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8월 18일은 김대중 前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1년째 되는 날이다. 바로 엊그제 같은 일이 벌써 1년이 되었다. 김대중..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국 정치사 아니 굴곡진 현대사를 장식한 그는 대부(大父)같은 존재였다. 그가 숱한 고난을 이겨낸 정치역경을 뒤돌아보면 바로 우리네 그늘진 현대사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된 김대중(金大中)..

아직도 그를 색깔을 입혀 보는 이들이 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분명한 것은 그는 우리네 가슴 속에 큰 어른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서거 1주기를 맞이하여 이번 한 주간 각 지역에서 추모문화제등 각종 추모식이 열리며, 그를 기리고 있다. 또한 온라인 서점가에는 '김대중 추모 기획전'을 통해서 그의 기록들이 살아 숨쉬는 책들을 선보이고 있으니.. 이에 나도 동참해 몇 권을 알라딘을 통해서 컬렉했다. 그래서 인증겸 책 소개를 간단히 해볼까 한다.



먼저, 그 유명한 <김대중 자서전>이다. 읽기 위해서 사는 이도 많지만 책 자체가 주는 두께와 묵직한 무게감 때문에 소장용, 선물용으로 아주 좋은 책이 아닐 수 없다.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라 불리는 김대중의 온 생애를 기록한 '정본 자서전'이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기 전, 만 6년 동안 준비해 온 정본 자서전으로서 그를 그려낸 여러 책 중에서 가장 인기있고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3년 2월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으로 돌아온 후 2004년부터 자서전을 구상해 구술을 시작했고 2년여 동안 총 41회 구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2009년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정리된 자서전 원고를 읽으며 직접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구술해 반영해 쓴 책이라 한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원고를 최종 검토하고서 편지 형식으로 여는 글을 적으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글을 보내와 앞머리에 실려있다는 소개다.

총 2권중 1권에는 출생에서부터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1954년 민의원에 출마한 후 세 번 연거푸 낙선, 네 번째 당선되었으나 군사 쿠데타를 맞아 의정 활동을 못하게 된 과정, 1971년 40대 대선 주자로 나서 박정희와 겨룬 일, 그 후 독재 시절을 거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의 상황, 귀국 후 대선 도전에 이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2권에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가 담겨 있다. 대통령 재임기 동안의 이야기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에게 직접 듣는 최초의 국정 보고이자 '성공한 민주주의 정치가'의 전모가 담긴 회고록이다. 또한 책에는 한평생 민주주의, 정의, 평화, 민족을 위해 살아온 인물 김대중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전하는 마지막 당부가 담겨 있다는 소개다.

이렇게 이 '정본 자서전'은 그가 나고 자란 그 시절부터 서거직전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리 한반도의 정치사와 현대사다. 각 잡고 읽기에 부담이 될지라도 오래 걸릴지라도, 지근덕하게 김대중의 온 생애를 생생하게 만나보자.



그리고, <김대중 자서전>을 사면서 5만원대로 맞추기 위해서 여러 개의 김대중 관련 책중에서 고르고 고른 책.. 좀 무거운 책대신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택한 <김대중 잠언집 배움>이다. 말 그대로 우리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보석같은 명언들을 살아 생전 김대중이 기록했던 말들을 모아놓은 잠언들이다. 역자는 김대중 정부시절 청와대 행정관과 고려대 연구교수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민주당 경기도당 지방자치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최성'이 엮었다.

일생 동안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던 사람, 생명의 위협에도 극심한 좌절의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기를 주저하지 않던 사람, 스스로 생의 고통부터 환희까지 몸소 겪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했기에 그가 남긴 잠언들은 뜨겁고 희망차다는 역자의 소개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들은 그 하나의 명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 나의 길을 간다는 것, 하나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에 관한 인생길의 네 가지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으니.. 삶에 지치거나 잠시 뒤돌아볼때 이 <배움>으로 인생의 의미를 반추해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슨 화보집 같은 책.. 그렇다. 이 책은 정치인 김대중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운좋게도 알라딘 신간서평단 '인문'분야 네번째로 받게 된 책인데.. 너무나 소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생생한 사진 한 장이 주는 그 기록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상을 담은 사진집으로서. 1991년 언론사 사진기자 시절 저자 '오동명'은 화장실에서 우연히 소변을 보다 김대중 후보를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보도사진 속에 사람들의 일상을 담으려 노력하며. 정치인으로서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김대중과 기자로서 고민하며 살던 사진기자 오동명의 인연이 이 사진집을 낳은 계기였다는 소개다.

