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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평점 :

세상에는 참 많은 책이 있다. 보통 광고를 통해 책을 알게 되어 찾아 읽게 된다. 요즘 나는 '문학동네'카페에서 나오는 단편 리뷰 대회를 보고 책을 찾는다. 일단 단편은 20페이지 정도 짧은 글을 읽고 느낌을 적으면 된다. 그러다 이 작가 글이 마음에 들면 나는 짧은 글쓰기를 멈추고 책 전체를 읽는다. 이 책이 그렇게 만든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소장하고 싶다. 좋은 책이다.
마르셀 에메는 처음 듣는 작가다. 내 기준으로 '듣보잡'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면 무식이 인증될 뻔했다. 그가 쓴 글은 반세기 넘게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쓴 단편으로 몽마르트 언덕에는 큰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 조각상을 배경으로 찍은 구글 사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짧지만 강력한 한 방. 현실과 상상을 드나들지만 이 두 공간이 사이 이질감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연금술사 같은 진행. 그가 갖고 있는 창작 능력이 부럽다. 이런 대단한 작가를 난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뜬금없이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요즘 인기 있는 소설집이 생각났다.
짧은 이야기 속에 오싹한 반전이 숨어있다는 김동식 소설집. 조만간 곧 읽어봐야겠다. 이 소설과 같이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재미있었던 순서대로 이 소설 내용과 감상을 간단히 적어볼까 한다.
1.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와- 이 소설은 대단하다. 몸이 아픈 주인공 뒤티유욀은 몸이 아프며 벽을 뚫는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한 치료방법도 있다. 굳이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될 일이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괴롭히는 보스에 대한 복수로 이 능력을 사용한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권력'을 갖게 됐음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그 권력을 계속 사용하다 생각 없이 먹었던 치료제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
파리의 소음이 잦아드는 야심한 시각에 노르뱅 거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은 무덤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몽마르트르 언덕의 네거리를 스치는 바람의 탄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늑대인간' 뒤티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다.(35)
이 소설은 영화 '인 타임'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에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수명을 줄인다. 정말 필요 없는 사람은 죽여버리고 절반인 사람은 절반 시간만 살 수 있다. 세상에 유익을 주는 사람만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며 결국 시간을 사고파는 일이 생긴다. 결국 자본주의 폐해가 생존 시간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 생존 시간을 좌지우지하는 국자 제도는 없어진다. 어이없는 설정이지만 얼마나 촘촘하게 그 규칙을 설명했는지 난 읽으면서 정말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시간이 새끼를 쳐서 6월이 길어지건 말건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어제저녁부터 한 여자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68)
3. 속담
이 소설만큼은 극 사실주의다. 시대를 초월했다. 마치 오늘 있었던 일 같은 내용이다.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들 숙제를 도와주면서 생기는 일이다. 마지막 어이없는 반전은 그 아버지 권위를 있는 대로 추락시킨다.
내 아들 내가 교육하는데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마세요. 나는 이 애의 아버지로서 할 도리를 하는 거고 내 방식대로 이 아이를 가르치고 싶으니까요. 애들이 제멋대로 구는 것을 다 받아주고 싶으시면, 고모님이 자식을 낳거든 그때 가서 마음껏 하시라고요.(79)
4. 천국에 간 집달리
자기 일에만 충실한 빚을 받아내는 집달리가 천국에 가기 도전한다. 결국 그 도전 결과는? 결국 현실 세상에서 준법정신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선한 일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시 사람은 자기가 집달리이면서도 '집주인들을 타도하자!'라고 외쳤으니까요.
법에 반하는 일이었지만 하나님 기준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선행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옳고 그름은 항상 바뀐다.
5. 칠십 리 장화
이 소설은 빈부격차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프리올라의 어머니처럼 우월한 사회적 조건에 있는 부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가난한 여자들과 자기들을 대등하게 놓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124)
이 책은 짧지만 긴 생각과 토론이 가능한 책이었다. 아이가 크면 같이 읽으며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내 생각은 변하지만 책은 그대로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