로 왜 이런대 하며 시큰둥했다. 지금 이 기억이 떠오르니 내 마음에 문득 울음이 차오른다. 형이 중학교 1학년일 때, 골목길에서 놀던 내가 누군가에게 맞으니까 형이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내 편에 서서 상대를 내몰았던 기억이 있다. 내 싸움 상대였던 형은 나를 미워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고소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의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 같다. 내 어린 날에. 아무튼 형은 나를 두고 늘내 하나뿐인 동생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지금도 그렇다. 낯간지럽다.

소설에서 남훈은 학창시절에 언어학자를 꿈꾼 적이 있고 영어를 좋아했다. 셋째 형은 고교 시절 제2 외국어로 배운 독일어를 좋아했다. 재수해서 소도시에 있는 사립대 야간 국문과에 진학했다.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문턱에서 그만두었다. 꽤 유명한 문학계간지에 실린 심사평에는 형에게 재능이 있다는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아버지라는 제목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담담한 문체로 한 자 한 자 적은 시구를 접한 후에 나는 한동안 시를 끄적이지 않았다. 형을 향한 질투와 시기 탓이었다. 다섯 남매끼리 나누는 사이버 대화 공간에 가끔씩 문장으로 올리는 평범한 형의 일상에는 시 맛이 느껴진다. 소설에서 남훈이 67세에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고 플라멩코 춤을 배우기 시작하듯 셋째 형도 그 나이쯤에는 아마도 시집 낼 준비를 시작하지 않을까. 작은 나무(묘목 또는 관목)를 기르기에 품이 많이 들고 그 일을 해줄 일꾼(동네 할머니)이 더는 없을 무렵, 큰 나무(교목)만을 굴착기와 크레인 같은 장비를 들여 관리하고 판매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면 그럴까. 매년 두툼한 새 다이어리를 사서 언제 씨를 뿌리고 밭 정리를 했는지, 흰말채, 단풍나무 몇 주를 주당 얼마에 팔았는지를 기록해둔 그 사이, 그 틈 어딘가에 형이 쓴 시 아닌 시가 있을 것 같다. 책갈피에 넣어두었던 나뭇잎과 꽃잎이 나이 든 색을 띠고 있다가 빛을 보듯 형이 쓴 문장이나 문구도 한두 권의 시집 안에 담겨지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설날이 지나고 겨울 가뭄이 길어지고 있던 어느 날, 형이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읽어보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신작로까지 길게 누운 시제답 반절을 혼자서 트랙터로 골을 판 후에, 내가 오기를 기다려 나와 함께 골과 골 사이에 서서 이랑 위에 검정 비닐을 덮고 골을 따라 관리기 로터리로 흙을 쳐올리고 나서 말했다. 저녁밥 먹고 읽기 시작해서 밤새 단번에 읽었단다. 남훈의 삶이 자신의 삶과 조금 닮았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형이 떠올랐다고, 독후감 쓸 때 형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지나가는 말인 듯, 남훈이 전처와 낳은 보연이를 만나고 스페인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를 읽다가 형도 보연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딸 아닌 딸이 생각났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은 혼자 살지만, 늘 혼자인 건 아니다. 그 무엇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형은 요즘나 하나라도 잘 살자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하나뿐인 동생인 내가 자식 셋을 키우느라 허덕대는 모습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월세 살면서 학습지 교사로 딸아이 대입시 삼수를 뒷바라지하고 벌이가 시원찮은 남편과 살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버티고 있는 바로 위 다섯째 누나를 보면서,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하는 생각일 테다. 남훈이 굴착기 작업을 시작하면서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형은 아마도 밑줄을 그었을 것 같다. 자기 생각도 그렇다고 끄덕이면서 말이다. 나처럼.

아내가 무슨 소설을 읽느냐고 내게 물어보자, 굴착기 기사가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스페인어와 스페인 전통춤인 플라멩코를 배우고 스페인 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는 이가 전처와 낳은 딸이 나오는 소설이라 했다. 굴착기 기사와 플라멩코 춤이 어울리느냐고 되물었는데, 예상대로 아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무농사꾼인 형이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과 비슷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부정적이지만 성찰과 수용의 과정을 거치면 많은 것들을 낯설게 보게 하여 신선한 기운을 불어 넣어준다.‘부정성의 철학자로 불리는 한병철이 쓴 󰡔아름다움의 구원󰡕에 따르자면, 어울리지 않음과 같은 부정적인 것은 무언가를 문학 또는 예술이 되게 하고 사유를 촉진하고 유발한다. 동일하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의 매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남훈의 그 어울리지 않음의 성취를 되새길 때마다 내가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 그리고 불편함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에 있는 주장을 끌어오면, 남훈이 청결하게 굴착기를 관리하고, 본격적인 굴착 작업 전에 반드시 땅을 다지는 모습은 성과사회에서 사는 사람에게 보이는 나르시시즘의 한 단면이다. 남훈의 서재는고립·고독이라는 부정성의 공간이기보다는, 그래서 창조의 공간이기보다는 아내와 딸에게 배제된 채자기 최적화자유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남훈은 과제를 나열하며 자기착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자유를 한병철은 󰡔폭력의 위상학󰡕에서 성과사회, 피로사회, 자기착취사회, 긍정사회에서의 감옥이라고 규정한다. 자유는 수인인 동시에 감시인이기도 한 노동수용소이다. 성과주체는 자유와 강제를 분간할 수 없는 긍정성의 폭력에 지배당한다. 남훈은 과도한 음주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에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며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만 세상을 대하자고 엄숙히 다짐한다. 이 다짐을 남훈이자유롭게 했는지, 우리 사회가 강요한 강제로서 어쩔 수 없이 했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스페인어를 배우면서새로운 언어형식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무척 심오한 말 뒤에 남훈은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말한다. 새로운 관계가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악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무한긍정 속에서 성과 내기에 급급하다 소진해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셋째 형이 어느 날 자루가 쇠로 된 삽으로 붉은조팝나무를 캐다 말고 하는 말이,‘잘 될 거야~~’라는 노래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잘 될 거라 말하는지, 그렇게 말하면 저절로 잘 된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며 불평을 했다. 겨울가뭄으로 묘목 심기를 미루고 있는 중에 묘목 주문이 뚝 끊긴데다, 값이 떨어진 산철쭉과 회양목 묘목을 갈아엎어야 할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저 긍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겠다.

