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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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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진심으로 '언론은 공정하게 진실만을 보도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강호는 이 책을 당당히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읽는 순간 그 믿었던 공정함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9시로 대표되는 뉴스 통칭해서 우리시대 '한국의 언론들'에 대해서 날이 선 비판의 견지로 KBS 최경영 기자가 쓴 '한국 언론의 몰상식 보고서'다. 읽는 내내 그 통렬함에 수십 번이나 수긍이 가고 해당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어 봤는지 모른다. 아주 제대로 까발리고 파헤치며 한국 언론의 치부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소위 사탕발림으로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들은 정작 대중을 위한 진실의 보도가 아닌 절대 객관적이지 못한 소위 '이익의 물타기'로 대변되며 오로지 이익 추구만을 위해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해온 '싸구려 뉴스'로 전락해버린 한국 언론들의 작태를 제대로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의 특이할 점은 이런 날선 비판과 비평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까발리기 보다는 그 근거로서 가치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과 대비시켜 조목조목 한국 언론과 빗대어 반박하며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뭐.. 여러 말이 필요없다. 자신의 성향이 비판적 견지가 다분하다면 또 지금껏 우리 시대 언론들이 해온 작태를 생각해 본다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요.. 다시 그들의 과오를 확인하는 복습차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겨버릴 계제가 아니다. 우리의 언론이 특히 이 정부들어 화두가 되버린 '공정한 사회' 처럼 왜 공정(公正)하지 못하고 권력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수기로서 대중을 호도하고 왜곡보도를 일삼는지 자세하고 가열하게 그 '한국 언론의 몰상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각개로 들어가기 전 각 장의 제목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으니..
먼저,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국 언론, 너는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

1장에서 반어적 제목으로 "우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만 한다"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언어의 물타기, 언론의 상징조작의 사례로 대표적인 노무현 정부시절 보수 신문들이 만들어낸 '세금폭탄'이라는 용어를 꼬집는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이 말하는 '국익'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으로 대변돼 왔음을 견지한다. 2장 워렌 버핏의 상식 첫번째로 "나는 내가 투자한 기업의 다음 분기 실적도 알 수 없다" 는 그의 투자철학과 상속세 인하에 반대하는 50조원의 재산가 버핏의 삶을 고찰한다. 3장 "기자는 언론사가 고용한 월급쟁이다"를 통해서 언론사에 고용된 기자들의 작태와 '기계적 중립'은 거짓과 위선에 대한 ‘물타기'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소위 월급쟁이 기자들의 '받아쓰기 저널리즘'(stenographic journalism논쟁을 그대로 뉴스화할 뿐, 각 논쟁에 대한 사실 검증이나 비판을 게을리 하는 언론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나온 말)을 맹비난하며 개탄해 마지 않는다.

4장에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판 버핏의 생애 조망과 검소와 절제를 실천하는 금융계의 아웃사이더 버핏의 이야기를 한다. 5장은 이런 버핏의 주식투자와 빗대어 한국 언론이 전하는 주식과 관련된 기사들 특히 '급등, 급락, 폭등, 폭락'은 사실이 아닌 감정의 표현임에도 버젓이 쓰며 대중들을 현혹시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피상적인 추정과 편견이 사실로 둔갑하는 그 현실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6장에서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는 현인 버핏의 주식 철학중에 '숫자는 가정과 분석, 추정의 뭉텅이다'와 '그래도 시장은 대체로 옳다'는 어찌보면 상식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7장에서는 한국 언론들은 진실 보도보다 당장 돈 되는 보도가 우선이다는 원칙하에 '뉴스는 비즈니스다'로 귀결되며 상업뉴스로 전락한 그 이면을 고발한다. 그리고 대중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뉴스를 꼬집는다.

   
 

왜곡된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의식을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가두려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언론의 의도는 애당초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언론과 전문가는 대중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일까' 하는데 더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그 부당함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과적으로 그 부당함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재임 기간 동안 택시 운전기사들의 입을 빌려 흉흉한 경제 민심을 전파해온 신문들은 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요즈음에는 그런 기사를 싣지 않는 것일까요? 택시 운전기사들의 살림살이가 급격히 나아져서? 

 
   

8장 버핏의 주식철학중 '거품의 이면을 보고 싸구려 일용품을 멀리하다'는 견지하에 버블의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어떤 기업에 투자할 것인지 주로 가치주에 대해서 분석한다. 9장에서는 권력과 기업을 대변하는 언론으로 전락한 그들의 모습 중 왜곡된 통념을 전파해 기득권 세력을 비호하는 한국 언론을 제대로 꼬집는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은 '왜 백인 남성 교수에게 약할까?'라는 다소 재밌는 분석을 내놓는다. 물론 다 근거있는 학설에 의한 주장들이다. 그리고 그저 출입만 하는 출입기자들이 정부의 홍보도우미로 전락한 행태를 꼬집는다. 10장에서 "언론인이 똑똑할수록 사회가 더 윤택해진다"는 소재로 화두를 던지며 버핏은 '훌륭한 투자는 평생 두세 번이면 족하다'는 주장과 대중을 '호구'로 보지 않는 언론이 필요하다는 역설과 함께 대중들이 '호구'로 전락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9시의 독재자'