그리고 이 사진집에 실린 사진은 1991년부터 1998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으로, 한 여인의 남편으로, 사랑스러운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김대중이 걸어온 일상을 보여준다. 특히 일반적인 사진집과는 달리 무게 잡지 않고 김대중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가려 뽑았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과 치욕을 겪은 김대중이 남긴 메시지가 한 개인의 아픔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으리라는 심정으로 펴낸 것이라 한다.

그래서 책에서 뽑은 김대중의 어록과 예전에 나눈 대화를 기록한 메모를 엮어 만든 한 권의 독특한 정치인 사진집 <사랑의 승자>.. 묵직한 자서전에서 전달되는 뻑뻑한 글의 행간이 주는 무한한 기록대신 인간 김대중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 여기 그의 빛바랜 사진으로 오롯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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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2주

지난주에는 <아저씨>가 개봉하면서 원빈이 새로운 한국형 액션느와를 선보이며 이목을 끈 반면에, 이번주에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하면서 잔혹하고도 슬래셔급의 새로운 복수극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너무 잔인한 장면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복수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어떤 울분과 분노의 광기.. 이런 것이 바로 영화상으로 표출될때 사람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는데.. 물론,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에 최신작 <악마를 보았다>부터, 2000년대 초중반을 장식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시리즈로 잘 알려진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까지 알아보려 한다. 과연, 이들이 그리며 담고 있는 '복수'는 무엇인지 내 나름대로 페이퍼 해본다. 


이 영화는 치열하게 잔인하고 잔혹한 복수극,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일명 '눈눈이이' 방식으로 복잡하지 않게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복수극을 그린 영화다. 이런 그림에 무슨 내막이 있지도 않거니와 어떻게 그 악마같은 인간을 처참히 무너뜨리냐가 이 영화의 키포인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이로 하여금 응징의 쾌감을 느끼게 하는게 이 영화의 주 목표일터.. 그런데, 그림들이 꽤 임팩트하다. 아니 기존의 잔혹한 액션하고는 한 차원이 다른 B급 정서를 담아내듯 슬래셔급의 잔혹한 피칠갑이 주를 이룬다. 매 얼굴에 피를 닦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기존의 좀비물이나 살인마를 다룬 영화같이 슬래셔급의 하드고어류를 즐겨 보는 이들에게는 별반 틀리지 않는 그림들이다. 하지만 이런 류를 싫어하거나 못 보는 이들에게는 '목불인견'의 상황이 꽤 있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여튼,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약혼녀를 잃은 국정원 경호요원 김수현(이병헌)이 경철에게 제대로 복수를 하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그래서 스스로 악인이 된 복수의 화신 퍼니셔 즉, '응징자'로서 그의 동선을 쫓는 관객들은 그래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저런 인간 말종 개새끼는 저렇게 죽어도 싸다, 저 정도면 정당하다'등..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잃을만하면 나오는 연쇄살인마에 대한 일차원적이고 가장 단순한 분노의 표출 방식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런 표출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법의 처벌이 아닌 독고다이로 부딪쳐 받은 만큼 갚아준다는 '눈눈이이'방식대로 그 연쇄살인마를 지구 끝까지 쫓아 죽기 직전까지 복수를 한 것이다. 그것은 차갑도록 지독한 복수가 되었고, 이에 연쇄살인마는 쫓기면서도 살인을 즐기는 잔인성을 계속 표출한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 영화는 기존의 복수극과는 차원이 다른 아니 한 차원 더 슬래셔급으로 임팩트있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두 배우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 대결은 볼만했고, 그들도 그 이상으로 열연을 펼쳤다. 그것은 악마같은 남자 연쇄살인마와 복수라는 명분으로 자기 안의 악마를 들어내는 또 다른 남자는 상반된 캐릭터로 그 극한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바로 최민식의 뜨거운 광기와 이병헌의 차가운 광기가 충돌할때 나오는 원시적인 에너지는 오락 영화의 통쾌함을 극대화시키며 단순한 선과 악의 논리가 아닌 완전히 다르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두 남자 대결의 시작과 파국을 어떻게 그릴지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둘의 유명한 네임밸류 때문인지 결국 '영화는 영화다'로 그친 느낌에 다소 지치기까지 한다. 그것보다 이름값이 떨어지더라도 덜 알려진 연기파 신인배우를 써서 둘 중의 한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영화를 보내내내 나름 좀비류등 하드고어의 슬래셔급에 익숙?해서 큰 거부반응 없이 여기서 그런 장면도 그럭저럭 잘 봤다. 하지만 이런 그림에 익숙치 않은 다른 이들에게는 '목불인견'의 상황이 꽤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그래서 '영등위'에서 제한 상영이라는 조치가 내렸다는 점이 반증하듯 이 영화의 그런 그림은 분명 기존 잔혹극과 간극이 꽤 세다는 점에서 많이 불편해 질 수 있다. 