거칠지 않은 실제 삶이 불가능하듯, 소설 속 남훈의 삶도 굴곡이 있고 풍파가 많이 일었다. 10대에 아버지를 잃었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 이혼과 알코올 중독, 실직, 재혼 등과 같은 삶의 길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을 테다. 그런데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매끄러운 소설이다.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고 흥미진진한 드라마와 같은 전개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평을 받았다. 단숨에 읽히는 소설은 몰입도가 높은 만큼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다. 조금 자극적이지만, 한병철은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읽기 쉬운 소설을 포르노그래피적이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미란 은폐를 본질로 삼는 것으로서 불투명하다. 포르노그래피는 덮개가 없고 비밀이 없는 노출로서 미와 대립한다.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은 미와 다르게 투명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는 상처 없이는 문학도 예술도 없다고 주장한다. 사유도 상처가 지닌 부정성에 의해 시작되고 나타난다.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에 비극이 많은 이유는 우리 삶이 대개 비극이기 때문이다. 모든 삶이 모조리 비극이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어쩌면 애써 행복했다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덜 후회할 수 있을 테다. 영영 치유되지 않거나 최소한 희미한 흉터는 남을 삶의 상처를 외면하기보다는 그대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긴 여운을 남기면서 내 삶에 스며들 것 같다.

남훈의 거친 삶을 매끄럽게 다듬어 놓은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단숨에 읽을 만한 소설이다. 작가는 수채화를 그리는 붓질처럼 무거운 소재를 가볍고 발랄하게 잘 묘사했다. 매끄러운 흐름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다. 하지만 책장에 한번 꽂으면 다시 꺼낼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 하나 하나는 현실감 있는 상처를 품고 있어서 매끄럽지 않지만,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야기의 전개 탓인지 울림이 크지 않다. 아무 쪽이나 펼쳐서 어떤 장면이나 문장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는다. 나와 셋째 형의 삶이나 이 세상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거칠게 나아가는 현실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잦은 제동으로 출렁이는 시내버스를 탄 모양새다. 개연성 없이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아쉽게도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감흥을 안겨주기 위해 남훈의 실패와 좌절만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시간 죽이기용도로 쓰이는 볼거리와 읽을거리도 팍팍한 삶에 여백을 주고 활력을 얻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 덕분에 남훈과 셋째 형의 삶을 견주어 보면서 형의 모습을 그려볼 기회를 가졌다. 아울러 한병철의 성찰을 세밀하게 다시 살필 수 있었다.

소설에 남훈의 어머니가 겪은 삶의 일부가 서술되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언제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남훈은 기억하고 기록을 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 화를 냈다는 말 외에 어머니에 관한 기록은 없다. 동생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남훈의 삶을 중심 소재로 삼았으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이야기의 밀도가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원인인 것 같다. 개인 중심의 서사에 집중하다보니 삶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다루었다. 능력주의를 부지불식간에 옹호하고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남훈의 노후는 온전히 개인의 능력만을 바탕으로 설계되고 이뤄진다. 금전적 여유가 없는 다수의 현실 노인에게 스페인어와 플라멩코 배우기는 능력 밖의 영역에 있다. 적어도 남훈처럼 전문기술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남훈이 실행에 옮기고 있는 모범적이고 긍정적인 노후의 삶은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능력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기계발서를 소설화한 것 같다는 비평을 할 수 있겠다. 셋째 형은 올해 2년째 마을 이장직을 수행 중이다. 옆집과 앞집 간의 경계를 지적측량으로 명확히 하고 철판으로 가로막아 사생활의 비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마을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면서 관계를 맺는다.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 가족을 가운데에 놓으면서도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는 삶이 노후에도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플멩코를 추는 남훈의 성취는 남다르고 커다란 결과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남훈이라는 개인을 넘어 더 많은 이가 거리낌 없이 누리는 세상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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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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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고통을 불러온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망신당하고 수치심 가득한 일이든 아쉬움, 서러움, 그리움, 안타까움, 후회스러움 등과 함께 온갖 감정을 슬며시 또는 아릿하게 일게 한다. 한밤중 알 수 없는 꿈에서 깬 후, 정신이 맑아지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행적과 공간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일어나면 떨쳐질까 움직여보려 하지만 바윗덩이에 눌린 듯 몸은 꿈쩍 하지 않는다. 기억에 따라온 여럿 감정이 싸한 바람으로 가슴을 훑는다. 울음이라도 터져 눈물이 나오면 씻어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마른 마음에 잠 못 이루는 긴 밤은 이내 새벽으로 이어지고 무거운 몸으로 아침을 맞는다.

고통으로 몸은 긴장한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티끌이 가는 바람에도 찰나에 맑은 물을 흙탕물로 바꾸어버리듯 마음이 꿈틀 움직이다 심란해진다. 뒤숭숭한 마음이 좋을 리 없다. 평정심을 강조하는 만큼이나 그 마음은 지니기 어려운 마음이다. 무언가를 도모하려면 차분한 마음이 도움을 주겠지만,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평정을 향한다. 그 힘이 기억에 있다.

기억은 흉터를 꼬집는 일이다. 과오를 반복하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반성으로 얻은 굳은 다짐은 기억의 세기가 약해지거나 기억이 사라지면서 연해진다. 마음에 큰 생채기가 난 후에도 선명한 흔적, 상흔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작은 잘못이 큰 잘못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려면, 그리고 언젠가는 이뤄지게 하려면 그 흉터는 굵은 선으로 그려진 문신처럼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간직해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해서도 기억은 살아있어야 한다. 기억의 몫이다.

