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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공지영 작가.
전에 선생님이 단테 강의를 들었을 때 인상깊은 구절이라고 말씀 해 주신 명구가 생각이 났다.
˝가장 나쁜 일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이다.˝
이 이야기에 적용하면 공지영 작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뜨거움을 가슴에 품고 실행하는 옳고 옳은 사람일 뿐.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욕과 사랑을 한꺼번에 받는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작정하고 가볍고 재밌게 쓴 수필 모음집이다.
한겨레에서 가벼운 소재로 연재한 칼럼들을 모은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처음은 자신의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
그리고 두 번째는 온전히 자신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일들로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글들이 담겨있다.
마지막 부분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는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자신이 묻고 자신이 답하는, 어쩌면 `자화자찬`의 자리가 될지도 모르는 웃음 가득한 인터뷰로 끝을 맺는다.
사실 공지영 작가의 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이렇다.
매우 무겁고 심각한 주제에 대해 쓰고 싶은 열망은 있으나 글은 한없이 가볍다.
공지영이란 작가의 글은 넓고 얇다.
한 마디로 `척`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예 대놓고 가볍게 이야기를 펼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글 안에서 공지영이란 작가의 깊은 저력을 보았다.
견디기 힘든 아픔이 아물면 딱지가 되고 딱지가 아물면 유머가 되는 것인가?
재밌고 유쾌한 이 글 안에서 그전에 겪었던 치열한 싸움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첫 번째 부분은 친구와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mbc 스페셜에도 나와 인기인이 된 `버들치 시인`과 `낙장 불입 시인`을 처음 소개한 글이 실려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이 많다고 대접을 바랐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자신이랑 똑같은 생일을 가졌다거나(주민등록상으로)
술 버릇이나 시련 등에 대한 부분은 차 마시면서 수다 떨며 한바탕 웃음 몰이를 할 주제였다.(이것은 ㅁㅇ이 언니가 얘기했던 부분이다.)
특히 술 마시면 하는 소리를 또 하는 두 명의 친구 그리고 그 다음날 정신이 멀쩡해서는 둘이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분은 최고의 웃음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이 글 안에는 작가가 숨겨놓은 어두운 부분이 있다.
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슬프게도, 대개는 나쁜 사람을 본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들이 내게 준 교훈이 하나 있는데 절대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53)
두 번째는 작가 스스로를 보며 생각해 보는 부분이다.
제목 또한 매력적이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작가 어린 시절 이야기, 자신의 이름, 자신의 이혼, 그리고 악플.
이런 자신의 쓰라린 일들을 최고의 유머로 승화하는 작가를 보며 그녀의 내공이 보통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알몸이 보일까 봐 홑겹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아, 춥다고요. 담요를 좀 주세요.˝하고 있는데, 이 간호사들은 그런 내 모습이 뭐가 우습다고 까르르 웃으며 ˝선생님, 그럼 담요 드릴 테니 사인해주세요.˝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담요를 두 개 더 덮는 조건으로 알몸이 보일까 조심조심 팔을 내밀어 열 명쯤의 간호사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내 오른쪽 팔이 아직 시큰거리는 것은 그때 조리를 잘 못 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132)
이 부분을 보며 영화 `파인딩 포레스트`가 생각났다. 포레스트는 세상에 대한 실망으로 세상을 왕따시킨다.
유명한 작가였으나 방 안에 틀어박혀 생애 대부분을 보낸 것.
그 이유는 동생이 죽어가는데 자신의 책이 너무 좋다며 책에 대한 느낌을 쏟아내는 간호사를 만나면서다.
또 비슷한 이야기. 친구를 만났는데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친구.
계속 답을 제시해주는 작가.
하지만 계속 만나기만 하면 그 얘기만 했단다.
그래서 결국 모진 말을 하고 관계를 끊었다가 나중에 다시 화해를 했는데, 맙소사 또 똑같은 얘기를 했다고.
이 부분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살아 있는 것일수록 불완전하고 상처는 자주 파고들며 생명의 본질이 연한 것이기에 상처는 더 깊다.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171)
마지막 파트 가정에 대한 이야기.
육아를 한다면 참고할만한 이야기도 적혀 있다.
˝모든 과목에는 아이들 별로 분명 우열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함께 넣어놓으면 다들 힘들어요. 수학을 못한다는 게, 영어를 못한다는 게 열등하다는 것과 동일 어가 되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김연아라면 어땠을까요? 박태환이라면? 우리 아이는 수학은 아니지만 영어도 아니지만 피겨도, 수영도 아니지만, 그 다가 아니라도 무언가 잘하는 게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게 뭔지 아직 나는 모르지만 저는 그걸 믿어주고 싶어요.˝(205)
가볍게 썼다지만 이 책을 결코 가볍게 읽을 수는 없었다.
웃음 안에서 작가의 깊은 숨은 힘을 볼 수 있었다.
안티의 큰 비난하는 목소리는 어쩌면 부러움과 시샘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나는 평화를 간절히 갈구했다.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어느 정도 생이 안정을 찾고 나자 나는 자유를 원했다. 처음 자유를 원한다,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솔직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피에 젖은 맨발 같은 것이었다.자유라는 게 말이 그렇지 그게 쉬운가 말이다. 개인이든 나라든 자유라는 걸 얻는다는 것은 결국 핏빛 깃발을 휘날리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란 결국 평화의 다른 이름이며 정말로 예수의 말대로 그건 진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는 것 말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진리란 결코 옛것의 이름으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다가 비참하게 사형당한 사람이고 보니, 내가 처음에 생각한 피에 젖은 맨발이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과 상처를 버리는 곳에 조금씩 고이는 이 평화스러운 연둣빛 자유가 너무 좋다. 편견과 소문과 비방과 비난 속에서도 나는 한줄기 신선한 바람을 늘 쐬고 있으며 내게 덕지덕지 묻은 결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고통 속에서도 내게 또 다가올 그 자유가 그립고 설렌다.(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