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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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비극적 시기를 희극적이고 인간적으로 묘사한 모던뽀이의 질퍽한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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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 Desire To 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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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한정된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메디컬적 복수극, 스릴러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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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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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새색시마냥 얌전한 소설은 읽기에는 거부감이 없어 좋을지 몰라도 무언가 뇌리에 남는게 없을 때가 있다. 그런데, 얌전을 떨지않고 있는 그대로 생으로 언어적 유희를 펼쳐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실소를 자아내는 소설들이 있다. 여기 역사소설 <미실>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별아氏의 신작 <가미가제 독고다이>가 그런 케이스다. 편견일지 몰라도 아니 여자분이 이렇게 입이 걸한 표현들로 초장부터 눈길을 끌다니.. 분명 김별아 작가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여기 소설 속 주인공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택했듯이 말이다. ㅎ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가미가제 독고다이> 사실 모르는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표준어도 아닐 것이다. 알다시피 '가미가제'는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의 마지막 결사항전으로 적 함대를 향해 내리꽂은 이른바 '자살폭격기'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독고다이'식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은 우리 조선인이다. 그런데, 여기 주인공 청년인 '모던뽀이'가 심상치 않은 놈이다. 어찌보면 일제시대 삼천만이 볼모로 잡힌 비극적 상황속에서 그는 대단히 희극적이다. 아니 인간적이라고 해야할까.. 여튼, 그 모던뽀이 가족사는 지극히 친일파에 '콩가루 집안'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비극과 희극이 교차되고 있으니 그 이야기속으로 잠깐 빠져보자. 

먼저, 이 소설은 각 장마다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물론 그 에피소드는 이어져있다. 화자는 바로 '모던뽀이' 하윤식.. 하씨 집안의 막내로 1920년대에 태어난 뺀질이다. 그 모던뽀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먼저 첫장 '올미꽃'에서는 자신의 조부 쇠날이 할아버지와 올미 할머니의 러브스토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당차다. 아니 질퍽함은 물론 강도가 좀 세다. 특히 이 집안의 내력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한 것처럼 올미 할머니는 대찬 여자였다. 반대로 쇠날이 할아버지는 백정집안의 아우라를 잇지 못하고 피 한방울에도 숨죽이는 그런 남자였다. 그렇다. 여기 하씨 집안은 대대로 내려온 백정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하씨 족보도 돈주고 샀다는 사실, 당시는 그게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여튼, 쇠날이와 올미가 낳은 모던뽀이 아버지 '하계운' 그가 바로 제대로 된 친일파였다. 한일합방이 되던 시절 그에게 민족이나 애국은 지나가는 개나 주는 그런 거였다. 오로지 돈이면 다 되는 세상, 10대 후반에 상경에 일본인 하수인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하며 자수성가해 입지를 굳힌다. 그리고 호락호락하지 않을 신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지만 녹녹치 않다. 둘은 동상이몽 스타일이였다. 그래도 자식 둘을 키우며 나름 잘 살고 있었는데.. 주인공 하윤식의 형 경식.. 어렸을때부터 윤식에게 있어 다섯 살이 많은 형 경식은 선망의 대상이자 일종의 종교였다. 그런 형이 배다른 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잠깐 흔들렸지만 그래도 그는 형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런 형이 커서는 '주의자'로 빠져 항일 사상과 이념에 물들어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그를 면회온 형의 애인 현옥..
 
장차 형수될 사람일지도 모를 그 여자를 보고서 우리의 '모던 뽀이'는 뽕간다. 처음에는 어떻게 좀 해볼려는 음험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와 함께 형을 면회하면서 그녀의 사상과 이념을 알게 되면서 더욱더 빠져들었다. 아니 더욱더 어지러워했다. 여기 모던뽀이 청년은 아버지를 닮아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고차원적 사상과 이념은 밥말아 먹은지 오래라서 그런쪽에는 일자무식 관심도 없는 청년이었다. 오로지 술과 여자로 점철된 10대 후반의 미워할 수 없는 빤질한 난봉꾼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뜨거운 사랑이 찾아아왔으니 그게 바로 형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소설 중반에 '만남, 그 여자, 형, 첫 키스'장까지 100여 페이지 넘게 모던뽀이의 참지못할 사랑앓이가 펼쳐진다. 이 역시 질퍽한 연애담이다.