11장 '9시의 독재자'로 전락해 버린 9시 뉴스들 예전 이승만 정권 시절 '대한 늬우스'와 전두환 시절 '땡전뉴스' 그리고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하는 미디어의 효과에 대해서 말하며 중세시대 '런던이 물에 잠긴다는?' 사례를 들어 재밌게 전달한다. 12장 '뉴스와 주가는 결국에 어떤 관계일까?'를 던지며 오히려 주식시장의 호객꾼으로 전락한 뉴스가 전하는 주식 소식들의 이면을 뒤집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대중은 뉴스로 '툰드라의 들쥐'로 된다는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13장에서는 결국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다'로 귀결시키며 누가 뉴스를 이용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이런 '사려 깊지 못한 언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웨렌 버핏과 도표로 비교해 까발린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대중이 나서야 하며 그것은 소비자가 되찾아야 할 언론의 자유라 역설한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분노와 긍정으로 다시 시작하며, KBS 새 노조 벗들에게' 전하는 저자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메시지가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각 장의 제목과 내용만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우리 시대 한국 언론들을 칭찬한 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그 비판의 강도가 세다. 그래서 어찌보면 소위 "좋은게 좋은거지.."로 살아오신 50-60대 어르신들에게 다소 아니, 심히 불편할 책일 수도 있다. "언론들이 다 그런거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시대 젊은 대중들은 그렇게만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 비판의 강도가 다소 센 것은 그만큼 한국 언론이 얼마나 '이익의 물타기'로 대중을 자극적으로 선동하며 지내왔는지 그 가열한 언론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자기 반성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말이다.

   
 

대통령의 말이면 무조건 '천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라고 모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은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상업주의 언론에서 기사는 오로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뉴스 비지니스'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뉴스가 사업이 된 마당에 언론이 진실이 추구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한국 언론은 '대통령, 검찰, 감사원, 법원, 교수, 백인 남성 지식인, 해외 유명 언론'등의 권위를 이용해 대중을 협박하려 듭니다. 때로는 그들의 말을 슬쩍 바꿔치기하거나 짜집기해서 스스로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들기도 합니다.

 
   

'워렌 버핏의 상식 vs 한국 언론의 몰상식'

또한 그것은 가치투자의 대가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을 대비시켜 버핏이 견지해온 삶과 주식에 대한 철학등 한국언론과 비교하며 객관적으로 와닿게 설명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부제목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처럼 '워렌 버핏의 상식 vs 한국 언론의 몰상식'으로 대비시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승자는 워렌 버핏이다. 이 부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저자 말대로 한국언론은 썩을때로 썩어 몰상식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몰상식을 현장에서 계속 봐온 저자로서는 그래서 심히 고민되고 자신의 직장을 버릴 각오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작금의 한국언론의 행태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특히 KBS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저버린 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영방송'으로 전락해버린 그 작태에 저자는 심히 분노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했다. 특히나 '탐사보도상'까지 탄 자신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 행동'에 소속해 언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이력때문에 보복인사로 좌천된 것만 보더라도.. 그는 작금의 KBS를 공정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어 심히 부끄럽다고 마지막까지 언급했다. 결국, 언론의 진정한 사명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자유 언론 실천'이 요원한 가운데.. 그래도 'KBS는 공익적인 자유 언론'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배부른 노예'보다는 진정한 직업정신으로 이 시대의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 저자는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빼앗긴 언론의 자유를 대중과 함께 쟁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튼 아직도 한국 언론이 공정하다고 믿는 분들께 이제는 환상을 깨고 지금까지 언론이 얼마나 몰상식한지 주지하길 바라며.. 다시 한번 이 책의 일독 아니, 정독(正讀)을 권하는 바다. 또한 우리 대중들도 이제는 '무엇이 X이고 된장인지' 아는 비판적 견지로 언론을 공정하게 수용하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저자의 구구절절 제대로 된 공정(公正)한 말들이 꽤 많다. 그중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 대중들에게 던진 화두 위주로 몇 개를 소개하며, 이 책의 리뷰를 마칩니다. 

   
 

나치 정권의 괴벨스에게 이용당했던 독일 대중, 독재정권 아래에서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김정일 정권 아래의 북한 주민들까지, 모두 흔들리고 조정당하는 수동적인 대중이었습니다. 2010년 우리는 그런 대중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비판적인 세상 보기를 하지 못하는 대중은 언론에 의해 들쥐 떼처럼 몰려다닐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그래왔습니다.

한국의 대형 언론사들 역시 소비자인 대중의 저항 없이 그들의 이익과 권리를 결코 스스로 양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애당초 우리 것이었는데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가서 되찾아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본디 쟁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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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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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이 간단한 명제를 이들은 몰랐던 것일까.. 정말로 남녀간에 '밀당'(밀고 당기는)하며 울고 웃는 그 사랑의 쏠라닥질같은 연애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된다고 믿었단 말인가.. 물론, 아닐 것이다. 영화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영화같은 이야기라서 그렇게 치부하기엔 이들의 연애담이 나도 모르게 와닿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할 사람들 아니면 소싯적에 연애를 해본 모든 이들에게 연애에 대한 추억과 일상을 그리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기분좋게 만드는 로맨스물 <시라노; 연애조작단>.. 사실, 이 영화를 보기전에 기대를 안했다. 뻔하디 뻔한 그저그런 코믹 로맨스물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추석연휴를 기점으로 백만을 훌쩍넘어 버린 웰메이드급 로맨틱 영화가 되면서 안 보면 안되는 아니 연애를 어떻게 조작한다는 건지 그 모습을 너무도 보고 싶어 봤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작?이 있었다. 제목에서 언급된 '시라노'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먼저 이 '시라노'의 원전에 대해서 영화는 친철하게도 중반쯤에 주인공들의 대화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강호 또한 이미 보기 전에 이 뜻에 대해서도 포스팅을 했지만 다시 간단히 언급하면 이렇다. 

