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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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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네 심상(心想)의 한 자리를 차지해오며 인간의 사후세계를 지배해온 설화적이고 전설적인 존재 귀신들.. 그 귀신들이 주는 야담(野談)은 먼 조상때부터 전승되고, 회자되고, 살이 붙어 새롭게 태어나는등 무던히도 우리네 공포적 상상의 자극제로 자리매김 해왔다. 그중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은 여러 귀신들중에서 가장 임팩트하고 어필을 많이 한 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찌보면 한국 귀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처녀귀신'이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한(恨)으로 가득찬 단순한 공포의 대상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심지어 유희적 호러 존재로까지 희화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 처녀귀신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이면에 숨은 전통적 관습에 대한 모순과 비판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책 '처녀귀신'이 그렇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책은 문학동네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2010년판 '키워드 한국문화'시리즈중 여섯 번째 이야기로 우리 한국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출간된 문고판 형태의 책이다. 그래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이 책 <처녀귀신>.. 제목이 주는 단조함과 임팩트한 느낌에 부제는 바로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이다.

그렇다. 바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아 생전에는 사회적, 가정의 약자로서 빛을 보지 못한 그들이 한(恨)을 품고 원귀가 되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떠돌며 산 사람들을 끊임없이 공포에 떨게한 그들.. 하지만 어찌보면 그들은 정작 소통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한을 풀어줄 대상을 찾아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 부문에 중점에 두어 이야기를 풀고 있고, 각 장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4-5편의 야담집 『기문총화』등에서 나온 귀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 숨은 한을 해석해 주고 있다. 특히 이런 야담집들이 사대부 남자들의 여가적 독서용으로 향유되어 왔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귀신이 여자만이 있지는 않을터.. 남자 귀신은 죽은 뒤에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권위를 행사하며 저승에서도 벼슬을 하는등 조상신으로 가려지는 반면, 여자 귀신은 한을 품은 원귀로만 등장해 현실의 여성들이 풀어내지 못한 한과 응어리를 귀신이 되어서도 간직한 채 살았으며,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은 오직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원귀가 성립돼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여자들의 한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는 반증인 셈이다.

즉, 죽어서도 존경받는 남자 귀신은 현실을 통제하는 파수꾼이자 해결자로 남는 반면에.. 여자 귀신은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생사의 경계에서 선 '난민'이라는 이중적 잣대로 그녀들은 죽어서도 원혼의 중점에서 섰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 귀신이 되는 야담집 사례를 보면은 '자살'을 통해서 귀신이 되는 예가 많다. 남자들에게 버림받아서, 사랑받지 못해서, 또 모함과 질투때문에.. 바로 자살한 여자들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이것은 어찌보면 강요된 사회적 희생으로 그녀들을 단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단죄가 전통 사회의 문화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네 자화상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죽어서도 아니 죽어야만 비로서 자신을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던 그녀들.. 이것이 바로 원혼의 저주와 복수극으로 이어졌으니 바로 여자의 한(恨)이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견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恨)이란 성취를 향한 개인적 욕망의 범주를 넘어선 극한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가 위협받을 때, 탐욕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 제한받을때 사람들은 한을 품게 되고, 그런 점에서 한을 살피지 않는 행위는 인간됨의 최소 요건마저 저버리는 패륜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한을 품은 귀신이야말로 귀신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 저자는 이렇게 귀결시킨다.

   
  귀신 이야기는 음파가 잡히지 않는 어두운 내면에 달아 놓은 문학적 확성기와 같다. 살아서는 할 수 없었던 말이 문학적 상상력의 힘으로 태어난 귀신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이야기 속에서라도 사회의 모순을 뼈아프게 들추는 진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바로 이 '불편함'이 귀신 이야기가 형성되는 공포의 요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형성된 공포는 당대 사회의 건강성을 반영하는 지표가 된다. 그것이 화들짝 놀라는 단발성 공포의 형식일지라도, 전율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사회의 그늘을 들추는 불편한 진실과 목도하게 된다.  
   