망각은 불의한 현실을 모른 체 하게 하고, 그에 안주하게 한다. ‘어쩔 수 없다’, ‘불가피하다는 말로 위로하고 부당한 처지를 외면한다. 정신을 뜨겁게 데워주던 이상(理想) 대신에 패배주의가 자리한 마음을 편안하다고 여긴다. ‘불안한 안정이 깨어질까 두려워하면서 기억이 들어설 틈을 꾹꾹 틀어막는다. 충직한 노예가 지니는 성실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과거와 현재를 잊고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산다. 사람의 삶이 아니다. 전봉준과 농민혁명은 오늘도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데 소중한 기억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

역사로만 접했던 전봉준을 󰡔나라 없는 나라󰡕가 나오기 2년 전에 표지가 개나리꽃 색인 한승원의 소설로 접했다. 피노리에서부터 한양까지, 잡힌 몸으로 죽기 전까지, 119일의 생에서 전봉준은 두 다리가 부러지고 입이 틀어 막힌 채 가마꾼의 입으로 씹어서 만든 죽을 강제로 먹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일본인 호송 책임자 이토의 회유를 받으면서도 전봉준은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봉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는 가운데 삶과 평안을 향한 유혹을 이겨내는 전봉준의 마음을 보여준 300여 쪽의 소설을 밤이 깊어가고 새벽이 오는데도 놓을 수 없었다. 20년 전의 나 자신과 전봉준이 겹쳐지고, 전봉준이 잡혀서 죽기까지 보낸 119일과 내가 갇혀 있던 56개월이 대비되었다. 나의 삶과 그의 삶이 100년의 시간을 건너 번갈아 보이고 있었다. 그 전봉준이 송기숙의 󰡔녹두장군󰡕으로 이어졌다. 삼례를 지나 전주 감영을 점령하고 관찰사를 마주하는 장면에 이르러,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혁명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양의 시민 혁명을 넘어서는 민중 혁명을 우리는 성취했고 그 맛을 보았으며, 자유와 평등이 주는 기운을 우리는 일찍 체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12권 중에서 10권부터 이어지는 실패와 좌절, 죽음이 담긴 끝은 읽지 못했다. 세 권을 구하고 있던 즈음에 󰡔나라 없는 나라󰡕를 만났다. 기억이 또 출렁였다.

나라는 사람이 땅 위에 세운 세계를 뜻하니, 사람이 사람답게 서 있어야 나라다운 나라일 테다. 나라 없는 나라에서 나라를 세우려 했던 사람, 전봉준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 중에 전봉준이 있었고, 그 사람 중에 여러 사람이 전봉준이었다. 전봉준은 많은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는 명사이다.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겹겹이 쌓이고 굳어진 신분의 굴레에서 사람 아닌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이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난 자리에 전봉준이란 이름이 있다. 그가 중심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에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갑오농민혁명 등의 여러 이름이 붙어 있다. 이것이 있기 전에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이를 이어 전봉준과 혁명이 있었고, 계속 앞으로도 모든 사람이 사람 대접 받고, 사람 대접을 하는 나라에서 살기 위해 그 몸짓은 이어질 것이다.

임진년과 병자년에 있었던 외적의 침탈로 고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사람, 부패한 관리들의 탐욕으로 밖과 안에서 갖은 수탈을 당하며 겨우 목숨을 버티며 견뎌낸 사람이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는 자각과 절망, 분노를 품고 전봉준이 되었다. 조선 말, 관료의 부정과 부패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람의 삶이 상상을 뛰어 넘어선 모습을 보일 때 실제 전봉준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해방 전후에도 군인이 폭압 정치를 할 때에도 있었다. 디지털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탐욕과 부패는 여전하기에 전봉준은 나라를 세우려는 땅에 있다. 기억이 하는 일이다.

󰡔나라 없는 나라󰡕에서 전봉준이 아닌 또 다른 전봉준을 여럿 만났다. 갑례와 을개, 호정과 이철래, 손네와 장팔이, 더팔이, 탄묵이 전봉준이다. 김개남, 손화중을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이름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기억에도 없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전봉준을 끝까지 호위하다 총알을 받고 죽어가면서 을개는 무엇을 떠올렸을지 생각한다. 갑례와 을개 사이에 태어난 도치도 우리 안에 있다. 그 안에 전봉준의 유전자가 있다. 농민 전쟁을 치르고 온 장팔이의 얼굴을 닦고 무릎베개로 잠이 들게 한 손네가 불타는 집 안에서 콜록대며 죽어갔을 테다. 절문 밖을 나서는 호정과 탄묵은 나라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또 어디에서 싸우다 칼에 베이거나 총알을 맞고 죽었을까. 10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또 그보다 적을지 많을지 모를 시간을 지나도록 그 사람을 기억해야겠다. 기억해야 사람이 사는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기억해야 할 사람이 또 있다. 전봉준일 수 있었으나 전봉준이기를 포기했거나 전봉준이 될 생각조차 못해본 사람 아닌 사람이다. 한때 전봉준과 교류했던 사람으로 전봉준이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김경천과 부패한 관리 밑에서 부정하게 잘 사는 법을 배웠을 전주 감영의 퇴교 한신현,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 나라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도 기억해야 한다.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나도 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봉준인 사람과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르게 살고 행동한 사람이다. 전봉준과 혁명을 자빠뜨린 사람, 자기 자신을 자빠뜨린 줄은 영영 모른 채 살다가 죽었을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기억해야 나는 그 사람이 아니 될 수 있다. 가능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기억이 또 해야 할 일이다. 잊히고 잊힐까 두려워해야 한다.

