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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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개인'의 대명사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 의 대표작하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 작품 <동물농장><1984>가 있다. 이중 동물농장은 학창시절에 아름아름 읽었던 기억과 <1984>는 작년말 문학동네판으로 읽고 또한 영화까지 접하며 전체주의에 맞선 한 인간의 상실과 그 상실속에서 '억압과 통제의 진수'를 맛본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의 생애를 조망하면서 알게 된 작품중 그가 30대 시절에 썼다던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

이 작품을 읽고 난 느낌은 책 앞에 띄지의 홍보처럼 '오웰의 사상을 이해가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느낌에 완전 동화되고 말았다. 즉, 이 작품이 있었기에 후에 <동물농장>과 <1984>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과연 어떤 내용의 책이었을까.. 한마디로 줄이면 조지 오웰의 눈으로 바라본 가열찬 영국의 근현대사의 현주소를 밝힌 보고서로 르포르타주(Reportage)다.

즉, 당시 전세계가 공황기를 겪던 시절 1930년대 영국의 노동계급에 대한 처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국 북부 탄광 지대에서 겪은 생생한 르포다. 그 르포의 현장은 조지 오웰이 진보단체이자 독서클럽인 '레프트 북클럽'으로부터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책을 써달라는 제의로부터 시작된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몇달여 걸쳐 북부 산업 지대인 일대인 탄광촌으로 몸소 뛰어든다.

이 내용이 책 전체 1부에 해당되는 것으로 브루커 부부의 하숙집에서 칩거하는 순간부터 이른바 우리가 지금은 희화된 표현중 하나인 막장.. 사실, 막장은 바로 탄광의 갱도 끝자락 현장으로 사실 광부들에게는 생과사를 넘나드는 곳이다. 이런 막장에서 그들과 함께한 생생한 체험을 통한 목숨의 위태로움까지 느끼며.. 이런 작업을 통한 광부들의 처절하고 소위 쓰레기 더미에 묻혔다고도 표현한 그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이것은 글로 표현보다 직접 읽으면 오롯이 전달된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작가의 느낌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가 조사하고 근거를 토대로 자료를 제시하며 그들의 실업문제부터 주택문제, 실업수당, 먹거리문제까지 당시 영국의 사회 현상과 복지에 대한 메스를 제대로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노동자 계급의 실태 보고를 통해서 그들의 밑바닥 생활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풍경중 하나로 뇌리에 깊숙이 박힌 것이다.

이런 작가주의 정신으로 탄생된 생생한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실상과 실태는 문학적인 감동과 더불어 역사학계에서도 영국의 1930년대 역사 자료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고 하니.. 그래서 이 르포의 생생한 현장을 바라본 어느 한 역사학자는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생한 르포에 이어서 펼쳐진 2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르포는 아니고 바로 조지 오웰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즉, 자신의 자서전적 보고인데.. 그의 어린시절부터 인도에서 제국의 관료생활과 이 책을 쓰는 순간까지 그의 생각과 사상이 그대로 적혔있다. 그래도 당시 하급 상류 중산층으로 좀 부족했지만 평이하게 살았고 특히 장학금을 받아 들어간 사립학교 최고 명문인 이튼 스쿨에서 익힌 편견(일종의 유색인종의 차별과 '아래것들은 냄새가 나..' 같은 평민들과 놀면 안된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와..

이후 인도 식민지에 5년간 경찰 관료로 지내면서 제국주의에 앞장서며 그가 주장해온 '압제의 현장'에서 느낀 참회의 기록을 생생히 전한다. 그리고 그곳을 박차고 나와 프랑스와 영국을 돌며 이번에는 탄광지대의 몸소 체험이 아닌 부랑자들의 삶속으로 직접 뛰어들며 그 현장을 목도한다. 이러면서 그는 학창시절부터 식민지 통치하에 '압제의 현장'과 부랑자들 속에서 또 탄광지대의 생생한 노동자들의 삶속에서 그가 느끼고 해온 일련의 작업들이 그의 사상으로 집결되며 포텐을 터뜨린다.