즉, 아직까지도 우리의 심상을 건들고 있는 귀신 이야기는 사회적 문화적 관습에 의해서 치부되어 왔고, 건강한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이 현실적 장벽 속에서 그들의 은폐된 목소리 '귀곡성'은 바로 마이너리티의 문화로 자리매김 해왔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분명 귀신 이야기를 한(恨)이라는 정서가 갖는 숨은 이면의 인문학적 고찰로 풀어낸 한 편의 리포트라 볼 수 있는데.. 하지만 책 자체가 200여 페이지가 안돼 얇다보니 좀더 심도있게 '귀신'이야기를 통한 지금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통찰과 비판이 조금은 부족한 텍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 문화에 귀 기울이며 전설속 공포적 존재로서 처녀귀신 뿐만이 아니라 귀신들의 이야기를 한(恨)이라는 정서가 갖고 있는 요체를 알고 귀신이라는 상징물을 통해서 현실과 인간에 관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귀신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 또 오락적 유희로서 희화만 하지 말고, 왜 귀신이 되었고, 귀신의 한(恨)을 다각적으로 접근하며 이제는 귀신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전통문화속 인간사를 되짚어보는 도정이자 사유 코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지금도 심상속에 존재하는 귀신의 해원(解冤)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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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그는 누구인가? 바로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최고 권력자였으며 이성계의 오른팔.. 조선의 밑그림을 그려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모든 체제를 정비한 정치가이자 유학자..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연 조선에서 그는 오랜 빛을 보지 못하고 1차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이 대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찌됐든 정도전은 분명 조선 건국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런 그가 역사 팩션소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저자는 유명한 역사 소설가로 정평이 나 있는 '이수광'氏.. 사실, 이 분 책은 예전에 SBS '왕과나' 사극 방영때 산 동명의 '김처선' 팩션 소설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그 유명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두 권의 팩션역사서가 그의 이름을 알려준 대표적 작품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어찌보면 흥미거리 위주의 자극적인 역사서가 아닐 수 없는데.. 하지만 이번에 나온 신작 '정도전'은 어떻게 그렸을지 기대된다. 그래서 읽고싶어 두 권을 인팍에서 질렀다. 책을 간단히 소개해 보면 이렇다.

14세기를 살면서 왕이 아닌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인물이요, 귀족에게서 땅을 몰수해 농민에게 돌려줄 구상을 한 인물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6백 년 정도(定都) 한양을 설계한 인물 정도전.. 또한 "백성의 마음을 얻어라. 그러지 못한다면 백성이 군주를 버릴 것이다!" 오직 신념 하나로 조선의 새 아침을 연 정도전.. 이런 그가 역사소설가 이수광에 의해 다시 태어나 그의 신념이 만든 세상과 굴곡진 삶은 무엇이었으며,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그리고 있다.

특히 정도전은 조선조 내내 역적의 대명사로 불리는 치욕을 겪었지만, '조선경국전'을 비롯해 정도전이 이룬 치적과 신권정치의 신념은 조선왕조를 관통해 이어져왔고,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강력한 왕권 견제장치를 만들고, 왕에게 무소불위 권력을 주지 않았던 강력한 신권정치의 나라 조선.. 그런 왕과 신하가 균형을 이룸으로써 5백년의 사직을 이어올 수 있도록 대계를 세운 것이 바로 정도전에 대한 평가다.