1897년 파리에서 초연돼 화제를 모은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작품이 바로 <시라노 드 벨쥬락>이다. 영화 원작은 1990년 프랑스 대표배우 '제라드 드빠르디유'가 주연을 맡으며 명화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서 시라노 백작은 17세기 실존 인물로, 문학과 검술에 뛰어나지만, '코가 몸보다 먼저 나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큰 코를 가진 추남이었다. 바로 이 큰 코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는 '시라노'가 8촌 여동생 '록산느'를 사랑하지만 외모 콤플렉스등 자격지심 때문에 차마 고백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부하인 '크리스띠앙' 역시 '록산느'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를 위해 연애편지를 대필하기에 이르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는 그 시라노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랑앞에 숙맥이었던 그들을 고객삼아 '쥐도새도 모르게 뒤끝없이?' 연애와 사랑에 골인하게 해준다는게 이 영화의 모티브이자 플롯이다.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100% 성공률에 도전하는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대신해 연애를 이루어주는 연애조작단이다. 때로는 영화 촬영장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때로는 비밀 작전 수행처럼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으로 의뢰인의 사랑을 이루어주는 연애 에이전시. 그들의 신조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안 한다’ 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전시 대표인 병훈(엄태웅 분)과 그의 작전요원 민영(박신혜 분)은 예측불허의 의뢰인 상용(최다니엘 분)을 만나게 되는데…. 스펙은 최고이나, 연애는 꽝인 2% 부족한 스펙남 상용이 사랑에 빠진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랑스런 외모의 희중(이민정 분)이다. 의뢰인의 타깃녀 희중의 프로필을 본 순간, 고민에 빠진 병훈…



이렇게 영화는 제목 그대로 사랑앞에 연애질이 서투르고 숙맥인 사람들 주로 젊은 남자들을 주된 고객으로 해 사랑에 골인시켜 준다는 '시라노;연애조작단'의 이야기다. 위의 4명이 주 멤버로 자신의 고객들을 상대방 여자에게 골인시켜 주기 위해서 그들은 첨단장비에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감시와 도청도 불사하며 자신들의 일에 매진한다. 첫 번째로 맺어준 커플은 바로 영화 <방자전>에서 혀짧은 변학도로 분한 '송새벽'과 이몽령에게 딜리쎠스를 외친 색골? 향단이 '류현경' 둘의 연애담을 조작해 성공시킨다. 물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지만서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 영화의 초반 코믹적 분위기는 사실 이쪽에서 다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송새벽의 혀짧은 대사가 어색한 서울 표준말투로 변모된 재미도 선사한다. 

그 다음 찾아온 또 하나의 의뢰인 상용(최다니엘).. 젊고 돈 잘벌고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이지만 그는 여자앞에서는 숙맥.. 그래서 여기 '시라노;연애조작단'을 통해서 자신이 첫 눈에 반해버린 그녀 희중(이민정)과 사랑에 골인코자 의뢰를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기 시라노의 작전리더이자 대표인 병훈(엄태웅)이 예전에 사겼던 아니 사랑했던 사이였던 여자가 바로 의뢰인이 의뢰한 목표물 바로 타깃녀엿던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병훈의 연애담을 과거로 돌려 보여준다. 그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를.. 그러면서 의뢰인 상용의 연애헬프 서비스를 거부하고 방해하기까지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남자의 갈등을 그린다.

그러면서 타깃녀 희중도 두 남자를 오가며 연애에 힘들어하고, 물론 자신이 연애조작단에 의해서 타깃이 된 것을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그 두 남자는 다시 화해?하고 연애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상용과 희중의 마지막 연애조작에 박차를 가한다. 과연, 이들은 그들의 연애를 성공시켰을까.. 병훈이 예전에 사랑했던 그 희중을 정말로 잊은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을 찾을 것인가.. 영화적 결말이라 언급을 피하지만 상콤 쌉쌀한 헤피엔딩식 로맨틱물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은 가는 그림들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연애담에 개입해서 그 연애를 조작해 사랑에 골인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속에 타깃녀와 사랑했던 또 다른 남자를 충돌시키며 그들의 연애담과 사랑의 대한 추억을 반추시켜 교과서적인? 로맨스에 근접하며 젊은 청춘남녀의 연애담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초반과 후반을 빼고는 중반에 시라노의 대표 병훈의 연애담은 사실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 사랑의 아픔이라는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닌 실제 우리네 일상같은 모습이라 와닿기도 하지만서도.. 의뢰남과의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인위적 장치로서의 의도적 설정때문에 거슬려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원작인 프랑스의 대표 희곡 <시라노 드 벨쥬락>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여기서 '시라노'는 당연 병훈역의 엄태웅이요.. 시라노가 사랑했던 여자 '록산드'를 사랑하게 된 시라노의 부하 '크리스띠앙'은 의뢰인 상용역의 최다니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록산드'는 바로 희중역의 이민정이었고..

그외의 인물은 주변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켵가지로 노는 것은 아니다. 작전요원중 홍일점 민영역의 '박신혜'는 눈치 백단의 나름 매력적인 캐릭터로 눈길을 끌면서 나중에 결말까지도 책임졌다. 그외 작전요원중 최고 고참으로 '난 애드립 치는 사람이 제일 싫다'는 철민형님의 코믹연기도 볼만했다. 물론 이외에도 와인빠의 마담언니 '김지영'이나, 후반부 막판 사채업자 '권해효'까지 이런 조연들의 열전도 있다. 아무튼 영화의 전제적인 느낌은 나름 잘 빠지게 그린 로맨스물이라 보고 싶다. 중반에 좀 지루한 것을 빼면 초반에 공감하며 중반에 왜 그랬을까 싶다가.. 후반에 다시 공감케 만들며 연애에 대한 일말의 추억이나 환상?을 갖는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바로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를 연출하며 한국 영화계에서 드물게 '로맨틱 코미디'만을 만들어온 김현석 감독의 역량이자 그만의 아릿한 정서와 유머가 깃든 사랑 방식들로 이런 그림들이 나온게 아닌가 싶다. 특히나 남자들을 위한 로맨틱 코미디 같은 느낌이 많은데.. 여튼 영화 중반에 삽입된 그 클래식 OST는 보는 이의 마음을 동화시키에 충분했고, 마지막 엔딩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만, 엄태웅과 이민정의 예전 연애담이 좀 그랬을뿐.. 그래도 그런 이야기는 우리네 연애적 일상일지도 모른다. 특히 남자들의 심리를 보면 말이다. ㅎ 

