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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명작 스캔들 - 도도한 명작의 아주 발칙하고 은밀한 이야기
한지원 지음, 김정운.조영남, 민승식 기획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10월
평점 :
이렇게 대담하고 적나라하게 명작들을 파헤치고 해부한 책이 있었나 싶은 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KBS 명작 스캔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학창시절에 한동안 미술,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시, 문학이 더 나에게 가깝게 느껴지고 좋아하는 분야였지만 왠지 미술과 클래식 음악 또한 멀리하면 안될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때 만났던 명화들은 사실 작품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안다기보다는 단지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작품과 함께 외우는 그야말로 공부에 가까운 미술감상이였다. 클래식 음악도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 솔직히 클래식보다는 팝이나 발라드 음악을 더 좋아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나름 열심히 외우고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 때 들은 클래식 음악들을 들어도 아는 것보다 헷갈리는 것이 더 많아져서 한편으론 속상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당연하지 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다.
'KBS 명작 스캔들-도도한 명작의 발칙하고 은밀한 이야기' 제목부터 상당히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다. 더군다나 'KBS 명작 스캔들'을 주도하는 두 남자 역시 남다른 느낌을 팍팍 풍겨주는 사람들이다. 조영남씨야 말할 필요 없는 사람이고 김정운 원장님도 남다른 개성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그의 책을 전부 읽은 나로서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밌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궁금했었다. 여기에 'KBS 명작 스캔들'을 기획한 민승식 PD님은 처음이지만 그가 밝힌 기획 의도만 읽어도 남달리 멋진 생각을 가진 분이란게 느껴졌다. '그들만의 향유' 이보다 명작에 대한 더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명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도 항상 제대로 즐길 줄 몰랐던 나는 명작에 숨겨진 뒷 이야기와 소위 명작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안다고 자부하는 '고급문화'란 울타리를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려는 기획자의 의도를 높이 사고 그로인해 나역시도 조금은 편하게 명작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이제는 조금씩 그들이 즐기는 고급문화와 친해질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소설처럼 재밌다. 모든 작품들에 앞서 조영남, 김정운씨가 만담처럼 짧게 이야기하는 부분도 재밌고 명작들에 뒤에 숨겨진 진짜 배경과 진실이 들어나는 묘미 또한 책속에 빠져 들게 하는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책에 나온 명작들은 이미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작품들이다. 허나 명작들을 눈과 귀로만 감상하며 스쳐지나가며 잊어 먹었던 것을 하나하나의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파헤쳐서 왜 그런지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스캔들이라고 불리워도 좋을 내용들이라 흥미롭게 느껴졌으며 연신 그랬구나... 정말이야... 하는 말을 속으로 되내이면서 읽었다.
책의 첫장이고 똑같은 여인을 두 개의 버전으로 그린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 궁중화가로 인정 받고 있던 그가 당시에는 누드화 자체가 금지된 상황에서 왜 이런 그림을 그렸으며 그로인해 종교재판에까지 회부되는 결과를 낳았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이 다 정치적인 사건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계몽주의 신봉자인 그가 한발 앞서간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고토를 겪게 된다. 그는 청력을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완성해 나간 한발 앞선 위대한 예술가다.
신윤복, 김홍도와 같은 화가는 알았어도 김명도란 이름은 처음 들었다. 허나 이 분이 그 유명한 '달마도'를 그리신 분이란걸 알았으며 그가 당시 당파싸움에 물든 조정과 집권 세력이 보여주는 모습에 환멸을 느껴 세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술에 의지해서 그림을 그린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 생각하며 그의 그림을 일본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였고 대담하고 아름다우며 섬세하고 정교한 그림을 그린 김명도란 화가를 몰랐다는게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이제라도 그를 알게 되어 반가웠다.
세기의 사랑, 변치않은 아름다운 연인.. 등등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슈만과 클라라... 나역시도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뒤집어 보고 파헤쳐 보며 이들의 진짜 사랑에 대한 모습을 들여다 보는게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명작마다 마지막에 김정운 교수의 날카로운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는데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에 대한 그의 지적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떠나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안타깝게 느껴졌다.
매혹적인 그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네덜란드가 국가적 보물로 여길 정도로 아끼는 작품 속 소녀는 상상속 인물이라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흐..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한 다양한 추론과 동생 테오와의 이야기, 스물다섯 살이란 이른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그의 데뷔작이고 유작이 되어버린 노래, 주옥같은 노래로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 '비틀즈' 그들의 대표곡이라고 말해도 절대 손색이 없을 '예스터데이'가 감상적이라 자신들의 음악과 맞지않는다며 외면당했던 곡... 이 곡에 대한 폴 매카트니의 열정이 없었다면 여자친구와 함께 휴양지로 놀러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아름다운 명곡을 영원히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존 레논의 죽음과 두 사람의 상반된 평가 등이 흥미로웠다. 이외에도 책에 담겨진 모든 이야기는 다 재미있다. 명작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시대상과 배경, 왜 그런 명작이 탄생하였는지 여기에 김정운 원장님의 재치 넘치는 이야기까지 한번을 읽어도 좋지만 두고두고 읽으면서 명작을 감상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요즘 신세대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게임과 검색, 서핑을 주로하지 정작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줄 명작들과 같은 작품에 대해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나의 아들 역시도 이들과 똑같은데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이 책을 보여주며 명작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