더군다나 "정도전 선생이 있다. 나는 그를 수백 년 내 최고의 업적자로 본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2007년 12월 마지막 기자 만찬 中)은 말했다고 한다. 즉, 조선 건국을 얘기할때 그를 빼놓고선 말할 수 없는 임팩트가 있는 인물이다. 14세기 ‘근세의 지성’  불리는 정도전이 6백년 역사를 관통하며 동서양 그 어디에서도 꿈꾸지 못한 ‘민본(民本) 정치’의 대계를 세웠고, 제왕에 가려진, 공신의 지위에 숨겨진, 조선의 진정한 개국자인 정도전의 삶과 야망을 현대적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을 통해서 생생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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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3주
이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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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에서 명성을 가져다 준 '투캅스', '공공의 적', '실미도'등으로 잘 알려진 연출자 '강우석' 감독이 전작들처럼 사회풍자식의 대중성있는 코미디 액션이 아닌 이번에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그것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서스펜스를 가득 탑재한 스릴러물이다. 어찌보면 첫 시도하는 장르연출인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윤태호 원작의 인기 웹툰 <이끼>를 영화화했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영화와 만화는 비주얼적 측면에서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장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원작의 아우라가 좋고 제목처럼 음습한 분위기에 제대로 된 스릴러 웹툰을 보여주었다는 호평이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강우석식 대중성을 가미한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답게 그림이 나온 느낌이다. 극중 유해진 때문에 간간히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아무튼, 난 아쉽게도 원작을 보지 못한 채 오로지 줄거리만 알고 2시간 반이 넘는 그 마을로 '농촌스릴러' 여행을 떠났으니.. 그 마을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20년간 의절한 채 지내온 아버지 유목형(허준호)의 부고 소식에 그가 거처해 온 시골 마을을 찾은 아들 유해국(박해일),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마침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왔던 해국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마을에 남기를 원하는데.. 그의 선언에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단 한 사람 천용덕(정재영) 이장을 제외하고, 한번 살아보라고 말하는 이장의 말에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금새 돌변하고 컽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노인 같지만, 섬뜩한 키리스마로 마을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이장과 그를 신처럼 따르는 마을 사람들 결국, 해국은 이곳에 사람들이 모두 의심스럽기만 한데...



이렇게 어느 한 청년이 뜻하지 않게 아버지의 죽음때문에 한 마을을 찾게되고, 그 아버지의 죽음이 무언가 석연치 않음에 마을에 칩거하며 죽음의 원인 파헤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영화는 아버지의 부고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때는 거슬러 올라가 1978년 어느 가을..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유해국의 아버지는 기도원 원장으로 절실한 크리스찬이었고 죄 많은 사람들을 신(神)께 인도하는 착한 목자였다. 바로 그의 삶은 오로지 구원이자 구원만이 살길이었다.

이런 그가 돈을 횡령했다는 모함으로 공공의 적 '강철중'처럼 막가파식 천 형사(정재영)에게 잡혀가 고초를 껵고 결국 수감생활까지 한다. 그리고 천은 유씨에게 제안한다. 우리 한번 같이? 살아보자고.. 리고 세월이 흘러 산 속의 요새같이 생긴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30여년을 같이 살았던 유씨가 죽는다. 이장부터 해서 마을사람들은 어찌된 거냐며 안타까워 하는데.. 이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씨의 아들 유해국.. 장례만 치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갈 줄 알았던 그가 마을에 남겼다면서 이장부터 다른 사람들은 해국을 경계한다. 그것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듯이 말이다.

바로 이장의 지시가 있었으니.. 그는 전직 형사 출신으로 끄나풀도 많고 불린 재산도 많아 이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신(神)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의 말 "이 마을에선 내가 시작이자 끝이다."처럼 말이다. 이렇게 한 마을의 신적인 존재이자 날선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비밀스런 천용덕 이장을 비롯해 극중의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중심을 이룬다. 특히 이장의 켵에 수족처럼 따라다니는 오른팔로 동네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는 순박한 마을 청년 김덕천(유해진)..

그리고 과거 살인 경력으로 천 형사 손에 이끌려 또 유목형 목자에게 인도돼 참회의 삶을 살고 있는 전석만(김상호)과 하성규(김준배), 하지만 둘은 참회라는 속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본연의 악의 본성을 드러낸 인물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유일한 여성 주민이자 슈퍼 주인 이영지(유선), 그런데 그녀는 여기 사건과 관계없는 듯 보이지만 그녀는 제 3자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목도하는데.. 그리고 주인공 유해국때문에 지방으로 좌천된 박민욱(유준상) 검사, 박검사는 유씨를 미워하지만 범인은 검거때문에 그와 손을 잡는다.



이렇게 이 마을은 유해국을 내쫓으려는 순간부터 무언가 음습하고 비밀스런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리고, 유해국은 아버지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면서 맞딱뜨리게 된 살해의 공포, 그리고 그 모든 현장을 목도한 한 여자와 이런 사건을 높은 성에서 내려다 보는 전지전능한 영주처럼 지시내린 이장, 그리고 그런 이장에 맞서 죽기전까지 구원의 삶을 끝까지 놓치 못하면서 자기안의 또 다른 본능에 시달려온 해국 아버지 유목형.. 결국 유씨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아니 30여년전 시작된 유씨와 천씨 둘의 관계는 어찌돼서 이렇게 파국을 맞이한 것일까..

