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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소피 옥사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한번만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 평생을 가슴에 품은 남자를 이제 묻으려 한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지역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게 사람이다. 더군다나 내일의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전쟁중에는 이런 마음이 더 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전부터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북유럽 나라들의 작품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추방' 역시 산타클로스의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 작가의 작품으로 이 작품이 부산축제영화제 초청작의 원작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스토리는 두 자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 남자와 그녀들, 그리고 한 여자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의 시간 속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할머니 알리데 트루는 자신의 집 마당에 누워 있는 물체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진흙투성이에 지저분하지만 나름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는 여인은 남편과 자동차 여행중이였다고 털어 놓는다.
낯선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알리데는 젊은 여인 자라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그녀를 우선 자신의 집에 한동안 머물게 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수시로 밖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라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그녀가 에스토니아에 오기까지의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자라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원치 않는 끔찍한 시간을 살아야 했던 자라의 모습이 안타깝게 전개된다.
오래전 과거의 시간속 한 남자 한스가 알리데의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봐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그녀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그만 알리데의 언니 잉겔에게 쏟아지고 그 모습은 한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자연스럽게 잉겔과 한스이 결혼을 하지만 행복한 그들의 모습은 알리데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알리데가 순간적으로 먹은 나쁜 마음도 미처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잉겔이 임신을 하게 되고....
정치적 신념이 다른 한스가 전쟁통에 위험에 빠질까봐 자매는 한스를 숨긴다. 공포의 고문 시간도 무사히 잘 견디었다고 생각했지만 알리데가 자신을 도와줄 남자로 선택한 인물로 인해 그만 언니 잉겔과 조카는 멀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쫓겨나게 된다. 언니가 떠난 공간에서 언니의 남편 한스를 돌보고 싶었던 알리데... 안전을 위해 선택한 남편 몰래 형부 한스를 위해 알리데의 위험을 무릎쓴 행동이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엇갈린 사랑을 향한 한 여인의 무모하리 만큼 안타까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집착으로 변해간다. 자신보다 무엇이든 잘하고 완벽한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섞인 감정...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이런 감정들이 있기에 알리데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자라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라를 이용해서 욕심을 채웠던 인물들로 인해 자라가 누구인지... 그녀가 왜 알리데를 찾아왔는지 마침내 들어나기 시작하는데....
읽으면서 드라마적 요소가 가득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사랑, 시기와 질투, 배신이 섞인 이야기는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구나 살기 위해 몸부름쳤던 전쟁통 한가운데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에서 자신들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행동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 어떤 남성보다 강하다는 느낌을 준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스토리를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해졌다. '추방'은 스릴러 소설을 통해서 주로 접했던 북유럽 소설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전쟁 속에서 살기위해 몸부름쳤던 한 여인의 가슴속 깊이 간직한 은밀한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