그런 가운데 윤식의 형은 감옥에서 나온다. 바로 전향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참다못해 수완을 부려 아들을 빼내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리고, 전향과 동시에 당시 급변하게 돌고있던 대일본제국이 참전중인 전시에 참전하라는 통지.. 청천벽력같은 일이지만 돈만을 쫓아 살아온 친일파 아버지로 인한 인과응보인 셈이다. 하지만 반전 아닌 반전이 있다. 그 참전을 형이 아닌 동생 모던뽀이 하윤식 아니 일본이름의 '가와모토 진'이 나서게 된다. 누가 떠밀어서? 아니다. 바로 스스로 형대신 자원한 것이다. 왜? 바로 자신의 첫사랑 형의 애인 '현옥'을 위해서 말이다. 이 무슨 사랑의 세레나데인지 모를 일이지만, 눈물 겨우면서도 모던뽀이의 작태를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단순무식한 스타일인지라..ㅎ

여튼, 모던뽀이 하윤식 아니 '가와모토 진'은 일본의 육군항공부대로 들어가 일반 조종사 훈련을 받는다. 바로 제목 <가미가제 독고다이> 가 나오는 순간이다. 이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서 앞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인 파라노마처럼 펼쳐진 것이다. 끝의 두장 '사육제'와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 에서 백여 페이지에 가깝게 일본군대의 이야기가 아주 리얼하면서도 재미나게 펼쳐진다.더군다나 남자들의 전유물인 군대 이야기를 여자 작가가 이렇게 또 질퍽하게 그리다니 참 기묘한 맛이 느껴진다. 여튼, 모던뽀이는 점차 가미가제 자살특공대로 키워진다는 사실에 놀라고 처음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아니 애국이나 민족의 개념도 없이 막산 내가 왜 남의 나라의 총알받이로 죽어야 하는지 마지막 후회막급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출격을 앞둔 그날.. 그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결말이라 언급을 피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마지막 이야기처럼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조선인 청년 10여명이 희생된 '가미가제 특공대'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 아니 시대소설이다. 작가가 이 소설은 '역사'가 아닌 '시대'를 쓰기 위한 첫 시도라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바로 시대.. 우리 근대사에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다룬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일제시대하면 비극과 암울이 점철된 시대에 항일과 독립을 외쳤던 어떤 비장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견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별아 작가는 여기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왜 일제시대 이야기는 꼭 비극적이고 암울해야만 하는가.. 좀더 밝게 아니 밝지 못해도 이런 비극적 식민지 상황에서도 가장 희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려보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에서 출발한게 이 소설의 얼개다.

그래서, 이 시대소설은 지극히 희극적이다. 초장부터 대놓고 질퍽하게 언어적 유희를 펼친다. 어디서 처음 들어보는 듯한 방언인지 아니면 순수한 우리말인지 모를 듯한 언어들이 전면을 휘감는다. 예를들면 지청구, 쏠라닥질, 마구발방, 서름하다, 엉두덜거리다, 스멀스멀, 주억거리다, 무람없이, 가뭇없이, 퉁바리, 울가망까지.. 읽는내내 부족한 내 어휘수준에서 모르는 단어들은 이렇게 메모를 해둘 정도였다. ㅎ 여튼, 이 소설은 일반 소설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런 낯선 표현은 물론 질퍽하면서도 페이소스를 담아내는 매 에피소드마다 재미를 선사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 '모던뽀이'의 성정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를 팔아먹은 졸부의 아들로 태어나 형을 존경했지만 그의 아우라속에 삐닥선을 타며 아버지를 미워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지내는등 냉소와 번민으로 몸부림치는 '모던뽀이'의 삶.. 그것은 일제시대가 주는 비극적 상황속에서 마지못해 시대의 흐름에 온몸을 내던져야 했던 청년과 신분 세탁을 필두로 한 친일파 '콩가루 집안'의 가족사가 교차편집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비극이 아닌 희극처럼 아니 어떻게 보면 희극이 아닌 비극처럼.. 서로 맞물리듯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우리네 심상을 자극시킨다. 바로 일제시대의 비극적 아픔이 주는 묵직함대신 그렇다고 가벼움이 아닌 주인공 '모던뽀이'처럼 모던하면서도 질퍽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 