과연, 아들 해국은 아비를 누가 죽였는지 또 그 죽음의 원인은 무엇인지 밝힐 수 있을까.. 결말에 밝혀지지만 결말도 좀 함의적 연출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아무튼, 영화상의 큰 대결구도는 어찌보면 유목형과 천용덕 이장으로 압축될 수 있고, 30년전부터 시작된 악연이 이어져 오며 같은 하늘 아래 한 곳에 모여살면서 하나는 신께 구원의 길을 찾아 신이 되려는 사람과 하나는 그런 신이 아닌 인간의 신으로 군림하며 살려는 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비극적 이야기 <이끼>.. 

그것은 인간사 가장 더러운 진면목들이 여기 낯선 시골 마을에 뭉쳐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그런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베트남전, 부동산 투기, 수상쩍은 기도원, 경찰과 검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폭력 행사, 자력구제할 수 없는 소녀를 마을 남자들이 집단으로 강간하는 사건까지.. 어느 한 구석에는 반드시 '걸려든다'는 이 불편한 진실들로 포장된 더러움이 결국 파멸과 구원의 양 갈래로 치닫으며 바위틈속에 착 달라붙어 낀 이끼처럼 욕망이 꿈뜰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게 음지의 습한 곳에서 계속 자라나며 인간의 욕망을 옭아매고 있다. 결국, 그것이 구원과 파멸의 길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영화 <이끼>가 주는 메시지는 제목처럼 사람은 이끼처럼 살아가는 욕망의 덩어리라 말하고 있다. 여기 천용덕 이장과 마을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연출은 기존의 강우석식 작품들과는 또 다른 깊이있는 사람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대로 다소 어둡게 극을 전개시켰다.

또한 극의 중반까지 스릴러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흔적속에 곳곳에 얹혀진 특유의 유머를 통해 '진실의 게임'으로 치닫는 드라마적 요소를 보다 효과적으로 몰입과 이완을 교차시키는 능숙한 연출을 선보인점은 돋보였다. 하지만 원작과는 다른 느낌으로 묵직함대신 헐거운듯 조여주는 대중성을 가미한 스릴러로 그렸기에, 사실 본연의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렵다.

더군다나 중간중간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유머는 어찌보면 장르적 쾌감을 분산시킬뿐.. 전체적인 구도도 서스펜스가 음습한 스릴러보다는 이낀 낀 사람들의 욕망을 드라마적으로 표출한 '선과 악'의 대결구도에 어느 한 마을의 비밀스런 이야기 정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찌보면 더 대중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영화 <이끼>.. 2시간 반이 넘는 런닝타임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2시간 정도로 연출해 스피드하고 스릴감있게 전개했다면 '바위틈에 낀 묵은 이끼'처럼 더 음습했을텐데 아쉽다. 이것이 나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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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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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작가라 감히 말하며 지칭하는 ’황석영’ 작가의 신작이 2008년 <개밥바라기별> 이후 2년 만에 나왔다. 제목은 <강남몽>이다. 몽(夢)에서 알다싶이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지금도 사람살이가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는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바로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과 현실이 교차돼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부자중심 ’강남’.. 그 강남의 역사 아니 ’강남의 형성사’(形成史)를 통해서 그는 우리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투영시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사실감 있게 전달하며 강인한 서사의 힘줄로 그 욕망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가 담아낸 이야기의 시작은 어떻게 되고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바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진 참사에서 비롯된다. 즉, 이 대참사를 통해서 각 인물들을 교차 편집시켜 그 이야기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즉, 총 5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이 마지막 그곳으로 모이면서 ’강남의 꿈’을 좇아 달려온 인간 군상의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니..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먼저,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는 말 그대로 백화점이 무너진 참사를 다루었다. 하지만 참사 전 여기 여주인공 ’박선녀’의 동선을 좇으며 소위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들의 일상을 그린다. 남편 덕에 세상의 시름살이는 잃은채 쇼핑이나 하면서 탱자탱자하며 지내는 아줌마들.. 여기 박선녀도 그중 하나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다. 평범한 국밥집 딸이었던 그녀는 여상 재학중 우연찮게 모델 생활을 거쳐 화류계에 발을 들이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그리고, 룸싸롱을 경영하고 부동산 투기를 맛보고 주먹계의 비호속에 나이트클럽까지 운영한다. 하지만 결국 룸카페로 전향하면서 대성백화점 김회장 ’김진’을 만나 후처가 된다. 바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이 상승되며 그녀의 상류층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간다. 왜냐?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그녀는 쇼핑중 그곳에 깔리게 된다.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각 장중 100여 페이지가 넘는 장편의 이야기로 바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일종의 현대사 가이드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바로 김회장 ’김진’.. 그는 일제시대 1910년대에 태어나 열살때 만주로 이사오고 10대 후반 일본 헌벙대의 밀정으로 일하다 관동군에 편입돼 만주의 항일군 대토벌작전에 참여하고 이후 일본이 패망하자 서울로 돌아와 미군정청 산하 특무기관인 CIC의 요원이 된다. 이때부터 김진은 해방 공간에서 좌익을 탄압하고,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진압, 박정희 좌익혐의 조사와 구명활동 등 굵직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미군정과의 선을 이용해 한국전쟁 후에도 계속해서 현대사의 뒷무대에서 영리한 처신을 거듭하며 살아남는 관록을 자랑한다.

