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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올 여름은 유난히 비도 많이 내리고 더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아니 가을 초입에 놓여 있는 지금 우연히 내 눈에 띈 책 '수박향기' 이미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을 찾아서 거의 다 읽을 정도로 그녀의 작품세계를 좋아하는 열렬 독자 중 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나지만 '수박향기'는 개인적인 일과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있었던 책이다.
여름 과일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수박을 좋아한다. 더위에 지친 낮에 씻고 난 후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엄마가 만들어 준 수박화채나 수박을 먹으면 더위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 커서 이제는 내 돈 주고 먹고 싶을 때 수박을 사 먹지만 어릴적에 먹었던 그 수박처럼 달고 맛있다는 느낌은 덜 받기도 한다.
'수박향기'는 열 한명의 소녀들이 자신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여름날의 추억? 기억을 떠올리며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낯선 사람이 가족이나 형제, 자매보다 더 가깝게 자신을 알고 있다고 느껴지고 그로인해 어느새 위로 받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생과 사, 조금은 섬뜩하고 어린이의 행동이나 감정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면까지 가지고 있는 열한명 소녀들의 모습에서 어릴적 기억을 떠올려 보고 나 또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책 제목과 같은 수박향기, 재미빵, 남동생, M을 특히 재밌게 읽었다. 부모와 헤어져 살던 소녀가 집에 가고 싶어 무작정 가출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된 몸이 붙은 아이와 엄마.. 그들과의 짧은 만남, 아버지를 대신하는 삼촌에게 엄마와 딸이 가지고 있는 감정선, 여름날 치르는 장례식을 보며 놀이를 즐겼던 누나와 남동생의 이야기나 자신에게 무심한듯 알 수 없는 친절을 베풀는 존재 M과의 계속되어지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 어느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내용들이고 몽롱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해 더욱 흥미로웠다.
나에게 있어 여름날의 특별한 기억은 무엇인가? 잠시 떠올려 보게 만든 책이다. '수박향기'에서 소개된 것처럼 남모를 비밀을 한가지쯤 가지고 있어도 괜찮을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런 은밀하고 싸하게 아리면서 가슴을 적셔주는 비밀을 풀어놓는 열한명의 소녀들이 왠지 부럽기까지 했다.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책이 있어 여름의 끝자락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다음 책은 어떤 내용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