그래서, 그점을 빼고 나서는 아니면 더하든 이 영화는 기존의 복수극을 B급 정서의 컬트적으로 버무려 하드고어의 슬래셔급으로 무장한 '복수의, 복수에 의한, 복수를 의한' 묻지도 않고 따지도 않고 그려낸 처절하고도 처참한 복수극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눈눈이이' 방식대로 말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이자 그림들이다. 물론 잔혹의 강도는 세다. 














이 영화 <복수는 나의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아직도 그 작품성이나 플롯구조나 연출에 있어 회자되는 영화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서도.. 사실 내용도 간단하다. 청각 장애인 신하균과 그와 함께 살며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때문에 장기밀매단과 접촉했는데 사기당해 천만원 날리고 누나의 장기이식 수술비때문에 송강호의 딸을 유괴했는데.. 이 소식에 누나는 자살하고 유괴된 딸은 사고로 익사하면서 사건은 꼬인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게된 신하균과 송강호의 처절한 복수의 그림이 부딪히며 파국을 맞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시놉시스다. 그런데, 이런 그림들이 보통의 그림처럼 전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 못하고 못듣는 청각장애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신하균은 자신안에 갇혀지낸 감정의 일그러진 폭발의 모습이 하드보일드답게 잘 묘사됐다. 장기밀매단을 처리하는 모습같이 말이다.

물론, 이 속에는 어린 딸을 잃은 송강호도 만만치 않다. 직접 신하균과 작당한 여자 배두나까지 찾아나서 그만의 방식으로 응징을 제대로 한다. 하지만 그런 송강호도 응징을 당하니.. 복수는 꼬리에 꼬리에 물고 이어진다는 단순 논리와 함께 어찌보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작품 <복수는 나의것>..














그리고 2003년에 나오며 천만 돌파에는 실패했지만 국민 영화라는 닉네임이 붙은 <올드보이>.. 사실, 이 영화를 안 본이가 있을까.. 설사 안봤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각종 매체에서 패러디되고 지금도 명작?으로 남은 영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최민식 형님이 15년간 감금당해 만두로 연명하며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때부터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이후의 그림은 알다싶이 유지태 앞에서 개처럼 굴며 처단하려 했지만 그는 자결 크리.. 그리고, 강유정과 맺은 대단한 반전까지.. 영화적 비주얼의 임팩트도 대단했지만 아직도 입가에 맴도는 그 음악을 잊을 수 없는 복수 시리즈 2였다.

물론, 여기서 복수의 행위자는 올드보이 최민식이었다. 그리고 2005년 '주먹이 운다'로 나왔다가 실패,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유아 살인마로 폐교에서 처참히 응징당했고, 5년간 숨고르기를 하고서 <악마를 보았다>에서 그는 제대로 여러번 복수를 당하는 피해자?로 열연을 펼쳤다. 그래서 이제는 최민식하면 그 옛날 '파이란'에서 리얼 깡패의 이미지보다는 '복수'가 떠오르게 된다. 배우에게 이것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의 이런 복수의 정점을 찍은 영화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난다는 홍반장'이 아니라.. 아주 아주 친철한 이웃집 언니이자 누나인 금자씨가 냉소적 킬러로 분연하며 스크린을 종횡무진 활약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 기존의 두편의 복수 시리즈가 한 쪽의 대상을 향한 일방적 복수라면.. 이것은 그런 사회악을 처단하는 대표적 복수의 개념으로 다가섰다.