그래서 그 파노라마 속으로 '모던뽀이'를 만나보길 추천하며..
여기 똘끼로 충만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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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 Desire To 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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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한국영화는 이상하리만큼 '복수'에 집착하는 것 같다. 올초 <용서는 없다>를 필두로 해서 중간에 <무법자>와 최근 인기작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등 극악한 사이코패스적 연쇄살인마를 처참하게 응징하는 복수의 그림까지.. 정말 복수로 스크린이 넘쳐나고 있다. 그만큼 '복수'가 주는 임팩트는 인간 심연에 깔린 원한과 분노의 발현이라는 또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원한과 분노로 점철된 복수극이 있으니 바로 영화 <죽이고 싶은>이다.

제목부터가 딱 떨어지지 않게 '죽이고 싶은.." 으로 여지를 남긴 제목부터가 인상적이긴 하다. 그럼, 영화도 인상적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지만 기존의 복수극과는 조금은 다른 설정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도 마치 눈앞의 무대앞에서 두 연극배우를 보듯이 펼쳐지는 이색적인 맛도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개성있는 연기파 두 배우 유해진과 천호진의 호연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누가 누구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정작 죽이고 싶은 사람은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닐까.. 여러 의문점을 내포한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민호(천호진). 뇌 질환과 끊임없는 자살 시도로 병원에 장기 투숙중인 그의 병실에 상업(유해진)이 들어온다! 일생을 걸고 찾아서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던 바로 그 놈! 기억 상실에 전신마비가 되어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들어왔지만 결코 봐줄 수 없다. 성치 않은 몸뚱아리의 민호,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병실에 누워 있는 상업.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전신마비로 꼼짝 없이 누워있는 그의 옆 침대에 서슬 퍼런 눈으로 노려보는 민호가 있다. 같은 환자 처지에 왠지 거슬리는 그 놈. 밤마다 누가 린치를 가하는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리 아프고, 삭신도 쑤신 상업. 차츰차츰 돌아오는 기억 속에 민호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져가는데.....



영화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1984년 시원스레 바닷가가 보이는 어느 고즈넉한 병원.. 지금처럼 최신식도 아닌 콘크리트 벽이 훤히 보이는 어느 병실에 한 남자가 생을 포기하듯 누워있다. "난 죽어야 돼.. 난 살 가치가 없어.." 심한 자책감에 빠진 한 남자, 그 남자에게 어느 날 다른 환자가 들어온다. 그 환자의 이름 '박상업(유해진)'을 듣자 그 남자 김민호(천호진)는 눈을 부릅뜬다. 자신의 여자를 죽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인마를 만나다니.. 운명의 장난인가.. 바로 복수를 감행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자신도 그렇고 저쪽도 그렇고, 둘다 몸이 부자연스러운 중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병실에서 죽은 날만을 기다리던 한 남자가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던 그 놈을 만난 뒤 어떻게든 살고 싶어진 남자.. 그리고,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후 살기위해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그 놈을 죽여야만 하는 또 다른 남자.. 그 두 남자가 비좁은 병실과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서로의 목숨을 노리면서 예측불허의 사투를 그린 영화가 바로 <죽이고 싶은>이다. 그런데, 그들의 사투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위의 물건을 이용해서 예를들면 효자손으로 기계를 조작하거나 스타킹에 비누를 넣어서 가격을 하는등, 여러가지 애를 쓴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상업'은 맞는 동안 기억이 살아나면서 자신도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한다. 당신이 내 여자를 죽였다며 그도 응수를 한 것이다.