바로 소위 노동 계급,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자 의견 개진이다. 그래서 이후에 나오는 내용들은 사실 정치 이념서적 성격을 많이 띄며 각종 이데올로기의 현장을 보는듯 하다. 계속 주야장천 말해온 사회주의, 파시즘,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까지.. 여러 동료 선후배 작가들의 책과 잡지를 통해서 설명도 하고 비교도 하는데 사실 모호한 부분도 있고 일견 수긍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이라는 소제를 통해서 이데올르기를 말한다. 그러면서 왜 사회주의가 지지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물음부터 사회주의는 어떻게 파시즘을 키웠는가와 마지막 우리가 해야 할일의 제시까지.. 즉, 자신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지만 사회주의자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모순속에 펼쳐진 사상은 스스로 좌파 지식인임을 인정하면서도 좌우의 이념을 넘어서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파시즘과 도래할 기계 문명의 산업화를 전체주의의 맥락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런 사상은 파시즘이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통제와 불신의 미래를 보며 후에 <동물농장><1984>같은 디스토피아적 작품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본 2부에서는 그의 사상적 견해를 생생히 엿보며 당시 이데올로기의 현주소를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런 사상적 견해의 밑바탕은 학창시절에 잘못 배운 편견과 이중성의 잣대속에 식민지 관료로 있던 '압제의 현장'에 느낀 참회의 기록.. 그리고 1부에서 밝힌 생생한 북부 산업 단지의 탄광촌의 체험이 오롯이 전달된 작업이자 르포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작가주의적 입장을 제대로 고수하며 어찌보면 가장 '인간다움'과 '상식적인 양식'이라는 큰 틀속에서 전개한 이야기는 작금의 우리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 한 사람의 대문호가 주는 영향은 이렇게 크니.. 조지오웰의 대표적 두 작품 <동물농장>과 <1984>를 아직 접하지 못하거나 접했던 분들도 반드시 이 작품의 정독을 꼭 권하는 바이다.

물론 조지 오웰의 사상과 르포가 담긴 책이라 하드할 수도 있지만.. 조지 오웰식 위트가 간간히 숨어있다. 특히 176p에서 난 뿜었다. ㅋ 물론, 중간 중간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탄광촌등 흑백컷의 사진들이 수록돼 있고 그의 학창시절과 관료시절의 모습도 담겨져 있으니 소장가치로도 좋은? 뒷면에 이런 글이 있다. "일반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나 '프롤레타리아 연대' 같은 말을 들으면 영감을 받는게 아니라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이 스며들지도 모를 일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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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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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악동도사 전우치가 이번에는 엣지있게 아니 수더분한 남파공작원으로 분연한 강동원과 송강호식 그만의 자연스런 연기로 이번에는 기존 깡패, 신부, 형사를 뛰어넘는 최고직 국가정보원 차장역.. 이렇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 엣지남 강동원과 중견 배우 생활연기의 달인 송강호가 만난 영화 <의형제>.. 더군다나 75년생의 젊은 감독 '장훈'이 소간지와 강지환을 싸움붙인 영화 <영화는 영화다>이후에 두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 <의형제>.. 과연 둘은 의형제를 맺으며 간담상조했을까..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의리와 의심 사이 이놈을 믿어도 될까?