결국, 이 영화는 연애조작단에 의해 연애에 숙맥인 사람들 특히 남자들을 그 연애와 사랑에 골인시키기 위해서 조작을 한다지만, 조작만이 능사가 아니라 실제로 또 종국에는 서로간의 이해와 소통을 위해서 조율만이 더욱더 사랑하게 만든다는 반어적 메시지와 명제를 던진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조율이 안되기에 이런 '연애조작단' 같은 '연애대행업'이 나오는 것이지만서도.. 그래도 연애는 조작이나 대행이 아니다. 이른바 연애 좀 안다고 괜히 조작했다가는 자신의 사랑마저 위태롭기 때문이다. 여기 극중 병훈처럼 말이다. 그냥 현실적으로 '밀당'하며 조율하는 것이 최고이자 진리고 그것이 수순이다. 그래야 사랑에 골인할 수 있음이 일상다반사인 것이다.

아무튼 지상에 모든 젊은 솔로와 커플들에게 이 영화의 일독을 아니 일시(一示)를 권하는 바다.
느끼는 것도 있지만 우선 기분은 좋아진다. 아.. 나도 다시 연애하고 싶어지는 이 묘한 기분은 뭥미?!ㅎ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i73DyUqU9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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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연휴동안에 이제서야 끝자락에 시간이 좀 남아서 오랜만에 고향집에 있는 큰 책방을 찾았다. 당연, 요즈음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넷상으로 본 책들의 외형적 이미지?를 만지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앞으로 살 책들로 미리 둘러보는 강호에게는 꽤 의미있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두 권의 책을 발견했다. 사실, 이 두 권은 예전에 이 책방에서 러시아 문호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와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을 사면서 눈여겨 본 책이었다. 다음에 올때는 여기 두 권의 책을 사야겠다고.. 그래서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나올때 두 권을 도서상품권으로 컬렉했다. 그럼, 강호 스타일대로 매번 하는거지만 책 소개를 간단히 해본다. ㅎ

먼저, <설국>이다. 그런데, 이 제목은 어디서 얼핏 들어본 것 같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로도 나온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꽤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정확히 본 기억은 없지만서도 그런 느낌이 드는 원작이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이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에 이렇게 떡하니 자리매김하고 있을까..이 책은 바로 일본 최초로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이 작은 1937년 처음 발표 후 출간되다가 12년동안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1948년 마침내 완결판 <설국>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민음사에서 정식 계약을 통해서 2002년 이후 2010년 37쇄까지 펴낸 인기작으로 우리들 손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12년에 걸쳐 섬세하게 조각된 동양적 미의 세계, 전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낸 눈 덮인 니가타 지방의 아름다운 정경,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서정 소설로 평가받는 <설국>으로, 한마디로 줄이면 시마무라의 온천마을 방문기이다. 실상은 정확한 플롯이 없어서 방문기라 이름 붙이기도 모호함속에 스토리보다는 분위기를 잔뜩 살린 소설이라는 소개다. 그것은 이렇게 저렇게 궁굴린 문체, 거진 반 페이지 가까이 되는 수식, 서술어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솜씨 덕에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개성에 초점을 맞추며.. 눈 쌓인 온천 마을, 설산, 내연 모를 아름다운 여인, 게이샤 등등 주요 장면이나 인물들의 이미지도 공감각적으로 독자의 감성을 건드린다는 평가다.

당시 1968년 스웨덴 한림원은 이 작품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일본인의 마음의 정수(精髓)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한 서술의 능숙함"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유흥문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지만 그렇다고 꼭 일본적인 소설은 아니다. 눈 쌓인 온천지방을 묘사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보드라운 문체와 눈 녹듯이 사그라드는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대화가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뉴욕 타임스>조차 "가와바타의 글은 소리 없이 퍼져나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추천사처럼, <르 몽드>는"『설국』은 문체의 아름다움에 있어 대표적인 고전이다. 이미 모두 읽고서도 다시 읽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시적이면서 우아한 문체의 풍요한 때문이다." 추천사처럼.. 설국은 분명 우리네 마음 한 켠에 자립잡은 '서정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문학이 아닌가 싶다. 제목처럼 가을이 지나 눈 내리는 겨울에 읽으면 제 격일 것 같은 느낌의 <설국>을 꼭 만나보자.



또 하나의 일본문학은 제목부터 임팩트한 <인간실격>이다. '인간실격'이라니.. 바로 인간의 자격이 박탈당한 이야기인가.. 그렇다. 띄지에 설명처럼 천만 부 이상 판매된 일본의 대표적 국민소설로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대표작이다. 오사무의 짧은 연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는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게 된다.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 생애 다섯 번째로 자살을 기도함으로써 서른 아홉 살에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기이한 이력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그는 제1회 아쿠타가와 상 수장자이자 현대 일본 소설의 상징으로 불리우며 전후 일본 문학사상 1천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장편소설로 대표되는 작가다.

