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할까요? 1 - 허영만의 커피만화
허영만.이호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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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커피에서 커피 한 잔-알 수록 맛있고 알 수록 재미있는 커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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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우리 엄마
티에리 르냉 지음, 줄리엥 로사 그림 ,이혜선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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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를 디스하다가 급하게 엄마가 최고라고 끝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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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9 14: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순수하면서도 솔직한 돌직구가 가끔은 부모를 민망하게 만듭니다. 생각지도 않는 상황의 순간에 나오기 때문에 부모가 엄청난 데미지를 입습니다. ^^;;

책한엄마 2016-09-29 15:3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ㅜㅠ안 그래도 그런 얘기로 상처를 입었는데 말입니다.그림책이 이차로 데미지를 줬습니다.ㅠㅜ

서니데이 2016-09-29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텔레비전에서 노래하는 아줌마도 예쁘지만 거울앞에 자신있게 서있는 엄마도 예쁜데요. 예쁘지 않다고 써있으면 안 예쁜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군요. ^^

책한엄마 2016-09-29 15:3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제가 보기엔 엄마가 예쁜데...계속 이런 식으로 글자로 상처를 주네요.흑흑!!읽는 엄마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황선미 지음, 봉현 그림 / 사계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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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기억은 언덕 밑에 보이는 시위 모습이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왜 부모님은 이런 곳에 살까? 항상 나는 궁금했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이상한 힘에 이끌려 언덕 밑에 보이는 그 학교에 들어갔다. 대학 정문에 나갈 때면 내가 내려 보고 있었던 그 곳이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주택은 없고 아파트로 변했다.


그곳을 가끔 바라보며 옛날 기억에 잠긴다. 다시 안 오겠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가고 난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까? 내가 내린 결정임에도 알 수 없는 힘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책 속 주인공 강노인에게 봤다. 강노인은 어쩌면 나다. 왜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예전에 살던 그 곳으로 돌아온다. 죽음을 감수하고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강노인은 죽음을 앞두고 몸을 쉴 공간으로 예전에 머슴으로 살던 주인집을 선택한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강노인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누구나 강노인이 금지한 뒤뜰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 강노인은 마을 사람을 싫어한다. 직원만이 강노인 곁에 있을 뿐이다. 뒤뜰에 마을 사람이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분노한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 출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강노인은 복수를 하고 싶었다. 나도 그렇다. 나를 우습게 여기거나 업신여겼던 사람을 생각하면서 성공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 사람 앞에서 성공한 나와 어려움에 허덕이는 상대가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우쭐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분노는 신기한 힘을 내게 했다. 공부 못한다고 놀리는 친구 모습이 감기는 눈을 뜨게 했다. 눈이 나빴을 뿐인데 글자를 못 읽는다며 학생 앞에 혼냈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밤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물론 공부를 잘하고 우수한 학생이 됐다는 건 내 자신에게 좋은 일이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허무함이 몰려왔다.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날 놀리고 우습게 여기던 아이들이 괴로워하지 않았다. 선생님도 눈이 나쁜 것을 오해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그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강노인이 성공해서 돌아왔음에도 왜 주위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읽고 의아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을 배척하고 혼자만 갇혀 지낼 것이라면 왜 굳이 돌아왔을까? 아마도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나처럼.


강노인은 아버지를 사고로 잃는다. 주인집 딸이 그네를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에 아버지가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 나무에 떨어진 아버지는 숨을 거둔다. 그 후 강노인은 아버지 죽음을 주인집 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노를 마음에 안고 돌아와 복수를 하리라 생각하며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간다. 그래서 강노인은 큰 성공을 했다. 돈을 벌었지만 병을 얻었다. 이후 번듯한 부자가 되어 주인집을 자신이 차지한다. 그렇지만 나와 같았다.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허무했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


주위 따뜻한 마을 사람 관심을 귀찮아한다. 그저 자신을 가만히 놔두길 바란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죽기 전 원하는 일을 다 하기 위해서는 주위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강노인이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일은 필연이었다. 강노인은 어릴 때 자신과 똑같은 성향을 가진 ‘성훈’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상처를 치료한다. 마지막으로 주인 딸과 원망도 직접 만나 오해를 푼다.


책 속에서 치매로 마음만은 어린 아이가 된 주인집 딸 송이와 강노인이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으로 끝낸다. 책은 끝났지만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이 책 뿐 아니라 내 삶에도 겪는 그 아련함 때문이었다.


우린 보통 자신 입장에서 오해를 쌓고 살아간다. 강노인이 평생 안고 살던 분노는 오해였다. 그는 사람 마음을 잘못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부정적으로 본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내 감정이 우선이 되어 오해한다.