6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의문의 총격전. 그곳에서 처음 만난 두 남자, 국정원 요원 한규와 남파공작원 지원.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한규는 국정원에서 파면당하고, 지원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북에서 버림받는다. 그리고, 6년 후..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속이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함께 하게 되는데..적 인줄만 알았던 두 남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로서 남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원에게 6년 전 그날처럼 북으로부터 지령이 내려오게 되고 한규와 지원은 인생을 건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주제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다. 줄거리는 간단히 줄이면 남파공작원 송지원(강동원)과 국정원 요원 이한규(송강호)의 사투.. 이런 그림은 작금의 분단의 현실에서 나름 써먹어온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로 나왔다. 대표적인 <쉬리>이후로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쉬리'처럼 남북 대결의 규모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남자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다. 즉, 북에 부인과 딸을 남겨두고 남으로 내려와 첩보활동을 하는 지원과 그런 소위 '빨갱이' 간첩을 잡는 소명의식으로 똘똘뭉친 한규.. 어찌보면 요즈음 뜨는 '추노'의 그림처럼 쫓기는자, 쫓는자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둘의 추격대신 아예 동거남으로 둘을 붙여놓는다. 그러면서 간첩 소탕 작전 미션 실패로 국정원에서 쫓겨난 한규는 흥신소를 차려 도망간 동남아 여자들을 잡아들이며 밥벌이를 하고.. 이런 밥벌이에 남파공작원 지원이 가세하며 둘은 동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활은 한편의 코믹 드라마를 보듯이 중간에 펼쳐친다. 물론, 그런 장면은 송강호식 연기에 간혹 빵빵터진다.ㅎ

하지만 둘은 지내면서 서로를 경계하며 지원은 한규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림자'(남파공작원 수장격, 이분 나름 쩐다)에게 보고하고, 한규는 지원을 따로 감시하는데.. 즉, 바로 둘은 이렇게 같이 지내지만 동상이몽으로 이미 둘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둘다 인간적으로 사람인지라 어디 남녀간의 정만이 있겠는가.. 바로 남자간에도 끈끈한 우정이 있을 수 있으니.. 바로 이 영화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과연, 같이 지내며 서로를 감시해온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원은 북에 두고온 가족때문에 파국을 맞이할 것인가? 한규는 옆에 다 잡은 고기 지원을 왜 안잡고 놓아주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둘다 파국을 맞이할 것인가? 영화가 오늘 개봉(4일)한지라 앞으로 보실 분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이렇게 남자들간의 버디무디적 성격을 띈 영화 <의형제>는 남북간의 첨예한 대립속에서 무거운 주제대신 두 인물을 통한 공작원 이야기를 그려냈다. 무거운 연출과 그림대신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그런 자연스런 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했고.. 강동원은 오히려 이런식의 연기가 어렵지 않나 싶었는데.. 남파공작원의 이미지가 수더분하게 나름 잘 어울렸다. 

또한 장르 선정시 '스릴러'로 표방을 안 한것은 다행이라 본다. 스릴러적 요소는 사실 많이 떨어지고 그들의 초반 추격이 중반 동상이몽속에서 후반에는 의형제로 거듭난다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와 내용 전개로 일관한 드라마적 영화.. 보는내내 송강호를 보면서 <우아한 세계> 2를 보는듯한 그의 애드립 연기의 재미와 강동원의 무미건조한 남파공작원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은 영화였다. 물론, 마지막 감동의 여운은 각자의 몫이다.

암튼, 결론은 이 영화에서 많이 나온 대사 '인간적으로'처럼.. 남성여러분!!
우리 인간적으로다 같이 살면 정이 돋는거 아니겠습니까.. 남녀든 남남이든 말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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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권은 인터넷 중고 좌판거래로 구한 책들이다. 그냥 완전 새책 수준인데..
아주 저렴하게 업어왔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는 언젠가 꼭 읽고 싶었던 고전이었고..

'용의자 X의 헌신'은 영화를 먼저 봐서..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은 어떨지 궁금해서 선택..
나중에 시간되면 읽어볼 참이다. 판매자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래는 YES24 서평단에 당첨된 두권의 책.. 어제(1일) 왔는데.. 리뷰 쓸 순서상..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먼저 읽고 있는 중이다.
'1984'보다 더한 작가주의를 느끼게 하는 大 작품이다. 이런 명작을 출간한 한겨레출판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옆에 악마의 심층 보고서 '노크하는 악마'는 위건 끝나고서 읽을 참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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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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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가 낳은 천재적 젊은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자국 출신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널리 알려진 밀란 쿤데라도 카프카의 작품을 두고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했으니.. 그의 작품 세계는 한마디로 '그로테스크(Grotesque, 괴기하고 극도로 부자연스런 현상이나 양식과 행태들)'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중 장편의 대표적인 소설 <성(城)>,<소송>을 제외하고 여러편의 단편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변신>이다.