전주 감영에서, 우금치에서 우리가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고개를 여러 번 넘어야 갈 수 있는 깊은 산골 쌍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면 혁명의 불길은 다시 살아났을까. 나는 매년 쌍치 선산에 가는 길에 피노리를 자동차로 지날 때마다 전쟁에 지고 숨어들고 있는 전봉준과 부러진 다리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안고 잡혀가는 전봉준을 떠올린다. 한적한 2차선 도로 옆에 썰렁하니 있는 김개남의 묘와 그가 참수된 초록바위를 바라본다. “더팔이, 옹동네, 대체 그 사람들을 누가 알아준답니까요?”라는 을개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후세가 기억할 것이다.”라는 전봉준의 목소리도 내 귀에 늘 있다.

혈연을 바탕으로 이뤄진 신분 사회가 돈과 권력이 강력한 신분이 되어 세습되고 있다. 관직을 얻은 관료가 그 직을 이용해 치부를 하는 세상, 시험에서 1등을 한 능력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려는 능력주의가 전부인 세상이다. 작고 사소한 차이를 이유로 소수자를 만들고 차별하는 세상,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로 대접을 달리하는 세상이다.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하려는 사람만이 잘 사는 세상에서 사람도 자연이니 덜 써서 자연 모두가 더불어 살자는 목소리는 힘을 못 쓰고 있다. 사람이 없는 땅에 나라는 없다. 나라 있는 나라를 이 땅에 이 지구에 세우려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는 평등한 사람만이 사는 나라, 지구의 나라를 염원해야 한다.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고 저만치 밀쳐둔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되새겨야겠다.

세상은 전봉준을 전봉준으로 끝나게 하지 않게 한다. 또 다른 전봉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경천 아닌 김경천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둘 모두를 기억하는 일은 나라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하다. 전봉준을 읽고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자신의 삶과 그와 얽혀 있는 숱한 이들의 삶을 떠올리며 공감하는 데 편한 마음이 자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나라를 세우려면 기억을 품고 살 수밖에 없다. 아프지만, 그래도 기억 덕분에 아주 조금씩 나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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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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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이었다. 소설 최후의 만찬을 읽는 중에 낭만주의를 접한 건 지극히 우연이었다. 두 권 이상의 책을 동시에 띄엄띄엄 읽어 가는 버릇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신문에 실린 어떤 칼럼을 읽다가 불현듯 낭만주의가 뭐지?’라는 오래된 질문이 떠올랐고, 인터넷 검색에 만족할 수 없어서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라는 책을 구매했다. 소설보다 더 몰입해서 읽었다. 그제야 겨우 소설 최후의 만찬을 제대로 안을 수 있었다. 감성, 상상, 환상, 주관, 동경, 죽음 등의 단어를 열쇠말로 삼아 소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독후감 쓰기를 목표로 읽지 않았다면, 죽음을 앞둔 윤지충이 조선은 자유의 나라이오.”라고 한 말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보고 나는 이딴 역사소설이 어디 있냐?”며 책을 바로 덮고 말았을 테다. ‘자유19세기 말에나 일본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개념어이기 때문이다. 기록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소설은 허무맹랑한 상상에 지나지 않아, 오늘을 사는 내게 의미 없는 읽을거리일 뿐이다. 상업적 흥행과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된 예술 영화는 영화관에 감금된 채 시간을 죽여가면서 끈기 있게 봐야 겨우 관람해낼 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도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완독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리며 겨우겨우 읽어나갔다. 그러나 장영실이 이탈리아에 가서 다빈치를 만나고,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영실일 수 있다는 김홍도의 말에 이르러서는 읽기를 단호하게 중단하고 싶었다. 문학상 수상 작품인데 뭔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겨우 마음을 추스를 즈음에 만난 것이 낭만주의였다.

 

2.

소설 최후의 만찬1791년 끝 무렵, 전주 풍남문 밖에서 천주교 신자로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한 죄로 참수당한 양반 계급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주에 뿌리내리고 오래 산 사람에게는 진하게 익숙한 지명에 반가움도 잠시, 음산하고 음울한 분위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둡다. 이 분위기는 이야기 끝자락까지 계속된다. 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망자끼리 생에서 만끽하지 못한 훈훈하고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 내내 나는 무거운 바위를 지고 가는듯한 느낌이랄까, 눈을 감은 것과 뜬 것이 구별되지 않은 암흑에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 기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최하층민인 늙은 여자 악사(여령)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관청에서 매를 맞고 죽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악사의 아들인 도몽을 비롯한 여섯 명의 초라니패가 정조가 베푼 궁중 연회장에서 정조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끝내 몰살당하면서 끝난다. 이 사이에 정조의 고뇌, 정약용과 도향의 연분, 장영실의 흔적을 찾고 윤지충이 지니고 있었던 그림 <최후의 만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이탈리아로 간 김홍도, 정약용의 카메라 옵스큐라에 찍힌 새로운 <최후의 만찬>, 금기의 연주법인 변음등의 이야기가 있다.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해야 하듯이 역사 소설도 그러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한 내 입장에서 소설의 제목이 주는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역사 소설이란 사실을 기록한 역사에 상상이라는 옷을 소설가가 입힌 결과물로 알고 있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 그 이 지나치게 비역사적이라면, 역사 소설은 무가치하다. 이 환상일 뿐이라면 더 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에서 다음 글을 접하고서야 소설 최후의 만찬이 읽히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의 본질은 환상에 대한 탐닉과 몰임이다. 환상은 낭만주의의 정신적 구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낭만주의 세계관과 예술의 성격을 지배한다.(30, 이하 모든 쪽수는 김진수가 쓴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의 것이다.)