생각보다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어렸을 때 본 대학, 그리고 다녔던 대학, 이제는 내 어렸을 때 나이인 내 딸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신나게 뛰어노는 딸을 보면서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매캐한 연기가 싫어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그곳을 다시 찾아오는 나를 보며 신기했다. 좋은 추억이 매캐한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나 보다. 강노인처럼 말이다. 강노인 또한 주인 딸, 송이와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지병을 가진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만 없더라도 강노인이 가진 어린 시절을 그토록 슬프진 않았을 텐데. 그래도 다시 돌아와 즐거운 추억을 찾은 강노인을 보며 나 또한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거닐던 캠퍼스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딸을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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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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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의 `압록강을 흐른다`라는 책을 읽으면 외국인들 마음이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뜬금없이..
그 당시 외국어로 지어진 우리나라에 대한 책이라고 강추강추를 하는 선생님이 계셔서 읽어보긴 했는데..
당시 내 깜냥이 안 되는고로..그냥 그렇네~심드렁~이렇게 끝난 기억.
영어로 지어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두 번째 소설.

일단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던 테러범 덕분에 더 많은 포커스를 받은 것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그 폐쇄적인 이슬람 사회를 소설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이 작가가 천재라고 생각되는 것은
첫번째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이라 그렇다치고 이 책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여성들의 심리나 마음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리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부분이다.


먼저 미리암이란 여자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생아로 외딴 오두막에서 가정부 출신 엄마와 사는 소녀.
사생아나 아버지의 도리를 다 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와 딸에게 애정을 쏟으나 여성으로서 사랑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딸에게 푸는 애증의 미리암 어머니 나나.
결국 미리암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그렇지만 아버지는 현실에 있는 세명의 본처와 많은 자식들의 현실에 치여 결국 미리암은 나이가 엄청 많은 홀아비에게 시집보내진다. 애는 계속 유산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예쁜 라일라는 포탄이 눈앞에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외발인 이웃 티리크와 우정과 사랑을 느낀다.
사람들이 마을을 하나 둘 떠날 때 티리크는 떠나면서 라일라와 사랑을 나눈다. 그 후 라일라 부모는 마을을 떠나기 직전 죽음을 맞고 결국 혼자 남은 라일라는 티리크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고 미리암의 남편에 두번째 부인이 된다.
그 후 라일라는 미리암을 때리는 남편을 막으면서 친해지게 되고 둘이 도망가다가 호되게 맞는 일이 생긴다.
또 티리크의 등장으로 질투를 하게 된 남편이 라일라를 죽이기 직전 정당방위로 미리암이 남편을 죽이지만 남성중심 이슬람 사회에서 사형을 당하게 된다.
미리암과 두 아이들은 티리크와 같이 잘 산다.


내용을 써보니 별볼일 없어보이지만 그 안에 많은 감정과 여성을 향한 사회의 부당함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더더군다나 미리암이 사형을 당한 시점이 현대라는 것이 두 눈을 의심케 한다.
미리암의 나이도 너무 어리고 딸뻘 되는 라일라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런 시대에 떨어진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 와중에도 애증 안에서 나오는 미리암에 대한 엄마의 사랑(미리암이 집을 나가 버리자 자살해 버렸다.)
그리고 비록 사생아임에도 나름의 사랑을 주려고 애쓴 미리암의 아버지
각각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라일라와 그 모성.
라일라의 첫 딸을 향한 길러준 엄마 미리암의 사랑.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따뜻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다.
또한 어제 만난 친구가 가족이, 다음날 포탄에 맞아 지붕으로 땅으로 다리와 발만 남은 채 현실을 떠난다는 잔인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것과 함께 강신주 박사님의 전쟁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북파작업이나 전쟁 최전방에 있었던 군인들은 현실 생활에 적응을 못해 대부분 술에 찌들어있기 쉽다고 한다.

재밌게 읽었고 또 영화로도 보고 싶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나 보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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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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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같은 소설이 상을 받다.

 

 

 

'채식주의자'는 책이 되어 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엄밀히 말하면 이 세 개 중편이 세상에 빛을 본지 10년이 지난 책이다.
그 책이 갑자기 맨 부커상을 받았다.
십 년 전에 이 책은 뜨거웠을까?



어느 감독이 이 책을 읽고 깨닫는다.
적은 돈으로 관객을 끌 수 있는 소재다.
그래서 찍는다.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배우는 김여진이란 인혜를 연기한 배우뿐.
그저 눈길을 끄는 충격적 이야기 소재로 관심만 끄는 안타까운 영화가 되어버렸다.

 

 

 

이 책이 국제 상을 받은 이유


1. 서구와 다른 이국적 색채.

