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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평점 :

완벽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사랑도 없다
중년의 하라 슈코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철학이다. 우리 각자는 사랑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투명한 유리글라스에 담겨진 물이 손잡이를 잡은 이의 마음을 반영하듯 살짝 출렁거린다. 앞에 앉은 상대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기에 들키고 싶지 않다. 이제 갓 아가씨 티가 나는 열다섯 소녀의 마음이다. 이와는 반대로 소녀가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마흔다섯살의 완석미를 갖춘 여자는 쿨하게 살고 있지만 상대에게 매여 있는 삶에 더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읽고나면 항상 애잔하면서도 가슴 한쪽에 작은 파문을 던져준다. 너무나 투명하고 깨끗하게 쓰여 있는 이야기는 불륜처럼 위험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그 느낌이 퇴색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기다리던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나왔다. '잡동사니'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분명 저자가 말하는 것들이 물건이나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두 명의 시각에서 번갈아 가며 들려주고 있다. 일흔살이 넘은 여자와 그녀의 딸이 푸켓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다. 딸 하라 슈코는 어느날 눈에 띈 한 소녀를 바라보는 일상이 너무나 즐겁기만하다. 소녀의 이름은 네기시 미우미...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눈에 띄는 아이... 일흔살의 기리코씨는 소녀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을 예리하게 간파하여 이야기해준다.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슈코씨는 부담스러운 관계를 원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잊는다. 허나 엄마 기리코와 자신을 찍어 준 사진을 보내 온 매혹적인 소녀 미미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된다. 슈코 역시 쿨하게 살아왔던 시간이 있었지만 남편 하라와 만나면서 어느새 그를 향한 마음만 가지고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기꺼이 다른 상대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지닌 남자... 그런 남편에 대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면서도 순간순간 남편과 관계된 대상에 대한 공상이나 체취에 탐색하는 슈코의 모습은 평범한 나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쿨하게 인정하기 힘든 모습이다.
우리는 상대를 볼 때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와 연관된 것들을 통해서 그를 발견하는 면이 많다. 부모의 이혼과 한번씩 만나는 아빠, 부모님 각자의 애인들과의 이야기나 학교생활은 아직은 어린 미미에게는 쉬운 감정상태는 분명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여행지에서 만난 기리코나 슈코를 비롯해 슈코의 남편 하라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분명 미미에게는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즘 신세대 연애를 반영한 '연애의 온도'를 며칠전에 보았다. 그때 보면서 우리 때와는 정말 다른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는데 미미란 소녀 역시 자신에게 호감으로 대하는 기리코와 슈코란 인물과 관련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마음은 조금 황당하면서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미미가 꿈꾸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내가 꿈꾸는 사랑과 그들의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이 다르기에 흥미롭게 느끼며 그들의 들려주는 생각과 사랑의 모습에 빠져서 재밌게 읽었다.
사랑이란 감정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체로 풀어 낸 '잡동사니' 서로가 나누는 사랑의 순간이 가장 완벽한 사랑이고 인생이기에 가장 완벽한 연애소설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연애, 사랑, 인생이야기를 원한다면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