 

낭만주의의 구조적 원칙은 이성에 대한 환상의 우위이다.(32)

 

조선의 지배계급이 행한 천주교 박해를 소설 최후의 만찬은 매우 치밀하고 일관되게 낭만주의의 주된 요소인 상상환상을 동원해 풀어내고 있었다. 작가는 장영실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가서 다빈치를 만나고, 그의 그림의 모델이 되고, 이런 사실을 김홍도가 직접 밀라노에 가서 확인한다는 상상을 해낸다. 장영실이 그 먼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어떻게 갔을지, 이를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의 상상을 나는 처음에는 경멸했다. 박해무와 만경강 기슭에서 싸우고, 초라니 패가 존현각 연회에서 정조를 시해하려는 과정에서 정약용의 카메라 옵스큐라에 들어오는 늑대 두 마리, 작가의 이런 환상에 나는 경악했다. 역사 소설임을 포기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 romantic이라는 형용사는 유럽 중세기의 영웅적 모험 소설인 로망스나 음모와 모험에 가득 찬 파란만장한 로망스 문학의 특정한 속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실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신기한, 공상적인, 감상적인, 과장된, 열정적인 것을 뜻하는 경멸적인 용어였다고 한다.(26) 이성주의자인 나의 그런 경멸은 이처럼 당연했다. 객관성을 강조한 계몽주의가 낭만주의를 저열한 것으로 비난한 이유는 주관성의 극단을 보여주는 낭만주의의 상상과 환상에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주관성이란 주관·객관의 이분화된 주관을 넘어서 이분화되기 전의 세계와 일체화된 주관이라 한다.(104) 이 점을 받아들인다면, 이 소설에서 펼쳐진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비난이 아닌 감탄의 대상이 된다.

낭만주의를 특징짓는 중요한 정신적 기조는 동경이다.(47) 낭만주의는 밤과 죽음을 동경하는데, 죽음은 사멸이 아니라 변신이며, 지하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로운 해방 과정이며, 생의 소멸이 아니라 생명의 강화 또는 갱신 과정이다.(104) 윤지충과 권상연, 정조, 정약용, 최무영, 초라니패, 도향, 이들 모두 소설 최후의 만찬에서 그들 나름의 동경이 있다. 윤지충과 권상연과 같은 천주교 사도에게 동경은 천국, 하느님, 자유일 것이고 정조와 최무영에게 동경은 그들 나름의 성리학적 세계의 절대성이다. 이러한 동경에서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에필로그에서 초라니패 여섯 명이 죽은 후 오래 전에 죽은 이들을 만나는 생생한 장면이 이승의 것인지 저승의 것인지 내가 순간 착각을 할 때 그 하나됨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피히테에게 동경이란 순전히 욕구에 의해서, 불쾌에 의해서, 공허에 의해서만 충족을 추구하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충동이고, 자유란 세계의 원리이자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 목적이다.(47) 윤지충과 권상연이 사형장에서 자유를 떠올리고, 이 둘의 참수 보고를 접한 후 내내 정조를 사로잡은 공허함도 작가의 낭만주의적 기획이었다.

로맨틱이라는 용어는 18세기 서구 유럽에서는 목가적 풍경을 가리키는 원예에도 적용되어, ‘그림 같은이란 말의 대용어가 되기도 했단다.(26) 작가는 여러 이야기와 장면을 그림 그리듯 묘사한다. <목차>에 적은 작은 제목들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57편의 독립적인 시의 제목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런 점에서도 이 소설은 시적 언어로 가득 한 낭만주의적 역사 소설이라 규정할 수 있다. 절제보다는 과하게, 생생하게 적힌 시적 표현들만 내가 적어 놓은 것만 해도 30여 가지가 넘는다. ‘핏덩이 속에 흰 사슴이 보였다’, ‘새순같은 바람’, ‘눈빛은 맑고 단단했다’, ‘목에서 나무 부러지는 소리’, ‘목에서 늙은 버드나무가 보였다’, ‘약용의 목에서 기린이 울었다’, ‘북어 쓸개 같은 망설임’, ‘바람이 노 없이 건넜다’, ‘임금의 목에서 향기를 기다리는 목마름이 들렸다. 보는 것을 듣게 하고 들을 것을 보게 하고 맡게 하는 표현에 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으니, 심사평에 언급된 원로 소설가의 시샘을 짐작할 만하다.

 

3.

상상과 환상이 몇 가지 역사적 사실과 버무려진 역사 소설에서 독자인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관한 관심보다 내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갖고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혼불 문학상 심사위원이 제안한 바, 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 대신에 독자인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로 질문을 바꿔보았다. 낭만주의 예술 작품은 오로지 스스로를 천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64)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그 무엇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상상력과 환상을 동원하여 실제를 창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애써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내가 던진 질문에 나는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저 독자인 내가 이 소설에서 그 무언가를 얻으면 된다. 아니, 아무것도 얻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아무것도 얻지 않아야 작가의 의도 아닌 의도에 충실한 독자가 될 것이다. 예술의 무목적성의 확대는 예술의 자율성을 확대했고, 이를 두고 낭만주의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 낭만주의의 혁명성(64)이라면, 작가는 소설 최후의 만찬을 통해 혁명을 이룬 셈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소설이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이 소설의 혁명성을 운운하는 일은 가볍고 오만한 일이다. 내가 모든 역사소설은 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만찬에서 예수와 정조가 대비되고, 예수와 열두 제자가 먹은 빵은 정조, 신하, 백성이 먹은 설하멱과 대비를 이룬다. 새로운 것과 옛 것, 새물결과 전통을 상징하는 이 장면은 소설 최후의 만찬이 지향하는 조화로 읽힌다. ‘조화란 대립과 대조를 전제하는 말이다. 이것 없이 조화란 있을 수 없다. 모순된 것들이 변증에 의해 합일을 이루는 과정이 조화다. 그 모순의 다른 이름은 역설이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사랑과 복수, 성리학과 서학, 실상과 카메라 옵스큐라로 투영된 허상, 정법의 음계와 변음, 그림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자들이 맞이하고 있는 죽음을 앞둔 자의 공포, 두려움과 평온함 등 이성에 의해 이분화된 것들이 실상은 그 경계가 흐린 상태에서 공존하고 있는 이 현실이 역설이요, 조화 자체이다. 작가는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주관과 객관 사이에는 어떤 질적인 분리도 없다(34)는 낭만주의의 기본 인식을 간파하고 있었던 같다.