아니.. 누가 누굴 죽여.. 서로 자신의 여자를 죽였다며 이제는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그 둘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저기 위의 그림처럼 마치 <인정사정 볼것없다>의 오마주다. 과연, 누가 이 게임의 승자가 돼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까.. 아니면 둘다 죽었을까.. 과연 그들이 말한 그 여자는 누가 죽인 것일까.. 이렇게 영화는 죽이고 싶도록 미운, 아니 자신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든 바로 옆의 사람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의 복수처럼 사지가 멀쩡한 이들이 아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의 복수는 눈물나게 참 안습이다. 제대로 강펀치를 날리는게 아니라 서로 잡고 물어뜯고 하는 일종의 개싸움이다. 그것도 병원 바닥에 낮은 포복자세로 말이다. 웃기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



그리고 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간호하는 젊고 섹시한 여간호사가 하나 있다.(위 그림) 바로 하간호사(서효림)라 불리는 그녀는 항상 생기발랄하게 지극 정성으로 두 남자를 간호한다. 그런데,이 여간호사의 정체가 궁금하다. 두 남자를 보며 특히 김민호(천호진) 그 남자를 보며 아빠 같다고 느끼는 이 이상야릇한 하간호사.. 몸매도 섹시하게 보는이로 하여금 마치 '마술사옆의 보조걸'을 보듯 눈을 다른데로 돌리게끔 극은 장치를 던진 느낌이다. 그래도 몸매는 좋다. 여담으로 1980년대 어느 간호사가 저렇게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병간호를 했는지 의문이지만서도.. 남성팬들에겐 또 하나의 서비스인 셈이다. 서효림양을 기억해 주시라..ㅎ 

여튼, 극의 중요한 키포인트를 이야기하면 중간쯤에 이들의 치료를 위해서 모 의학박사가 이들에게 정신질환 신약을 투약하게 된다. 물론, 동의하에서다. 자신들도 어서 치료해서 나아 상대방을 먼저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신질환의 약이 화근이 되어 그들이 잊어버렸던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살인'에 대한 기억이 교차돼 서로를 더욱더 미워하고 응징하게 만든다. 과연, 누가 그 여자를 죽인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마지막에 반전을 던졌다. 그런데, 그 반전이 뜬금없이 해결하듯 던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얼척없거나 황당한 반전은 절대 아니다. 분명 수긍이 가는 반전이긴 하다. 그런데, 그 반전을 좀더 치밀하고 물흐릇 던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영화 전반에 포석을 잘 깔아놓고서 후반 무리수의 느낌과 서로 위해를 가하는 잔재미가 나중에는 지쳐하는 모습, 굳이 반전이라 해서 설명하듯 마무리한 느낌까지.. 이렇게 영화는 전체적으로 짤 짜여진 틀을 깨고 말았다. 두 개성파 배우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존에 봐왔든 복수를 그린 영화들과는 다르게 색다른 설정속에 잔재미와 있을법한 상황연출, 복수라는 공통의 분노가 충돌하는 인간의 욕망을 병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안에서 무겁지 않게 그린점은 볼만했다.