이렇듯 여기 김진은 바로 친일, 친미의 안보이는 대표주자로 그의 삶은 위태로움속에 안이함을 유지하며 준위로 예편한다. 그리고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 직후 건설업을 시작한 그는 권력과 돈의 행방을 가늠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군에게 불하받은 서초동 땅에 아파트와 백화점을 지어올리면서 순탄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백화점이 1995년 6월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지켜보게 된다. 이렇듯, 여기 이야기는 실제 우리의 근현대사를 담았다. 그 속에는 실제 역사적 실제 인물들인 김구, 이승만, 박헌영, 여운형, 박정희, 그리고 김창수 특무대장역의 김창룡과 80년대 사채시장의 큰손 이희철(이철희)의 과거사와 그의 부인 장영숙(장영자), 실제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역의 김진까지.. 이렇게 그들은 한국 현대사의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는 말 그대로 본격적인 땅 이야기.. 바로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 6.25를 거치면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개발되지 않은 ’서울’이라는 땅덩어리.. 그 땅이 어떻게 개발되고, 누구에 의해 조작되고 만져지는지 여기 주인공이자 박선녀와 잠깐 알고 지냈던 ’심남수’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제 3한강교 건설을 앞두고 ’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심남수는 지인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당시 청와대가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은밀히 지시한 정·관계가 연루된 투기현장은 물론이요, 소위 각종 부동산 투기기법을 보는듯 용어들이 ’타짜’처럼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말 특혜분양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정보를 듣고 주변을 정리한 뒤 한국을 떠난다. 박선녀와 이별을 예고한채.. 그리고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한때 같이 사업한 지인으로부터 백화점이 무너진 소식을 듣게 된다.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은 제목에서 알다싶이 무슨 드라마 제목같다. 맞다. 실제 MBC에서 인기리에 방여되었던 한국형 느와르적 작품이었던 줄여서 ’개늑시’다. 바로 여기 이야기도 바로 느와르적인 액션을 담고 있으니 바로 조직폭력배 소위 조폭이야기다. 그런데, 그냥 조폭스런? 내용이 아닌 바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주름잡았던 실존 조폭 인물 ’조양은과 김태촌’의 내력담을 소상히 담고 있다.

여기서 조양은역은 홍양태로 김태촌역은 강은촌으로 나와 그들의 조폭사를 제대로 그리고 있다. 긴 말이 필요없다. 범죄조직 대중소설로 큰 인기를 끈 ’이원호’ 작가의 글을 보듯 치열한 조폭세계의 그림이 사시미가 내 복부를 찌르듯 펼쳐진다. 하지만 이 둘은 80년대 전두환 정권시절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치권에 이용당하며 긴 수형생활에 처해진다. 그리고 95년에 풀려난 홍양태는 제주도 어느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다가 TV 뉴스에서 백화점 붕괴현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부하에게 전화한다.  돈 좀 달라고.. 하지만 전화는 아무 말 없이 끊겼다. 