낭만주의 예술론에서 예술이란 절대성의 매개체로, 예술은 세계의 근원이자 궁극적인 절대성을 자아의 성찰과 환상이라는 능력에 의해 매개한다(62)고 본다. 소설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주는 서학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예수와 성리학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정조 간의 대립은 진정으로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는 전제이다. 윤지충과 권상연을 취조한 사헌부 감찰어사 최무영은 윤지충이 지니고 있었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가운데 앉은 자의 머리 뒤로 소실점에 이르는 곳에 인왕산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정조에게 보고한다. 이것은 다빈치의 계획이고, 장영실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는 말에서, 작가는 장영실이 조선의 왕과 예수를 절대적인 존재로 동일시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예수의 절대성을 다빈치가 그림 <최후의 만찬>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처럼, 작가는 소설 최후의 만찬으로 궁극의 절대성, 절대적인 존재인 그 무엇을 향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윤지충이 죽은 나이와 예수가 죽은 나이가 같다는 작가의 언급은 그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선과 악의 애매함과 모호함을 환상과 상상을 통해 보여주면서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이는 작가의 절대성을 향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낭만주의의 아이러니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낭만주의에서 성찰의 매개체는 아이러니이다.(84) 작가의 상상과 환상은 허상이 아닌 실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이분화되어 있는 것들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의 시도는 애매모호함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명료하고 분명한 현실의 실상을 보게 한다. 정약용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허상을 보면서 실상보다 더 정교한 세계를 보듯이 말이다.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고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일체의 이분화 가능한 것들의 상대성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적인 것에 대한 강한 옹호와 집착을 드러낸다. ‘절대적인 것’, ‘절대성에 대한 작가의 강한 동경을 작가는 윤지충, 권상연, 정조, 정약용, 6인의 외인, 도향 등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말하는 이런 아이러니가 스위스 알프스의 말로야 고개를 감싸는 뱀 모양의 구름(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처럼 소설 최후의 만찬전반에 내려앉아 있다.

책을 구매하자마자 책싸개로 감싼 탓에 이 독후감 쓰기를 마무리할 무렵에야 비로소 싸개를 벗기고 뒤표지에 적힌 글을 읽었다. 소설가 한승원은 최후의 만찬은 환상적인 소설이다.’이라고 썼다. 이 문구를 읽고 나의 비평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낭만주의 예술 작품은 환상에 가득 찬, 모험적인, 신비로운 등과 같은 종류의 형용사를 동반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 소설이야말로 그런 형용사로 꾸며지기에 충분하다. 다빈치 그림의 <최후의 만찬>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영실이라는 설정 자체가 환상이다. 다양한 시적인 표현은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몽환적이게 한다. 정약용과 도향이 나눈 사랑, 장영실과 김홍도의 이탈리아 여행, 초라니 일행의 왕 암살 기도 등은 모험적이다. 변음을 연주하는 도향의 가야금은 신비롭다.

 

4.

4개월 동안 내 마음 어느 한 자리에 내내 있었던 이 소설을 이제 놓는다. ‘낭만주의가 함께 해서 다행이다. 이 소설을 읽는 와중에 영화 세 편을 보았다. <사도>를 보면서 사도 세자의 아들 정조와 호위무사였던 박해무를 생각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면서 장영실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서 다빈치와 만나고 그와 함께 한 삶을 상상했다. 2015년에 유럽에서 제작, 개봉한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여섯 제자가 아름답지만 한쪽 팔이 없어 늘 외로운 여자, 성도착증 환자 등으로 교체되는데, 소설 최후의 만찬의 작가가 혹시 이 영화에서 한 조각의 상상을 가져왔을까 궁금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인 황사영이 종교적 자유를 위해 외국 군대를 요청하는 밀서 내용에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 소설 흑산을 다시 읽었다. 작가가 밝힌 <참고문헌> 목록에 흑산은 없었다. 흑산을 하루 밤새 단숨에 읽었다면, 최후의 만찬은 한 달 가까이 한 글자씩 새기며 더디게 읽었다. 비슷한 주제를 담은 두 소설이지만, 크게 다른 소설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진수가 쓴 149쪽짜리 문고판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가 없었다면, 이 글도 없었다.

읽기는 쓰기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새긴 읽기였다. 읽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읽기는 읽는 데 그치고 만다. 그 쓰기는 자기만 홀로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와 공유를 목표로 써야 제대로 된 읽기가 가능하다. ‘쓰기 위한 읽기는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읽을거리를 쓴 이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는 읽으면서, ‘읽은 후 쓰기라는 자신의 노고를 보태야 한다. 작가가 쏟은 수년의 노고에 이 독후감이 보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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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 -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이매진의 시선 13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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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봄은 일상을 뒤흔드는 사고가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15일 장인어른이 입원하셨다. 여든 살 생일을 5일 앞두고 변비로 관장을 하셨다. 이후로 배가 계속 아프셨다. , 대장 내시경을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에 혹시 큰 병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허리가 아프셔서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 분을 모시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전공의 파업으로 3시간 이상 대기를 하다 진료를 포기하고 구도심에 있는 영상의학과 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했다. 쓸개 담석, 전립선 비대, 척추관 협착과 골절 등을 진단받았다. 다음날 소규모 종합병원의 내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진료를 거친 후에야 복통은 관장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 허리 통증 치료가 우선임을 알았다. 통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에 가서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았다. 하루가 지나도 통증은 여전했다. 결국 신경외과가 있는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하셨다. 낮에는 장모님과 아내가, 저녁 식사 후부터 다음 날 아침 식사 전까지 나, 처남 둘, 조카 한 명이 번갈아 가며 병실에 머물렀다. 첫째 날 내가 당번이었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10시간 동안 1시간마다 소변을 보셨다. 나도 자다 깨다 했다. 장인어른보다 세 살이 더 많은 장모님은 쇠약해지셨다. 3 아들을 비롯해 세 자녀를 온전히 돌보는 전업 가사 노동자인 아내는 쪽잠 잘 시간도 없이 병원과 집을 번갈아 오고 갔다.