그래서 단편답게 페이지는 100여페이지 밖에 안돼서 금방 읽히기에 지장이 없다. 또한 이 작품은 국내에 번역서가 많이 나왔고.. 그중에서 나는 '변신'이라는 주제에 맞게 그로테스크적인 삽화가 중간중간에 삽인된 문학동네 완역판으로 읽게됐다. 나의 상상력에 플러스된 느낌을 갖기 위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선택은 아주 대만족이었다. ㅎ

먼저,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출장 영업사원 '그레고르' 라는 젊은 청년이 어느덧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이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흡사 바퀴벌레를 연상케하는데 한마디로 얼굴만 사람이고 그외의 모습은 등껍질, 더듬이, 수많은 가는 다리등.. 즉, 벌레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자신도 놀라고 가족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버지 '잠자'와 여동생 '그레테'는 오빠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무진장 애를 쓴다. 하지만 어머니는 거의 기절상태로 차마 아들을 대하지 못한다. 즉, 이렇게 벌레 인간으로 변한 아들을 둘러싼 가족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다.

그런데, 이 그림이 마치 우리 영화 '조용한 가족'과 외화 '아담스 패밀리'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즉, 가족들이 좀 심상치 않다. 물론, 이들 가족은 '그레고르'가 열심히 성실하게 가정 경제를 책임지던 순간까지는 극히 평범하고 나름 단란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벌레로 변신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아버지는 수수방관적 모습에서 사과를 무차별 던지는 폭력성을 띄며 아들을 사지로 내몬다. 특히 여동생은 그런 오빠를 도우려 하다가 나중에는 매몰차게 오빠를 버리려 하는 극단적 이중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엄마만이 차마 아들을 대하지 못한채 남편과 딸에게 의존하는 객체적 힘없는 존재다.

이런 가족들에게는 처음에는 하녀가 있었는데 가세가 기울자 그 하녀가 나가고 늙은 할멈 가정부가 들어오면서 어찌보면 그 할멈이 벌레 인간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유일한 소통이 된다. 그 할멈은 그를 '말똥구리'라 부른다.ㅎ 또한 나중에는 세를 벌려고 세 남자를 하숙인으로 들이면서 이 가정은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데.. 과연, 벌레인간으로 변한 우리의 '그레고르'는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 벌레도 죽을 것인가? 결과는 마지막에 있다.

이렇게, 카프카가 그려낸 '변신'이라는 작품은 어찌보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즉, 그의 실제 생활과 이력을 조금만 살펴보면 가부장적이고 일벌레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한마디로 기를 못피고 어린 동생들이 병과 전쟁통으로 죽어나가고 자신의 꿈마저 버리고 법학을 선택해야 했던 갈등을 겪으며 아버지와 불화속에서 지낸 유년기.. 즉, 자신의 자전적 테마가 아주 깊게 깔린 소설이다. 즉, 벌레로 변하기 전에는 그나마 자신이 중심이 된 것이지만 벌레로 변하고 나서는 그는 바로 소외되고 몰화된 인간으로 치부된 것이다.

