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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 채소, 인류 최대의 스캔들
리베카 룹 지음, 박유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매일 식탁에 오르는 채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역사속에 살아 숨쉬고 우리의 식탁을 빛낸 20종의 채소 이야기란 책표지의 문구부터 매력적으로 느껴진 책이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 과잉으로 인해 각종 성인병은 물론이고 암 등과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까지 걸리기 쉽다. 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 자연히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값싼 중국산 채소들에게 우리의 식탁을 내주고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 우리의 먹거리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우리 땅에서 재배가 된 우리 농산물을 찾는다. '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는 별관심 없이 먹었던 채소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만나 자세히 알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였다.
아들녀석은 오이를 무지 싫어한다. 수분이 많아 피로회복과 미용에 좋은 오이지만 오이 특유의 향과 맛, 씹히는 질감이 영 싫은지 눈에 띄지 않게 오이를 잘 숨겨서 요리해주어도 귀신같이 알아내서 골라내거나 골라내지 못하면 안 먹는 오이지만 로마 사람들이나 황제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이는 큰 것보다는 적당히 자란 것이 훨씬 좋은 오이이며 로마를 걸쳐 콜롬버스와 함께 서반구까지 진출하였다고 한다. 특히 식초를 곁들여 피클로 만들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피클 사랑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특히 조금은 황당하지만 오이왕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빈.. 콩에 대한 부분을 재밌게 읽었는데 16세기에 아메리카 빈이 에스파냐인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으며 처음에는 장식용으로 키워졌는데 빈이 우연히 수프 냄비에 들어간 것을 먹게 된 이후 계속 익혀 먹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하고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정치적 개입이 죽음을 초래하고 도주하다 콩밭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피하려다 결국 잡혀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그가 혹시 잠두 중독증이란 유전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에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나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땅콩처럼 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았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당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왔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놀라웠다. 소아시아를 걸쳐유럽에까지 이르렸으며 당근이 남성의 상징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화가들의 작품에 그려진 이야기나 로마 황제, 병사들이 했던 행동들에 웃음이 나기도 했으며 당 함유량도 높고 후식 요리에도 쓰일 정도로 맛있는 당근이 세계 당근 박물관도 있고 알파벳마다 적어도 한 종류씩 실려 있을 정도로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외에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고추, 호박, 시금치, 토마토 등의 채소들과 옆지기, 아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채소들에 대해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타나서 어느 경로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 역사를 알 수 있다. 더불어 해당 채소의 종류와 맛, 효능에 관련된 사연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루하거나 정보만 전달해 주는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사실 우리집에는 나 빼고는 두 명의 남자가 채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도 이제는 중년을 넘어 선 옆지기에게 채소요리를 해 주면 지금은 몇번 집어 먹지만 처음 결혼하고 신혼때 내 입맛대로 고기 반찬 없이 채소로만 4-5가지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린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화를 내는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며 짜증아닌 짜증에 화까지... 그 이후로 옆지기에는 꼭 고기를 얹은 밥상을 차리지만 태생이 날씬하지 않은 사람이라 고기 자체보다는 채소를 조금 많이 곁들인 반찬을 만들고 있다. 이런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 역시 채소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 나름대로 이런저런 채소를 많이 먹이려고 김밥이나 야ㅐ를 듬뿍 넣은 계란부침 같은 요리를 자주 해서 주는 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채소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요리 개발을 통해 우리집 남자들의 입맛을 채소와 친해지게 만들 생각이다.
재작년에 주말 농장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한번도 농사란 것을 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가 나도 한번 내 손으로 채소를 재배해서 먹고 싶다는 생각에 신청해서 해 보았는데 막상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상추나 감자는 조금의 수확을 건져 먹어보기도 했지만 파나 치커리는 제때 돌봐주지 않아 다 망가져 속상했었다. 한번의 경험이 있으니 내년에는 다시한번 주말 농장을 사서 채소를 키워볼 생각이다.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작물들을 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즐겁기까지하다. 알고 있었지만 효능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채소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