특히나 허름한 시골 분교에서 이루어진 살인마(최민식)에 대한 처단과 응징의 현장은 나도 동참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말, 파격적이고 누구나 내 가족이 그렇게 당했다면 한번씩 꿈꿔본? 일이 아닐까 싶다. '눈눈이이' 방식처럼 말이다.

이렇게 <친절한 금자씨>로 종지부를 찍은 박찬욱 감독의 이른바 '복수의 삼부작'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복수의 시작과 발단은 바로 '누나'에서 출발했다는 것이고 그 중심에 남동생이 자리잡고 있다. '복수의 나의것'은 청각 장애자가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 시작되었고, '올드보이'도 극중 이우진이 누나의 오명을 씻기 위한 복수에서 출발한 것이고.. 그럼 '친절한 금자씨'는 무엇일까.. 바로 이렇게 희생된 누나들이 불사신으로 다시 재탄생한 것은 아닐까 싶다.

즉, 우리네 누나라는 친숙한 소제의 투영으로 그녀를 통한 사회악 처단을 가열차게 엣지있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암튼, 박찬욱 감독의 삼위일체된 복수 시리즈를 내 느낌대로 작명과 내용에 대해서 의미 부여를 해봤는데.. 이것이 답이든 아니든 박찬욱만의 색깔을 느낄수 있는 나름 명작들이라 본다. 결국, 제목을 연결해서 얻은 결론은 '누나에서 출발해서 누나가 끝낸 복수다.'

특히, 그가 만든 복수 시리즈중 역시 최고의 장면은 이게 아닐까 싶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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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김지운 감독의 오기와 광기로 연출된 '눈눈이이'식 슬래셔급의 잔혹한 복수극,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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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기억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추억은 우리네 심상에 자리잡은 기억의 잔상들이 쌓인 고유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추억이 사라진다면.. 아니 기억의 잔상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잊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즉, '기억의 죽음'에 이르게 되면 인간의 정신적인 사망신고인 셈이자 인지사고의 붕괴로 이어져 육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 기억이 점차 잊혀져가는 일종의 희귀병인 '알츠하이머'병을 앓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으니 자체 평(評)한 일본 인생소설의 대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적 걸작 <내일의 기억>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읽게된 소설이다. 첫 시도는 <그 날의 드라이브>라는 인생소설로 어느 40대의 가장이 은행직에서 강퇴당해 택시 운전대를 잡으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유쾌한 인생 이야기, 두 번째로는 <벽장 속의 치요>라는 펑키호러 단편집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호러를 접목시킨 사회풍자가 담긴 인생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로 읽게된 <내일의 기억>..