그 이야기 속에는 순수한 인간을 실격시키는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판 비판이 들어 있으며, 패전 후 황폐한 일본, 정신적 기반을 잃고 술과 마약, 매춘 등에 빠져 처절하게 파멸되어 가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요조'의 일생을 통해서 누구보다 인간이기를 원했으나 끝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한 인간 실격자의 처절한 고백이 묻어난다는 소개다. 그래서 이런 지나치게 우울한 내용으로 어찌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유서 같은 자전적 소설로 평가돼 문단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설국>처럼 같은 출판사로 구할려던 민음사판이 <인간실격>외에 <직소> 하나만 있었는데.. 이 책에는 대표작 <인간실격>이외도 몇 편이 더 수록되어 있다. 일본 국어교과서에 실린 그리스 전설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자의식과 수줍음을 이야기한 <달려라 메로스>를 비롯해 <잎>, <역행>, <어릿광대의 불꽃>,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까지 총 6편의 대표작들을 실었다. 그래서 이런 오사무의 작품속에는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도덕적 양심을 저버린 채 축적한 기성세대 부의 비호 아래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치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청년의 이야기는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적 특징이 묻어난다.

그것은 바로 전통적인 가치가 설 자리를 잃고, 또한 젊은 세대가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전후戰後 일본의 혼란을 완벽하게 그려낸 그의 소설이야말로.. 작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사회를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자화상같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바로 뉴욕타임스 조차도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는 평가처럼.. 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려낸 인간의 자격을 박탕당한 한 인간 실격자의 처절한 고백을 들어보자. 무엇이 자격이고 실격인지 말이다. 

이렇게 일본문학의 대표적 걸작 두 권을 간단히 소개해 봤다. 분명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다. 한 분은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긴 노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였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이 둘은 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또한 이 작가들을 처음 들어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 일본의 현대소설로 자리매김한 인기작가들..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베 미유키, 요시모토 바나나, 이사카 코타로, 히사기노 게이고, 노자와 히사시, 오쿠다 히데오, 오기와라 히로시등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이 둘은 지금의 인기 작가들보다 앞선 시대를 산 만큼 시대의 아픔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알아야 할 일본 작가이자 문학이 아닌가 싶다. 대표작 <설국>과 <인간실격>, 그래서 이 대표적 일본문학은 꼭 필독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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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 여기 잠들다
필립 리브 지음, 오정아 옮김 / 부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적으로 인류사를 장식해 온 인물들 특히나 전설속 영웅적 인물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가까운 시대가 아닌 천 년 이상이나 되는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라면 더욱 더 그렇다. 직관적인 사료도 정확히 남아있지 않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어 온 그 신화와 전설들.. 그 속에서 때론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상 야릇한 신비감에 쌓이게 된다. 그중에서 강호가 소싯적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원탁의 기사와 엑스칼리버로 유명한 '아더 왕'의 전설, 아니 여기서는 '아서'로 불리니 '아서'로 해야겠다. 이 '아서왕의 전설'을 책으로 만나게 된 순간, 그 이야기속으로 빠져든 '필립 리브'의 신간 <아서왕, 여기 잠들다>이다.

사실, 이 책은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 나온 SF모험 소설 첫 번째 이야기 <모털 엔진>을 예전에 미리 접하고 나서, 그가 그려낸 무한의 상상과 재미에 빠진 기분에 이렇게 신작이 나와서 읽게 된 소설이다. 그런데, 제목에 아서왕이 들어가 있다보니.. 얼추 아니 바로 '역사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여기 작가 '필립 리브'는 역사소설이 아닌 '실제 아서왕'을 그릴 생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요, 오로지 아서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의 바다에 조그만 이야기를 하나를 보태고 싶었을 뿐이였다는 그의 바램처럼, 이것은 지극히 이야기에 중심을 둔 소설이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에서 아서왕은 절대로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조연일뿐 아니 거들었을뿐, 이야기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으니..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떠나보자.

먼저, 시대 배경은 5, 6세기경 브리튼(Britain : 아일랜드(Ireland)를 제외한 잉글랜드(England), 웨일스(Wales), 스코틀랜드(Scotland)를 통틀어 이르는 말) 지역을 무대로 전개된다. 이 지역에서 '색슨족'과 매번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브리튼 지역을 지배했던 수많은 군주중에서 '아서'라는 군주.. 그는 사실 우리가 상상해온 젠틀하고 용맹하며 기사도 정신의 선봉장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여기서는 그려진다. 거침없고, 포악한 곰같은 인물로 어찌보면 가장 인간적인 느낌이랄까.. 그 곰같은 사내가 오늘도 부하들을 이끌고 어느 지역을 습격하고 약탈해 쑥대밭을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도망친 어린 소녀 '그위나'.. 그렇다. 바로 여기 10대의 어린 소녀 '그위나'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다.

즉,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서왕의 이야기다. 아니 아서왕을 그렇게 많이 바라보지도 않는다.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주고 아서왕의 홍위병을 자처하며 그의 전장에서 전승(戰勝)을 설파하기 바빴던 마법사 '마르딘'(후기 이야기에 등장하는 멀린의 원형이며,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과의 여행담?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사실 여기 마르딘은 마법사라 하지만 사람들의 눈속임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대는 이야기꾼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지상최대의 목표는 오로지 '아서의, 아서에 의한, 아서를 위한' 이야기 만들기에만 주력할 뿐이다. 하프 하나 챙기고 시종으로 데리고 다니는 '그위나'와 함께 말이다. 딱 그림이 그려진다. ㅎ

그러다가 아서의 전장에서 활약을 좀더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그위나'를 남장시켜 '그윈'이라는 이름으로 소년병으로 자원입대?까지 시킨다. 그위나는 깜놀하지만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때부터 소년으로 살며 전장을 누빈다. 그렇다고 그 전장이 멋지고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아서의 조카이자 괜찮은 핸섬보이 '베드위르'와 그의 형 '메드로우트'를 알게되고, 그러다 어느 지역에서는 자신도 모른 채 여장하면서 살아온 '페레디르'(웨일스 신화와 전설 모음집 『마비노기온』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이후 중세 로망스 문학에서 아서의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자 성배를 찾는 퍼시발로 면모한다. 하지만 여기서 페레디르는 소위 '찌질남'이다.ㅎ)를 만나며 우정을 싹띄운다.

