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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평점 :
방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는데, 순간 또 다른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곳에 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p160-
가끔 여행을 할 때 몇 달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도시들이 있다. 도시가 가진 매력이 너무나 커서 현지인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시도하기도 쉽지 않다. 케이블 TV이를 틀면 제주도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연예인들이 자주 나온다. 그들이야 경제적인 면에서 능력이 되다보니 넓은 평수의 집을 짓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꽤 친하게 지내던 아는 동생이 작년 아파트 건설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따라 제주도에 내려가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회가 된다면 나도 제주도에서 몇 달 만이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내가 기존에 생활하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에 터전을 잡고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제주도라면 한 번 시도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 우리에게 제주도는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많은 사람들에게 로망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된 집에 머물다'은 반 녀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제주도에 있던 여자가 남자를 만나 100년이나 된 오래된 집을 구입해 자신들의 힘으로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나름 괜찮은 집을 구입해 리모델링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곳이 없는 터전에서 하나하나 자신들이 구상하고 설계하여 자신들의 집을 손수 짓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젊은 부부가 오래된 집을 새집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대견하며 한 편으로는 마냥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옛것의 아름다움이 많이 사라진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세련된 모양의 건물들이 줄비한 것도 멋있지만 오랜 시간의 풍파를 이겨낸 건축물이 가진 아름다움 역시 크다. 부부는 100년이 넘은 집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옛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 익숙함이 주는 식상함을 먼저 느껴 너무나 쉽게 버린다는 글에 마음을 빼앗겼고 또한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 역시 어릴 적 소중했던 물건들이 너무나 가치 없이 느껴져 어느 순간 보물처럼 간직하던 것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옛것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부부 두 사람이 직접 시공하는 집이라 처음 하는 일에 시행착오가 생긴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정성을 담아 멋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은 사소한 부분에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보이는 일이 많았다. 새롭게 만들어도 좋지만 기존의 약해진 부분만을 멋스럽게 재활용하여 예쁜 문으로 탄생시키는데 사진으로만 보아도 참 운치 있고 멋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직접 만든 문들도 좋지만, 가장 마음이 가는 문이다. 마치 이곳의 오랜 날들을 모두 품고 있을 것만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문이 만들어진 방식도 참 예스럽고 소중하다. 못 하나 쓰지 않고 하나하나 끼워 맞춰 만들어진 문이다. 문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튼튼하게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이 문처럼 오래되어 낡아 보이고, 조금 촌스러울지라도 만든 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소중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p87-
집이 생활의 편리성과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략해버린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이 만든 집은 모든 것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설프고 실수하고 집을 짓는 동안 부부간의 돈독한 정이 쌓이며 집은 부부의 삶의 역사로 탄생된다. 저런 집을 어떻게 고쳐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삭막하던 가옥이 전과 후의 확연히 달라진 집은 부부의 손을 거치며 누구나 한 번쯤 자고 싶고 살고 싶은 집으로 다시 태어난다.
평소에는 타인에게 집을 숙소로 개방해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지만 여름 한 달은 휴업을 선언하며 두 사람만의 추억을 쌓는다. 생활에 쫓기며 살기 보다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여름휴가를 통해 추억을 쌓아가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해보고 싶은 느낄 것이다. 나 역시도 조금만 젊었더라면 이런 용기 한 번 내보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잠시 생각도 해보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부부로 연을 맺고 집이란 공간을 만들며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부부의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일 년에 한두 번은 제주도에 놀라가는 편이라 다음에 제주도에 간다면 이 부부가 운영하는 집에서 너무나 예쁜 직접 만든 화덕,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미닫이문, 고양이 발자국이 남겨진 시멘트, 작은 텃밭 등을 볼 수 있게 한 번 묵어 보고 싶다.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놓치고, 때로는 흘려보내는 사소한 일들이 우리들에겐 얼마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는지. 하나의 작은 추억이 될 수 있는지.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참 감사하다. -p39-
소유하려 들면 얽매이기 마련이다. 100년도 넘게 이 땅을 지키고 서있던 오래된 집을 우리가 소유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잠시 머무는 것뿐이다. 마음에 욕심이 꼬물꼬물 생기는 날이면 늘 되새기는 말, "머물다 가자." 그리고 더 재미있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해나가자고 생각한다. -p 131-
"그래. 나도 운명을 믿어. 그런데 내가 믿는 운명은 그런 게 아니야. 운명이 되기까진 어느 한쪽의 노력이 필요해. 아무 노력 없이 운명이 될 순 없어."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