5장 <여기 사람 있어요>는 백화점 붕괴 현장에 깔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참사 현장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실제 십칠일을 버티고 살아난 삼풍백화점 지하의 아동복 점원 여기서는 ’임정아’로 나오는데 바로 젊은 그녀를 통해서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소위 공순이, 공돌이로 지내온 가족사를 좇고 있다. 바로 도시 빈민가의 이야기로 60년대말 도시 이주민들이 대거 형성돼 광주대단지(성남) 사업 소식을 듣고 무작정 천막생활을 시작했다가 광주대단지 폭동사건을 한가운데에서 겪은 사연이 소상히 펼쳐친다.

그리고 당시 서울시의 부당한 처사와 대우까지.. 그러다 강남 건설 붐이 일 무렵부터는 임정아의 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적어도 그녀의 가족은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가 일상의 반복처럼 출근하는 날 백화점은 붕괴되었고 그녀도 그 속에 깔리고 말았다. 무려 십 칠일동안.. 물론,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여기 이야기의 서막을 연 박선녀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렇게 각 이야기는 강남을 대변하는 자본주의의 단면이자 실제 ’삼풍백화점’(이야기속 대성백화점)의 참사 현장으로 각 장의 마무리에서 모두 모이게 된다. 실제 깔려있듯 그 현장을 보듯 또 참사의 이야기를 듣듯 말이다. 바로 삼풍백화점을 통해서 강남이 만들어온 일그러지고 갈라진 욕망을 투영시키며 각 인간 군상이 맞물려 한국의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어떻게 달려왔고 또 어떤 오점을 남기었는지 소상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 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녹아 있는 굵직굵직한 현대사적 사건들과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까지..

작가 황석영만의 선 굵은 서사와 역동적인 묘사의 힘으로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강남몽>은 분명 수작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작가 스스로도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인가, 그 욕망과 좌절을 이쯤에서 다 같이 되돌아보자는 생각에서 이 소설을 썼어요.” 작가는 “근대화를 이룬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여공과 월급쟁이 회사원들”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넥타이 부대들이 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작가의 의도처럼 작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이룬 한국사회의 자본적 현대사를 관통하며 바로미터로서 자리매김한 ’강남’.. 그 강남을 빼놓고선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강남을 통해서 거대한 거품처럼 들끓는 우리 시대의 벌거벗은 헛된 욕망들을 소상히 담아내며 무던히도 우리네 심상의 지형을 흔들었던 작품 <강남몽>.. 읽는 내내 수 편의 미니시리를 보듯 전개되는 흡인력과 쓰라린 아픈 현대사가 다큐처럼 냉정하게 포착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단순히 소설로만 치부되기에는 아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찌보면 몇 권의 대하소설로 나와도 무방한 이 가열찬 강남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지금도 진행되는 이야기이기에 단 한 권의 소설로 만들어진 것이 더욱 더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다가왔으니 그것이 바로 황석영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번 망설일 필요없다. 작가의 인터뷰처럼 지금 시대 넥타이 부대들 특히 30-40대 분들이 이 소설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를 관류한 ’강남’ 의 욕망을 좇으며 우리의 씁쓸한 치부를 마음껏 만끽하고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구상해보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그것이 바로 <강남몽>이 던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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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와 홍련의 원전인 <장화홍련전>은 장화와 홍련이 재산에 눈이 먼 계모 허씨와 이복동생 장쇠가 갖가지 누명과 소동을 동원해 두 자매를 죽이고, 혼귀가 된 그들이 아버지 배좌수와 고을 현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결국 원수를 갚고 편안히 저승길을 떠난다는 우리 고전 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사에서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2003년작 김지운 감독의 현대판 <장화, 홍련>을 포함한다면 지금까지 여섯 작품이 만들어졌다. 