물론, 아서의 다른 지역 약탈과 습격은 계속 된다. 예의 영토와 보물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후처로 명문가 아우렐리아누스 가문의 딸인 '그웬휘바르'를 얻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그위나'가 아니 남장의 '그윈'이 다시 본연의 여자 '그위나'로 돌아와 그웬희바르의 시녀가 된 것이다. 물론, 마르딘이 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중반으로 치닫는다. 바로 그위나는 아서의 후처를 밀착 보필하며 여자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간다.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서도.. 그러다 남장시절 알게된 간지소년 아니 이제는 어엿한 전사인 '베드위르'가 전장에서 다치자 그가 그웬휘바르의 경호를 맡게된다. 그런데, 마님과 돌쇠처럼 둘이 삐리리해서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알게 된 아서..  



아니 그위나가 사실 마르딘에게 이 사실을 고하며 상담을 요청했는데, 마르딘이 아서에게 발고한 것이다. 아서는 전장에서 지는 것 만큼이나 자신을 난처하게 또 바보로 만들면 가차없이 사람을 죽이는 그런 성정의 군주였다. 적어도 이 이야기의 아서는 말이다. 결국, 아서의 조카 '베드위르'는 목이 달아나고 그위나가 마님과 함께 탈출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이 아서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된 베드위르의 형 메드로우트는 반기를 들고 다른 지역과 세를 합세해 우선 손아귀를 벗어난다. 또한 아서의 이복형인 '카이' 또한 동생의 명령때문에 아일랜드인과 합세해 색슨족을 치러 떠난다.

그리고 이 '카이'의 군대에 그위나가 또 합세한다. 물론 그위나가 아닌 남장의 '그윈'으로.. 이때는 마르딘이 시킨 것이 아니고 자진해서다.-(이때 마르딘은 이미 한물간 늙은 이교도 마법사로 전락한지 오래여서 퇴물 취급당해 시름시름 앓으며 집에 칩거중인 상태다.)- 예의 남장시절 만났던 '페레디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후 이 카이의 군대는 기습공격을 받아 몰살당하고 그윈과 페레디르만 살아남는다. 아마도 아서의 일파가 모종의 계략으로 쳤을지도 모른다. 과연, 살아남은 그윈 아니 그위나와 페레디르는 마지막에 어떻게 됐을까.. 또 무대뽀 기질에 포악하기 그지없는 아서는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결말임에 여지를 남겨둔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아서왕의 전설을 다룬 이야기다. 그런데, 아서왕이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남자로 변신했다 여자로 다시 왔다 다시 남자로 변했다가 다시 여자로 변한 어찌보면 중성적인 '그위나'가 바라본 아서왕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아서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바로 자기를 거두어 준 마법사 마르딘과 여행하며 아서의 전승(戰勝)을 증폭시켜 사람들에게 뷰티풀하게 전승(傳承)시킨 주범?들이다. 하지만 '그위나'는 아서를 직관적으로 바라보며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뭐.. 옆에서 보필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위나를 통해서 당시 여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하찮고 무모한지에 대한 개탄은 물론, 남장을 하면서 소위 남자들에게 가려진 여인네들의 삶에 대한 회한같은 것이.. 때로는 위트속에서 10대 소녀 '그위나'를 통해서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그위나는 당찬 10대 소녀의 이미지 마치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울지 않는다는 '캔디'모드로 활약을 한다. 그것은 마치 전작 <모털 엔진>에서 10대 소녀 여주인공 '헤스터'를 보듯 느껴진다. 아무튼, 결국에 여기서 그리고자 했던 이런 이야기들은 아서왕의 어떤 영웅적인 면모가 아닌, 만들어진 아서, 마법사 마르딘의 아서, 이야기속에서 재창출된 아서로서 그리고 있다. 즉, 아서왕의 전설은 아마도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나름의 전승적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아서왕의 전설이 어느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위대한 군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사실 이 소설은 당차고 얼척없는 소설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제목 <아서왕, 여기 잠들다>처럼 어떤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며 마지막 장렬히 숨은 거두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다 읽고나면 알게 되듯이.. 여기서 '잠들다'는 것은 바로 이 문구가 빠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서왕, (이야기속) 여기 잠들다>가 된다. 즉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만들어 낸, 또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사된 영웅의 모습, 그래서 어찌보면 허무하고 공허해 버리는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를 통해서 우리는 또 색다른 영웅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기 '마르딘'과 '그위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위나가 바라본 그 영웅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우리들에게 계속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여기 소설이 말한 메시지다. 즉, 영웅의 전설은 결국 이야기로써 만들어 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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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3~4주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추석 대명절앞에 온 가족과 친지가 만나는 기쁨은 물론 맛나는 음식과 함께 풍성한 한가위가 찾아왔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이런 연휴가 며칠씩 되는 기간동안에는 밀린 공부나 독서 아니 영화들을 보기 마련이다. 매년 익숙하게 TV에서 해주는 추석표 영화들은 물론, 큰 스크린으로 만나보는 또 다른 추석표 영화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2010년 한국 영화 5편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먼저 지난주 9일에 개봉한 <해결사>부터 달린다.