우선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직 광고계에서 일한 경력으로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역시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적 걸작이라는 느낌이다. 어떤 재미와 반전을 꾀하는 일본의 추리소설들처럼 스릴러적 미스터리가 아닌 지극히 드라마적인 요소로 우리네 일상을 담은 이야기다. 그래서 자칫 뻔한 이야기에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 이야기는 그런 진부함 속에도 무언가 심상을 건드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에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어느 광고대행사의 영업부장 '사에키'.. 그는 20여년 넘게 해온 직장생활에서 유능하진 않아도 모나지 않게 그럭저럭 직장 후배들에게 인정받으며 지내온 상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광고 시안문제로 회의를 하는데 인물 섭외를 위한 배우의 이름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이런 증세는 심각해지고 급기야 직장 후배나 동료의 이름까지 생각이 안 나기도 하고, 또 거래처를 방문하러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또, 이런 광고 영업중에 잡아놓은 약속등을 잊어먹기도 하며 그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러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로 생각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생활도 무언가 다시 살펴봐야 하는등 결벽증에 시달리고, 급기야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여러 진단끝에 '약년성 알츠하이머'의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같은 소리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이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부인 '에미코' 또한 남편의 병명에 망연자실해 한다. 이 '알츠하이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사실이 결국에 언어나 사고에 이어 몸의 기능마저 앗아가버리고, 급기야 몸이 살아가는 방법과 삶 자체를 잊어가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야할까.. 난 이대로 기억을 잃어가며 죽는 것일까.. 두려움이 앞서지만 분노와 한탄이 교차한다. 그래서 사에키는 그때부터 자신만의 기록 비망록을 쓰며 일상의 나날들을 적어간다. 그리고, 점차 어려워진 회사생활을 견디기 위해서 메모지를 활용해 매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를 한다. 그 메모만 해도 한 움큼이다. 그러다 또 길거리를 헤매다 메모를 쏟는등.. 그는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이 처절함을 달래볼 심산인지 그는 소싯적에 배웠던 도예공방을 다시 찾아가 도예를 배운다. 그 차분한 그릇을 만드는 환경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했음이다. 또 얼마 안 남은 20대의 무남독녀 '리에'의 결혼식 선물로 그는 부부찻잔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세는 점차 악화돼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고 또 그런 병세를 알아차린 회사측에서 그를 한직으로 몇 달간 좌천시키고 만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 마지막 직장 생활을 버텨내고 딸의 결혼식까지 무사히 마친다. 물론, 결혼식 중간에 사위를 몰라보는 사고를 치긴 했지만서도..

이제 가정으로 돌아온 사에키와 부인 에미코 단 둘이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였기에 막막할 뿐이다. 급기야 스스로 정신병 보호시설을 찾아가 입원 절차를 받고, 소싯적에 친구와 함께 도예를 가르쳐 주었던 노스승을 찾아가 인생을 반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며 기억의 저편으로 쓸쓸히 걸어갔다. 그 누군가는 누구였을까?

이렇게 이 소설은 내용에서 알다싶이 우리네 인생 이야기다. 특히 40-50대 중년 가장들의 삶.. 치열하게 가족을 위해서 살아왔던 어느 한 가장이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어느 날 기억을 잃어가며 일상의 나날들까지 점차 사라져가 급기야 기억의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애환이 담긴 인생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병에 대한 동요, 분노, 수용의 과정을 제 삼자의 시선이 아닌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비망록과 메모를 기록하는 일상과 연계하여 전개해 나간 이야기였다. 그래서 자칫 투병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투병기 이전의 마음의 기록으로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연민, 결혼을 앞둔 딸을 생각하는 마음, 직장 생활의 고충과 애환, 그리고 마음의 의지처자 안식처로 삼아온 도예, 기타 다양한 인간상까지.. 이 모든 것을 전면에 걸쳐 생생하게 또 울림있게 고루 묘사했다는 점에서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의 끈대신 절망이 찾아들때마다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 그래서 그런 기막힌 현실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갈망하고, 마침내 도예를 통한 마음의 구원을 얻었을때 이 남자는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도 모를 남겨진 그 극한의 애상감까지..

바로 제목 '내일의 기억'이 암시하듯 내일이 되면 오늘은 또 어떤 나날로 기억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 기억이 점차 사라져가 함께 해온 나날들까지 사람들 마음속에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여기 주인공은 마지막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자신이 기록한 삶의 심상을 누군가는 기억하기에 말이다. 여기 그 문구로 대신하며 음미해 본다.