기록에 의하면 1924년 김영한 감독의 무성영화가 시초이고, 홍개명(1936), 정창화(1956, 1962) 감독 등이 만들었고, 이중 1924년, 1936년, 1956년의 <장화홍련전>은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이유섭 감독의 1972년작 <장화홍련전>은 공포, 괴기영화의 요소인 흰 소복을 입은 자매 귀신의 등장이나 기괴한 사운드를 최초로 어필한 영화였고, 이후에는 30년이 지나서 2003년 김지운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아무튼, 한국적 공포와 호러영화를 얘기할 때 <장화홍련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는 점이다. 이에 영화적 내용 보다는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관련 책 <처녀귀신>을 통해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선, 이 이야기들은 공통점이 있다.

계모의 박해, 구경꾼 이복동생, 아버지의 방관과 오해로 연못에 빠져 죽은 장화와 홍련이 귀신이 되는 이야기는 가정조차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었던 처녀들의 삶, 딸들의 수난사를 대변하는 한국적 문화기호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나쁜 계모'라는 문화적 통념 속에서 생모 없는 삶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처럼 기쁨과 행복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재혼가정에 대한 편견의 주춧돌로 자리 잡은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은 원작과는 무관하지만 가족사 비극을 공포의 심상으로 원용하며 귀신이 되는 내력담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포의 발원지가 가정이고 자살을 종용한 사람이 아버지이며, 모종의 가족적 음모가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는 비밀스런 가족사 비극을 공포의 정서로 투명하게 감싸안아 드러내는 상상의 출구를 마련해 놓았다. 이것은 고소설이든 영화든 '장화홍련'을 내세운 비극은 혈연으로 맺어진 양(兩)부모 가족의 스위트 홈이란 환상적 로망을 부추기기도 한다.

동시에 양부모 가족을 '정상 가족'의 전형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강박증을 보여주면서 '사악한 계모와 착한 전실 딸'의 비틀린 대결 구도를 통해 가족제도의 모순을 '여자들의 문제'로 협소화하는 문화적 왜곡을 강화시켰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것을 일반 드라마가 아닌 공포로 담아냈다면 그러면에서 2003년 <장화, 홍련>에서의 왜곡된 가족 관계나 비틀린 심상이 주는 공포는 영화적 미학과 세련된 구도, 시나리오의 잘 짜인 구조로 반향을 일으키며 공포 영화의 핫이슈로 자리매김 해온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공포'에 생기를 불어넣는 가족의 비극적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상상과 해석 작업은 공포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순간 작동돼 이성의 몫으로 남겨져 이야기의 개연성을 되짚어 보는 일종의 퍼즐놀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공포의 진원에는 가족사 비극이 가족 안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인 약자로서의 미성년자, 처녀, 전실 딸을 희생자로 삼는다는 일종의 문화적 합의가 자리해 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비극적 가정소설의 희생자가 전실 딸로 고정되어왔다는 것은, 가족의 약자는 가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미혼의 딸, 그를 보호할 친모가 없는 처녀라는 것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장화와 홍련은 버전을 달리하며 고소설로, 영화로 공포를 업테이트 해오며 이런 역사 문화적 함의를 갖고 또다시 탄생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의 코드에는 '사필귀정'과 '인과응보'라는 고전소설적 문법에 충실한 후일담을 담고 있는 성격이 짙다. 특히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이런 문법에 충실해 서늘한 공포와 뼈아픈 고통은 속죄를 위한 통과의례의 몫으로 남기며 우리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렇게 고소설에서 전승되듯 우리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문화적 자리에 얽히고 섥힌 가족사의 비극이 자리매김하면서 그것이 공포라는 코드를 만나 이른바 '가족 괴담'으로 재탄생되고 자리매김한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

그 속에는 한 가족사의 비극으로만 치부되기에는 사회적 문화적 키워드로 우리네 심상을 무던히도 건드리고 있다. 특히 이것이 현대적 공포와 호러를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그로테스크한 스릴러물로 연명되고 또 비밀스런 가족사 비극의 문제적 지형은 한국 호러 고전의 트라우마로 우리를 계속 환기시키고 있다. 즉, 이야기의 출발은 가족인 것이다. <장화, 홍련>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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