 

 

줄거리를 살펴보면..한 때 잘나가던 전직 형사이자 지금은 흥신소를 운영하는 강태식(설경구). 평범한 의뢰라고 생각하고 급습한 불륜 현장에 한 여자가 죽어 있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 그 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살인 누명을 벗으려면 누군가를 납치하라는 놈의 지시. 숨 돌릴 틈 없이 시작된 경찰의 추격,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과거 사연, 그리고 주변 인물까지 장악하고 있는 놈의 감시와 도청… 게다가 납치해야 하는 인물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할 중요한 사건의 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자신을 조종하려는 놈과 실체를 알 수 없는 배후에 맞서 폭풍 같은 반격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이 영화는 천만 영화만 두 번을 기록한 흥행배우 '설경구'와 나름의 비주얼을 갖춘 '이정진', <방자전>의 씬스틸러 '오달수'와 '송새벽 '그리고 코믹하고 구차한역의 '이성민'까지.. 오케이없는 액션영화에 오케이를 외친 소위 잘 나가는 배우들을 포진해서.. 남의 뒷일을 해결하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겁나게 운없고 시종일관 고달픈 이 남자 '해결사'의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그린 액션활극이다. 그것은 바로 조직 혹은 시스템이 정하는 게임의 규칙안에서 발버둥치는 한 개인이 그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반격을 가는 이야기라 볼 수 있다.

즉, 적들이 블럭처럼 쌓아놓은 함정을 돌파하는 동안 해결사와 놈들이 만나는 접점은 액션이란 장르안에서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속에서 쉼 틈 없이 내달리는 이야기를 끌고가는 동안 리얼하고 빠른 호흡의 액션을 극대화한 오락영화임을 발견한다. 그것은 유혈이 낭자하거나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끄는 액션은 설경구의 온몸을 불사른 맨몸 액션으로 나름의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기존 '복수'를 소재로 한 우리영화에서 잔혹한 복수극에 빠져 지쳐하는 관객들에게 아니 피폐된 마음을 안돈시켜주는 일종의 청량제 같은 액션활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은 성룡표 액션을 보듯 유쾌하고 통괘하다.

하지만 이런 액션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스피드로  정치적 음모에 관련된 검은 커넥션을 그려 버무린 그림은 웬지 상충돼 보인다. 바로 한국 대중의 어떤 정치적 공분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한 느낌이지만 그런 소재가 여기 액션에 짐?이 된게 아닌가 싶다. 어찌됐든 이 영화는 극 초반에 불륜현장을 잡기 위해 태식이 모텔에 들어설때 여자의 그 신음소리 몇 컷만 뺀다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손잡고 극장가서 재밌게 볼만한 그런저런 추석표 영화가 될 것 같다. 추석 2주전 개봉이 빠르긴 하지만서도.. 그래도 온 국민이 아는 '강철중'의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 '설경구'가 성룡식 액션을 선보였으니 눈이 즐거운 영화다.  

위의 영화들은 바로 이번주 16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다. 총 4편인데, 그중 위의 개봉 예매순으로 보더라도 영화의 인기도를 대강 알 수 있다. 먼저, 그 유명한 홍콩느와르의 대표작 <영웅본색>을 리메이크 한 <무적자>다. 

이 영화가 표방하고 있는 주제와 그림.. 벌써 수컷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초적인 이 네 남자의 모습만 봐도 이 영화는 바로 느와르적인 냄새가 풀풀나는 그런 영화다. 느와르(Noir).. 원래는 불어로 '검다'는 뜻이다. 영어의 블랙과 같은 뜻으로 바로 black film.. 그 검고 어두운 영화를 지향했다고 보면 될까.. 그런데 우리는 느와르 하면 단연코 '홍콩 느와르'를 떠올린다. 80년대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뇌리속에 느와르는 주윤발 형님이 바바리 코트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이쑤시개 하나 물고 쌍권총을 난사하며 적을 소탕하는 그런 아우라를 생각한다. 범죄영화들 즉, 갱스터 무비에서 나오는 그림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만 봐도 느와르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기밀래, 보스, 경찰, 목숨, 조직원, 비열한 계략, 조직, 음모, 배신까지.. 아주 느와르 영화가 갖출 건 모두 갖춘 완벽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농이 아니다. 실제 영화상으로도 이런 모든 느와르의 요소들이 전면을 휘감는다. 그러면서 네 남자의 동선을 계속 좇고 있다. 그런 동선의 그림들은 각자 개성이 철철 넘쳐난다. 소위 폼생폼사 가오에 죽고 가오는 사는 남자 영춘, 윤발이 형님께 전수를 받은 마냥 매 선글라스를 끼고 쌍권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총기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 영춘이.. 가슴속에 동생을 버려 두고 온 죄책감에 시린 멍에를 안고 사는 센치한 남자, 도통 웃질 않는다.   

그리고 그런 형을 만나서는 마냥 울부짖는 동생 철, 마치 그런 모습은 영화 <야수>에서 미친 형사역의 권상우를 보는 듯 하다. 하지만 경찰이 되고 나서는 더욱더 형이 걱정되는 그런 가슴 여린 동생 , 그리고 소싯적에 영춘 밑에서 눈치 살살보며 조직 보스의 꿈을 키운 야비한 배신자 태민까지.. 이렇게 이 네 명의 각기 다른 개성들은 서로 충돌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주제이자 플롯은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 배신'도 있지만 사실 큰 그림은 바로 '형제애'다. 형제로 하나된 그들을 그리면서 진한 페이소스와 세련된 영상을 선보인게 주 목적일터..  

