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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영순 - 엄마의 삶은 시간이 흘러 우리 모두의 인생이 된다
고혜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세상에 태어나서 '응애' 소리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아마 '엄마'라고 알고 있다. 완전한 발음은 아니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는 엄마들은 갓난애기가 하는 말이 무엇이고 누구를 부르는지... 한살한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더욱 깊어지는거 같다.
지금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기꺼히 다른 것을 희생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예전에는 한번 결혼하면 남편은 물론이고 시댁, 아이들 모두를 다 건사하고 책임지며 별 말 없이 참으며 살아오신 어머님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인생이 아무리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어도 선뜻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어르신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허나 '엄마 김영순'의 주인공이신 김영순 할머니는 여든다섯살을 앞둔 시점에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효자아들이 어머니의 뜻을 받아 기꺼이 대필작가를 찾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이 '엄마 김영순'의 저자인 고혜정씨... 그녀는 사실 너무나 유명한 '친정엄마'의 작가로 그녀를 난 3-4년 전에 친정엄마란 대학로 공연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 때 친정엄마의 모습이 나의 엄마와 너무나 닮아 있어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으며 같이 보던 친구와 함께 그 날은 밤 늦은 시간까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이야기는 열 번의 만남을 통해서 김영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저자 자신의 친정엄마와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더욱 더 감정 몰입도 잘 되고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여든다섯살의 김영순 할머니와 40년 차이가 나는 저자 고혜정씨의 삶이 비슷하게 오버랩 되는 장면들이 많다. 그래서 저자 역시 자식을 위해서지만 고집 세고 자기 주장 강한 김영순 할머니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지난 날의 일들이 미화되어 기억된다고 한다. 김영순 할머니 역시 남편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과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느정도 미화되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서른하나란 늦은 나이에 열살 나이 차이가 나는 자상한 남편을 만나 알콩달콩 재밌던 시간도 잠시 사업에 실패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진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김영순 할머니와 자식들, 그녀의 남동생이 기억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뭉클하고 코 끝이 찡하게 다가온 이야기이로 나역시도 어느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반성했던 부분인데 왜 남겨진 사람들은 금전적인 유산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인지... 아마 어려운 생활고에 허덕이다보니 삶에 대한 여유가 없어 그럴거라 생각하지만 김영순 할머니의 말씀대로 좋은 머리, 따뜻한 품성, 자식이 기억하지 못해도 아낌없이 주었던 사랑에 대한 부분이 더 유산으로서 인정 받아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영순 할머니는 지금도 자식을 위해서 며느리와 자식, 손자들에게 밥을 손수해서 먹이고 있다. 학교 다닐때 세번에 걸쳐 자식에게 따뜻한 밥을 해 주었던 것을 지금도 고스란히 하고 계신 것이다. 그녀의 모든 삶은 자식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허나 저자의 말대로 이런 시어머니를 내가 만난다면 난 정말 싫을거 같다. 며느리도 자식이라고 말하지만 김영순 할머니가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던 두가지 사건처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어머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무서울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김영순 할머니의 이야기보다 저자 고혜정씨와 친정엄마와의 대화가 더 가슴 뭉클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울엄마의 모습을 많이 닮고 있어서란 생각 때문이다. 나역시도 지금도 엄마가 이런저런 밑반찬과 김치를 보내주신다. 고맙고 죄송한 마음은 항상 갖고 있으면서 전화 한 통 제대로 드린 적도 통화를 길게 나눈 기억도 거의 없다. 은연중에 나를 이해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그렇게 행동 했지만 엄마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서운할까? 싶은 마음에 죄송스럽다.
흔한말로 울엄마만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 풀어 놓으면 한 권의 책으로는 모자르다는 말을 하실 때가 있다. 그만큼 살아 온 시간들이 결코 녹녹치 않았음을 옆에서 보면서 대강 알고 있고 모르는 부분 역시 상당히 많을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뭔데 뭔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 하려던 말씀도 목구멍으로 다시 들어가시는 모습에 짠하면서도 안쓰럽고 고맙고 죄송한 복잡한 심정에 휩싸이곤 한다.
김영순 할머니처럼 헌신적인 삶을 살았어도 자식이 잘 풀려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가 원했던 당당하고 멋진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엄마의 그늘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내가 밉고 한심하고 죄송스럽다. 앞으로는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지 않고 표현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내 가장 큰 계획 중 하나가 엄마와 단 둘, 아님 여동생들과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다. 벌써 올 해도 다 지나갔다. 이래저래 올 해는 아무래도 힘들거 같은데 내년에는 엄마와 함께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길에 오르고 싶다. 엄마... 항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우리곁에 오래도록 남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