   
  기억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확인하는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소중한 약속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억이 사라져도 나의 지난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잃은 기억은 나와 같은 나날을 보낸 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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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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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제목에서 알수 있듯 여기 악마가 있다. 아니 그는 인간이길 포기했다. 그런 악마에게 쳐들어간 한 남자.. 사실 어찌보면 그는 악마와 반대되는 그저 평범한 천사?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그는 그 순간 천사가 아닌 복수의 화신인 악마로 변질되고 만다. 그리고 악마 VS 악마의 대결이 펼쳐져 악마가 된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악마를 쫓으며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이 사투의 모습은 기존의 복수극과 많이 달라 보인다. 잡은 순간에 사투 순간에 죽이지 않고 놓아준다. 사냥감을 잡은 사냥꾼이 먹이를 일부러 놓아주듯 그는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렇다. 이것이 이병헌을 자신의 영화에 세번째 영입하면서 내세운 김지운 감독의 잔혹한 범죄 스릴러물 <악마를 보았다>의 플롯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치열하게 잔인하고 잔혹한 복수극,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일명 '눈눈이이' 방식으로 복잡하지 않게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복수극을 그린 영화다. 이런 그림에 무슨 내막이 있지도 않거니와 어떻게 그 악마같은 인간을 처참히 무너뜨리냐가 이 영화의 키포인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이로 하여금 응징의 쾌감을 느끼게 하는게 이 영화의 주 목표일터.. 그런데, 그림들이 꽤 임팩트하다. 아니 기존의 잔혹한 액션하고는 한 차원이 다른 B급 정서를 담아내듯 슬래셔급의 잔혹한 피칠갑이 주를 이룬다. 매 얼굴에 피를 닦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기존의 좀비물이나 살인마를 다룬 영화같이 슬래셔급의 하드고어류를 즐겨 보는 이들에게는 별반 틀리지 않는 그림들이다.

하지만, 멋 모르고 자세한 정보없이 이 영화를 관람하시는 분들 특히 여성분들이나 슬래셔급을 못보는 이들에게는 이 영화가 꽤 불편하고 곤욕이 아닐 수 없다. 비위가 약하면 눈뜨고 못볼 '목불인견'의 상황이 꽤 있다. 사람이 살해되는 장면등에서 목이 댕강 잘리거나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듯 얼굴을 내리쳐 짓이거나 칼부림등은 그냥 찌르는 그 동선대로 따라가며 피칠갑이 주를 이룬다. 더군다나 여기 인간이길 포기한 묻지마 타입의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은 변태 성욕자다. 아니 성에 굶주린 노예다. 여학생부터 간호사에 친구의 아내까지 닥치는대로 강간을 일삼는 욕정의 개쓰레기다.



이런 그에게 약혼녀를 처참하게 잃은 국정원 경호요원 '김수현'(이병헌)은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단 15일안에 그 개쓰레기를 잡는데 몰두한다. 전직 형사였던 장인으로부터 용의자의 정보를 빼내고 그의 아지트까지 찾아가 단박에 그를 제압한 수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숨이 끊기는 바로 직전까지 몰고가 풀어준다. 대신에 경철의 입안에 위치 추적장치인 조그만 알약을 먹이고 사라진다. 그때부터 경철의 동선을 쫓아 수현도 그를 쫓는다. 그리고 경철이 저지르는 매 살인의 현장에서 나타나 그에게 응징을 가하고 또 놓아준다. 이러기를 2-3번 반복하다보니.. 연쇄 살인마 경철도 독이 오른데로 오른다. "그래 개쌔끼야 어디 한번 해봐.. 십쌔끼야.. " 하지만 수현도 "기억해둬.. 지금부터 시작이고, 점점 더 끔찍해질 거야"로 응수를 놓은 터였다.