하지만 살기 위한 사투는 벌레나 인간이나 똑같은 법이다. 그것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충돌속에서 어찌보면 벌레는 일종의 해방적 의미로 해석이 되기도 하고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이해되는 탈현실의 긍정적 의미도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순간 세상과의 소통불능, 가족들의 몰이해, 변신의 고착화 등으로 인해서 인간의 육체적 실존에 대한 의식의 소멸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즉, 우리네 현대인들의 실존적 위기를 주제로 한 일종의 현대적 우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실존의적 주제를 벌레의 형상을 빌려서 우화적으로 묘사한 프란츠 카프카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래서 그가 젊은 천재 작가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카프카적(Kafkaesque, 인간의 부조리, 무의미, 허무, 냉소, 악몽) 신조어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세계들.. 이런 연장선상에서 장편작이자 '고독의 삼부작'이라 불리는 <성(城)>, <소송>을 읽고 싶어지는 이유중 하나다.

물론, 이 <변신>이라는 작품도 카프카적 그로테스크한 고전으로 감히 추천하는 바다.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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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 Closer to Heav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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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인간사 누구나 생과 사를 겪게되는 과정속에 죽음으로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고통일 수 밖에 없다. 그 죽음이 자연사든 병사든 아니면 여기처럼 불치병으로 인한 죽음이든 그 결말은 같다. 하지만 그 결말의 그림이 같다 하더라도 그런 결말의 과정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처절한 사랑의 강도는 저마도 틀릴수 있으니 영화 <내 사랑 내 켵에>가 그린 그림은 어떠했는지 시놉시스는 이렇다.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그가 당신을 울립니다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김명민).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던 날, 종우는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란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와 운명처럼 재회하고 사랑에 빠진다. 1년 뒤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의 신혼보금자리는 바로 병원. 종우는 숟가락 하나 손에 쥐는 것도 힘겨운 처지지만 늘 곁을 지켜주는 아내 지수가 있어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누구보다 투병의지가 강하다.

전신마비나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들이 모인 6인실 병동. 비슷한 아픔을 지닌 병동 식구들과 서로 격려하고 위로 받으며 지내는 사이 회복세를 보이는 환자도 수술의 희망을 찾게 된 환자도 하나 둘 생겨난다. 그러나 종우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가고, 병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투병의지를 불태우던 종우도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지켜보는 게 점점 더 두려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언어장애가 시작되는데...

이렇듯 특별한 내용이 있는 멜로물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히 알거나 봐온 그림들이다. 불치병을 앓는 이와 그를 정성껏 보필하는 한 남자 아니 한 여자.. 누가 됐든간에.. 두 사람에게는 고통 그 자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그런 과정과 고통은 여과없이 드러난다. 더군다나 불치병 루게릭병을 앓는 역을 했던 김명민은 여러 소식들에 드러났듯이 엄청난 체중감량을 감내하며 자신 스스로 죽음앞에 놓인 환자의 늪에 빠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그를 정성껏 간호하는 아내 지수역의 하지원도 기존의 명랑쾌활한 굳세어라 금순아 타입에서 벗어나 좀더 진중하고 심려있게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하는 내면의 아픔까지 그리는 과정에 잘 동참했다. 이렇게 둘이 그려낸 그림들은 사실 많이 봐온 클리셰이기에.. 어떻게 사랑의 감동을 그려내냐가 관건이 된다. 그러면에서 이 영화는 두 배우가 청룡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을 탄 이력처럼 충분히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영화는 감동 그 자체의 엄청난 물결로 다가오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평이한 신파조 사랑이야기로 치부되는 것도 아니지만.. 김명민의 혼신의 힘을 다한 루게릭 환자역 열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치 10여년전 97년작 영화 '편지'에서 박신양이 아내 최진실을 두고 세상을 뜨는 모습과 사뭇 일치해 보인다.

암튼, 지극히도 신파조의 감동 멜로물을 그린 영화이다. 그런 그림속에 무슨 호불호가 필요하겠는가.. 사랑이 아무리 숭고하고 장엄하다고 해도 죽음앞에서는 누구나 같은 모습인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이 영화는 그것을 그대로 색칠없이 그려냈고.. 또 특히 김명민이 혼신한 루게릭 환자의 모습은 앞으로도 이 영화가 계속 회자될 이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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