그렇지만 무언가 임팩트한 스릴러는 아닌 느낌이다. 결국, 여기서의 복수도 기존의 복수극처럼 지나지 않았다는 클리셰가 허탈할뿐 새로운 맛은 떨어진다. 그 과정이 좀더 디테일했으면 좋았을 뻔했지만, 그래도 반전은 반전이다. 물론 난 그 둘에 치중하다가 예상을 못했지만, 영화가 표방한 메디컬 스릴러 장르답게 메디컬하게 처리한 <죽이고 싶은>영화였다. 그래서 저 간호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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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츄리온 - Centur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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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 특히 고대 로마같이 한 시대를 임팩트하게 풍미했던 배경의 스펙타클한 전쟁 서사 액션은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수 십년 전에 <벤허>부터 2000년대 들어서 <글래디 에이터> , <300>, 최근에 <로빈후드>까지.. 이런 인기작들은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로 포진된 블록버스터급의 서사 액션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센츄리온>은 이런 블록버스터급이라 말하기도 거북하게 궤를 달리한 느낌의 영화다. 물론 이 영화도 전쟁 서사 액션임을 표방하고 있다. 부제도 거창하다. "로마 최고의 전투군단 9군단, 제국의 영광뒤에 잊혀진 피의 전투, 그 역사속 전설이 부활한다'로 이목을 끈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는 웬지 B급스러움으로,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잔혹하고 리얼한 피빛 영상등.. 대놓고 살육을 보여준 당찬 영화다. 특히, 저 강렬한 포스터의 여주인공이자 극중에서 픽트족 '에테인'역을 맡은 '올가 쿠릴렌코' 여배우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이 여배우를 몰랐다. 보는내내 눈빛이 마치 '캐서린 제타 존스'를 닮은 듯한 눈매에 강렬한 여전사의 이미지만이 남는다. 전설속 로마 9군단을 와해시킨 주인공이자 살아남은 자들을 추격하는 원시 상태의 야생마같은 여전사.. 그렇다. 이 영화는 바로 전설속 로마 9군단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 살아남은 자 '센츄리온' 백인대장 무리를 쫓는 중점으로 그렸으니 시놉시스는 이렇다.

로마 최고의 막강 전투부대였던 제9군단은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당해본 적이 없던 난공불락 픽트족과의 20년 전투 중 대패하고 그를 이끌던 장군 비릴루스는 픽트족에게 인질로 생포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로마 최후의 전사들은 검투사 출신의 퀸투스를 따라 장군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적진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구출은 실패로 돌아가고 숨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굶주린 사냥개처럼 퀸투스의 뒤를 쫓는 에테인은 로마군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픽트족 최고의 여전사. 이제 퀸투스가 이끄는 로마 제 9군단의 마지막 전사들과 에테인이 이끄는 픽트족은 죽음으로서만 끝낼 수 있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렇게 영화의 줄거리는 나름 장황하지만 간단하다. 포로로 잡혀간 백부장 '퀸투스'를 구하기 위해서 고대 로마 군대의 최강을 자랑한 9군단이 보무도 당당하게 출병한다. 하지만 그런 위용도 잠깐 숲속에 매복되어 있던 야생의 픽트족에게 최참하게 무너지고, 그 군단장이 인질로 잡히자 그 대장을 구출하기 위해서 살아남은 센트리온 백부장이 몇몇 군인들과 함께 적지로 뛰어든다. 하지만 군단장을 구하지 못한채 그곳을 탈출하고 결국 군단장은 픽트족의 여전사 '에테인'에게 죽는다. 그리고 에테인은 그들을 맹렬히 추격하며 숨통을 조인다. 과연 에테인을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까.. 아니면 센츄리온 백부장은 에테인을 물리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둘의 대결이 영화의 결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 센츄리온(Centurion)은 무슨 뜻일까? 찾아보면은.. 백인대장(百人隊長) 또는 백부장(百夫長)이라 불리는 고대 로마 군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교급 직업군인로 한마디로 '백인의 결사대'라 할 수 있다. 로마 레기온(군단)의 최소단위인 켄투리아(백인대)의 지휘관이었다. 명목상 6,000명의 병사로 구성된 레기온은 10개의 코호르트(보병대)로 나뉘었으며 한 코호르트마다 6개의 켄투리아가 소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켄투리온은 100명가량의 병사를 지휘했으며 한 레기온에 60개의 켄투리아가 있었다. 한 레기온에 속한 켄투리온들은 복잡한 위계질서로 배치되었고 상급에서 하급에 이르기까지 권한과 책임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대부분의 켄투리온 계급은 실질적으로 지위의 차이가 거의 없었고 다만 제일급 보병대의 제일급 백인대장만이 예외였다.