이렇게 복수의 화신으로 분한 수현은 연쇄살인마 경철을 매 순간에 죽을 만큼의 고통만 가하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며 처절한 응징을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경철은 수현에게 맞대응하기 위해서 친구의 저택으로 잠입하고, 여기서 그들은 또 수현에게 응징을 당한다. 죽지 않을 만큼만... 이에 악마보다 더 악랄한 살인마 경철은 만만치 않은 적수의 출격에 그와의 일대일 대결을 포기하고 위치추적장치를 빼내며 예상을 깨고 수현의 처가댁에 있는 장인과 처제를 노리고 쳐들어간다. 그리고 이후에 경찰에 자수를 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 둘은 무사했을까.. 또 자수를 하겠다던 경철을 보고 수현은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사실 연쇄살인마 경철이 노린 것은 그것이다. 소위 너의 복수극에 놀아나지 않고 이제 경찰에 자수해 깜방에서 삼시세끼 콩밥을 먹으며 법의 처벌을 받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경철을 수현은 가만 놔 두었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응징을 했을까.. 그 복수의 끝은 '눈눈이이' 방식대로 그대로 표출이 됐다는 점만 밝힌다. 그것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는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복수극이다. 그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이라 불리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처럼 그런 내용으로서 가장 비슷한 구도라면 '친절한 금자씨'와 많이 흡사하다. 금자가 유아 살인마를 폐교에 잡아다가 그들 부모에게 복수를 가하는 그림, 여기서는 수현이 극악한 연쇄살인마를 잡아다가 죽을 만큼의 고통(손목 끊기, 아킬레스건 끊기, 송곳으로 입안 뚫기등)을 주고 풀어주고의 반복으로 그만의 처절한 복수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그저 평범했던 한 남자가 물론, 국정원 요원이라는 특수한 인물이긴 하지만서도 그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갔을때 그 고통과 분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이 말했듯 불같은 광기와 얼음같은 광기의 대결로 압축시켜 장르보다는 인물의 힘, 그 복수의 힘과 이름으로 고통을 주고받는 두 남자의 감정과 행위를 중심에 놓고 그린 영화라는 점이다. 바로 그런 점이 기존 복수극과는 차별되는 지점으로 기존의 복수가 상대방에 대한 어떤 처단으로 끝이 난다면 이 영화는 아주 본능적이고 직접적으로 감행하는 복수의 과정, 그 자체를 아주 강렬하게 극한의 충돌 지점까지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악인이 된 복수의 화신 퍼니셔 즉, '응징자'로서 그의 동선을 쫓는 관객들은 그래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저런 인간 말종 개새끼는 저렇게 죽어도 싸다, 저 정도면 정당하다'등..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잃을만하면 나오는 연쇄살인마에 대한 일차원적이고 가장 단순한 분노의 표출 방식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런 표출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법의 처벌이 아닌 독고다이로 부딪쳐 받은 만큼 갚아준다는 '눈눈이이'방식대로 그 연쇄살인마를 지구 끝까지 쫓아 죽기 직전까지 복수를 한 것이다. 그것은 차갑도록 지독한 복수가 되었고, 이에 연쇄살인마는 쫓기면서도 살인을 즐기는 잔인성을 계속 표출한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존의 복수극과는 차원이 다른 아니 한 차원 더 슬래셔급으로 임팩트있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두 배우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 대결은 볼만했고, 그들도 그 이상으로 열연을 펼쳤다. 그것은 악마같은 남자 연쇄살인마와 복수라는 명분으로 자기 안의 악마를 들어내는 또 다른 남자는 상반된 캐릭터로 그 극한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바로 최민식의 뜨거운 광기와 이병헌의 차가운 광기가 충돌할때 나오는 원시적인 에너지는 오락 영화의 통쾌함을 극대화시키며 단순한 선과 악의 논리가 아닌 완전히 다르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두 남자 대결의 시작과 파국을 어떻게 그릴지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둘의 유명한 네임밸류 때문인지 결국 '영화는 영화다'로 그친 느낌에 다소 지치기까지 한다. 그것보다 이름값이 떨어지더라도 덜 알려진 연기파 신인배우를 써서 둘 중의 한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내내 나름 좀비류등 하드고어의 슬래셔급에 익숙?해서 큰 거부반응 없이 여기서 그런 장면도 그럭저럭 잘 봤다. 하지만 이런 그림에 익숙치 않은 다른 이들에게는 '목불인견'의 상황이 꽤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그래서 '영등위'에서 제한 상영이라는 조치가 내렸다는 점이 반증하듯 이 영화의 그런 그림은 분명 기존 잔혹극과 간극이 꽤 세다는 점에서 많이 불편해 질 수 있다. 

그래서, 그점을 빼고 나서는 아니면 더하든 이 영화는 기존의 복수극을 B급 정서의 컬트적으로 버무려 하드고어의 슬래셔급으로 무장한 '복수의, 복수에 의한, 복수를 의한' 묻지도 않고 따지도 않고 그려낸 처절하고도 처참한 복수극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눈눈이이' 방식대로 말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이자 그림들이다. 그래서 지금 주목받고 있는 영화 '아저씨'가 A급의 한국형 액션느와르라면 '악마는 보았다'는 B급의 한국형 잔혹느와르가 아닌가 싶다. 물론 강도는 둘다 세다는 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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