하지만 혁과 철, 두 형제의 사랑과 우정은 너무 작위적이고 크게 감흥이 일지 않는다. 왜 그토록 그 형제가 아파해야 했는지 강호에게 와닿지 않는다. 그것이 마치 어긋난 운명이 가져온 장난이기에 그냥 받아들여라.. 남한 출신이 아닌 새터민이기에 더욱더 사회의 주류로 살지 못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라.. 하지만 강호의 느낌은 그렇지 않다. 스케일이 큰 액션물이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큰 주제는 결국에는 드라마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메시지는 결국 전달이 잘 되지 못했다.

'적이 된 형제, 피보다 진한 의리, 그리고 차가운 배신'으로 귀결되는 이 소재처럼 비열한 거리에서 느와르적으로 뿜어댄 요소를 버무렸지만 형제애가 불러온 감성액션이 아닌 세 남자와 한 남자의 대결로 압축되며 마지막에 이 영화는 그런 큰 주제를 버렸다. 그것이 비록 느와르의 클리셰처럼 적 앞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해도 가슴이 찌릿하거나 저미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맹점이자 느와르적 요소만 남고 감성액션이라 표방한 형제애를 못살린 결과가 아닌가 싶다. 물론, 다른 느낌을 가졌다면 형제애는 전달이 잘 된 반면에 느와르는 너무 식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강호는 느와르적 요소 또한 만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총기 남발이 무모할 정도로 마지막에 펼쳐져 얼척 없긴 했지만서도.. 아무튼, 이래저래 오랜만에 마초적인 한국형 느와르 영화가 나와서 반기며 나름 볼만했지만 메시지는 전달이 안 된 영화 <무적다>다.

 

 

 

 

 

 

 



그리고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청춘남녀의 연애담을 그린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다. 사실 못 본 영화라 잘 모르겠지만.. 연애에 쑥맥인자들, 그들을 위해서 여기 4명의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나섰다. 소위 '연애 대행'과 '작업의 정석'을 가르쳐주며 그들이 사랑에 골인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즉, 어찌보면 짜고치는 로맨스라 보면 쉬운데.. 그러면서 그 속에서 뜻하지 않게 사랑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코믹로맨스 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의외로 영화 전문가들 평가가 좋다. 부활한 충무로의 로맨틱 코미디물로 만개한 영화다부터 에피소드들이 조금만 정제되면 더 좋을 뻔한 영화, 김현석 감독의 연출 색깔이 잘 묻어난 재미 충만의 로맨틱물까지.. 봐도 좋을 듯 싶다. 그래서 가을로 접어드는 이때에 젊은 청춘남녀들이 가볍게 즐기며 볼 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이후 장진식의 또 다른 코미디물이 나왔다. 온 국민을 상대로 퀴즈쇼를 한다는 <퀴즈왕>.. 이번 추석에 맞춰서 나온 다분히 가족 오락영화를 표방한 영화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포스터에서처럼 주인공들 아니 나오는 인물들이 참 많다. 그러면서 이들이 어찌저찌해서 좌충우돌하며 130억대 우승 상금이 걸린 그 퀴즈쇼에서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는 영화다. 아주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평가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다. 

장진식 코미디가 여전히 통했지만, 마치 각 캐릭터간의 개인기의 경연장을 보듯 드라마적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평이다. 더군다나 깔깔대며 웃다가 일순간에 공허해지는 느낌과 함께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빵 터지는 않는 모호한 영화.. 그래서 장진식 코미디의 장점과 무리수가 동시에 느껴지는 영화 <퀴즈왕>이라는 평가다. 뭐.. 그래도 크게 대박을 못 치더라도 추석 연휴기간 가족끼리 가볍게 즐기고 유쾌하게 볼 영화가 아닌가 싶다. 자.. 퀴즈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동참해 여기 퀴즈들을 풀어보자.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적 미모라 평가받는 '김태희' 그런데 그녀는 외모를 따지기전 연기로 평가받는 여배우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만큼이나 연기는 최고가 아닌게 사실이다. TV판이나 영화판이든 무언가 각인된 연기를 선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연기력은 아직도 부족한 느낌이다. 그런 김태희가 이번에 작정하고 몸을 던져 말을 타는 경마장 기수로 나오며.. 또 이런 그녀를 도와 남자 기수로 분연한 양동근과 짝을 맞추며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그랑프리>다.  

물론 이 영화는 지극히 드라마적인 영화다. 대부분의 스포츠 관련 영화들이 그렇듯 시련과 역경을 딛고 그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고뇌를 다루며 마지막에 우승으로 감동을 선사하는게 보통의 그림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런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연기자가 그 역에 얼마나 녹아놨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역시나 영화 전문가 평가는 좋지 않다. 각본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같아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드라마라는 혹평이 있는 반면 그래도 오랜만에 김태희의 열연이 보였다는 평까지.. 분명 이 영화는 대척점에 있다. 하지만 여기수 최초로 그랑프리에 도전하는 '김태희'의 변모된 모습을 보고싶다면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보자. 

이렇게, 추석 연휴 기간동안 볼만한 아니 개봉한 한국 영화 5편을 뽑아봤다. 사실, 강호는 5개 작품중 <해결사>와 <무적자>는 봤고, 나머지 <시라노;연애조작단>과 <퀴즈왕>, <그랑프리>는 못봤다. 그래도 어느 정도 느낌이 오는 영화들이다. 그간에 핏빛으로 점철된 스릴러와 복수극이 아닌 오랜만에 가족끼리 봐도 무방한 잔혹하지 않은 액션물과 로맨스와 코믹 드라마까지.. 분명 이번 추석은 긴 연휴만큼 풍성한 볼거리 영화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중에서 최소 1-2편은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시길 바라며.. 
그럼, 모두 즐거운 추석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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