아무튼, 이 영화는 전투중 부대원 전원이 실종돼 지금까지도 역사속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전설의 로마 제9군단의 이야기.. 바로 로마제국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현제중 하드리아누스시대(재위 117~138)에 로마군 전성기중 가장 무섭고 뛰어난 군단이었다는 9군단이 스코틀랜드에 갔을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면에 은폐될 수 밖에 없었던 그날의 전투, 그래서 감추어야 했기에 더욱 치열했던 그 날의 전설을 만들고자 아니 부활코자 스크린으로 담아낸 <센츄리온>..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사실 역부족에 태부족이다. 이런 좋은 소재를 가지고 포장을 못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감독의 역량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바로 어느 영화평 '리들리 스콧을 넘보다 자해하는 꼴'이라는 혹평처럼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 '닐 마샬'은 전작 <디센트>를 통해서 하드고어한 공포물로 이목을 끌었고, 이번 전쟁 서사액션에도 그것을 그대로 표출하려는 흔적이 엿보였다. 창칼이 복부와 목을 관통하고 모가지가 댕강 잘리는등 피가 생으로 튀며 날것 그대로의 리얼 살육액션으로 야생의 원시적인 전투 장면을 가감없이 담아냈다. 하지만 비주얼이 문제가 아니라 스토리가 엉성한 느낌이다.

물론 이런 잔혹한 씬에 거부감이 일면 보기가 거북하다. 하지만 영화 <300>의 스파르타군과 페르시아 제국의 살생전을 즐겨봤거나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리얼한 피빛 살육을 즐겼다면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충실하게 보여주었고 어찌보면 이런 류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다. 이야기 구조의 플롯이 좀 엉성한 느낌에다 大 서사액션이라 불리기엔 낯간지럽게 B급스런 연출, 그리고 정작 주인공 센츄리온 백인대장의 사투와 고뇌가 전달이 잘 안된 느낌이다. 그냥 도망자 신분으로 점철된 안습적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름 건진것이 있다면, 바로 위의 사진처럼 픽트족 여전사 '에테인'역을 맡은 '올가 쿠릴렌코'가 아닌가 싶다. 로마 9군단의 정찰병으로 처음에는 활약했지만 그녀는 스파이였다. 소싯적 가족 모두가 로마군에게 몰살을 당하며 그녀는 복수를 다짐한 것이다. 그 악다구로 철저하게 로마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절치부심했고, 그 중심에서 로마 9군단을 사지로 내몰았던 여전사, 분장의 효과인지 몰라도 꽤 강렬해 보인다. 야생의 모습 그대로처럼 말이다. 이것은 여전사의 이미지로 굳혀진 두 여배우 '밀라 요보비치'나 '안젤리나 졸리'와는 색다는 느낌이다.

여튼, 전설속 로마 9군단의 이야기라는 大 전쟁 서사액션을 기대했다가.. 잔혹한 피빛 영상을 복습한 느낌에다 어느 한 야생적 여전사의 아우라만 남겨진 아쉬운 영화 <센츄리온>.. 만약에 이런 소재를 <글래디에이터>와 <로빈후드>을 만든 '리들리 스콧'이 연출하고, 주인공을 '러셀 크로우'가 했다면 이 영화는 또 한편의 장대한 서사액션이 됐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A급속에서 이런 B급스런 서사액션도 필요하긴 하다. 대신 여전사 '올가 쿠릴렌코'를 건졌으니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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