 

서양 사람은 오리엔탈리즘에 관심이 많다. 이국적인, 자신은 모르는 세상.
상을 주는 심사위원에게도 눈길을 끄는 소재다.
한국이라는 동양이란 나라에서 일어난 일.
이 안에 남자는 다 제정신이 아니다.
극히 왜곡된 남성이 나오고 그 안에 버티는 두 유형 여인이 나온다.
영혜는 '여자는 자고로 가만히 있어라.'라는 요구에 충실한다.
결국에는 가만히 있는 식물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고 햇빛만으로 살기 위해 가지와 뼈대만 갖고 있는 나무로 변한다.
인혜는 고분고분 남자가 갑인 세상에서 섞여 살아간다.
또 그 다른 남자인 아들을 품으며 그렇게 버틴다.


이런 강한 남성 아래서 핍박받는 현실은 마치 아프가니스탄 실상을 그린 할레드 호세이니를 떠오르게 한다.
'곰곰이 생각하는 발'(패루애)님이 이 부분에 대해 '채식주의자'를 강하게 비판했다.
나 또한 그 비판에 공감한다.
편파성이 없지 않아 있는 작품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일부러 문장을 꼬았다.)

 

2. 서양인에게 관심 있는 주제: 개인 주체에 대한 고찰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을 보자.
예쁘긴 하지만 너무 예쁘면 안 된다.
그렇다면 남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남 일에는 큰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내 이야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관심을 갖고 읽는다.
이국적인 세상 이야기라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는 버림받는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엄마를 부탁해'이다.
이국적인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해서 많은 영어권 사람이 읽었다.
그렇지만 외국 감상은 그렇다.
"왜 네 엄마가 아픈데 너도 마음 아프다고 난리냐?"


인기는 많다고 외신 보도는 됐다. 그뿐이었다. 그냥 깜짝 관심.
그게 끝이었다. 상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채식주의자'는 다르다.

 


이 책은 퓰리처상을 차지한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과 많이 닮아있다.
오리엔탈적 생각이 섞여있지만 '나'에 대한 실존이 들어가 있다.
사회에서 '나'는 과연 누구일까.
세 중편 모두 '영혜'가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세 편 모두 화자는 다르다.
처음 '채식주의자' 화자는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적당한 여자라고 생각한 영혜와 결혼한 남편.
두 번째 '몽고반점'은 영혜를 가장 이해한 형부. 그렇지만 형부는 결국 예술은 완성됐으나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선택을 한다. 가장 많은 논란이 생기는 소설이다.
세 번째 '나무 불꽃'은 끝까지 동생을 지키며 이해하게 되는 인혜가 화자다.
세 명이 보는 영혜를 통해 피동적 인간이었던 영혜를 이해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위치를 선점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엄마를 부탁해'처럼 엄마와 자식이 일체가 되어 서로를 이해한다는 그 특수한 감성이 굳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3. 작품을 얕게 이해하고 쓴 번역가

 


이 책 상은 정말 우연하게 받았다.
만약 저명한 번역가가 이 책을 번역했다면 어땠을까?
나름 배운 번역가라면 한국 안에 있는 정서와 한강이 얘기하고자 하는 글을 다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술적으로 성공한 훌륭한 번역서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글이 과연 한국을 모르는 심사위원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상을 주기로 결정한 사람도 '사람'이다.
올림픽도 체조 같은 경우 사람이 채점을 하긴 한다. 하지만 '문학상'이란 것은 심사위원을 이해시켜야 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를 잘 모른다. 영어로 한국어를 직독직해했다. 왜냐하면 한국어로 읽었을 때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랬다. 자신이 재미있는 부분을 그대로 번역에 담았다.
전문 번역가는 그럴 것이다. 이것은 절대 번역이 아니다. 그저 단어를 옮겨다 붙였다.

그렇지만 심사위원도 영국인이다. 그게 작용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일본 작가다.
그가 쓴 책(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을 읽고 놀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절대 현학적인 일본어로 구사하려고 하지 않는단다.
나름 와세다대 나온 남자인데, 아주 쉽게 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단다.
먼저 자신 소설을 영어로 쓴다. 자신이 원래 쓰는 단어가 아니기에 영어로 쓴 문장은 어휘에 제재가 아주 크다. 그럼에도 그렇게 영어로 쓴 다음 번역한다는 마음으로 일본어로 고쳐 썼단다. 그렇게 한 편 소설을 끝내고 그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놀라웠다. 그래서 그가 쓴 글이 역시 미국에서 먹힐 수 있었다.
그렇다. 상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 읽는 사람 입장에서 쓴 글이 중요하다.

 

 

 

다음에 또 써야겠다.-_-

 

 

 

열심히 쓰다가 내 정신 배터리가 나갔다.
아무래도 그래서 내가 이 '채식주의자'를 읽었지만 서평을 차일피일 미룬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번 동대문 도서관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고 떠올렸던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각 세 편 소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글을 써 봐야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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