조기현의 󰡔새파란 돌봄󰡕은 장인어른 입원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첫 쪽부터 기록할 내용이 많았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겪은 세상과 느낀 감정, 아픈 가족을 돌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세상, 돌봄을 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감정, 평온한 일상, 흙탕물, 아빠가 아니라 내가 사고를 당한 기분, 가족과 인간의 모습은 다양한데 제도는 너무 단순해요, 가족 중심의 보호자 개념에서 환자 중심 보호자 개념으로 전환 등. 조기현의 문장은 돌봄 경험자에게 익숙하거나 두고두고 되새길, 새로운 사유를 하게 할 것들로 가득했다. 잘 읽히는 문장과 내용이지만, 노트에 적느라 독서 흐름이 끊기고는 했다.

󰡔새파란 돌봄󰡕은 재생 종이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해 촉감과 시각을 편안하게 한 200여 쪽 분량의 책이다. 그러나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들고 나면서 책에서 손을 쉽게 떼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돌봄에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진 30대 초반의 성희 씨 이야기에서부터 11년간 할머니를 돌보는 20대 초반의 푸른이, 엄마를 돌보는 중학생 희준이까지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게는 그런 상황이 닥치진 않았다는 데 따른 안도감과 언제 어떻게 나와 내 자식에게 닥칠지 모를 미래의 그런 상황을 예상하면서 불안감과 두려움이 겹쳤다.

15년 전 나는 40대 초반이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복통으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셨다. 2년 가까이 당뇨 합병증으로 요양병원에서 내내 누워만 계시다 봄날에 돌아가셨다. 그해 가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수술 후 오른쪽 손과 다리가 마비되었다. 한방병원에서 입원·재활 치료를 해도 효과는 없었다.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다시 뇌출혈이 일어나 100여 일간 의식불명으로 계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8개월 후 아버지와 같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3년여 동안 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과 직장생활과 간병을 병행하는 데 따른 피로감 등으로 불편했지만, 󰡔새파란 돌봄󰡕에 나오는 여러 사람처럼 내 일상은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 그때 경험은 이번 장인어른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간병 순번을 짜고, 의사와 면담한 내용을 기록해서 여러 가족과 공유하고, 내 일상을 재조직하는 일이 수월했다. 이에 비하면 장모, 아내, 처남 들은 처음 경험하는 돌봄에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웠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어했다. 조기현이 쓴 󰡔새파란 돌봄󰡕의 주인공 모두가 청년인 데 비해 나와 내 주변 친지들은 40~50대 나이에 생활 기반이 안정적이다. 장인어른은 생활비를 넉넉하게 쓰면서도 자식들에게 지원을 해줄 정도로 경제력이 탄탄하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나는 두렵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보호장구를 제대로 갖추려고 한다. 어떤 사고로 장애를 겪을지 모를 일이다. 가장 두려운 일은 대소변을 나 혼자 보지 못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나의 존엄이 무너질 테다. 20년 전에 고향집 윗집에 사셨던 작은할아버지가 92세에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에 겨울방학이면 꼭 방패연을 만들어 주셨던 분이다. 작은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한두 해 혼자 사셨다. 어머니가 자주 들러 돌보셔서 먼 지역에 따로 살았던 친자식들은 돌봄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며칠째 누워계신다며 곧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소식을 어머니가 전하셨다. 인사드리러 갔더니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 모로 누우신 할아버지가 검은 얼굴빛으로 주무시고 계셨다. 물과 음식을 넘기지 못한 날이 꽤 지났단다. 어느날 당신이 오래 사셨던 집에서 주무신 듯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는 콧줄로 음식물을 드셨고, 양 손목이 병상에 묶인 채 계시기도 하셨다. 존엄한 죽음과 적절한 돌봄 간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나는 불안하다. 온갖 부채로 집안 재산 대부분을 팔아넘긴 채 집을 떠나 방황하는 형이 있다. 형의 병치레에 도움이 될까 20여 년 전 형을 수혜자로 가입했던 보험을 작년에 해약했다. 원금의 60%도 안 되는 환급금을 내 생활비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안부를 모르는 형을 향해, 뇌출혈로 쓰러져 3년 만에 소식을 접하고 난데없이 보호자가 되어버린 󰡔새파란 돌봄󰡕에 나오는 성희처럼,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를 되뇐다. 어느날 갑자기 형이 나를 보호자로 부르고 내게 부양을 호소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이혼한 형이 병석에 누워 운신하지 못할 때, 형 개인의 잘못이라고, 죗값 치르는 셈 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외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이, 가족이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돌봄은 현재 삶의 불안을 더욱 무겁게 한다.

󰡔새파란 돌봄󰡕의 에필로그에 존속 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은 한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병원비와 간병비를 보탠 그 청년의 삼촌은 이혼했다. 고교 친구 중에 재활학과 교수를 하는 친구가 있다.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아내와 함께 미국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친동생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부모님도 계시고 형도 있는데 친구가 돌봄을 맡았다. 동생의 재활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전공을 장애학으로 바꾸고 영국에 있는 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이런 이유로 아내와는 이혼했다. 학위 과정 중에도 1년간 귀국해서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고, 되돌아가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작년 한 해는 동생이 서울에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로 분주했다. 주식 투자에 손댄 동생이 억대 빚을 진 데 대해 몇 마디 나무란 말에 동생이 형에게 한 말은 형이 내게 해준 게 뭐 있어?”였단다. 동생 빚을 다 떠맡은 채 강의와 연구, 아흔 살 가까운 나이의 어머님과 동생 돌봄 탓인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친구는 가족 돌봄이 문제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책 개발과 적용에 힘을 쏟고 있단다. 재혼 의사를 묻자 스쳐 지나간 인연만 몇 번 있었다고,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새 떠났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3. 돌봄 하는 시간은 생애 밖으로 이탈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애 자체이다

󰡔새파란 돌봄󰡕의 부제는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그런데 그것들의 기원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책에 없다. 어쩌면 󰡔새파란 돌봄󰡕은 그것들의 기원을 묻는 시작점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자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이 도대체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돌봄이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일임을 가족과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자각하도록 한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돌보는 아름이, 알코올 중독자 동생을 돌보다 형제간의 연을 끊은 형수, 할머니 돌봄을 자처한 청년 경훈, 결혼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돌봄에서 벗어나려 했던 서진이 등 온전히 그 개인 한 명에만 맡겨진 돌봄 사례를 접하면서 저절로 국가가 떠올랐다. “국가가 도대체 뭐지?”라는 의문은 국가의 기원에 관한 물음으로 나아간다.

돌봄은 누구에게나 삶의 조건이다. 그래서 돌봄은 공적 가치를 지닌다. 공적 업무 담당자는 국가이어야 한다. 돌봄이 나아갈 방향 중의 하나는 돌봄에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길이다. 󰡔새파란 돌봄󰡕의 중심 주장 중의 하나다. 저자 조기현은 진로 이행, 가족 돌봄, 생계 부양이 꼬이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하고 싶은 모임과 가족 돌봄이 대립하지 않는 일상을 원한다. 아픈 이를 무능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세계를 꿈꾼다. 어떤 이는 그런 삶을 이미 누리고 있고 어떤 이는 그런 삶이 불가능해 보이는 처지에 있다. 평등을 향한 염원은 그래서 자유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하다.

돌봄의 문제가 개인의 복불복, 운명의 일까? 설령 그렇다 해도 돌봄에 따른 고통을 개인이 온전히 져야 하는가? 개인이, 그리고 가족 중에서도 일부(대개는 여성으로서 아내, 엄마, )만 모두 떠안기에는 가혹하다. 가족과 국가의 기원이 자연인지 인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완전히 저절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도 아니고 특정 목적을 위해 철저히 기획되어 만들어진 것도 아닐 것이다. 어느쪽이든 현재 존재하는 것이니 각각의 존재다움을 실현해야 한다. 물론 규정되는 그 존재다움 또한 절대적이지도 않고 고정적이지도 않다. 한편, 돌봄의 젠더적 불평등을 극복하고 남성 돌봄의 가능성과 장점을 󰡔새파란 돌봄󰡕에 나오는 경훈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제 해결 지향형 간병을 남성만의 간병 스타일로 고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유형의 간병이 정서적 소진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고, 남성 간병의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 돌봄을 여성의 일로만 여기는 성별 분업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조기현은 강조한다.

돌봄 없는 존재는 없다. 돌봄의 보편성이야말로 돌봄의 공공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의식하고 자각하고 확인한다. 가족과 국가, 특히 국가는 돌봄을 공동 책임으로 여기고 책임을 넉넉하게 나눠질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돌봄이 개인의 운에 더 적게 의존하면서 국가(사회)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겠다. 돌봄과 생애()가 분리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이다.

 

4. 우리 삶에서 돌봄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돌봄 민주주의와 돌봄 시민

󰡔새파란 돌봄󰡕 저자의 말대로 돌봄을 하지 않은 사람은 돌봄을 잘 받고, 돌봄을 하는 사람은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돌봄 책임이 여성, 가난한 사람, 유색 인종, 이주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있다. 그럼에도 돌봄에 관한 공적 논의의 장에 그들은 배제된 채 남성, 권력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돌봄을 불행으로 만드는 맥락이다.

정치적 의미에서 시민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사람이다. 돌봄 시민은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제한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봄을 하고 돌봄을 받을 수 있으며, 성별, 인종, 빈부, 국적의 차별 없이 돌봄을 평등하게 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헌법에 돌봄의 공적 가치를 명시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신선하고 의미심장하다. 돌봄은 개인 기부 또는 후원 형태의 시혜적 대상이 아니다. 개인과 가족이 온전히 떠안아야 할 개인적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행동이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공존과 공생의 근간이다. 장애 인식, 차별과 불평등, 혐오 등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을 최소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실천이다.

돌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성숙과 발전의 동력이다. 저자는 돌봄 민주주의 실현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고용 차별 금지, 충분한 보상, 일정 연령기에 영유아·노인·장애인과 함께하는 돌봄 책임 복무제 시행, 돌봄 교육을 초중등 의무 교육 과정으로 설정하기 등을 제안한다. 병무청이 입영 대상자를 발굴하면서 군복무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듯, 돌봄을 관장하는 기관, 즉 장기간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발굴하고 이에 대응할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 기관으로서 돌봄청을 설치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강하다.

󰡔새파란 돌봄󰡕이 폭로하고 있는 돌봄의 현실은 참담하다. 가족 돌봄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이를 제대로 인정하고 보상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만 가족인 사람을 돌봐야만 하고,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생활 동반자로서 돌볼 수 있는데도 제한적이다. 한평생 돌봄을 떠맡은 여성이 나이 들어서 정작 자신은 돌봄을 받지 못한다. 돌봄을 받지 못해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존재가 없는 가족 난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 모두 우리 삶에서 돌봄을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한 노력 중 하나가 돌봄 시민 되기다. 나부터 돌봄 시민 되기에 나서서 돌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15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돌봄에 대해, 나는 돈을 번다는 이유로 돌봄을 안 해도 된다는 식의 보호형, 생산형 돌봄 무임승차권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도 장인어른 돌봄은 장모님과 아내의 몫으로 나는 여전히 무임승차에 한 발을 얹고 있다. 20대 초반인 큰아이와 두 명의 미성년 자녀는 미래의 어느 때든 나를 돌봄 대상으로 돌봄 주체가 될 수 있다. 당장 그렇게 된다면 모두 영 케어러가 된다. 내 자녀에게 돌봄이 일상을 뒤흔들지 않고, 사고가 아닌 사랑이 되고, 진로 이행에 방해가 안 되고, 자신의 생계 활동과 꼬이지 않으며 하고 싶은 모임을 할 수 있는 돌봄 여건이 사회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모두가 돌봄 시민이 되고 돌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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